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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주의적 지혜의 종교로서 유교와 도교

지식창고지기 2010. 4. 8. 23:28

인본주의적 지혜의 종교로서 유교와 도교

정원


제 1 장 서론

본고는 역사적으로 중국 종교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왔던 유교 도교  두 종교를 지혜라는 관점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중국 민속신앙은 불교, 도교, 유교적 요소의 혼합이다. 자신들의 전통 안에서 정신의 고향을 찾고, 분향과 다른 종교적 의식으로부터 종교적 안정을 찾으려는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마오쩌뚱을 신격화 하는 일, 다민족 다신숭배의 중국이다.

 

종교의 기능

모택동을 위시한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속종교가 치유가 아니라 오히려 아편일 수 있다고 보고 종교를 부정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국에서 티베트만큼 민속과 종교가 일치를 이루고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티베트의 사원들은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반면에 하층계급들은 수동적 의존과 미신 및 숙명주의의 노예로 만드는 구실을 하고 있지나 않나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중국의 민속신앙은 자주 실용주의로부터 우러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그래서 가장 그들에게 이득을 보게 해 주리라고 믿는 신이나 신들, 성인들에게 기도를 바친다. 이러한 기복종교에 내재하는 위험은 자명하다. 민속을 강조하면 모든 도덕적인 요소를 질곡 시키게 되며, 종당에는 비판적인 사상가들이나 지식인들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빚는다. 레닌, 스탈린, 모택동 치하에서의 종교 비판이나 탄압은 도덕으로서의 종교가 이미 그 신용이 땅에 떨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큉, 칭 1994: 74)

 

도교는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중국인의 종교이다. 중국식 사고는 극단을 회피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도교가 있었기에 가능하다. 외래종교 불교가 유교와 도교 삼교의 상호 수용과 발전을 알아야 한다. 

 

조화와 도덕에 바탕을 두고 자연을 선하고 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유교류의 국가이념, 개인주의적이며 낭만적인 도교의 회의주의. 중국에서는 불교가 선두에 서서 이제까지 유교와 도교가 소홀히 해왔던 부정의 문제, 즉 고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불교에서 삼라라고 부르는 자연은 그 자체로서 악하다. 삼라는 다만 고통을 시사 할 뿐이다. 만상에 내재하는 불성만이 선하고 순수하다. 특히 선은 이 과정에서 도교류의 자연종교를 수용하여 공의 개념에 관한 새로운 강조에서부터 산수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활용하였다. 반대로 불교의 영향아래서 도교는 점차 금욕적이고 밀교적인 수도종교로 바뀌어갔다.(큉과 칭 1994: 205)


시장개방정책은 중국인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다른 한 면으로는 청소년 범죄, 실업, 매춘, 마약, 가정파괴,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와 같은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을 불러왔다. 중국정부는 이 같은 현상들을 치유하기 위해 유교정책 부활, 화해사회건설 제창, 실용적인 종교정책, 상담사 양성등과 같은 정책들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하기위해 몸부림치는 중국인들에게 다양한 종교들이 파고들면서 불교와 도교 개신교와 가톨릭이 급성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종교상의 무지가 널리 퍼져있는 상태에서 파룬궁과 같은 민간종교결사체들도 되살아나고 있다. 종교에 대한 감시와 규제들이 여전히 부흥의 발목을 잡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기독교는 가장 빠르게 확장되면서 “4억 명의 불교와 도교 신자”의 뒤를 이어  “1억2500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제 2 장 유교(儒敎), 도교(道敎)

중국종교는 셈 계통의 예언종교와 인도계의 신비종교와 함께 세계가 소유하고 있는 세 번째로 큰 종교 흐름이다. 이 세 번째 흐름을 결정하는 중심존재는 예언자도 신비주의자도 아닌 바로 ‘성인’(聖人)이다. 성인은 중국종교가 “지혜의 종교”가 되게 하는 중심요소이다. (큉과 칭 1994: 12~14)


