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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 워크샾

지식창고지기 2011. 12. 1. 11:25

우리는 두 사람의 경우를 통하여 많은 가르침을 받게 된다. 하루에 있어서, 아침, 점심, 저
녁 시간에 따라 하는 일도 다르다. 씨를 부리는 경우라면, 아침부터 맷돌 질은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경우로 생각할 수 있고, 잠자는 일은 저녁에 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한다
하여서, 정상적인 일과를 변하여, 돌연변이 적인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재림에 대한 시기에 대하여, 언제나 맞을 준비하며 정상적으로 생활함이 마땅하다. 즉
주 예수 메시아의 재림에 대한 긴박성과 이를 신앙 하는 자들의 정상적인 현실 적응은 동시
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언제나 홀연히 천국에 돌아갈 준비된 미래성과 현실에서 백년, 만
년 살 것 같이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는 현실성이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적 특징 요소 7가지는 모든 신앙 자들의 사상의 밑 바탕에 놓여져야 한다.

첫째, 미래성(내세성)으로, 이는 예수님이 주장하신 첫 말씀으로(예: 천국이 가까웠다), 장소
적 개념과 영원 불멸성과 상급과 관계되는 영광 등이 내포된다.

둘째, 현실성으로 현실적인 기독교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다. 구주의 지체인
신앙 인의 경제, 건강, 생활 관(마7:22) 등이다. 종교의 동기는 이기적인 욕구를 바른 욕구
로 인도함과 함께 채워야 하며, 나눔이라는 선교의 정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빛은 타며, 소
금은 녹아 되어지는 자기 희생의 과정이 있다.  
사실상 세상은 메시아 인들만 바라고 있기에, 주위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야 하는데, 방
편은 선교로, 희생이 없는 선교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은 위선에 불과한 것이다.

셋째, 진리성으로 '오직 성경' 만을 바탕하며,
넷째, 도덕성으로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된 세계 최고의 윤리 관이며,
다섯째, 선교성으로, 나눔이 있고,
여섯째, 신비성으로, 자체가 신비하며,
일곱째, 종말성으로 심판 주 예수 메시아를 바라보아야 한다.(89년 1월3일)

강해 설교의 기초적 훈련- 참석하여 작성했던 요약 글
강사: 하영조 목사. 일시 86년 1월26일

설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삶, 설교대로 살기에 자기가 심히 도전 받게 되었다는, 고쳐야
할 것들을 깨달아, 보통 성경대로 살지 못하기에, 양심에 의해서 그 본문을 피해가고, 강조
해야 할 것을 인함,
강해 설교는 본문의 의미를 그대로 선포하는 것이기에 제일 먼저 부딪히는 것이 우리의 삶
이다. 이는 강해 설교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자기 생을 바꾸지 않기에 어렵게 여기는 것이
다. 삶을 통하여 순수하고, 바른 전달을 함은 중요하다.

강해 설교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은 '경건의 시간(Q.T)'으로, 강해 설교는 기술 만이 아니라,
말씀을 묵상, 이를 노트에 정리, 또 묵상 된 메시지로 설교 화하는 것으로서, 강해 설교의
승부는 매일 성경 묵상을 할 수 없으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제자 훈련 개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을 때, 보다 호소력이 강화된다.
더불어 성경 공부에 대한 육하원칙 등에 의한 귀납법적 훈련 등이 보다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강해 설교와 함께, 상담과 부부 생활 등은 함께 보완되어져야 한다.

강해 설교 워크샵
일시 86년 1월26일 오후 3시,
강사: 데니스 레인

강해 설교에 있어서, 먼저 내가 이일을 왜 하는가 목표를 자문 자답 해보아야 한다. 처음
시작에는 목표가 있으나, 목표를 끝낸 후, 우리는 시시때때로 목표를 재 확인하여 보아야
한다.

강해 설교의 목표는 무엇인가?
인생으로 하나님의 말씀 지식에 접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매우 숭고한 목표라 할 수 있는데,

호세아서 4장1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책망을 받는 기사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의 백성이었으나(1절), 신실, 진실함,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존재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백성이 행동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인생의 진실이란 하나님의 진실함을 반사하여, 반영하는 것이며, 성경에서 알려주는 하나님
은 신실하시며,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시다.
인생이 하나님을 잊으면, 또한 충성도, 사랑도 잊어버리며,
충성을 잊으면 사업 상에도 정직이 사라지고,
사랑을 잊으면 자비심도 사라지기에, 결국 인간성이 파괴된다.

