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나이 47살입니다. 나보다 6살은 더 많습니다. 내겐 형님뻘입니다. 그래도 그는 나를 목사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합니다.〈뿌리깊은 나무>에 나오는 한짓골 똘복이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형님은 고향 순창에서 어릴 적에 변을 당했습니다. 또래 아이들과 실개천이 흐르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재미나게 놀고 있었는데, 그 길목으로 달구지를 끌던 소가 덮쳐 버렸던 것입니다. 형님은 소에 받쳐서 다리 밑으로 떨어졌고, 그때부터 지금껏 해맑은 어린아이 수준으로 살고 있습니다.
"목사님. 비타민 주세요. 그것 맛있어요."
"잠깐만요? 여기 상자에 있을 텐데. 이런, 하나도 없네."
그 순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경오, 27살 된 청년이 그입니다. 녀석은 지적장애 3급을 갖고 있습니다. 녀석이 오갈 데 없다고 하여 교회 안의 작은 방에 몸을 가누도록 해 주었습니다. 한데 그걸 야금야금 다 먹어 버렸던 것입니다. 전도용으로 사람들에게 퍼다 주었는데, 그걸 다 빼서 먹어 버렸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와 형님은 그 '블루포켓' 비타민은 미련 두지 않고 곧장 전단을 들고 마천역 2번 출구로 향했습니다.
"경오야. 혹시 비타민 봤냐?"
"모르는데요. 나는 안 가져갔는데요."
그날 저녁, 내가 다그치지도 않았는데 녀석은 얼굴이 빨개진 채 내게 목청을 돋우고 있었습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하던, 꼭 그런 짝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경오를 나무랄 수도 없었습니다. 녀석을 5년 동안 데리고 있던 길동의 '꿈터학교' 선생님은 녀석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일러 줬습니다. 조금만 화를 나게 해도 녀석은 럭비공처럼 튀어 나간다고 한 까닭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 앞에 그들 두 사람은 내게 소중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교회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 어떤 분은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교회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언젠가 때가 되면 더 나은 곳으로 물 흐르듯 흘러갈 것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교회를 흐려 놓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 번영 신학을 선동하여 부와 물질로 가난한 이들을 금 긋고 살려는 신앙인들일 것입니다.
이은의 <박 회장의 그림창고>는 우리나라의 재벌 그룹들이 비자금과 정치 후원금을 만들기 위해 미술품으로 돈세탁하는 방법을 그려 줍니다. 그건 이은화의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에도 표현된 바 있듯이 미술(Art)에 M을 더하면 시장(Mart)이 된다는 것과 같은 속성입니다. 대형 교회로 알려진 충현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신성종 목사님이 갑자기 교회를 사임하고 선교지로 떠난 것도 그런 피로감 때문이지 않았을까요? 천국에 있어야 할 자신의 모습이 지옥에 있었다는 영적인 실체를 깨닫고서 말입니다.
한미 FTA, 아니 미한 FTA가 문제가 되는 것도 그 속에 연약한 이들을 담을 그릇이 없는 까닭입니다. 일한합방에서도 일본에 질질 끌려갔듯이, 지금도 우리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으로 나라의 위상이 높아질 리는 천부당만부당한 꼴입니다. 미한 FTA는 농사짓고 소 키우고 과일 재배하는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미는 꼴입니다. 약국에서 쌍화탕 한 병 받아 마시는 것 때문에 마냥 좋아하는 나로서도 절대 다르지 않습니다. 미한 FTA가 체결되어 의료민영화가 가속화된다면 99% 힘없는 이들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종합편성 채널도 그 흐름을 가속화하는 페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겠지요?
"어, 전주네. 내가 니 가방 갖다 놨어."
"무슨 가방이요?"
"아, 그거. 고철 장에서 일할 때 갖고 다녔던 그 가방. 이 형님이 가져온 거야."
어렸을 때 뇌를 다쳐 철부지처럼 보이는 그 형님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수밖에 없는 지적장애 3급의 청년 경오는, 그렇게 또 다른 친구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도 그들을 동생처럼, 형님처럼, 아들처럼 받아 줍니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게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도 허물 많은 우리를 받아 주셨을 때 그렇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더 여린 사람들을 품고 사는 게 사랑의 빚진 자가 감당해야 할 몫일 겁니다.
오늘은 그대에게 일곱 번째 잎사귀 글(葉書)을 띄웁니다. 지난번 엽서에서는 '때로 하나님께서 다루실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지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그대와 함께 나눈 이야기는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자세였습니다. 그건 교회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이 세상 어느 곳이든 사람 사는 곳이라면 똑같지 싶습니다. 오늘 그대도 물 흐르듯 그대 사랑을 낮은 데로 흘려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대 앞길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기도하겠습니다. 2011년 12월 2일.
권성권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교회 목사·<100인의 책마을〉공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