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변증을 위한 基礎 敎養
哲學 槪設
철학은 인식체계 학 이다. 기독교 인은 성경을 그 인식 체계의 근간으로 한다.
形而上者 謂之道
形而下者 謂之器
(도의 문제를 일컽는 자는 형이상자 요, 기의 문제를 일컽는 자는 형이하자니라.)
도의 으뜸은 십자가의 도요, 이는 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 메시아 인에게서 보인다.
즉, 메시아 인은 성경을 그 인식 체계의 근간으로 하여 십자가의 도를 삶으로 견집한다.
道以事天神 , 德以庇民邦
(도는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는 일이며, 덕은 하나님의 큰 빛을 모든 백성과
땅 위에 펼치고자 함이다. )
우리는 인식을 하고 있든지 못하고 있든지 간에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살고, 활동 할뿐 아
니라 우리의 존재까지도 하나님 안에서 가지게 되기에 삼위 하나님과 모든 역사의 주 가 되
시는 분께 영광을 돌려 드린다. 이것은 하나님과 천지 창조 이전의 영원 시대를 기점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최후에 이룩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최종 목표로 기술한 철학사를 그 뼈대
로 하여 적어 가고자 한다.
철학은 자기 인생을 살기 위한 질문을 통해 행복을 추구코자 보편적이며 합리적인 것을 좋
아하는 마음으로 근본을 추구하여 자기 스스로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이것은 가설을 바탕
하지 않고 인생과 세계의 모든 영역에 걸친 사물의 근본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가설이나 전제가 없다는 것은 관습이나 권위 등에서 마련된 온갖 지식에 현혹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모든 선입관을 버린다는 것이다. 칸트나 헤겔이 말한 것이라 해서 무조건 받아들이
지도 않으며, 조상이나 권위자가 만든 관례라 해서 무 비판적으로 따르지도 않는다. 이러한
철저한 회의적 태도는 결국 철학의 목표 인 절대적 확실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다.
철학사적 방법
1) 주된 인물 중심
2) 주된 사상 중심 방법.-이는 이론 중심으로 어렵게 느껴지나 더 좋을 수도 있으나, 어찌하
든 가장 알찬 저서를 근간으로 성실히 차이 비교 대조 함으로 자기의 것을 만듬이 유용하
다.
철학이란 정의 불능 하다.
다만 철학이 무엇인지 알고자 노력을 기울여 보면...
첫째. 질문학
모든 문제에 물음을 제기하며 해결하여 보려는 노력 자체 정답 추구 과정의 학문 즉, 질문
자체 이기도 하다. 사람 의 특징 의 하나는 높은 지능을 가졌으나 신 의 경지에는 도달할
수 없는 완전치 못한 지능 이기에 철학을 하게 되었다.
둘째. 근본학
질문을 계속하여 얻어지는 질문 의 본질 이기에 사람마다 근본적 물음 의 성격 은 다를지
라도 가장 근본적으로 부딪히는 것을 근본 배후에 있는 것을 캐려는 학.
ㄱ. 과거 지향적으로 목적, 결과, 궁극적 목적, 관심, 결국 원인을 물어 이때 제일 원인
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결론지음.
ㄴ. 미래 지향적으로 인생이 무엇이며, 삶이 무엇이며, 우주가 무엇이며, 절대자가 무엇인
가 하는 것을 추구하여 궁극적 인 삶 곧, 행복에 귀결되는 것으로 결론 지음.
철학의 대상이 무엇인가?
셋째. 보편학
점점 세분되며 골이 깊고, 담과 담을 넘지 못하는 "특수학"과는 달리 철학의 대상이 특정
치 않고 모든 것이 대상이기에 "보편학"이랄 수 있다.
즉, 한 예로 A가 많은 대상 가운데 사람에게 제한되는 사람을 다루는 학문으로 여긴다면,
a 는 A 가운데서도 한정되고, 특수한 분야로 접근되어 족보학(유전학), 심리학, 교육학(어떤
환경 교육으로), 또 a 가운데에서도 a:를 육체를 다루는 즉 무엇을 먹고 저런가를 살피는 영
양학, 보건학, 의학, 약학 등 A ) a) a: 등으로 세분됨 가운데 어느 분야에만 한정하는 것
과는 달리, 세분 심화의 가능성은 있어도 모든 것이 대상으로 주어지는 폭 넓은(博 넓을 박)
대상을 즉, 모든 주변의 현상을 통해 가장 근원에 접근해 가는 질문의 과정이다.
철학의 방법론은 어떠한가?
넷째. 합리성
이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즉, 철학이 되려면 방법을 따라가면 그 결
론에 이를 수밖에 없겠다는 인식이 우선되며 인정은 이차적으로 차후에 따르게 되는 선.후.
결론과 합리성이 요구된다.
다섯째. 애지학
철학을 설명할 때 가장 흔히 이용되는 어원적 분석에 의하면 사랑(φιλοσ)+지혜(σο
φια) 즉, 지혜에 대한 사랑(φιλεω σοφια)을 의미한다. 지식이란 사물 이치와
근원을 분석 파악함이라면, 지혜란 그 지식을 사용하는 슬기라 할 수 있으니, 솔로몬의 판결
을 예로 들 수 있다.
또 사랑이란 아가페(αγαπη)는 일방적,무조건 적으로 하나님께로 서만 받아 이룰 수
있는 것이요, 필레오(φιλεω). 필로스는 이지적인 것으로 사람과 사람에 있어서의 마음
을 주고받는, 우정이나 모정 등을 들 수 있다. 에로스(ελοσ)는 상대적이요, 이성간에 있
어서 정염에 의해 부부간에만 허락되어진, 신체와 신체간의 주고받는 또 하나의 의사소통
인 생식(sex)이랄 수 있다.
결국 철학이란 삶의 슬기를 애착을 가지고 추구하는 "애지의 학"이라 할 수 있다. 소포스
(σοφοσ-지혜자, 현자, 안다는 사람들)는 '무 이치가 이치'라고 부르짖던 소피스트 시대
에, 소크라테스는 이는 '자신은 필로스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던 바를 <플라톤의 모음집>에
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무지의 지' 즉, 주제 파악하라는 계몽 가이기도 했다.
여섯째. 자신학
철학이란 교육이 불가능한(?) 학문의 하나로 남이 대신 해줄 수도, 대신함 도 아닌, 자기
스스로 배우는 것이기에, 일단 태어났다면 누구나 삶의 지혜를 지닌 채 살아가는데, 이는 스
스로 이루어야 하는 과제를 요청 받는다.
철학 시간은 무엇 하는 시간인가?
철학을 논하는 시간으로, 칸트는 철학이 교육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는데, 철학을 배움이 아
니라 철학 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과학의 경우는 남이 정리,한 것을 받아들이면 그만
이요 알키메데스의 역할을 다시 배울 필요가 없듯, 철학은 자기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는 자신이 이른 결론이 플라톤의 것 같아보여도, 자기 결론이기에 자기의 것이다.
철학과 수학, 물리는 매우 밀접한 면이 없지않다. 그 예로 정 삼각형이란 무엇인가? 세 각,
세변의 길이가 같은 것이 실존하는가? 천만분의 일 미크론이 틀려도 틀리지 않는가! 또 이
세상에 완전한 공이 있는가? 머리에 있는 것이라 여기고 논증(기하, 수학)함이 아닌가? 자기
스스로 설명,각도,수준,분량에 적합하게 만들어(물리)보아야 되지 않겠는가. ...
* 종교와 철학의 대조 *
철학은 추론적 이론이며, 합리성을 요구한다. 종교는 신앙의 방법에 있어서 절대자와의 관계
를 이룬다. 양자 동일한 바는 절대자의 존재를 알려는 지식 본질의 문제 규명에 있다.
* 철학과 예술 *
철학은 외면적 세계를 내면화 즉, 개념화 시키나, 예술은 내면적 정신을 밖으로 표현한다.
* 철학과 신학 *
신학은 성경이라는 안경을 보되, 그 안경만 보는 것과 같다면, 철학은 그 자체가 참 되려면
성경을 필요로 하며, 성경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전 우주를 본다. 진정한 철학자라면 칼빈이
말한 바와 같이 "성경"이라는 '안경'을 끼어야 할 필요가 있다.
* 철학의 정의 *
철학은 모든 피조 된 존재들에 대한, 사람의 학문적이고, 총체적 인, 사람의 견해로(하나님에
대한 학문적 견해는 신학에서), 창조의 모든 내용과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사람의 학문적
견해를 피력한다.
철학은 학문간의 상호관계와 차이점을 명시하며, 수학. 역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동물학.
심리학. 분석적 사고. 역사. 지리. 언어학. 윤리학 등의 의미와 위치를 고찰하여, 답을 제공하
는바, 총괄적 세계의 모든 단면들을 종합한다.
기독교 철학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창조의 모든 것을 학문적으
로 고찰하여, 이것을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따라서 해석하는 학문이다.
* 철학의 전거 *
전지하신 주 여호와를 전거(典據)로 한다. 하나님만이 지혜로우시다(롬16:27).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니라(고전1:24-30).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이라도 통달하신다.... 하나님의 영 외에는 하나님의 사정을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0-11). 그러나 삼위일체의 이 세 지혜로우신 인격들은 모두가 하나요, 동일한 하나님 이
시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
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딤전1:17).
철학이 참 되려면, 모두가 필히 삼위일체 중심적(Trini-centric)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철학의 가장 중요한 이치이며, 철학의 궁극적인 선지자, 제사장, 왕이심
을 인식함에 강조를 두어야 한다.
* 철학적 대상의 기원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창1:1).
이것은 존재를 연구하는 철학적 본체론, 기원을 연구하는 발생론, 우주의 형성 과정을 연구
하는 우주 발생론, 세계의 현 구조를 연구하는 우주론 등의 근거가 이 구절에서 밝혀진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시니라. 하
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2-4). 여기에서 지식을 연구하는 인식론, 가치를 연구하는 가치론을 발견한다. 인식론은
철학의 이치들을 밝혀주는 성령과 로고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고(욥32:8, 요
1:9), 후자는 선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결국 질료와 운동과 관련된
모든 철학적 고찰의 대상들이 갖는 기원도 알게 된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창1:4,
7) 여기서 구분의 이치와 동일한 사실적 배경에서 특정 사실을 취택하는 이치와, 서로 상반
되는 것들을 분리하는 이치를 접 하므로 철학의 방법론과 윤리학의 기초가 된다.
