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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설화

지식창고지기 2009. 7. 4. 12:43

온달 설화

 

고구려의 성(城)밖에 온달(溫達)이라고 불리우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들창코에 사팔뜨기인 아주 추하게 생긴 사나이었다. 누구든지 한 번 보기만 하면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고는 못견딜 만큼 괴상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추한 외모와는 달리 세상의 물정을 모르고 자라난 착하고 곧은 마음씨의 사나이었다.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해다가는 성 안에 내다 팔고 눈이 먼 늙은 모친을 봉양하고 있었다. 항상 다 떨어진 옷과 떨어진 신발을 끌고 거리를 거침없이 다녔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어느 새 그를 <바보온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쯤 염두에도 두지 않았다. 바보 취급당하는 것이 오히려 속이 편하기도 하였다.

 

그때의 임금님을 평강왕 또는 평원왕이라고 하였는데, 그 평강왕에게는 공주가 한 분이 있었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그 공주는 어릴 때부터 잘 울었다. 그래서 유모를 골탕을 먹이곤 했다. 그래서 왕은 늘 공주에게 다음과 같은 농을 건네시었다.

" 그렇게 언제까지나 울고만 있으면 이제 어른이 되어도 사대부 집의 아내는 될 수 없으니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을 보내줄까 ? "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공주도 곧잘 울었지만 왕의 이런 농담도 그때마다 되풀이되었다. 더구나 마음이 즐거울 때면 왕은 공주를 무릎에 올려앉히고 " 어이, 온달의 부인, 또 우셨나? " 하고 조롱할 때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드디어 <온달의 부인>이 공주님의 별칭이 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서 어느덧 그 울음보 공주도 이팔청춘을 맞이하게 되었다. 왕께서는 신하 중에서 명문가인 상부(上部)의 고씨를 골라서 그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된 노릇인지 고씨에게의 출가를 공주가 완강히 거부하고 나선 것이었다.

" 아니, 네가 애비의 말을 듣지 않을 셈이냐 ? "

평강왕은 너무나 뜻밖의 일이라, 그 유순한 성품에 이렇게까지 구짖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께서는 평소에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필부(匹夫)조차도 거짓말을 꺼려하는 법이옵니다. 그러하온데 만민의 대왕이 되옵신 아바마마께옵서는 어이하여 스스로 하옵신 말씀을 어기시나이까. 딴 곳으로는 시집을 가지 않겠나이까. 제발 소원이오니 온달에게 시집보내주시옵기 바라옵니다. "

평강공주의 말은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장난삼아 한 희롱이 그렇게까지 깊은 뿌리를 박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였다. 여러 신하와 어울려서 갖가지 얘기로써 도리를 설명하고 뜻을 바꾸려 하여도 오달에게 아니라면 죽어도 시집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유순하신 평강왕께서도 드디어 진노하시었다.

" 애비를 따르지 않는 불효녀를 자식으로 생각하진 않겠다. 아무 데나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 내 눈앞에서 하루 빨리 사라져 버려라. "

평강공주는 드디어 궁중에서 쫓겨나 온달의 집을 찾아 나섰다.

온달의 어머니와 온달을 만난 평강공주는 백 년의 가약을 맺고자 한다는 말을 하였으나, 모자는 믿지 않으며 승낙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주는 끝까지 설득을 하게 되고 드디어 모자는 고집이 꺾이어서 혼례식의 시늉만 내고 그날부터 공주는 온달의 처가 되었다.

공주는 곧 황금 팔깍지를 팔아서 논밭과 집을 장만하였다. 그리고 소와 말을 샀다. 또 가재 살림도구까지 아쉬운 것 없이 장만하였다. 어제까지는 바보 천치라고 손가락질받던 굶주림의 가난뱅이 온달도 오늘부터는 여러 종복을 거느린 주인이 되었다.  그날부터 온달은 무예를 익히고, 책을 장만하여 공부도 시작하였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구려에서는 매년 3월 3일, 낙랑의 언덕에서 사냥을 베풀고 천지산천의 신을 떠받드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그 날은 임금님이나 신하 그리고 오부의 군사들이 모두 그에 따랐는데, 백성 중에서도 무예에 뛰어난 자는 그 행사에 끼도록 허락되어 있었다.

어떤 해의 일이었다. 이 행사에 낯선 무사 한 명이 탐스러운 말을 타고 참가하였는데 언제나 선두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잡은 짐승도 제일 많아서 비교될 자가 아무도 없었다. 왕은 그 사나이가 온달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때 후주의 무제가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공격하였는데, 온달은 자원하여서 선봉대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대승리를 얻었다. 싸움이 끝난 후에 논공(論功)을 함에 있어, 한결같이 온달의 공을 으뜸으로 사뢰었기에, 왕은 큰 상을 베풀고, " 너는 과연 내 사위로다. " 하고 그의 손을 잡고 치하했다.

그때부터 왕의 사랑은 한층 온달에게 쏠렸고, 온달의 권세는 나날이 더하여 갔다. 평원왕이 죽고, 그 아들 영양왕이 즉위했을 때, 온달은 신라 땅 아차성에서 적군과 부딪쳐 싸우게 되었다. 한때는 전세가 유리하여 적군을 무찔렀으나, 전쟁이 한참 치열할 동안에 화살에 맞아서 그 큰뜻을 이루지도 못한 채 싸움터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온달의 유해는 곧 도성으로 운반되었다. 그런데 막상 장례를 지내려고 하니 관이 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말하였다.

" 죽고 삶이 이미 결판이 났사오니, 돌아가소서. "

그러자 비로소 관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장례를 지낼 수가 있었다. 온달이 죽자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기었는데 특히 왕의 슬픔은 한층 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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