현재 중국에는 유교, 불교, 도교를 비롯해 민속종교와 이슬람교, 천주교, 기독교, 그리고 민간종교 결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소위 성인들의 지혜가 근간이 된 유, 불, 도 삼교(三敎)가 자리 잡고 있었다. 중국에 종교 열이 고조되어 가고 있는 이때에 중국인들과 보다 성숙한 관계(關係)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 문화의 사상적, 종교적 감정을 바르게 이해할 필요를 느낀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기치로 내건 ‘화해사회’(和諧社會)건설은 인간의 철학적 성찰이나 윤리 도덕만으로는 이룰 수 없고 참 지혜자, 유일하고 영원한 화해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실 때  참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적실(適實)하게 전하고 싶다. 따라서 본고는 중국종교의 양맥이라는 유교와 도교의 간략한 역사와 특징, 그리고 두 종교가 중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인본주의적 지혜의 종교라는 관점으로 살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본주의적 지혜’란 ‘사람에게서 나온 지혜’라는 의미이다.

유교와 도교는 중국사상과 전통종교를 대표한다. 중국종교는 중국사상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중국에 과연 종교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유교와 도교는 사상이면서 또한 종교이다. 두 종교는 성인들을 통해서 나온 인본주의적 지혜의 종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유교는 도덕과 의례의 종교로, 도교는 다신론과 연금술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교의 장점은 인간과 인성에 관한 관심에 있다.

 

1. 유교


북경의 자금성 남쪽에 있는 천단(天壇)은 명나라 때 건축된 유교의 신전이다. 그곳에서 되어 6백여 년간에 걸쳐 제천행사를 해왔는데, 1912년 중화민국(中華民國)의 성립으로 막을 내렸다. 유교는 유가(儒家)사상에서 출발한다. 유가사상은 공자(孔子, B.C. 552~479)가 큰 틀을 세웠고, 많은 맹자, 순자, 주희와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면서 완한 것으로써 약2천여 년 동안 에 걸쳐서 중국의 철학적 사고를 지배했다. 그러나 유교는 하지만 유교는 1949년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삼고 출범한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과 함께 전체주의, 관료주의, 혈연주의, 보수주의, 남성우월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렇지만 유교의 ‘윤리적 인본주의’전통은 여전히 중국인의 문화와 심리구조에서 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1984년 이후 중국은 대만과 한국의 뒤를 이어 9월 28일을 공자의 탄신일로 경축하기 시작했고, 유교를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제시하고 있다. 소개하며  보급시키고 있다.


유교의 인본주의는 4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전 은주 나라의 종교적 전통에 기인한다. 은나라와 주나라의 종교적 전통과 철학사상은 만난다. 은나라의 왕은 백성을 이끌고 가서 귀신을 섬긴 반면 주나라 왕은 예악(禮樂)을 통하여 백성을 교육하였다. 주나라는 신보다 인간의 의지를 중시했다. 계속된 중국의 인본주의는 난세를 배경으로 생겨났고, 신앙에 회의를 불러일으켰고 이것은 당시의 철학적 사상과 관련이 있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운명을 귀신의 힘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행위와 결부시켜 생각하면서 인간의 이성(理性)이 각성되었던 것이다. (큉과 칭 1994: 87~88)

 

서양에서 신유학(新儒學)이라고 부르는 성리학(性理學)은 유교의 형식주의를 타개하기 위해 불교와 도교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성리학은 도덕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수양론으로 이어졌다.


성리학은 만물의 본질을 리(理)로 규정하고 그 리(理)를 도덕법칙으로 이해했다.(이호 2002: 23) 유교의 명상은 스스로의 도덕성을 증진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주희(朱熹)는 도교와 불교의 자연주의와 유교의 심성주의와 문화주의 등을 융합시킴으로써 중국인본주의 전통을 대표하는 존재로 자리매김 했다 (김교빈. 이효걸. 홍원식 2002: 23).

