[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15>
파도를 헤치고⑦
美예외주의 VS 中중화주의 자웅겨루기가 임박했다
中, 눈부신 경제성장 발판삼아 軍현대화 박차
동아시아에서 美패권주의가 도전받는 상황
美, 中포위 軍재배치… 예방전쟁카드 만지작
‘그거?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그러는 거야!’ 그 한마디로 우리는 상황을 꿰뚫어 이해한다. 그 어려운 정치적 개념을 잘도 이해하고 참 적절하게 사용한다. 그런 상황을 몸으로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인가?
패권국가는 다른 나라가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 패권국가의 지위를 잃는 그 순간, 새로 등장하는 패권국가의 지배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에는 패권국가라 할만한 초강대국 미국이 있고 서로 엇비슷한 일본 중국 러시아가 겨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일초다극체제(一超多極體制)라고 하는데 미국의 목표는 혼자 지배하는 단극체제(單極體制), 즉 패권체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집권세력이 바뀌면 세상이 많이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과 인류역사를 제대로 읽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미국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패권국가적 지위를 유지하거나 달성하려 할 것이다. 패권국가의 정치ㆍ경제체제는 그 나라가 패권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미국에게는 방법과 명분만이 달라질 뿐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없다.
세력전이론(勢力轉移論)
‘세계는 지금 세력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아시아의 경제력이 정치ㆍ군사력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서양은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다. 과거 독일과 일본의 등장에 잘못 대응한 실수를 되풀이 하는 양상이다. 민족주의적 아시아는 과거의 부당함을 바로잡으려 하며 그들도 햇빛아래 자리잡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나선다.’ ‘외교정책(Foreign Policy)’이란 미국의 권위있는 잡지 2004년 7-8월호에 실린 편집장의 글이다.
그러면 세력의 이동은 왜 일어나는가?
첫째는 패권국가와 다른 나라 간의 성장 속도 차이 때문이다. 중국을 예로 들자면 경제 성장의 속도가 년9%에 이른다. 미국의 경제체제가 잠재적 경쟁국 중국에게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됐다. 중국은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큰 시장에 입장했고, 세계무역체제(WTO)에도 가입하여 국제경제의 중요한 한 축이 됐다.
중국은 경제성장 덕분으로 해마다 군사비 투자를 두 자릿수 이상의 비율로 늘려간다. 특히 군 현대화에 몰두한다. 그렇다고 누가 그 경제성장을 저지할 수도 없다. 세계는, 특히 미국은 중국이 수출하는 값싼 공산품에 길들여졌다. 아시아 국가들이 1990년대의 경제 충격에서 벗어나는 데도 중국 경제성장이 엔진 동력역할을 하고, 일본의 경제회복도 중국의 경제성장에 크게 의존한다. 국제경제기구들은 2025년이면 경제력, 군사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측한다.
둘째, 패권국가가 지불하는 국제공공재의 비용이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서 패권국가가 쇠퇴한다. 학자들은 영국이 더 이상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패권국가 스스로 벌이고 있는 전 지구적 개입에 따른 비용의 증가 때문에 어느 시점에 이르면 패권국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른다.
숨 고르는 화산(火山)
중화주의(中華主義)는 국가의 중요한 이념이며 민족주의의 중국식 표현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와 민족을 포함하고, 역사상 가장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된 중국. 수세기만에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았다. 영토 내의 모든 민족은 중화인민이고 그 역사는 모두 중화의 역사가 된다.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서북공정은 이런 중화주의의 산물이다. 세계의 역사를 중화주의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중화주의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선언이다.
새무얼 헌팅톤은 문명충돌이론(文明衝突理論)으로 세계의 분쟁을 설명한다. 문명간의 접선(接線)이 전선(戰線)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서양문명은 국제기구, 제도, 규칙 그리고 군사력과 경제자원을 서양의 우월성과 서양의 이익을 보호하고, 서양의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전파하는 데 이용한다. 그러나 이제는 가치체계와 이익을 달리하면서도 그들의 수준에 육박하는 능력을 가진 비 서양문명과 마주치게 됐다. 서양은 비 서양문명의 도전에 대응할 충분한 경제적 군사적 힘을 유지하여야 한다. 현실에서 미국은 서양문명을 대표한다.
