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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종교 이해와 현황

지식창고지기 2009. 12. 26. 10:59

중국의 종교 이해와 현황

석은혜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에서 1997년 10월 16일자로 “중국의 종교신앙 자유 상황”이라는 백서를 발간하였다. 이 백서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은 다종교(多宗敎) 국가이다. 중국의 종교 신도가 주로 신봉하는 종교는 불교, 도교, 이슬람교, 천주교 및 기독교가 있다. 중국의 공민은 자유롭게 자신의 신앙을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으며, 종교신분을 표명할 수 있다. 불완전하긴 하지만 한 통계에 의하면, 중국은 현재 각종 종교 신도가 1억여 명이 있으며, 종교활동장소는 8만 5천 곳, 종교 교역자는 약 30만 명, 종교단체가 3천여 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종교단체는 또한 종교 교역자를 양성하는 종교학교 74개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전국적인 성격을 지닌 종교단체는 중국불교협회, 중국도교협회, 중국이슬람교협회, 중국천주교애국회, 중국천주교주교단,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 중국기독교협회 등이다. 각 종교단체는 각자의 규정에 의거하여 지도자를 선거하고, 지도기구를 결성한다.

중국의 각 종교단체는 자주적으로 교무(敎務)를 운영하고 처리하며, 또한 필요에 따라 종교학교를 개설 운영하고, 종교경전을 인쇄 발행하며, 종교간행물을 출판하고, 사회공익 봉사 사업을 전개한다. 중국은 세계 여러 국가와 마찬가지로 종교와 교육을 분리하는 원칙을 실행하며, 국민 교육중 학생들에게는 종교교육을 시키지는 않는다. 일부 대학교 및 연구기구에서는 종교학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각 종교조직이 개설 운영하는 종교학교에서 각 종교의 필요에 의거하여 종교학을 전공으로 교육시킨다.

종교 교역자가 수행하는 정상적인 교무활동은 종교활동장소 및 종교 습관에 의거해 신자 자신의 집에서 행하는 모든 정상적인 종교활동으로, 예를 들면 참배, 경전낭송, 예배, 기도, 경전 강해, 설교, 미사, 세례, 수계(受戒), 봉재(封齋: 라마단과 관련된 제전), 종교절기 행사, 종부(終傅), 추도 등으로 모두 종교조직과 교도(敎徒)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며, 법률의 보호를 받고,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발생한 「문화대혁명」은 종교를 포함한 중국 사회 각 방면 모두에 대 재난이라 할 만한 파괴를 가져왔다. 따라서 중국의 각급 정부는 「문화대혁명」의 과오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종교신앙자유정책도 회복하고 정착시켰다. 대단히 큰 노력을 기울여 종교계 인사 중 억울하거나 착오로 누명을 쓴 자들을 복귀 복원시켰으며, 종교활동 장소를 회복시키고 재개방하였다.

중국정부는 종교 광신을 이용하여 인민과 국가를 분열시키거나, 각 민족 사이의 단결을 파괴하는 민족분열주의를 단호히 반대한다. 또한 종교를 이용하여 불법 활동과 공포주의를 조장하는 활동을 단호히 반대한다. 국가의 통일과 소수민족 지역의 사회 안정을 단호하게 지키며, 소수민족 종교 신자들의 정상적인 종교활동을 보호한다.

중국정부는 국제 사회의 종교신앙 영역에서 공인된 원칙을 존중하며, 이런 원칙이 반드시 각국의 구체적인 상황과 서로 결부되어야 하며, 또한 각국의 국내 법률을 통해 실시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종교 영역에서 대항을 일으키는 것을 반대하며, 종교를 이용하여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반대한다.“

1. 중국의 불 교

불교는 중국에서 이미 2천년 역사를 갖고 있다. 현재 중국에는 불교사원이 약 1만 3천여 개가 있으며, 출가한 승려와 비구니는 약 20만 명이며, 그 중 티벳계 불교의 라마 승려와 비구니는 12만 명이다. 소위 산부처라는 활불(活佛)은 1천 700여 명, 사원은 3천여 개가 있다. 팔리어(Pali語)계 불교의 비구니, 장로(長老)는 거의 1만 명에 이르고, 사원은 1천 6백여 개가 있다. -백서

대승, 소승의 승(乘)이란 ‘배나 수레와 같이 물건을 싣는다’는 의미이다. 즉 대승은 크게, 소승은 작게 신고 간다는 뜻이 된다. 대승은 수많은 중생들을 번뇌로부터 깨달음과 해탈로 이끄는 대중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만민구제를 중시하였고 작은 것을 담는 소승불교는 개인의 수행과 금욕을 중시하였다.

