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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의 장로제도 - 자기반성

지식창고지기 2011. 12. 19. 10:40

장로교회의 장로제도 - 자기반성
목사와 장로에게 주어진 권력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망한다
 
소재열

1884년 9월 20일. 미국 장로교 선교회 소속이었던 알렌 선교사가 중국을 통해서 조선에 들어왔다. 개신교 선교사의 첫 한국 입국이었다. 알렌은 목사가 아니라 의료선교사였다. 최초의 목사 선교사는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입국하였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회 소속인 언더우드 선교사였는데 그는 아직 결혼하지 않는 총각 선교사였다. 장로교 선교사 외에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 선교사와 함께 조선에 목사 선교사가 최초로 입국하여 복음을 전했다.

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한국에 장로교회가 세워졌다. 명칭은 "조선예수교 장로회"였다. 교회가 세워지면서 미국 북장로교의 헌법을 번역하여 조선예수교 장로회 헌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미국에서처럼 교회가 세워지면서 장로를 세웠다. 그리고 목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1907년 최초로 조선에 7명의 목사가 탄생되자 이제 조선 사람으로 목사와 장로가 세워져 이제 조선장로교회에도 당회가 조직되었다.

1907년 조선인 목사가 세워지기 전에 미국 선교사와 조선교회에서 임직받은 장로와 함께 당회를 조직하여 교회를 다스리게 되었다. 장로교회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를 조직하여 교인들을 치리하고 교회를 다스려나간다. 어느 교회이든지 장로의 인격과 성품은 그 교회 이미지였고, 그 이미지 이상으로 교회는 성장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로의 인격과 성품은 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일반 성도나 집사로 봉사할 때에는 전 교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에 인격과 성품이 좀 부족해도 교회에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장로가 되면 그 직분은 전교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친다. 행동 하나하나, 언어 한마디 한마디가 전 교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그때 교인들은 그러한 장로를 통해서 교회를 평가하고 신앙을 평가한다.

더더구나 장로교회는 장로정치 체계를 갖고 있다. 모든 회중이 참석하여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고 다스리는 일을 결정하지 않고 목사와 장로가 당회를 구성하여 이 일을 시행한다. 교회의 대표인 목사와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가 교회의 중요한 결정을 한다. 그러다 보니 목사와 장로에게 일정한 권력이 집중된다. 권력을 갖고 있는 목사와 장로가 일정한 인격과 성품이 모자라면 그 권력은 교인들에게 원망과 상처가 된다.

교회에서 다스리는 권력은 필요하다. 교회의 순결성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교회 순결성을 위해서 권력이 필요하고 그 권력을 행사하는 당회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당회의 구성원인 장로가 교인들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하거나 성품에 있어서 모나있다면 교회의 순결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다.

교회에서 장로가 될 수 있는 일차적인 자격은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교회에 출석하는 어느 교인들을 붙들고 물어봐도 스스로 믿음이 없다고 말한 사람은 없다. 사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왔고 그 믿음의 외적인 평가로 직분을 받을만한 자격을 갖춘자로 인정되었기에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을 것이다.

결국 장로가 되는 일차적인 자격 조건은 믿음이다. 그러나 그 믿음이 행위의 열매로 드러나게 하는 인격과 성품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장로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하면 배우면 된다. 그러나 장로가 교인들을 돌보는데 필요한 고매한 인격과 성품은 배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나야 할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연단과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절제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과 섬기려는 성품은 장로의 사역을 감당하는 중요한 자격 조건 중에 하나이다.

장로교회의 장로제도, 당회제도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당회가 없을 때와 있을 때를 비교하면 차라리 장로와 당회가 없는 것이 교회 성장에 지름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나는 장로와 당회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를 수행하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장로교 제도 자체를 놓고 볼 때 그 제도는 나무랄 것이 못된다. 제아무리 제도가 좋다고 할지라도 그 제도를 시행하는 사람이 문제가 되는데 사람의 인격에 문제가 있다면 그 좋은 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회의 권력은 어떤 사람의 손에 들려있느냐에 따라 그 권력 집행은 복이 될 수 있고 화가 될 수 있다.

한국장로교회에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인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주기철 목사가 산정현교회에 시무할 때의 일이다. 조만식 장로는 그 교회의 장로이다. 주일 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가 시작한 후에 조만식 장로가 늦게 들어왔다. 조 장로가 교회에 오다가 중요한 사람을 만나 잠간 얘기하다가 늦었던 것이다. 예배시간에 늦게 들어온 조만식 장로를 향하여 주기철 목사는 다음과 같이 강단에서 말했다.

"장로님, 거기 서서 예배드리시요. 장로가 늦으면 교인이 무엇을 본받겠습니까?"

조 장로는 그 날 뒤에서 선 채로 예배를 드렸고 예배 후 주기철 목사를 찾아와 주의 종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조만식 장로는 오산학교 교장이었고 청년시절에 주기철은 그 학교의 학생으로 조만식 장로에게 배웠으니 그의 제자였다. 주기철 목사를 산정현교회에 청빙할 때 교회 대표로서 주 목사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는 얘기는 우리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자기 제자였지만 주의 종으로 섬겼던 그는 진실로 겸손의 사람이었으니 그 목사에 그 장로였다.

장로교회의 당회를 통한 장로정치는 성경적이라고 믿는다. 성직권을 가지고 있는 목사와 교회 기본권을 갖고 있는 교인들로부터 위임받은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가 협력하여 교회를 이끌어간다. 장로 없는 목사의 목회는 가능하지만 목사 없는 장로의 목회가 불가능한 것은 교회의 본질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로는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의 말씀권에 의존되어 있고 그 빛을 보게 된다.

겸손하고 훌륭한 목사 밑에 장로라는 말은 통해도 훌륭한 장로 밑에 목사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것은 목사를 통해서 선포된 말씀권이 장로에게 종속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래동안 장로회 정치에 있어서 당회에 관해 연구했다. 이같은 주제는 필자의 목회학 박사학위 논문의 연구 주제였다. 이 주제는 한국장로교회의 신학적, 정치적 정체성을 연구한 철학박사 학위 논문으로 연결시켰다. 연구해 보니 제도는 너무나 좋았다. 장로회 정치 원리와 신학적 체계는 절대독재를 거부했다. 문제는 그 제도를 시행해 가는 목사와 장로가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믿음에 바탕을 둔 고귀한 인격과 성품이 교회 직분을 감당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설교 한편을 듣고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경우나, 아무렇게나 장로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교회를 피폐하게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시행착오를 범하면서 비로소 배우는데 이런 경우 피해보는 것은 교회요, 교인들이다. 교회와 교인들은 보호되어져야 한다. 교인들이 잘못 청빙했던 목사 때문에, 잘못 뽑은 장로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문제의 원인제공자는 결국 교인들 자신이다. 자신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떠안고 회개하는 수밖에 없다. 장로회 정치제도나 당회가 문제있다고만 말하지 말라

 

 

..... 소재열목사님의글을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