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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중요성과 성령님의 역사

지식창고지기 2012. 1. 18. 08:15

말씀의 중요성과 성령님의 역사 
 (딤후 5:16,17 ; 엡 1:3-14) 

 

 

IRPC순천영도교회    장성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에는 하나님을 알려 주시고, 하나님의 통치 원리나 성품(속성)들을 계시하여 주시고, 그런 하나님 앞에서 사는 인간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삶의 방향으로 살아가야 하는가하는 것을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거룩한 사명적인 삶과 존재론적이고 그리스도적인 성품들을 구비하는 가운데 이상적인 인간상, 이상적인 사회상을 이루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나 의도하시는 뜻과 정신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종교형성주의나, 인생행복론주의, 공적주의라는 인본주의적 신앙관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와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부모님은 자꾸 돼지고기를 먹고 싶은데, 자식들은 효도한답시고 자꾸 쇠고기만 사다 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부모님께서 우리가 지금 해 드리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왜, 어떻개 해드리기를 원하시는가 모르면서 행한다면 효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고 오히려 걱정을 끼칠 수도 있기 때문에 불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크게 '명목상의(nominal)' 그리스도인과 '실제의(real)' 그리스도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진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 명목상으로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가능하다. 이러한 선을 그을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은 신관이나 인생관, 교회관 등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말씀에 어떠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을지라도 어리거나 병듦으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거나 혹은 내가 기독교 국가에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단순한 논리 가운데, 또는 전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앞에 간 선배신자들이 그렇게 하니까 따라한다는 식이라든지 하는 기준을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려고 할 것 같으면 하나의 종교생활이나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으로 나타나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그리스도인은 기준을 신중심주의적이고 말씀중심적인 가치관에 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사명적인 인생이요, 참제자인 것이다. 실제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랑의 무한하심을 깨닫고, 그 은혜를 체험하는 사람은 자꾸 자라면서 영혼의 기능이 새생명의 발휘로 성령의 열매를 거두고, 동질의 생명을 부여받은 성도들과의 거룩한 사귐 가운데 들어가며, 말씀을 깨닫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와 인도를 자꾸 받으려고 하고, 그럼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게 되는 사람이다. 이것이 새생명을 받았다는 반응이요 증거요, 실제의 그리스도인으로 자꾸 드러나는 모습이다.

  이런 모습으로 자꾸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와 삶을 기쁘시게 받으시고 더욱 선하신 모습과 방향으로 인도하셔서 이상적인 인간상, 사회상을 회복시키시므로 궁극적으로 효과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과 확장은 물론 하나님께서 영광을 거두시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의 삶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이것은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모유를 떠나서는 건강한 생명 유지, 장성을 할 수 없는 것과도 같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새생명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쓰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장성하게 된다.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 장성해 간다'는 말은, 성령님께서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는데 말씀을 통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딤후 3:16,17)는 말씀이고, 옛 사람의 세상 법칙, 인본주의적 원리들을 벗어버리면서 새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점차 회복해가며 성령님의 은혜와 도우심 가운데 사명적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한다. 이것은 막연한 이상이나 피상적인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령을 좇는 삶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실제생활이 되어야 하고, 나의 현실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라서 행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그러기위해서 건강한 도리들을 깨우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못산다는 인생이 내 멋대로 살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관심과 간섭 없이는 한 순간도 바르게 알고 자라고 능력있는 삶을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 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무능력과 비참함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입술을 통하여 고백하고 찬양하며, 삶 속에서 실증(경험)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속성을 반사하는, 나타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엡 1:3-14에서 말씀하시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고,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는 삶"이다. 바로 이런 삶을 살도록 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녀가 되게 하시고 성령님께서 도우시기 위해 임재하셨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무한하신 사랑의 섭리이신가! 성령님의 말씀을 쓰시는 역사는 우리가 구구단을 외워서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생각과 노력으로 교회생활도, 말씀을 읽기도 한다. 그래서 그냥 머리 속만 커지는 경우도 있고, 습관적인 교회생활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생명력있는 요소들을 품고 건강한 신앙생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어떤 가치관과 접근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고 말씀을 대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성령님의 역사는 어떤 법칙이나 공식에 대입해서 얻어지는 신비주의적이고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말씀의 묵상과 성령님의 통치를 구하는 삶 속에서 베풀어주시는, 그리고 자연스럽고 인격적인 친밀한 교제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나 자세도 말씀에 대한 바른 묵상과 깨달음, 그리고 성령님을 의지하고 도우심을 구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나오는 열매인 것이다. 성경공부를 하고 신앙서적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생각나게 하셔서 쓰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삶 속에 적용하시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중요성과 절대적 필요성을 깨닫고 성령님의 다스리심(도우심)을 적극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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