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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ㆍ재개발 조합장의 末路

지식창고지기 2009. 11. 25. 18:21

재건축ㆍ재개발 조합장의 末路

매일경제 | 입력 2009.11.25 17:33

 

인천 남동구에 사는 이 모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평범한 50대 자영업자였다. 그가 졸지에 '범죄의 길'로 들어선 것은 지난 2005년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상가 '○○쇼핑' 재건축조합장으로 선출되면서부터다. 조합장이 된 다음부터 '별천지'가 펼쳐졌다. 생면부지 건설사 직원들이 그에게 '조합장님, 조합장님'하며 고개를 숙였다. 재건축 시행을 대행했던 컨설팅회사 사장은 수하처럼 그를 모셨다.

술을 즐기지 않았던 이씨지만 한두 번 저녁자리에 초대받다 보니 금세 향락에 빠져들었다. 지난 2008년 3월부터 올해 1월까지 강남 신사동, 서초동에 있는 유흥주점에서 40~50차례에 걸쳐 수천만 원어치 술을 마셨다. 한번 진흙탕에 발을 담그고 나니 거칠 것이 없게 된 것이다.

서울 강남지역 재개발ㆍ재건축 조합장들이 줄줄이 구속된 데 이어 비위 무풍지대였던 경기 파주 재개발 지역까지 비리 행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돈을 건넨 사업자들은 시행사ㆍ시공사ㆍ하도급업체 등 여러 곳이다.

그러나 어떤 비리 종합세트에서도 빠지지 않는 뇌물 종착점은 재건축ㆍ재개발 조합장들이다.

◆ 공무원보다 뇌물 덩치 커

= ○○쇼핑 재건축조합장 이 모씨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향응뿐만 아니라 시행사로부터 시가 7000만원에 달하는 렉서스 승용차를 받았다. 지난해 6월 시공사 선정을 코 앞에 두고 시행사 사장 김 모씨에게 "처 생일도 다가오고 당신 회사와 시행대행 계약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선물을 달라"며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이씨는 검찰수사로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4년 중형에 처해졌다.

재건축ㆍ재개발 조합장은 법적 사업시행자로서 주민들 이익을 위하여 활동해야 하는 '공무원' 신분으로 분류된다.

작게는 수백억 원에서 크게는 수천억 원 사업비를 집행하고 사업에 관계된 시공사 선정, 주민이주 등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파트나 재개발 지구의 가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파워는 더 세진다.

재건축ㆍ재개발 비리에 단골 메뉴로 함께 등장하는 쪽이 인허가 업무 공무원이지만 조합장들의 뇌물수수는 금액에서 이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최근 검찰에 적발된 서울 상도 제11지구 재개발조합 비리사건에서 조합장 최 모씨(66)가 S건설사로부터 받은 금액은 8억원이 넘었다. 물론 조건은 "주택사업을 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검은 돈이 조합장에게만 흘러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입막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씨는 건설사로부터 받은 돈 중 일부를 갖고 조합의 핵심 임원인 총무 및 추진위원들에게 2000만원에서 8000만원까지 뿌리는 '돈잔치'를 벌였다. 조합이 그야말로 '뇌물주식회사'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 추진위 단계부터 뭉칫돈 소요

= 재건축 조합장들이 '검은 돈'을 뿌리칠 수 없는 배경 중 또 하나는 사업 논의 단계부터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구조 때문이다. 사업 시작 첫 단계인 재건축추진위는 주민들로부터 동의를 받아 조합을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각종 법률자문을 받고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 등에서 적지 않은 '뭉칫돈'이 들게 된다.

전직 건설사 임원인 현 모씨(62)는 "추진위원장이나 조합장은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과 법률분쟁이 잦아 법률자문 비용만 해도 족히 수억 원이 넘게 된다"며 "이 밖에도 각종 회식비용도 그렇고 정비업체든 건설사든 '스폰'이 없다면 사업이 불가능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재건축 조합장들의 말로가 '범죄자'로 끝나고 있지만 조합장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줄을 서 있다.

서울에서 재건축 전문 컨설팅을 하는 A사 서모 대표는 "조합장이 단순히 시공사 시행사로부터만 뒷돈을 챙기는 게 아니다. 새시, 발코니 확장, 인테리어 업체 등 아파트 한 채를 짓는데 관계가 되는 사업 종류만 족히 수십 곳이 넘는다. 아예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조합장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이지용 기자 / 우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