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해신화와 민족이동
주나라 때부터 중국 사서에 심심찮게 나오던 회이 또는 서국의 기록이 진시황의 천하통일과 함께 자취를 감춘다. 진이 육국 및 회이와 서이를 병합하니 그 나라 사람들은 모두 흩어져 일반 백성들이 되었다.
『후한서』 동이전서의 위 기록은 회수와 사수에 살던 동이족들이 진시황의 천하통일정책에 의해 붕괴되고, 한족 속에 흡수되어버린 역사를 말해 준다. 한편 때를 같이 하여 한반도 남부에 일어난 역사적 정황을 전해주는 유력한 자료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진한조의 다음 기록이다.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그 나라의 노인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스스로 일컬어 말하기를 秦나라의 부역을 피하여 한국으로 오자, 마한은 그 나라의 동쪽 경계지점을 할애하여 그들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들은 성책이 있으며, 그들의 언어는 마한과 달랐다.
위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부분적으로 인용되고 있는데, 진나라의 고된 사역을 피해서 중국으로부터 한반도 남부의 마한에 도달한 일군의 집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여러 정책들을 시행했다. 대표적인 사업을 들어 보면 아방궁과 진시황릉 및 만리장성의 등의 大役事와 분서갱유 등이다. 이러한 진시황의 정책입안은 漢族 중심의 것이었다. 동이족의 일맥으로서, 비한족인 회이가 당시 아방궁이나 만리장성의 역사를 위해 당했을 핍박과 착취는 역사적으로 뚜렷이 이해될 수 있고, 따라서 회이족 대부분은 한족으로 흡수되어버렸더라도, 회이족 속에서 상류층에 속해 있던 집단은 그 고통을 감내하기 어려운 나머지 길을 달리했으리라고 추측된다.
앞의 『삼국지』 진한조의 기록은 바로 이런 사실을 입증하는 기록으로 볼 수 있다. 그 연장으로 회이의 徐偃王神話와 구조적으로 동일한 脫解神話가 왜 반도의 남부에서 구전되고 있었겠느냐 하는 의문을 풀 수 있다. 탈해신화에서 탈해는 결코 개인적인 인격체로서 탈해가 아니라 민족적 이동을 단행했던 집단을 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락에서 쫓겨난 탈해가 신라에 도착해서 다시 알로 태어난다고 하는 신화 내용은 역사적 실존인물로서 탈해가 아니라, 신화원형의 반복성에 부회된 인물이기 때문에, 탈해신화는 일정한 신화원형을 보유한 집단의 민족적 이동상황을 표상한 신화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대개 신화적 인물의 이름은 고유명사라기 보다는 보통명사일 경우가 많다. 壇君, 朱蒙, 赫居世, 首露 등이 모두 보통명사로 해석되는 것이다. 昔脫解의 경우도 이러한 관용어적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보통명사일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석탈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유를 {삼국사기}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즉 두 번에 걸쳐 탄생했다는 것은, 사실을 중시하는 역사로 보아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설화적 해명에 의존하게 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 확실한 자료는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한 후,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다른 지역으로 망명을 했다는 것과 진한의 역사가 기록하고 있듯이, 그 일족 중 일부가 한반도의 남부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 일족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역사적 과제지만, 그것을 해결할 만한 정확한 사료를 가지지 못한 지금 단계에서는 설화에 반영되어 있는 역사를 재구해 보는 것이 유력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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