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대 조선 전기 여성 미라 발굴
연합뉴스 | 입력 2010.05.13 05:33 | 수정 2010.05.13 07:13 |
경기 오산 공사현장서…복식 완벽, 양호한 상태
정6품 사대부 가문 부인 추정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임진왜란 이전인 1500년대 중반 생몰(生歿)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여성 미라가 발굴됐다.
서경문화재연구원은 이달 초 경기도 오산 가장2일반산업단지 공사 현장에서 문화재 시ㆍ발굴 조사 중 조선시대 회곽묘(灰槨墓)가 나왔다고 13일 밝혔다.
회곽묘 안의 내관(목관) 덮개에는 `宜人驪興李氏之柩(의인여흥이씨지구)'라고 써있다. '의인'이라는 호칭은 발견된 미라가 남편 품계에 따라 정6품 작위를 받은 사대부집 가문의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관에서는 백자유개호(白瓷有蓋壺), 운아삽(상여에 그려진 문양), 목재빗, 명정, 뒤꽂이(쪽진머리 뒤에 덧꽂는 비녀 이외 장식품) 등 유물 10여점이 나왔는데 운아삽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라가 발견된 묘는 봉분이 없는 상태였으며, 인근에 남편의 묘가 있었다.
남편 묘는 아직 발굴하지 않았지만 부부 미라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원 측은 지난 8일 김우림 울산박물관추진단장, 김한겸 고려대 교수팀(미라담당), 권영숙 부산대 교수팀(복식담당)과 함께 현장을 찾아 묘를 확인하고 고대 구로병원 부검실에서 미라를 조사했다.
묘 구조와 복식으로 미뤄볼 때 이번에 발견된 미라는 임란 이전 조선시대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라는 각종 염습의 26점과 보공품 10여점에 싸여 있었으며, 신장은 조선시대 여성 평균키인 154㎝ 정도였다.
의복은 액주음포(腋注音袍), 목판깃, 안감 한지심 등 임란 이전 시기 복식의 특성을 고스란히 갖췄다.
또 완전한 머리 모양을 갖춘 상태여서 임란 이전 조선시대 전기 여성의 머리 형태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김한겸 교수는 "폐의 좌우가 뒤틀려있고 얼굴과 몸 전체가 야위어있는 것을 볼 때 만성질환을 앓다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대팀은 약 1년간 보존처리를 거쳐 분야별로 연구를 진행해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고려대팀은 미라에서 채취한 각종 샘플 등으로 세균을 배양해 무균 상태에서 미라가 된다는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는 등 병리학적 연구를 진행한다.
김우림 단장은 "수십 차례 현장에 나오더라도 이 정도로 완벽한 복식과 양호한 상태의 미라를 만나기 힘들다"며 "이번에 발견된 미라가 조선 전기시대 생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yjkim84@yna.co.kr
(끝)
정6품 사대부 가문 부인 추정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임진왜란 이전인 1500년대 중반 생몰(生歿)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여성 미라가 발굴됐다.
서경문화재연구원은 이달 초 경기도 오산 가장2일반산업단지 공사 현장에서 문화재 시ㆍ발굴 조사 중 조선시대 회곽묘(灰槨墓)가 나왔다고 13일 밝혔다.
회곽묘 안의 내관(목관) 덮개에는 `宜人驪興李氏之柩(의인여흥이씨지구)'라고 써있다. '의인'이라는 호칭은 발견된 미라가 남편 품계에 따라 정6품 작위를 받은 사대부집 가문의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관에서는 백자유개호(白瓷有蓋壺), 운아삽(상여에 그려진 문양), 목재빗, 명정, 뒤꽂이(쪽진머리 뒤에 덧꽂는 비녀 이외 장식품) 등 유물 10여점이 나왔는데 운아삽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 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라가 발견된 묘는 봉분이 없는 상태였으며, 인근에 남편의 묘가 있었다.
남편 묘는 아직 발굴하지 않았지만 부부 미라가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원 측은 지난 8일 김우림 울산박물관추진단장, 김한겸 고려대 교수팀(미라담당), 권영숙 부산대 교수팀(복식담당)과 함께 현장을 찾아 묘를 확인하고 고대 구로병원 부검실에서 미라를 조사했다.
묘 구조와 복식으로 미뤄볼 때 이번에 발견된 미라는 임란 이전 조선시대 여성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미라는 각종 염습의 26점과 보공품 10여점에 싸여 있었으며, 신장은 조선시대 여성 평균키인 154㎝ 정도였다.
