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때의 문학가 겸 정치가 소식(蘇軾)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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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蘇軾)의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중국 사천 미산(眉山) 출신으로서 선비 가정에서 태어났다.
1057년 진사에 급제하여 주부, 첨판 등 벼슬을 하였다. 후에 봉상부(鳳翔府) 관리로 있다가 중앙정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신종황제가 왕안석(王安石) 등을 기용해 신법을 추진하였는데 소식은 사마광을 따라 이를 반대해 지방관으로 좌천되었다. 호주(湖州) 지사로 있을 때 시문으로 조정을 비방하였다 하여 사형을 받을 위기에 놓였으나 황제의 사면으로 죽음을 면하고 황주(黃州)로 유배되었다. 항주의 서호에 가면 소식이 유배시에 만들었다는 길이 있다.
소식은 유교, 도교, 불교의 사상적 영향을 조금씩 받은 사람이다. 유교의 출세사상과 도교의 현실을 도피하는 사상은 첨예한 모순을 이루게 되였고 또한 소식의 세계관에서도 충분히 반영되였다. 소식은 때로는 이른바 <어진 정사>에 의거하여 이상적인 정치를 실시하고 현실을 개혁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거듭되는 타격을 받게 되자 <인생은 꿈같다>고 한탄하면서 현실을 회피하기도 했다.
소식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이지적인 학자이면서 섬세한 감각을 지닌 시인이었다. 시가 혁신운동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논 소식은 시와 사의 계선을 타파하고 사의 사상내용을 일신시키고 그 범위를 넓혀 사 창작의 대표자로 호방한 사 풍격의 대표인물로 되였다.
그는 <강성자, 밀주출렵(江城子. 密州出獵)에서 범을 잡는 담대한 기개로 나라 국경을 지켜야 한다는 애국 열정을 토로하였고 시 <려지탄>에서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호화사치한 생활을 통책하는것을 통해 황제에게 아첨하는 귀족들을 여지없이 규탄했다. <념노교. 적벽회고(念奴嬌.赤璧懷古)>는 감정이 풍만하고 풍격이 호방한 걸작이다. 조국 강산에 대한 열정적인 찬미와 영웅인물에 대한 칭송이 담겨져 있는 이 시는 천고의 명시로 전해내려오고 있다 .
소식은 산문창작에 있어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교전수(敎戰守)>, <석종산기(石種山記) 등 작품은 정치적 견해를 토로했거나 철리적 내용을 담은 산문으로서 사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천명했다.
풍부한 상상, 강렬한 서정토로, 호방한 성격은 소식 작품의 예술적 특색을 이루고 있다. 정치에서 실각한 소식은 만년에 주로 시와 사, 서예창작에 몰두했다. 그는 <시 속에 그림이 있어야 하고 그림속에 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식은 중국 고대 문화 번영에 중대한 기여를 한 사람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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