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일본)

부여의 새벽

지식창고지기 2009. 6. 18. 10:42

부여의 새벽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 <10> 태양의 아들, 부여 ①

2008-09-22

제 3 장. 태양의 아들, 부여

들어가는 말

『삼국지』위서「동이전」한(韓)조에는 마한에는 각각 장수가 있는데 그 중에 큰 자들은 스스로 신지(臣智)라고 불렀으며, 그 다음은 읍차(邑借)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신지의 지위에 있는 자에게는 간혹 '우호신운견지보안사축지분신리아부례구사진지렴(優呼臣雲遣支報安邪踧支濆臣離兒不例拘邪秦支廉)'라는 칭호를 더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에 나타난 '불례구야(不例拘邪)'에 대하여 '프리기아'의 음을 따서 표기한 것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프리기아하면 잘 몰라도 아마 '미다스왕'은 잘 아실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손으로 만지기만 하면 금으로 변하게하는 왕이죠? 그런데 이 미다스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이를 감추기 위해 거대한 고깔왕관을 만들어 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깔모자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의 유적에서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여·고구려·신라에서 고려까지 계승되어왔다는 것이죠. 즉 한국인들의 선조가 프리기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장한 사람이 비제도권 사학자 정형진 선생입니다.

정형진 선생에 따르면, 부드러운 선의 고깔모자는 우리 종족의 대표적인 복식이며 일본의 고대신화가 그리스신화와 비슷하다거나 미다스왕의 당나귀 귀 이야기가 『삼국유사』경문왕 이야기에 그대로 실려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형진 선생이 『고깔모자를 쓴 단군(2003)』을 통해 지적하는 것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부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부여의 연원을 프리기아로 보고 있습니다. 프리기아(Φρυγία)는 고대국가로 아나톨리아의 중서부에 있었던 왕국으로 초기에는 브루게스(브리게스)라는 이름으로 마케도니아 지방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후 트로이 연맹으로 아나톨리아로 이동하였고 다시 후에는 철의 제국으로 유명한 히타이트 소속이었으며, 현재 터키의 앙카라가 있는 할리스 강 유역에 있었으며, BC 8세기 고르디움을 수도로 부상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이 나라는 여러 세력들 특히 키메르의 침입 등으로 수난을 당하면서 이리저리 이동합니다. 그러나 프리기아의 말은 거의 AD 6세기까지 남아있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마치 부여와 같이 말이죠.

프리기아를 부여의 연원으로 보는 문제는 현재로서는 고증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증명할 만한 직접적인 사료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연구의 진행과정을 좀더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불례구야(不例拘邪)'가 기록된 『삼국지』에는 부여(夫餘)조가 따로 있기 때문에 이 인용에는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부여의 새벽 : 발, 박, 백에서 부여까지

여명기 쥬신의 역사에서 가장 주요한 나라는 고조선과 부여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부여는 고조선보다 더욱 뚜렷한 실체를 가진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부여는 그 동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여는 일반적으로 BC 5세기부터 AD 5세기 경까지 북만주 일대 - 한반도 남부 - 일본 열도 등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부여족 공동체를 구성한 나라로 쥬신의 역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국가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거의 1천여년을 존재하면서 망하면 다시 일어서고 그러면서도 강한 국력도 가지지 못한 채 근근히 이어갑니다.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부여의 가장 큰 적은 같은 부여계의 일파인 고구려였습니다. 부여는 고구려를 막기 위해 한족(漢族)과 연합하였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철저히 파괴된 것입니다. 저는 『대쥬신을 찾아서』를 통하여 부여에 대해 상세히 해설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리고 만주 지역의 부여 그 자체는 많이 연구되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다만 그 부여가 반도와 열도에 끝없이 살아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요. 이번 글에서는 『대쥬신을 찾아서』에서 일부 미진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해설해드릴 예정입니다.

부여의 비극적인 역사는 어쩌면 오늘날 쥬신의 역사의 축소판일지도 모릅니다. 고구려의 천년의 적인 부여는 346년 전연(前燕)의 침입으로 사실상 와해되었고 410년 고구려에 조공을 하지 않자 영락대제(광개토대왕)는 부여를 대대적으로 정벌합니다. 결국 이름만 남아있던 부여는 494년 고구려에 의해 패망합니다. 6세기 이후 더 이상 공식적으로 부여(원부여)는 존재하지 않지요. 그러나 만주에서 부여가 사라지자 다시 반도에서는 부여(남부여)가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후에 충분히 해설해드립니다.