 

2-1. 유교의 특징


첫째, 하늘과 땅 가운데 인간의 수양과 완성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사상이다. 공자는 천(天)에 대한 관심을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어 놓았다. 공자는 인간의 인간됨은 평생을 두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인(仁)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인간다움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형제, 남편과 아내, 친구 사이의 오상(五常)관계를 통해 드러난다. (김교빈. 이효걸. 홍원식 2002: 22~23) 그래서 종교의 중심에 사람이 온다. 종교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다. 천지 우주 간에서 사람이 중심에 선다. 조상숭배도 산 자와 죽은 자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조상은 가족과 죽은 자와의 관계이다. 인간 간의 조화는 나아가 자연과의 조화로 확장되는데 여기에는 천(天), 지(地), 신(神), 귀(鬼)가 모두 해당된다. 귀신을 대하는 것도 역시 인간관계의 연장선으로 이해한다.


둘째, 윤리와 도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유가는 인간의 사적인 이익추구를 철저히 배격하고 오직 도덕적인 욕구만을 인정했다. 그래서 공자는 논어 헌문(憲問)편에서 “이익이 될 만한 일을 보거든 옳은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말하였다. 그들의 윤리의 표현인 예(禮)는 천(天)과 의(義)와 연관되어 있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가르침의 말은 그들의 깊은 윤리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셋째, 신이나 초월적인 존재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강한 사회성을 갖는다. (김교빈 이효걸 홍원식 2002: 4) “아침에 온 세상에 질서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라고 한 공자의 말 속에는 공자의 강한 사회적 관심이 드러나 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방면 등에 강령 되었다. (2002: 23~24) 맹자는 폭군을 죽이는 것은 정당하다고 했고 백성이 가장 귀하며 사직이 그 다음에 오고 군주는 그 위치가 가장 가벼운 존재라고 했다.

 

2-2. 유교가 중국사회에 미친 영향


첫째,

유교는 자연과 사회질서의 조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인류애를 실천하도록 독려했다. 맹자는 부모와 친족에게는 특별한 사랑이 요구되고, 이웃에게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러한 보편적인 사랑정신은 유교 정신의 근원인 동시에 중국사회 전반을 결속시키는 힘의 원천이 되어 왔다. (큉과 칭1994: 94)

 

둘째,

유교는 공산당 탄생의 양분을 제공했다. 유교는 인간관계를 계층화하여 고착시키고 경직시켜왔다. 뿐만 아니라 유교의 강점은 불교나 도가에서처럼 사회회피도 아니고, 묵가처럼 정치와 사회질서에 완전한 순응도 아니며 법가처럼 강압정치를 주장하는 것도 아닌 극단을 피하고 중도(中道)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중도사상은 타협의 구실이 되었다. 유교가 국가공인을 받은 후로는 경전이 터득을 통해 입신양명(立身揚名)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래서 19세기 말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교에 대한 강한 비판이 일어났고, 결국 반 전통, 반 유교의 절규가 고조에 달했던 5. 4운동의 와중에서 1921년 중국 공산당이 탄생했다. (1994: 107~108)

3. 도교


영어의 ‘Taoism’은 철학으로서의 도가(道家)와 종교로서의 도교(道敎)를 의미한다. 1천8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교는 후한시대 장도릉(張道陵)이 창시한 중국의 본토종교(本土宗敎)이다. 도가사상은 황제와 노자를 교조(敎祖)로 삼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지(主旨)로 한다. 경전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이고, 신앙의 핵심 목표는 일정한 수련을 통하여 도를 터득하고 신선(神仙)이 되어 불로장생(不老長生) 하는 것이다. 도교는 중국의 신선사상 (神仙思想)에 민간신앙의 요소도교의 형성과 발전과정 초기 도교는 2세기경에 형성되었다.  도교의 근간은 상고시대의 무술(巫術), 진한시대의 ‘신선방술’, 전한 시대의 ‘황노도학’에 이루어졌다. 도교의 번영은 남북조에서시기에서 당대(唐代)까지였다. 불교의 전래는 외래문화 사상에 항거하면서도 중화민족문화를 자각하게 하여 자신의 종교를 세우려는 움직임을 촉발시켰다. 당대(唐代)에 국교화된 도교는 노자를 당 왕조의 선조로 모시고 존경하였으며 통일적인 교단을 형성하며 확장되어 갔다. (남회근 2007: 2) 왕원지(王遠知)는 남북 도교를 통합한 도교 교단의 최초의 지도자가 되었다. 모든 주에 도관이 건립되었으며 약2천여 개의 관립도관과 1만5천여 명의 도사가 있었다. (2006: 19~20)