불경번역: 원래 인도의 싼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서기 402년에 구라마십(중앙아시아인)과 당의 현장법사가 중국어로 번역하였다.

불교는 한왕조가 멸망하려는 혼란스런 시대에 중국에서 흥성했다.

중국의 불교종파는 모두 11가지가 있다. 불교는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였기에 중국화 작업이 필요했다. 불교가 처음 들어온 당시 사람들의 최대 희망은 죽음 이후의 삶에 있었다. 원래 인도의 불교는 인생을 영혼이 해탈하기 위한 긴 윤회 과정 중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상은 현실을 중시하고 현실의 기초 위에서 생각하는 중국인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염불과 참선을 통해 번뇌를 벗고 부처님에 대한 헌신과 적선행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정토종이 등장하자, 여러 종파 중 가장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불교종파 중 삼론종(三論宗), 화엄종(華嚴宗), 천태종(天台宗), 선종(禪宗), 법상종(法相宗) 등은 중국의 학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티벳불교(라마교): 서장자치구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 세기 7세기경에 티벳에 불교가 유입. 티벳불교는 불교+본교(本敎; 일종의 다신종교로 에니미즘과 샤머니즘의 일종).

정교(政敎)일치로 라마에 대한 절대적 권위 인정과 달라이 라마, 판첸라마, 까르마파를 환불라마로 모시고 섬기고 있다. 윤회를 신봉하고 있고, 금생에서 선을 행해야 내세에서 복을 누리기에 티벳인들은 파리, 지렁이 같은 미물도 죽이지 않는다.

2. 중국의 도 교

도교는 중국에서 발원하였으며, 1천 7백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에는 현재 도교의 궁관(宮觀)이 1천 5백여 개가 있으며, 건도(乾道), 곤도(坤道)라 불리는 신도는 2만 5천여 명이 있다. - 백서

도교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도교는 중국의 민족종교이다. 도교는 한나라 말엽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도교는 성립 후 처음에는 노자를 신격화하여 섬겼고, 이 외에도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불로장생의 신선술, 예언, 점술, 간신술 등의 무속 신앙들도 교리에 접목시켰다. 또 모든 만물에 영이 있다고 하는 만물유령 관념도 도입했다. 게다가 불교의 인과응보 사상도 도입하여 내용만 본다면 도교는 좋은 사상, 좋은 교리들은 모두 받아들인 종교인 셈이다.

도교는 서기 2세기 경 후한시대에 사천성을 중심으로 종교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의 주동자가 장릉(張陵)이라는 사람인데, 전설에 의하면 노자가 어느 산속 동굴에서 은거하고 있던 장릉 앞에 나타나 세상 사람들이 진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악귀를 신봉하는 것을 개탄하면서 장릉을 하늘의 스승으로 임명해 악령을 물리치고 진리를 바로 세우는 사명을 부여했다고 한다. 이것을 조직화된 도교의 발단으로 보고 있다.

도교는 사람을 구제하고자 하는 일종의 구제종교이다. 또 도교는 초자연적인 힘으로부터 도움과 보호를 얻으려 한다. 도교에서는 정신과 육체를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영혼은 물론 육신까지도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결과로 그들은 생명이 기(氣), 정(精), 신(身)의 세 가지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이것들이 몸 안의 소우주와 우주에 있는 대우주에 동시에 존재한다고 한다. 또 도교에서는 불로장생하는 기를 기르기 위해 단전호흡, 명상, 성생활과 관련된 기술들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이런 가르침들은 공개적이 아니라 비밀리에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전수되므로 비밀종교가 되는 것이다. 도교에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신을 섬기는데, 여기에는 신령, 신선, 신격화된 우상들이 여기에 속한다. 신들은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 등 여러 모양으로 불리다가 후에 원시천존(元始天尊), 영보천존(靈寶天尊), 도덕천존(道德天尊)의 삼청(三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도교의 경전으로는 『도덕경(道德經)』과 『태평경(太平經)』이 있다.

