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낳으면 마시는 술 뉘얼훙(女兒紅)과 루쉰(魯迅)
18年 뉘얼훙
산모가 쭤웨즈(坐月子, 산후 몸조리) 한 달을 꽉 채운 날에는 만웨 기념일을 갖는 것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중국 특유의 풍습이라 하겠다. 이 날을 기념해 어른들은 술을 마시는데 이 술을 가리켜 '만웨쥬(滿月酒)'라고 한다. 만웨술은 뉘얼훙(女兒紅, 여아홍)과 연관을 맺고 있는데, 뉘얼훙은 저쟝 사오싱(浙江 紹興 절강 소흥) 지방에서 생산된 중국의 명주인 사오싱쥬(紹興酒, 소흥주)의 또 다른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오싱쥬우는 송나라 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여 청나라 때는 최전성 시기를 맞으면서 지금 중국의 8대 명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사오싱지우의 하나인 뉘얼훙은 주예징쥬(竹葉靑酒, 죽엽청주)와 더불어 무협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술이어서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하다.
흥미로운 유래를 간직하고 있는 뉘얼훙에 대해 중국인 친구가 이야기를 들려줬다.
저쟝 사오싱 지방의 어느 부잣집에서 아내가 임신을 했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만웨날을 기념하는 날에 손님들을 대접하려는 뜻에서 찹쌀로 술을 빚었다. 집안사람들과 온 동네 사람들도 함께 그 술을 기다렸는데, 출산일에는 남편의 기대와 달리 딸이 태어났다. 화가 난 남편은 그 술을 마당 한 구석에 묻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18년이 지난 어느 날, 18살 난 딸이 시집가는 데 문득 예전에 묻었던 술이 생각나서 꺼내어 마셔보니 아주 진귀한 술이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딸을 낳았기 때문에 묻어 두었던 이 술을 뉘얼홍(女兒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사오싱지방에서는 으레 딸을 낳으면 술을 빚어 땅에 묻어두었다가 시집가는 날 꺼내어 마시는 풍습이 생겼다는 것이다.
뉘얼훙 유래를 한족에게서 함께 듣던 한 조선족이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18년 뉘얼훙?”
딸을 낳아 화가 난 남편이 하던 말에서 한국식 발음의 속어인 '18年‘이 연상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영문을 알리 없는 중국인은 이야기가 재미있어 웃는 줄 알고 더 신나게 말을 이어나갔다.
뉘얼홍은 딸이 장성하여 시집 갈 때 꺼내마시는 술이지만, 만일 여자 아이가 무사하지 못해 도중에 죽게 되면 술은 땅 속에 영원히 묻힌다고 했다. 뉘얼훙에 상대되는 술로 아들이 태어날 때 술을 묻었다가 장성하여 과거에 급제할 때 꺼내 마신다는 장원홍(壯元紅)도 있다.
만웨술과 뉘얼훙(女兒紅)의 연관 속에는 중국인의 뿌리 깊은 남존여비의 풍습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는 남존여비의 관습에서 유래된 뉘얼훙의 의미를 여자를 귀하게 여기는 관습이라고 보려는 노력도 시도되고 있다. 여자아이를 낳으면 혼례를 대비해 술을 빚어 대들보 밑에 묻어 두었다가 축하객들과 함께 마시는 뉘얼훙은 여자를 귀하게 여기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들이 그런 것이다. 해석의 변화는 그만큼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말이 나온 김에 술 얘기를 좀 더 해보자면, 사오싱쥬는 다른 중국술에 비해 알코올이 낮아 약한 술을 선호하는 애주가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 술은 여름에는 얼음을 넣어 차게 마시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데워 마시면 술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고 한다. 사오싱쥬 중에서 상품으로는 술이 담긴 병에 꽃이 조각되어 있는 화띠아오쥬(花雕酒, 화조주)를 꼽는다. 포장이 내용을 압도한다는 측면에서 실용주의 중심의 중국마저 자본주의 경제가 지향하는 포장의 미학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루쉰(魯迅)과 뉘얼훙(女兒紅)
뉘얼훙은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 '루쉰'의 고향인 사오싱쥬(紹興酒)의 대표술이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아큐정전'의 작가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루쉰과 연결시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루쉰의 문학작품은 특히 중국인의 정서와 사상을 대변할 만큼 널리 사랑받고 있다. 루쉰은 생전에 '영국'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던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저항정신을 사랑하고 예찬한 인물이다. 중국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애국적 삶을 살다간 루쉰은 최근 ‘중국의 네티즌이 선정한 20세기 중국사회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인물’ 1위에 꼽힐 만큼 호소력을 지닌 작가이다.
중국인에게 있어 루쉰이 유명한 만큼 공을기 또한 유명하다. 공을기는 루쉰의 소설「공을기(孔乙己)」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한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는 말을 소설 속에서 남겼다. 공을기는 많이 배운 식자층이지만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 소흥 시내의 함형주점이라는 술집에서 기식하며 살아간다. 돈이 없으면 술집 허드렛일도 해주면서 술로 세월을 허송하는데, 시대에 뒤떨어지고 능력 없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런 소설의 구성을 통해 루쉰의 소설 「공을기(孔乙己)」와「풍파(風波)」에 등장하는 술집 ‘함형주점(咸亨酒店)’이 사오싱(紹興)을 대표하는 술집 혹은 사오싱쥬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술집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소흥에서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라지만, 북경에서도 '공을기'식당과 소흥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함형주점'이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그 바람은 한국까지 불어와 지난 2004년에는 서울 압구정동에 ‘공을기’라는 이름을 붙인 전통 중국음심점이 개업되기도 했다. 공을기는 술독에 빠져 사는 인물이었으니 술집 이름으로는 제격이었던 모양이다.
함형주점과 공을기 식당에서 사오싱쥬 뉘얼훙을 대표술로 내놓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루쉰의 소설 「공을기」나「풍파」를 읽어보면 ‘뉘얼훙’이란 술이름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루쉰의 고향인 절강성 소흥에서 유래된 명주 뤼얼훙과, 중국의 정신을 대표하는 루쉰이 결합하면서 그 가치가 점점 상승되고 있다.
만웨술과 뉘얼훙, 그리고 뉘얼훙과 공을기, 뉘얼훙과 함형주점, 뉘얼훙과 루쉰을 엮어내는 중국인들의 술사랑 경지는 가히 예술적이다. 특히 남존여비에서 파생된 ‘뉘얼훙’을 명주로 포장하는 힘도 웃음을 주거니와, 그 술을 위대한 작가 루쉰의 문학작품과 연계시켜 차원을 높인 점은 술의 고품격을 지향하는 중국인의 의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하겠다.
(記 정연수)
'Blog·Cafe > My Love 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미있는 중국 문화(文化) 28가지 (0) | 2009.07.13 |
---|---|
중국의 선물 문화는 어떨까? (0) | 2009.07.13 |
중국의 "홍빠오(붉은봉투)문화" (0) | 2009.07.12 |
양귀비와 지스팟 (0) | 2009.07.07 |
중국조선족집거구 형성과 동북의 개발 (0) | 2009.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