 

당 말 도교가 국교적 지위를 상실할 무렵부터 명청 시대에는 신흥도교(新道敎)가 출현했다. 태일교(太一敎)는 민중을 병과 재난에서 구하기 위해 부적과 기도로 삼았다. 전설전진교는 궁극적 실재인 도(道)와 합일(合一)을 이루기 위해 구복(求福)신앙을 배제하고 엄격하게 내면수행을 했다. (2006: 21~22) 이처럼 신도교파는 합리적이고 서민적이며 실천적으로 변화된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도교의 보급을 위해 유불교의 교리와 수행방법을 융화시킨 결과이다. 명대(明代)에 이르러 중앙기관을 세우고 도교를 쇄신하기도 했다. 20세기 이후 공산화와 함께 쇠퇴의 길을 걷다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1978년 이후 도교의 궁관(宮觀)이 재건되고 조직이 회복되었고, 2009년 최초의 여성 방장이 탄생했으며 도가철학, 나아가 불교까지 수용한 인본주의 사상과 종교의 혼합체이다. 도교는 오늘날까지도 기공, 단전호흡, 섭생법, 체조, 점치기, 관상, 풍수, 지관, 폭죽, 분향 등으로 오늘까지도 중국인들의 신앙과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후한(後漢) 때 장릉이 사천(四川)에 오두미도(五斗米道)와 산동성의 간길(干吉)이 세운 태평도(太平道)가 초기 도교를 대표한다. 초기도교는 조직과 교리가 단순하고, 부수(符水)와 주술(呪術)을 사용하여 병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짧은 시간에 교세를 확장하면서 때로는 민중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동진(東晉)왕조 때 민간위주의 남방도교와 귀족위주의 북방도교로 나누어진다. 동진(東晉)의 갈홍(葛洪)은 금단술(金丹術)이라는 신선방술을 체계화 시켰다. (박종우 2006: 13~16

 

3-1. 도교의 특징


첫째,

도교는 자연을 중시하고 인본주의를 부정하는 자연주의 철학이다. 이는 유가사상과 대립된다. 그들은 인본주의가 모든 불행과 혼란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도(道)를 터득하는 길은 인간이 변화에 순응하여 만물과 하나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을 만물의 주인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덕성을 강하게 부정한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지혜나 인, 의, 예, 지 같은 도덕을 반대하였고, 백성들을 자연에 맡겨 두는 무위(無爲)의 정치를 주장했다. 바로 이러한 생각을 도교에 적용한 것이 연단술(煉丹術)이다. (김교빈. 이효걸. 홍원식 2002: 24~25)

 

둘째,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연법칙에 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도덕성을 강하게 부정한다. 도가 무너져서 생긴 것이 예의 도덕이다. 그런 시시비비(是是非非)의 결과를 절대화시킴으로써 관계 속에서 분쟁이 일어난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지혜나 인, 의, 예, 지 같은 도덕을 반대했으며, 정치적으로도 백성들을 자연에 맡겨 두는 무위(無爲)의 정치를 주장했던 것이다. (2002: 25)

 

셋째,

 자연 속에 있는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유교의 인간 영장론을 부정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일 뿐이며 만물은 동등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것처럼 보이는 존재까지도 각각의 존재 의미가 있다. (2002: 25)


넷째,

반체제적인 저항성격을 띠며 개인주의를 지향하고 현세적이기보다는 도피적이고 신비주의적이다. 노자와 장자는 자신의 명성보다는 보존을 위한 철학자들이었다. 도덕경에서 보인 처세의 지혜가 장자에서는 내면의 수양을 통한 절대적 삶의 획득이라는 문제로 바뀐다. 이런 영향은 현실 부정하면서 도피와 은둔생활로 이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각종 저항과 반란에서 정치적 수단으로 큰 작용하기도 하였다.