여명기의 부여에 대해서 이번에는 다른 각도에서 알아봅시다. 부여는 『사기(史記)』에는 부여(夫餘)로 나타나지만, 『산해경』에서는 불여(不與), 『일주서(逸週書)』에서는 부루(符婁), 『논어주소(論語注疏)』에서는 부유(鳧臾)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들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 말들이 무엇인가 공통된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불(Fire)입니다. 불은 태양(Sun)의 또 다른 모습이므로 태양 또는 하늘의 자손[천손족(天孫族)]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불은 빛(light)이라는 말이나 벌(field, plain)이라는 말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의 지리지에는 땅이름의 바뀐 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령 현재의 대구(大邱 : Daegu)를 달구벌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달구불[달구화(達句火)]에서 달구벌(達句伐), 밀양은 밀불[추화(推火)]에서 밀벌(密伐)로 이 곳이 나중에 밀양(密陽)이 된 것이죠. 조선시대의 『석보상절(釋譜詳節) : 9-37)』에는 '블'로 되어있으니 위의 말들도 과거에는 '블', '브르' 에 가까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블', '불(fire)'에서 붉다(red)라는 말이 파생된 것으로 봐서 붉다는 말이 태양과 직결되어 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사료상에 나타나는 동호의 오환(오랑)을 표기한 오롼산(오랑캐의 산)이나 부르항산 등은 모두 태양에 붉게 빛나는 산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태양, 쇠, 붉은 산, 해를 품은 산 또는 태양이 밝게 빛나는 산(아사달)의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사달은 배달 즉  또는 밝(태양 또는 밝게 빛나는) + 달(산)으로도 표현이 가능한 말입니다. 참고로 현재의 몽골의 수도인 울란(올란) 바타르도 '붉은 사나이(영웅)'이라는 의미로 이 붉다는 말이 수도의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사회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 깊은 의미는 오히려 태양과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한국인을 의미하는 예맥(濊貊[쉬모 또는 휘모 : Hemo])이라는 말도 예(濊)는 한자로 쓰면 욕설이지만 그 발음이 의미하는 것은 '쇠' 즉 태양 또는 철(鐵)이며, 맥(貊)이라는 말은 (맑) 또는 (밝)으로 표현되었으며 "태양같이 밝게 빛나는(brightly shining)"이라는 뜻이며 한자로는 발(發), 맥(貊), 박(亳), 백(白), 불(不) 등으로 표현된 말입니다.

'밝다'의 방언 분포를 보면, 고어가 많이 살아있는 영남지역(경남북지역)에서는 [발따] 또는 [박다]로 주로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경남 하동, 합천 등의 지역에서는 [북따]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쥬신에게 있어서 태양(Sun), 밝음(bright), 붉음(red), 철(iron), 동쪽(East) 등은 하나의 범주로 파악되는데 이것을 한족들이 다양하게 묘사하면서 쥬신족의 분류가 혼란하게 된 것입니다.

불과 관련해서 보면, 만주지역의 언어와 한반도 지역, 열도의 언어는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도 스타로스틴 데이터베이스(Starostin DB)를 통해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비교언어 및 어원적인 연구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세계적으로 금융계의 큰손인 소로스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바벨(ToB : Tower of Babel)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스타로스틴 박사의 연구는 http://starling.rinet.ru/에 들어가시면 열람이 가능하고 DB는 http://starling.rinet.ru/cgi-bin/main.cgi?root=config&morpho 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한국말의 '불(fire)', 새벽을 의미하는 고대어 '배', '태우다(burn)', 뿌리(root :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국어의 '뿌리'도 불과 관련된 말이라고 합니다), 빨갛다, 볕 또는 빛(light), 별(star), 벼리(그물의 중심) 등은 대부분 원알타이어(Proto-Altaic)와 일치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넓은 평원(field, plain)을 의미하는 '벌'은 원알타이어인 p`ā̀là [팔라] (의미 : field, level ground), 만주어의 pāla-n[팔란], 일본어의 pàra[파라]̀ 등과 대체로 일치합니다.

이와 같이 여명기의 쥬신의 역사에 있어서 많이 등장하는 말로 조선, 쥬신, 숙신 등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맥(貊), 박(亳), 발(發), 백(白), 불(不) 등의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들은 '불(fire : 火)'을 의미하거나 '밝다(light)', 홍익인간(弘益人間) 등의 의미로 태양(Sun) 또는 하늘의 위대함과 신성함을 표현하는 말이고, 이것이 민족의 이름으로 정착되어간 것입니다. 부여라는 말도 이 말들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에 있어서 조선(朝鮮)이라는 말과도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미 『대쥬신을 찾아서』를 통하여 위의 내용을 상세히 고증하고 정리하였으므로 이 장에서는 보충적이고 부가적인 부분에 대해서 논의할 것입니다.

