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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산업쓰레기를 황금으로…재활용 향한 ‘미다스의 손’

지식창고지기 2009. 8. 30. 17:11

산업쓰레기를 황금으로…재활용 향한 ‘미다스의 손’

한겨레 | 입력 2009.08.30 15:00 | 수정 2009.08.30 15:10 |

 

[한겨레] 이재천 박사, 버려진 컴퓨터 등에서 유용금속 추출 성공

폐휴대전화 한해 1500만대…정보화시대 '제2의 자원'

미래 과학기술 현장

11.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
12.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
13. 이산화탄소 저감 및 처리기술 개발사업단


1500만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휴대전화기 수다. 이 가운데 약 100만대가 재사용(reuse)되고, 약 250만대가 재활용(recycle)될 뿐이다. 나머지 1150만대는 폐기처분된다.

버려지는 휴대전화기 인쇄회로기판(PCB)엔 금, 은, 팔라듐 같은 귀금속들과 구리, 니켈, 주석 등 유용 금속들이 높은 밀도로 모여 있다. 1㎏의 금을 얻으려면 약 1000t의 천연광석이 필요하지만, 폐휴대전화기는 약 3t(약 3만대)이면 된다. 폐휴대전화기를 전부 재활용한다고 가정하면, 매년 500㎏의 금을 얻을 수 있다. 폐휴대전화기는 정보화 시대의 또다른 '광석'인 셈이다.

지난 18일 대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만난 이재천(52·사진) 박사는 '도시광산'이라 불리는 각종 폐전기·전자기기로부터 귀금속이나 유용 금속 등을 높은 순도로 분리·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의 기술은 '산업쓰레기'를 '산업자원'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이 박사는 어떤 계기로 '산업폐기물'에 주목하게 됐을까? "1986년 금속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 동력자원연구소(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입소해 처음 시작한 연구는 '아이티(IT) 소재용 초고순도 텅스텐 제조'였습니다. 천연광석에서 유용 금속을 얻기 위해선 '분리, 추출, 정제, 고순도화' 등의 제련 과정을 밟게 되는데, 저는 당시 텅스텐광석으로부터 초고순도 텅스텐 제련기술 개발 연구를 담당한 거죠. 그런데 제가 연구를 의뢰한 광산회사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 겁니다. 광물자원이 고갈되고, 환경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광산 개발에 대한 경제적·심리적 부담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광산회사들이 문을 닫고 더는 광석을 캐내지 않으면 제가 연구할 대상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산업폐기물'이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경제가 성장하면서 버려지는 전기·전자제품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죠. 이들로부터 유용한 금속들을 뽑아낼 수 있다면, 환경도 보호하고 자원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이후 이 박사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건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불량 칩이었다. 반도체칩에는 '본딩 와이어'(bonding wire)라는 매우 얇은 금속이 쓰인다. 본딩 와이어의 소재는 금이다. 전기 전도도가 아주 높고, 산화물을 만들지 않으며, 연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반도체칩 1t당 200~600g의 금이 들어 있습니다. 일반 광석에서 금을 회수할 때 1t당 3g만 있어도 경제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에 비하면 불량 반도체칩은 '노다지'인 셈이죠."

그는 자신의 광석 제련 기술을 반도체칩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먼저 반도체칩을 적절히 분쇄하면 비금속 성분은 분쇄가 잘 되어 미립자로 남는 반면, 분쇄가 잘 되지 않은 금속 성분은 입자가 큰 형태로 남게 된다. 이를 체질하면 손쉽게 비금속 성분과 금속 성분으로 분리할 수 있다. 이때 금은 매우 가는 선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비금속 성분에 포함된다. 이를 진한 질산과 진한 염산을 1 대 3으로 섞은 왕수(royal water)를 이용해 추출하는 것이다. "만약 금이 분쇄 이후에 금속 성분에 포함됐다면 왕수로 추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됐을 겁니다. 왕수에 다른 금속들도 녹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금이 들어 있는 반도체칩에 독특한 방식으로 광석 제련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죠."

폐반도체칩에서 금을 분리·추출·정제·고순도화하는 데 성공한 이 박사는 1995년부터 다른 폐전자기기에 눈을 돌렸다. 바로 '개인용 컴퓨터'(PC)였다. 본격적인 정보통신 시대에 접어들면서 버려지는 컴퓨터가 급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폐피시 재활용 기술 개발에 대한 열정은 점점 커져 갔으나, 당시 국내에선 공동 연구를 진행할 기업이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산업폐기물'을 자원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낙담하고 있던 차에 일본자원환경총합연구소(현 AIST 환경관리기술연구부문)에서 공동 연구 제안이 들어와 함께 연구를 수행하게 됐죠."

