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調信)의 꿈
이 설화는 전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전설에는 이야기와 관련된 증거물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 작품에서는 세규사와 정토사라는 두 절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조신이 깨달음을 얻고서 세웠다고 하는 정토사는 이 전설이 이 절의 건립 내력을 설명하는 사원 연기설화(寺院 緣起說話)의 증거가 된다. 이 전설과 정토사의 관계처럼 설화가 사람이 만든 어떤 사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구실을 할 경우 그 이야기를 '연기설화'라고 부른다.
이 설화의 구조를 살펴 보자. 이 설화는 환몽 설화의 전형적인 3단계 구성 양식을 취하고 있다. 즉 1) 꿈꾸기 전의 절실한 소망 2) 꿈 속에서의 체험 3) 깨어난 뒤의 각성이라는 액자 형태의 환몽구조를 보여 준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배경 제시(도입부) 2) 문제 제기 3) 소망 달성 4) 고통의 삶 5) 이별 6) 각성 7) 귀의의 순서로 전개되는데, 1) 2)는 꿈꾸기 전의 단계이며 3) 4) 5)는 꿈 속에서의 체험이며, 나머지는 깨어난 뒤의 단계이다.
평소의 어떤 생각 때문에 꿈 속에서 일련의 사건을 체험하고 꿈에서 깨어나 참다운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구조를 가진 설화를 환몽설화라 한다. 다시 말하면 '조신의 꿈'은 이러한 구조를 가진 전설로 뒤에 김만중의 '구운몽'과 이광수의 '꿈'이라는 소설에 영향을 준다. 이 설화를 통해 드러나는 주제는 불교적인 것으로 '인생의 즐거움에 대한 욕망은 한순간의 꿈이요, 고통의 근원이니, 그러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보겠다.
조신은 지금의 강릉 지방에 있는 세규사(世逵寺)의 중이었다. 그는 명주 날리군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좋아했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낙산대비(洛山大悲)라는 관음보살 부처님에게 그 소원을 하소연했다.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다. 조신은 절망 끝에, 어느 날 대비(大悲)의 앞에 가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원망하며 슬피 울다가 너무 지쳐서 얼풋 잠이 들었다.
홀연히 꿈에도 잊지 못하던 김소저가 나타나서 웃으며
"저는 마음 속으로 그대를 몹시 사랑했으나 부모님의 영으로 부득이 출가했다가 이제는 함께 살려고 왔습니다. 나를 용납하여 주시겠습니까? "
하였다.
조신은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서 40년을 함께 살았다. 그러나, 너무도 가난하여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십여 년을 문전 걸식을 하다가 15세 되는 큰 아들은 굶어서 죽었고, 조신과 그 아내는 늙고 병들어 누워 있고 열 살짜리 딸이 구걸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쓰러졌다. 두 부부는 목이 메었다.
이 때에 그 아내는 의연히 단좌하여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우리는 나이도 젊었고 얼굴도 예뻤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두터워서 헝겊 하나로, 또는 밥 한 그릇으로 나누어 먹으면서 살아 왔으나, 이제 50년을 살다 보니 몸은 늙어서 병들었고 아이들은 굶고 추워서 죽기도 하고, 마냥 구걸을 하려고 해도 집집이 문을 굳게 닫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어느 여가에 부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홍안의 미소(紅顔微笑)는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의 약속(約束芝蘭- 친구 사이의 약속)은 광풍 앞에 버들꽃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니 헤어지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도 다 운수가 아니겠습니까 ?"
이 말을 들은 조신도 옳게 여기고, 부부는 두 아이를 하나씩 맡아가지고 헤어지기로 했다. 서로 손을 잡고 이별하려고 할 때에 잠이 깨었다. 한바탕 꿈이었다.
대비 앞의 등불은 여전히 깜박거리고 밤은 고요히 깊어만 가고 있었다. 이튿날 깨어보니 머리가 하얗게 세어있었다. 조신은 열다섯 살 아들이 굶어 죽어간 언덕에 찾아가서 그 시체를 파묻은 곳을 파 보았다. 거기서 돌미륵이 나왔다고 한다. 조신은 인간의 일생이 물거품같이 허무함을 느끼고 다시는 인세(人世)에 뜻을 두지 않고 불도(佛道)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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