다시 부여로 돌아갑시다. 부여는 고조선보다도 사료상 기록이 더 많이 나타나는 쥬신의 대표적인 국가입니다. 특기할 만한 것으로 조선(朝鮮)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검토할 만한 정도로 나타난 것이 사마천의 『사기(史記)』인데, 이상한 것은 이 『사기』의 기록에 조선의 연원이나 발전과정에 대한 내용은 없고 바로 이미 하나의 국가로 기록되어 한(漢)나라와의 일전(一戰)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조선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도 없이 바로 한(漢)나라와의 갈등관계가 주로 묘사되어있기 때문에 많은 기록들을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조선 - 동호(東胡), 조선 - 흉노(匈奴) 등의 관계도 모호해진 듯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중심지와 그 역사에 대해서도 수많은 논란을 있어왔습니다. 『사기』는 다른 정사의 기록과는 달리 신뢰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점도 지적해두어야 합니다. 이에 비하여 부여는 『삼국지』에 비교적 소상히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이후의 정사들에 나타난 부여의 기록들은 대체로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 부여를 바탕으로 고구려, 남부여(반도부여), 열도부여가 건국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여만큼 연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나라도 없는 실정입니다. 반도쥬신(한국)의 사학계는 부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도 없는 백제를 연구하는 데 정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신뢰하기는 어려운 (때로는 황당무계한) 책이지만 『산해경(山海經)』에 "백민(白民)의 나라는 용어(龍魚)의 북쪽에 있는데, 사람들의 몸이 희고, 머리카락이 몸을 덮는다. "白民之國 在龍魚北 白身被髮"(『山海經』第7 海外西經)"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백민이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박(亳)이라는 말과는 음이 거의 같고 밝(發)이라는 말과는 뜻이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白)의 고대음이 [박(bak)]이고, 박(亳)의 고대음도 [박(bak)]이라는 점도 郭錫良 『漢字古音手冊』(1986) 24쪽. 이를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발(發)은 [팥(piwat)] 또는 [�(pwat)] 으로 거의 유사한 말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백민을 『춘추좌전』에 나오는 박(亳)이나 관자에 나오는 발(發)과도 같은 민족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해경』은 이 백민(白民)의 나라가 바로 숙신(肅愼)의 남쪽에 있다는 것입니다. "숙신의 나라는 백민의 북쪽에 있는데, 그 곳에는 나무가 있어 웅상(雄常)이라고 한다."(肅愼之國 在白民北 有樹名曰雄常 :『山海經』第7 海外西經) 즉 숙신과 남북으로 연하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의 숙신은 현재의 허난성(河南省) 부근으로 추정되므로 허난성 남부 지역 즉 산동반도 지역을 백민의 나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사기』의 원자료였던 『국어(國語)』에 "공자가 진나라[현재의 허난성(河南省) 카이펑(開封) 부근] 머물러 있을 때 싸리나무 화살이 꽂힌 매 한 마리가 떨어져 죽자, 공자가 '이 화살은 숙신의 것'이라고 했다. 이 기록은 『사기(史記)』(卷47 「孔子世家」)를 포함하여 전한(前漢) 때 유향(劉向)이 지은『설원(說苑)』(卷18 「辨物篇」), 『전한서(前漢書)』(卷27 「五行志」) 등에도 전한다."라고 기록된 말로 보면, 숙신은 현재의 산시(山西)지방이나 허베이(河北)로 추정이 되는데 백민은 그 남부이므로 현재의 산둥이나 양쯔강 유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숙신이 현재의 랴오허(遼河) 강으로 이동했을 경우라면 이 백민의 나라는 현재의 베이징 인근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기』에서는 동방의 이족(夷族)과 함께 북방에는 식신(息愼)을 들고 있는데 『史記』卷1 「五帝本紀」舜., 후한(後漢)의 정현(鄭玄)은 이에 대하여 "식신(息愼)은 숙신(肅愼)이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동북방에 거주하는 오랑캐이다."라고 주석을 달았고, 『일주서(逸周書)』에서는 "직신(稷愼)은 숙신(肅愼)이다." 『逸周書』王會解篇.라고 합니다. 즉 '숙신 = 직신 = 식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남쪽에 연하여 있는 나라가 백민이라는 것입니다. 또 『사기』에는 "북으로 산융, 발, 식신이 있고 동으로는 장이, 조이가 있다. "北山戎發息愼 東長鳥夷" (『史記』卷1 「五帝本紀」)"라고 하고 있어 대체로 발(發)은 산동반도 또는 산동반도 북부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입니다.