궁창이 있게, 뭍이 드러나라, 땅은 풀을 내라, 물에서 풍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
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 하시니(창1:6-21)
여기서 물리학, 지질학, 동물학, 기타 학문에 의해 분석되는 모든 대상의 기원을 알게 된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피조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삼위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1:26)'고 말씀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 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 주시며 이렇게 말
씀 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
전 인류의 언약의 머리가 되는 아담과 하와 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호6:7)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의 총괄적 임무를 계시해준다. 총괄적 임무란 상식의 수준과 학문
의 수준에서의 임무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특정 학문들을 발전시키라고 하신 명령 임과
동시에, 철학적 인간학의 근거요, 하나님의 철학적 임무 추구 명령이기도 하다. 이것은 아담
이후 계속된 모든 후손인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이다(창9:1-6, 시8편, 마28:18-20, 히
2-4장 참조).
* 철학의 임무 *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인 사람에게 주신 명령, 즉 땅과 바다와 하늘, 그리고 그 가
운데 거하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면서, 모든 피조 된 실재들의 총체성을 탐구하라는 명에
서 밝혀진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기에 신적인 선지자, 제사장, 왕의 모사(模寫)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우주를 정복하게 되는데, 선지자로서 사람은 우주를 설명하며, 제사장
으로 사람은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며(창2:15-24), 왕으로서 사람은 우주를 다스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창1:26-28).
이러한 사람의 선지자 적, 제사장 적, 왕 적 임무는 학문적 철학적 영역에 까지도 적용되
기에, 사람은 필히 우주의 자연 현상을 연구 하여야 하며, 모든 사람 중심의 학문들도 추구
하되 도구로서 활용함을 위하여 이다.
최초의 사람은 자연계의 주 되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상에 있는 자연계의 책임자
로 창조 됐기에, 사람은 자연 현상을 알아야 했다. 지배를 위해 사람 은 새, 물고기, 생물 들
의 종류와 수량을 계산해야 했다. 이는 수학적 임무 요, 땅에 충만은 공간적 임무 요, 운동
역학적 임무 요, 다스림은 물리학적, 식물학 적, 동물학 적 임무요, 자연적 감각 작용에 대한
심리학 적 임무도 있게 됐다(창1:28-29, 2:18-25).
사람은 문화를 주관 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피조계와 그 일부인 사람 자신을 개발시
켜야 할 임무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 사람 학 개발이 허용되었다. 즉, 사람은 논리학
을 발전시켜서 나무들의 종을 구별하여야 했고(창2:9), 사람은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역사
를 만들어 가야 했다(창1:28-29). 그리고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줌으로서 언어학을 발전
시켜야 했고, 아내와의 동반적 관계를 통해서 사회 생활을 확장 시켜야 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정금과 진주(베델리엄)와 홍마노를 채광하여, 경제를 일으켜야 했다
(창2:12). 에덴 동산을 장식하여 심미학을 발전시켜야 했으며, 마귀의 비 합리적 반역으로부
터 그 동산을 지킴으로서, 법을 집행해야 했다(행2:15). 끝으로 아담이 자기 아내를 사랑했
다는 사실 속에서, 윤리적 임무를 발견하게 된다(창2:18-25). 곧, 최초의 사람은 모든 피조
된 실재들을 총체적으로 고찰하는 현명한 철학자이었다.
* 범죄와 철학 *
죄의 출현과 결과적 범죄로 인한 형벌로 우주가 혼란케 되었고, 사람의 지혜는 삐뚤어졌
으며, 모든 피조 된 실재들에 대한 총체적 견해가 파괴되며, 오성도 어두워지게 되었다(엡
4:18). 결국 철학에 있어서도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딤전6:20)
으로 헛된 속임이 되었다(골2:8).
죄의 결과는 비판의 요소들을 등장케 했다. 그러나 로고스 즉,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은 계속 외적 객체들과(골1:13-17, 욥26:13) 사람의 내적 오성을(요1:5-9, 욥32:8) 조명해
주고 계신다. 사람이 제 주장으로 조화를 추구하게 될 때는, 피조계 중에서 어떤 특정 부분
만을 절대화 하여 나머지 부분을 도외시 하고, 절대화 된 특정 부분은 하나의 사상이 되어,
자신의 인식론 적 종합의 기저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 철학자들은 자신의 죄악 된 한계 상황을 인정한다. 로고스 즉, 성자 와 성
령께서 죄악으로 어두워진 우주 안에 있는 이치들을 조명 해주고 계신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결국 인식론에 있어 좋은 입장에 서있다. 현실적 견지에서도 우주적 실재에 대한 통찰은 이
치적으로 회복됨 일뿐, 타락 전 아담의 지식처럼 완벽한 것은 아니다(골2:2, 롬5:14, 8:22-
24).
그러나 지식에 있어서의 범위는 훨씬 더 광범위 하다. 아담의 지식은 설혹 그가 범죄하지
않았어도, 지역적 에덴에만 머무름이 아니라, 그가 달성해야 할 궁극적 목표를 향해 계속 발
전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인 성자께서 자기 자신을 둘째 아담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셨
기 때문에 성자께서는 자신의 찢긴 육체를 통해, 우주 안에 있는 찢겨진 지체들 간의 조화
를 회복해 주셨다. 결과 그는 성령을 통해서, 자기의 택한 백성들을 모든 진리와 참 지식에
로 인도하신다(요16:13).
성자는 타락 전의 사람에게만 아니라, 타락 후의 사람에게도 지식을 전하되, 자신 의 성육
신을 통해서는 참 지식에 대한 최대의 통찰력을 주셨으나, 어두워진 오성은 하나님께서 자
연, 역사, 양심, 종교를 통해서 계시하신 참 지식을 계속 왜곡하고 있다(시19편, 78편, 롬
2:15, 행17:23). 또 죄의 근본 오성과 우주적 범위에 대해서도 왜곡하고 있으며, 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속죄 즉, 하나님의 회복하시기 위한 성육신에 대해서도 잘못 판단하고 있다
(골1:20, 엡1장).
죄로 타락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최상의 인식론 적 범주를 설정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사람
을 대하시는 방법을 기록하게 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을 기록한 책에
서 정점을 이루었다(요17:17). 성경은 죄로 얼룩진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타락한 사람의 축
소된 인식론 적 구조를 바로 잡아서 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결국 성경을 배격하는 비
기독교 철학자들은 좁은 시야를 벋어나지 못하며, 그들의 인식론 역시 여전히 상대적 암흑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 신학과 철학 *
참된 철학의 제일 이치들은 자연 신학과 계시 신학에서 전제로 삼아지고 있다. 성경은 원래
철학을 가르치려고 의도 되지는 않았지만, 필연적으로 참된 철학의 근본 이치들을 전제로
삼고 있고, 또 그것들을 포함한다. 하나의 조직으로 체계화 된 이러한 이치들 의 추론이 아
니라, 실체와 원인, 양심과 옳음에 관한 이치 자체들이다.
각 시대에 성행하는 철학은 언제나 성경 해석과 신학적 체계들의 형성에 작용을 하였고,
또 필연적으로 작용 할 것이다. 이것은 초기 플라톤 주의, 다음의 신 플라톤 주의, 중간 시
대의 아리스토텔레스적 철학, 데카르트와 라이프닛츠의 체계들, 대륙에서는 칸트, 피히테, 쉘
링, 헤겔의 체계들, 그리고 영국에서는 록크, 라이드, 콜러리즈 등이 있어 사실이었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 임을 확신하는, 경건한 신자는 사람의 근거들에서 인
출된 자신의 철학으로 하여금, 자신의 성경 해석을 지배하도록 허용할 수 없으며, 유순한 정
신과 성령의 도움으로, 말씀에 은밀히 포함되어 있는 것과 자기 철학의 완전한 조화를 추구
할 것이다. 그는 그 자체가, 말씀이 제시하는 종교의, 순수하고 자연적인 하녀(보조적인 덕)
임을 입증하는 철학을 깨닫고자 할 것이다.
사람의 모든 사상과 사람의 모든 생활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
으로 말씀하신다면, 그의 말씀은 최고이어야만 하며, 또한 그것이 사람의 의견이나 행동의
어떤 부분과 연관성을 가지는 한, 그것은 그 점에서 가장 확실한 통치자(informant)와 최고
의 법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 다양한 종교적 기본 동기 *
인생 사는 모두가 다 종교적이다(행17:4, 22). 종교는 모든 사람을 각자 자신의 기원과 연
결시켜주는 바, 필연적이고 피할 수 없는 끈이다. 그 기원이 참된 것이든, 거짓된 것이든,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을 규제하기에, 모든 철학적 생활이나, 사유 역시 종교적으로 결정되어진다.
마음의 종교는 그 사람 오성의 철학도 지배하기에(시36:10, 잠4:23, 마15:18), 사람의 철학
이 종교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그 사람의 철학을 결정케 한다. 그런데 모든
형태의 종교는 일정한 기본 동기에 의해 지배되며, 동기는 그 종교를 선택한 사람의 모든
인생관과 철학에 영향을 끼친다. 결국 철학의 참됨의 기저에는 창조, 타락, 재 창조라는 기
본 동기가 자리한다.
* 계시와 철학 *
우리가 철학을 빈덴발드(windelbard)처럼 가치 결정(The determination of values)의 이론
과 정신적인 의식(Normal consciousness)의 과학으로 보던지, 파울젠처럼 이성의 요와 마
음 의 욕구 모두를 만족 시켜줄 "세계와 인생을 관조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든, 철학은 현
실에 대한 과학적 설명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사람의 이상을 옹호하고, 그것의
가장 깊은 욕구를 채우려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혹자가 새로운 것으로 여겼던 것이 사실 아주 낡은 것으로서, 과거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이듯, 과거의 것은 미래의 것이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물 위에 물 방울
을 떨어뜨린 것처럼, 신학에서의 새로운 경향도 과거에 오류로 밝혀진 아리안 주의, 소시니
안 주의, 영지 주의, 사벨리안 주의 등과 같은 점이 너무 많듯, 새로운 철학 방법이란 것도
이미 고대 헬라 사상가들이 모두 모색했던 것들이었다.
