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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특급호텔` A380 신익수 기자 탑승기

지식창고지기 2009. 11. 26. 17:33

`하늘을 나는 특급호텔` A380 신익수 기자 탑승기

매일경제 | 입력 2009.11.26 16:47 | 수정 2009.11.26 17:07

 

스무고개 퀴즈부터 풀어볼까. 축구장 68m보다 5m 더 긴 길이. 용량으로는 탁구공 3500만개가 들어간다. 높이는 2층 버스(4.6m) 다섯 대. 날개 위에는 마티즈 70대를 나란히 세울 수 있다. 무게는 가장 무겁고 크다는 향유고래(43.5t) 12마리를 합친 560t이다. 그런데도 속도는 마하 0.96. 한마디로 날아다니는 괴물이다. '하늘을 나는 특급호텔'로 불리는 A380. 에미레이트항공이 다음달 14일 동북아시아 최초로 인천~두바이 노선에 투입하는 세계 최대 규모 복층형 여객기다. 이 비행기 내부는 한층 더 놀랍다. 개인용 미니바에 담소까지 나눌 수 있는 바라운지까지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샤워스파시설. 매일경제신문이 국내 언론사 최초로 이 거대 여객기에 탑승해 취재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지난 19일 방콕 국제공항. 바로 눈앞에 이 거대한 괴물이 '고오~' 숨을 죽이고 서 있다. 정확히 밤 9시 10분(현지시간) 이륙해 6시간 동안 기자를 태우고 두바이 국제공항까지 갈 4000억원짜리 A380. 서울 강남아파트 99㎡짜리 400채와 맞먹는 플라잉 특급호텔 탑승기를 소개한다.




■ 19일 오후 8시 40분A380의 감동은 출발지 호텔에서 시작된다. 에어포트 리무진 서비스를 위해 나온 차량은 BMW 730. 기사 말이 더 충격적이다. "760이 아니라서 미안하다(Sorry, it's not 760)"는 것.

리무진 서비스는 아우디 A6나 BMW 7 시리즈가 기본이다.

공항에 도착하면 더 놀랄 일이 벌어진다. 차문이 열리면 'Mr. Shin' 팻말을 든 아리따운 공항 승무원이 기다리고 있다.

티케팅을 도와주는 천사다. 지긋지긋한 보안 검색과 입국 심사를 거쳐야 하는 짜증도 훨훨 날아간다. A380 퍼스트ㆍ비즈니스 승객들에게 제공되는 패스트트랙(fast-track) 서비스 덕분이다.

일사천리로 모든 체크인 절차가 끝나면 꿈의 A380에 비로소 오를 수 있다.

플라잉 특급호텔로 향하는 코스도 다르다. 총 정원 517명에 이르는 에미레이트항공 A380기는 복층이다. 1층은 이코노미 승객 전용이고 2층은 퍼스트와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

층이 다르니 엘리베이터도 다를 수밖에 없다. 2층으로 들어서자 별천지가 펼쳐진다.

기자에게서 코트를 받아든 승무원은 좌석 사이에 설치된 개인 전용 옷장에 옷을 걸어준다.

그리고 눈에 확 다가오는 전자동 시트. 길이 2m8㎝에 180도 플랫베드(flat bed)로 변신하는 전자동 좌석엔 기자가 눕고도 40㎝ 이상 여유로운 공간이 남는다.

2m7㎝인 농구스타 서장훈에게 딱 맞을 크기. 또 다른 감동은 개인용 미니바다. 앙증맞은 미니바엔 콜라와 주스에다 와인까지 없는 게 없다.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해 주는 전동식 슬라이딩 도어를 닫으면 완벽한 혼자만의 객실로 돌변한다.

퍼스트클래스가 특급호텔에나 나올 법한 '프라이빗 스위트(First Class Private Suite)'로 불리는 이유를 알 만하다.

전신 마시지 버튼을 누르자 시트가 잔잔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몸도 심장도 함께 떨린다. 눈물이 날 것 같다.

