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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자기(中国瓷器)

지식창고지기 2010. 5. 23. 12:04

중국의 자기(中国瓷器)


 

자기(瓷器)는 3000여 년 전에 중국에서 최초로 나타나, 제작기술이 그 뒤로 전해 내려오면서 끊임없이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러,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상징 중 하나로 꼽히며 특수한 문화양식과 예술가치를 보여 주고 있다.

 

중국자기는 겉모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질이 좋아 고대에는 귀족만 사용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물품으로 한나라 때부터 중국자기는 비단, 차와 함께 국외로 많이 수출되었다. 중국자기의 생산기술은 서기 10세기부터 주변나라에 전파되어 갔으며, 11세기 초에 아라비아인이 자기 제조기술을 배워 갔고 15세기에 유럽인들이 전수받았다. 

 

현재, 중국자기는 주로 당삼채(唐三彩, 당나라 때 제조한 3색 자기), 송요(宋窑, 송나라 때의 자기), 청3대(清三代, 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 3세 황제)가 유명하며 그 밖에도 특정한 시기에 만들어진 자기는 놀라운 가치를 보여주어, 세계 경매 시장에서 수억 위엔에 달하는 최고 경매가격을 기록하고 있다.

 

자 기(瓷器)는 자토(瓷土)와 자석(磁石)을 원료로 일정한 비율에 따라 반죽한 뒤, 원하는 모양으로 빚어 내며 나중에 1200 도 고온의 요(窑,자기를 전문으로 굽는 가마)에 넣어 제조한다. 자기는 기타 용기에 비해 단단하고 반들반들한 윤택이 나 고급스러운 감을 준다. 수천 년 동안 자기는 중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애호하는 물품이며, 오늘날에는 중국자기 소장 유행으로 인한 투자열기로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되었다.

 

중국자기는 상(商)나라 때에 가장 먼저 나타났는데 원시적인 방법으로 제조한 용기일 뿐, 진정한 자기라고 부르기에는 질이 떨어져 원시자기(原始瓷器)라고 부른다. 주(周)나라 때까지 자기를 제조하는 원료 선택, 온도 조절과 자기 표면의 색 조절에 익숙하지 못하였으나, 한(汉)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더욱 정밀한 자기 제조기술을 익혔으며 자기 표면에 색깔이 다양하며 모습이 특이한 도형을 붙이기 시작하였다.

 

자 기 표면에 다양한 색을 붙이는 것은 주로 원료 선택 시에 철, 동, 망간 등 금속을 넣어 1200도 고온에서 산화시켜 각각 다른 색을 띄게 한다. 당나라 때의 당삼채(唐三彩)가 바로 금속을 산화시키는 방법으로 자기 겉에 다양하며 아름다운 색을 남겼다.

 

수나라, 당나라 때에 이르러 중국 자기가 정식 발전단계에 들어섰으며 최초로 황실과 귀족만을 위해 자기를 굽는 관요(官窑)가 나타났다. 그 뒤로 중국 자기가 관요(官窑)와 민요(民窑)로 나뉘어 졌는데 주로 관요 자기(官窑瓷器)가 고급스러우면서 소장가치가 높아 중국 자기를 대표하였다. 당나라 때부터 관요에서 순수한 흰색 자기를 제조하기 시작하였는데 자기백도(瓷器白度)가 70% 이상에 도달하여 당나라 자기의 질이 이미 현재 공업 기술 수준에 도달한 것을 보여준다.

 

송 나라 때부터 중국 자기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하여 뒤이어 정요(定窑), 균요(钧窑), 관요(官窑-요구 명칭, 민요 관요의 관요와 차원이 다름), 여요(汝窑), 가용(哥窑) 등의 송나라 5대 관요(官窑)가 나타났으며 송나라 5대관요의 자기가 금보다도 귀하다는 칭송을 받아왔다. 그 밖에도 송나라 말기에 강서성 경덕진에서 경덕진요(景德镇窑)가 나타났으며 유약을 발라 자기를 굽는 특수한 방법으로, 자기 표면에 아름다운 무늬를 남겼으며 또 대형 자기를 제조할 수 있어 중국자기 제조기술을 대폭 향상시켰다.

 

청나라 때의 중국 자기는 흔히 청3대(清三代,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 3세 황제)로 불렀는데 주로 경덕진 자기가 가장 유명했으며 당시 황족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최고급 용기로 대접을 받았다. 중국자기는 건륭(乾隆) 황제 때에 이르러 예술적 가치 및 수공예수준이 사상 최고에 도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