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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일보] 놀랍고 신비로운 세계 명소 기행 <5> 중국 시안 진시황 병마용

지식창고지기 2009. 8. 23. 11:29

놀랍고 신비로운 세계 명소 기행 <5> 중국 시안 진시황 병마용갱
2200년 전 진시황의 끝없는 욕망

 
  흙으로 만들어진 실물과 같은 크기인 6000여 명의 진용(秦俑)은 건장한 체구에 표정이나 연령이 다양하고 생동감이 넘쳐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자손들이 영원히 평안하기를 바란다(欲其子孫長安)'는 간절한 소망으로 명명된 시안(西安). 이 시안의 옛 이름인 고도 장안은 주나라 수도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진시황이 한·조·위·연·초·제 등 여섯 나라를 정벌하고 천하를 통일한 후 함양(咸陽)이라 명하고 전국의 부호 12만호를 이주시켜 아방궁을 중심으로 대도시를 만들었다.

한·수에 이어 당나라 땐 세계 최대의 도시로 천하사방의 진기한 보물이 모두 모인다 할 만큼 번성했다. 사기 항우본기에 따르면 항우가 병사들을 이끌고 함양을 공략해 진나라왕 자영을 살해하고 궁전을 불태웠는데 불길이 3일동안 타올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흘러 지난 1974년 봄 시안 일대는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 진시황릉 지역인 여산도 예외가 아니어서 농민들은 우물을 파기로 결정했다. 1m쯤 팠을까, 붉은색 토층이 발견됐다.

농민들이 의심을 갖고 지하 4m쯤까지 파내려가자 진시황 병마용갱의 첫 번째 파편이 출토됐다. 마을 남쪽에서는 녹슨 청동화살과 망가진 노기(弩機·쇠뇌의 격발장치) 3개가 발견됐다.

때마침 고향에 와 휴가를 보내고 있던 신화통신 기자는 '2000년 동안 매장된 진시황릉의 병마용갱이 발견됐으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특종을 보도했다. 이 보도를 본 주은래는 20세기 최대의 고대 유물 발굴을 지시해 본격 발굴이 시작됐다.

발굴이 진행되면서 진시황릉 내성에서 1.5㎞ 이상 떨어진 도용부장품이 진시황릉의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난관에 부딪쳤다. 진시황릉 주위엔 진나라 귀족무덤이 수없이 분포돼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초가 발견됐다. 진나라 시대의 무기 중 하나인 동극(銅戟)의 머리 부분에 '진시황 신하 가운데 최고위직인 상방의 지위에 있는 여불위의 감독 하에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흙으로 만들어진 실물과 같은 크기인 6000여 명의 진용(秦俑)은 건장한 체구에 표정이나 연령이 다양하고 생동감이 넘쳐 마치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1호용 갱에는 전차병과 밀집 대형의 보병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군단, 2호용 갱은 궁노병 기병 전차병으로 이뤄진 군단, 3호용 갱은 군진의 지휘부, 4호용 갱은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데 전체 4곳이 군사포진도처럼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진법을 기반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에 앞서 1980년 10월 진시황릉에서 서쪽으로 20m 남짓 떨어진 곳의 지하 7.8m 지점에선 말과 수레 절반 크기의 호화로운 장식과 완전한 형태로 채색된 동거마(銅車馬) 두 대가 출토됐다.

고도의 공예기술과 높은 수준의 야금기술은 고대 청동기 유물 가운데 으뜸으로 손꼽힌다.

흙으로 도자기처럼 구운 완전무장한 병마용갱과 동거마는 2200여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전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지하궁 주변의 병마용과 부장품은 진시황 지하궁전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진시황릉의 지하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또 한번 전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부산서 시안은 대한항공이 주 2회 운항하며 진시황릉은 공항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장순복·대륙항공여행사 대표
  입력: 2007.05.10 14:48 / 수정: 2007.05.14 오후 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