3. 중국의 이슬람교

이슬람교는 기원 7세기에 중국에 전래되었다. 이슬람교는 중국의 회족, 위구르족 등 10개 소수민족의 민중신앙이다. 이들 소수민족의 총 인구는 약 1천 8백만 명이며, 모스크인 칭쩐스(淸眞寺)는 3만여 개, 이맘(伊瑪目), 아홍(阿訇)이라 불리는 신도는 2만 5천여 명이 있다. - 백서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 중국은 소수민족은 후이족(回族), 위그르족(維吾爾族), 카자흐족(哈薩克族), 둘샹족(東鄕族), 키르키즈족(柯爾克孜), 싸라족(撒拉族), 타지크족(塔吉克族), 우즈벡족(烏孜別克族), 바오안족(保安族), 타타르족(塔塔族).

이 들 중 후이족의 경우 칭하아성(靑海省), 간쑤성(甘肅省), 닝샤(寧夏)회족자치구에 전체 3분의 1 이상이 분포해 있으며, 그외 허난성(河南省), 허베이성(河北省) 등 전국 각성과 도시에 두루 흩어져 살고 있다.

교파: 이들의 주요교파는 수니파의 하니피파, 시아파의 이스마엘파 및 수피파 등이다.

위구르, 카자흐, 후이, 우즈벡, 타타르 등의 대다수가 수니파이고, 위구르와 우즈벡의 일부가 수피파이다. 타지크, 키르키즈 등은 기본상 시아파의 이스마엘파에 속한다.

코란: 소수민족어로 된 코란으로는 1987년 10월에 초판된 위구르어 코란과 1990년 10월에 초판된 카자흐어 코란이 있다. 기타 소수민족은 한어로 된 코란을 통용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아랍어를 배워 원문으로 이해하기를 선호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칭전스(淸眞寺)라고 한다. 중국의 전통 이슬람 교육은 주로 칭전스 내에서 이루어지며, 경당교육 또는 사원교육이라고 일컬어진다. 현재 전국에 5년제로 공식 운영되는 경학원은 8개가 있다.

이슬람교는 서기 651년에 해안지역과 서부지역(실크로드)을 통해 들어왔다.

중국 개혁개방 이후 이슬람은 부흥을 하고 있으며, 경제적인 낙후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중이다. 중국의 이슬람교는 중국의 전통문화와 융합되면서 중국특색의 이슬람 문화를 가지고 있다.

4. 중국의 기독교

중국 기독교(개신교)는 19세기초 중국에 들어왔으며, 아편전쟁 이후에 대규모로 전래되었다. 중국에 현재 기독교인이 약 1천만 명이 있으며, 목회 사역자는 1만 8천여 명이 있다. 예배당은 1만 2천여 개, 간이활동장소(집회처소)는 2만5천여 개다. -백서
1807년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이었던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이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그는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카오에서 거주하면서 중국어 사전 편찬, 성경번역 등의 사역을 하였다.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중국은 남경조약(1842년)을 조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중국 연안 5개 항구(광주, 하문, 복주, 영파, 상해)를 개항하여 외국 선교사가 전도할 수 있게 하였다.

1858년 제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천진조약과 북경조약을 체결하게 되었고, 이 조약은 선교사들에게 매우 큰 특전을 주었다. 이 조약은 훨씬 많은 대외 통상 항구를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자유롭게 전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따라서 구미 선교회에서는 잇달아 많은 선교사들을 중국에 보냈고 전도, 학교설립, 병원설립, 양육 등의 사역을 했다.

1911년 청 왕조는 손문의 민주주의에 의해 붕괴되었다. 민국 성립 후 기독교는 합법적 지위를 얻게 되어 복음이 더욱 널리 전파되었다. 신도들은 자신의 선교 책임을 느껴, 뜻을 세워 자립교회를 설립했다. 1918년 중국교회 지도자들은 중화내지전도회를 발기하였고, 최초로 중국인이 조직한 선교회가 생겼다.

1920년부터 1922년까지 중국의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신문화 운동을 벌였다. 이 때 과학에 매료된 젊은 지식인들은 기독교를 미신적인 것으로 여겨 이를 거부하는 반기독교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시기에 많은 자립교회가 건립되었는데 경전잉이 세운 예수가정, 왕명도가 세운 기독도회당, 위치만 리가 인도하는 소군교회 등이다. 교회는 핍박을 받았으나 끊임없이 성장하였다.