 

끝으로

도교에는 유교에 없는 종교체계의 요소들이 많다. 죄, 기도, 고행, 의식 등을 통해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와 소통하려고 했다. 도장(道藏) 이라는 경전이 있고, 장생의 추구를 위해 연금술을 발전시켰다. 접신을 통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냄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인격의 발전을 위해 요가와 명상을 했다. 이 밖에도 도교는 복잡한 의례들과 새해를 맞는 의식들, 분향, 도사(道士) 등이 있으며 점쟁이, 관상쟁이, 풍수쟁이, 지관들도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종교적 특징은 도장(道藏)이라는 이름으로 불교, 마니교 심지어 기독교의 저작까지 포함하고 있는 경전인데 그 중심내용은 도사가 황홀경에 빠졌을 때 신으로부터 받는다는 계시이다. 장생의 추구를 목표로 하는 요가와 명상은 접신을 통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 요가의 목적은 마음의 평화와 인격의 발전이다. 명상은 마음을 장기의 한 부분 혹은 그 안에 거주하는 신령에 집중시키는 일종의 신령을 관상하는 법이다. 또 사람이 신선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연금술을 이용했다. 


도교는 유교의 인본주의적 지혜의 극을 대표하는 자연주의 사상에서 나온 인본주의적 지혜의 종교라고 말 할 수 있다.

 

3-2. 도교가 중국사회에 미친 영향

 

첫째,

도교는 속세를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 반항운동과 비밀결사의 종교였다. (큉과 칭1994: 184) 도가(道家)의 사상은 현실도피를 조장하고 방조했다. 그들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평등사상은 계급질서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아 ‘황건적의 난’(184~215)과 같은 역사상 많은 농민봉기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구세주 신앙도 비밀결사체들의 저항운동을 일으키는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오늘날까지도 도교가 위험시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둘째,

과학과 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주관을 배제시키고 사물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볼 것을 강조함으로써 화학, 광물학, 식물학, 동물학, 약학, 천문학에 이르는 자연과학 발전을 가져왔다. 뿐만 아니라 자연주의적 도교철학은 미술과 시를 포함하여 해석학적 학문의 발전을 견인했고 중국인의 불교수용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의학 분야는 도교의 가장 큰 공헌일 것이다. 관찰을 중시하는 사상에서 천문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셋째,

평등지향은 계급질서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아 ‘황건적의 난’(184~215)과 같은 역사상 많은 농민봉기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했고, 구세주 신앙은 비밀결사가 주동이 된 저항 행동의 정신적인 지주 구실을 하였다. 오늘날까지 도교가 위험시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교는 오랜 시간동안 불교와 장기적인 충돌을 겪으면서도 그 영향력은 줄곧 불교보다 우위에 있었던 이유는 유교의 성리학처럼 배타주의나 편향주의로 나아가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조화로움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4. 중국의 종교적 특징 - 요약과 결론

기독교는 계시(예언)의 종교이다. 그러나 유교와 도교는 극과 극을 대표하는 인본주의적 철학사상에서 그 연원을 찾는다.

 

지금까지 세 종교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유교는 그 뿌리 깊은 사상적 연원과 실행 때문에 종교라기보다 오히려 생활 그 자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유교는 현실의 지배 이데올로기이며 생활윤리를 형성했던 인본주의 종교이다. 유교의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본주의적 지혜의 종교이다. 중국문화권의 장래가 근대 과학, 기술, 산업, 민주주의의 부작용을 극복하거나 제한하는 능력에 달렸다고 한다면 유교의 덕목들은 오늘날 과도한 개인주의나 윤리의 문란과 같은 현대산업사회의 부산물을 처리하고 정화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큉과 칭 1994: 147, 110)

 

