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성장은 단지 환경 에너지 차원의 신사업 기회를 넘어서 모든 기업의 중단기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가치 제공의 대상과 수익원을 분리시킴으로써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한 축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녹색 성장(Green Growth)이 확고한 글로벌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녹색 성장은 ‘온실 가스와 환경 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정의되는데, 구체적으로는 고유가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기술과 청정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여 수익을 발생시키는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주식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그린 카, LED, 풍력, 원자력(핵융합), 연료전지, 바이오연료, 지열, 전력 IT, 탄소시장 관련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녹색 성장은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 수많은 신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녹색 성장은 소위 ‘굴뚝 기업’으로 불리는 전통 기업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녹색 성장이 전통 기업에게 커다란 위협일 것이라 예상한다. 왜냐하면 환경을 훼손하는데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 기업들이 녹색 성장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환경 훼손에 따른 비용까지도 추가로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기업들은 할당받은 탄소 배출량을 넘기면 그만큼 탄소 배출권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조건과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수익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녹색 성장으로 인한 수익성 압박(?) 속에서 의외의 움직임을 보이는 전통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의 피해자일 것 같은 알미늄 제조업체인 앨코어(Alcoa),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Caterpillar), 석유 가스 회사인 듀크 에너지(Duke Energy)나 쉘 오일(Shell Oil) 등 포춘 500 내 굴뚝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상한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탄소와 무관할 것 같은 인터넷 혁신 기업인 구글(Google)도 실리콘 밸리 본사에서 1.6MW 급 솔라 어레이(Solar Array)를 점등하면서 “미래 탄소 규제를 통해 곧 가시화될 탄소의 이론적인 잠재 비용(shadow price)이 데이터 센터의 부지 선정에서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 반대를 외치며 피켓 시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거래제를 요구하고 나선 속내는 무엇일까?
녹색 성장을 서두르는 전통 기업들의 속내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단지 과거로부터 쭉 이어져온 환경 규제나 에너지 절감의 연장선상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환경 보호 이야기’로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만 해당된 기회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녹색 성장은 단지 환경 에너지 차원의 신사업 기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자사의 경쟁력을 중단기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녹색 성장은 ▲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의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 확보 ▲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그리고 ▲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굴뚝 기업들까지도 당장 손해를 보면서 녹색 성장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Cost Leadership) 확보
탄소 배출량 거래제는 대다수 기업들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효과적 대응 여부에 따라 오히려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업은 탄소 발생에 따른 추가 비용을 없애는 동시에 확보한 여분의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동일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경우, “누가 탄소 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느냐?”가 그 기업의 원가 리더십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경쟁의 성패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만 있다면 자사의 원가 리더십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이런 녹색 성장을 통한 원가 리더십 강화 움직임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에는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주겠다는 전자 기업이 나타나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수십만 원이 넘는 냉장고를 어떻게 공짜로 줄 수 있을까? 제조 원가가 ‘0’이란 뜻일까? 이 사업의 비밀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 개발 체제) 수익 모델에 숨어있다. CDM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탄소 배출권 형태의 보상을 받아 수익을 보전하는 사업 형태다. 유럽의 백색가전 기업인 보쉬-지멘스(Bosche-Siemens)는 브라질의 전력회사와 제휴해 빈민들에게 최신 고효율 냉장고를 공짜로 주기로 했다. 대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 냉장고를 수거했다. 이를 통해 감소된 냉장고의 전기 사용량과 구형 냉장고의 HFC(수소불화탄소) 냉매 처리분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수익을 확보했던 것이다. ‘판매가격 제로!’ 이보다 더 강력한 원가 리더십이 있을까.
또한 잉여 전력을 판매하여 생산 원가를 더욱 낮출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바람, 지열 등 대부분의 신재생 에너지는 누구나 스스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양 전지를 생각해보자. 태양 전지를 활용하면 아직 에너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전 세계의 오지에서조차 모든 기업이 스스로 전력 생산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자사 용량을 넘어 전력을 생산한다면 이 잉여 전력을 타 기업에 팔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신재생 에너지의 경제성이 화석 에너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화석 에너지가 점차 고갈되기 시작한다면 화석 에너지의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의 가격은 기술 개발과 대량 생산으로 인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태양 전지의 생산 가격보다 전기 요금이 더 비싼 경우도 있어 잉여 전력 판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또한 선진국에서도 잉여전력 판매가 시도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09년 5월 ‘녹색 경제와 사회 변혁’ 일본판 뉴딜 정책에서, 가정이나 기업에서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해 사용하고 남은 전력을 전력회사가 현재 가격의 2배인 1kW당 약 50엔(약 750원)에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구조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는 기업은 전력 회사에 발전 단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하여 추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녹색 성장을 잘 이용하면 자사가 에너지 소비의 주체인 동시에 생산의 주체로서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고, 추가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불문하고 경쟁자 간의 차별화 요소가 사라지는 이 때, 이와 같은 기업의 녹색 대응은 자사의 원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름 있는 제조 기업들이 자사의 탄소 배출량 저감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탄소의 획기적 저감은 단지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의 도입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하고, 기존 공정의 개선, 친환경적인 제품 및 소재의 개발, 친환경 공정 개발 등 다양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탄소 저감 기술과 프로세스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업은 차별화된 자사의 노하우와 기술을 블랙박스화시켜 자사 경쟁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상품화시켜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 자동차는 신일본석유와 함께 2006년 기존 디젤유와 같은 성능의 바이오 디젤유를 식용유나 폐유에서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스미모토 화학은 후지석유와 공동으로 배열(排熱)을 교환하는 시스템(핀치 기술, Pinch Technology)을 구축하여 원유 1만㎘분 에너지를 절감했다. 파나소닉은 ‘에너지 절약 비율(해당 연도에 삭감한 에너지 소비량(CO2 환산 수치)/전년도의 에너지소비량(CO2 환산 수치)×100, %)’을 만들어, 제품 조립을 담당하는 공장에서는 3.5% 감축을,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부품 사업 공장에서는 7%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고, 일본 공장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에서도 에너지 효율 개선 관련 지도와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베이징의 파나소닉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의 경우 2004년도에 CO2 3만 톤 이상을 절감하기도 했다. 향후 이 기업들이 이 기술과 노하우를 상품화시킨다면, 이들은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LG상사도 녹색 성장을 기회로 이용하여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했다. 무역이나 상업 활동을 주로 하는 기업이 녹색 성장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LG상사는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육불화황(SF6; 반도체와 LCD 생산 공정에서 절연체로 사용되는 기체로서 CO2보다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2만 배가량 높다고 평가되어 유엔이 6대 온실가스 중 하나로 지정)을 섭씨 1300도 고온으로 태워 없애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UN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얻었다. 관계자들은 LG상사가 향후 유엔의 추가 실사를 거친 뒤 연간 55만~98만 톤의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탄소 배출에 관한 기술 시장에 국내 독자 기술로 진입한 최초 사례로서, 업계에서는 탄소배출권 매각과 기술 자문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 수익이 최소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
최근 기업의 녹색 품질 역량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녹색 품질 인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제 표준화 기구(ISO)는 환경 성과를 중요시하는 기업을 나타내는 ISO 26000을 내년 초쯤 공표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 EU, 일본 등 주요 25개국도 2009년 3월 ISO 50001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절약 인증을 신설하여 공장이나 상업 빌딩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표준화된 체계를 정하겠다고 합의했다. 국내도 제품별로 생산 전 과정의 탄소 발생량을 라벨로 부착하는 ‘탄소성적표지 제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비록 기업이 이와 같은 품질 인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은 이 인증으로 그 기업의 품질 역량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제품이라면 기업은 이 인증을 이용하여 소비자에게 자사의 녹색 품질 역량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들 역시 친환경 소비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녹색 품질 역량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3의 차별화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녹색 성장으로 인한 경영 패러다임 변화
이상에서 녹색 성장이 환경과 에너지 관련 신성장 사업이라는 차원을 넘어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들의 중단기적 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녹색 성장이 가져올 변화는 이러한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녹색 성장이 몰고 올 진정한 혁명은 기업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에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농업 혁명을 제1의 물결, 산업 혁명을 제2의 물결, 지식 정보 혁명을 제3의 물결로 제시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 낙관론자들은 신재생 에너지가 기존의 권력 이동에 견줄만한 ‘제4의 물결’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신재생 에너지는 기존 화석 에너지와는 달리 ‘자원의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역, 채굴 노하우, 이동 규모, 채굴 및 정제 노하우 등 수많은 제약 조건이 수반되기 때문에, 노하우와 대규모 자본을 가지지 못한 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존 에너지 업체들은 이 특성을 이용하여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대규모 수익을 창출했다. 수십 년간 포천 500 기업 들 중 타 업종 기업들은 크나큰 부침이 있었으나, 에너지 기업들만큼은 굳건한 지위를 유지했다는 것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이 기업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자원의 통제권을 내어준 상태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는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이 스스로 에너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누가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는가?’보다는 ‘누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가 게임의 룰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이기는 기업이 미래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녹색 성장으로 촉발될 수 있는 제4의 물결이다. 특히 태양 에너지 관련 업체들의 기대는 크다. 에너지 이노베이션스(Energy Innovations) 사장인 앤드류 비비(Andrew Beebe)는 “태양 에너지가 있는 한 기득권 세력인 기존의 기업들은 자원을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의 이동이다.”라고 말했다. 산업 혁명과 지식 혁명 이후 수많은 기득권 기업이 화석 연료든 지식이든 그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면서 대규모 수익을 창출하고 시장을 지배했지만, 신재생 에너지는 무한하고 공공재 특성을 가지고 있어 영원할 것 같은 ‘독점=수익’이라는 전통적인 성공 방정식을 깰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반도체와 인터넷으로 이미 부를 이룩한 투자자들이 ‘녹색 러시’를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녹색 혁명이 본격화 되면 기업은 다음과 같은 사업 환경 및 운영 방식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이-테크 못지 않게 로-테크와 상용 기술의 최적화가 중요
녹색 성장이라면 하이-테크 산업처럼 보인다.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절감, 환경 친화적 소재 등 모두 현재 없는 기술만 적용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첨단 기술이 녹색 성장을 이끌 것이지만, 당분간은 로-테크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의 최적 조합을 찾아 적용하는 솔루션 역량을 가진 기업이 녹색 성장 시대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그린 공장을 생각해보자.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는 태양 전지 설치, 지열 발전, 에너지 효율적인 건축 소재의 개발 등 최첨단의 신기술을 개발하여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 상용화된 기술만 잘 적용해도 현재 에너지 소비량의 20-30%는 충분히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건물 안과 밖의 공기를 교환할 때 발생하는 열 손실을 막거나, 열 누수를 막는 단열 유리창을 설치하거나,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사용된 자원을 재활용하거나, 폐기되는 제품에서 필요한 재료를 다시 추출하는 등의 기존 기술들만 잘 적용해도 당분간 녹색 성장 시대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기업 내 고탄소 기능의 분사로 경쟁력 확보
기업 내 가치 사슬은 간단하게 연구개발-물류-생산-마케팅-유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이 물류, 생산, 그리고 유통이다. 따라서 기업이 탄소 배출량 거래제 하에서 이 기능들을 계속 보유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만약 어떤 기업이 연구개발이나 마케팅 기능에서 차별화 우위가 있고, 고탄소 기능을 운영하는데 부담을 느낀다면, 고탄소 기능을 분사시키고 나이키와 같이 연구개발과 마케팅과 조직 기능만 유지하는 기업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류나 생산 기업과 같은 고탄소 기업들은 이렇게 분사된 타사의 기능들은 흡수하면서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한 대규모 투자 자원을 조성하고, 그 결과를 다시 대규모로 적용시키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나가 경쟁 우위를 창출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한 클러스터 강화
기업들이 에너지의 생산, 유통, 배급을 공유한다면 각자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공동 인프라를 사용함에 따라 투자비용도 줄일 수 있고, 공동으로 에너지를 구입하는데 따른 교섭력도 확보할 수 있으며, 자가 발전을 해서 값싸게 생산한 파트너의 여분의 에너지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에너지 활용율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클러스터가 강화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LCD 관련 업체가 각자의 라인을 모두 합쳐 하나의 라인으로 만든다면, 에너지 대량 구매에 따른 교섭력을 확보하고, 물류나 패키지에 따른 에너지 사용량도 줄일 수 있으며, 서로 생산한 값싼 전기를 교환함으로써 원가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녹색 비즈니스 모델로의 변화
결국 녹색 성장은 단지 신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쟁 방식의 변화, 기업 구조의 변화,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을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일 수 있다. 이는 제조 기업이든 서비스 기업이든 신재생 에너지를 통한 녹색 성장을 기회 삼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업들은 녹색 변화에 대응할 녹색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업은 ‘가치를 준 대상에게 돈을 받는다’는 전통적 고정 관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탄소 시장을 이용하여 고객에게 주는 가치의 흐름(value stream)과 수익의 흐름(revenue stream)을 분리시키는 창의적인 녹색 발상을 해야 한다(<그림> 참조). 앞서 언급한 보쉬-지멘스(Bosche-Siemens)의 브라질 냉장고 사례도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의 결과이다.
