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성서기자가 붙인 주(註)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태복음서 24장 15절)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 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1961년의 {개역}) 나 개인이, 여기, 독자에게 언급한 본문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라고 하는 괄호 안의 본문을 읽을 때마다 내 나름대로 그 동안 몇 가지 서로 다른 느낌을 가져왔었다.
1) 예수께서 당시 구두로 이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이 말씀이 기록으로 보존될 훗날을 미리 상정하시고, 그 때의 독자들에게 지금 하고 계신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이런 말씀 을 하신 것일까? 이 괄호 안 본문에 대해서는 그저 단순히 이 정도로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느 독자가 이 본문에 관해서 물어 왔다. 나 스스로 의문이 생길 때는 내 나름대로 적당히 생각해 버리 고 말 수 있지만 독자의 질문을 받고 보니 무책임한 대답을 할 수는 없으므로, 주석을 펼쳐 보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고, 나의 무지를 부끄러워했다. 우선 여기 괄호 안의 본문은 예수의 말씀이 아니고, 복음서 기록자가 자기의 독자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이라는 것이다. 같은 말이 여기 외에 마가복음서 13장 14절에도 나온 다. 말하자면, 기록자가 본문에 이어서 짧게 붙인 할주(割註)라는 것이다. 네슬레-알란트의 그리스어 신약에서는 이 본문에 괄호가 없다. 괄호는, 아마도 번역자들이 만든 것 같다. 예 수께서 구두로 말씀하시는 상황에서는 "듣는 이들"만 있었으므로, "읽는 자는 깨달으라"는 말 곧 "읽는 이들"을 염두에 둔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일 수 없으므로, 괄호 속에 넣어서, 그것이 복음서 기록자의 말임을 나타내려 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번역은, {개역}에서부터 {새번역}과 {공동번역}과 {표준새번 역}에 이르기까지, 이 괄호 안 본문이 복음서 기록자의 것으로 알도록 하는 일에는 좀 인색 하다. 그러나 현명한 독자들 중에는 그 본문이 괄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복음서 기자의 말인 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지만, 나같이 둔한 독자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본문에는 이 배경을 설명하는 간단한 난외주를 첨가하든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이것이 복음서 기자의 주임을 번역 자체에서 분명하게 하든지 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번 역의 경우에는 본문 안에서 ("독자의 주의를 환기함")이라고 하고, 여기에 난외주를 달고, 난외주의 내용은 "복음서 기자의 주. 다니엘이 말한 것과 그들의 현재 상황 사이에 관계가 있다는 것을 독자에게 상기시키고 있음" 정도로라도. |
'관심 사 > 종교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8.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본문 이해를 돕는 경우 (0) | 2011.11.21 |
---|---|
7. 본문을 지배하려는 교리우선주의의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삼갈 일 (0) | 2011.11.21 |
5.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 (0) | 2011.11.21 |
4. 한 번역이 이해되지 않으면 다른 번역을 본다. (0) | 2011.11.21 |
3. 이방인의 자연숭배 (0) | 2011.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