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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의 여러 가지 혼례형태

지식창고지기 2010. 1. 31. 11:01

중국 소수민족의 여러 가지 혼례형태
           

중국 남방 지역의 까오산족은 일부 다처제로 한 명의 추장이 30여명의 부인을 데리고 산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수 민족은 일부 일처제의 결혼 풍속을 유지하고 있다. 결혼은 당사자의 의사보다 대개 양측 부모 의사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 적령기의 아들을 두고 있는 부모는 중매쟁이를 통해 며느리 감을  물색하는데, 여자 측 부모와 우선 교섭을 가지고 나서 중매인과 합의가 이뤄진 후, 양측이 결혼 승낙을 하는 방법이 대부분이 선호하는 결혼 방법이다.


배우자 선택 기준은 주로 생활 정도와 신분 관계 등이 우선 고려된다. 예나 지금이나 생활 정도가 낮은 가난한 집안과 부자 집안과의 혼사는 거의 드물다. 특히 티벳족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지켜져 내려오는 신부 내혼제를 내세워 귀족 출신은 지금도 평민과의 혼사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환경과 신분이 다른 집안과의 혼사뿐만 아니라 피부색이 다른 민족과의 결혼도 금기시 되어 있으며, 만약 이를 어겨서 당사자간의 연애 결혼으로 혼인된 사실이 알려지면 동네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처치해 버리는 관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서남 지역의 칭뽀족 역시 신분 내혼제를 고집하고 있어 관리는 관리 집안끼리, 상인은 상인끼리, 농민은 농민 자녀끼리 혼사를 하고 있다. 만약 농민의 아들이 관리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으면 딸을 갖은 부모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받아들여야 결혼을 할 수 있다.


같은 서남 지역에 사는 라족은 마을 어귀의 한적한 곳에 '팡쑤'란 원두막 같은 방갈로를 여러 개 설치하여 결혼 적령기에 이른 아가씨들을 그곳에서 살도록 하고 있다. 혼기에 있는 총각들은 자기가 점찍어 둔 아가씨가 어느 팡쑤에 있는지 찾아가 팡쑤 문 앞에서 전통적인 긴 코피리(피리를 콧구멍에 대고 분다)를 불고 난 뒤 바로 노래를 부르면서 구애를 한다. 팡쑤 속의 아가씨가 피리와 노랫소리를 듣고 마음에 들면 팡쑤의 문을 열어 주고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역시 같은 서남 지역에 거주하는 지노족, 푸랑족, 창뽀족, 수이족은 미혼 남녀가 자연스럽게 구혼할 수 있도록 마을에 별도의 장소를 마련하는데, 여기서 임신이 되면 사위 될 사람과 함께 여자 측 부모에게 찾아가 두 손을 머리에 얹고 꿇어앉아 인사만 하면 혼인이 끝난다.


광동성 북부 지역에 사는 야오족은 '방녀출란'이란 풍습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매년 음력 대보름날부터 3일 동안 미혼 남녀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축제일로서 서로 마음에 드는 사람과 짝을 지어 산기슭이나 논밭의 언덕 밑에서 노래를 부른 뒤 사랑을 나누는 풍습이다. 대부분 짝짓기 축제일인 '방녀출란'때에 배우자를 선택하게 된다.


미아오족 등 일부 소수 민족은 '혼세 교차제'를 전통적으로 지키고 있다. 즉 아버지 자매 측의 처녀를 어머니 형제 측의 총각과 결혼을 시키는 풍습이다. 총각측에서 친척을 통해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고 하면 딸을 가진 친척은 절대 다른 곳에 시집 보낼 수가 없다. 만약 어머니 형제 중에서 마땅한 총각이 없을 경우에는 다른 집안과 혼사가 가능하다.


이와는 반대로 뚱족이나 칭뽀족은 인척간의 혼인을 절대 금지하고 있다. 이들 민족은 어머니 형제나 아버지 형제를 같은 씨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혼인을 절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 대륙 서남 지역의 러빠족은 혼세 교차제(婚歲 交差制)의 혼인을 유달리 장려하고 있는 민족이다. 이 민족은 인척간의 통혼이야말로 '금화하고도 바꿀 수 없는 혼인'이라고 여기고 있다. 가령 남편이 사망하면 그 부인은 남편의 형제와 재혼해야 한다. 반대로 부인이 먼저 사망하면 남편은 결혼하지 않은 부인의 자매와 재혼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비슷한 풍습을 가진 민족이 서북 지역의 하사크족과 원크족인데, 이들 근친 결혼을 '차윤팡'이라 부르고 법으로 "남편이 먼저 사망했을 경우 죽은 남편의 형제와 재혼해야 하며, 그 권리와 의무를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 친인철 끼리만 결혼해야 되므로 이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 곳을 가보면 모두가 가까운 친척들이다.