즉 진실, 인애, 하나님의 지식대신 좋지 않은 것이 득세한다.
인생을 제한하는 제한 요소가 깨어져, 결속이 깨어지고, 피흘림 만 있게 되며, 이는 하나님
을 잊어 버릴 때 인생이 처하는 사건이다.

환경도 이에 영향을 받아,

3절, 땅이 슬퍼하고..
자연 환경이란 현재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죽어가는 환경이 된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
실 때, 다스리라고 사람을 만드셨으나, 사람이 하나님을 잊을 때, 결국 자연도 파괴됨을 볼
수 있다.우리는 핑계함으로 잘못을 부인할 수 없다.

5절, 행위를 거칠게 삶으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는데, 지도자까지도, 선지자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선지자는 모든 역할을 올바로 보고, 잘 잘못을 판단해야 하며, 하나님
의 백성을 하나님께 인도해야 하나, 어찌해야 할 것을 몰랐기에, 이때에 하나님은 노하시며,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6절, 네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 도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많은 예배가 있었고, 성가대가 있었고, 매일 제사를 드렸으며,
예배에 참석했으나, 실제가 없었으니, 곧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책임을 제
사장, 선지자, 지도자(왕), 즉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에게 추궁하고 있다.
6절 후반에, 하나님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리리라는 말씀을 본다. 이는 제사장은 하
나님의 법칙을 가리키기 위하여 존재 했지만, 그들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부어지는 지식을 배척하였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내가 너의 자녀들을
망각할 것이라'고 하신다.
성경을 통해서는 믿을 수 없다는 거부함은 '하나님의 계시'를 찾을 길 없기에 결국 하나님
을 거부함도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리고, 옆에다 제쳐놓고 사용치
않았고, 결국 자기 뜻을 설교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잊어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은 결과는 다음 세대에 있게 되니,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된다.

7절, 제사장들은 숫자가 더해갔다 하는데, 숫자가 더 할수록 하나님께 더 범죄 했다는 것이
다. 만일 우리 속에 있는 생각만 설교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은 버리고 우리의 조그마한
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9절, 제사장이나, 선지자나 일반이나,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 하시니, 이 들이 이런 상태에
처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참된 지식을 알
지 못함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지식이 아닌, 자기 지식을 전했기 때문 이었다.

어떻게 인생이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인생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기에 알며, 또한 오감으로 자연 계시를 통하여 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아는
것도 어려우나, 하나님을 아는 것은 더욱 어렵다. 우리가 인생을 알 수 있음을 말, 모습 등
을 통해서 겉 껍데기는 알 수 있으나 속을 알기는 어렵다.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심을 계시하고 계시며, 조심스레 수 천년에 걸쳐서 명백히 하셨
다. 결국 하나님은 예수 메시아의 인격을 통하여서 온전히 나타내셨다. 그 분의 인격을 통
하여서 인생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인생을 알려면 믿을 만한 자인가 하고, 인품과 신분을 알려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
서도 하나님 자신의 성품을 계시하셨다. 충분하게. 또한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셨는데, 이
약속은 순종해 볼 때 알 수 있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지식을 더욱
성장하게 하신다.

우리가 타인을 보고, 깨닫고, 기뻐함은 상대방에게 심령을 열러 호흡함이기에, 기뻐하고, 즐
거워 한다. 이런 방법으로 제자들도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자신의 삶 자체로 제자들에게 알리셨다. 예수님 말씀을 순종한 제자는
예수님을 알았다. 또 마음 속으로 즐거워 함으로 기뻐했다. 이는 설교의 목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이 무엇이라 하시는가를 이야기 하는 것이며, 입체화하
여 전해주는 것으로, 이런 전달을 통하여, 순종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이 순종할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더 알 수 있게 이야기 해 달라는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설교의 목표는,
1.        하나님의 말씀이 명확 하게 확실히 나타내라.
2.        하나님의 성품이 눈에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나타내라.
3.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할 수 있도록 나타내라.
4.        하나님의 신실함을 사람들이 인정하고, 그 안에서 기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인생이 신임하면 들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호응하면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사람의 성품은 순화될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체
로 하나님을 증거 하게 된다.