헌팅톤이 인용한 나이폴(V. S. Naipaul)의 조사결과를 보면 100가지 종류의 가치에 대해 여러 사회의 의식을 비교연구한 결과 서양문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체계가 전세계적으로는 가장 덜 중요한 가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그들의 가치체계가 전세계적으로 보편타당한 것이라고 믿는 우월주의가 존재한다. 건국과정의 청교도 정신, 미국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최후의 보루라는 굳은 믿음은 당연한 귀결로 다른 국제질서나 가치보다 미국이 추구하는 가치가 우선한다는 예외주의의 뿌리가 됐다. 이에 따른 행동양식이 일방주의로 나타난다. 모든 비서양 문명권의 가치체계를 미국에 맞추도록 강제한다.
미국의 예외주의와 중국의 중화주의가 마주친다. 동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여러 곳에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유일한 나라로 미국은 중국을 꼽는다. 서로에게 치명적인 이해관계들이 양립할 수 없이 부딪친다고 본다.
중화주의와 예외주의가 맞닿는 아시아 태평양판(板). 그 판 위에 거대한 화산이 가슴에 용암을 품고 숨을 고르고 있다.
장기판
미국은 지난 반세기 만에 가장 포괄적인 군사력 재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제2의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의 지상기지에 붙박이로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아시아의 심장부 중앙 아시아에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발 빠른 작은 규모의 기지들을 많이 구축했다.
중국은 자기의 잠재적 경쟁상대인 인도와 미국이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나아가 군사력의 전면적 재배치를 자기를 포위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중국식 전략에 따라 국제문제에서 미국과 협조하며 시간을 벌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응 군사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최신 무기를 사들이고,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며 핵실험도 감행했다.
공중급유기와 항공모함의 도입을 추진하는 등 군사력 투사능력 강화에 힘쓴다. 중국의 군사교리는 미국의 하이테크 능력, 즉 정보 네트워크, 스텔스 항공기, 크루즈 미사일, 그리고 정밀유도폭탄 등에 대응하는 능력배양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투사된 미국의 전력은 네트워크라는 신경망으로 연결돼 있다. 만일 이 신경망에 이상이 생긴다면 미국은 재앙적인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손자병법을 능수능란하게 적용하며 대칭, 비대칭 전력을 교묘히 배합할 줄 아는 중국의 대응이 관심거리다.
미국도 중국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해마다 늘어나는 중국의 거대한 군사비 지출은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축출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부시 독트린’으로 불리는 미국의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은 사실상 예방전쟁(Preventive War)이다. 선제공격은 확정적인 형태로 임박한 상대국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으로 국제법상 그 불가피성이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2003년 3월17일,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면서 발표한 미국 대통령의 선언을 보자.
‘우리는 지금 행동을 개시할 수 밖에 없다. 1년 후 아니면 5년 후 이라크가 전세계 자유국가들에게 끼칠 위험이 몇 배나 클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직 현실화 하지 않은 무기, 상대국이 그 무기를 미국에게 사용할 것이라 결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장래의 가능성에 대해 선제공격의 이름을 빌어 예방전쟁을 일으켰다. 미국과 세계에 위험할 것이라는 판단은 미국이 내린다.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는 대량살상 무기를 가지려는 불량국가나 테러조직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이것도 미국의 판단이다. 미국은 장기판을 들여다 보면서 중국을 제어할 다른 수단이 없는지 여러 계산으로 분주하다. 해양국가 세력과 대륙국가 세력간의 세계사적 자웅 겨루기가 임박했다. 미국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이용한 예방전쟁의 카드를 만지작거린다. 북한의 핵 문제가 가장 먼저 눈에 뜨인다. 다음 회에 살펴본다.
[출처] [무기, 전쟁 그리고 인간] <15> 파도를 헤치고⑦|작성자 flatline21
윤석철객원 기자 ys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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