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사/잡다한 것

고대~중세 음악

지식창고지기 2010. 4. 23. 11:57

[고대]

선사시대 ~ 200년

음악은 어느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처음으로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인류가 역사를 알게 된 것은 말이 있고, 글이 생긴 이후 일이며, 음악에 관한 모든 실제적인 지식은 어떤 적당한 기보법이 만들어진 이후에야 가능한 일로서 그 이전의 일들은 상상으로밖에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음악의 발상에 관한 설은 세계의 어느 민족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데 신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신수설(神授說)과 자연발생설(自然發生說)을 들 수가 있다.

 

 동굴벽화


미개한 민족에 있어서도 어떤 형태이든간에 음악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음악은 분명히 인간의 본능의 하나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음악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같이 시작되어, 지금 남아 있는 벽화나 고분의 유물, 그리고 지구상에 아직 남아 있는 아프리카인, 아메리카인디언, 오세아니아 종족들과 같은 원시집단의 음악연주와 실제로 오늘날까지 어느 정도 문화풍토를 지니고 있는 중국, 인도, 샴, 일본 등이나 다른 동양인 집단의 고대음악 연주들을 통하여 상상으로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개한 원시시대의 원시인들의 음악은 영적인 것과 연관된 일련의 신앙적인 것에 연루된다. 신앙을 필요로 하여 음악이 발생되었고, 이러한 음악은 마법의 기능으로 병을 고친다고 생각했고, 노동이나 전쟁에 사용하기 위하여 음악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대음악의 발자취는 문명의 발상지인 국가들 즉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 인도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 지역의 고대국가들의 음악도 종교의식과 관련된 것들이고 그 이외에는 궁정에서의 향연이나 오락등을 위한 것과 전쟁에 사용하기 위한 음악들로 추정된다. 이 시대의 음악은 화성도 대위법도 없는 단선율로서 그 선율도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특히,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는 기원전 4,000년경에 벌써 매우 수준높은 음악이 있었다. 이들은 하프와 플루트 종류, 그리고 타악기등을 사용하였고 이집트 지방에서는 B.C 3.000년경에는 일종의 관현악도 행해졌다.

 

수메르인들의 종교의식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보다 약 1,000년 늦게, 유대에서는 음악이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달하여 B.C 1.000년경, 즉 다윗왕이나 솔로몬왕 시대에 그 전성기를 맞이하였는데 이것은 구약성서에도 자주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음악은 B.C 1.000년경에 성하였는데, 그리이스 사람들은미적 감각이 발달해 있었고, 동화력이 강해서 자기들의 음악을 발전시켰고, 또한 고대 오리엔트 여러 민족의 음악을 흡수하고 동화하였다. 즉 고대의 음악은 그리이스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종합되고 체계화되어 그 수준을 한층 높였다. 그들은 음악을 단지 제사와 오락 뿐만 아니라 매우 지적으로 다루었으며 음악에 대한 철학성, 윤리성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요소가 논의되었고 과학적인 연구를 하였으며 음악을 교육상 대단히 중요시하였다. 그러므로 고대의 대부분의 음악문화는 그리이스에서 시작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리이스의 음악이론은 로마를 거쳐서 오늘날의 서양음악의 모체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이스 음악에 중요하게 담당되었던 악기는 키타라(Kethara)와 아울로스(Aulos)로서 이것은 시리아 지방에서 일찍이 발견된 것들이다.