트뢸취(Troeltsch)가 말한바 있듯 "이 세상을 분별하는 정말로 새로운 무었을 지닌 자들
의 숫자는 항상 무척 적었고, 사람이 이렇게 작은 사상들로 어떻게 존재해 왔는가를 살피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듯, 우리의 사고 방향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많지가 않다.
우리들 모두의 사고와 행동은 사람의 성품에 의해 결정되어지고, 각 개인의 과거와 현재
에 의해서, 다시 그 성격과 환경이 결정된다. 다른 사람들을 지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이 오히려 그들에 의해서 유도되어진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말과 표현 형태 그리고 고려하고, 제시하는, 외적인 방식등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혼란을 주는 많은 종교들과 세계관들 중에서 옳은 분별은 어려운 듯 하나, 사물의 중
심을 꿰뚫고, 이치를 고려하면, 잡동사니의 유형들이 줄어든다.
원칙상 종교적이고 신학적 인 즉, 유신론적인 세계관과 자연주의적인 곧, 범신론 적이거나
유물론적인, 그리고 인본주의적인 것들이 있다. 이것은 역사의 율동적인 파도 속에서 반복되
며, 다소간 혼합되며, 각각 병행해서 존재한다.
그 한 예로 헬라 철학은 오르페우스(Orphic)우상 신학에서 탄생하여, 옛 자연철학의 자연
주의를 거쳐,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예지의 철학(wisdom philosophy)'에서, 인성론적인
것이 되었다. 플라톤은 그의 이데아 설에서, 옛 우상 신학과 피다고라스에게로 되돌아 갔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그의 철학은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의 자연주의 체계에
길을 열어 주었다. 이것은 반응을 통해 회의주의적이고, 신비주의 적인 학풍을 만들어 냈다.
기독교는 수세기 동안 신도들에게 유신론을 가르쳤다.
데카르트와 베이컨에서 칸트와 피히테에 이르기까지, 자연주의 특성을 띤 현대 철학은 사
람으로부터 출발한다. 19 세기 유신론 철학이 우세했던 짧은 기간이 지난 후, 자연주의는 유
물론이나 범신론의 형태로 그 지배력을 회복했지만, 최근 칸트와 휴머니즘 이치로 새로운
전향을 보게 되었다. 유물론 적 자연주의는 현재 모든 사상가들 사이에 일반적으로 불신 되
고있다. 이 같은 양상은 계속 보여진다.
종교와 도덕 의무와 책임, 과학과 예술, 사람의 모든 노동과 문화들은 자율성 즉, 배운 것
이든지 못 배운 것이든지 간에, 차별 없이 모두는 자신이 스스로가 자각하고, 생각하고, 추
론하고, 결론지으며, 자신이 심사숙고 하고, 의욕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을 의식한다는 기본적
인 가정 위에 세워졌기에, 절대자가 '하나의 무의식적이고, 비자발적인 힘(an unconscious
and involuntary force)'이라 생각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때때로 소수의 지성인들은
신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러하더라도 신의 인격성은 항상 어디에서나 모든 국가와 종교
에서 견고히 수립된 채 남아있었다.
사람은 자기의 자아 의식 속에서, 그 자신의 존재와 세계의 실재를 굳게 확신하고 있듯이,
신의 실재와 인격성을 믿는데, 이러한 믿음은 사람의 자아의식, 특히 의존과 자유에 대한 이
중 증거들과 뒤섞여 있다. 이것들은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요구한다. 의존감
정은 자아 의식의 핵심이고, 종교의 본질이지만, 무 의식적이고 비 이성적인 피조물이 신에
의존 하듯이, 그런 단순한 실제적인(de facto) 의존은 아닌 것 같다.
사람에게는 의존 감정이 있다. 의존은 사람에게서, 인지에 이르고 자아 의식의 증거를 얻
어,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고, 다른 형태로 떠 맡는다. 그것은 이성적이고, 도
덕적인 존재로서의 사람의, 감각적이고,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의존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
러한 근거에서 그것은 절대적인(schlechthinnige) 의존감정이 된다.
만약 의존 감정이 이런 요소를 내포하지 않고, 자체를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의존으로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의식과 의지가 그것의 외부로 떨어져 나
가든지, 아니면 그것에 적대적인 것이 되기에, 절대적인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만약 사람이 자신의 의존을 거부하여, 그것에서 벋어난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해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는 못하고, 오히려 그의 의존이 성격을 달리하게 된다. 그것은 그 이성적이고 도
덕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고,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도움을 주게 된다.
사람이 죄인인 동안에는 상승하지 못하고 떨어지며, 신과 같이 되지 못하고 금수와 같이
된다. 그러므로, 감정과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의존 감정은 사람의 자유를 내포한다. '신을
준비하는 자유 즉, 진리의 자유(deo parere libertas; libertas ex veritatc)', 의존과 자유를
하나로 연결하는 자아 의식의 이러한 증거는 더욱이 종교와 도덕의 기반이다. 그것은 사람
을 항상 어디서나 그리고 아주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인격적인 신에 대한 믿음과 그에게 봉
사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종교의 보편성과 자발성의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은 신의 본유 개념을 가정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표상은 거의 잘 이해되지 않고 있으며, 그 이름은 다소 공교롭게 선정되어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본유 개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신의 손의 작품들 속에서, 영원
한 힘과 신성이 계시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기독교의 유신론 보다 오히려 합리주의와 사람
을 세계로부터 분리하는 신비주의 냄새를 풍긴다. 본유적이며, 또한 출생 시에 대체로 미 발
달한 채로 낳아져서, 계통 발생적으로나 개체 발생적으로, 후천적으로 습득 되어지지 않는
것을, 그 특별한 본성과 조직, 이성과 이성 마음 과 양심, 욕망과 의지, 그리고 그 뿌리깊은
의존과 자유의 의식을 갖춘 사람의 정신에서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세계와 사회 조직으로부터 분리되어서가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에게 할
당된 환경 속에서, 자기에게 심겨진 본성에 따라 성장하고 개발되어 갈 때, 그는 자신의 존
재와 세계의 존재를 믿는 것 만큼, 자유롭고 불가피하게 인격적인 신을 알게 되고, 그에게
예배하게 된다. 그는 신 개념을 고안하지도 생산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사람에게 단지 주어
짐 이요,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무신론은 본래부터 사람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반성을 근거로 해서, 인생의
후반기에 발전된다. 그것은 회의론과 같이 규칙만 따르는 '하나의 지적이고, 윤리적인 변태
(an intellectual and ethical abnormality)인 것이다.
본래 모든 사람은 그의 본성에 따라, 신을 믿게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은 만물의 창조자 인
신이, 기지가 없는 존재로 자신을 방임 함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과 외부 세계의 본성 등,
모든 주어진 바를 통하여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궁극적으로 기인한다. 진화가 아
니라, 계시만이, 신 예배라는 이러한 인상적이고 명백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자아 의식
속에서 신은 우리 사람과 세계와 그 자신에게 알려진다.
그러므로 이러한 계시는 종교 뿐만 아니라 철학, 특히 인식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모
든 인식은 주체와 객체의 특별한 관계에 있고, 이 두 가지 일치 위에 세워진다. 사유와 존재
의 형태가 동일한, 창조적인 지혜에 기원을 두고 있기에, 그것들이 일치하지 않으면 지각과
사유의 확실성은 보장 받지 못한다.
철학 자체는 이러한 필연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며, 잘못된 출발로, 좌우로 치
우친 것이다. 그것은 헤겔에게서는 사유와 존재를 동일시 하며, 논리를 형이상학의 지위에
까지 올려지게 하였고, 칸트와 인본주의와 함께함에는, 사상을 존재로부터 분리시켜, 순전히
형식주의적인 성격을 논리에게 일임 되어 보여졌다. 각 경우에, 사유와 존재의 진정한 관계
와 모든 인식과 지식의 올바른 이치는 불 완전하게 인식되었다.
심지어 하르트만이 인정했듯이 '감각 속으로 질서를 도입하는 이치로서의 의식'과 자신들
속에서 '사물들을 종합하는 이치로서의 객관적인 세계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은 유일하
고 동일한 이성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주체와 객체를 모두 정당화 하는
다른 방법은 없다.
존재의 형식들과 사유의 법칙-
완전함을 위해서 여기에 덧 붙여서, 행위의 형식은 신적인 지혜 속에 공통 기원을 두고
있다. 철학의 세 분과인, 물리학과 논리학과 윤리학은 조화로운 전체를 이룬다. 일원론이 잘
못된 방향에서 구하지만, 얻을 수 없는 것을 여기서는 이루었다. 즉, 철학의 다양성과 체계
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괄하는 통합에 도달 한 것이다. 이런 확고한 유신론 적
인 기반 위에서는, 결국 과학의 진보와 진리 이상의 실현을 믿을 여지가 있게 된다.
'진리는 있는 것이 아니라 형성된다'고 하는 주장에는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다. 사실상
진리는 우리의 의식에 단지 들어올 준비가 된, "잘리고 달린"채로 우리와 어디든지 만날 수
는 없다. 반대로 이것은 '계시'와 '발견'의 차이이다. 사람은 차츰, 차츰 그리고 조금씩, 그
의 모든 노력을 다하여, 이마의 땀으로 진리를 정복해야 한다. 지식의 분과들은 예외 없이,
모두 생활 관습 속에서 성장해왔다. 즉, 그것들은 모두 필요성에서 나왔으며, 실질적 이고
경제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
진리는 실재의 단순한 복사와 초상화가 아니며, '지성의 영역(globus intellectualis)'과도
다르다. 우리의 의식 속에, 궤테의 생활과 노역에 대한 완전한 설명을, 아주 세밀한 사항 까
지 끌어 모으는 단순한 행위에 의해서는, 궤테에 관한 진리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지
식은 단순한 연대기이지 과학은 아니며, 사진이지 그림은 아니며, 복사 물이지 살아있는 복
제가 아니 것이다.
