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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놓고 '알카에다 소행', 이제는 그만

지식창고지기 2010. 1. 24. 17:22

덮어놓고 '알카에다 소행', 이제는 그만

[서정민의 '인샬라 중동']<1> 예멘 테러의 원인은 무엇일까

기사입력 2009-03-23 오후 4:36:45

 

서정민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의 '인샬라 중동' 연재를 시작합니다.

중동전문가로서 중앙일보 카이로 특파원을 지낸 서정민 교수는 이 연재에서 더 이상 피상적으로만 접근해선 안 되는 중동의 현실을 생생하게 들려 줄 예정입니다.

한국인들도 국제 테러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 에멘 테러에서 드러난 한국의 척박한 중동 인식에 관한 이야기로 첫 테이프를 끊습니다. <편집자>

당혹스럽다! 예멘에서 발생한 한국인 관광객과 정부 신속대응팀에 대한 연쇄 테러를 보면서 중동 테러전문가인 필자가 솔직히 느끼는 마음이다. 여러 방송 인터뷰를 하면서 테러의 원인과 주체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하지만 정답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여러 번 예멘을 가보았다. 그곳 사람들과 친분도 있다. 특별히 이들 예멘인이 표출해 온 한국에 대한 반감은 없다. 오히려 한국이 이룬 경제개혁과 국가개조에 대해 예멘인들은 감탄과 경의를 표하고 있다. 2006년 예멘의 사나대학에서 아랍어로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강연을 할 당시 대학 강당은 5000여명의 학생들로 꽉 찼었다.

예멘 테러에 대한 엉성한 분석들

언론과 대부분 전문가들은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알카에다는 공식 성명을 통해 한국을 여러 차례 테러 대상에 올려놓았다. 미국의 대(對)중동정책과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하는 친미국가라는 이유에서다.

이미 2004년 김선일 사건과 2007년 아프가니스탄 기독교인 피랍사태와 같은 전례도 있었다. 또 자살 폭탄 공격은 전형적인 알카에다의 테러방식이다.

그러나 석연찮은 점들도 있다. 알카에다와 같이 큰 조직이라면 범행 후 분명히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을 것이다. 지난 1월 알카에다는 사우디와 예멘의 통합지부를 예멘에 설립했다는 성명을 발표한바 있다. 이 조직이 이번 사건에 관여했다면 분명히 자신들의 새로운 조직을 선전하기 위해 책임을 주장했을 것이다.

예멘 정부는 사건 초기부터 알카에다의 소행임을 강조해왔다. 이점도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다. 중동에서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당사국 정부는 '잠입한 알카에다의 소행'임을 강조해왔다.

알카에다는 중동에서 '만악(萬惡)의 근원'인 것처럼 각국 정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돼 왔다. 자국의 독재 정치 그리고 경제사회 정책 실패로 인한 테러가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공격임을 각국 정부는 주장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안보와 치안 정책을 강화하고 독재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해왔다. 집권층이 테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 예멘 관광객 테러 희생자 유족과 외교부 신속대응팀이 탄 차량이 지난 18일 폭탄 공격을 받은 뒤 주 예멘 한국대사관에 경찰 병력이 추가 투입됐다. 주 예멘 대사관은 1997년 폐쇄됐다가 2008년 재개설됐다. ⓒ연합뉴스
 

베트남언론보다 못한 한국의 중동 보도 환경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 전문가인 필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정보 부족 때문이다. 공부를 게을리 한 탓도 있겠지만, 중동 테러에 대한 정보 수집이 부족한 것도 원인이다. 학문적 혹은 전문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기초 정보도 제대로 없기 때문이다.

중동에 대한 우리의 관심 부족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 관심이 있더라도 기껏해야 경제중심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었다. 중동을 에너지 공급처, 상품의 수출처 그리고 플랜트 수주처로만 간주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예멘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1997년 IMF 경제 위기에 빠진 우리는 예멘 주재 대사관을 폐쇄했다. 그리고 2008년에야 재개설했다. 10여 년간 문을 닫아놓았으니 예멘에 대한 기 초정보도 제대로 수집하지 못한 것이다. 테러 세력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말할 것도 없다.