 

 


 

Auletes (Aulos player), Phorbeia

      



[중세]
200년 ~ 1450년

역사적 배경:6세기부터 15세기까지를 중세라 하며, 성가(찬트)의 발전과 다성 음악의 시작, 세속음악의 출현 등이 이 시대 음악의 특징이다.중세 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던 크리스트교 음악은 '그레고리오 성가'가 대표적이며, 이러한 성가는 10세기까지 발전했고, 11세기에는 다성 음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양식은 후에, 노트르담악파나 아르스 노바 음악으로 이어졌다.중세는 봉건사회제도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도교의 사회로서 정치문화에 있어서 강력한 종교적 지배를 받던 시대였다. 중세기의 음악사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의식과 결부시킨 성가(聖歌)로 시작한다. 그러므로 중세기에 유럽음악이 발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리스도교를 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교는 그 모태가된 유대교의 영향도 있지만 그밖에 음악을 존중하여 초기단계부터 독특한 의식음악을 발전시켰던 것이다. 중세음악은 대체로 로마네스크 음악, 다성음악-고딕음악, 세속음악 등으로 크게 구분한다.

사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클래식 음악이란 모두 여러개의 성부를 가진 음악이기 때문에 처음 대하는 감상자들은 서양 음악이 본래부터 여러 성부를 가진 음악(다성음악)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양음악도 처음에는 하나의 선율로만 이루어진 단선율의 음악이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하고 , 무수한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게 단선률이 복선률로 바뀌게 된 첫 시기가 바로 9세기 중엽이다. 따라서 약 9세기 중엽까지는 단선율이 지배하던 시대이다 물론 9세기 이후에도 단선율 음악은 계속 독자적인 발전을 보여왔지만 이전과 같은 중요성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단선율이 지배하던 시대를 로마네스크 시대라 한다.

음악적 특징:

(1) 로마네스크 음악(Romanesque Music)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발달되었던 음악으로서 이것은 로마네스크 미술과 통하는 양식이다. 그 주요한 것은 초기 기독교의 교회음악으로서, 고대음악처럼 단선율이지만 대체로 성악이며 기독교적인 가사를 가지고 있다. 이 음악은 4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러 그레고리 성가로 절정을 이룬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음악을 존중했으나, 처음에는 기독교 박해로 숨어서 음악을 하다가, 기원후 313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은 후에야 비로소 성대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음악은 처음에는 시리아, 팔레스티니, 소아시아 등지의 음악, 즉 유태적이거나 그리이스적인 음악들을 필요에 따라 적당히 기독교적으로 고쳐서 쓰기 시작했다. 이러한 것이 그후 로마의 각 지방에서 조금씩 서로 다른 양식의 음악을 가져오게 하였던 것이다.로마의 교회세력이 크게 떨치자 지금까지 지방에서 행해지던 교리와 의식, 성가등을 일정한 형식으로 통일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성가의 경우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339년경∼397년)가 개혁한 암브로시오 성가(Ambrosian Chant) 이래 2세기후 교황 그레고리우스(Gregorius 540∼604)가 제정한 그리고리우스 성가(Gregorian Chant)로서 마침내 그리스도교 음악을 통일시켰다.

 

 

St. Gregory the Great(교황 그레고리우스 Pope Gregorius) 


이 전통적인 교회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는 단선율의 라틴어 가사로 된 단순한 것이지만 그 유동적인 선율은 실로 거룩하고 아름답다. 이 성가는 지금도 가톨릭교회에서 공식적인 음악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순수한 음악임과 동시에 예배에 속하는 기능 음악이다. 이시대의 예배에는 두 가지 기본적이 형식이 있다. 그것은 성무일과(Office)와 미사(Mass)인데 성무일과는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순서대로 예식으로 모두 8개가 있다. 성무일과를 위한 그레고리오 성가는 안티포날레(Antiphonale) 또는 안티포날(Antipho nal) 이라고 하는 의전 책에 수록되어 있다.