이를 통해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에서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직접적인 비용을 탄소 시장에 전가시키며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사업화하여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때 독창적인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가진 기업은 이를 블랙박스화시킬 것인지, 라이센싱하는 사업을 할 것인지, 컨설팅 서비스를 할 것인지, 위탁 판매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그 업체에 투자를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자사 수익을 극대화 시키고 새로운 사업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네트워크 업체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포털, 소프트웨어, 컨텐츠, 전자상거래 등 수많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기업은 단지 수동적이거나 신사업 중심의 관점으로 녹색 성장에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미래 권력 변화와 수익원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이에 합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녹색 성장이냐, 녹색 쇼크냐는 기업의 준비에 달려있다. <끝>
녹색 성장(Green Growth)이 확고한 글로벌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녹색 성장은 ‘온실 가스와 환경 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정의되는데, 구체적으로는 고유가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기술과 청정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여 수익을 발생시키는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주식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그린 카, LED, 풍력, 원자력(핵융합), 연료전지, 바이오연료, 지열, 전력 IT, 탄소시장 관련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녹색 성장은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 수많은 신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녹색 성장은 소위 ‘굴뚝 기업’으로 불리는 전통 기업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녹색 성장이 전통 기업에게 커다란 위협일 것이라 예상한다. 왜냐하면 환경을 훼손하는데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 기업들이 녹색 성장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환경 훼손에 따른 비용까지도 추가로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기업들은 할당받은 탄소 배출량을 넘기면 그만큼 탄소 배출권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조건과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수익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녹색 성장으로 인한 수익성 압박(?) 속에서 의외의 움직임을 보이는 전통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의 피해자일 것 같은 알미늄 제조업체인 앨코어(Alcoa),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Caterpillar), 석유 가스 회사인 듀크 에너지(Duke Energy)나 쉘 오일(Shell Oil) 등 포춘 500 내 굴뚝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상한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탄소와 무관할 것 같은 인터넷 혁신 기업인 구글(Google)도 실리콘 밸리 본사에서 1.6MW 급 솔라 어레이(Solar Array)를 점등하면서 “미래 탄소 규제를 통해 곧 가시화될 탄소의 이론적인 잠재 비용(shadow price)이 데이터 센터의 부지 선정에서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 반대를 외치며 피켓 시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거래제를 요구하고 나선 속내는 무엇일까?
녹색 성장을 서두르는 전통 기업들의 속내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단지 과거로부터 쭉 이어져온 환경 규제나 에너지 절감의 연장선상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환경 보호 이야기’로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만 해당된 기회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녹색 성장은 단지 환경 에너지 차원의 신사업 기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자사의 경쟁력을 중단기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녹색 성장은 ▲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의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 확보 ▲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그리고 ▲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굴뚝 기업들까지도 당장 손해를 보면서 녹색 성장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Cost Leadership) 확보
탄소 배출량 거래제는 대다수 기업들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효과적 대응 여부에 따라 오히려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업은 탄소 발생에 따른 추가 비용을 없애는 동시에 확보한 여분의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동일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경우, “누가 탄소 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느냐?”가 그 기업의 원가 리더십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경쟁의 성패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만 있다면 자사의 원가 리더십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이런 녹색 성장을 통한 원가 리더십 강화 움직임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에는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주겠다는 전자 기업이 나타나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수십만 원이 넘는 냉장고를 어떻게 공짜로 줄 수 있을까? 제조 원가가 ‘0’이란 뜻일까? 이 사업의 비밀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 개발 체제) 수익 모델에 숨어있다. CDM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탄소 배출권 형태의 보상을 받아 수익을 보전하는 사업 형태다. 유럽의 백색가전 기업인 보쉬-지멘스(Bosche-Siemens)는 브라질의 전력회사와 제휴해 빈민들에게 최신 고효율 냉장고를 공짜로 주기로 했다. 대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 냉장고를 수거했다. 이를 통해 감소된 냉장고의 전기 사용량과 구형 냉장고의 HFC(수소불화탄소) 냉매 처리분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수익을 확보했던 것이다. ‘판매가격 제로!’ 이보다 더 강력한 원가 리더십이 있을까.
또한 잉여 전력을 판매하여 생산 원가를 더욱 낮출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바람, 지열 등 대부분의 신재생 에너지는 누구나 스스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양 전지를 생각해보자. 태양 전지를 활용하면 아직 에너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전 세계의 오지에서조차 모든 기업이 스스로 전력 생산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자사 용량을 넘어 전력을 생산한다면 이 잉여 전력을 타 기업에 팔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신재생 에너지의 경제성이 화석 에너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화석 에너지가 점차 고갈되기 시작한다면 화석 에너지의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의 가격은 기술 개발과 대량 생산으로 인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태양 전지의 생산 가격보다 전기 요금이 더 비싼 경우도 있어 잉여 전력 판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또한 선진국에서도 잉여전력 판매가 시도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09년 5월 ‘녹색 경제와 사회 변혁’ 일본판 뉴딜 정책에서, 가정이나 기업에서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해 사용하고 남은 전력을 전력회사가 현재 가격의 2배인 1kW당 약 50엔(약 750원)에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구조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는 기업은 전력 회사에 발전 단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하여 추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녹색 성장을 잘 이용하면 자사가 에너지 소비의 주체인 동시에 생산의 주체로서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고, 추가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불문하고 경쟁자 간의 차별화 요소가 사라지는 이 때, 이와 같은 기업의 녹색 대응은 자사의 원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름 있는 제조 기업들이 자사의 탄소 배출량 저감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탄소의 획기적 저감은 단지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의 도입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하고, 기존 공정의 개선, 친환경적인 제품 및 소재의 개발, 친환경 공정 개발 등 다양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탄소 저감 기술과 프로세스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업은 차별화된 자사의 노하우와 기술을 블랙박스화시켜 자사 경쟁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상품화시켜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 자동차는 신일본석유와 함께 2006년 기존 디젤유와 같은 성능의 바이오 디젤유를 식용유나 폐유에서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스미모토 화학은 후지석유와 공동으로 배열(排熱)을 교환하는 시스템(핀치 기술, Pinch Technology)을 구축하여 원유 1만㎘분 에너지를 절감했다. 파나소닉은 ‘에너지 절약 비율(해당 연도에 삭감한 에너지 소비량(CO2 환산 수치)/전년도의 에너지소비량(CO2 환산 수치)×100, %)’을 만들어, 제품 조립을 담당하는 공장에서는 3.5% 감축을,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부품 사업 공장에서는 7%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고, 일본 공장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에서도 에너지 효율 개선 관련 지도와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베이징의 파나소닉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의 경우 2004년도에 CO2 3만 톤 이상을 절감하기도 했다. 향후 이 기업들이 이 기술과 노하우를 상품화시킨다면, 이들은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LG상사도 녹색 성장을 기회로 이용하여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했다. 무역이나 상업 활동을 주로 하는 기업이 녹색 성장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LG상사는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육불화황(SF6; 반도체와 LCD 생산 공정에서 절연체로 사용되는 기체로서 CO2보다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2만 배가량 높다고 평가되어 유엔이 6대 온실가스 중 하나로 지정)을 섭씨 1300도 고온으로 태워 없애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UN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얻었다. 관계자들은 LG상사가 향후 유엔의 추가 실사를 거친 뒤 연간 55만~98만 톤의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탄소 배출에 관한 기술 시장에 국내 독자 기술로 진입한 최초 사례로서, 업계에서는 탄소배출권 매각과 기술 자문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 수익이 최소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
최근 기업의 녹색 품질 역량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녹색 품질 인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제 표준화 기구(ISO)는 환경 성과를 중요시하는 기업을 나타내는 ISO 26000을 내년 초쯤 공표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 EU, 일본 등 주요 25개국도 2009년 3월 ISO 50001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절약 인증을 신설하여 공장이나 상업 빌딩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표준화된 체계를 정하겠다고 합의했다. 국내도 제품별로 생산 전 과정의 탄소 발생량을 라벨로 부착하는 ‘탄소성적표지 제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비록 기업이 이와 같은 품질 인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은 이 인증으로 그 기업의 품질 역량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제품이라면 기업은 이 인증을 이용하여 소비자에게 자사의 녹색 품질 역량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들 역시 친환경 소비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녹색 품질 역량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3의 차별화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녹색 성장으로 인한 경영 패러다임 변화
