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돈 세는 기계가…소말리아 '벤처산업' 해적질
[서정민의 '인샬라 중동']<2> 청해부대 파견 능사 아니다
기사입력 2009-04-10 오전 11:44:05
인도양의 무법자로 등장한 소말리아 해적. 이들의 행보는 거침없다. 지난 8일에는 미국 컨테이너선이 공격당했다. 해적을 소탕하겠다고 대규모 함대를 파견한 미국을 비웃듯이 말이다.
1만7000t급인 '머스크 앨라배마'호는 구호물자를 싣고 케냐 몸바사항을 향하다 소말리아 해적들의 거점 항구인 에일에서 남동쪽으로 약 445㎞ 떨어진 인도양 해상에서 납치됐다. 이후 다행히 미국 선원 20명은 해적들을 격퇴하고 선박을 다시 장악했다. 5시간 이상의 총격전도 발생했다.
국제사회가 소말리아 해역에 함정을 속속 파견, 초계활동에 나서면서 올해 들어서는 해적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듯했다. 지난해에는 130여 차례나 선박 나포를 시도해 50여 척을 납치하는 데 성공했었다.
그러나 다시 활동을 재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월에 들어서만 대만,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예멘 선박을 납치했다. 방법도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해적들은 납치한 예멘 어선을 모선으로 이용해, 먼 바다까지 나가 다른 선박을 공격하고 있다.
▲ 해적질이 소말리아 최대의 산업이 된 것은 정치적 불안정 때문이다. ⓒ로이터=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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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최대 산업, 해적질
고대 이집트 문명과도 교역을 행할 정도로 천연자원이 풍성한 나라 푼트랜드, 20세기 중반 소말리아라는 이름으로 독립한 이 지역 주민들이 왜 21세기에 해적질에 나설까. 민족성이 나빠서도 아니고 서방이 미워서도 아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배가 고파서다. 오랜 내전으로 경제기반이 무너지면서, 삶의 기반을 잃은 젊은이들이 해적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소말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에일(Eyl). 이 항구에는 배가 들어오면 기이한 풍경이 연출된다. '비즈니스' 출항을 다녀온 선단이 들어오면 선원의 가족들이 우선 모여든다. 그리고 배가 정박할 지점에는 말끔히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랜드 쿠르저 지프를 타고 온 이들 중 일부는 위성전화를 들고 있다. 해적단의 지도부다.
협상을 담당할 똑똑해 보이는 신사도 있고, 그 옆에는 노트북을 든 말끔한 사무원이 보좌관처럼 서있다. 그는 회계 담당자다. 대부분의 경우 피랍된 선원을 한 동안 납치한 배 안에 두기 때문에 현장에서 여러 계산이 필요하다.
배가 항구에 다다를 즈음 트럭 몇 대도 도착한다. 멈춰선 트럭에서는 중화기로 무장한 젊은이 수십 명이 뛰어 내린다. 배를 타고 나갔던 '납치조'와 교대할 '감시조'다. 납치한 배가 도착하면 승선해 피랍 선원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담당한다.
여러 대의 트럭과 작업복을 입은 인부도 속속 나타난다. 배 위로 올라가 돈이 될 만한 상품, 집기 등을 수색해 하역하는 팀이다. 마지막으로 주방장과 보조 일꾼들이 자루 자루에 음식과 식재료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등장한다. 이들도 배 위에 오를 예정이다. 감시조와 피랍 선원을 먹이고 또 기타 여러 잡일을 담당한다.
철저한 분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해적질은 이미 소말리아인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벤처산업이 됐다. 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소말리아 해적이 2008년 최소 1억5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고 지난 1월 초 보도했다.
내전으로 나약해진 중앙정부로부터 간섭도 전혀 없다. 에일을 중심으로 인근 해안 지역은 최근 개발 붐이 일고 있다. 커다란 저택이 지어지고 있고, 고급 승용차가 늘어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0달러도 되지 않는 나라지만 이 지역만은 예외다.
해적질이 신분상승의 수단
가난에 찌들고 신분 상승의 기회가 거의 없는 저발전 국가 소말리아에서 해적질은 남다른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일확천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해적단의 두목이나 지도부가 되면 막대한 재력은 물론 이에 따르는 사회적 권력을 갖게 된다. 일부 해적단은 헬기를 보유하고 현찰을 실어 나른다. 돈 세는 기계가 해적의 각 가정에 비치돼 있다. 여러 부인을 거느리기도 한다. 소말리아 해안 지역에서는 해적이 최고의 신랑감이다. 후처로 들어가려는 젊은 여성이 줄을 선다.
해적 1명이 얼마나 버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 한 사건으로 그 수입을 추정할 수 있다. 지난 1월 11일 소말리아 해변에는 시신 한구가 떠밀려 왔다. 시신의 호주머니 속 플라스틱 백에는 15만 3000달러가 들어 있었다. 5명이 탄 작은 해적의 쾌속정 전복된 것이다.
15만 달러면 소말리아에서 집을 수십 채 사고도 남는 돈이다. 해적 대원으로 참여해 한 건만 제대로 올리면 평생이 보장되는 것이다.
소말리아 언론에 따르면 이 시신의 주인공은 당시 몸값을 주고 풀려난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를 납치했던 단체의 대원이었다. 두 달여의 협상 끝에 사우디 정부는 300만 달러를 지급했다.
몸값은 경비행기에 실려 유조선에 낙하산으로 투하됐었다. 이 장면은 당시 미 해군에 의해 촬영돼 언론에 공개 됐다. 몸값은 배 위에서 수십 명의 해적이 나눠가졌고, 이 중 5명이 탄 보트가 전복된 것이었다.