어떤 나라이던지, 어떤 순간이던지, 그 나라는 고저의 현상이 있으며, 어떤 사회도 정체된
사회는 없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 이다. 이스라엘도 역시 마찬가지 였는데, 진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인애 등 곡 필요한 것이 없었는데, 이러한 것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과 악을 폭로하며 길을 밝혀주는 빛, 이는 하나님을 알 때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하나님을 알게 되며,

강해 설교는
1)        우리가 스스로 먼저 하나님을 알고,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그 안에서 즐거워 해야
한다. 하나님을 직접 아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과 차이가 있다. 생활을 통
하여, 믿음과 순종으로 직접 알게 된다. 우리 스스로 알지 못하면 인도할 수 없다.
2)        하나님을 타인에게 알게 해 주어야 하는데, '너는 너 자신과 가르치는 자를 위하여
조심하라'는 말씀을 새겨볼 수 있다.

강해는 말씀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해 자 자신의 심령에
먼저 설교하시도록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 자신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하는 진리
는 타인에게도 마찬가지 이다.

그러나 모든 인생은 아직이라는 가운데 존재 하기에, 죄성은 기승을 부리며, 설교한 대로
살지 못하기에, 설교자도 교인과 같은 처지이기에, 하나님의 말씀 아래 처하여 있는 것이다.
어린 양에게 먹을 수 있는 젖을 생산하는 어미같이,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고기를 잡고,
내가 먼저 먹고, 재 생산하여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강해가 무엇인가?]
강해 설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부터 시작해야 한다. 느헤미야서 8장2절을 보면, 많
은 회중 들이 모였는데,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 수 있는 자였다.

1절에, 모세 율법책을 가지고 나왔다고 했으나,

3절에, 새벽부터 오정까지 읽었다고 했으나, 강조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만한 사람이었
다(율법에 귀를 기울였더라). 강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깨
닫도록 해주어야 한다. 기대감을 지니도록.

4절에, 에스라는 특별히 지은 높은 강단에 서서, 강단의 높음은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이 전해지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다.
5절에, 에스라가 서서, 백성들도 서서 들었다고 하였다. 이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6절에, 에스라가 여호와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이 아멘으로 화답했다 했으니, 이는 예배 드
리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우선적으로 강대 자는 청중들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실
것인가를 기대 시킬 할 일이 있다.

8절에, 율법책을 낭독했다고 했는데, 이는 깨닫게 하여 의미를 찾게 하였다는 것이다.
강해는 우리라는 회중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명확히 알려주는 것
이다. 내 사상을 성경에 집어 넣음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성경에서 의미
가 나오는, 메시지를 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내 사고를 성경 구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열
린 마음에 의하여, 성경 말씀이 무엇을 말씀 하시며, 무슨 뜻이며, 회중에게 무슨 뜻을 제시
하는가 이다.자신이 처한 환경과 연관성이 있음을 깨닫지 않고는 효과가 없다.

9절에, 울며, 회개하였다 하였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을 때, 불 순종을 슬퍼했고, 무
었을 해야 할 것인가를 찾고자 울며 통곡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심령에 말씀할 능력
이 있으시다.

10절에, 너희는 가서, 이는 명령과 약속이었다.

12절에, 그들은 크게 즐거워 했다. 이유는 가르쳐준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이요, 강해는 '하
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전하여야 한다. 내가 진단, 분석 하였고, 내 지식이 많기 때문이 아
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에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해 자의 설교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직접 나온 것이라면, 진리와 영감에 의한 것이라
면 '감화적 권세'는 함께 한다. 강해 자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될 때에만 존중될 수
있고, 이것이 '강해 설교'이다.

강해 자는 성경의 세계와 설교자의 세계와 회중의 세계를 다 생각하여야 한다. 성경이 쓰여
진 세계와 현재를 연결시키는 연결 체가 설교자 이다.

분석 단계는 매일 아침 마다 해야 한다.
마11:1-15, 묵상 결과를,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가를 질문, 지금이라는 실정에서는 어떠하며,
'나'라는 존재의 적용은 어떻게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회중'
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요17장, 대지가 하나, 하나님의 설교, 그러나 말씀 자체로 적용시키는 이치는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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