대륙의 청해성 몽골족. 하사크족 거주 지역에 들렸더니 70여 가구 전부가 가까운 친척들이었다. 어느 한 집은 친사촌과 결혼하여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위의 두 딸중 하나는 이모네 집으로 또 하나는 고모네 집으로 시집을 보냈고, 아들은 삼촌 집 막내딸과 결혼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두룽족의 경우는 부인과 사별했을 경우 부인의 자매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나이가 어리면 적령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때 남자는 미리 칼, 삼베, 소, 돼지 등을 사전에 혼약의 표시로 여자의 집에 갖다 주어야 한다.


이마오족과 위구르족 역시 부인이 사망하면 부인의 자매와 재혼하는 오랜 풍습이 있다.


타벳족 가운데 청해성에 거주하는 황남 티벳족 자치 지구에서는 '형제 일처혼'이란 세계에서 기이한 풍습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이것은 옛날부터 장원가(莊園家)에서 해온 결혼 풍습으로, 즉 장남이 결혼하면 그 집 형제 모두가 동시에 결혼하는 것이며, 한 명의 여자를 공동의 아내로 공유하는 풍습이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연장자인 맏형만이 아버지가 되며, 동생들은 전부 '리로이'로만 부르게 하고 있다. 운남성의 리장 유역에 살고 있는 나씨족은 '아주혼(阿州婚)'이란 결혼 풍속을 갖고 있다. 이 풍속은 남자가 밤에 처갓집에 가서 노동에 종사하는 생활 풍속이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이 끝난 뒤인 밤 시간 이외에는 처갓집에 함부로 찾아갈 수 없다.


운남성 린창지역의 와족 자치 지역인 푸롱 지구, 쓰마오 지구의 와족과 라후족은 모계 가족제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재산은 여자에게만 상속되며, 결혼한 남자는 자기의 생활 용구와 옷가지 등을 모두 처가에 두고 살아야 하는 풍속이다. 만약 이혼을 하게 되면 남자는 자신의 생활 용구와 옷가지만 가지고 나가야 하며, 자녀들이 있을 경우, 모두 여자 측에서 맡도록 되어 있다. 아이들의 성은 어머니의 성을 따른다.


대륙의 남방 지역에 사는 뚱족, 푸이족, 야오족, 칭뽀족등도 다소 차이는 잇지만 결혼후 여자는 아이가 둘이 될 때까지 시댁에 가지 않고 친정에서 생활한다, 이 가운데 뚱족은 제삿날에만 자기 아내를 잠시 시댁에 데리고 올 뿐 대부분 처갓집에서 생활한다.
푸이족은 결혼 당일 신부가 신랑집에 가서 인사만 하고 돌아온 후 계속 친정에서만 생활한다. 또 신랑집에 특별한 일이 생겨 들리게 되어도 절대 같은 방을 쓰지 않는다. 미아오족, 칭뽀족, 나씨족 거주 지역에는 '약탈혼'이란 것이 아직 남아 있다.

 

중국의 옛 기록을 보면 1,000여년 전 "북방의 말갈족은 신부 감을 약탈하는 혼인 풍습이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약톨혼 풍습이 남방지역 민족에게도 남아 있다.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부모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 친구들과 함께 처녀가 있는 집에 몰래 가서 여자를 납치해 와 결혼해 사는 풍습이다. 딸을 가진 부모는 자기의 딸이 납치된 것을 알고 신랑감으로서 마음에 들면 중개인을 통해 결혼 승낙을 뜻하는 오색 끈을 보내는데, 이때 사위가 될 남자는 여자집 부모에게 술 두잔을 따라 들이면 된다. 만약 부모가 결혼을 동의할 수 없으면 창을 들고 끝까지 추적하고, 그래도 딸을 찾을 수 없으면 중간에 사람을 넣어 담판을 한다. 남자 측에서 적극적인 구혼 요청을 하면 대게 원만하게 타결된다. 그러나 도저히 타협이 불가능하게 되면 남자 측에 처녀를 돌려보내고 돼지 두 마리를 잡아 받치고 용서를 빌면 된다.