■ 19일 밤 10시 30분 기자가 서 있는 곳은 퍼스트클래스 앞 왼쪽에 놓인 샤워스파(Onboard Shower Spas). 3만8000피트 상공에서 마하 0.9 속도로 질주하는 비행기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니.

얼이 빠져 있는 기자에게 스파 전용 크루(직원)가 가운을 가져다 준다. 옅은 고동색 계통으로 중후한 느낌이다.

샤워스파 문을 열자 믿을 수 없는 공간이 속살을 드러낸다.

한편에 앙증맞게 놓여 있는 스파용 샴푸와 컨디셔너 브랜드는 타임리스, 불가리. 하나하나가 명품이다. 타월도 최고급. 명품 패브릭 브랜드로 꼽히는 프렛(Frette) 제품이다.




놀라운 건 전신거울. 기자의 통통한 몸매가 눈에 박힌다. 그 옆엔 3칸짜리 수납공간. 맨 위칸엔 드라이어까지 있다. 마치 특급호텔 욕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다.

놀라운 건 온열바닥. 맨발로 살짝 걸으니 따뜻한 열기가 느껴진다. 크루의 설명이 이어진다. "플러스 마이너스 버튼을 누르면 온도 조절도 가능하다"는 것. 발바닥 온도까지 고려해 주다니. 섬세한 배려다.

샤워부스는 일반인 4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자그마한 크기. 솔직히 '스파급'은 아니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샤워 시간은 30분. 물 공급을 위해 샤워는 5분 단위로 잠시 끊어진다. 바닥은 아늑한 대리석이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샤워기를 튼다. '쏴아….' 정말 따뜻한 물이 펑펑 쏟아진다.




감동의 타임리스 스파 제품 비누를 몸 구석구석 바른다. 이 비눗물이 중력가속도로 3만8000피트를 수직 낙하한 뒤 지상에 닿는다니. 남은 시간은 우측 상단 타이머가 자동으로 알려준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끝내는 데 걸린 시간은 약 4분. 개운함에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더욱 놀라운 건 샤워가 끝난 다음 코스. 샤워스파 앞에는 간이 바가 있다.

"수고하셨다"며 활짝 웃는 낯으로 크루가 건낸 샴페인 '2000 돔 페리뇽'. 테이스팅노트(시음기)에 따르면 '신선하고 크리스털처럼 반짝이며 날카롭기까지 한 독특한 채소와 바다 향이 먼저 후각을 자극한다. 점차 흰 후추, 치자나무 향이 느껴진다'는 바로 그 최고급 프랑스 샴페인. 볼 것도 없다. 원샷.

■ 19일 밤 11시 30분 아직 3만8000피트 상공에서 샤워를 했다는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 퍼스트ㆍ비즈니스 클래스 부사무장인 한국인 김선홍 스튜어디스(34)가 바라운지로 기자를 안내한다.

비즈니스클래스 뒤편에 마련된 바라운지. 호주 시드니 하버브리지 펍에서 스타일리시한 '바' 하나만 따로 떼놓은 듯한 분위기다. 바 양쪽으로는 4명까지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가죽 소파가 놓여 있다.




바 앞쪽엔 42인치 초대형 화면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명품으로 통하는 '2000 샤토 라 라귄 오메독'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메뉴 리스트를 확인하는 순간 정신이 확 깬다.

'캐슈넛 소스를 곁들인 소고기 꼬치요리. 튀김 셸 안에 든 아시아 스타일 닭고기 샐러드. 타이 스타일로 요리한 어육 완자 요리. 버섯을 가득 넣은 퍼프 패스트리….' 종류만 20가지에 달한다.

이 모든 게 무료라니.

가볍게 '훈제 도미 롤' '어린 파인애플 위에 올린 얇게 저민 닭고기' '피클을 곁들인 새우 튀김'을 주문하고 간식으로 '훈제 칠면조 고기가 들어 있는 미니 클럽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다. 소스의 알싸함과 함께 퍼지는 행복감.

비행기 타면서 이런 기분이 들어도 되는 걸까. 정말 내리기 싫다.

■ 20일 0시 30분 오전 3시 두바이 국제공항에 닿으려면 2시간30여 분이 남은 시간. 마음은 마냥 깨어있고 싶은데 눈꺼풀이 자꾸 감긴다. 스위트 자리로 컴백.