의복은 액주음포(腋注音袍), 목판깃, 안감 한지심 등 임란 이전 시기 복식의 특성을 고스란히 갖췄다.
또 완전한 머리 모양을 갖춘 상태여서 임란 이전 조선시대 전기 여성의 머리 형태를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김한겸 교수는 "폐의 좌우가 뒤틀려있고 얼굴과 몸 전체가 야위어있는 것을 볼 때 만성질환을 앓다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대팀은 약 1년간 보존처리를 거쳐 분야별로 연구를 진행해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고려대팀은 미라에서 채취한 각종 샘플 등으로 세균을 배양해 무균 상태에서 미라가 된다는 가설이 맞는지 확인하는 등 병리학적 연구를 진행한다.
김우림 단장은 "수십 차례 현장에 나오더라도 이 정도로 완벽한 복식과 양호한 상태의 미라를 만나기 힘들다"며 "이번에 발견된 미라가 조선 전기시대 생활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yjkim84@yna.co.kr
(끝)
'오산 미라' 발굴부터 해포(解布)까지
연합뉴스 | 입력 2010.05.13 05:33 | 수정 2010.05.13 07:19
상태 양호해 탄성…하체 일부 부패엔 아쉬움
생생한 바늘집 등에 플래시 세례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지난 8일 오후 1시께 경기도 오산 가장2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
나무 밑동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 구릉 꼭대기에 김우림 울산박물관추진단장, 김한겸 고려대 교수팀, 권영숙 부산대 교수팀, 서경문화재연구원 직원들이 모여 발아래 구덩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난 2002년 경기 파주시 교하읍 파평 윤씨 정정공파 묘역의 '모자(母子) 미라'를 발굴, 연구한 이들이 9년 만에 다시 모인 까닭은 공사 현장에서 조선시대 회곽묘(灰槨墓)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
공사장에서 문화재 시ㆍ발굴 조사를 하다가 나온 이 회곽묘는 물이 닿지 않는 평지에 있었고 회를 바르는 작업으로 수백년 간 공기가 통하지 않게 보존이 잘된 상태였다.
굴착기로 관을 들어내 응달로 옮긴 조사단은 목관을 열어보기 전에 미라가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미 확신했다.
관뚜껑의 한쪽 끝을 살짝 열자 여기저기서 "소나무 관 냄새가 난다. 미라 냄새다"라는 탄성이 연달아 나왔다.
햇볕에 관이 노출되면 복식 등의 색이 금방 변하기 때문에 조사단은 고대 구로병원으로 내관을 옮기기로 하고 구급차를 불러 관을 싣기로 했다.
하지만 크기가 맞지 않아 결국 포터에 관을 싣기로 하고 상하지 않도록 잘 포장해 서울의 병원 부검실까지 옮기는 수송작전을 벌였다.
이튿날인 9일 오전 8시께 한 자리에 다시 모인 조사단은 내관 뚜껑을 열고 시신을 꺼내 각종 염습의(殮襲衣)를 하나씩 벗겨 내는 해포(解布) 작업을 시작했다.
보공품(補空品)에서 초반에 바지와 적삼, 누비바지, 도포 등 남자 옷이 계속 나오자 한쪽에서는 "부부가 너무 사랑했나보다"는 재치성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손발톱을 깎아서 넣은 주머니, 바늘집 등은 무늬가 그대로 살아 있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오전 10시35분께 보공품을 다 빼내고 마침내 관에서 미라를 들어내고서도 대렴의, 소렴의를 한 겹씩 벗기고 또 벗기는 작업은 3시간 넘게 걸렸다.
작업한 지 한참이 지난 오후 3시께. 마지막 수의를 살짝 아래로 끌어내리자 미라의 귀와 목 부위가 드러나 수의 형체 안에 미라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마침내 확인됐다.
다소 검게 변한 피부가 피부결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채였다. 얼굴에 씌워진 천을 벗기자 움푹 팬 광대뼈와 윤기가 남은 이가 그대로 보였다.
그러나 수월하게만 진행됐던 해포 작업은 이때부터 몇 차례 고비를 맞았다.
피부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유의하면서 수백년 간 입혀져 있던 상의를 한꺼번에 벗겨내야 했는데, 왼쪽 다리가 부패해 수의를 벗길 때 피부가 많이 떨어져 나간 것.
