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 떨어진 호랑이
<동해 호암소>
옛날 신라시대였다. 지금의 강원도 삼화사에 지혜가 출중한 주지 스님이 상좌 스님과 함께 수도하고 있었다.
어느 눈 쌓인 겨울날.
저녁 예불을 올리려고 두 스님이 법당으로 향하는데 아리따운 규수와 침모인 듯한 중년 여인이 경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리따운 규수와 침모인 듯한 중년 여인이 경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잠시 발길을 멈춘 두 스님은 정중히 합장하며 인사 올리는 두 여인을 맞았다.
『눈길이 험한 늦은 시각에 어떻게 이리 오셨습니까?』
주지 스님이 묻자 예의범절이 반듯해 보이는 규수가 조용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서 몹시 편찮으시옵니다. 부처님께 칠일 기도를 올려 어머님의 빠른 쾌차를 빌고자 합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상좌 스님은 왠지 가슴이 설레였다. 다소곳이 두 손을 모은 채 말하는 규수의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부터 기도에 들어간 규수와 침모는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부처님께 간곡한 기도를 올렸으며 주지 스님도 그들을 위해 철야정진을 했다.
상좌 스님 역시 열심히, 그리고 정성을 다해 시봉을 했다. 나무를 하고 밥을 지으면서도 늘 아름답고 가녀려 보이는 규수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래서인지 그는 행여 밥이 질지나 않을까 싶어 두번 세번 솥 속에 손을 넣어가며 밥물을 가늠했고 법당 청소도 여느 때보다 더 깨끗이 했다.
기도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 밤. 규수는 꿈에 수염이 긴 스님을 뵙게 됐다.
『이제 얼굴의 수심을 거두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회향토록 하라. 네 간절한 정성을 부처님의 가피가 있으실 것이니라.』
꿈에서 깬 규수는 뛸듯이 기뻤다. 그녀는 더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를 마치고는 집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주지 스님, 그간 너무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정성껏 기도해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원 별말씀을요. 모든 중생의 아픔은 바로 우리 출가자의 아픔과 다름없으니 당연히 할일을 했을 뿐입니다.』
규수와 침모가 떠난 며칠 뒤 이상스럽게도 건강하던 상좌 스님이 심한 열병으로 그만 몸져눕고 말았다.
『네가 기도 시중을 드느라 힘이 들었던 게로구나. 병이란 마음의 번뇌망상과 잡념에서 오는 것이니 누워서도 염불정진을 게을리 하지 말거라.』
주지 스님은 상좌 스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타이르고는 눈쌓인 첩첩산중에서 마을로 내려와 우선 약값에 필요한 탁발을 하려고 어느 집 대문 앞에서 시주를 구했다.
『아니, 스님께서….』
시주쌀을 들고나온 여인은 얼마 전 삼화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간 침모였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백약이 무효이던 마님의 병환이 씻은듯이 완쾌되시어 그러잖아도 날이 풀리면 인사드리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인연의 끈이란 지중한 것이로구나」 고 생각한 스님은 안으로 들어가 잠시 인사를 받고는 몸져누운 상좌 생각에 곧 자리를 떴다.
약을 구해 들고 다시 삼화사로 돌아오느라니 어느새 밤이 깊어 스님은 걸음을 재촉했다. 스님이 지금의 동해시 무릉계곡을 지날 때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어흥」 하는 소리와 함께 큰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밤중이긴 했지만 늘 다니던 길인 데다 온 산에 덮인 눈 덕분에 아주 칠흑암흑은 아니었다. 스님은 꾀를 내어 바로 눈앞에 있는 폭 10m가 넘는 절벽과 절벽 사이를 법력으로 뛰어넘었다. 이를 본 호랑이는 「사람이 넘는 길을 내가 못 넘으랴」 싶어 얕잡아보고는 절벽과 절벽 사이로 몸을 날렸다. 순간 「풍덩」 소리와 함께 호랑이는 절벽 밑에 있느 깊은 소(沼)에 떨어져 죽었다.
그 후 삼척부사 김효원은 이 소를 「호암소」 라 부르게 했고 남쪽 암벽에는 지금도 「호암(虎岩)」 이라는 글짜가 새겨져 있다.
「호암소」는 무릉계곡을 찾는 관광객들이 한번씩 들러 가는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