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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는 세종이 만들었고, 해례는 정인지를 비롯한 8명의 신하들인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강희안, 이개, 이선로가 만들었다. 『세종실록』 1446년(세종 28) 9월조에는 ‘어제왈(御製曰)’이라 하고 나서 예의 부분을 기록하고 있어 세종이 직접 한글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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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창제를 반대한 상소문을 올린 것으로 유명한 당대의 중신 최만리와의 일화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최만리는 상소문에서 임금께서 건강이 안 좋아 요양을 떠나면서까지 그리 급한 일도 아닌 한글 관련 사업에 그토록 신경을 쓰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진언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종은 |
| “그대들이 운서(韻書)를 아느냐? 4성(四聲)과 7음(七音)을 알며 자모가 몇인지 아느냐? 만일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가 바로잡는단 말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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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면서 대단한 학문적 자부심을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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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점차 백성들 사이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되었다. 『삼강행실도』, 『소학』등의 교화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백성들에게 보급되었으며 선조 임금 대에는 한글로 쓴 교서를 내리기도 하였다. 이는 백성들 사이에 한글이 상당히 보급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사대부 계층에서도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이가 늘어났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글 사용을 확대하는 데에는 여성들의 역할도 매우 컸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간찰 중에는 여성이 한글로 쓴 것들이 많으며, 여성을 독자로 하는 책들 또한 주로 한글로 간행되었다. 17, 18세기에는 한글 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한글 보급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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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은 인쇄술의 혁신마저 가져왔다. 세종대왕은 새로 만든 글자를 보급하기 위하여 학자와 기술자들로 하여금 활자를 주조하고 서적을 출판하게 하였다. 훈민정음의 반포 이후에 한글활자를 사용하여 인쇄한 것이 『석보상절』이다. 그 이후 한글 활자를 이용한 다양한 서적들이 간행되며 인쇄술의 발달을 가져오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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