미사는 성무일과 보다는 늦게 발달했지만 가톨릭 교회의 기본적인 예배로 'MASS'라는 말은 '가시오 집회는 끝났소(Ite missa est)'라는 의식을 끝내는 구절에서 유래 되었다. 미사에는 평소에 일반적으로 지켜지는 일상부 미사와 특별한 절기에 지켜지는 특별 미사가 있는데, 일상부 미사는 보통 키리에, 글로리아, 크레도,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뉴스 데이로 이루어진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음악적 특징은 앞서 말했듯이 하나의 선율로 이루어진 단선율 음악이다. 그리고 가사면에서 본다면 모두 라틴어로 쓰여져 있지만, 성서적 가사를 갖는 것과 비성서적 가사를 갖는 것으로 구분되며, 선율의 윤곽은 가사의 강세형을 반영하지만 선율을 특별한 감정 또는 서술의 효과를 적용시키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정확한 박자와 마디의 표시가 없어서 길게 낭송하는 듯이 보인다. 음계는 헥사코드(hexachord)라고 불리우는 6음 음계 체계로 이루어졌으며, 음의 기록은 네우마(neuma)라고 불리우는 기호들을 사용하여 표시하였는데, 보다 명확한 기보를 위해서 f음을 대표하는 붉은 선을 그어 그 아래 위에 기호들을 위치시켰고 조금 지나서 c'음을 표시 하기위한 노란선이 그어졌고, 11세기에 이르러 귀도 다레초에 의하여 4선 보표가 사용되게 되었다.

(2) 다성음악-고딕음악(Gothic Music)

다성음악의 발달은 오르가눔(Oraganum)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서양음악 구조의 두가지 큰 법칙은 화성법과 대위법인데, 9세기 중엽 서양음악에서 최초의 대위법이 나타나게 된 것이며, 대위법의 기초가 바로 오르가눔에서 비롯되었다 최초의 오르가눔은 기존 선율에 대해 5도위나 4도 아래로 중복되거나 옥타브로 한 번더 중복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것을 평행오르가눔이라고 불렀다(이런 현상을 기존 선율의 종적 확장이라고 한다.) 그 후 11세기경 기존 선율은 저성부에 놓이고 대위선율은 상성부에 놓이게되는 자유 오르가눔과 12세기의 화려오르가눔이 탄생하게 된다. 이와 관련된 악파가 생 마르샬(St. Martial)악파이며, 전기 고딕으로 분류되기도한다, 서양 예술사에 알려진 최초의 위대한 다성음악 작곡가는 12세기 말경 노트르담 교회의 합창단장이었던 레오냉(Léonin,Leoninus 1163-1201)이 있는데, 그는 후에 모테트의 모체 가 되는 디스칸투스 양식으로 된 클라우술라를 도입하였다.

 

   

 

그후 13세기경 중세의 이상적음향(Sound Ideal)인 3성부 음악을 이루는데 기여를 한 페로탱(Pérotin ,1200)이 나타나 노트르담 성당을 중심으로 노트르담 악파를 형성한다. 대체로 10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네덜란드와 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한 다성음악(Polypony)형식의 교회음악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교회의 건축양식에서 유래되었다. 다성음악은 유럽 북쪽 민족들 사이에 대략 6,7세기경부터 시도되었던 것을 10세기에 이르러서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었다. 이것은 그 당시 노래되던 그레고리우스 성가를 정선율(定旋律, Cantus Firmus)로 하고 여기에 새로운 성부(오르가눔, Organum)를 추가하는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 다성음악-고딕음악은 음악을 교회 음악에서 벗어내어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공기를 불어 넣으려는 운동으로 눈부신 개혁과 시도가 계속된 14세기의 찬란한 아르스노바(Ars Nova, 새 예술)와 15세기가 되면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대위법적인 다성 음악의 극치를 이룬 네델란드악파(Netherland School)의 음악을 포함하고 있다.

 로탱의 자필악보

 


3)아르스노바(Ars Nova)

13세기를 안정과 통일의 시대라고 한다면 14세기는 변화와 다양함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후기 고딕시대로 분류되는 14세기에는 이전의 신 중심적인 사고에서 탈피, 인간 이성과 성스러운 계시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본주의(Humanism)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후에 르네상스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된다. 이러한 기운을 안고 14세기초 프랑스에서 그리고 조금 늦게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음악형태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프랑스에서 그리고 조금 늦게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음악형태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프랑스 작곡가이자 이론가인 필립 드비트리(Philippe de Vitry 1291.10.31 – 1361.6.9)의 논문 제목을 따서 아르스 노바(Ars nova/신예술)라고 불렀으며 이전시대를 아르스 안티카(Ars antiqua/구예술)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1300년경에 최초로 신음악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후 대략 300년의 터울로 신음악이 그것이다.

