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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전략과 신뢰성

지식창고지기 2011. 10. 7. 17:12

브랜드 이론에서는 개별 브랜드의 이미지 혹은 아이덴티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국내와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의 현실은 그런 접근법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음을 시사한다. 
 
요즘처럼 브랜드가 관심을 끌었던 적은 없었다. 소비자들은 예전보다 브랜드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른바 명품 브랜드에 대한 선호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심지어는 부동산처럼 실체적 가치가 쉽게 드러나는 상품에서도 브랜드는 점점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동일한 조건에서도 특정 브랜드 아파트의 가격이 높게 평가되고 유사한 주거 조건임에도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값은 행정 구역의 이름 때문에 더 비싸게 거래된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니 기업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브랜드 관리에 기울일 수밖에 없다. 브랜드 관리를 위해 우수한 인력을 배치하고, 외부의 컨설팅 회사를 아웃소싱하는 등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브랜드 관리가 여전히 쉽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학계에서도 브랜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저런 학문적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그러나 실무자의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필자가 알고 있는 마케팅 실무자들은 ‘브랜드에 관한 책이나 논문 등을 읽을 때는 그대로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막상 실무에 적용하려면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브랜드에 관한 이론에서는 대체로 패밀리 브랜드보다는 개별 브랜드를 권유하고, 브랜드 확장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패밀리 브랜드나 기업 브랜드를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많다. 또 상당히 넓은 분야에 대한 브랜드 확장을 고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예컨대 정수기 업체들이 화장실에서 사용되는 비데를 같은 기업 브랜드로 팔아도 소비자들은 별 거부감 없이 구입한다. 서구적 브랜드 확장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우리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한편 개별 브랜드로만 커뮤니케이션 하던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나 중국에서는 광고의 말미(Trailer)에 기업 브랜드를 삽입하기도 한다.  
 
결국 국내와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전통적 브랜드 이론과 다른 현상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시장의 브랜드 
 
필자는 지난해 브랜드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중국과 베트남의 소비자 수십명을 직접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인터뷰 대상자는 이들 국가의 중상류층 이상의 소비자였다.  
 
그런데 이들이 브랜드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특정 브랜드가 어느 수준이냐는 사실이었다. 즉, 이들은 특정 브랜드가 어떤 이미지를 전달하는가 보다도 이 브랜드가 해외에서 고급이냐 아니냐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 가짜가 아닌가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의 경계심을 보였다.  
 
또 베트남의 소비자들은 지금은 사라진 국내의 D사가 화장품이나 패션 상품을 만든다면 품질이 좋을 것 같고 사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D사는 그곳에서 자동차 등 중후장대형 사업을 전개했었다. 나름대로 해외 유명 브랜드를 상당히 접해본 고급 소비자들의 의견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상당히 놀라운 결과였다. 
 
 
브랜드 이론과 현실의 괴리 
 
브랜드 이론에서는 개별 브랜드의 이미지 혹은 아이덴티티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국내와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의 현실은 그런 접근법이 반드시 옳지만은 않음을 시사한다. 
 
왜 이론과 현실에 큰 괴리가 있을까. 물론 기업 경영의 모든 분야에서 이론을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브랜드처럼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경영자가 자원을 투입하는 분야에서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중요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필자가 조심스럽게 추정하는 것은 브랜드 이론이 만들어지는 서구 사회와 그 이론을 적용하려는 비서구 사회의 특성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브랜드의 토대가 되는 사회의 특성은 사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브랜드에 관한 이론을 일반화하기는 아직까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특히 사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면서 브랜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특성은 바로 사회의 신뢰성이다.  
 