과학은 보다 높은 것에 목표를 둔다.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 일시적인 것
이 아니라 영원한 것, 실재성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한다. 오직 그것은 실재성과 분리해서 진
리를 발견하지는 않는다. 궤테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
는 사람 못지않게, 베이컨의 말을 인용하면, 반드시 복종으로서 배우는 어린아이 같이 되어
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사실들과 실재성과 근원들로 되돌아 가야만 한다. 모든 과
학은 다음과 같은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실재성은 현상과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섭리
가 실현될 신적인 지혜의 핵심을 포함한다. 그렇게 해서 진리는 실재성과 관련되고, 실재성
에 상응해서 그 기준을 발견한다.
과학적인 탐구로 실재의 본질까지 더 깊이 내려가서, 더욱 철저하게 간파된 진리는, 그것
이 오직 의식에 의해 발견되고, 받아들여 진 것처럼 의식에 순종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식 대상과 우리의 의식 요소가 만들어 져야만 진리가 생긴다는 말은 적절한 것이다. 이러
한 목적에서, 신은 진리를 자연과 성서에 묻어 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가질 수 있으
며, 또한 그것을 앎으로서 그것을 지배할 수 있다. 진리를 계시한 목적은 진리를 아는데 있
다.
실재성은 진리를 찾을 수 있게 하는 도구의 하나이다. 진리는 우리의 의식과 경험 속에
있는 진리가 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실재성은 진리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그것 의
단순한 복사 물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세계는 실용주의가 반대하는 대로 이중으로 나타
날 것이다. 진리 속에서, 실재성은 보다 높은 존재 양태로 치 솟는다. 그것은 처음에는 어둠
속에 놓여 있다가, 지금은 빛 가운데서 걷는다. 그것은 한때는 수수께기가 되었다가, 지금은
해결 방안을 발견한다. 그것은 처음에는 이해되지 못했다가, 지금은 선포되고 있다. 그래서
진리는 그 자체 의 독립적인 가치를 획득한다.
진리의 표준은 생활의 유용성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만약 유용성이 진리의 기준이라면,
완전한 합의는 유용성을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생명자체는 변하기 쉬운 하나의 가치여
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명을 고려해 볼 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존재나, 기쁨이나, 강도
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내용과 질인데, 내용과 질을 결정하는 것은 정확하게 말해서 진리이
다.
진리는 경험적인 사실보다 더 가치 있다. 그리스도는 진리를 위해 그의 생명을 희생했다.
그래도 오히려 그는 그런 행위로 말미암아 그의 생명을 다시 얻었다. 진리는 실재성 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으며, 자연(physis)과 영지(gnosis)와 기풍(ethos)이 화해를 이루고, 또한
참된 철학은 지성의 요구들과 마음의 욕구들에 모두 완전한 만족을 주게 되는, 사물들의 보
다 높은 질서에 속해있다.
* 철학과 기독교 인 *
철학은 실재 의 본질 과, 지식 과 존재 의 일반 이치에 대한 탐구에 관심을 두는 지성적
훈련 이다. 사도 바울이 비록 이방 철학을 배격 하였다 해도 , 기독교 신앙은 어쩔수 없이
기독교 신앙이 주장하는 근거를 시험하는 철학적 질문들을 야기 시킨다는 사실은 받아들여
져야만 한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
우리는 어떻게 알수 있는가 ?
종교적 언어 의 본질 과 논리적 상태는 무었인가 ?
이 세상에 대하여 기독교는 다른 형태 의 신념 과 이론들 과는 어떻게 비교 되는가?
한편 , 만약 철학 이 실재나 진리와 관계 한다면 그것은 종교적 인 문제에 대하여 등을 돌
릴수 없다. 진리를 추구하는 그 어떤 순수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반대편의 목소리 와 상대
방 의 분노에 대하여서 외면할수 없기에 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방 의 소리가 크
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 과 논증들이 실재 와 일치 하느냐 일치하지 않느냐 는 것이다.
과거 로부터 의 교훈
(1) 철학 체계 의 미 완전성
천년 이상 계속 되어온 논쟁을 개관 시 두드러지게 부각되는 한가지 사실은 바로 지금 까지
완전하고 완벽 하다고 판명된 철학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사실상 절대적 관념
론 처럼 포괄성 과 완전성을 최고로 지향하고 있는 체계가 오히려 가장 결함이 있는 체계라
고 말할수 있다. 어떤 사람이 오랬동안 무시되어온 어떤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든지
어떤 경험 의 양상을 설명할 필요를 깨닿게 되든지, 그것을 ‘현대’ 사상에 연계 시키든지
하는 것 등은 철학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그 예로 17 세기 합리론자 들은 분명한 사
유 와 합리적인 논증 의 필요성을 절감 하였다. 19 세기 관념론 자들은 경험 전반을 긍정
적 인 영적 원인 에 관계시킬 필요성을 실감 하였다. 동 시대 의 키엘케골은 관념론 자들
의 설명이 개체 와 진정한 삶에대한 설명과 는 유리되어 있다고 생각 하였다. 각각 의 경우
에 관련된 사상가 들은 지나치게 자기 나름대로 의 특별한 시각 에 사로잡혀 결국에는 그
기본적 인 유용성이 상실된 어느 완고한 체계에 그것을 짜 맞추어 넣어 버렸다. 하지만
철학사 로부터 배우고자 한다면 다른 개념은 배제하고 일단 의 철학적 개념 만을 선호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고 그것들 모두에 대한 우리 의 평가가 비판적 이어야 한다. 이런 저런 경
험 속에서 부분적 이고 타당한 식견을 얻을수 있으나 실재 전체에 대한 철저한 지식을 그
어떤 사람 이라도 가질수는 없는 것 처럼 , 그 어던 철학 도 포괄적 일 수는 없으며 통찰력
과 방법은 일시적 이요 가설적 이다. 우리는 철학 의 결정적 인 체계 와 소위 독점적인 접
근 방법에 대해 경계를 해야할 것 이다.
(2) 기독교 신앙이 어떤 단일한 철학 체계 와 지나친 유착 관계를 가짐 으로써 따르는 위
험들
우리가 아는바 로 각각 의 경우 기독교는 이질적인(alien) 개념 속에서 제멋대로 확대 또는
축소 내지 왜곡되는 신세가 되었다. 당시는 믿음직 하던 철학 개념이 다음 세대 에서는 결
함을 지닌 어리석은 것 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때로는 신학자도 역시 하나 의 특수한 사
고에 현혹 되어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열쇄 로 여기는 일이 생겨나기도 한다.
기독교를 하나 의 특수 철학 체계나 개념에 지나치게 유착시킴으로 말미암아 따르게 되는
위험들은 이중적 위험 성을 안고 있다. 기독교 신앙은 그것에 짜 맞춤으로 어떤 사실은 과
장을 , 어떤 사실은 은폐 되거나 선별적 으로 무시되며, 기독교 신앙 과 제휴하는 체계 의
어떤 결함 의 발견은 기독교 신앙에 까지 치명타를 입히게 되는 것이다. 세속 철학은 기독
교 사상가 들 에게 자신 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 보도록 자극을 가져다 줌으로 전통적인 하
나님 의 존재 증명에 대한 공격이 적어도 어떤이 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타당한 근거가 무엇
인가를 물어보도록 자극 함으로 , 공격 받음은 일부 기독교 사상가 들에게 보다 면밀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계시 의 본질을 검토 하도록 유도 하였고, 또한 기독교 신앙에서 언어 와
소통이 차지하는 비중을 다시 검토 하도록 촉구 시켰다. 우리는 모든 새로운 경향을 냉정
하고 엄격히 고찰해 보고 우리 신앙 과 경험에 비추어 평가 되어져야 한다.
(3) 자연 신학
자연이 존재 하는한 억누를수 없는 특성을 어느 정도 지니기에 되살리려는 시도자가 있게됐
다. 하지만 물질 의 속성에 대한 고찰에 있어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개관하는 바를 기초
로 미래 사상에 대한 지침으로 몇가지 요점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즉,
a) 하나님 의 존재 의 증명에 대한 전통적인 이성적 논증은 정연하지 못하다.
b) 기독교 계시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부터 유도된 증명에 의존함은 신앙에 유익 없다.
c) 사람이 복음을 떠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질수 는 전혀 없다는 극단은 극단에 치우
치는 오류에 빠질수 있다.
d) 기독교 신앙이 딴 방법으로는 해명 못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하는 하나 의 가설로 비
춰질 수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무엇 보다도 무 의미하게 보이는 것을 의미있게 만든다.
어떤 견해가 줄수 없는 삶 의 전체성 이라는 안목을 가져다 준다.
반틸 쉐퍼 는 우주 전체 와 사람 개인 생활은 오직 기독교 적인 전제 위에서 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통상적 의미에서 자연 신학이 아니다.자연 신학
은 절대적 으로 중심 이 되는 조각이 빠져있는 조각 이 빠져있는 조각 그림 맞추기 와 유사
하다. 자기 자신 과 이성 주의 로부터 출발할 때 사람은 그 전체적 인 의미를 바로 알수가
없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사실을 과학자 역할을 수행하듯 하지 않으나 삶 전반에 대한 일
관성 과 의미를 주는 열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 이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만물을 창
조 했다는 기독교 신앙은 일반적 으로 기독교 적 삶 의 사상 의 전제이다. 그러나 삶에 대
한 기독교 적 해석은 이론적인 해석 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 의 관용, 신앙,
거듭남, 그리고 사랑 과 사람 활동 의 전반적 범위에 관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인이 삶
속에서 그것을 엄밀히 실천함 으로서 정당화 된다.