이상에서 녹색 성장이 환경과 에너지 관련 신성장 사업이라는 차원을 넘어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들의 중단기적 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녹색 성장이 가져올 변화는 이러한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녹색 성장이 몰고 올 진정한 혁명은 기업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에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농업 혁명을 제1의 물결, 산업 혁명을 제2의 물결, 지식 정보 혁명을 제3의 물결로 제시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 낙관론자들은 신재생 에너지가 기존의 권력 이동에 견줄만한 ‘제4의 물결’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신재생 에너지는 기존 화석 에너지와는 달리 ‘자원의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역, 채굴 노하우, 이동 규모, 채굴 및 정제 노하우 등 수많은 제약 조건이 수반되기 때문에, 노하우와 대규모 자본을 가지지 못한 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존 에너지 업체들은 이 특성을 이용하여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대규모 수익을 창출했다. 수십 년간 포천 500 기업 들 중 타 업종 기업들은 크나큰 부침이 있었으나, 에너지 기업들만큼은 굳건한 지위를 유지했다는 것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이 기업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자원의 통제권을 내어준 상태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는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이 스스로 에너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누가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는가?’보다는 ‘누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가 게임의 룰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이기는 기업이 미래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녹색 성장으로 촉발될 수 있는 제4의 물결이다. 특히 태양 에너지 관련 업체들의 기대는 크다. 에너지 이노베이션스(Energy Innovations) 사장인 앤드류 비비(Andrew Beebe)는 “태양 에너지가 있는 한 기득권 세력인 기존의 기업들은 자원을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의 이동이다.”라고 말했다. 산업 혁명과 지식 혁명 이후 수많은 기득권 기업이 화석 연료든 지식이든 그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면서 대규모 수익을 창출하고 시장을 지배했지만, 신재생 에너지는 무한하고 공공재 특성을 가지고 있어 영원할 것 같은 ‘독점=수익’이라는 전통적인 성공 방정식을 깰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반도체와 인터넷으로 이미 부를 이룩한 투자자들이 ‘녹색 러시’를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녹색 혁명이 본격화 되면 기업은 다음과 같은 사업 환경 및 운영 방식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이-테크 못지 않게 로-테크와 상용 기술의 최적화가 중요
녹색 성장이라면 하이-테크 산업처럼 보인다.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절감, 환경 친화적 소재 등 모두 현재 없는 기술만 적용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첨단 기술이 녹색 성장을 이끌 것이지만, 당분간은 로-테크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의 최적 조합을 찾아 적용하는 솔루션 역량을 가진 기업이 녹색 성장 시대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그린 공장을 생각해보자.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는 태양 전지 설치, 지열 발전, 에너지 효율적인 건축 소재의 개발 등 최첨단의 신기술을 개발하여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 상용화된 기술만 잘 적용해도 현재 에너지 소비량의 20-30%는 충분히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건물 안과 밖의 공기를 교환할 때 발생하는 열 손실을 막거나, 열 누수를 막는 단열 유리창을 설치하거나,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사용된 자원을 재활용하거나, 폐기되는 제품에서 필요한 재료를 다시 추출하는 등의 기존 기술들만 잘 적용해도 당분간 녹색 성장 시대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기업 내 고탄소 기능의 분사로 경쟁력 확보
기업 내 가치 사슬은 간단하게 연구개발-물류-생산-마케팅-유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이 물류, 생산, 그리고 유통이다. 따라서 기업이 탄소 배출량 거래제 하에서 이 기능들을 계속 보유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만약 어떤 기업이 연구개발이나 마케팅 기능에서 차별화 우위가 있고, 고탄소 기능을 운영하는데 부담을 느낀다면, 고탄소 기능을 분사시키고 나이키와 같이 연구개발과 마케팅과 조직 기능만 유지하는 기업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류나 생산 기업과 같은 고탄소 기업들은 이렇게 분사된 타사의 기능들은 흡수하면서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한 대규모 투자 자원을 조성하고, 그 결과를 다시 대규모로 적용시키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나가 경쟁 우위를 창출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한 클러스터 강화
기업들이 에너지의 생산, 유통, 배급을 공유한다면 각자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공동 인프라를 사용함에 따라 투자비용도 줄일 수 있고, 공동으로 에너지를 구입하는데 따른 교섭력도 확보할 수 있으며, 자가 발전을 해서 값싸게 생산한 파트너의 여분의 에너지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에너지 활용율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클러스터가 강화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LCD 관련 업체가 각자의 라인을 모두 합쳐 하나의 라인으로 만든다면, 에너지 대량 구매에 따른 교섭력을 확보하고, 물류나 패키지에 따른 에너지 사용량도 줄일 수 있으며, 서로 생산한 값싼 전기를 교환함으로써 원가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녹색 비즈니스 모델로의 변화
결국 녹색 성장은 단지 신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쟁 방식의 변화, 기업 구조의 변화,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을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일 수 있다. 이는 제조 기업이든 서비스 기업이든 신재생 에너지를 통한 녹색 성장을 기회 삼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업들은 녹색 변화에 대응할 녹색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업은 ‘가치를 준 대상에게 돈을 받는다’는 전통적 고정 관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탄소 시장을 이용하여 고객에게 주는 가치의 흐름(value stream)과 수익의 흐름(revenue stream)을 분리시키는 창의적인 녹색 발상을 해야 한다(<그림> 참조). 앞서 언급한 보쉬-지멘스(Bosche-Siemens)의 브라질 냉장고 사례도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의 결과이다.
이를 통해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에서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직접적인 비용을 탄소 시장에 전가시키며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사업화하여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때 독창적인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가진 기업은 이를 블랙박스화시킬 것인지, 라이센싱하는 사업을 할 것인지, 컨설팅 서비스를 할 것인지, 위탁 판매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그 업체에 투자를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자사 수익을 극대화 시키고 새로운 사업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네트워크 업체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포털, 소프트웨어, 컨텐츠, 전자상거래 등 수많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기업은 단지 수동적이거나 신사업 중심의 관점으로 녹색 성장에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미래 권력 변화와 수익원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이에 합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녹색 성장이냐, 녹색 쇼크냐는 기업의 준비에 달려있다. <끝>
녹색 성장은 단지 환경 에너지 차원의 신사업 기회를 넘어서 모든 기업의 중단기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가치 제공의 대상과 수익원을 분리시킴으로써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한 축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녹색 성장(Green Growth)이 확고한 글로벌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녹색 성장은 ‘온실 가스와 환경 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정의되는데, 구체적으로는 고유가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기술과 청정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여 수익을 발생시키는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주식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그린 카, LED, 풍력, 원자력(핵융합), 연료전지, 바이오연료, 지열, 전력 IT, 탄소시장 관련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녹색 성장은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 수많은 신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녹색 성장은 소위 ‘굴뚝 기업’으로 불리는 전통 기업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녹색 성장이 전통 기업에게 커다란 위협일 것이라 예상한다. 왜냐하면 환경을 훼손하는데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 기업들이 녹색 성장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환경 훼손에 따른 비용까지도 추가로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기업들은 할당받은 탄소 배출량을 넘기면 그만큼 탄소 배출권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조건과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수익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녹색 성장으로 인한 수익성 압박(?) 속에서 의외의 움직임을 보이는 전통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의 피해자일 것 같은 알미늄 제조업체인 앨코어(Alcoa),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Caterpillar), 석유 가스 회사인 듀크 에너지(Duke Energy)나 쉘 오일(Shell Oil) 등 포춘 500 내 굴뚝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상한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탄소와 무관할 것 같은 인터넷 혁신 기업인 구글(Google)도 실리콘 밸리 본사에서 1.6MW 급 솔라 어레이(Solar Array)를 점등하면서 “미래 탄소 규제를 통해 곧 가시화될 탄소의 이론적인 잠재 비용(shadow price)이 데이터 센터의 부지 선정에서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 반대를 외치며 피켓 시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거래제를 요구하고 나선 속내는 무엇일까?
녹색 성장을 서두르는 전통 기업들의 속내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단지 과거로부터 쭉 이어져온 환경 규제나 에너지 절감의 연장선상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환경 보호 이야기’로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만 해당된 기회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녹색 성장은 단지 환경 에너지 차원의 신사업 기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자사의 경쟁력을 중단기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녹색 성장은 ▲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의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 확보 ▲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그리고 ▲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굴뚝 기업들까지도 당장 손해를 보면서 녹색 성장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Cost Leadership) 확보
탄소 배출량 거래제는 대다수 기업들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효과적 대응 여부에 따라 오히려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업은 탄소 발생에 따른 추가 비용을 없애는 동시에 확보한 여분의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동일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경우, “누가 탄소 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느냐?”가 그 기업의 원가 리더십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경쟁의 성패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만 있다면 자사의 원가 리더십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이런 녹색 성장을 통한 원가 리더십 강화 움직임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에는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주겠다는 전자 기업이 나타나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수십만 원이 넘는 냉장고를 어떻게 공짜로 줄 수 있을까? 제조 원가가 ‘0’이란 뜻일까? 이 사업의 비밀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 개발 체제) 수익 모델에 숨어있다. CDM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탄소 배출권 형태의 보상을 받아 수익을 보전하는 사업 형태다. 유럽의 백색가전 기업인 보쉬-지멘스(Bosche-Siemens)는 브라질의 전력회사와 제휴해 빈민들에게 최신 고효율 냉장고를 공짜로 주기로 했다. 대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 냉장고를 수거했다. 이를 통해 감소된 냉장고의 전기 사용량과 구형 냉장고의 HFC(수소불화탄소) 냉매 처리분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수익을 확보했던 것이다. ‘판매가격 제로!’ 이보다 더 강력한 원가 리더십이 있을까.
