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궁궐 정원석은 수입명품?
한겨레 | 입력 2010.02.22 19:00
[한겨레] 박순발 교수, 전북 왕궁리 유적 '어린석' 중국산 주장
오늘날 한국인들은 정원이라면 대뜸 '고깃집 가든'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삼국시대까지 올라가는 이 땅 정원의 역사는 자연주의 예술의 경지를 빚어온 과정이었다. 불교 수미산, 도교 이상향 등을 염두에 두고 산과 호수, 강을 본떠 소우주로서의 자연을 빚었던 것이 고대 선조들의 정원 콘셉트였다.
2년 뒤인 2006년 정원터 수로 사이에서 작은 돌 2점이 발굴삽에 걸렸다. 석회암 바탕에 자갈돌이 송골송골 박힌 귀여운 괴석, 일본에서는 물고기 비늘 같다고 하여 '어린석'(魚鱗石)이라고 부른다. 작고 귀여운 모양 때문에 귀족들한테 감상용으로 사랑받았을 이 돌은 어디서 캐어 왔을까. 왕궁리 부근일까. 요즘 수석 명품들처럼 수입품일까.
고고학자인 박순발 충남대 교수가 최근 색다른 단서를 내놓았다. 그는 올봄 출간 예정인 < 백제의 도성제 > 에서 왕궁리 어린석이 비슷한 시기 중국 남북조 시대 궁터 등에서 나온 어린석과 겉모양, 재질이 거의 같다는 사실을 학계에 보고한다. 그 계기가 된 것은 2007년 박 교수가 일본의 고도 가마쿠라의 부단 공원에 우연히 들렀다가 본 조경석. 자갈이 알처럼 박힌 모양새가 영락없는 왕궁리 어린석이어서 현지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중국 장쑤성(강소성)' 원림에서 가져왔다는 대답을 들었다. 2009년 4월 중국 남조의 도읍터인 난징에 갔던 박 교수는 시 박물관에도 비슷한 어린석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난징 시내 육조시대 건강궁성 터에서 나온 유물이었다. 2008년 난징 조가산에 있는 남조시대 원석 가공장 터에서도 별개의 어린석이 발굴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2009년 연말 산시성 다퉁(대동)에 있는 북위 효문제의 할머니 태후 무덤인 영고릉도 답사해 비슷한 어린석을 확인했다. 박 교수는 "어린석이 백제와 동시기 중국 남조의 중요 조경 소재로 쓰였음을 알게 됐다"며 "귀한 어린석을 수입해 꾸밀 정도라면, 백제 조경술은 중국과 대등한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왕궁리 어린석을 중국 수입품으로 지레 단정할 수는 없다. 중국 어린석과 재질을 비교분석하고 전래 경로도 구체적으로 밝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고고·조경학계에서 어린석 산지를 둘러싼 논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조경사 연구자인 정재훈 한국전통문화학교 석좌교수는 "학계에서는 왕궁리 정원석들을 익산 부근의 석회 동굴 등에서 캔 것으로 추정해 왔기 때문에 이런 설은 좀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비쳤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사진 박순발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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