기독교 신학에서 계시라고 불리우는 하나님 과 의 조우 가 일어나는 것은 정확하게 복음을
통한 경험 과 해석이 연결되는 때이다.
e) 과거에 아주 빈번히 기독교 철학이 자연 신학 과 유사하다고 주장되었으나 이것이 동일
하다 여길수 는 없으며 기독교 철학이 기독교 적인 계시 와 하나님 에 관한 관행적 인 그리
스도 인 의 경험 의 토대 위에서 수립되어야 할 가능성 은 여전히 존재한다. 기독교 신앙
이 지식 의 한 형식을 지향하고, 과거 의 어떤 사건들 이 사람에게 결정적 으로 작용한다고
주장 하기에 기독교 는 불가피 하게 철학적 인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복음 의 현상이 철
학적 인 문제를 일으키게 한 , 기독교 철학에 중심 주제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바로 복음이
다. 철학적 인 견지에서 볼 때 기독교 의 복음 은 스스로 서든지 아니면 망하든지 해야 한
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 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할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의 존재
에 대한 우리 의 증명은 복음을 통해 우리들 의 하나님 에 대한 경험 으로부터 유래 되어야
하지 , 외부에서 빌려온 추상적 인 가설적 논증에 의존 해서는 안된다. 미래 의 기독교
철학자 들은 기독교 의 계시를 보다 철저히 탐구 함 으로서 기독교를 정당화 할수 있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4) 계시 와 역사
계시는 의미있는 하나님 의 자기 계시(self-disclosure) 임을 아는바 그 주요 궤적은 성경
의 하나님 의 말씀에 따라 해석된 그리스도 안에서 의 하나님 에 관한 인격적 인 경험이다.
계시에는 사람적 인 요소 와 신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으로서 극단 의 양상을
피하면서 도 분별 하여야겠다. 급진 주의적 실존 주의자 들은 성경이 주로 사람 의 자기
이해에 대한 비 역사적 신화를 모아 놓은 것이라 말하나 이들은 다음 세 가지 요점을 결여
하고 있다.
첫째. 그들은 어떤 비유 기사를 재 설명 없이 , 하나님 의 말씀을 그들 자신 의 사람 적인
말로 말하는 것은 성경 저자들 의 주장을 정당화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이 언급하는 바
는 구체적 인 사람 의 상황을 가리킴 이나 자신 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 이 제공하신 것으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나머지를 왜곡하지 않고서는 실존
적 인 요소를 해결 할 수가 없다.
둘째. 성경에서 실질적 인 요소는 부득불 지식 의 소통에 관계된다 는 것이다. 하나님 의
성격에 관한 진술, 하나님 이 사람을 지으셔야 할 필요성, 그리스도 의 생애 와 죽음 과 부
활 과 같은 특수한 사건 의 해석에 까지 광범하게 미치고 있다. 헌데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과 교통 할 수 없다.
셋째. 삶에 대한 성경적 이해는 역사적 사건 즉, 역사 속에서 의 하나님 의 행위에 밀접하
게 관계되어 있다. 하나님 의 주권 없이는 기독교 신앙은 근거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성경
에서 그 사건들에 주어진 해석 과 더불어 이러한 사건들은 기독교 계시 의 전 부분 이며 전
영역 이다. 그 자체로서 그 사건들 은 현대 세계에 대한 기독교 메시지 의 표현에 관계될
뿐 아니라 기독교 철학에도 어느 정도 관계 된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 께서 시 공간에서 지금 까지 활동 하시고 앞으로 도 활동 하실 것을
증거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거 의 사건에 대한 기록은 이치상 어느 다른 역사적 기록
과 똑같은 검증성 과 위증성 에 열려있다. 종종 초 자연적 요소는 현대 의 비판적 인 역사
가 에게는 용납될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모든 것은 유한한 원인 의 폐쇄 체계에 따
라 해석 되기에 초 자연적 이고 이적적 인 요소는 처음부터 백안시 된다.
역사 의 현상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 의 총체 이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학문
의 분야는 사건 의 목록이 아니다. 취사 선택 과 그에 따른 판별로 원인 추적 과 영향 평
가 하여 이를 다시 재 구성적 창작으로 어떤 것을 표상한다. 한 역사가 의 탁월성은 그가
자료를 다루는 것과 그 자료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는가 에 달려있다. 그러나 해석이 자
료를 기만해서는 안되며 설명 도움이 되도록 자기 자신 의 경험을 떠올릴 지라도 자신 의
배경에 따라 문제를 미리 판단해서는 안된다. 실제로 해석을 제시 하는 것은 자료이다. 사
실 과 해석은 발 과 신발 의 관계 와 같다고 주장 하였다.
역사가 에게 어던 구체적 인 사건이 실지로 일어났는지 의 여부를 묻는 질문에 봉착 했을
때,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자료에 의거해서 가장 가능성 있는 설명을 판단 하여야 한다. 하여
자료 의 신빙성 그리고 자신이 부여한 전체 모형 과 자료 와 의 일관성을 구하는데 관심을
집중 하여야 한다. 소문 또는 경신성(credulity)을 구분함 에 있어 도움을 주는 건전한
역사적 기준을 추구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나, 이러한 기준은 어떤 법정에도 세울수 없는 기
준 이거나 어떤 건전한 세속 역사가에 의해 사용될 수 없는 기준이다. 그 전체적인 탐구 는
탄산 음료를 마심 으로써 병균 의 침투를 막아 보려고 하는 것 과 같다.
성경적 으로 신앙 의 개념은 하나님 이 행 하시고 말씀 하신 것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 하
는 것 이기에 하나님 이 이와 같은 일 들을 말씀 하시고행 하셨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전혀
없음을 증거할 수 있다면, 그 때에 는 신앙이 공허하고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릴 것 이겠으
나,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의 기준 과 자료 이다. 최종 의 결과는 하나 의 모형 인데 ,
그것은 우리가 그것이 표상하는 실재를 생각할수 있도록 말씀 으로부터 창출된 것이다. 만
약 자료들이 부 정확하고 신빙성이 없는 것이라면 신앙은 헛될 것이나 탐구가 같은 결과를
보일 때 신앙은 더욱 더 확실한 기반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 과 대면
적 으로 조우 하도록 하지는 않는다. 성경 의 진술들 과 선포 들 로부터 창출된 역사적
모형은 계시 의 본질이요,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과 생동적 인 교제를 갖
게되는 것은 이같은 말씀 과 심상 과 관념 과 상징 의 매개체를 통해서 이다. 우리는 모든
정신적 인 감각은 그것들이 표상하는 사물들 의 한 모델 과 같다는 의식 이 있다. 이는 단
지 사물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은 수단에 의할 따름으로 이것 의 임무는 진리를 증명
하는 것을 통하여 신앙을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 기독교 철학 의 가치
첫째. 철학 은 지적 훈련 의 한 양식으로 정신 분석에 도움을 준다. 철학 사상 연구 과정
으로 인해 진전된 정신 능력을 얻게되며, 수련 의 수단으로 아주 유익하다.
둘째. 철학 사에 대한 연구는 현재 의 좌표를 알게한다. 그리스도 인 들에게 철학사 연
구 의 최고 의 가치는 기독교를 올바른 안목을 가지고 보도록 함에 도움이 된다. 기독교
신앙은 그 타당성을 그리스도를 믿음이 옳음에 대한 확신 과 성경 계시, 그리고 그것들 이
결과 적으로 수반하는 모든 것에 의존한다.
셋째. 기독교 철학 이 관계하는 것은 이같은 타당성 문제 이고 이것은 주제에 중요성을 부
여한다. 기독교 철학 의 유일한 중요성은 형식 과 내용 사이 의 구분을 지움으로 제시된
다. 성경 신학은 역사적 기원에 비추어 성경 의 가르침을 탐구한다. 조직 신학은 성경적
가르침 의 서로 상이한 요소들을 종합적 으로 추구한다. 철학적 신학은 기독교 신앙 의 형
식 과 관계된다. 종교적 신앙 의 경우에는 형식 과 내용은 병존한다. 기독교 신앙 의 형
식은 그것에 대한 구조 와 형상을 마음 속에 그리게 된다. 즉, 신앙에 포함된 것 곧 기독교
안에서 발견되는 계시와 종교 언어 , 그리고 자연적 인 것과 초 자연적 인 것 과의 관계를
마음에 떠올린다. 기독교 신앙 형식은 기독교 신앙 내용에 의해 그 본질적 구현이 이루
어진다. 그것은 지식 의 다른 형식들 과 대조시켜 기독교 신앙 의 성격 과 내적 논리 그리
고 타당성을 탐구한다.
“ 철학은 본질상 자율적 인 중심 주제를 갖고 있지 않으며, 독자적 으로 개별적 영역 도
확보하고 있지 않기에 ” 이것이 바로 철학으로 하여금 중요한 학문 의 분야가 되게 하는 가
치를 부여한다.
* 기독교 철학 의 임무
우리가 진리를 알수있게 되는 것은 단지 기독교 신앙 그 자체를 검토하는 기반 위에서 의
신앙에 의한다. 결국, 기독교 철학 의 중심 주제는 사람 과 하나님 과 의 관계요 , 오직 그
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과 의식적 이고 신실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그 관계가 내포하
고 있는 것을 직접 알 수 있는 위치에 있게된다.
종교 철학 의 임무는 신앙 행위 와 그 내용 그리고 그것 의 전제들 에 대한 기술적
( descriptive) 이고 비판적 (critical)인 분석 이다. 그리스도 인 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을 주장하기 때문에 종교 철학은 그 지식이 구성하는 것과 제 형식 과 제 근거 와 제 기준
이 무엇 인가를 질문 하게된다. 기독교 는 시.공간에서 하나님 의 활동을 증거 한다고 주
장 하기에 종교 철학은 역사적 연구 의 의미 와 방법을 탐구 해야한다. 세속 역사가 의 기
법 과 전제를 탐구하고 구속사 와 의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 기독교 는 소통
(communication)을 포함 하기 때문에 종교 철학은 언어 의 구조 와 기능 또한, 이것이 신
앙적 경험에 있어서 차지하고 있는 역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종교 철학은 기도 의 현상 그리고 하나님 이 기도에 응답함 이 성취 됨을 주장 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 도 분석 해야한다. 특별 세계가 자연적 인과 관계 의 견지에서 전적으로 설
명 되어야 한다는 포괄적 가정에 비추어 하나님 이 세계 의 창조주 이고 인도자 임을 주장
하는 기독교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여기에는 용기, 인내, 통찰력, 끊질긴 성실성 등이 문제
를 해결코자 하는 이들에게 요구된다.