또한 잉여 전력을 판매하여 생산 원가를 더욱 낮출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바람, 지열 등 대부분의 신재생 에너지는 누구나 스스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양 전지를 생각해보자. 태양 전지를 활용하면 아직 에너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전 세계의 오지에서조차 모든 기업이 스스로 전력 생산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자사 용량을 넘어 전력을 생산한다면 이 잉여 전력을 타 기업에 팔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신재생 에너지의 경제성이 화석 에너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화석 에너지가 점차 고갈되기 시작한다면 화석 에너지의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의 가격은 기술 개발과 대량 생산으로 인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태양 전지의 생산 가격보다 전기 요금이 더 비싼 경우도 있어 잉여 전력 판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또한 선진국에서도 잉여전력 판매가 시도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09년 5월 ‘녹색 경제와 사회 변혁’ 일본판 뉴딜 정책에서, 가정이나 기업에서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해 사용하고 남은 전력을 전력회사가 현재 가격의 2배인 1kW당 약 50엔(약 750원)에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구조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는 기업은 전력 회사에 발전 단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하여 추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녹색 성장을 잘 이용하면 자사가 에너지 소비의 주체인 동시에 생산의 주체로서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고, 추가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불문하고 경쟁자 간의 차별화 요소가 사라지는 이 때, 이와 같은 기업의 녹색 대응은 자사의 원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름 있는 제조 기업들이 자사의 탄소 배출량 저감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탄소의 획기적 저감은 단지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의 도입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하고, 기존 공정의 개선, 친환경적인 제품 및 소재의 개발, 친환경 공정 개발 등 다양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탄소 저감 기술과 프로세스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업은 차별화된 자사의 노하우와 기술을 블랙박스화시켜 자사 경쟁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상품화시켜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 자동차는 신일본석유와 함께 2006년 기존 디젤유와 같은 성능의 바이오 디젤유를 식용유나 폐유에서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스미모토 화학은 후지석유와 공동으로 배열(排熱)을 교환하는 시스템(핀치 기술, Pinch Technology)을 구축하여 원유 1만㎘분 에너지를 절감했다. 파나소닉은 ‘에너지 절약 비율(해당 연도에 삭감한 에너지 소비량(CO2 환산 수치)/전년도의 에너지소비량(CO2 환산 수치)×100, %)’을 만들어, 제품 조립을 담당하는 공장에서는 3.5% 감축을,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부품 사업 공장에서는 7%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고, 일본 공장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에서도 에너지 효율 개선 관련 지도와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베이징의 파나소닉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의 경우 2004년도에 CO2 3만 톤 이상을 절감하기도 했다. 향후 이 기업들이 이 기술과 노하우를 상품화시킨다면, 이들은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LG상사도 녹색 성장을 기회로 이용하여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했다. 무역이나 상업 활동을 주로 하는 기업이 녹색 성장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LG상사는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육불화황(SF6; 반도체와 LCD 생산 공정에서 절연체로 사용되는 기체로서 CO2보다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2만 배가량 높다고 평가되어 유엔이 6대 온실가스 중 하나로 지정)을 섭씨 1300도 고온으로 태워 없애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UN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얻었다. 관계자들은 LG상사가 향후 유엔의 추가 실사를 거친 뒤 연간 55만~98만 톤의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탄소 배출에 관한 기술 시장에 국내 독자 기술로 진입한 최초 사례로서, 업계에서는 탄소배출권 매각과 기술 자문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 수익이 최소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
최근 기업의 녹색 품질 역량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녹색 품질 인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제 표준화 기구(ISO)는 환경 성과를 중요시하는 기업을 나타내는 ISO 26000을 내년 초쯤 공표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 EU, 일본 등 주요 25개국도 2009년 3월 ISO 50001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절약 인증을 신설하여 공장이나 상업 빌딩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표준화된 체계를 정하겠다고 합의했다. 국내도 제품별로 생산 전 과정의 탄소 발생량을 라벨로 부착하는 ‘탄소성적표지 제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비록 기업이 이와 같은 품질 인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은 이 인증으로 그 기업의 품질 역량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제품이라면 기업은 이 인증을 이용하여 소비자에게 자사의 녹색 품질 역량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들 역시 친환경 소비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녹색 품질 역량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3의 차별화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녹색 성장으로 인한 경영 패러다임 변화
이상에서 녹색 성장이 환경과 에너지 관련 신성장 사업이라는 차원을 넘어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들의 중단기적 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녹색 성장이 가져올 변화는 이러한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녹색 성장이 몰고 올 진정한 혁명은 기업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에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농업 혁명을 제1의 물결, 산업 혁명을 제2의 물결, 지식 정보 혁명을 제3의 물결로 제시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 낙관론자들은 신재생 에너지가 기존의 권력 이동에 견줄만한 ‘제4의 물결’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신재생 에너지는 기존 화석 에너지와는 달리 ‘자원의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역, 채굴 노하우, 이동 규모, 채굴 및 정제 노하우 등 수많은 제약 조건이 수반되기 때문에, 노하우와 대규모 자본을 가지지 못한 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존 에너지 업체들은 이 특성을 이용하여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대규모 수익을 창출했다. 수십 년간 포천 500 기업 들 중 타 업종 기업들은 크나큰 부침이 있었으나, 에너지 기업들만큼은 굳건한 지위를 유지했다는 것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이 기업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자원의 통제권을 내어준 상태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는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이 스스로 에너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누가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는가?’보다는 ‘누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가 게임의 룰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이기는 기업이 미래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녹색 성장으로 촉발될 수 있는 제4의 물결이다. 특히 태양 에너지 관련 업체들의 기대는 크다. 에너지 이노베이션스(Energy Innovations) 사장인 앤드류 비비(Andrew Beebe)는 “태양 에너지가 있는 한 기득권 세력인 기존의 기업들은 자원을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의 이동이다.”라고 말했다. 산업 혁명과 지식 혁명 이후 수많은 기득권 기업이 화석 연료든 지식이든 그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면서 대규모 수익을 창출하고 시장을 지배했지만, 신재생 에너지는 무한하고 공공재 특성을 가지고 있어 영원할 것 같은 ‘독점=수익’이라는 전통적인 성공 방정식을 깰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반도체와 인터넷으로 이미 부를 이룩한 투자자들이 ‘녹색 러시’를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녹색 혁명이 본격화 되면 기업은 다음과 같은 사업 환경 및 운영 방식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이-테크 못지 않게 로-테크와 상용 기술의 최적화가 중요
녹색 성장이라면 하이-테크 산업처럼 보인다.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절감, 환경 친화적 소재 등 모두 현재 없는 기술만 적용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첨단 기술이 녹색 성장을 이끌 것이지만, 당분간은 로-테크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의 최적 조합을 찾아 적용하는 솔루션 역량을 가진 기업이 녹색 성장 시대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그린 공장을 생각해보자.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는 태양 전지 설치, 지열 발전, 에너지 효율적인 건축 소재의 개발 등 최첨단의 신기술을 개발하여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 상용화된 기술만 잘 적용해도 현재 에너지 소비량의 20-30%는 충분히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건물 안과 밖의 공기를 교환할 때 발생하는 열 손실을 막거나, 열 누수를 막는 단열 유리창을 설치하거나,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사용된 자원을 재활용하거나, 폐기되는 제품에서 필요한 재료를 다시 추출하는 등의 기존 기술들만 잘 적용해도 당분간 녹색 성장 시대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기업 내 고탄소 기능의 분사로 경쟁력 확보
기업 내 가치 사슬은 간단하게 연구개발-물류-생산-마케팅-유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이 물류, 생산, 그리고 유통이다. 따라서 기업이 탄소 배출량 거래제 하에서 이 기능들을 계속 보유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만약 어떤 기업이 연구개발이나 마케팅 기능에서 차별화 우위가 있고, 고탄소 기능을 운영하는데 부담을 느낀다면, 고탄소 기능을 분사시키고 나이키와 같이 연구개발과 마케팅과 조직 기능만 유지하는 기업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류나 생산 기업과 같은 고탄소 기업들은 이렇게 분사된 타사의 기능들은 흡수하면서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한 대규모 투자 자원을 조성하고, 그 결과를 다시 대규모로 적용시키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나가 경쟁 우위를 창출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한 클러스터 강화
기업들이 에너지의 생산, 유통, 배급을 공유한다면 각자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공동 인프라를 사용함에 따라 투자비용도 줄일 수 있고, 공동으로 에너지를 구입하는데 따른 교섭력도 확보할 수 있으며, 자가 발전을 해서 값싸게 생산한 파트너의 여분의 에너지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에너지 활용율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클러스터가 강화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LCD 관련 업체가 각자의 라인을 모두 합쳐 하나의 라인으로 만든다면, 에너지 대량 구매에 따른 교섭력을 확보하고, 물류나 패키지에 따른 에너지 사용량도 줄일 수 있으며, 서로 생산한 값싼 전기를 교환함으로써 원가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녹색 비즈니스 모델로의 변화
결국 녹색 성장은 단지 신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쟁 방식의 변화, 기업 구조의 변화,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을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일 수 있다. 이는 제조 기업이든 서비스 기업이든 신재생 에너지를 통한 녹색 성장을 기회 삼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업들은 녹색 변화에 대응할 녹색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업은 ‘가치를 준 대상에게 돈을 받는다’는 전통적 고정 관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탄소 시장을 이용하여 고객에게 주는 가치의 흐름(value stream)과 수익의 흐름(revenue stream)을 분리시키는 창의적인 녹색 발상을 해야 한다(<그림> 참조). 앞서 언급한 보쉬-지멘스(Bosche-Siemens)의 브라질 냉장고 사례도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의 결과이다.
이를 통해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에서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직접적인 비용을 탄소 시장에 전가시키며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사업화하여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때 독창적인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가진 기업은 이를 블랙박스화시킬 것인지, 라이센싱하는 사업을 할 것인지, 컨설팅 서비스를 할 것인지, 위탁 판매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그 업체에 투자를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자사 수익을 극대화 시키고 새로운 사업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네트워크 업체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포털, 소프트웨어, 컨텐츠, 전자상거래 등 수많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기업은 단지 수동적이거나 신사업 중심의 관점으로 녹색 성장에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미래 권력 변화와 수익원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이에 합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녹색 성장이냐, 녹색 쇼크냐는 기업의 준비에 달려있다. <끝>
녹색 성장(Green Growth)이 확고한 글로벌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녹색 성장은 ‘온실 가스와 환경 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정의되는데, 구체적으로는 고유가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기술과 청정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여 수익을 발생시키는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주식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그린 카, LED, 풍력, 원자력(핵융합), 연료전지, 바이오연료, 지열, 전력 IT, 탄소시장 관련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녹색 성장은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 수많은 신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녹색 성장은 소위 ‘굴뚝 기업’으로 불리는 전통 기업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녹색 성장이 전통 기업에게 커다란 위협일 것이라 예상한다. 왜냐하면 환경을 훼손하는데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 기업들이 녹색 성장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환경 훼손에 따른 비용까지도 추가로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기업들은 할당받은 탄소 배출량을 넘기면 그만큼 탄소 배출권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조건과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수익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녹색 성장으로 인한 수익성 압박(?) 속에서 의외의 움직임을 보이는 전통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의 피해자일 것 같은 알미늄 제조업체인 앨코어(Alcoa),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Caterpillar), 석유 가스 회사인 듀크 에너지(Duke Energy)나 쉘 오일(Shell Oil) 등 포춘 500 내 굴뚝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상한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탄소와 무관할 것 같은 인터넷 혁신 기업인 구글(Google)도 실리콘 밸리 본사에서 1.6MW 급 솔라 어레이(Solar Array)를 점등하면서 “미래 탄소 규제를 통해 곧 가시화될 탄소의 이론적인 잠재 비용(shadow price)이 데이터 센터의 부지 선정에서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 반대를 외치며 피켓 시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거래제를 요구하고 나선 속내는 무엇일까?