첨단화 추구하는 해적
해적 벤처사업이 붐을 타고 몸값으로 인한 수입이 증가하면서 해적도 변모하고 있다. 고액 몸값의 일부는 재투자된다. 보다 빠른 쾌속정, 첨단 무기, 전자 장비 등을 구입한다. GPS, 위성송수신기 등은 이제 기본 장비가 됐다. 그만큼 소탕이 어려워진 것이다.
예전에는 보통 7∼10명 정도가 어선을 가장한 배로 접근해 해적질을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5명이 한 조로 여러 최신식 쾌속정으로 나눠 타고 빠르게 이동한다. 최근에는 20∼30척이 '납치 작전'에 투입된 사례도 있다. 군함이 다가오면 쾌속정을 타고 빠르게 도주한다. 군함이 따라올 수도 없고, 분산돼 도망가기 때문에 헬기로 모두 추격할 수도 없다.
소말리아 해적은 이제 큰 목표를 공격하고 있다. 2008년 4월에는 프랑스의 호화 여객선이 피랍됐다. 앞에 언급한 사우디의 초대형 유조선은 길이가 330m고 32만 톤급이었다. 전 세계 석유의 30% 정도가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만을 지나기 때문에 큰 위협이다.
2008년 9월 발생한 피랍 사건은 더 기가 막힌다. 소말리아 해적이 납치한 선적은 우크라이나의 무기 수송선 파이나호였다. 배에는 러시아제 T-72 탱크 33대와 로켓 발사기, 탄약 등의 중화기가 실려 있었다. 21명의 선원이 있었고, 약 3000만 달러에 달하는 무기의 가치를 확인한 해적은 2000만 달러의 몸값을 요구했다. 4개월 동안의 협상 끝에 지난 2월 320만 달러의 몸값이 건네졌다. 그리고 급기야는 바레인에 주둔 중인 미 해군 제5함대가 호위하는 미국 선박도 공격할 정도로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있다.
정치 불안이 더 큰 문제
피폐한 경제 상황으로만 소말리아의 해적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소말리아와 상황이 비슷하거나 더 나쁜 아프리카 국가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상당수 중동 전문가들은 소말리아의 정치 상황을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한다.
이집트 알-아흐람 전략연구소의 안보 전문가 무함마드 술탄 박사는 "해적 행위를 근절시키려면 먼저 소말리아 정부가 국가를 완전하게 통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소말리아의 해적 문제는 정치적 상황과 연계돼 있다. 이곳에서 해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이후다. 1969년 쿠데타로 권좌에 올라 장기집권해온 무함마드 바르 정부가 전복된 해다.
이후 시작된 내전은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무려 18년째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세력은 이슬람 정치단체다. 혼란한 상황을 틈타 강력한 이슬람의 이념으로 지지 세력을 확보해 나갔다.
'알-카에다가 아프간에서 소말리아로 이동하고 있다'라는 우려가 수년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세계에 퍼져나갔다. "지난 5년 동안 소말리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정치단체는 이슬람법정연합(ICU)"이라고 아랍의 <알-자지라> 방송도 최근 보도했을 정도다. ICU는 수도 모가디슈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던 조지 부시 행정부가 이를 방관할 리는 없었다. 공습을 감행하고 에티오피아를 설득해 군대를 파병케 했다. 그러나 이슬람 세력을 제거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1월 말 진행된 대통령 간접선거에서 셰이크 샤리프 셰이크 아흐마드가 선출됐다. 1월 31일 취임한 아흐마드 대통령은 비록 온건하긴 하지만 이슬람법정연합을 이끌던 지도자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은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반미 노선의 이슬람세력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 ⓒ뉴시스 |
군사적 보다는 인도적 지원이 더 절실
이슬람법정연합이 주도하는 이슬람 세력이 소말리아의 안정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치안 유지가 되지 않고 있다. 내전으로 이미 100만 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수도를 포함해 국가 전체가 파괴되고 파산 상태에 있다. 인도적 지원 없이는 국민의 3분의 1 이상이 생존할 수 없다.
내전 속에 경제가 살아날 길이 없고,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해적질은 어떻게 보면 소말리아인의 생존 방식의 하나"라고 <알-자지라> 방송이 지난 5일 보도하기도 했다. 굶주린 상황에서 지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뱃길, 소말리아 앞바다 아덴만을 운항하는 '보물선'이 이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소말리아 해적에 대해 군사적 조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단연 미국이 군사작전을 주도하고 있다. 가장 많은 군함과 병력을 파견한 미국은 현재 다국적 함대 간의 공조 작전을 시작했다. 바레인 소재 미군 제5함대가 20여 개국 군함과 공동으로 소말리아 해상을 순찰하고 있다.
한국도 청해부대를 파견해 공동작전에 참여하고 있다. 소말리아 인근 아덴만 해역을 통과하는 우리 선박의 수도 연간 450∼460척 정도에 달하기 때문에 좌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중 여러 척이 이미 피랍돼 선원들이 장기간 억류된 경험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이 같은 해적소탕 노력은 소말리아의 내부적 문제해결과 동반돼야 한다. 사람들을 '극단의 직업'으로 내모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해적 활동이 완전히 뿌리 뽑히기 어렵다.
소말리아 내륙에 정통성 있는 정부를 세우고, 내전 상황을 종식하는 한편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 달성을 위한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인도적 차원에서 소말리아의 정치, 경제 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극한의 상황에서 '목숨을 건 도박'에 나서는 소말리아 젊은이들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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