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mas Alexander Cochrane은 나폴레옹 전쟁 때 활약했던 영국 해군의 유명한 '스타'입니다. 이 사람은 정말 스타라고 할 만한 것이,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의 모험담을 그린 유명한 소설들, 즉 C.S. Forester의 Horatio Hornblower나, Patrick O'brian의 Jack Aubrey 시리즈는 모두 이 코크레인이라는 사람의 일생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참고로, Jack Aubrey 시리즈는 최근 한국에서도 황금가지 사에서 '마스터 앤드 커맨더'라는 제목으로 그 1편이 출간되었고, Hornblower는 그보다 전에 한글판이 연경사에서 나왔습니다. 다만 Hornblower 시리즈는 번역이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습니다. '포도탄'에 대한 주석을 '포도찌꺼기로 만든 포탄'이라고 달았을 정도니까요. 꼭 번역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는 혼블로워가 별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최근 출판된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어떨런지 모르겠네요.
혼블로워도 샤프(Sharpe) 시리즈처럼 BBC에서 미니시리즈로 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시즌이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송이 되었지요. '정복자'라는 제목이었나 ? 저는 그 중에서 'Lieutenant Hornblower' 편을 영화화한, 'Mutiny (반란)' 편을 보았는데, 예, 꽤 재미있었습니다. 소설을 영화화하면 재미가 영~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최소한 'Mutiny' 편은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실은 제가 Sharpe 시리즈를 접하게 된 것도, 우연히 보게된 그 혼블로워 미니시리즈 덕택이었지요.
이야기를 코크레인으로 되돌리자면, 이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귀족 출신입니다. 제9대 Dundonald 백작의 아들로 태어나, 나중에 제10대 백작이 됩니다. 그러나 그와는 상관없이, 육군과는 달리 매관매직의 전통이 없던 해군의 규정대로, 사관생도의 신분인 midshipman부터 시작하여, 장교 임관 시험에 합격한 뒤 lieutenant가 되는 일반적인 승진 절차를 거칩니다. 여기서 lieutenant라는 계급은 중위나 대위를 말한다기 보다는 그냥 함장이 아닌 모든 하급 해군 장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현대의 해군 계급과 굳이 비교를 하면 소위부터 소령정도까지에 해당한다고 보면 얼추 맞습니다. 당연히 젊은 lieutenant도 있고, 40대 후반의 lieutenant도 있었습니다.
정식 함장 (post-captain)으로 임명되기 전에, lieutenant는 일종의 임시 함장의 계급인 commander라는 계급에 임명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코크레인도 1800년에, 최초의 자기 배인 sloop (150~300톤 정도의 가장 작은 군함) HMS Speedy의 commander로 임명됩니다. 이 직위의 정식 명칭은 'Master & Commander' 라고 하는데, 위에서 제가 언급한 잭 오브리 시리즈의 첫편 제목이자, 몇년 전에 러셀 크로우가 주연한, 잭 오브리 시리즈 중의 'Far Side of the World'의 제목이기도 하지요. 영화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 안봤... 못봤습니다. 아무튼 소설 속의 잭 오브리가 처음 커맨더가 되면서부터 이 긴 20편 짜리 시리즈 소설이 시작되는데, 그때 잭 오브리가 맡은 배도 코크레인이 맡은 배처럼 sloop이었고, 이름도 HMS Sophie였습니다. 작가 패트릭 오브라이언은 애초에 코크레인 경을 이 소설 주인공 잭 오브리의 모델로 삼았었기 때문에 소설 속 군함의 이름도 실제 군함인 HMS Speedy와 비슷하게 지었지요.