녹색 성장을 서두르는 전통 기업들의 속내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단지 과거로부터 쭉 이어져온 환경 규제나 에너지 절감의 연장선상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환경 보호 이야기’로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만 해당된 기회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녹색 성장은 단지 환경 에너지 차원의 신사업 기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자사의 경쟁력을 중단기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녹색 성장은 ▲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의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 확보 ▲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그리고 ▲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굴뚝 기업들까지도 당장 손해를 보면서 녹색 성장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Cost Leadership) 확보
탄소 배출량 거래제는 대다수 기업들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효과적 대응 여부에 따라 오히려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업은 탄소 발생에 따른 추가 비용을 없애는 동시에 확보한 여분의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동일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경우, “누가 탄소 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느냐?”가 그 기업의 원가 리더십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경쟁의 성패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만 있다면 자사의 원가 리더십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이런 녹색 성장을 통한 원가 리더십 강화 움직임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에는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주겠다는 전자 기업이 나타나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수십만 원이 넘는 냉장고를 어떻게 공짜로 줄 수 있을까? 제조 원가가 ‘0’이란 뜻일까? 이 사업의 비밀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 개발 체제) 수익 모델에 숨어있다. CDM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탄소 배출권 형태의 보상을 받아 수익을 보전하는 사업 형태다. 유럽의 백색가전 기업인 보쉬-지멘스(Bosche-Siemens)는 브라질의 전력회사와 제휴해 빈민들에게 최신 고효율 냉장고를 공짜로 주기로 했다. 대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 냉장고를 수거했다. 이를 통해 감소된 냉장고의 전기 사용량과 구형 냉장고의 HFC(수소불화탄소) 냉매 처리분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수익을 확보했던 것이다. ‘판매가격 제로!’ 이보다 더 강력한 원가 리더십이 있을까.
또한 잉여 전력을 판매하여 생산 원가를 더욱 낮출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바람, 지열 등 대부분의 신재생 에너지는 누구나 스스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양 전지를 생각해보자. 태양 전지를 활용하면 아직 에너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전 세계의 오지에서조차 모든 기업이 스스로 전력 생산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자사 용량을 넘어 전력을 생산한다면 이 잉여 전력을 타 기업에 팔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신재생 에너지의 경제성이 화석 에너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화석 에너지가 점차 고갈되기 시작한다면 화석 에너지의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의 가격은 기술 개발과 대량 생산으로 인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태양 전지의 생산 가격보다 전기 요금이 더 비싼 경우도 있어 잉여 전력 판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또한 선진국에서도 잉여전력 판매가 시도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09년 5월 ‘녹색 경제와 사회 변혁’ 일본판 뉴딜 정책에서, 가정이나 기업에서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해 사용하고 남은 전력을 전력회사가 현재 가격의 2배인 1kW당 약 50엔(약 750원)에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구조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는 기업은 전력 회사에 발전 단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하여 추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녹색 성장을 잘 이용하면 자사가 에너지 소비의 주체인 동시에 생산의 주체로서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고, 추가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불문하고 경쟁자 간의 차별화 요소가 사라지는 이 때, 이와 같은 기업의 녹색 대응은 자사의 원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름 있는 제조 기업들이 자사의 탄소 배출량 저감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탄소의 획기적 저감은 단지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의 도입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하고, 기존 공정의 개선, 친환경적인 제품 및 소재의 개발, 친환경 공정 개발 등 다양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탄소 저감 기술과 프로세스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업은 차별화된 자사의 노하우와 기술을 블랙박스화시켜 자사 경쟁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상품화시켜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 자동차는 신일본석유와 함께 2006년 기존 디젤유와 같은 성능의 바이오 디젤유를 식용유나 폐유에서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스미모토 화학은 후지석유와 공동으로 배열(排熱)을 교환하는 시스템(핀치 기술, Pinch Technology)을 구축하여 원유 1만㎘분 에너지를 절감했다. 파나소닉은 ‘에너지 절약 비율(해당 연도에 삭감한 에너지 소비량(CO2 환산 수치)/전년도의 에너지소비량(CO2 환산 수치)×100, %)’을 만들어, 제품 조립을 담당하는 공장에서는 3.5% 감축을,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부품 사업 공장에서는 7%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고, 일본 공장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에서도 에너지 효율 개선 관련 지도와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베이징의 파나소닉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의 경우 2004년도에 CO2 3만 톤 이상을 절감하기도 했다. 향후 이 기업들이 이 기술과 노하우를 상품화시킨다면, 이들은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LG상사도 녹색 성장을 기회로 이용하여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했다. 무역이나 상업 활동을 주로 하는 기업이 녹색 성장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LG상사는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육불화황(SF6; 반도체와 LCD 생산 공정에서 절연체로 사용되는 기체로서 CO2보다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2만 배가량 높다고 평가되어 유엔이 6대 온실가스 중 하나로 지정)을 섭씨 1300도 고온으로 태워 없애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UN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얻었다. 관계자들은 LG상사가 향후 유엔의 추가 실사를 거친 뒤 연간 55만~98만 톤의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탄소 배출에 관한 기술 시장에 국내 독자 기술로 진입한 최초 사례로서, 업계에서는 탄소배출권 매각과 기술 자문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 수익이 최소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
최근 기업의 녹색 품질 역량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녹색 품질 인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제 표준화 기구(ISO)는 환경 성과를 중요시하는 기업을 나타내는 ISO 26000을 내년 초쯤 공표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 EU, 일본 등 주요 25개국도 2009년 3월 ISO 50001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절약 인증을 신설하여 공장이나 상업 빌딩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표준화된 체계를 정하겠다고 합의했다. 국내도 제품별로 생산 전 과정의 탄소 발생량을 라벨로 부착하는 ‘탄소성적표지 제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비록 기업이 이와 같은 품질 인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은 이 인증으로 그 기업의 품질 역량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제품이라면 기업은 이 인증을 이용하여 소비자에게 자사의 녹색 품질 역량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들 역시 친환경 소비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녹색 품질 역량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3의 차별화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녹색 성장으로 인한 경영 패러다임 변화
이상에서 녹색 성장이 환경과 에너지 관련 신성장 사업이라는 차원을 넘어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들의 중단기적 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녹색 성장이 가져올 변화는 이러한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녹색 성장이 몰고 올 진정한 혁명은 기업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에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농업 혁명을 제1의 물결, 산업 혁명을 제2의 물결, 지식 정보 혁명을 제3의 물결로 제시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 낙관론자들은 신재생 에너지가 기존의 권력 이동에 견줄만한 ‘제4의 물결’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신재생 에너지는 기존 화석 에너지와는 달리 ‘자원의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역, 채굴 노하우, 이동 규모, 채굴 및 정제 노하우 등 수많은 제약 조건이 수반되기 때문에, 노하우와 대규모 자본을 가지지 못한 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존 에너지 업체들은 이 특성을 이용하여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대규모 수익을 창출했다. 수십 년간 포천 500 기업 들 중 타 업종 기업들은 크나큰 부침이 있었으나, 에너지 기업들만큼은 굳건한 지위를 유지했다는 것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이 기업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자원의 통제권을 내어준 상태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는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이 스스로 에너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누가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는가?’보다는 ‘누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가 게임의 룰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이기는 기업이 미래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녹색 성장으로 촉발될 수 있는 제4의 물결이다. 특히 태양 에너지 관련 업체들의 기대는 크다. 에너지 이노베이션스(Energy Innovations) 사장인 앤드류 비비(Andrew Beebe)는 “태양 에너지가 있는 한 기득권 세력인 기존의 기업들은 자원을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의 이동이다.”라고 말했다. 산업 혁명과 지식 혁명 이후 수많은 기득권 기업이 화석 연료든 지식이든 그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면서 대규모 수익을 창출하고 시장을 지배했지만, 신재생 에너지는 무한하고 공공재 특성을 가지고 있어 영원할 것 같은 ‘독점=수익’이라는 전통적인 성공 방정식을 깰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반도체와 인터넷으로 이미 부를 이룩한 투자자들이 ‘녹색 러시’를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녹색 혁명이 본격화 되면 기업은 다음과 같은 사업 환경 및 운영 방식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이-테크 못지 않게 로-테크와 상용 기술의 최적화가 중요
녹색 성장이라면 하이-테크 산업처럼 보인다.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절감, 환경 친화적 소재 등 모두 현재 없는 기술만 적용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첨단 기술이 녹색 성장을 이끌 것이지만, 당분간은 로-테크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의 최적 조합을 찾아 적용하는 솔루션 역량을 가진 기업이 녹색 성장 시대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그린 공장을 생각해보자.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는 태양 전지 설치, 지열 발전, 에너지 효율적인 건축 소재의 개발 등 최첨단의 신기술을 개발하여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 상용화된 기술만 잘 적용해도 현재 에너지 소비량의 20-30%는 충분히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건물 안과 밖의 공기를 교환할 때 발생하는 열 손실을 막거나, 열 누수를 막는 단열 유리창을 설치하거나,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사용된 자원을 재활용하거나, 폐기되는 제품에서 필요한 재료를 다시 추출하는 등의 기존 기술들만 잘 적용해도 당분간 녹색 성장 시대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기업 내 고탄소 기능의 분사로 경쟁력 확보
기업 내 가치 사슬은 간단하게 연구개발-물류-생산-마케팅-유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이 물류, 생산, 그리고 유통이다. 따라서 기업이 탄소 배출량 거래제 하에서 이 기능들을 계속 보유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만약 어떤 기업이 연구개발이나 마케팅 기능에서 차별화 우위가 있고, 고탄소 기능을 운영하는데 부담을 느낀다면, 고탄소 기능을 분사시키고 나이키와 같이 연구개발과 마케팅과 조직 기능만 유지하는 기업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류나 생산 기업과 같은 고탄소 기업들은 이렇게 분사된 타사의 기능들은 흡수하면서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한 대규모 투자 자원을 조성하고, 그 결과를 다시 대규모로 적용시키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나가 경쟁 우위를 창출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한 클러스터 강화
기업들이 에너지의 생산, 유통, 배급을 공유한다면 각자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공동 인프라를 사용함에 따라 투자비용도 줄일 수 있고, 공동으로 에너지를 구입하는데 따른 교섭력도 확보할 수 있으며, 자가 발전을 해서 값싸게 생산한 파트너의 여분의 에너지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에너지 활용율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클러스터가 강화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LCD 관련 업체가 각자의 라인을 모두 합쳐 하나의 라인으로 만든다면, 에너지 대량 구매에 따른 교섭력을 확보하고, 물류나 패키지에 따른 에너지 사용량도 줄일 수 있으며, 서로 생산한 값싼 전기를 교환함으로써 원가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녹색 비즈니스 모델로의 변화
결국 녹색 성장은 단지 신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쟁 방식의 변화, 기업 구조의 변화,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을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일 수 있다. 이는 제조 기업이든 서비스 기업이든 신재생 에너지를 통한 녹색 성장을 기회 삼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업들은 녹색 변화에 대응할 녹색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업은 ‘가치를 준 대상에게 돈을 받는다’는 전통적 고정 관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탄소 시장을 이용하여 고객에게 주는 가치의 흐름(value stream)과 수익의 흐름(revenue stream)을 분리시키는 창의적인 녹색 발상을 해야 한다(<그림> 참조). 앞서 언급한 보쉬-지멘스(Bosche-Siemens)의 브라질 냉장고 사례도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의 결과이다.