정부만 탓할 것도 아니다. 언론도 그렇다. 이번 사고에 대해서도 언론은 추측성 그리고 예멘 정부의 발표를 인용한 기사를 내보냈다. 분석기사도 엉성하기만 했다. 현지 전문가나 언어 구사자조차 없이 외신과 현지 언론을 받아 적기에 바빴다.

수적으로 중동을 취재할 만한 인력도 없다. 중동에는 현재 5명의 한국 특파원만이 근무하고 있었다. 이집트 카이로에 SBS와 연합뉴스, 두바이에 KBS와 연합뉴스 그리고 한 경제신문 특파원이 전부다.

필자가 카이로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그곳을 방문한 우리 고위 인사들이 중동 내 한국 특파원 수를 묻곤 했다. 그 때마다 필자는 "베트남보다 그 수가 적다"고 답하곤 했다. 베트남은 카이로에만 3명의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다.

중국에 비해서도 어이없이 적은 숫자다. 중동에 최근 활약하고 있는 중국 특파원 수는 수십 명에 달한다. 카이로에만 스무 명이 넘는 중국인 특파원이 있다. 카이로 시내에는 12층 높이의 신화사 자체 빌딩이 있다. 여기에 각 특파원과 기자는 현지인 취재원과 비서를 두고 있다. 결국 신화사 카이로 지국에서 일하는 언론인 수는 약 60~80명에 달한다고 봐야한다.

중국은 특정 국가에만 편중된 것이 아니라 중동 각 지역에 골고루 취재진을 파견하고 있다. 카이로와 두바이 정도에 취재진을 보낸 한국의 경우와는 비교가 안 된다. 중국 특파원은 또 영어는 못해도 최소한 현지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현지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면 다양한 지역 정보를 스스로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지의 취재원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된다. 최근에는 기업, 국정원 등 정부 기관에서 지역 전문가를 확보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예멘 폭탄 테러와 관련해 지난 19일 세종로 외교부청사 앞에서 '알카에다 자살폭탄테러 규탄 및 강력대처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운로더블(downloadable) 테러'의 시대

이와는 달리 한국 언론은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지역 전문 취재진의 확충에 나설 어떤 의지나 힘도 없어 보인다. 한국 언론은 아직도 국제 이슈에 있어서는 서방의 정보를 상당 부분 이용하려는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 없이 현지 언론이나 외신을 인용하기 바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알카에다 만악의 근원' 담론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현재 알카에다의 지도부 조직은 와해돼 없어진 상태다. 다만 알카에다의 이념을 따른 '알카에디즘'이 중동 전역에서 자체적인 소규모 조직을 만드는 기반이 되고 있을 뿐이다. 대규모로 움직였다가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타깃이 되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조직망을 가진 테러단체가 아니라 자생적으로 등장하는 '얼굴 없는 테러조직'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다운로더블 테러'라고 칭한다. 몇 명이 모여서도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를 다운로드해 테러를 감행하는 조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조직 구성, 무기 구입, 폭탄 제조 등의 정보가 모두 온라인상에 떠있다. 심지어는 체포돼 심문을 당할 시 '불지 않는 방법'도 인터넷상에 올라 있다. 누구라도 한국에 반감을 가지는 몇 사람이 모이면 이런 테러를 감행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의 범인이 반한 감정을 가진 몇몇 예멘 사람들일 수도 있다. 여러 경로로 한국에서 문제를 일으킨 예멘인들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중동에서도 가장 못사는 나라 예멘 출신의 일부 사람들은 한국에 와서 자질구레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경찰 조사를 받고 추방되기도 한다. 이렇게 반한감정을 가진 일부 예멘인들이 모여 조직을 구성하고 테러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는 없다.

얼마 전 경기도의 한 도시에 거주하는 이집트인들을 만났었다. 이들은 그 도시에서 쓰레기를 치우며 살아가고 있다. 쓰레기 집하장에 오두막을 지여 대여섯 명이 일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인터넷 시설은 가지고 있었다. 본국의 가족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가지게 될 불만이 폭발할 경우 국내에서도 테러를 감행할 수 있음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쓰레기장에는 폭발물을 제조할 수 있는 모든 재료가 다 있기 때문이다.

추가적인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우리 개개인이 제3세계 외국인을 '비뚤어진 시각'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볼 시점이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