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일본)

열도를 뒤덮은 한국의 이름 <하>

지식창고지기 2009. 6. 10. 15:40

열도를 뒤덮은 한국의 이름 <하>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 <8> 한일동족론 ② 2008-09-17



그 후 1948년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 교수의 이른바 『기마민족국가(騎馬民族國家)』이론이 등장합니다. 에가미 나미오 교수는 4세기 초에 기마민족인 고구려 또는 부여계의 일파가 한반도로 남하하여 현재의 충청 전라지역과 가야지방을 정복하는 동시에 일본에도 침입하여 야마토[현재의 나라(奈郞)] 지역을 중심으로 통합하여 4세기말 또는 5세기 초에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남부일대에서는 진왕(辰王)이라는 세력으로 존재하다가 4세기 초에 일본으로 이동하여 5세기까지 현재의 오사카 일대로의 이동을 마치고 통일 왕조를 수립한 것이 아마토 정권이라는 것입니다. 즉 천황가는 조선으로부터 온 이주자들이고 4세기 초에 한반도에 있던 기마민족이 일본 규슈 지방을 먼저 침입해 이미 그 이전부터 정착하여 살아온 수많은 한반도 사람들을 조직화하여 일본 열도를 정벌해갔다는 것이죠.

에가미 나미오 교수의 이론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4세기 초에 기마민족이 한반도로부터 일본의 북규슈(北九州) 지방으로 들어와 야마토 왕국을 세웠는데 이것이 제10대 천황 스진(崇神) 때라는 것입니다. 에가미 교수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제1대∼9대 천황을 가공인물로 보았고, '신공황후 신라정벌설'이나 '임나일본부설'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에가미 교수는 제15대 오우진(應神) 천황의 시기에 동부지역을 정벌하여 기나이(畿內) 지방으로 이동하였다는 것이죠. 결국 한반도의 가야 → 북규슈 → 기나이 지방으로 연결되는 마구(馬具) 출토품들이 같은 유형이라는 것이 증거로 지적되었습니다.

나아가 에가미 교수는 '왜한연합왕국설(倭韓聯合王國說)'을 제기합니다. 그 요지는 한반도 진왕(辰王)의 후예라는 의식을 가진 스진 천황이 4세기 초 북규슈를 거점으로 하여 한반도 가야(加羅) 지방과 북규슈를 아우르는 왜한연합왕국을 설립했으며 이 세력이 점차 강력해져 4세기 말∼5세기 초 한반도에서 고구려의 남하를 막는 주도 세력이 됐는데 그 증거가 영락대제비(광개토대왕비)에 나타나는 왜 기사라고 합니다. 에가미 교수의 분석 가운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왜한 연합왕국의 실체에 관한 것인데 이 왜한연합왕국의 실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죠. 가야 지역과 규슈 지역에 걸친 국체가 당시의 사서에는 어떤 기록도 나타나지 않죠. 실상은 범부여연합국가(USB : United States of Buyou)인데 이것을 일본을 중심으로 파악한 것이죠. 이 부분은 앞으로 상세히 다룰 것입니다.

시쿠마 에이(佐久間英) 박사는 현재 일본의 동부지역에서만 백제의 고유혈통을 순수하게 간직해오는 사람들이 4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동부지역에는 백제인 왕진이(王辰爾)의 직계후손인 백제왕경복(百濟王敬福 : 698~766)에 의해 번창하였고 이들의 직계후손은 오늘날 미마쓰(三松) 가문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사카부의 히라카타市에는 백제왕 신사가 있는데 이 신사에는 백제대왕과 우두천왕(牛頭天王)을 나란히 모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두천왕은 바로 스사노오(素盞吾尊)로 추정됩니다. 시쿠마에이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20대 성씨 가운데 태반이 한국계 성씨라고 합니다.(9)

세키네마타카(關根眞隆) 교수는 "나라 시대 사람들은 한복을 입고 숟가락을 사용하고"(10) 또 나라시대 사람들은 김치를 먹었다고 합니다. 나아가 세키네마타카 교수는 "한국 국명을 본 딴 지명이 일본열도를 뒤덮고 있다." (11)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일본 열도를 한국 국명을 본 딴 지명이 뒤덮고 있다"니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 점을 구체적으로 볼까요? 아래의 그림은 한국과 관련된 지명이 있는 곳을 표시한 것입니다.

주로 고구려의 경우에는 고려(高麗), 거마(巨麻), 박(狛), 호마(胡麻), 거마(巨摩), 구(駒) 등의 한자를 사용한 말을 사용하고 있고, 신라의 경우에는 신라(新羅 : 시라기), 지목(志木 : 시라기), 신좌(新坐 : 시라기), 백목(白木 : 시라기), 지락(志樂 : 시라쿠), 설락(設樂 : 시라쿠), 백자(白子 : 시라코), 사락(四樂 : 시라코), 백성(百城 : 시라기), 백귀(白鬼 : 시라기), 백빈(白濱 : 시라하마), 진랑(眞良 : 신라), 신라(信羅 : 신라), 진랑(新良 : 신라)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경우에는 '구다라'라고 읽으면서 이에 해당하는 한자말로는 백제(百濟 : 구다라), 구태랑(久太良 : 구다라), 구다랑(久多良 : 구다라) 등으로 사용하였습니다.(12)

그러나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은 가야(伽倻)와 관련된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야와 관련된 말은 일본 전역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제의 경우는 주로 고대 일본 야마토의 중심지인 기나이(畿內) 지방에 주로 나타나고 있는 반면에 가야와 관련된 말은 홋가이도(北海島)를 제외한 일본 전역에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에 가장 일찍부터 정착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결국은 가야인들이라는 말이지요. 그 이후 열도는 부여인들에 의해 야마토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말이됩니다. 이것을 『구당서』에서는 "일본이 왜국을 병합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상세히 밝혀나갈 것입니다.

가야와 관련된 말은 가아(可也), 가열(可悅), 하양(河陽), 문옥(蚊屋), 녹곡(鹿谷), 하사(賀舍), 하야(賀野), 모(茅), 하야(賀夜), 하양(賀陽), 가야(加夜), 고양(高陽), 반(返) 등으로 쓰고 '가야'로 읽었습니다.

[그림 ③]과 [표 ①]을 보시면, 이 같은 사정을 소상하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가야와 관련된 많은 지명들은 쓰시마섬(對馬島)을 비롯하여, 규슈(九州) 일대, 기나이(畿內) 지방, 쥬고쿠(中國) 지방, 간토(關東) 지방 등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우리가 한일동족론(韓日同族論)이라고 할 때 단지 그것이 관념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가 있죠. 그러면 이제부터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한일동족론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필자 주
(9) 佐久間英『日本人の姓』(1972)
(10) 關根眞隆『奈良朝服飾の硏究』(1973)
(11) 關根眞隆『奈良朝食生活の硏究』(1969)
(12) 최재석 『백제의 대화왜와 일본화 과정』(일지사 : 1990) 125~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