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생애
BC 6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인 도가(道家)의 창시자.
성(姓)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백양(伯陽),또는 담(聃). 노군(老君) 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신성화되었다. 도교경전인 〈도덕경 道德經〉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현대 학자들은 〈도덕경〉이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저술되었을 가능성은 받아들이지 않으나, 도교가 불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통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자는 유가에서는 철학자로, 일부 평민들 사이에서는 성인 또는 신으로, 당(唐:618~907)에서는 황실의 조상으로 숭배되었다.
이야기에 못지않게 유명한 전설은 노자가 서쪽으로 사라진 이야기이다. 그는 주가 쇠망해가는 것을 보고는 주를 떠나 진(秦)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다. 관문지기 윤희(尹喜)가 노자에게 책을 하나 써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노자는 5,000언(言)으로 이루어진 상편·하편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것이 도(道)와 덕(德)의 뜻을 말한 〈도덕경〉이다. 그리고 나서 노자는 그곳을 훌쩍 떠났고, "아무도 그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사마천은 기술하고 있다.
노자가 서쪽으로 간 사실과 〈도덕경〉을 저술한 점을 언급한 뒤에 사마천은 가끔 노자와 동일시되는 다른 인물들에 대해 말했다. "초(楚)에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있어서 책 15권을 저술하여 도가의 정신에 대해 서술한 바 있는데 공자와 같은 때의 사람이다." "주나라의 태사(太史)이며 위대한 점성술가인 담()이 진(秦:BC 384~362)의 헌공(獻公)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떤 이는 그가 곧 노자라고 하고 어떤 이는 아니라고 한다." 사마천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노자는 150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200년 이상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초인(超人)의 장수를 믿었기 때문에 도교 신자들은 그들의 스승이 매우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훨씬 뒤에 생겨난 전통으로 여겨지는데, 그 근거로는 BC 4세기경에 활약했던 장자(莊子)가 노자의 죽음에 대해 얘기할 때 그가 아주 오래 살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로 사마천은 그가 은군자였음을 들었다. 은군자인 노자는 작위(作爲)함이 없이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바르게 되는 것을 가르쳤다. 실제로 중국 역사상 속세를 떠난 은자는 늘 있어왔다. 〈도덕경〉의 저자(또는 저자들)는 생애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자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가 하는 의문은 많은 학자들이 제기해온 것이지만, 그같은 의문은 별 의미가 없다. 현존하는 〈도덕경〉은 1명의 저작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 내용 가운데는 공자 시대의 것도 있지만 다른 내용은 훨씬 후대의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보아 BC 300년경에 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도덕경〉의 저자가 태사 담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사기〉에 나오는 노자의 후손들에 대한 기술이 신빙성있다고 보고 노자의 생애가 BC 4세기말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노자의 가계(家系)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주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에 이(李)라는 가문이 스스로 도교의 성현인 노자의 후예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이 있었음을 증명해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자가 실제로 존재했었는가를 조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없다. 노자라는 이름은 어떤 개인보다 특정형태의 성인집단(聖人集團)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자의 사상
〈사기〉의 노자전과 기타 오래된 문헌에서 이따금씩 나오는 기술을 제외하고도 2세기 이후부터는 노자에 대한 성인전(聖人傳)이 여러 편 저술되었다. 이같은 전기는 도교의 형성사에서 흥미로운 것이다. 후한(後漢:25~220)시대에 노자는 이미 신화적인 인물이 되어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고 때로는 황제도 그를 숭배했다. 그뒤 종교계에서 성전(聖典)의 계시자이며 인류의 구세주인 노군(老君)으로 추앙되었다. 노자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부처의 기적적인 탄생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 노자의 어머니는 노자를 72년간 임신하고 있었고, 노자는 어머니의 옆구리를 통해 이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또다른 신화는 노자의 성(姓)이 생겨난 유래를 설명한다. 노자는 오얏나무李木 아래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오얏을 의미하는 이(李)가 성이 되었다고 한다. 이 두 신화는 도교신앙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번째 신화에 따르면 노자는 역사상 여러 명의 다른 인물이 되어 지상에 내려와 통치자들에게 도교의 교리를 가르친 것으로 해석된다. 2번째 신화는 노자의 서행(西行:함곡관으로 간 것) 이야기에서 발달된 것으로 이 신화 속에서 부처는 바로 노자라고 간주된다. 3세기경 불교의 포교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이같은 이야기를 조작하여 위경서(僞經書)가 씌여졌다. 〈노자화호경 老子化胡經〉이 바로 그것인데, 이 책에서 불교는 도교의 아류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의 역대 정부는 빈번히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노자라는 인물은 모든 계층에게 일반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유생들에게는 존경받는 철학자였고, 평민들에게는 성현이나 신으로, 도교 추종자들에게는 도(道)의 화신이자 도교의 가장 위대한 신들 가운데 하나로 숭배되어왔다.
도교의 모든 이론은 노자에 의해 마련되었다. 〈도덕경〉을 통해 볼 때, 노장사상의 핵심은 '무위자연'(無僞自然)에 있으며, 그것이 '도'(道)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여기서 '무위'는 우주론적 정향을 지향하는 것, 즉 부자연스런 행위를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무위자연의 구체적인 의미를 말한다면 '사실 자체의 바탕 위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자체란 다름아니라 노자에게 있어서는 자연이요, 도(道)요, 기(氣)요, 변화이다. 그리고 무위란 그 바탕 위에 서서 떠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도가와 도교
노자의 道
"천지만물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기를 등에 지고 양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 음양의 두 기가 서로 작용하여 조화로운 기를 형성한다." 여기에서 노자가 주장하고 있는 도란 만물이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의 근원과 법칙임을 알 수 있다. 도는 기(물질)이면서 리(법칙)이다. "이름이 없는 것을 만물의 처음이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의 어머니라고 한다." 여기에서 이름이 없는 것과 이름이 있는 것은 모두 도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도가 만물을 발생한다고 했을 때 도는 혼성된 물의 존재이다. 그래서 "혼돈 가운데 이루어진 무엇이 있으니 그것은 천지에 앞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동시에 도는 만물을 떠나 있는 일종의 절대적 '리'이다. 상도(常道), 즉 영원불변하는 도라 불린다. 영원불변하는 도는 가장 추상적인 것으로 구체적인 사물을 떠나 있으므로 형상이 없다. 그래서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희(希)라 하며, 만져도 만져지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미(微)라 한다. 이 세 가지는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뒤섞여 나누어지지 않는 하나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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