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ason's Harbour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지중해) ----------
(잭 오브리 함장은 두명의 젊은 미드쉽맨, 즉 수습사관들을 불러놓고 곧 있을 정규사관 시험 준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난 자네들이 선박 조종 실무에서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네." 잭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항법술에서는 자네들이 곤경에 빠질 것 같군. 이걸 보라고." 그는 이 젊은 수습사관들이 제출한 숙제를 들어보였다. 이 숙제라는 것은, 매일 정오에 배의 현재 위치를 계산한 것으로서, 고참이든 신참이든 수습사관들 모두가 각자 계산이 끝나자마자 함장실 입구를 지키는 해병대원에게 제출하게 되어 있었다.
"이건 모두 쓸만 해. 게다가 아마 그런대로 정확할 거라고 보네. 하지만 이것들은 어림잡아 경험칙으로 계산된 것일 뿐이야. 아마 시험에서 이론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 질문을 받는다면 말이야, 특히 요즘 시험관을 맡는 함장들은 점점 더 그런 경향이 있네만, 자네들은 어쩔 줄 몰라할 걸세. 하니군(君), 자네가 탄 배의 바람불어가는 방향으로 밀려가는 경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또 로그를 던져 측정한 결과 현재의 항행 속도를 안다고 가정해보게. 그럴 때 원래 진행 방향에서 벗어난 거리를 상쇄하기 위한 보정 각도를 어떻게 계산하지 ?"
하니는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있다가 종이와 시간이 주어진다면 계산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메이트랜드도 같은 대답을 했다. 그 공식은 노리(Norie)의 항법술 교본에 나와 있었다.
잭이 말했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보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말이지, 적함과 마주친 상태에서는 노리 교본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종이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다네. 그런 건 즉각 배의 속도는 배가 바람불어가는 방향으로 밀려가는 각도의 사인(sine)에 비례하니까, 바람불어가는 방향은 보정 각도의 사인에 비례한다고 술술 나와야 하는 거야. 이번 항해 임무에서는 할 일이 그다지 많을 것 같지 않으니, 원한다면 오후에 내 선실에서 자네들의 항법술을 좀더 세련되게 다듬을 수 있을 걸세."
-----------------------------------------------------------------------
저는 비록 지금 그냥 IT 쪽 기업에서 엔지니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원래 꿈은 무협 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군대, 정확히는 카투사로 있을 때 미군 도서관에서 (아마도 카투사를 위해 비치해둔) 신필 김용 선생의 대작들을 처음 접하고 나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무협지는 아마도 장당 50원인가 100원인가 고료가 지급되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아무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오호라, 이거 인터넷을 이용하면 굳이 출판사 찾아가지 않아도 인기 작가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뭐다 ? 결국 뭐 생계형 직장에 얽매여 있다보니, 시간도 별로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제게는 작가 특유의 그 창의성이 없었습니다. '때는 가정 3년...' 까지 써놓기는 쉬우나, 그 다음에 대체 뭘 써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실은 적절히 표절을 해야겄다 라는 음흉한 생각으로) 이런저런 외국 서적을 읽다가 Sharpe 시리즈나 Hornblower 시리즈를 읽게 되었고, '아 이것도 정말 재미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보기 아깝다라는 생각에 이런 블로그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저도 저 나름대로의 뭔가 창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긴 합니다. 원래 생각했던 것은 고려 초기, 거란과의 20여년에 걸친 전쟁 이야기를, 하급 군관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시리즈물이었습니다. (아, 예, 이건 다분히 Sharpe 시리즈의 모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뭐다 ? 단 한 글자도 못쓰고 있습니다. 이건 시간 탓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창의성의 부족과 깊은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요즘은 제 능력의 부재를 인정하고, 차라리 '나폴레옹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일부 봤는데, 저처럼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을 그냥 갈무리해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즈음부터 나폴레옹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 그러니까 혁명, 반혁명, 진보와 수구, 자유와 독재, 침략 전쟁과 민족주의, 법과 경제 질서 등에 대해 나름대로의 관점으로 정리하면 그래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쓰는 이 블로그의 제목이 '나폴레옹의 시대'쟎습니까 ? 하지만 정작 나폴레옹 이야기는 거의 없고 대개가 영국군 이야기입니다. 이건 제가 source로 삼는 책들이 다 영국 작가의 영국군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원래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읽을 때, 알렉산더 대왕 전기는 일단 읽지 않고 데메트리우스나 에우메네스, 포키온 등 그 주변 인물들 전기를 먼저 읽으면, 알렉산더라는 인물은 대체 어떤 인물인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저도 나폴레옹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해서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요즘 나폴레옹 본인에 대해 이것저것 읽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 정말 글을 쓸 때까지는 꽤 긴 시간이 흐른 뒤여야 가능할 것 같아요.