상체 상태가 매우 좋아 여느 미라 조사 때보다 기대가 컸던 조사단은 하체 일부가 다소 부패한 것을 보고 약간의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수십 차례 현장에 출동해도 완벽한 복식을 갖춘 양호한 상태의 미라를 만나기 어려운데 관이 묻혀 있던 상태가 아주 좋아 기대감이 여느 때보다 컸기 때문이다.
이처럼 발굴부터 목관 수송, 해포까지 이틀이 꼬박 걸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부산대팀은 하나씩 정성스레 수습한 복식을 부산대로 옮겨가 연구를 시작했다. 고려대 팀은 채취한 각종 샘플의 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yjkim84@yna.co.kr
(끝)
생생한 바늘집 등에 플래시 세례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지난 8일 오후 1시께 경기도 오산 가장2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
나무 밑동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 구릉 꼭대기에 김우림 울산박물관추진단장, 김한겸 고려대 교수팀, 권영숙 부산대 교수팀, 서경문화재연구원 직원들이 모여 발아래 구덩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난 2002년 경기 파주시 교하읍 파평 윤씨 정정공파 묘역의 '모자(母子) 미라'를 발굴, 연구한 이들이 9년 만에 다시 모인 까닭은 공사 현장에서 조선시대 회곽묘(灰槨墓)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
공사장에서 문화재 시ㆍ발굴 조사를 하다가 나온 이 회곽묘는 물이 닿지 않는 평지에 있었고 회를 바르는 작업으로 수백년 간 공기가 통하지 않게 보존이 잘된 상태였다.
굴착기로 관을 들어내 응달로 옮긴 조사단은 목관을 열어보기 전에 미라가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미 확신했다.
관뚜껑의 한쪽 끝을 살짝 열자 여기저기서 "소나무 관 냄새가 난다. 미라 냄새다"라는 탄성이 연달아 나왔다.
햇볕에 관이 노출되면 복식 등의 색이 금방 변하기 때문에 조사단은 고대 구로병원으로 내관을 옮기기로 하고 구급차를 불러 관을 싣기로 했다.
하지만 크기가 맞지 않아 결국 포터에 관을 싣기로 하고 상하지 않도록 잘 포장해 서울의 병원 부검실까지 옮기는 수송작전을 벌였다.
이튿날인 9일 오전 8시께 한 자리에 다시 모인 조사단은 내관 뚜껑을 열고 시신을 꺼내 각종 염습의(殮襲衣)를 하나씩 벗겨 내는 해포(解布) 작업을 시작했다.
보공품(補空品)에서 초반에 바지와 적삼, 누비바지, 도포 등 남자 옷이 계속 나오자 한쪽에서는 "부부가 너무 사랑했나보다"는 재치성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손발톱을 깎아서 넣은 주머니, 바늘집 등은 무늬가 그대로 살아 있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오전 10시35분께 보공품을 다 빼내고 마침내 관에서 미라를 들어내고서도 대렴의, 소렴의를 한 겹씩 벗기고 또 벗기는 작업은 3시간 넘게 걸렸다.
작업한 지 한참이 지난 오후 3시께. 마지막 수의를 살짝 아래로 끌어내리자 미라의 귀와 목 부위가 드러나 수의 형체 안에 미라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마침내 확인됐다.
다소 검게 변한 피부가 피부결까지 그대로 남아 있는 채였다. 얼굴에 씌워진 천을 벗기자 움푹 팬 광대뼈와 윤기가 남은 이가 그대로 보였다.
그러나 수월하게만 진행됐던 해포 작업은 이때부터 몇 차례 고비를 맞았다.
피부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유의하면서 수백년 간 입혀져 있던 상의를 한꺼번에 벗겨내야 했는데, 왼쪽 다리가 부패해 수의를 벗길 때 피부가 많이 떨어져 나간 것.
상체 상태가 매우 좋아 여느 미라 조사 때보다 기대가 컸던 조사단은 하체 일부가 다소 부패한 것을 보고 약간의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수십 차례 현장에 출동해도 완벽한 복식을 갖춘 양호한 상태의 미라를 만나기 어려운데 관이 묻혀 있던 상태가 아주 좋아 기대감이 여느 때보다 컸기 때문이다.
이처럼 발굴부터 목관 수송, 해포까지 이틀이 꼬박 걸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부산대팀은 하나씩 정성스레 수습한 복식을 부산대로 옮겨가 연구를 시작했다. 고려대 팀은 채취한 각종 샘플의 분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yjkim8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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