 
브랜드의 기반은 사회와 문화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브랜드를 마케팅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고객의 관점에서 보면 브랜드는 자신이 대상(상품)을 인식하는 기호다. 그런데 고객이 대상을 인식하는데 적용하는 해석 틀은 사회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소비자 사회화(Consumer Socialization) 과정은 그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적 배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고객이 브랜드를 인식하는 기제는 사회의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대부분의 브랜드 이론은 미국과 유럽이라는 서구 사회를 바탕으로 발전되었다. 그에 따라 브랜드 이론은 서구 사회에서 사회화된 소비자에게는 적합하지만 우리나라 등 많은 비서구 사회의 소비자에 대한 적합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서구와 우리의 소비자 사회화에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회의 신뢰성에 대한 가정이다.  
 
서구의 경우 산업 사회의 역사가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사회가 안정되어 있고 질서와 신뢰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 대부분 지역의 도서관에서 여행자가 복잡한 절차없이 책을 대출받을 수 있다. 심지어는 유아 놀이와 같은 커뮤니티 프로그램에도 별다른 증빙 서류 없이 등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음식점을 예약했다가 못가게 되면 반드시 취소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무엇하나 하려고 하면 갖가지 서류를 요구한다. 심하게 표현하면 사회 시스템이 불신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갖가지 규제가 생기고, 그 규제를 피하려는 편법과 탈법이 성행한다. 예약을 부도내는 것 정도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기업의 도덕성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의 경우 훨씬 그 정도가 심해진다. 1970~ 80년대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들과 일본은 고신뢰 사회에 우리나라와 중국, 그밖의 동남아 국가 등은 저신뢰 사회에 속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브랜드가 어떤 기능을 갖고 있고, 어떤 작용을 하기에 고신뢰 사회를 바탕으로 형성된 브랜드 이론이 저신뢰 사회에서 제대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브랜드의 본원적 기능 
 
브랜드의 기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대체로 두가지 설이 유력하다. 하나는 농장주들이 자신의 가축을 구분하기 위해서 낙인을 찍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주류 제조업자들이 자신의 술통을 다른 업자들의 것과 구분하기 위해 낙인을 찍었다는 것이다. 두가지 주장 중 후자는 브랜드의 기원이 특정 제품이 누구에게 속해있는가를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나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제품이 누군가의 것인지를 표현하기 위해 브랜드가 등장했다는 점은 브랜드의 본원적 기능이 바로 신뢰라는 점을 잘 설명한다. ‘이 제품은 누가 만들었으니 믿을 수 있다.... 이 제품에 이상이 생기면 누구에게 찾아가면 되겠지....’라는 믿음을 주는 것은 브랜드가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다.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형성되면 다음 단계로 브랜드는 고객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전달하게 된다. 물론 신뢰가 기반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브랜드는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가 전제되지 않은 브랜드 이미지가 구매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결국 브랜드가 구매로 연결되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신뢰 형성임을 알 수 있다. 서구와 같은 고신뢰 사회의 경우 고객은 그다지 많이 들어보지 못한 기업이라도 어느 정도의 신뢰는 갖고 있다. 기본적으로 시장에 나와서 장사하는 기업치고 크게 사기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사회적 경험에서 이루어진 소비자 사회화의 결과다. 그에 따라 브랜드에 대한 평가에서도 신뢰성보다는 이미지나 개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러나 저신뢰 사회에서 고객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브랜드에 대한 구매에 대해서 주저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독특한 이미지를 풍기는 브랜드라도 일단 신뢰가 가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으려 한다. 오랜 기간의 직간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회화가 이러한 의사결정을 이끄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신뢰 사회에서 기업은 어떤 브랜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가? 
 
 
저신뢰 사회의 브랜드 전략 
 
● 기업 브랜드를 철저히 활용하자 
 
저신뢰 사회에서는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그 단서로 가장 강력하고 쉽게 활용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업 브랜드다.  
 
기업 브랜드라고 하면 제품 브랜드만큼 명확한 이미지를 갖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 브랜드나 제품 브랜드가 충분한 신뢰를 획득했을 때 적용 가능한 이야기다. 기업이나 제품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낮거나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 일단 기업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노력이 효과적이다. 
 