나폴레옹이 어린 시절부터, 뭐 천재성이 보였던 적은 별로 없지만 수학은 아주 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소년 시절에 브리엔-르-샤토의 소년 사관학교를 다닐 때, 학교 선생은 '얘는 수학과 지리, 역사에 능하니까 나중에 해군 장교를 하면 잘 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고 해요. 심지어 나폴레옹 본인도 '간지나는 영국 Royal Navy'에 입대해볼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네요 ! 나폴레옹이 영국 해군 장교다 ? ㅎㅎㅎ 정말 우습군요.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말입니다, 영국 시민이 아닌 외국인은 당시 영국 해군에서 master's mate, 즉 보조 항법사 이상의 지위에는 오를 수가 없었습니다. 즉 정식 임관은 불가능하고, 준사관 계급까지만 허용될 수 있었지요. 나폴레옹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폴레옹이 만약 영국 해군에 입대할 수만 있었다면 정말 훌륭한 해군 장교가 되었을 것 같기는 합니다. 일단 수학에 그토록 뛰어났으니, 최소한 정식 사관 임관 시험에 떨어져서 징징거리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 위에 인용된 소설 한 구절을 보면, 여러분들이 고등학교 때 배우는 삼각함수 같은 것이,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데는 전혀 쓸모 없을지는 몰라도, 19세기초 영국 해군에서는 꼭 필요한 지식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공대 출신이지만, 놀랍게도 대학교 1학년 공업 수학 이후로는 정말 삼각함수라는 것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영국 해군 함장들은 모두 수학의 귀재였을까요 ? 꼭 그렇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당시 프랑스 수학계의 거목이어서 뛰어난 포병 장교가 되었던 것이 아닌 것처럼, 수학을 잘한다고 해서 꼭 뛰어난 해군 장교가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상당수의 해군 장교들은, rule of thumb, 즉 경험상 대충 맞는 계산법으로 배의 위치와 항로를 결정할 수 있었을 뿐이고, 정확한 수학 계산은 못했다고 합니다. 사실 전투 중에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 모두를 판단해야 하는 함장에게 삼각함수 계산을 하고 있으라고 하는 것은 좀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요. 또 많은 장교들은, 수학 계산 능력보다는, 전투에서의 용기와 그리고 가족 중에 빽이 있는가 여부에 따라 임관이 결정되었거든요.
그러면 좀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함장 수학 계산이 어리버리해서, 배가 한밤중에 프랑스 해안가 암초에 덜컥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쟎습니까 ? 그래서 영국 해군에는 master라는 직위의 준사관이 존재했습니다. 즉 전문 항법사를 따로 두었다는 것이지요. 사실 당시 영국 해군에서, 정규 사관들, 즉 commissioned officer들은 군함 운용의 원칙적으로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함포의 운용 및 관리에 대해서는 포술장(gunner)가 있었고, 선체의 유지 보수에 대해서는 목공장(carpenter)가 있었고, 선원들을 동원해서 돛줄을 감고 당기고 하는 선박 조종 실무에는 갑판장(bosun)이 있었으며, 심지어 각종 비품의 출납에 대해서는 사무장(purser)가 따로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준사관(warrant officer)으로서, 군함 운용의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졌습니다.
Bosun's mate (갑판장 보조)
Carpenter (목공장)
Purser (사무장)... 아주 짭짤한 자리라는...
이는 원래 영국 해군, 즉 Royal Navy라는 것의 시작이, 일반 상선들을 긁어모아 구성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즉, 뱃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국왕의 장교들이 지휘를 하고, 실무는 원래 그 상선에서 근무하던 뱃사람들이 담당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영국 군함 앞에 붙는 HMS (His/Her Majesty's Ship)이라는 단어도 거기서 비롯했다고 합니다. 즉, 대부분 일반 상선으로 구성된 영국 함대에서, 일부 배는 정말 상인들의 배가 아닌 영국 왕(또는 여왕) 소유의 배였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왕실 소유 선박'이라는 뜻에서 HMS라는 말을 붙인 것입니다. 실제로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와 싸웠던 영국 해군 중 극히 일부만이 HMS였고, 나머지는 대개 런던 상인들 소유의 배였다고 합니다.
이런 여러 준사관 중에서도, 항법사(master)의 역할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길을 찾는 일이니,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 당연하지요. 사람 몸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쉬울 듯 합니다. 그래서 나포 포상금 (prize money)을 분배하는 비율에서도, 항법사는 일반 정규 사관들과 같은 몫을 받았습니다. (나포 포상금에 대해서는 1804년, 스페인 보물선 함대를 둘러싼 모험 http://blog.daum.net/nasica/5311309 을 참조하세요.)
Jack Aubrey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의 제목이 'Master and Commander'입니다. 사실 이 '마스터 앤드 커맨더'라는 것은 작은 sloop 함의 함장인 Jack의 직위 이름입니다. 아직 정식 함장 (Post Captain)으로 임명되기 전에, 일종의 임시 함장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통은 커맨더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앞에 마스터가 붙는 이유는, 원래 그런 작은 배에는 승선 인원이 많지 않아서, 항법사의 임무를 함장이 겸임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배에서조차도, 원칙적으로 항법사는 따로 두었답니다. 아마 당시 영국 해군 장교들은 나폴레옹과 같은 수학적 재능이 없었나봐요.
'Blog·Cafe > Nasica의 뜻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폴레옹의 여동생과 파리 영국 대사관저에 얽힌 이야기 (0) | 2009.08.12 |
---|---|
왜 나폴레옹은 왕이 아닌 황제가 되었을까 ? (0) | 2009.08.10 |
왜 영국과 스페인은 사이가 안 좋았을까 ? (0) | 2009.08.01 |
코크레인 경의 소설같은 삶 (0) | 2009.08.01 |
1814년, 런던 주식 시장을 뒤흔들었던 사건 (0) | 2009.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