1997년 6월, 6개월의 공동 연구를 마치고 연구소로 복귀한 그에게 작은 재활용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 한 분이 찾아왔다. 폐피시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려는데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이 박사는 그의 열정과 안목에 감동해 흔쾌히 공동 연구를 수락했다. 연구비가 문제가 됐는데 때마침 정부에서 21세기 프론티어사업의 하나로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이 출범해 장기간 안정적으로 연구비를 지원받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폐피시와 폐휴대폰의 인쇄회로기판에서 귀금속과 유용 금속을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기술은 폐인쇄회로기판을 재활용하기 위해 제련소 용광로에 녹이는 방법을 주로 썼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개발한 기술은 먼저 인쇄회로기판의 금속을 기계적으로 처리한 뒤 환경친화적인 습식회수기술로 유용 금속들을 분리·정제하는 겁니다. 이 기술은 용광로가 필요 없어 소규모 운용이 가능하고, 유용 금속 회수 시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노상 광물자원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이제 그 말은 틀렸다. 새로운 광맥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날로 쌓여 가는 '도시광산'을 어떻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개발할 것인지가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가 됐다.

글·사진 조동영 기자 ijoe0691@hanedui.com

이강인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장 인터뷰

지속가능 발전 위한 '자원 재활용'

2000년 7월, 당시 과학기술부와 환경부는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사회' 구축을 위해 21세기 프론티어 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자원재활용기술개발사업단을 출범시켰다. 사업단은 그간 폐기물 제로화를 위해 고분자 원료화, 유기물 자원화, 유가금속 회수, 무기물 자원화 4개 분야에서 전략적인 기술 개발을 추진해 왔다. 지난 26일 이강인(58·사진) 단장과 사업단의 대표적 성과 등에 대해 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다.

사업단이 출범하게된 계기는 무엇인가?

"21세기 들어 자원 고갈의 위협이 확산되고 환경보전이 우선시되면서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필수적인 사회 패러다임으로 부상했다. 세계 각국은 환경보전을 위해 각종 폐기물 발생을 원천적으로 줄이는 미래 환경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게 됐다. 우리나라도 이에 발 맞춰 자원의 순환적 이용 기술 개발을 위해 장기적 투자에 나선 것이다. '자원의 순환적 이용'은 환경오염을 10~20% 감소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는 등 경제적 효과도 크다."

사업 목표로 '폐기물 재활용률 70% 제고'를 세웠다. 특별히 '70%'인 이유는?

"사업단 출범 당시 폐기물 재활용률은 25% 수준이었다. 산업의 발전으로 매년 증가하는 폐기물 발생량과 재활용 기술의 진보와 상용화 여부 등을 고려해 2010년 폐기물 재활용률을 70%로 정했다. 지난 10년간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사업 목표를 초과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사업단의 대표적 성과 3가지는?

"먼저 혼합 폐플라스틱을 광학적, 전기적 특성과 비중 등을 이용해 각종 재질별로 자동 선별·분류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현재 국내 폐플라스틱 발생량은 약 450만t 수준이며, 이 중 35.2%인 160만t만 재활용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술이 적용되면 폐플라스틱 재활용률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다음으로 매년 60만대 넘게 나오는 폐자동차를 아이티(IT) 기술을 활용해 해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폐자동차 규제 목표인 재활용률 95%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이다.

마지막으로 생활폐기물 소각장 바닥재료를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 바닥재엔 염소(Cl) 함량이 높아 수질을 오염시키고, 철근을 부식시키는 등 문제가 있었다. 이를 개선해 소각장에서 발생한 중금속 성분을 토건 재료로 재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 기술은 내년부터 수도권매립지 등에 적용될 예정이다." 조동영 기자

자세히 알기

● 도시광산 (urban mine)

광산(鑛山, mine)은 땅속에 묻혀 있는 석탄·석유·광석 등 유용 광물을 캐내는 곳이다. 예를 들면 강원도 양양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철광석 광산이 있다. 광산 개발은 산업혁명 이후 큰 활기를 띠었으나, 자원이 고갈되고 환경 문제가 대두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도시에서 배출되는 전기·전자제품 폐기물을 유용한 자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도시광산'이라 한다. 재활용 기술을 활용한 도시광산 개발은 자원 확보와 환경 보호, 두 마리의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다. 현재 일본의 도시광산엔 세계 매장량의 10%에 이르는 금, 은, 인듐, 주석 등이 매장돼 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40조엔에 이른다.

● 제련 (製鍊, smelting)

철, 구리, 납 등 우리에게 유용한 금속들은 자연 상태에서 자철석, 황동석, 방연석 등 '광석'이라 불리는 화합물에 포함돼 있다. 그러므로 유용 금속을 얻기 위해선 물리적·화학적으로 분리·추출·정제·고순도화 작업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틀어 '제련'이라 한다. 광석의 제련법은 크게 뜨거운 용광로에 넣고 용융시킨 뒤 환원반응으로 금속을 얻는 건식 제련과, 광석 가루를 산이나 염기로 녹인 다음 전기로 분해하는 습식 제련으로 나눌 수 있다. 습식 제련은 용광로가 필요 없어 소규모 운용이 가능하단 장점이 있다. 도시광산에서 유용 금속을 얻기 위해서도 제련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재천 박사 팀의 인쇄회로기판 재활용 기술은 습식 제련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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