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순시대
황제가 죽은 얼마후 요(堯)임금이 천자가 되어 나라이름을 당(唐)이라 정했다.
그리고 요임금의 뒤를 이어 순(舜)임금이 천자가 되고는 나라이름을 우(虞)라 했다.
이들은 모두 검소하게 생활하였고,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를 하였기에,태평성대를 이루었다.
이들의 치세를 요순시대라 한다.
요임금이 제위에 오른지 70여년간은 안정되고 평화스러웠으나, 7년이나 계속되는
홍수로 황하가 흘러넘쳐 민심이 흉흉해 지기도 하였다.
요임금은 이 홍수를 막기위한 치수(治水 : 물을 다스리는 일)의 책임자로 곤(鯤)을
등용하였으나, 9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요임금이 늙어감에 따라 제위를 전 할 후계자를 찾았는데, 요임금에게는 아들이 있었으나
현명하지 못했으므로 천하를 맡아 잘 다스릴 만한 인재를 구한 것이다.
그러던차에 요임금은 순(舜)이란 사람이 매우 효성스럽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줄곧
지켜본 끝에 순의 인물됨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다.
순이 어려서 어머니가 죽자 순의 아버지 고수는 후처를 얻고 그녀에게서아들 상(象)을 낳았다.
순의 아버지는 장님이었는데, 후처의 꾐에 빠져 순을 학대하고, 상을 귀여워 하였으나,
순은 모든 학대를 참으면서도 부모에 효도를 다했다.
이 소문은 요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 요임금은 두 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시집보내어 순을 관찰하게 하였다.
한편 계모와 상의 학대는 더욱 심해져 마침내 서로 짜고 순을 죽이려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들은 순에게 창고의 지붕을 고치게 하도록 하고, 순이 창고의 지붕위로 올라가자 밑에서
불을 지폈다.
순은 미리 준비해간 두개의 삿갓을 가지고 날 듯이 내려와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다시 순에게 우물을 파도록 하고는, 우물의 구멍을 막아 순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순은 위험을 예측하고는, 우물옆으로 빠지는 통로를 미리 파 놓았다가 빠져나와 죽음을모면했다.
순은 우물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서 태연히 평상위에서 거문고를 탓다.
순의 이복동생인 상은 순이 반드시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두 형수에게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리라 마음먹으며 의기양양하게 집에 들어섰는데, 순이 태연하게 거문고를 타고
있음을 보고는 크게 놀랬다.
또한 순은 그런일이 있은후에도 전과 다름없이 부모를 극진히 받들고 동생을 한결같이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요임금은 순의 인물됨을 높이 평가하게 되어 제위를 물려주게 된 것이다.
순황제의 치세에도 요임금 때와 같이 태평성대를 구가하였으며, 특히 요임금이
오랫동안 근심해왔던 치수사업을 곤의 아들 우(禹)를 등용하여 맡기었고, 그는 각고의
노력끝에 마침내 치수사업을 성공하여 홍수의 피해를 막아낼 수 있게되었다.
또한 직책에 맞는 인재를 추천토록 하여 우(禹), 고요(皐?), 설, 후직(后稷),
백이(伯夷), 기(夔), 용(龍), 수, 익(益), 팽조(彭祖) 등 열명을 발탁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였으며,
3년에 한번씩 공과를 따져 승진과 파면을 단행했다.
순에게는 외아들 상균(商均)이 있었는데, 이 아들은 별로 현명치 못하였다.
그리하여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고, 치수사업의 공로가 큰 우에게 천하를 주어 다스리게 하였다.
순은 제위에 오른지 39년이 되던해에 남쪽지방 순행중 창오(蒼梧)에서 병사하여
양자가 이남의 구의(九疑)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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