불교는 중국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면서 추상적인 종교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도교는 자연적 인본주의이다. 인간이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했다. 중국의 종교는 신 중심이라기보다는 사람중심이다. 이론적이라기보다는 실제적이다. 유교가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방면에 영향을 미쳤다면, 불교는 종교와 예술에, 도교는 천문, 지리, 의학 같은 과학방면과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

 

제3장 결론과 적용

중국사상과 종교는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유교와 도교는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난 중국인의 종교이다” (노리타나와 쥰조 2007: 38). 유교와 도교의 사상과 의식들은 성인들의 지혜에서 나온 사상과 민속종교의 요소, 그리고 유. 불. 도 3교(敎)가 필요에 따라 서로를 수용하면서 중국인의 의식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지(理智)주의, 현실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실천 덕목들로 볼 때 유교가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철학체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조상숭배와 상제제사는 유교가 인본주의적 지혜에 기초한 종교로써 기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교와 도교는 각각 인본주의와 자연주의 사상의 극과 극을 대표하는 인본주의적 지혜에 뿌리를 둔 종교이다. 유교의 지혜의 목표는 세상과 잘 어울리는 것이다. 그것이 곧 그들의 능력이다. 도교의 지혜의 목표는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다. 피하고 버리는 것이 바로 그들의 능력이다. 그러나 기독교 지혜의 목표는 살아계시고, 참된 인격이시며 사랑이신 하나님과 조건 없는 화해의 삶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혜요, 능력이다 (고전 1: 18?24).

 

나는 중국의 전통사상과 종교가 만들어 낸 ‘중국정신’은 여전히 살아서 직간접적으로 모든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는 중국정신은 ‘인본주의적 지혜에 바탕을 둔 조화와 융합’이다. 중국의 인본주의적 지혜는 깊고 넓고 애매하다. 우리는 중국정신을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중심적인 논리로 맞서야 할 것인가? 과연 중국인들에게 거룩한 양다리 걸치기 전략이 유용할까? 기독교의 삶의 원리는 몸의 나쁜 행실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를 때 몸의 행실이 죽는 것이다 (롬 8:13). 이것은 인본주의적 지혜의 종교가 가르치는 것과는 정반대의 원리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국 사람들을 섬길 때 우리의 교리, 의식, 전통 더 나아가 시비선악(是非善惡)을 우리의 지혜와 능력이신 그리스도보다 앞세우지 않는 것이 하나의 해답이 되지 않을까?

 

필자는 중국의 전통사상과 중국종교는 중국정신으로 수면아래서 여전히 도도히 흐르는 살아있는 실체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중국정신이란 ‘조화와 융합을 지향하는 인본주의적 지혜가 중심에오는 종교이다.

 

우리가 중국을 보는 관점은 중국과 중국인을 경제적, 과학적, 정치적인 관점뿐만이 아니라 철학적 윤리적 종교적, 다시 말해 문화적인 면에서도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특히 기독교가 여타의 종교들보다 가장 신속하게 부흥하고 있는 오늘날 중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뛰고 있는 선교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중국정신’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의 종교는 제도화, 조직화 되어 있다기보다는 일반 대중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현재 중국에는 적지 않은 불교, 이슬람교 사원과 기독교 교회가 있지만 그 종교적인 역할은 미미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깊이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기독교는 교의나 조직, 의식이 선행되어서는 안 되고 그 자체가 삶 이어야 한다.


기독교는 지나친 주지적인 경향을 피하면서 민속종교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주지주의는 민중의 종교를 말살시킬 위험을 지니고 있다. 반면 개신교나 성리학의 예는 주지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민속종교에 주지적인 비판을 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은 개념이나 사고만으로 살지 않는다. 이미지와 심벌 또한 불가결하다. 종교는 연설이나 강론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행동과 제스처와 결실을 통하여 움직인다. 지식상의 업적만이 아니라 동작 예술, 음악, 무용 등을 통하여 움직인다.(큉과 칭 1994: 75)

 