여기서 숙신은 조선(朝鮮)의 전음(轉音)으로 '밝은 산', '태양을 품은 산', '태양이 밝게 빛나는 성스러운 산의 사람들',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민족' 등의 의미로 사용된 말입니다. 김운회『대쥬신을 찾아서 1』(해냄 : 2006) 198쪽. 여기서 『춘추좌씨전』에는 "[주나라 경왕(景王)이 말하기를] 우리 주나라는, 하나라 때에는 후직이 계시어 위(魏), 태(駘), 예(芮), 기(岐), 필(畢) 등이 우리의 서쪽 땅이 되었다. 그리고 주나라 무왕께서 은나라를 이긴 뒤로는 포고(蒲姑), 상(商), 엄(奄) 등이 우리의 동쪽 땅이 되었으며, 파(巴), 복(濮), 초(楚), 등(鄧)의 땅은 우리의 남쪽 땅이 되고 숙신(肅愼), 연(燕), 박(亳) 등은 우리의 북쪽 땅이 되었다. 그래서 어찌 우리가 가까운 곳에 책봉할 땅이 있겠는가?" "我自夏以后稷 魏駘芮岐畢 吾西土也 及武王商 蒲姑商奄 吾東土也 巴濮楚鄧 吾南土也. 肅愼燕亳 吾北土也 吾何邇封之有"(『春秋左氏傳』昭公 9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을 보면 주나라 무왕의 시기에 이미 숙신과 연과 박이 주나라의 북쪽에 있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산둥반도에서부터 그 북쪽이 쥬신의 영역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합니다.

『산해경』에 "동북 바다 밖의 큰 황야 가운데, 황하와의 사이에 부우(附禹)의 산이 있다. … 오랑캐가 있어 불여(不與)의 나라라고 하며, 성은 열씨(烈氏)이고 기장을 먹는다. "東北海之外 大荒之中 河水之間 附禹之山 … 有胡不與之國 烈姓黍食"(『山海經』(第17 大荒北經)"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불여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부여라는 점은 일찌감치 지적되어왔습니다. 예를 들면 한치윤 『해동역사(海東歷史)』

추정된 불여의 고대음([piwǝ-yia])이나 郭錫良 앞의 책, 105쪽, 111쪽. 부여의 고대음([piwa-yia] 郭錫良 앞의 책, 108쪽, 111쪽.은 거의 거의 유사하므로 불여나 부여는 쥬신의 고유음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우에 따라서 불여나 부여는 불[火]과 무리(黎)를 합한 말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열(烈 : 래[lie])은 고대음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태양을 의미하는 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부여의 대표적인 성씨가 해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여가 대황지중(大荒之中)에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북만주(또는 만주)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해경』에 "백민의 나라가 있어서, 제준이 제홍을 낳고, 제홍이 백민을 낳았다고 합니다. 백민은 성은 초씨(銷氏)이고, 기장을 먹는다." "有白民之國 帝俊生帝鴻 帝鴻生白民 白民銷姓黍食"(『山海經』卷14 大荒東經) 라는 말도 있어서 어떤 연관성을 추정하게 합니다. 즉 부여와 백민, 박, 발(밝), 숙신 등과의 관계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말이죠. 재미있는 것은 p`iagV[백]이라는 말은 원알타이어로도 태양이나 날[日]을 의미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으로 본다면, 부여는 결국 태양의 상징이기도 한 불(fire)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여라는 말은 태양족 또는 천손족이라는 의미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 말이 조선이라는 말과도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이들은 산둥(山東) 반도 이북에서 북만주 일대에 이르기가지 광대한 영역을 활동무대로 해온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부여'의 어원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역사도 상당한 부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역사의 숨결 > 역사(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는 신화다"   (0) 2009.06.18
부여의 아들, 고구려와 백제   (0) 2009.06.18
한일동족론   (0) 2009.06.10
열도를 뒤덮은 한국의 이름 <하>   (0) 2009.06.10
열도를 뒤덮은 한국의 이름 <상>   (0) 2009.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