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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열린 침실 속 아내와 첩

지식창고지기 2010. 6. 2. 11:43

중국의 열린 침실 속 아내와 첩

 

 

오래전 일부다처제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사회현상이었으며 그 제도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모두 다양했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웠던 중국의 생활문화는 대부분 우리의 문화와 유사한 점들이 많지만 성문화와 부부 침실문화에 대해서는 다소 차이 가 있었다.

 

옛날 중국의 일부다처제는 적게는 수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의 처첩들이 한 지붕 아래 동거하 며 대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살았다. 서로 혈연관계가 없는 여자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한 남자 만을 바라보고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말썽이 많고 시기와 질투로 싸움이 잦을 수밖에 없 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중국에서 일부다처제가 성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하나는, 후사를 잇는 대사였고 다 른 하나는, 팽창된 남자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양반들이 첩을 거느리기도 했었다. 또한 대를 잇는 일은 매우 중요한 대사로 여겼기에 씨받이 의 풍습도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자식을 많이 낳아 기르는 것이 행복한 삶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기에 일부다 처제의 호색 전통은 중국인의 성행위와 성적 관념에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중의 하나 가 바로 열린 침실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부부의 침실은 은밀하게 숨겨진 공간이지만 고대 중국인의 에로스적인 침실은 오히려 반공개적이었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침실의 내부는 밖에서도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우리나라처럼 굳이 손 가락에 침을 묻혀 창호지 구멍을 뚫지 않아도 방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 공개적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속삭이는 소리부터 여자의 신음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부부의 생활 이 타인에게 노출되어도 별로 개의치 않았던 것이 중국인의 침실문화라고 할 것이다.

 

침실의 물리적 구조는 인간의 정신적 구조의 발로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침실의 공개성은 도 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로 오늘날 우리는 방음이 잘 되어 있는 아파트에서도 부부관계 중 소음 에 대해 상당히 신경 쓰고 조심하고 있지를 않은가? 그러고 보면 고대 중국인들은 성생활을 지극히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타인이 훔쳐볼까 수치스러워하거나 상스러운 것으로 비하하지 않았던 것 같다.

 

더구나 일부다처제의 생활 속에서 젊고 예쁜 처첩을 여럿 거느렸을 경우, 처첩이 늙어 나이 먹 었다고 천대하지 말라는 것이 중국의 남편으로서의 도리라고 한다.

 

특히 고대의 침실에 들어가 보면 대단히 공개적인 성생활과 프리섹스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다. 남편이 애처와 성교를 할 때 하녀나 애첩이 한 방에 같이 있으면서 시중을 드는 것 은 보편적인 일이었다고 한다.

 

이런 것은 중국의 춘화를 보아도 잘 나타나 있는데 남자가 애첩 과 성교를 할 때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시녀나 다른 애첩이 남자의 몸을 뒤에서 밀어 주고 애첩 과 성교가 끝나면 남자를 밀어주던 애첩과 다시 성교를 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정말 중국 인들의 정력이 막강함을 자랑하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의 결혼 풍습이다. 아직도 중국의 농촌지역에서는 이런 풍습이 잔 존하고 있는데 중국 결혼식의 클라이맥스는 신랑 신부에게 여러 가지 즐겁고 에로틱한 방식 의 난제를 풀게 하며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놀이문화 가운데 친척, 친지들이 신랑 신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훔쳐보거나 엿 듣는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부의 치맛자락 속으로 들어가기 놀이나 첫날밤 신부를 벌거벗겨 놓고 신랑의 친척들이 신랑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놀이도 있다고 한다. 이러 한 것도 물론 침실문화가 공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침실의 공개성을 관용으로 생각했던 중국인들의 전통 침실은 성적 자유분방함과 에로틱한 성 문화의 일부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