1930년대 교회는 더욱 서로간의 단합과 ‘토착화운동’을 중시하고 자치, 자양, 자전(삼자)을 강조했다. 삼자 정신은 적지 않은 중국신도들에 의해 인정받게 되었으며, 20, 30년대의 교회는 이미 서양적 색채에서 탈피하여 중국에 맞는 교회를 건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삼자는 다만 하나의 구호일 뿐이었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고, 1951년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조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오요종이 주석이 되어 이 운동을 주도해서 서양교회 배척운동을 했는데, 서양 선교사들 배척 뿐만 아니라 서양교회와 무관한 자립교회 지도자 인 위치만 니, 왕명도 등도 모두 투옥하였다.

1954년 7월 중국기독교 삼자 애국운동위원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으며 가입치 않으려는 전도인은 모두 체포되었다. 목회자들은 모두 노동생산에 투입되었고, 예배드리고자 하는 신도들은 집회를 몰래하는 가정집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1955년 10월 정부는 삼자 이외의 어떤 기독교 활동도 불법이라고 선포하고 전국 교회를 대대적으로 합병하여 교회 숫자를 크게 감소시켰다. 상해에서 약 200개의 교회가 15개로, 북경에서는 64개의 교회가 4개로 합병되었다.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에는 삼자의 활동조차도 정지 되고 교회는 큰 핍박을 경험한다. 1976년 모택동이 죽고 문화대혁명이 끝이 나자, 1979년에 삼자교회가 다시 문을 열렸다. 이 삼자(자치, 자양, 자전)는 일찍이 중국교회에 존재하던 것이었기에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중국은 1982년에 개헌을 했는데, 그 중 제36조에 “중화인민 공화국은 종교신앙의 자유가 있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현행 중국의 종교정책을 주관하는, “사회주의 시기의 종교문제에 대한 국가의 기본 입장과 정책에 관하여”라는 표제가 붙은 19호 문건에서 “공민은 신앙종교 자유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또한 불신앙 종교의 자유도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문건에서 “절대로 어떠한 사람에게도 종교를 강요할 수 없으며, 특히 18세 이하의 어린이를 입교시킬 수 없다.”는 등 신도의 활동을 제한하는 항목들이 있다. 이 문서에는 “정상적인 종교활동”과 “비정상작인 종교활동”이 존재하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정상적인 종교활동”이란 삼자애국운동위원회와 중국기독교협회 등 중국이 인정하는 애국적종교단체들의 감독하에서 행해지는 활동들을 의미한다.
정상적 종교활동을 좀더 풀어 설명한다면, 삼정정책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삼정(三定)이란 정편(定片-지정된 사역의 범위), 정점(定点- 지정된 교회), 정인(定人-지정된 사람)을 말한다. 이 새로운 정책은 가정교회 지도자들의 순회설교하는 것을 금지하기 위한 정책이다.

현재 중국은 삼자교회, 가정교회로 나뉘어 있으며, 최근 들어 처소교회, 독립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중국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선교사들도 전문인으로 들어가 중국교회를 돕고 있다. 삼자원칙을 주장하면서 외국인의 활동을 규제해 오던 중국 정부는, 1994년 1월에 이붕 총리가 국무원령으로 “외국인 종교활동 관리규정”을 발표해 외국인들이 중국 내에서 활동규제를 문서화하였다. 중국은 계속적으로 종교정책을 법제화하여 외국선교사들의 활동을 규제하고 있으며, 사역을 하다 발각된 사역자는 벌금을 물리고 추방시키는 등 최근 들어 더욱 강화하고 있는 추세이다(2000년 9월 26일자로 보완, 강화).

5. 중국의 천주교

천주교는 기원 7세기부터 몇 차례에 걸쳐 중국에 전래되면서, 1840년 아편전쟁 이후 대규모로 들어왔다. 중국의 현재 천주교 신도는 약 4백만 명, 교역자는 약 4천 명이 있으며, 예배당(敎堂), 회소(會所, 집회소)는 4천6백여 개다. - 백서

중국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간 것은 원(元) 나라 때로, 1294년 프란체스코회 선교사였던 몬테코르노비가 중국에 갔다. 그 후 명(明) 왕조때 예수회 소속의 신부였던 프란시스 사비에르가 파송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예수회는 이에 굴하지 않고 1582년에 마테오 리치를 파송했다. 18년 동안 토착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결과 1601년 베이징에서 전도하다가 1610년 중국에서 사망 함.

