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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관수도 (高士觀水圖) 종이에 수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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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태종 17)~1464(세조 10). 조선의 문신. 자는 경우, 호는 인재(仁齋), 본관은 진주, 지돈령부사 강석덕의 아들이며 ,강 희맹의 형이기도 하다.성격이 온화하고 말이 적으며 청렴 소박하고 영달을 구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은 많지는 않는데,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그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화풍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그가 사신으로서 중국을 다녀와 중국의 새로운 화풍을 일찍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441년(세종 23) 식년문과에 급제, 돈령부 주부 등을 거쳐 1454년(단종 2) 집현전 직제학이 되었고, 1455년(세조 1)에 인수부윤으로서 사은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456(세조 2) 단종 복위 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신문을 받았으나 성삼문의 변호로 화를 면하고 1458년 호조 참의가 되었다. 시, 서, 화에 모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일컬어졌으며, 정인지 등과 함께 세종이 지은 정음 28자에 대한 해석을 상세하게 덧붙였고, "용비어천가"의 주석을 붙일 때도 참여하였다.
세종 때 금인 소신지보와 세조 때 을해자의 글씨를 쓰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최초의 원예서로 알려진 ‘양화소록(養花小錄)’은 강희안이 직접 화초를 키우면서 알게된 화초의 특성과 재배법등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노송,매화,국화,석류화,치자화,귤나무 등 모두 17종의 꽃과 나무,그리고 이를 기를때 주의해야 할 일곱가지 항목으로 구성됐다.
책이 국내 최고(最古)의 원예서라는 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꽃과 나무의 품격과 상징성을 서술하면서 자연의 이치와 천하를 다스리는 뜻을 함께 담아냈다는 점이다. 지각도 운동능력도 없는 풀 한포기의 미물이라도 그 풀의 본성을 잘 살피고 그 방법대로 키운다면 자연스레 꽃이 피어난다는 책은 단순한 원예서를 지나 수신과 치국의 책이다.
조선초기의 작품들은 사실 현존하는 것이 드물다. 임진란을 겪으면서 많은 문화유산이 소실 또는 일본으로 유출되었기에 국내에서 발굴되는 것이 매우 적은 편이다. 강 희안의 작품들도 현재 세상에 빛을 본 것은 아래의 작품들로 알려져 있다. 개인 소장이나 그 외의 다른 곳에 그의 작품이 살아 있다면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작품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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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종이에 수묵 23.4*15.7cm 국립박물관 소장 |
고사도교도(高士渡橋圖) 비단에 담채 .22.2cm *21.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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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조도(獨釣圖) 조선 15세기. 86/ 132Cm. 도쿄국립박물관 |
산수도(山水圖) 조선 15세기. 52.5/ 96.5Cm. 도쿄국립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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