기독교가 중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여 성경에 예언된 대로 시님땅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는 비둘기 같은 순결함과 뱀과 같은 지혜가 필요하다. 중국의 전통종교로서 유도불은 지혜와 선을 추구함에 있어서 기독교의 지혜와 선과 같은 반열에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들과 다른 것은 그것을 이루는 방법이다. 그들의 지혜와 선을 이루는 방법은 인간의 유한성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은 종교역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기독교의 지혜와 선을 이루는 방법은 인간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고 하나님 자신의 지혜에서 나온 방법이다. 인간의 문제해결은 인간 자신에게서 나올 수 없고, 오직 초월자로부터 온다. 유도불은 스스로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초월자에게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 반대다. 초월자에게 충성할 때 초월자를 사랑할 때 초월자를 신뢰할 때 자신과 이웃에 대해 그렇게 할 수 있다.

 

개혁개방정책 아래서의 기치는 소강사회(小康社會) 건설이었다. 근래에는 조화사회(和諧社會) 건설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중국사회에 만연되고 있다


중국 기독교의 사명


중국에서 기독교만큼 급속하게 확장되는 종교는 없다. 중국에서의 기독교의 확산은 이미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중국인들의 의식구조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종교와 전통사상들을 외면해서도 결코 무시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융화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기위해서이다.


지혜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종교는 혼(지, 정, 의)의 영역에서 가장 차원 높은 종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지혜의 근본에서 빗나가 있다. 성경에서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라고 했다. 여호와를 근본으로 삼고(以神爲本) 자신들의 종교적 전통을 실행할 때 세계의 중심에 서서 종교 문화 사상면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다원화 시대에 자기종교만이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만과 독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인들을 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그들 역시 종교성이 강한 민족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들이 믿는 신은 우리가 신앙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닐 뿐이다. 그들의 윤리의 표현인 예(禮)는 천(天)과 의(義)와 연관되어 있다. 그들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말은 그들의 깊은 윤리사상을 나타낸다. 이런 사상이 그들을 지해하고 있는 한 경제력과 자신의 문화를 자긍하는 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지도자로 서기보다는 겸손히 그들을 통해 배우며 동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국인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지극히 종교적이다. 초기에는 애니미즘적인 형태의 신앙을 취하였지만 한 나라 말기 불교와 도교가 크게 흥왕하여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천, 천도, 천명을 말하였지만 그들이 말하는 하늘은 자연적이고 도덕적 근원이며 원리인 자연주의적 일신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이 복음의 접촉점은 될 수 있으나 오히려 초월하신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는 살아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는데 오히려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리에 황제, 부모를 포함하는 조상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종교사상을 볼 때 조화와 융합을 추구한다. 이것은 변화와 개혁을 싫어하여 전도에 방해가 될 수 있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교육열과 윤리관은 장점이 기도하다.  우리의 사명이 여기에 있다. 한국은 중국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왔다. 중국 문화권 아래 있는 한국 교회는 중국을 이해하는데 그 서방국가들보다는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
 
거룩한 양다리 걸치기가 가능할까?

우리가 믿음의 본질을 타협하지 않으면서 다른 종교들의 관심과 개념과 관습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대결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윤리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문제들이다. 자기중심적인 논리, 이지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이러한 문제들을 과연 얼마나 실효성 있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종교(신앙)상 양다리 걸치기는 불가능하다. 기독교는 단순히 상징이나 의식, 윤리상의 처방이나 사회적인 관습의 집합체가 아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가장 깊은 그곳 바로 영 안에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존재케 하는 종교이다.


민족의 문화는 종교적 윤리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인들의 윤리적 기본자세와 기본 규범에 있어서 유교와 도교 그리고 불교의 전통의 영향아래서 살고 있다. 그들이 소유한 전통 종교의 윤리들을 소중히 여기며 복음의 접촉점을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는 몸의 나쁜 행실을 죽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를 때 몸의 행실이 죽는다는 것이다(롬 8: 13). 이것은 유교와 도교와 같은 소위 인본주의적인 지혜의 종교들이 가르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국인을 섬길 때 우리의 교리, 의식, 전통, 시비선악(是非善惡)을 우선순위에 두지 말고, 놓치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선교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