이를 통해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에서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직접적인 비용을 탄소 시장에 전가시키며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사업화하여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때 독창적인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가진 기업은 이를 블랙박스화시킬 것인지, 라이센싱하는 사업을 할 것인지, 컨설팅 서비스를 할 것인지, 위탁 판매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그 업체에 투자를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자사 수익을 극대화 시키고 새로운 사업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네트워크 업체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포털, 소프트웨어, 컨텐츠, 전자상거래 등 수많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기업은 단지 수동적이거나 신사업 중심의 관점으로 녹색 성장에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미래 권력 변화와 수익원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이에 합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녹색 성장이냐, 녹색 쇼크냐는 기업의 준비에 달려있다. <끝>
녹색 성장은 단지 환경 에너지 차원의 신사업 기회를 넘어서 모든 기업의 중단기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가치 제공의 대상과 수익원을 분리시킴으로써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의 한 축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녹색 성장(Green Growth)이 확고한 글로벌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녹색 성장은 ‘온실 가스와 환경 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정의되는데, 구체적으로는 고유가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기술과 청정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여 수익을 발생시키는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주식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그린 카, LED, 풍력, 원자력(핵융합), 연료전지, 바이오연료, 지열, 전력 IT, 탄소시장 관련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녹색 성장은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 수많은 신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녹색 성장은 소위 ‘굴뚝 기업’으로 불리는 전통 기업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녹색 성장이 전통 기업에게 커다란 위협일 것이라 예상한다. 왜냐하면 환경을 훼손하는데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 기업들이 녹색 성장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환경 훼손에 따른 비용까지도 추가로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기업들은 할당받은 탄소 배출량을 넘기면 그만큼 탄소 배출권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조건과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수익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녹색 성장으로 인한 수익성 압박(?) 속에서 의외의 움직임을 보이는 전통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의 피해자일 것 같은 알미늄 제조업체인 앨코어(Alcoa),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Caterpillar), 석유 가스 회사인 듀크 에너지(Duke Energy)나 쉘 오일(Shell Oil) 등 포춘 500 내 굴뚝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상한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탄소와 무관할 것 같은 인터넷 혁신 기업인 구글(Google)도 실리콘 밸리 본사에서 1.6MW 급 솔라 어레이(Solar Array)를 점등하면서 “미래 탄소 규제를 통해 곧 가시화될 탄소의 이론적인 잠재 비용(shadow price)이 데이터 센터의 부지 선정에서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 반대를 외치며 피켓 시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거래제를 요구하고 나선 속내는 무엇일까?
녹색 성장을 서두르는 전통 기업들의 속내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단지 과거로부터 쭉 이어져온 환경 규제나 에너지 절감의 연장선상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환경 보호 이야기’로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만 해당된 기회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녹색 성장은 단지 환경 에너지 차원의 신사업 기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자사의 경쟁력을 중단기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녹색 성장은 ▲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의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 확보 ▲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그리고 ▲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굴뚝 기업들까지도 당장 손해를 보면서 녹색 성장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Cost Leadership) 확보
탄소 배출량 거래제는 대다수 기업들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효과적 대응 여부에 따라 오히려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업은 탄소 발생에 따른 추가 비용을 없애는 동시에 확보한 여분의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동일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경우, “누가 탄소 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느냐?”가 그 기업의 원가 리더십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경쟁의 성패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만 있다면 자사의 원가 리더십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이런 녹색 성장을 통한 원가 리더십 강화 움직임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에는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주겠다는 전자 기업이 나타나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수십만 원이 넘는 냉장고를 어떻게 공짜로 줄 수 있을까? 제조 원가가 ‘0’이란 뜻일까? 이 사업의 비밀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 개발 체제) 수익 모델에 숨어있다. CDM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탄소 배출권 형태의 보상을 받아 수익을 보전하는 사업 형태다. 유럽의 백색가전 기업인 보쉬-지멘스(Bosche-Siemens)는 브라질의 전력회사와 제휴해 빈민들에게 최신 고효율 냉장고를 공짜로 주기로 했다. 대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 냉장고를 수거했다. 이를 통해 감소된 냉장고의 전기 사용량과 구형 냉장고의 HFC(수소불화탄소) 냉매 처리분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수익을 확보했던 것이다. ‘판매가격 제로!’ 이보다 더 강력한 원가 리더십이 있을까.
또한 잉여 전력을 판매하여 생산 원가를 더욱 낮출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바람, 지열 등 대부분의 신재생 에너지는 누구나 스스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양 전지를 생각해보자. 태양 전지를 활용하면 아직 에너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전 세계의 오지에서조차 모든 기업이 스스로 전력 생산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자사 용량을 넘어 전력을 생산한다면 이 잉여 전력을 타 기업에 팔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신재생 에너지의 경제성이 화석 에너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화석 에너지가 점차 고갈되기 시작한다면 화석 에너지의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의 가격은 기술 개발과 대량 생산으로 인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태양 전지의 생산 가격보다 전기 요금이 더 비싼 경우도 있어 잉여 전력 판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또한 선진국에서도 잉여전력 판매가 시도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09년 5월 ‘녹색 경제와 사회 변혁’ 일본판 뉴딜 정책에서, 가정이나 기업에서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해 사용하고 남은 전력을 전력회사가 현재 가격의 2배인 1kW당 약 50엔(약 750원)에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구조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는 기업은 전력 회사에 발전 단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하여 추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녹색 성장을 잘 이용하면 자사가 에너지 소비의 주체인 동시에 생산의 주체로서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고, 추가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불문하고 경쟁자 간의 차별화 요소가 사라지는 이 때, 이와 같은 기업의 녹색 대응은 자사의 원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름 있는 제조 기업들이 자사의 탄소 배출량 저감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탄소의 획기적 저감은 단지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의 도입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하고, 기존 공정의 개선, 친환경적인 제품 및 소재의 개발, 친환경 공정 개발 등 다양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탄소 저감 기술과 프로세스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업은 차별화된 자사의 노하우와 기술을 블랙박스화시켜 자사 경쟁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상품화시켜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 자동차는 신일본석유와 함께 2006년 기존 디젤유와 같은 성능의 바이오 디젤유를 식용유나 폐유에서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스미모토 화학은 후지석유와 공동으로 배열(排熱)을 교환하는 시스템(핀치 기술, Pinch Technology)을 구축하여 원유 1만㎘분 에너지를 절감했다. 파나소닉은 ‘에너지 절약 비율(해당 연도에 삭감한 에너지 소비량(CO2 환산 수치)/전년도의 에너지소비량(CO2 환산 수치)×100, %)’을 만들어, 제품 조립을 담당하는 공장에서는 3.5% 감축을,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부품 사업 공장에서는 7%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고, 일본 공장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에서도 에너지 효율 개선 관련 지도와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베이징의 파나소닉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의 경우 2004년도에 CO2 3만 톤 이상을 절감하기도 했다. 향후 이 기업들이 이 기술과 노하우를 상품화시킨다면, 이들은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LG상사도 녹색 성장을 기회로 이용하여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했다. 무역이나 상업 활동을 주로 하는 기업이 녹색 성장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LG상사는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육불화황(SF6; 반도체와 LCD 생산 공정에서 절연체로 사용되는 기체로서 CO2보다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2만 배가량 높다고 평가되어 유엔이 6대 온실가스 중 하나로 지정)을 섭씨 1300도 고온으로 태워 없애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UN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얻었다. 관계자들은 LG상사가 향후 유엔의 추가 실사를 거친 뒤 연간 55만~98만 톤의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탄소 배출에 관한 기술 시장에 국내 독자 기술로 진입한 최초 사례로서, 업계에서는 탄소배출권 매각과 기술 자문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 수익이 최소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
최근 기업의 녹색 품질 역량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녹색 품질 인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제 표준화 기구(ISO)는 환경 성과를 중요시하는 기업을 나타내는 ISO 26000을 내년 초쯤 공표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 EU, 일본 등 주요 25개국도 2009년 3월 ISO 50001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절약 인증을 신설하여 공장이나 상업 빌딩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표준화된 체계를 정하겠다고 합의했다. 국내도 제품별로 생산 전 과정의 탄소 발생량을 라벨로 부착하는 ‘탄소성적표지 제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비록 기업이 이와 같은 품질 인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은 이 인증으로 그 기업의 품질 역량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제품이라면 기업은 이 인증을 이용하여 소비자에게 자사의 녹색 품질 역량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들 역시 친환경 소비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녹색 품질 역량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3의 차별화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녹색 성장으로 인한 경영 패러다임 변화