(이 작은 배 HMS Speedy 호는 함장 잘 만난 덕택에 여러가지 그림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코크레인의 최초의 배인 Speedy는 정말 작은 배로서, 고작 14개의 장난감같은 대포와 54명의 선원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당시 가장 작은 전열함이 74문의 거포를 실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작은 배지요. 보통 sloop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못했고, 연안 경비나 연락선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코크레인은 번뜩이는 천재성과 용기로, 이런 배로도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한번은 스페인 전함에서 사로잡힐 뻔 하다가, 덴마크 국기를 내걸고 '배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 라는 핑계를 대고 빠져나오기도 하고, 또 한번은 적의 프리깃함에 쫓기다가 아무래도 결국 따라잡힐 것 같자, 밤에 일부러 작은 불을 켜고 유인하다가, 나무통에 그 촛불을 살며시 내려놓고 바다 위에 떠나보낸 뒤 반대방향으로 도주하는 등, 이야기 거리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패트릭 오브라이언이나 C.S. 포레스터가 다 소설 속의 에피소드로 써먹습니다.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스페인의 지벡(xebec) 프리깃함인 El Gamo 호를 나포했던 건이었습니다. 고작 14문의 대포와 54명의 선원을 태운 Speed가, 32문의 대포와 319명의 선원을 가진 엘 가모 호를 포획한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해군의 경우 육군과는 달리 지형지물을 이용할 수도 없고, 기습을 할 수도 없으며, 명백한 화력의 차이는 정말 극복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그러나 코크레인은 미국 국기를 내걸음으로서 엘 가모 호의 높은 갑판에 장착된 대포가 사격을 할 수 없는 정도의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뒤, 비로소 영국기를 휘날리며 전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국기 바꿔 달기가 불법은 아니었답니다. 전투 직전에 제대로 된 깃발을 내걸기만 하면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상대방 군함에 전투원을 보내어 육박전을 펼치는 것 (boarding이라고 합니다)이 상식이었고, 압도적인 병력을 가진 엘 가모 호는 갑판에 전투원들을 잔뜩 집결시켜 (이들을 boarding party라고 합니다) 스피디 호에 올라타려 했습니다. 그러나 코크레인은 근접할듯 말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방 갑판에 모인 적의 boarding party에 포도탄을 퍼부었습니다. (포도탄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시대의 포병 http://blog.daum.net/nasica/4973554 참조) 이런 식으로 두어번 적의 전투병들을 약화시킨 다음에 오히려 적은 수의 boarding party로 적함에 뛰어들어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로에도 불구하고, 코크레인의 해군 내에서의 승진은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워낙 다혈질인데다, 특히 상관 및 동료에 대한 직설적인 비난 등으로 인해 많은 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막 임관되자 마자 선임 장교와 싸우다가 권총 결투를 신청하는 등 코크레인은 얌전한 스타일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런 행동들로 인해 군법회의에 두어번 회부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Basque Roads (프랑스의 비스케이 만에 있는 항구)에 있는 프랑스 함대에 대한 화공선 작전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나자 일개 함장인 주제에 총 사령관인 갬비어 (Gambier) 제독을 정면 비난하여, 격분한 갬비어 제독이 군법회의를 요청하기도 한 사건은, 해군 내에 그의 악명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과감한 작전으로 전공을 많이 세웠기 때문에, 그의 대중적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소설 속의 혼블로워나 잭 오브리가 지중해에서 펼친 많은 수륙양면 작전은 모두 코크레인의 실제 활약에 근거한 것입니다. 잭 오브리가 나중에프랑스 해군에 나포되어 포로가 되는 사건까지도요.
코크레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이 양반이 하원의원으로 지역구에 출마했을 때였습니다. 당시 영국 지역구 선거는 완전 부패의 천국으로서, 투표인단의 투표결과는 모두 기명으로 표시되었고, 공공연하게 1표당 5기니의 값이 매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코크레인은 단 한푼의 뇌물도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낙선했습니다. 그런데, 낙선하고 나서, 코크레인은 자기에게 표를 준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무려 10기니의 사례금을 줍니다. 1년뒤, 같은 지역구에 코크레인이 또 출마했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사후에 10기니를 받을 것을 기대하고 너도나도 코크레인에게 투표를 합니다. 이렇게 당선된 코크레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싹 닦고 한푼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그 다음해 선거에서는 낙선을 하지요.
그러다가 코크레인은 1814년에 대규모 주식 사기 사건( 1814년, 런던 주식 시장을 뒤흔들었던 사건 http://blog.daum.net/nasica/6862328 참조)에 휘말려 유죄판결을 받고 장터에서 머리와 두손을 형틀에 묶여 공공연히 모욕을 받고 1천파운드의 벌금을 내라는 판결을 받습니다. 그리고 물론 기사 작위도 취소되고 해군에서도 쫓겨나지요. 그가 진짜 이 사기 범죄에 가담했는지 여부는 오늘날까지도 불투명하지만, 아무튼 당시 그의 대중적 인기로 인해, 그 벌금 1천파운드는 사람들이 모금해준 돈으로 대납할 정도였습니다. 또 지지자들의 폭동을 두려워한 당국이 형틀에 묶이는 형벌은 면제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이런 치욕을 당한 코크레인은 바로 그 다음 해에 다시 하원에 출마하여 다시 당선되어 어느 정도 명예를 회복한 뒤에, 영국을 떠나 남미로 갑니다.