* 다원화 사회와 철학
하나님 의 창조 세계 안에 있는 이치 의 다양성 들은 죄가 낳은 분열 세력 의 결과 와 더불
어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의 죄가 고비 풀린 듯 번져 나아감 에 쇄
기를 박듯 언어를 혼잡케 하심 과 각기 다른 민족들 로 나뉘어 흩어져 살도록 땅에 충만케
하시고자 의도 하심을 이루셨다.(창 1:28, 2:21, 11: ) 그러나 민족적 인종적 차이는 분명
타락 과 그로 인한 바벨론 이후 의 분산이 낳은 결과로 부정(否定)적 결과 이었다. 바벨탑
붕괴 후 세계 의 각기 다른 지역에 세 유형 의 주된 문화 발전이 돋 보였는데 셈 족 문화,
함 족 문화, 야벳 족 문화 가 이것으로(창 9:18, 10:32) 이들은 필수적 으로 문화 의 차에
따라 각자 의 독특한 철학을 가지게 했다.
셈 족 철학에서 피조된 실재에 대한 진정 총체적 견해가 모아졌는데 이것은 크게 아브라함
후손 과 이스라엘 민족 과 초대 교회 안에서 발전된, 유일하게 삼위일체를 중심한 철학 이
었다.
함 족 철학은 멜라네시안 정령 숭배론, 아프리카 흑인 의 다신론, 힌두교 적 범신론 같은
오류 투성이 의 동방 사상 체계 로 발전됐다.
야벳 족 철학은 인도 아리안 계 의 베다 사상을 비롯, 소크라테스 이전 의 거짓된 서양 철
학, 막스 이후 의 유물주의, 플라톤 적 이상론, 미국 의 실용주의, 서 유럽 의 실존 철학 등
으로 발견된다.
또, 합성 혹 혼합 철학 이 생겼는데 마호멧 사상은 함 족 셈 족계 가 혼합된 초연신론 이
요, 로마 교회 사상은 야벳 족, 함 족계 가 혼합된 초 자연주의 이요, 유교는 아마도 야벳
족- 함 족계 가 혼합된 내재론 이랄 것이다. 야벳 족은 겸손히 셈 족 철학 장막에 거해
야 하는데 여기서 셈 족 철학이란 성경을 믿는 개신교 의 사상을 가리킨다. 자신 의 지배
영역을 확장키 위해 서구 의 휴머니즘 처럼 셈 족 의 장막을 탈취 하거나 흡수 하려고 해서
는 안된다. 야벳 족 으로 하여금 함 이나 가나안 족 의 종이 되게 하는 철학은 잘못이다.
즉, 국제 연합 의 기구 들에서 처럼 현대 서구인 들이 범 세계적 동양화를 꾀하는 경우(창
9:27, 10:6-10, 11:1-8, 계 18:1 참조) “ 하나님 께서 사람들 에게 부여해 주신 철학적 사
명 완수 의 유일한 방법은 우선 으로 셈 의 장막에서 구속함을 받는 것이다.
* 철학 의 구속(救贖)
구속 받음 의 사실은 셈 의 장막을 건설했던 건축가 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 중요성을 지적
한다. 친히 땅에 내려와 사람 안에 거하신 구속주 곧, 신인 이요, 재 창조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히 3:1-6)는 사람이 참 지혜 사랑 하기를 그치고 비 철학적 자리에 놓이게 되자,
즉 타락 의 결과 로 실재들에 대한 총체적 견해를 가질 수 없는 지혜롭지 못한 상태에 이르
게 되자, 하나님 의 말씀 성자 께서는 사람 의 타락 상태를 선 으로 바꾸사 개입 하시나 원
시 복음 즉, 여인 의 후손에 대한 예언으로 나타나셨다. (창 3:15) 연 이어지는 예언 의
확충은 성자 께서 친히 성육신 하사 소피스트 의 우두머리 요, 거짓 철학자 사단 의 머리를
깨 부실 것을 암시 해주고 있었다.(창 9:1-6, 시 8편, 히 2장)
구약 성경이 보이는 바 하나님 께서 자기 백성을 참 지혜 와 철학으로 교육하고 계심을 보
여 주신다.(욥기 ,잠언, 전도서 참조) 때가 차매 성자 께서는 성육신 하여 오시었고, 자신
의 사람 적 육체를 통해서 하나님 과 사람에 대한 참된 것을 보여 주셨고 지상에 계신는 동
안 들 의 백합화 와 공중 의 새 와 들 의 짐승 과 바다 의 물고기 들에 대한 철학을 하셨
다.(창 1:28) 그것은 동양 의 모든 사람 중 가장 탁월했던 철학적 지혜를 가졌던 솔로몬
(왕하 4:29-34) 보다 더 큰 지혜 였다.(마 6:25하, 7:6하, 12:42, 13:47하)
둘째 아담 되시는 그리스도 께서는 (고전 15:22,45-49, 창 1:26-28, 히 2) 우주적 조화
의 재건 과 모든 피조된 실재들 에 대한 택한 인류 의 총체적 견해를 회복 시켜 주시기 위
해서 죽으셨다. 이는 사람 과 하나님 그리고 내재 와 초월이 서로 만난 것이다.
그리스도 는 최고 철학자 의 무한한 지혜 와 누구 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성들 때문에 십
자가에 달리셨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 의 능력이요, 하나님 의 지혜 이다.(고전
1:24,30) 그리스도 예수 는 만유에서 가장 크며 유일하신 참 선지자 요, 제사장 이요, 왕
이시다.(요 6:14, 히 6:20, 계 19:16)
* 철학 의 갱신
택자들 과 택자들 의 철학은 갈보리에서 구속 즉, 재 창조함 받았다. 이들은 몇날 후 오순
절 날 다시 새롭게 회복 되어 능력도 지니게 됐다. 오순절은 실로 바벨탑 의 파괴가 가져
다 준 분산적 결과 들을 원칙적 으로 제거해 주었다. 그러나 다양성 의 이치 자체를 제거함
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 과 성령 의 깨끝게 하심이 전 포괄적 이고 우주적 인 의미를 가지고
나타났던 표적들(행 2:1-20)을 통해 피조된 실재들이 재 창조됨에 대한 철학적 이고도 총
체적 인 견해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게된다. 즉, 형이상학 적 우주 와 그 일부 이면서도 우
주 의 대리자 인 선지자, 제사장, 왕 들인 택자들 의 이치적 갱신을 보게된다.(벧전 2:9-10,
계 1:3,6) 오순절 이후 새로운 사역을 더하여 활동 하시는 그 영 은 철학적 통찰력 까지도
성화 시켜 창조 와 재 창조된 실재들을 탐구하게 된다.
* 철학 의 현실
현 시대의 사람들 은 불신앙 과 불 확실성 과 공포심 으로 자신 의 기초마저 흔들리고 있다.
하나님 의 존재 마저도 의심 하는데(특히 공산 주의자들 과 다수 의 사회주의자 등 각종 무
신론자 들 까지도) 우주 의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는 경우는 일부 주관적 실존 철학자 들과
모든 유형 의 기능 주의자 들과 현상학자 와 과도한 현상론자 에게서 볼수 있다. 이같이 허
무적 인 시대에 하나님 께 소명 받은 자들은 , 모든 피조된 실재들 이 영원한 창조적 실재
를 보임을 선포 하여야 한다. 주 하나님(여호와) 의 자존 하심을 선포, 모든 피조된 실재들
의 객관적 실재성을 선포, 하나님 은 창조주 요 사람들은 피조물 임 또한 선포되어야 마땅
하다. 창조는 본래 하나이다. 천지창조 이는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온전 창조를 이루어 완
성에 영광이 부여된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 철학자는 영광에 대한 온전한 소망 까지도 선
포 하여야 한다.(롬 8:18-24)
* 철학의 미래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인 적 기독교 철학자 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하고 조롱한다. '자기의 정욕을 쫓아 행함 이요......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다. 그러나 주
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
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 우리는 그 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 과 새 땅을 바라보
도다(벧후3:3하).’이것은 피조 된 실재들의 재 창조로서, 현재적 총체성을 그대로 포함, 보
다 심화시킨 것 이다. 새 창조와 예루살렘 성은 시간의 우주적 차원 속에서 존재할 것이다.
열매를 달마다 거두어 들이면서(계22:2), 수량적 국면도 가질 것이다. 12 대문과 천사들과
성곽이 있으며(계21:12-14) 공간적 국면도 가질 것이다. 12,000 스타디온 되는 길이와 넓이
와 높이(계 21:16), 역학적 국면도 가질 것이다. 땅의 왕들이 그리로 들어가는 움직임과 같
이(계21:24), 값진 보석과 진주와 정금(계21:18-21)과 같은 물리적 국면도 있을 것이다.
생명나무의 열매 와 그 약효(계22:2)와 같은 생물학적 국면도 있을 것이다. 이리와 어린 양
이 함께 풀을 뜯는 것과 같은 심리학적 국면도 있을 것이다. 그 성 주민이 누리는 즐거운
감정은(사65:25,계21:3-7) 역시 심리적이다.
자연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문화도 역시 승화 될 것으로, 다양한 보석들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논리학의 영화, 그곳에 있는 열국들의 영광과 찬송으로 구성되는 역사학의 영화
(계21:24), 속량 된 자들의 노래와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 속에서 나타나는(계15:3) 언어학
의 영화, 구원 받은 왕들이 하나님의 종이 되어지는 사실 속에서 발견되는 사회학의 영화
(계21:24, 22:3), 하나님께서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림과 그들이 가옥을 건
축하며, 포도원을 재배하는 것에서 보는 경제학의 영화(사 65:21-22),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도 듣지 못한다는 말
씀에서 보는 심미학의 영화(고전2:9),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스리
고, 각기 자기소유의 포도 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 앉게 될 것에서 보는 법률학의 영화(계
22:5, 미4:4), 사랑과 정절이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모든 가족들의 생활에서 보는 윤리학의
영화(엡3:14-15, 고전13:8) 등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히11:1)로서,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않는(고후5:7) 행위를 수반한다. 그런데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해도
새 땅에서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으로(고전13:12) 알려진다.
그런데 미래에 그곳에서 성전(聖殿)을 보지 못할 것인데,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성에는 빛을 밝혀줄 해나 달이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빛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일 것이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
하고도 놀라운 사실 임을 유념해야 한다.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 이라(계21:23).