그 이후 프란체스코와 도미니쿠스회가 중국에 정착하게 되면서 예수회와 제사문제를 가지고 ‘의례논쟁(儀禮論爭)’을 하였다. 이 논쟁의로 1724년 옹정 황제는 칙령을 내려 모든 카톨릭 선교사를 중국에서 추방했다.

중국에 천주교가 다시 들어가게 된 것은 1842년(남경조약 체결)이다. 1724년 천주교가 철저히 탄압을 받은 지 약 100년 후에 이루어졌다. 1870년 어린이 납치 소문으로 수난.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교인 25,000명 사망. 그러나 병원, 고아원, 진료소 설립 등 많은 일을 함.

카톨릭 교회는 대부분 기독교와 운명을 같이했다. 현재 중국정부와 로마교황청이 신부 서품 문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6. 유교와 샤머니즘

유교는 일찍이 춘추정국시기에 공자와 그의 제자 맹자에 의해 유교사상은 이미 체계화되었다. 유교가 국가적 이념이 된 것은 전한(前漢)의 무제(武帝)통치 시기(BC140-88)에 이르러서였다. 한 무제는 전 제국에 명을 내려 유교를 숭상하도록 하고 모든 국가 관리직에 유교사상으로 세뇌된 선비들만 등용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유교사상, 유교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그러나 모택동이 비림비공(批林批孔) 주장, 문화대혁명(1966-1976)으로 유교 전통문화가 파괴.
1995년 장쩌민이 한국을 방문, 중국에서도 유교문화를 부활시키겠다고 말한바 있다.

중국에는 1억여 명의 종교 신도 외에도 각종 점, 역술, 관상 등 미신의 열풍에 사로잡혀 있다. 정치, 교육, 문화의 중심지인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도 근래 몇 년 사이에 점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고, 국가 중앙기구 등에도 역술(易術)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 역술이나 점술에 빠지거나 종사하는 사람들이 전과는 달리 소위 지식인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심리학자나 천문지리학자도 있다.

최근 한 연구단체가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총칭(重慶), 선전(深圳), 하얼빈(哈爾濱), 홍콩(香港) 등 중국의 주요 7개 대도시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직접 만나 이들이 점을 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점과 운명에 대한 생각을 들어본 결과, 도시에 거주하는 지식인 혹은 해외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조차도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는 사회주의적(?) 사고보다는 운명을 믿고 따른다는 숙명론적인 대답이 많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중국인들은 마오저뚱(毛澤東)이나 쪼우언라이(周恩來)의 사진을 택시나 자동차 운전석 앞에 걸어 놓고 다닌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마오저뚱이나 쪼우언라이가 자신들을 지켜주고 복 주는 수호신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교신도 뿐만 아니라 미신을 추종하거나 숭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이유는 중국이 개방화되면서 부딪친 심각한 배금주의 현상으로 중국인들이 정신적, 영적으로 기갈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7. 중국교회 바로 세우기

중국교회는 계속부흥하고 있으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선교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 교회를 돕고자 하는 자들이 중국의 문화, 종교, 종교정책, 중국교회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잘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그들을 돕는다면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된다. 우리는 선교에 앞서 중국의 문화와 종교, 종교정책, 중국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는 것을 선행해야 한다. 중국을 이해하고 나서 거기에 맞는 선교전략을 세우고, 지혜롭게 접근하여 중국 선교를 한다면 그 동안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나를 만족시키기 위한 선교가 아니라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중국 선교의 문이 열려 더욱 많은 중국인들이 주님을 믿을수 있도록 계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충성스런 마음을 가진 종들을 통해 많은 중국 사람들이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듣고, 이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교회가 주님 안에서 바로서 어떠한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어떠한 이단사설이 그들을 넘어뜨리려 할 지라도 쓰러지지 않고 견고히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가 중국교회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겸손하고 신중하게 여러 모양으로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중국은 반드시 복음화 될 것이고 마침내 21세기 선교의 주자는 그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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