여기서, 코크레인은 한참 독립전쟁 중이던 칠레의 독립군 해군사령관 직을 맡게 됩니다. 뭐, 당시 칠레 독립군에게 대단한 함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O'Higgins라는 이름의 러시아제 44문짜리 프리깃함을 사들여 기함으로 썼던 정도였습니다. 어차피 코크레인이 영국 해군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보였던 것도 74문 이상의 대포를 갖춘 전열함이 아니고 이런 가벼운 프리깃함에서였으므로, 오히려 코크레인에게는 더 어울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영국 해군에서 하던 대로, 주로 다른 국적의 배로 위장한다든지, 허풍을 친다든지 하는 기만 전략을 주로 써서 많은 전과를 올립니다.
칠레에서 코크레인이 펼친 많은 작전 중에, 가장 눈부신 것이자, 또 Sharpe 시리즈의 마지막편, "Sharpe's Devil"의 주요 배경이 되었던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Valvidia라는 칠레 해안의 요새 도시를 점령한 것입니다. 당시 Valvidia는 스페인이 칠레에 군대와 물자를 실어나르는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였고, 또 7~8개의 강력한 요새로 무장된 철옹성이었습니다. 당시 아무도, 더군다나 바다 쪽에서 이 항구를 공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이때 코크레인은 칠레에서 정치적으로 좀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뭐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 나간다고 안샜겠습니까. 칠레에서도 그는 튀는 성격으로 인해 그의 상관들과 잘 화합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특히 그에게 약속되었던 큰 액수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기가 아까웠던 칠레 독립정부는, 그에게 미션 임파서블, 즉 요새도시 발비디아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코크레인이 이 미션을 완수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수륙양면 작전을 펼치기로 하고, 일부 수병들을 보트로 상륙시켜 해안요새의 일부를 기습합니다. 여기서 패배한 스페인 수비병들이 다른 요새로 도망쳐들어가는 와중에, 코크레인의 상륙부대가 함께 섞여들어가는 바람에 그 다음 요새도 어이없이 함락되고 맙니다. 여기서 패배한 스페인 수비병들이 다시 옆의 다른 요새로 도망치고, 여기서도 공격군이 함께 섞여들어가고... 이런 식으로 무려 4개의 요새가 모두 함락되고 맙니다. 마치 기병대가 보병방진 하나를 무너뜨리자 거기서 도망쳐나오는 보병들이 인근의 다른 보병방진으로 숨으려하다가 그 방진마저 무너졌던 사건( [85호] 1812년, 기병대 영광의 순간 http://blog.daum.net/nasica/5880589 참조)을 연상시키지요 ?
아무튼 그날 밤은 그 정도로 그치고, 다음날 아침, 다른 요새들, 특히 그중에서 가장 큰 요새 Niebla를 공격하려하던 코크레인은, 시험삼아 대포를 한방 발사하자마자 그 요새들의 수비병들이 모두 우르르 도망쳐버리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고 합니다. 당시 스페인군 사이에서, 코크레인은 악마로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미신이 팽배해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Sharpe 마지막편의 제목이 Sharpe's Devil 입니다.) 어쨌거나 코크레인은 이런 식으로 발비디아를 점령하고, 칠레 독립전쟁의 큰 분수령을 넘습니다.
실제로 이때 코크레인의 공로를 기려서, 훗날 칠레 해군의 전함 한척은 Almirante Cochrane 호로 명명되었습니다.
이때쯤 코크레인은 그 엉뚱한 성격을 못버리고, 아메리카 대륙을 통일한 지도자로, 당시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나폴레옹을 탈출시킬 생각을 합니다. 천만다행으로 나폴레옹이 이때쯤 사망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남아메리카 대륙이 대규모 전쟁의 광풍에 휩쓸릴 뻔 했던 것이지요.
이후 코크레인은 브라질 해군을 거쳐, 오토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이던 그리스 해군에서도 복무합니다. 다만, 코크레인도 그리스 전쟁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이때쯤 영국에서도 코크레인을 다시 데려오자는 여론이 비등하여, 코크레인은 일종의 금의환향을 하게 되면서 예전의 명예를 되찾습니다. 그는 나중에 서인도 제도 해군 사령관을 지냅니다. 혼블로워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혼블로워도 노년에 서인도 제도에서 사령관직을 지내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 역시 코크레인의 인생에서 모티프를 따온 것입니다.
그는 1850년대의 크림 전쟁때도 지휘권을 바랬지만, 그의 위험천만한 작전 스타일에 질려버린 영국 해군성에서는 그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854년에 명예계급으로 해군 준장에 임명되었고, 1860년에 사망,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습니다.
어떻습니까 ? 진짜 장편의 모험 소설같은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쟎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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