다만 기업 브랜드도 제품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고객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는 제품 브랜드를 우선적으로 알리는 노력을 전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향후 기업 브랜드를 패밀리 브랜드 혹은 엄브렐러(Umbrella) 브랜드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는 어렵다.  
 
한편 기업이 이미 신뢰를 얻고 있는 경우에는 개별 브랜드 체제가 적합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기업 브랜드의 최소한의 지원(Manufactured by)이 필요할 수도 있다.  
 
 
● 브랜드 확장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자 
 
전통적인 브랜드 이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브랜드 확장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잘못된 브랜드 확장으로 브랜드의 가치가 추락한 예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적절한 브랜드 확장은 매출의 증대와 함께 브랜드의 규모(Volume) 이미지를 높여줌으로써 브랜드의 신뢰감을 높여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특정 기업 브랜드 혹은 제품 브랜드가 고객의 신뢰를 확보했다면 그 다음으로는 브랜드 확장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 확장시에는 마케팅 예산, 확장 대상 사업간의 이미지 유사성, 상품의 위상 등을 고려하여 브랜드 확장의 최적점을 찾아야 한다(브랜드 확장에 관해서는 주간경제 제664호 ‘브랜드 확장의 성공 포인트’ 참조).  
 
 
● 신뢰의 씨앗을 외부에서 찾아보자 
 
기업이 자체적으로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면 외부의 신뢰를 줄 수 있는 요인을 찾아서 활용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은 원산지와 유명인이다.  
 
저신뢰 사회의 경우 아직까지도 선진국의 제품이라면 일단 신뢰를 갖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한 다국적 기업은 현지 생산 공장이 있음에도 원산지 효과를 얻기 위해 한국에서 OEM으로 제품을 공급받기도 하였다.  
 
또 유명인도 신뢰성을 부여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물론 고신뢰 사회에서도 유명인은 브랜드 이미지에 결정적 역할을 미친다. 그러나 고신뢰 사회에서 유명인은 브랜드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데 반해 저신뢰 사회에서는 신뢰성을 확보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 공동 브랜드를 통해 규모 이미지를 확보하자  
 
중소 기업의 경우 기업 브랜드든 제품 브랜드든 간에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경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공동 브랜드다. 공동 브랜드는 태생적 성격상 기업 브랜드는 될 수 없고, 개별 브랜드나 패밀리 브랜드 형태가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업자들의 공동 브랜드인 선키스트, 국내 가구업체들의 공동 브랜드인 가보로, 구두 메이커들의 공동 브랜드였던 귀족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공동 브랜드는 이해 관계자가 다수인만큼 브랜드 관리가 매우 까다롭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공동 브랜드의 도입이 어렵다면 이미 신뢰를 얻은 브랜드와의 제휴 마케팅을 통해 간접적으로 신뢰성을 확보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 때로는 과감한 개별 브랜드 전략도 필요하다 
 
마케팅 자원이 충분하다면 기업 브랜드의 그늘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개별 브랜드를 육성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국내의 경우 기업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개별 브랜드만으로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있는 경우는 흔치 않은 만큼 개별 브랜드화에 성공하면 그 효과는 예상외로 클 수도 있다. 
 
그러나 개별 브랜드 전략은 신뢰성의 확보와 아이덴티티의 구축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므로 기업 브랜드 위주의 전략이나 브랜드 확장에 비해 훨씬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 어설픈 개별 브랜드 전략은 자원의 낭비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나 동남 아시아와 같이 서구와 다른 문화적 토양을 갖고 있는 사회에서의 브랜드 육성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물론 검증된 모범 답안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 비해 사회의 신뢰성이 계속 높아지고 있으므로 저신뢰 사회에서의 브랜드 전략은 얼마 가지않아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는 사회의 문화적 산물이며 서구의 이론과 사례의 무분별한 추종에서 벗어나 그 사회의 특성에 적합한 브랜드 전략이 수립되고 실행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명제는 언제까지나 유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