 

  Ars nova 


14세기에는 종교음악 작곡으로부터 세속음악 작곡으로 그 강조점이 크게 변하게 되었으며, 다양하고 자유스러운 리듬, 그리고 일정한 조의 중심을 향해 진해하는 화성감각이 자라나게 되었다, 즉 5도와 8도가 드물어지는 반면, '고정형식(Formes fixes)'이라고 불리우는 발라드(ballardes), 론도(rondeau), 비를레(virelais)가 발생한다. 이 모든 14세기의 특징을 창출한 가장 유명한 작곡가가 바로 기욤 드마쇼(Guillaume de Machaut)이다. 15세기 초 영국에서도 장조 조성으로 향하려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 시기의 지도적인 작곡가로는 존 던스터블(John Dunstable)이 있다.

  Guillaume de Machaut

(4) 세속음악(Secular Music)
11세기경까지 유럽의 모든 예술과 학문 분야는 성직자들이 주도하였으나 12세기에 이르러 봉건사회의 기사계급은 그동안의 교회와 수도원의 전통적인 권위의 지배 속에서 벗어나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을 추구하였다. 또한 오랜 십자군 전쟁 이후 극단적인 종교열은 침체했고 동방의 화려한 이국문화의 접견으로 세속적 요소가 사회생활에 팽대해졌다.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속음악은 점차 민중 속에서 발전해 나갔다. 대부분의 세속음악은 단선율로서 악기와 함께 연주되었다. 이러한 세속음악은 12세기경부터 귀족계급인 남 프랑스의 투르바두르(Troubadour)와 북 프랑스의 투르베르(Trouvere)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작품도 많이 나왔다. 그들은 자작의 시에 노래를 즉흥저긍로 불렀다. 여러 곳의 왕궁과 귀족의 저택을 방문하여 간단한 악기의 반주로 그것을 노래했다. 시의 sodyhd은 사랑노래와 발라드 풍의 이야기,자연의 찬미,종교적 또는 도덕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예인(藝人)도 고용하여 다녔는데 자작의 시를 그들에게 노래시켰다.

 


이들은 프랑스에서는 8세기경부터 종글뢰르(Jongleur) 영국에서는 민스트럴(Minstrel)이라고 했다. 13,4세기경에는 독일 남부에서 오스트리아에 걸쳐 미네쟁거(Minnesange)라는 음유시인(吟遊詩人)이 있었다. 이들은 기사계급이 많았는데 이후 세속음악은 점차 기사계급에서 교양있는 시민계급으로 전해졌다. 이들이 독일의 마이스터징거(Miestersinger)이다. 이들은 16세기경까지 계속되는데 독창적으로 창작곡을 내는 것보다 기존의 성가나 세속음악을 수정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5) 기보법의 발달
그레고리 성가를 위한 기보법이 9세기경에 네우마(Neuma)라는 그리이스말로 창안되었으며 1세기경에는 이탈리아의 귀도 다레쪼(Guido d'Arezzo)는 네우마를 4개의 평행선상에 두고 음의 높낮이를 표시하는 기보법을 창안하였고, 또한 계명부르기를 고안하였다.13세기경에는 쾰른의 성 요한 수도원의 수도사이며 교사인 프랑코 데 콜로니아(Franco de Colonia)에 의해 음의 높낮이뿐만 아닌 길이도 표시할 수 있는 정량기보법을 창안하였다. 오늘날의 5선보에 의한 편리한 기보법이 완성되기까지는 천 여년의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Guido d'Arez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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