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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지식창고지기 2012. 1. 18. 08:25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마5:6)

배고픔과 목마름은 인간의 가장 절실하고도 기본적인 욕구들입니다. 인간의 육체에 가장 참기 어려운 두 가지 욕망은 굶주림과 목마름입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억제될 수 없는 욕망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이나 경치도 배고픈 사람의 관심은 끌 수 없습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주림과 목마름은 인간의 가장 절실하고도 기본적인 욕구들입니다. 그리고 주림과 목마름은 대상을 요구합니다. 먹을 음식과 마실 음료수는 사치품이 아니라 우리 생활의 필수품입니다.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먹을 것과 마실 것은 꼭 필요했지만 특별히 예수님 당시에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가난으로 찌들린 팔레스틴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은 대단히 중요했으며 또 이것처럼 절실한 욕구는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마실 것을 제공하는 우물과 먹을 것을 제공하는 밭은 하나의 생명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우물과 밭처럼 소중한 것은 없었습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주림과 목마름을 절실하게 느낀 당시의 백성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실감 있게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림과 목마름의 대상을 바꿨습니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주림과 음료에 대한 목마름이 아니라 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의는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의라는 것은 정의 감각에 뛰어난 어떤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모든 인간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이 먹을 것과 마실 것에 의존해서 산다면 영적 생명은 의를 사모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3서 2절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먼저 영혼이 잘 되야 우리의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해 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 '의'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올바른 관계'나 '올바른 생활'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 가지 관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양심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고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4:16절에 보면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생활을 하려면 자신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힘써야 합니다. 양심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양심의 소리를 거역하고 살게되면 불의와 불선한 길로 가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 모두는 이웃과 올바른 관계 속에 살아야 합니다. 올바른 관계 속에 살아야 올바른 생활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올바른 이웃과의 관계 속에 살려고 하기 보다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남보다 더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자기중심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가리 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만 하면 나머지 이웃과의 관계도 올바르게 됩니다. 자신과의 관계도 올바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을바른 관계 맺는 법을 무엇을 통해 알려 주셨습니까? 신구약 성경말씀 알려주셨습니다.

2.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는 말씀은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비결을 알려주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시 1:1∼2).

시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하나이다" (시119: 1-3 ,9, 10, 11, 15 ,18,71-73,105,147,148). 의가 무엇입니가? 주의 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불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행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하는 뜻은 우리 육신의 욕망 가운데 가장 큰 욕망, 가장 큰 갈망을 의미합니다. 주리는 생활이 얼마나 힘겨운 생활입니까? 굻주려 본 사람이 아니고는 주린 자의 안타까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사람은 먹지 않고는 육신을 가진 이상 살수가 없습니다. 주리는 것은 위급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 못지 않게 위급한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목마름입니다. 목마른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하루 이틀 먹지 않고는 살 수 있어도 하루 마시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겸해서 당할 때 얼마나 급하고 갈급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망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욕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겐 무엇을 더 알고 배우고 싶어하는 지적 욕망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랍에겐 누구와 사귀고 싶어하는 간절한 욕망이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 있어 좀더 가지기를 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권세에 대한 욕망이 있어 세상에서 권세를 원합니다. 그밖에도 명예의 욕망, 창조의 욕망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윽망 외에 또 한가지 욕망이 있는데 그것은 의에 대한 욕랑입니다. 올바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올바른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욕망이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랑은 자주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이따금씩 일어납니다. 주린 사람이 먹을 것을 찾는 것처럼 목마른 사람이 마실 물을 찾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의에 대하여 얼마나 갈급해하는가? 얼마나 올바른 생활을 하려고 애타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돈에 대하여 혈안이 되어 사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해 목말라 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지식이나 권세, 지위에 갈급해 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의에 대해선 얼마나 갈급해 합니까? 올바른 관계, 올바른 생활을 위해서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아니 다른 사람은 그만두고 여기 있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 자신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양심 앞에 올바른 관계 맺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올바른 생활하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시기 때문에 켜기에 오셨다는 사실을 ·

오늘 마태복음 5:6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꼭 의로워야 복을 주겠다가 아닙니다. 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만 있어도 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윗 왕은 성전을 짓지는 못했지만 짓고 싶어하는 마음은 간절했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입니다. 의롭지 못해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간절한 소원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3. 어떤 복이 있습니까?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여기서 배부를 것 임이요 란 무슨 뜻입니까? 성령 충만을 가리킵니다. 요6:35에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걸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7:37-38절에 보면"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하였습니다

우리가 정말 성령충만 하면 부족한 것이 있어도 불편한 것이 있어도 만족해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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