그분 밑에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도 영원토록 계속될 다시 새로워진 우주를 다스리는 왕
들이 될 것인데(계21:24-22:7), 그것에 대한 준비는 이미 이곳 현재에서의 삶에서 마련되어
지는 것이다. 재 창조 된 실재들의 모든 총체성은 전능하신 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
여 영원토록 유지 될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 안에서 살고, 기동하고, 그 존재를 유지할 것
이다(행17:28).
우리가 천국에 가지고 가는 것은 어린 양의 피 공로 없이는 가지고 갈수 없다. 그 피 공로
에 의해 깨끗하게 된 것 만을 각자의 마련한 등으로 가져가는바, 이것은 각자 마련했다 하
여도 그 등은 곧, 어린 양에 속한 것임에는 변함없다. 하나님의 지혜가 권능과 큰 영광을 가
지고 하늘의 구름을 타고,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조롱만 일삼던 세상 철학자들의 세상 지혜
를 깨뜨리신 후 일어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크신 지혜로 죄로 인해 찢겨졌던 우주와 죄
에 상처를 입었던 자기 자녀들 이 서로 하나가 되게 하실 것이다.
이후 각자의 행위에 따라서(계 14:13, 20:13) 모든 자들 에게 보상을 해 주실 것이다. 하
나님은 천지 창조와 영원 무궁 영광 부활 영생 창조에 의해 이루어진 실재들의 총체성에 대
한 통찰이 온전함은, 삼위일체 중심일 때 온전 창조의 통찰이 존재할 수 있다. 미래의 생명
이나 활동은 현세에서 달성한 진정한 통찰력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 지는데, 진정한 명철함
은 현세에서나 영원 세계에서나 똑같은 중요성을 지닌다.
* 철학 하는 방법
철학 하는 방법은 너무 많기에 왕도가 있을 수 없다. 다만 그 가운데에서 삶의 지혜를 추구
하는 두드러진 방법을 살펴보면, 데카르트가 보였던 '회의 적 방법', 칸트가 보였던 '비판적
방법', 헤겔이 보인 '변증적 방법,'그리고 훗설의 '현상학 적 방법,' 플로티누스는가 보인 '신
비적 방법'도 두드러졌다. 현세에서 통상 사용하는 '분석적 방법'을 무시할 수 없다.
1. 회의적 방법 이란 ?
가장 궁극적 문제를 밝힘에 있어, 대개 경험키 어려운 이상의 것을 다루기에, 대부분 이론적
인 것으로 치달아, 뜬 구름 잡듯 하기 쉽다. 그러나 한 걸음 딛음을 모아, 다음 걸음이 주어
지듯, 모든 문제의 대상에 대하여 일단 의심해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속담에 '돌 다리도 두
들겨 보고 건너라.'는 의미와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존재함에 관한 의미에 있어서, 무형의 것은 쉽게 파악 할 수 없으나, 한 예로 자신이 살아
가고 있는가? 죽어가고 있는가?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럽지만 자신이 의심하고 있다는 그 사
실 만은 분명하기에, 환언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틀림없다면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틀림 없다는, 즉 사유의 문제를 존재의 문제로 환언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존재를 근거로,
신의 존재에까지 확대하여 증명해 보는 방법을 일컫는다.
이 같은 회의는 염세적인 것과는 달리, 무엇인가 근본적 이치, 명석 판명한 진리를 찾고자,
부러 의심하여 보는 철학 '방법적 회의'인 것이다.
2. 비판적 방법 이란 ?
이 같은 비판적 방법은 옳고 그름을 가려내어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으로, 영국의 경험론,
실천론, 칸트의 실천적 비판과 순수 이성 비판으로 이어진다.
비판이란 ? 있는 그대로의 시시 비비를 가려보는 것이요,
반영이란 ? 비추어 장점은 따고, 단점은 버리는 비판적 종합의 방법이요,
발명이란 ? 없는 것에서 새것을 창출하는 것이요, 남이 해놓은 것을 개발하는 경우는 의장
특허라 할 수 있다.
선행 명분이란 ? 주제에 대하여, 먼저 의 경우는 어떠하였는가 함을 살피는 근거이다.
그 예로서 공학계의 경우는 물건을 만들 경우, 원가 100만원, 어떤 이는 먼저 80만원에,
철학계의 경우, 서론부분은 선행 명분에 해당하며, 각기 다양한 유형을 살핀 후 분석, 자기
의견을 종합, 결론에 이르는 것을 보기를 들 수 있다. 비판을 할 경우는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 순수 이성비판, 실천 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을 한 것으로 알려지는 칸트는, 경험(a
posteriori)과 선험(a priori)을 둠에 있어, 뉴우턴의 물리학을 그의 비판의 선행 명분으로 삼
아 이론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3. 변증적 방법
변증적 방법은 사물과 우주, 역사 등 삶의 모든 부분의 관계가 모순 관계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라 본다. 그러나 영원한 모순 상태가 아니라, 합하여져 종합을 이루는데, 이것은
주관, 객관, 이상, 현실, 정과 반, 합하여 종합, 정립과 반정립, 그리고 종합 등 이 같은 3 단
계가 헤겔이 이론적 형식으로 취한 변증법적 기본 구성이다. 헤겔은 종합으로부터, 무한히
대립하여 계속 나아가는 것이 절대 정신 즉, 신으로 보았다. 비 인격적 범 신론적 논리로서,
절대 정신이 세계를 통괄 할 수 있으며, 이 같은 존재가 자기를 현실화 시켜 나가는 것이
종합이요, 신이라는 주장이다.
변증 학이란 ? 자기가 생각하는 진리에 대해서 공격하거나, 오해하는 자에게 체계적으로
변호 증명하는 것으로 '아폴로제틱스'라 하며, 유사한 것으로는 종교 철학이 있다.
변증법이란 ? 사물, 우주, 역사, 사고의 대상이 되는 것은 모두 모순, 대립, 갈등의 상대적
인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으로, 성경도 이러한 방법으로 이해하려는 자가 있는데, 대표적
으로 변증법적 신학자로는 폴 틸리히를 들 수 있다.
모순이란 ? 반대라는 말과 비교하여 상반되는 관계의 개념이 있을 때, 중간자 허용이 안될
때 모순이라 한다. 예로서 생사, 빛과 어두움.
반대 란? 상.중.하에서 중이라는 중간자가 허용되기에, 상,하를 반대 관계에 있다고 한다.
변증법적 사관이란 ? 역사를 정신(Geist)의 자기 발전과정으로 여기는 변증법 적 사고유
형으로, 이 같은 발전지향적 사고 유형을 학문적으로 체계화 시킨 자는 헤겔이라 할 수 있
다. 그러나 변증법적 사고유형은 역사상에서 이미 살펴 볼 수 있는데, 초기의 변증법자로서
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있었고, 고대에도 변증법적 사고유형이 소크라테스에게서 존재하였다.
칼 막스, 엥겔스에게는 유물변증법을 볼 수 있고, 특히 칼 막스의 경우를 살펴보면, 정신이
합해서, 합해진다는 것은 매우 정신 없는 소리이라며, 물질, 실리, 경제, 빵이 합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괴변이기는 하나, 현실의 현상계에서는 이 같은 모습이 많이 보여지고
있다. 국제 정치와 국제 무역 경제와 국지 전에서 ....
4. 현상학적 방법
사물의 외면만을 봄이 아닌,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서 직관할 때, 본질의 출현을 현상이라 하
는데, 현상학이란 현상을 다루는 학문으로, 종래 의미로는 물리학으로 이해될 수 있다. 철학
추구는 사물 본질을 파악함인데, 실체 현상을 다루는 분야에 있어서 이것을 찾다 보니, 겉으
로 드러난 현상 때문에 사물 본질을 볼 수 없으니, 본질을 바로 분별하려면 껍데기를 벗겨
서, 내면과 본질을 보는 방법으로 의미를 파악하라는 방법이다. 대표자로는 훗설을 들 수 있
고, 후에 물리학에도 이어진다.
5. 신비적 방법
이것은 기독교의 경우와는 다름을 유념하여야 한다. 이들이 말하는 바, 절대자와의 체험을
중시함으로 근본 본질적 문제를 경험에 의해서가 아니고, 합의에 의해 증명하는 것으로, 종
교적 방법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플로티누스의 유출론이다. 어원은 무오(mysticism)< 폐,
닫는다 (μυω) 이다. 오감 이성을 다 닫고, 절대자와 자아와의 계통 추론이 아닌, 직통을
해 보자는 것으로, 다분히 체험을 강조하며, 이때 보편적 문제는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신비적 방법의 대표자는 신 플라톤 학파의 플로티누스를 들 수 있고, 엑카르트 역
시 종교인으로, 기독교 신학에서 취급하는 신비주의 신학자이며, 반드시 동일시하기 어려우
나 생 철학자 베르그송, 짐멜도 다분히 내포된다.
6. 분석적 방법
철학 사고 내용을 알아보려면 언어 어원을 알아야 하고, 사고가 표현될 때 매체 어원을 분
석하여 나가는 것이 우리 사고, 사물, 본질 의 관계를 내면화 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현대
분석 철학을 형성하여 철저히 자연 과학, 수학, 및 경험론과 귀납 논리에 바탕 하여 과학적
어원 분석을 그 방법으로 하고 있다.
* 철학적 주제에 대한 논리적 전개 방식
Ⅰ. 간접 추리
간접 추리란 궁극적 문제를 물어가는데, 두 개 이상의 판단을 엮어, 새로운 판단을 가져오
는 그 과정 자체의 철학적 방법을 일컫는 것으로, 연역법과 귀납법과 유추법을 그 절차적
방법의 예로 들 수 있다.
1. 연역법
- 판단을 이끌어 내되, 규칙적, 일반적, 보편적 원인에 해당하는 개별적 결과를 이끌어낸다.
대수, 기하, 공리, 증명, 결론, 확인, 논리를 통한 방식을 일컫는다.
2. 귀납법
- 개별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을 이끌어 내는 방식으로, 베이컨의 경우를 그 예로 든다.
3. 유추법
- 경험 가능한 사실, 경험 가능한 사례로 설명 하는 양태론적 사고로, 버틀러 감독이 유추
방법으로 불렸다. 하지만 다분히 주관적이며, 합리성이 결여되었기에 배제되었다.