이상에서 녹색 성장이 환경과 에너지 관련 신성장 사업이라는 차원을 넘어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들의 중단기적 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녹색 성장이 가져올 변화는 이러한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녹색 성장이 몰고 올 진정한 혁명은 기업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에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농업 혁명을 제1의 물결, 산업 혁명을 제2의 물결, 지식 정보 혁명을 제3의 물결로 제시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 낙관론자들은 신재생 에너지가 기존의 권력 이동에 견줄만한 ‘제4의 물결’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신재생 에너지는 기존 화석 에너지와는 달리 ‘자원의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역, 채굴 노하우, 이동 규모, 채굴 및 정제 노하우 등 수많은 제약 조건이 수반되기 때문에, 노하우와 대규모 자본을 가지지 못한 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존 에너지 업체들은 이 특성을 이용하여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대규모 수익을 창출했다. 수십 년간 포천 500 기업 들 중 타 업종 기업들은 크나큰 부침이 있었으나, 에너지 기업들만큼은 굳건한 지위를 유지했다는 것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이 기업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자원의 통제권을 내어준 상태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는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이 스스로 에너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누가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는가?’보다는 ‘누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가 게임의 룰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이기는 기업이 미래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녹색 성장으로 촉발될 수 있는 제4의 물결이다. 특히 태양 에너지 관련 업체들의 기대는 크다. 에너지 이노베이션스(Energy Innovations) 사장인 앤드류 비비(Andrew Beebe)는 “태양 에너지가 있는 한 기득권 세력인 기존의 기업들은 자원을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의 이동이다.”라고 말했다. 산업 혁명과 지식 혁명 이후 수많은 기득권 기업이 화석 연료든 지식이든 그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면서 대규모 수익을 창출하고 시장을 지배했지만, 신재생 에너지는 무한하고 공공재 특성을 가지고 있어 영원할 것 같은 ‘독점=수익’이라는 전통적인 성공 방정식을 깰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반도체와 인터넷으로 이미 부를 이룩한 투자자들이 ‘녹색 러시’를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녹색 혁명이 본격화 되면 기업은 다음과 같은 사업 환경 및 운영 방식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이-테크 못지 않게 로-테크와 상용 기술의 최적화가 중요
녹색 성장이라면 하이-테크 산업처럼 보인다.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절감, 환경 친화적 소재 등 모두 현재 없는 기술만 적용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첨단 기술이 녹색 성장을 이끌 것이지만, 당분간은 로-테크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의 최적 조합을 찾아 적용하는 솔루션 역량을 가진 기업이 녹색 성장 시대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그린 공장을 생각해보자.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는 태양 전지 설치, 지열 발전, 에너지 효율적인 건축 소재의 개발 등 최첨단의 신기술을 개발하여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 상용화된 기술만 잘 적용해도 현재 에너지 소비량의 20-30%는 충분히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건물 안과 밖의 공기를 교환할 때 발생하는 열 손실을 막거나, 열 누수를 막는 단열 유리창을 설치하거나,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사용된 자원을 재활용하거나, 폐기되는 제품에서 필요한 재료를 다시 추출하는 등의 기존 기술들만 잘 적용해도 당분간 녹색 성장 시대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기업 내 고탄소 기능의 분사로 경쟁력 확보
기업 내 가치 사슬은 간단하게 연구개발-물류-생산-마케팅-유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이 물류, 생산, 그리고 유통이다. 따라서 기업이 탄소 배출량 거래제 하에서 이 기능들을 계속 보유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만약 어떤 기업이 연구개발이나 마케팅 기능에서 차별화 우위가 있고, 고탄소 기능을 운영하는데 부담을 느낀다면, 고탄소 기능을 분사시키고 나이키와 같이 연구개발과 마케팅과 조직 기능만 유지하는 기업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류나 생산 기업과 같은 고탄소 기업들은 이렇게 분사된 타사의 기능들은 흡수하면서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한 대규모 투자 자원을 조성하고, 그 결과를 다시 대규모로 적용시키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나가 경쟁 우위를 창출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한 클러스터 강화
기업들이 에너지의 생산, 유통, 배급을 공유한다면 각자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공동 인프라를 사용함에 따라 투자비용도 줄일 수 있고, 공동으로 에너지를 구입하는데 따른 교섭력도 확보할 수 있으며, 자가 발전을 해서 값싸게 생산한 파트너의 여분의 에너지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에너지 활용율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클러스터가 강화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LCD 관련 업체가 각자의 라인을 모두 합쳐 하나의 라인으로 만든다면, 에너지 대량 구매에 따른 교섭력을 확보하고, 물류나 패키지에 따른 에너지 사용량도 줄일 수 있으며, 서로 생산한 값싼 전기를 교환함으로써 원가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녹색 비즈니스 모델로의 변화
결국 녹색 성장은 단지 신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쟁 방식의 변화, 기업 구조의 변화,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을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일 수 있다. 이는 제조 기업이든 서비스 기업이든 신재생 에너지를 통한 녹색 성장을 기회 삼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업들은 녹색 변화에 대응할 녹색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업은 ‘가치를 준 대상에게 돈을 받는다’는 전통적 고정 관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탄소 시장을 이용하여 고객에게 주는 가치의 흐름(value stream)과 수익의 흐름(revenue stream)을 분리시키는 창의적인 녹색 발상을 해야 한다(<그림> 참조). 앞서 언급한 보쉬-지멘스(Bosche-Siemens)의 브라질 냉장고 사례도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의 결과이다.
이를 통해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에서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직접적인 비용을 탄소 시장에 전가시키며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사업화하여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때 독창적인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가진 기업은 이를 블랙박스화시킬 것인지, 라이센싱하는 사업을 할 것인지, 컨설팅 서비스를 할 것인지, 위탁 판매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그 업체에 투자를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자사 수익을 극대화 시키고 새로운 사업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네트워크 업체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포털, 소프트웨어, 컨텐츠, 전자상거래 등 수많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기업은 단지 수동적이거나 신사업 중심의 관점으로 녹색 성장에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미래 권력 변화와 수익원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이에 합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녹색 성장이냐, 녹색 쇼크냐는 기업의 준비에 달려있다. <끝>
녹색 성장(Green Growth)이 확고한 글로벌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다. 녹색 성장은 ‘온실 가스와 환경 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정의되는데, 구체적으로는 고유가와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기술과 청정 에너지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여 수익을 발생시키는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주식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그린 카, LED, 풍력, 원자력(핵융합), 연료전지, 바이오연료, 지열, 전력 IT, 탄소시장 관련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녹색 성장은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 수많은 신사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녹색 성장은 소위 ‘굴뚝 기업’으로 불리는 전통 기업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많은 사람들은 녹색 성장이 전통 기업에게 커다란 위협일 것이라 예상한다. 왜냐하면 환경을 훼손하는데 따르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던 기업들이 녹색 성장으로 인해 이제부터는 환경 훼손에 따른 비용까지도 추가로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기업들은 할당받은 탄소 배출량을 넘기면 그만큼 탄소 배출권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조건과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당연히 수익성은 하락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녹색 성장으로 인한 수익성 압박(?) 속에서 의외의 움직임을 보이는 전통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의 피해자일 것 같은 알미늄 제조업체인 앨코어(Alcoa), 중장비 제조업체인 캐터필러(Caterpillar), 석유 가스 회사인 듀크 에너지(Duke Energy)나 쉘 오일(Shell Oil) 등 포춘 500 내 굴뚝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상한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탄소와 무관할 것 같은 인터넷 혁신 기업인 구글(Google)도 실리콘 밸리 본사에서 1.6MW 급 솔라 어레이(Solar Array)를 점등하면서 “미래 탄소 규제를 통해 곧 가시화될 탄소의 이론적인 잠재 비용(shadow price)이 데이터 센터의 부지 선정에서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탄소 배출량 거래제 반대를 외치며 피켓 시위를 해야 할 것 같은 기업들이 오히려 탄소 배출량 거래제를 요구하고 나선 속내는 무엇일까?
녹색 성장을 서두르는 전통 기업들의 속내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단지 과거로부터 쭉 이어져온 환경 규제나 에너지 절감의 연장선상에서 별로 새로울 것이 없는 환경 보호 이야기’로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녹색 성장을 환경 에너지 관련 기업에게만 해당된 기회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녹색 성장은 단지 환경 에너지 차원의 신사업 기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활용할 경우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자사의 경쟁력을 중단기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녹색 성장은 ▲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의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 확보 ▲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그리고 ▲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굴뚝 기업들까지도 당장 손해를 보면서 녹색 성장에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탄소 배출량 거래 및 잉여 전력 수익화를 통한 원가 리더십(Cost Leadership) 확보
탄소 배출량 거래제는 대다수 기업들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효과적 대응 여부에 따라 오히려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기업은 탄소 발생에 따른 추가 비용을 없애는 동시에 확보한 여분의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도 있다. 따라서 동일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경우, “누가 탄소 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느냐?”가 그 기업의 원가 리더십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경쟁의 성패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탄소 할당량을 타 기업에 판매할 수만 있다면 자사의 원가 리더십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
이런 녹색 성장을 통한 원가 리더십 강화 움직임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에는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주겠다는 전자 기업이 나타나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수십만 원이 넘는 냉장고를 어떻게 공짜로 줄 수 있을까? 제조 원가가 ‘0’이란 뜻일까? 이 사업의 비밀은 CDM(Clean Development Mechanism, 청정 개발 체제) 수익 모델에 숨어있다. CDM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실시하고, 탄소 배출권 형태의 보상을 받아 수익을 보전하는 사업 형태다. 유럽의 백색가전 기업인 보쉬-지멘스(Bosche-Siemens)는 브라질의 전력회사와 제휴해 빈민들에게 최신 고효율 냉장고를 공짜로 주기로 했다. 대신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구형 냉장고를 수거했다. 이를 통해 감소된 냉장고의 전기 사용량과 구형 냉장고의 HFC(수소불화탄소) 냉매 처리분을 CDM 실적으로 인정받아 수익을 확보했던 것이다. ‘판매가격 제로!’ 이보다 더 강력한 원가 리더십이 있을까.