 

중국 대륙 서남 지역에 거주하는 두룽족은 신부를 맞아들이는 것을 '푸마'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여자를 사 온다는 의미이다. 여자의 값은 솥, 냄비 1개, 화로 1개, 돼지 2마리나 소 1마리 값으로 환산하여 여자 측 부모에게 주면 된다. 그러나 린창 지역의 누족, 이족, 수이족, 와족은 여자의 값을 신체 조건과 용모에 따라 차등을 둔다.


이들 민족이 말하는 가장 아름다운 신체 조건이 좋은 여자는, 첫째 손과 발이 커야 하고, 발목이 가늘며, 엉덩이가 큰 여자이다. 이유는 손발이 큰 여자는 일을 잘하고, 발목이 가는 여자는 성에 비교적 약하며, 엉덩이가 크며 아이를 잘 낳기 때문이라고 이 곳의 안내자는 설명한다. 남자는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여자에게 소 10마리의 값으로 환산해 돈을 주든지, 아니면 암소 9마리에 황소 1마리를 여자 측 부모에게 받쳐야 한다.


티벳 자치구의 와족은 남자는 소만 있으면 여자를 얼마든지 살수가 있다. 이들은 자기 집에 소가 몇 마리 있는지를 자랑하는데 소가 세 마리 이상 되면 아주 잘 사는 부잣집에 속한다.


중국 대룍의 대다수 소수 민족은 부모의 뜻에 따라 혼인을 결정하지만 상당수의 소수 민족은 지금도 고가 품의 예물을 제공하고 결혼을 한다. 특히 1978년부터 개혁과 개방화 바람이 이 지역에서도 거세게 불어 문명의 四神器 가운데 어느것 하나만 있어도 쉽게 장가를 갈 수 있다. 어떤 누족의 젊은 청년은 광쩌우 개발 특구에서 6개월 동안 노동하여 번 돈으로 선풍기, 흑백TV, '영웅'마크의 세탁기를 들고 와 3명의 부인과 살고있다고 한다.


개방화 이후 이들 지역의 젊은이들은 본인의 희망대로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부모와 자식간에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한다. 소 한 마리도 갖지 못한 가난한 젊은이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장가도 못 가고 평생 홀아비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민족은 목매어 죽은 곳에 허수아비처럼 만든 큰 인형을 1년동안 달아 두는데, 이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 허수아비 인형이 매달려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젊은이들의 상당수가 결혼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자살을 선택한다고 한다.


나씨족은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면 비밀리에 도망을 가거나 최후의 수단으로 아이를 낳아 돌아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중국의 소수 민족 가운데 위구르족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은 대부분 여러 명의 첩을 두고 있다. 본처가 보아 첩 가운데 거슬리는 사람이 있을 경우, 3번 연속으로 "타라크'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 첩은 짐을 싸서 집을 떠나야 하는데, 이런 고유의 풍습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고 이듬해 새로운 혼인 법이 제정되어 "결혼은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자주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자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그들 고유의 오랜 관습은 깨지지 않고 오히려 유지되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운남성의 다이족은 1978년 개방화 이후부터 결혼 의식이 약간 바뀌었다. 결혼식은 신부집에서 하는데, 신랑 신부는 흰 면사포로 팔을 연결시키는 것을 수수한 마음이 하나로 합친다는 뜻으로 개량된 새로운 결혼의 일종이다.


이들 민족은 결혼 후 남자는 대게 3년 동안 처가에서 살다가 자기 집으로 데려갈 수 있으나 처갓집에 남자가 없다 든가 노동력이 부족하면 계속 처가살이를 해야 한다.


처가살이에서 벗어나려면 사내아이를 여러 명 낳아 그 중에서 하나를 처갓집에 주고 가는데, 이 사내아이가 물동이를 들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독립해서 살 수 있다.


중국이 개방화되면서 이상하게도 민족주의 바람이 불어 그들 고유의 언어와 풍습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곳곳의 소수 민족 사회에 팽배해 정부에서 한족 부부는 한 자녀, 소수 민족은 두 자녀를 갖도록 강력하게 권장하고 있지만 대부분 한 집에 6∼7명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옛날보다는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소수 민족 대부분이 지식수준이 낮고, 또 지식수준이 낮을 수록 그들의 옛 풍습을 지키려고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