Ⅱ. 직접 추리
하나의 주어진 판단을 형태만 바꾸고, 새로운 판단으로 추리하여, 두 개 이상의 판단을 엮
어서, 새로운 판단을 이끌어내는 절차적 방법을 일컫는다.
판단이란 ? 두 개 이상의 개념을 연계 사에 의하여 연결시킴으로, 의미관련 체를 만들 경
우를 일컫는다.
개념이란? 논리적 주관, 성별, 시대 차이가 있을 수 없는, 누구나 들어있는 동일적인 것을
일컫는다.
관념이란? 사람, 사람 따라 주관 심리적인 것으로, 직접 추리는 개념만 가지고는 의미를 가
질 수 없고, 연계 사에 의한 연결로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은 ~~ 이 아니다.
* 형이상학이란 ?
어원적 설명으로는 물리학을 초월하여 있는 학문으로, 물리학을 통상 형이하학의 범주에 놓
을 수 있다. μετα(after, beyond)+φισικα(물리학,복수 중성어미) >mata-physics.
형이상(形而上)자 위지(謂之)도 형이하자 위지(謂之)기. 즉 형이상학이란 실체 문제를 다루
는 순 이론적인 학문으로, 가변적인 현상을 설명함으로, 초 경험적인 것이며, 이러한 철학의
한 분과를 가르쳐서 말한다.
학문의 분화 현상은 플라톤 때부터이며, 세밀한 분화는 경제적으로 유족한 것으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 때이다. 그는 논리. 윤리학에 업적을 남겼는데, 그가 남겨놓은 원고를 그의
제자 안드로니코스가 정리하였는데, 제목을 잡을 수 없던 중 나온 문장에서, τα μετα
τα φισικα를 따다가 붙였기에 제일 철학, 혹은 형이상학이라 번역케 되었다. 형이
상학을 알기 위하여, 형이하학을 다루어야 하는데, 구분하여 보면 정신적 현상은 심리학에서,
물리적 현상은 지질학에서 다룬다.
현상이란 ? 변할 수도 있고, 다 없어질 수도 있는 것으로, 심지어 이름 가지 변해도 000
이라 부를 수 있는 조직에 속함이라 할 수 있다.
실체란? 현상 배후에 있으면서, 현상이게끔 해 주는 것. 많은 것들은 변화의 양상인데, 이
것 가운데 어느것을 어느것이게끔 만들어 주는, 그 무엇을 일컫는다.
형이상학은 어떻게 논하여지는가 ?
형이상학의 실체는 자존 정도밖에 설명 못한다. 실체는 수량과 성질과 생성으로 구분하여
설명이 가하다.
1. 수량 즉, 있다면 몇 개나 되는가 .
ㄱ. 단원론 탈레스. 헤라클레이토스
ㄴ. 다원론 엠피도클레스, 데모크리투스, 아낙사고라스
ㄷ. 단다론 라이프닛츠(단자론)
2. 성질 즉, 있다면 무엇인가?
ㄱ. 유심론 데카르트 , 쇼우펜하워, 훗설, 버클레이
ㄴ, 유물론 데모크리투스, 포이엘 바흐, 마르크스.
ㄷ, 이원론 아낙사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ㄹ, 일원론 스피노자, 플로티누스, 쉘링, 헤겔, 헥켈, 베르그송, 딜타이, 짐멜, 니콜라이 하
르트만, 하이덱커.
3. 생성 즉,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생겼는가?
ㄱ, 인과론 인과 의존 관계로 보려 함.
ㄴ, 목적론 목적과 수단 관계로 보려 함.
1. 수량
ㄱ. 단원론
모든 잡다하고 다양한 현상들 배후에, 오로지 하나의 실체가 있을 것이라는, 그 실체는 유일,
절대,단일, 통일 성질을 가진 어떤 것이라는 이론이다. 모든 다양한 우주 현상은 하나, 통일
화 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니며, 사람의 철학적, 종교적인 본성과 잘 어울리는 반면, 문제점
으로는 하나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다양성을 무시하여, 흔히 사회학적 입장에서 볼
때, 전제주의같이 각 개인의 욕구 충족이 무시된다. 쇼우펜하우어에 따르면, 사람은 본래가
형이상학적 존재라 하여, 형이상학에 궁금증을 가진 자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 한바 있다.
예) 탈레스는 물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불로 우주 속에서 하나의 실체를 찾으려는, 제논, 하
르메니데스, 크세노스 등의 엘레아 학파와 일자(一者)로부터 유출되어 나왔다는 플로티누스
와 모든 자연 자체가 신이요, 실체라 하여, 원인의 단일화를 이룬 스피노자의 경우이다.
ㄴ. 다원론
두 개이면서도 실체라는 성격을 가지기에, 독립성을 매우 중요시 강조하며, 실제적 경험을
기초하면서도 개체 중심이다. 고로 모든 현상을 분석하며, 개별적으로 고찰 하는데 매우 도
움을 준다. 난해 점으로는 실체는 가장 근원적이요, 독립 불변적인데, 이 독립적인 것이 어
찌 '이합집산'하는가 함이며 단원론으로 가기 쉽다.
예) 엠페도클레스의 경우 아르케(αρχη)를 4 원소로 보았으니 물, 불, 공기, 흙이니, 이것
이 적절히 이합집산 함에 따른다는 4 원소설을 주장하며, 혹은 사랑, 미움이 추가 요소로 이
루어진다고 보았는데, 이는 진화론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다.
데모크리투스의 경우는 추구의 모든 것을 원자로 보았다. 원자 안에 내재하는 힘을 주장하
였으니 이는 '원자론'이라 불린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높이 평가했던 아낙스고라스의 경우, 실체는 씨(스페르마타)요, 실체의
숫자는 무한이며, 각자의 씨로부터 각각의 현상이 나온다고 했고, 이 씨앗의 발아 현상이 정
신(νοοσ)이라 하여, 정신 존재를 강조했다.
ㄷ. 단다, 단자론
공기, 크기, 양, 냄새 등이 손 안에 있다면, 각기 열어보면, 어디로나 통일케 되지 않는가, 그
러하니 고로 실체는 무수히 많지 않은가, 이 실체 각각을 단자(모나드)라 하였다.
라이프닛츠의 경우 다원론적 입장에서 출발하여, 각각 나름의 특성에 따라 다원화되어, 이
것이 결속된 통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 소 우주(마이크로 코스모스)
모든 현상은 각각의 실체로부터 낳는데, 각각의 단자는 그로부터 생기는 소 우주요, 밀폐된
경우로, 교통이 없고, 창이 없는데, 이는 각각의 독특함 때문이라. 창이 없어 독립적인 존재
인데, 이 안에 있는 것은 소 우주 전체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압축되었고, 창이 없는데, 전체
우주와 좌충우돌하는 것은 신의 조화 때문이라며, 예정 조화설을 주장하고 있다. 모든 현상
은 정신적인 것에 가깝기에, 모든 단자는 각기 달리 다른 단자와 상호 관계가 없어, 독립적
인 존재요, 그 단자 안에 있는 것 하나 만을 볼 때는 소 우주로, 최선 한 것은 우주로 보았
으니, 이 주장은 초연 신론과 통하는 바 있다.
2. 성질
ㄱ. 유심론
만유가 정신에서부터 나온 것으로 추론하며, 데카르트, 쇼펜하우어, 훗설, 버클레이 등을 들
수 있다.
라이프닛츠는 유심론적 존재론자라 칭하여지는데, 존재론적 근거를 들어 단자론이라고 하
는데, 데카르트 이후 정설로 여겨진다. 그에 의하면, 물질의 가장 고유한 특성을 연장성(길
이)로 보았다. 또 정신의 모양, 특성은 사유라 한다. 이것이 옳다면, 물질은 연장(길이)이 있
고 가분 적이다.
제논과 '아킬레스와 거북이' 이야기나 중국 이야기 가운데, 한 자하는 자를 하루에 반 토막
씩 자르면, 영원히 자르지 못하니, 왜냐하면 쪼갠 것은 크기가 작을 뿐, 또 다시 쪼갤 수 있
기 때문이라며, 만일 쪼갤 수 있다면 이미 실체(물체)가 아니기에, 정신이어야 할 것이라 는
이야기이다.
쇼펜하우어는 인성론적 근거로, 사람 구성을 정신과 육체로, 사람은 정신을 가진 육체인지,
육체인 정신을 가진 동물인가를 예로 들었다.
버클리, 헤겔의 경우, 사람의 인식은 개체가 인식케 하는가, 주체가 인식케 하는가 하는 질
문을 던진다. 사물을 봄은 보는 이마다 주관을 지니기에, 인식함은 주체에 의한 것이니, 결
국 인식의 주체(정신)가 객체(물질)를 지배하지 않겠는가 주장한다. 이 같은 유심론은 추리
를 근거로, 추리는 개연성을 가지며, 이는 정확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이때 정신이 사물 판
단 평가하는 쪽에 치우칠 경우, 라이프닛츠는 주지주의자로, 쇼펜하우어는 주의주의자로 구
분되기에 이다. 유심론은 모든 물질 현상을 인정하며, 현상 배후 근원을 정신이라 하며, 모
든 것은 정신에서 물질이 나왔다며, 결국 물질을 낳게 할 수 있는 정신은 순수 정신일 수
없다 하여, 사실상 사회성, 연장성 설명에 어려움을 가진다.
ㄴ. 유심론
경험 의 현상 근거 에는 물질 이란 실체가 있다 보며 주변 의 정신 현상 은 부정하지 않으
나 물질에서 가져온 기계적 필연적 부수 현상 의 결과 로 인한다 보았다. 오늘날 매우 지대
한 영향력 을 발휘하여 영국 경험 론 과 함께 인과론 이 대두하고 불란서 백과사전 파 들
의 주장이 자극되어 자연 과학 발달과 함께 유물론 이 매우 세력을 떨치며 유물 론자 는 유
심 론자 의 의견을 뒤집는다. 고대부터 있었고 데모크리투스 의 원자론(아톰이즘-10가지 원
소가 서로 상호 작용 생성 소멸 되는 것, 물질 안에 가지는 자체 의 힘이 상호 작용을 일으
킨다)과 포이엘 바하, 마르크스 등을 들어볼 수 있다. 막스이즘 은 신 변증법 적 유물론 과
유사하다.
1.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