또한 잉여 전력을 판매하여 생산 원가를 더욱 낮출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고 있다. 바람, 지열 등 대부분의 신재생 에너지는 누구나 스스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태양 전지를 생각해보자. 태양 전지를 활용하면 아직 에너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전 세계의 오지에서조차 모든 기업이 스스로 전력 생산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자사 용량을 넘어 전력을 생산한다면 이 잉여 전력을 타 기업에 팔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신재생 에너지의 경제성이 화석 에너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화석 에너지가 점차 고갈되기 시작한다면 화석 에너지의 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신재생 에너지의 가격은 기술 개발과 대량 생산으로 인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태양 전지의 생산 가격보다 전기 요금이 더 비싼 경우도 있어 잉여 전력 판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또한 선진국에서도 잉여전력 판매가 시도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09년 5월 ‘녹색 경제와 사회 변혁’ 일본판 뉴딜 정책에서, 가정이나 기업에서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해 사용하고 남은 전력을 전력회사가 현재 가격의 2배인 1kW당 약 50엔(약 750원)에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구조에서 태양광 발전을 하는 기업은 전력 회사에 발전 단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하여 추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녹색 성장을 잘 이용하면 자사가 에너지 소비의 주체인 동시에 생산의 주체로서 새로운 기회를 가지게 되고, 추가 수익까지 확보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불문하고 경쟁자 간의 차별화 요소가 사라지는 이 때, 이와 같은 기업의 녹색 대응은 자사의 원가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름 있는 제조 기업들이 자사의 탄소 배출량 저감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탄소 저감 기술 및 프로세스의 상품화
탄소의 획기적 저감은 단지 신재생 에너지 발전 설비의 도입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하고, 기존 공정의 개선, 친환경적인 제품 및 소재의 개발, 친환경 공정 개발 등 다양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따라서 탄소 저감 기술과 프로세스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업은 차별화된 자사의 노하우와 기술을 블랙박스화시켜 자사 경쟁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상품화시켜 시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도요타 자동차는 신일본석유와 함께 2006년 기존 디젤유와 같은 성능의 바이오 디젤유를 식용유나 폐유에서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스미모토 화학은 후지석유와 공동으로 배열(排熱)을 교환하는 시스템(핀치 기술, Pinch Technology)을 구축하여 원유 1만㎘분 에너지를 절감했다. 파나소닉은 ‘에너지 절약 비율(해당 연도에 삭감한 에너지 소비량(CO2 환산 수치)/전년도의 에너지소비량(CO2 환산 수치)×100, %)’을 만들어, 제품 조립을 담당하는 공장에서는 3.5% 감축을,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부품 사업 공장에서는 7%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고, 일본 공장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공장에서도 에너지 효율 개선 관련 지도와 교육을 실시했다. 그 결과 베이징의 파나소닉 디스플레이 디바이스의 경우 2004년도에 CO2 3만 톤 이상을 절감하기도 했다. 향후 이 기업들이 이 기술과 노하우를 상품화시킨다면, 이들은 기존과 전혀 다른 새로운 수익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LG상사도 녹색 성장을 기회로 이용하여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했다. 무역이나 상업 활동을 주로 하는 기업이 녹색 성장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LG상사는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육불화황(SF6; 반도체와 LCD 생산 공정에서 절연체로 사용되는 기체로서 CO2보다 지구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2만 배가량 높다고 평가되어 유엔이 6대 온실가스 중 하나로 지정)을 섭씨 1300도 고온으로 태워 없애는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UN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얻었다. 관계자들은 LG상사가 향후 유엔의 추가 실사를 거친 뒤 연간 55만~98만 톤의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탄소 배출에 관한 기술 시장에 국내 독자 기술로 진입한 최초 사례로서, 업계에서는 탄소배출권 매각과 기술 자문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잠재 수익이 최소 수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녹색 품질 경영 역량 어필을 통한 마케팅 차별화
최근 기업의 녹색 품질 역량을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녹색 품질 인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국제 표준화 기구(ISO)는 환경 성과를 중요시하는 기업을 나타내는 ISO 26000을 내년 초쯤 공표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 EU, 일본 등 주요 25개국도 2009년 3월 ISO 50001이라는 새로운 에너지 절약 인증을 신설하여 공장이나 상업 빌딩 등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에서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표준화된 체계를 정하겠다고 합의했다. 국내도 제품별로 생산 전 과정의 탄소 발생량을 라벨로 부착하는 ‘탄소성적표지 제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비록 기업이 이와 같은 품질 인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객은 이 인증으로 그 기업의 품질 역량 수준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한 제품이라면 기업은 이 인증을 이용하여 소비자에게 자사의 녹색 품질 역량을 어필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들 역시 친환경 소비를 선호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녹색 품질 역량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3의 차별화 요소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녹색 성장으로 인한 경영 패러다임 변화
이상에서 녹색 성장이 환경과 에너지 관련 신성장 사업이라는 차원을 넘어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들의 중단기적 경쟁력 강화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녹색 성장이 가져올 변화는 이러한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녹색 성장이 몰고 올 진정한 혁명은 기업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에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을 통해 농업 혁명을 제1의 물결, 산업 혁명을 제2의 물결, 지식 정보 혁명을 제3의 물결로 제시했다.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 낙관론자들은 신재생 에너지가 기존의 권력 이동에 견줄만한 ‘제4의 물결’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신재생 에너지는 기존 화석 에너지와는 달리 ‘자원의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석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역, 채굴 노하우, 이동 규모, 채굴 및 정제 노하우 등 수많은 제약 조건이 수반되기 때문에, 노하우와 대규모 자본을 가지지 못한 기업이 쉽게 진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존 에너지 업체들은 이 특성을 이용하여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함으로써 대규모 수익을 창출했다. 수십 년간 포천 500 기업 들 중 타 업종 기업들은 크나큰 부침이 있었으나, 에너지 기업들만큼은 굳건한 지위를 유지했다는 것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기업들은 이 기업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자원의 통제권을 내어준 상태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재생 에너지는 장기적으로 모든 기업이 스스로 에너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래서 ‘누가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는가?’보다는 ‘누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가?’가 게임의 룰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게임에서 이기는 기업이 미래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녹색 성장으로 촉발될 수 있는 제4의 물결이다. 특히 태양 에너지 관련 업체들의 기대는 크다. 에너지 이노베이션스(Energy Innovations) 사장인 앤드류 비비(Andrew Beebe)는 “태양 에너지가 있는 한 기득권 세력인 기존의 기업들은 자원을 통제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권력의 이동이다.”라고 말했다. 산업 혁명과 지식 혁명 이후 수많은 기득권 기업이 화석 연료든 지식이든 그 자원을 독점하고 통제하면서 대규모 수익을 창출하고 시장을 지배했지만, 신재생 에너지는 무한하고 공공재 특성을 가지고 있어 영원할 것 같은 ‘독점=수익’이라는 전통적인 성공 방정식을 깰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반도체와 인터넷으로 이미 부를 이룩한 투자자들이 ‘녹색 러시’를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녹색 혁명이 본격화 되면 기업은 다음과 같은 사업 환경 및 운영 방식의 변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이-테크 못지 않게 로-테크와 상용 기술의 최적화가 중요
녹색 성장이라면 하이-테크 산업처럼 보인다.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절감, 환경 친화적 소재 등 모두 현재 없는 기술만 적용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첨단 기술이 녹색 성장을 이끌 것이지만, 당분간은 로-테크와 이미 상용화된 기술의 최적 조합을 찾아 적용하는 솔루션 역량을 가진 기업이 녹색 성장 시대의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그린 공장을 생각해보자. 에너지 절감을 위해서는 태양 전지 설치, 지열 발전, 에너지 효율적인 건축 소재의 개발 등 최첨단의 신기술을 개발하여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재 상용화된 기술만 잘 적용해도 현재 에너지 소비량의 20-30%는 충분히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건물 안과 밖의 공기를 교환할 때 발생하는 열 손실을 막거나, 열 누수를 막는 단열 유리창을 설치하거나,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사용된 자원을 재활용하거나, 폐기되는 제품에서 필요한 재료를 다시 추출하는 등의 기존 기술들만 잘 적용해도 당분간 녹색 성장 시대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기업 내 고탄소 기능의 분사로 경쟁력 확보
기업 내 가치 사슬은 간단하게 연구개발-물류-생산-마케팅-유통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이 물류, 생산, 그리고 유통이다. 따라서 기업이 탄소 배출량 거래제 하에서 이 기능들을 계속 보유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만약 어떤 기업이 연구개발이나 마케팅 기능에서 차별화 우위가 있고, 고탄소 기능을 운영하는데 부담을 느낀다면, 고탄소 기능을 분사시키고 나이키와 같이 연구개발과 마케팅과 조직 기능만 유지하는 기업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류나 생산 기업과 같은 고탄소 기업들은 이렇게 분사된 타사의 기능들은 흡수하면서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한 대규모 투자 자원을 조성하고, 그 결과를 다시 대규모로 적용시키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나가 경쟁 우위를 창출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성 향상을 위한 클러스터 강화
기업들이 에너지의 생산, 유통, 배급을 공유한다면 각자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다. 공동 인프라를 사용함에 따라 투자비용도 줄일 수 있고, 공동으로 에너지를 구입하는데 따른 교섭력도 확보할 수 있으며, 자가 발전을 해서 값싸게 생산한 파트너의 여분의 에너지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에너지 활용율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에는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클러스터가 강화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LCD 관련 업체가 각자의 라인을 모두 합쳐 하나의 라인으로 만든다면, 에너지 대량 구매에 따른 교섭력을 확보하고, 물류나 패키지에 따른 에너지 사용량도 줄일 수 있으며, 서로 생산한 값싼 전기를 교환함으로써 원가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녹색 비즈니스 모델로의 변화
결국 녹색 성장은 단지 신사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 경쟁 방식의 변화, 기업 구조의 변화, 산업 구조의 변화 등을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일 수 있다. 이는 제조 기업이든 서비스 기업이든 신재생 에너지를 통한 녹색 성장을 기회 삼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업들은 녹색 변화에 대응할 녹색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업은 ‘가치를 준 대상에게 돈을 받는다’는 전통적 고정 관념을 극복하고, 새로운 탄소 시장을 이용하여 고객에게 주는 가치의 흐름(value stream)과 수익의 흐름(revenue stream)을 분리시키는 창의적인 녹색 발상을 해야 한다(<그림> 참조). 앞서 언급한 보쉬-지멘스(Bosche-Siemens)의 브라질 냉장고 사례도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의 결과이다.
이를 통해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에서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직접적인 비용을 탄소 시장에 전가시키며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사업화하여 새로운 수익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 때 독창적인 탄소 저감 기술이나 프로세스를 가진 기업은 이를 블랙박스화시킬 것인지, 라이센싱하는 사업을 할 것인지, 컨설팅 서비스를 할 것인지, 위탁 판매하는 업체를 선정하고 그 업체에 투자를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자사 수익을 극대화 시키고 새로운 사업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네트워크 업체나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포털, 소프트웨어, 컨텐츠, 전자상거래 등 수많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기업은 단지 수동적이거나 신사업 중심의 관점으로 녹색 성장에 대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사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미래 권력 변화와 수익원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이에 합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녹색 성장이냐, 녹색 쇼크냐는 기업의 준비에 달려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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