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하夏 ( BC2205-BC1776 ) 하왕조 계보, 제1대 성탕

지식창고지기 2009. 5. 31. 16:24

하왕조 계보

 

 

제1대 성탕

成湯

? ~ ?


태을(太乙)이라고도 한다.

은나라 왕 상탕의 조상은 제곡(帝?)의 아들인 설(契)이다.

설(또는 계)의 어머니는 유융씨의 딸인 간적(簡狄)으로, 어느날 한 마리 검은새가 날아와 알을

떨어뜨리고 갔는데, 그녀는 그 알을 집어 먹고 나서 계를 잉태하였다.

이렇게 태어난 계는 요순시대에 교육을 담당하던 관직에 등용되어 그 임무를 충실히 하였다.


탕은 계의 12대 자손이었다.

상탕은 자애롭고 인자한 정치를 펼쳐 은나라는 날이 갈수록 융성해졌다.

당시 중앙의 하(夏)나라는 폭군인 걸왕의 시대 였는데, 상탕은 몸을 굽혀 신하의 예로써 하나라를 섬겼다.

그는 현명하기로 이름높던 이윤(伊尹)을 초청하여 하나라 걸왕에게 추천해 올렸다.

이윤이 신하로 일하게 되면 조금이나마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색에 빠져있던 걸왕은 이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이 이윤은 돌아와 상탕을 섬겼다.

원래 이윤은 산동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상탕이 그의 뛰어남을 알고는 사람을

보내어 나랏일을 부탁했다.

하지만 걸왕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던 이윤은 정치에 나설뜻이 없다며 숨어살기를 바랐다.

그 뒤 탕왕은 더욱 극진한 예를 갖추어 사람을 보냈으나, 이윤은 거듭 사양하였고,

이렇게 오가기를 다섯 번이나 되풀이한 끝에 이윤이 탕왕의 인물됨을 확인하고 탕의 청에 응했다.


그 무렵 하의 출신인 관용봉이 걸왕의 노여움을 사 죽임을 당한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탕왕은 신하를 보내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걸왕은 크게 노하여 탕을 초대하는 척하며, 탕이 도착하자마자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이렇게 탕의 목숨이 위태로와지자, 이윤은 걸왕이 좋아하는 미녀와 많은 보물을 바쳐 탕왕을 구했다.


그 후 걸왕에게서 완전히 민심이 떠나자, 탕은 군사를 일으켜 걸왕을 토벌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왕조를 멸망시키고, 은나라(상 : 商) 왕조를 세웠다.

탕왕이 천자가 되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자 천하는 태평성대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 뒤 7년간이나 가뭄이 계속되어 백성들의 삶이 곤궁해졌다.

이에 왕은 태사(太史- 천문을 맡은 관리)에게 그 까닭은 점치게 하자, 태사는

“사람을 바쳐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비가오지 않을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에 탕왕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비가 오기를 바라는 것은 백성을 위함인데, 때문에 단 한 사람 백성이라도 희생되는

것은 아니된다. 만약 사람을 희생물로 바쳐야 한다면 내가 그 희생자가 될 것이다.“

라고 말하고, 목욕을 하고 난후 손톱을 깎고, 머리털을 잘랐다.

그리고 스스로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다음 단으로 나아가, 자기 자신을 꾸짖고, 여섯가지의 말을 하늘에 아뢰었다.

“지금 이렇듯 백성이 고통받고 있는 것은 부덕한 제가 정치를 하여 절제하지 못하고

문란해졌기 때문입니까?

또한 제가 백성을 모두 살피지 못하여 백성들이 직업을 잃고, 곤궁해졌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저의 굴전이 너무나 화려하기 때문입니까?

또한 궁궐에서 여자 때문에 정치가 어지럽혀졌기 때문입니까? 뇌물이 성하여 도덕이

무너졌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아부하는 말로 인하여 어진사람이 배척당하기 때문입니까?“

탕왕의 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억수같은 소나가기 쏟아지기 시작하였으며,

이 비는 가뭄으로 허덕인 천하를 적시기에 충분하였다.

후에 탕왕이 죽고, 그 뒤를 태갑(太甲)이 이었다.


원래 태자였던 태정(太丁)이 일찍 죽었기에 그 아들이었던 태갑이 왕위를 잇게되었다.

태갑은 어리석고, 정치를 등한시 하였으며,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았다.

이에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 이윤은 태갑을 탕왕의 무덤 가까이 있던 별궁에 유폐시켰다.

그 후 3년간 태갑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3년동안 매일같이 탕왕의 업적을 기리고

자신의 부덕함을 반성하였다.

그런 태갑의 변한 모습을 확인한 이윤은 비로소 그를 다시 궁으로 모셔와 왕위에 복위시켰다.

이로써 태갑은 어진 정치를 펴고, 평생 덕을 닦는데 노력하여, 제후들을 모두 복종케 하였다.

<현조사희도 玄鳥賜喜圖 >

간적簡狄은 고대 전설 속의 제곡의 비妃로 현조의 알을 삼키고 설契을 낳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