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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암각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나

지식창고지기 2009. 12. 23. 16:13

반구대암각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나

연합뉴스 | 입력 2009.12.23 06:32 | 수정 2009.12.23 08:16 |


문화재청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신청
(울산=연합뉴스) 서진발 기자 = 선사시대 바위그림으로 유명한 반구대암각화(국보 제285호)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문화재청은 23일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국보 제147호)이 있는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과 두동면 대곡천 일대를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묶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를 신청했다.

잠정목록은 세계유산이 되기 위한 예비목록으로 유네스코 사무국이 각국의 신청을 받아 심사를 거쳐 등재하며, 최소 1년 전에 잠정목록으로 올린 유산만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자격이 부여된다.

대곡천 암각화군의 핵심은 반구대암각화다. 선사시대에 선조들이 바위 면을 쪼아 각종 동물과 도구, 사람얼굴 등 290여점을 새긴 것으로 세계적인 감탄사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반구대암각화가 울산의 식수원인 사연댐 상류에 있어 매년 7∼8개월 물에 잠기면서 급속히 훼손되는 문제로 세계유산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까지에는 숱한 과제가 남아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면 보전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한 것이다.

물에서 건져내야 하는 것이 명확한 결론이지만 어떻게 건져낼 것인가를 두고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10년간 대립해 왔다.

최근에야 경북 청도 운문댐의 물 일부를 울산시민의 식수로 공급하고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방향으로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 반구대암각화의 역사문화적 가치
반구대암각화는 그림 자체가 갖는 세계사적인 가치와 '반구대'(盤龜臺.산세가 거북 모양임)로 불리는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동시에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재청이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묶어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신청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구대암각화로부터 대곡천 상류를 따라 1.5㎞ 지점에는 선사시대에 풍요를 기원하며 기하학적 무늬 등을 새긴 천전리각석이 있고 두 암각화 사이로 굽이치는 물길과 산세는 절경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고려시대의 정몽주(鄭夢周.1337∼1392), 조선시대 이언적(李彦迪.1491∼1553) 선생 등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전해져 온다.

또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선생이 이곳에서 그린 산수화 '반구'가 최근 발견돼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수직의 거대한 바위면 아래의 높이 3m, 폭 10m에 걸쳐 동물과 인물, 도구 등 각종 그림을 쪼아 새긴 것으로 학자들은 신석기∼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울산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한 결과 고래와 거북, 사슴, 호랑이, 새, 멧돼지, 여인상, 배, 작살, 그물 등 모두 296점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특히 높게 평가되는 것은 58점의 고래그림.

새끼 밴 고래는 물론 향유고래와 흰수염고래 등 현대 분류학적으로 나눈 고래의 종류를 그대로 알 수 있는 '고래도감'으로 불릴 정도로 자세하게 그려져 있고 배나 작살, 그물 등을 이용한 고래사냥 기술이 묘사됐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니얼 호비노 국립파리자연사박물관 교수는 저술 '포경의 역사'에서 "반구대암각화는 최초로 거대한 고래들을 표현하고 있는 매우 드문 그림이며, 흥미로운 고래사냥 방법을 소개해 우리에게 고래에 대해 알 기회를 제공하는 굉장히 특별한 것"이라고 밝혔다.

◇ 암각화 훼손 실태
이렇게 중요한 문화유산이 1965년 울산시민의 식수원인 사연댐이 건설된 후 해마다 7∼8개월 물에 잠기면서 급속히 훼손돼 원형을 잃어가는 것이 문제다.

바위의 풍화가 빨리 진행되는데다 침수와 노출, 얼었다 녹는 것이 반복되면서 바위면이 닳고 균열이 발생해 그림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매년 암각화를 정밀 촬영하는 수묵화가 김석호씨는 최근 "발견 당시에 찍은 사진과 최근의 사진을 비교해 120여곳의 훼손 부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호랑이 그림의 머리가 사라지고 고래와 함께 유영하는 상어의 지느러미와 몸통 중간이 잘려나갔으며, 일부 고래와 노루그림도 바위면이 떨어져 나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다.

침수의 반복으로 그림이 새겨진 퇴적암도 흙이 되기 직전인 풍화 4∼5단계(6단계는 흙 상태)여서 당장 물에서 건져내지 않으면 암각화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문화재청-울산시 보전대책 대립
2000년대 들면서 문화재청과 울산시, 역사학계 등에서 일제히 보존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나 이견이 너무 컸다.

울산시는 시민의 식수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연댐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암각화 전면에 물막이 둑을 설치하거나 댐 상류의 물길을 돌리는 터널식 유로 변경안 등을 제시했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주변환경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만수위 60m인 사연댐의 물을 암각화 아랫부분인 52m까지 무조건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역사학계는 "반구대암각화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만들어진 문화적 환경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변 환경을 훼손하면 세계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한 평가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문화재청의 입장을 지지했다.

◇ 운문댐 물 울산공급 방안과 과제
보전방안이 원점에서 맴돌자 2009년에 범정부적 차원의 논의가 본격화됐다.
지난 9∼10월에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형오 국회의장이 잇따라 반구대암각화를 찾아 물에 잠긴 현장을 바라보며 "보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울산지역 국회의원들도 적극 중재에 나서 운문댐의 물 가운데 1일 7만t을 울산시에 공급하는 대신 사연댐의 수위를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갈등을 겪은 지 10년 만이다.

그러나 이 방안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칫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지역이기주의로 흘러갈 경우 실현되기 어려워질지 모르는 실정이다.

김정도 울산시 상수도사업본부장은 "운문댐의 물 일부를 울산시에 공급하기로 한 것은 반구대암각화를 보전하기 위한 조치"라며 "정치권과 지자체가 물 분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이해하고 협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기수 울산시 문화체육국장은 "세계유산 등재의 기본원칙은 작품의 완전성과 진정성, 뛰어난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완벽한 보전관리 계획도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다"며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 반구대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도록 지역을 뛰어넘는 국민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sjb@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