숙면을 위해선 수면용 영화가 제격이다. 17인치 고해상도 스크린 온(On). 160편이 넘는 최신 영화(미개봉작 포함)들이 줄줄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

잠들기 딱 좋은 해리 포터 선택. 그리고 좌석을 눕힌다. 180도로 완전히 펴지는 허리. 힘들게 운반해 온 이코노미용 목베개가 쑥스러운 듯 가방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




몸이 뻐근하다. 다시 전신 마사지 버튼도 온. 터치스크린에서 '웨이브(Wave)'를 클릭하자 전자동 시트가 숙련된 마사지사처럼 온몸 구석구석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잠깐 하늘(천장)을 올려다 보는데 뭔가 반짝이는 깨알들이 있다. 별이다. 오리온좌도 있고 카시오페이아도 있다. 시차 증후군 방지를 위해 A380이 선보인 무드 라이팅이다.

시간대별로 햇살 비치는 낮으로 변신도 하고 이렇게 밤으로 탈바꿈한다. 3만8000피트 상공을 나는 비행기 안에서 보는 또 다른 '하늘'이라. 갑자기 시원한 찬바람이 '휭' 지나가는 느낌이다.

■ 20일 오전 3시 까무룩 잠이 들었을까. "랜딩을 위해 좌석을 세우고 벨트를 매 달라"는 승무원 말에 화들짝 눈이 떠진다. 샤워에 마사지까지 받으며 너무 편하게 잔 덕분일까.

수십 번 비행기를 타 봤지만 기내에서 '개운하다'는 느낌이 든 건 처음이다. 두바이 공항으로 향하는 랜딩. 또 하나의 감동이 남아 있다. 개인용 모니터 '에어쇼' 버튼을 누르자 마치 조종석에서 보는 듯한 하늘이 펼쳐진다.

기자는 호기심이 많다. 도대체 랜딩을 하는 공항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내릴 땐 또 어떤 광경이 펼쳐지는지 늘 궁금했다. 그러니 기자에게 이건 충격이다.

A380은 꼬리와 항공기 조종석 앞, 두 곳에 자체 카메라를 설치해 이륙과 랜딩 순간을 모니터를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파이널 턴을 마친 A380 속도가 300마일까지 줄어든다. 진동도 적다.

눈앞에 빛으로 가득 찬 두바이 공항이 그대로 들어온다. 유연하게 고도를 낮추던 A380이 활주로 라인과 정대(라인과 비행기를 일직선이 되게 맞추는 동작)를 한다. 500피트. 400피트. 300피트. 마치 내가 조종간을 잡고 랜딩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560t짜리 대형 괴물의 바퀴가 지면을 스치는 가벼운 충격. 환상 여행을 끝내고 어서 '현실'로 돌아가라는 신호 같다.

눈 깜짝할 새 지나버리는 3만8000피트 상공에서 A380의 질주. 이 비행은 정말이지 권하고 싶지 않다. 은밀한 호사를 혼자만 오래오래 느끼고 간직하고 싶어서다.

그래도 타고 싶은 독자들에겐 경고 하나. 한 번 높아진 눈은 낮추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 내달 14일부터 한국에서도 탈수 있어요…에미레이트항공 인천~두바이 노선 투입

= A380 비행기는 에어버스 차세대 항공기로 초대형 초호화 친환경 복층 구조다. 국내에는 에미레이트항공(www.emirates.com/kr)이 다음달 14일 인천~두바이 노선에 처음 투입한다. 한국에 복층형 비행기가 들어오는 것도 처음이다. 에미레이트항공은 12월 14일부터 2주간 월ㆍ수ㆍ금요일 주 3회 운항한 뒤 12월 27일부터는 매일 운항할 예정이다. 현재 A380기는 에미레이트항공을 포함해 전 세계 3개 항공사에서 19대만 운항하고 있다. 퍼스트와 비즈니스 클래스 가격은 448만원과 330만원부터. 이코노미클래스는 110만원부터다.

[방콕ㆍ두바이 = 신익수 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