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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빈이 13명이었고, 외빈이 69명이었다. 정조와 신하들은 차례로 혜경궁 홍씨에게 술잔을 올리며 천세를 불러 축하했고, 그 때마다 음악과 정재(呈才)가 공연됐다. 한양과 화성유수부 등에서 선발된 33명의 여령(女伶)들이 다양한 궁중무용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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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정조는 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를 도성이 아닌 화성에서 열려고 했을까? 그리고 군복 차림으로 말을 탄 채 행렬을 이끄는 정조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이날 정조의 화성 행차는 실로 대규모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행렬이었다. 행렬에 동원된 3,000여 명의 군사들은 정조가 직접 창설한 친위부대 장용영의 소속이었는데, 장용영의 외영은 바로 화성에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장용영과 화성은 군제개혁의 상징이었고, 국왕의 정치개혁을 뒷받침하는 군사력의 상징이었다. 정조는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장용영 군사를 지휘함으로써 강력한 왕권과 뚜렷한 개혁의지를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조는 1800년(정조 24) 49세의 젊은 나이에 돌연 세상을 떠남으로써, 조선을 완전히 새로운 나라로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미완의 개혁정치가’로 역사에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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