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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일의 왕 '리즈' 이야기

지식창고지기 2010. 6. 12. 09:10

중국과일의 왕 '리즈' 이야기

 

 

시장의 과일 가판대에 반가운 과일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바로 중국과일의 왕이라 불릴만한 ‘리즈’가 출시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과일의 왕으로 두리안, 망고, 키위, 석류를 옹립할 수도 있으나, 역시 중국에서는 리즈가 왕이다. 

리즈가 반가운 이유는 1년 가운데 5월~8월이 주요 출시 시기이기 때문이고, 중국과일의 왕이라 감히 부르는 이유는 중국 원산지 과일 가운데 맛과 영양, 과육의 씹는 맛, 심지어 모양에 이르기까지 리즈만한 과일이 없기 때문이며, 오래 전부터 특정 기후대에서만 자생하는 희소성과 그 맛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고사와 이야깃거리가 남겨져 있는 과일이기 때문이다.

 

리즈의 재배기후와 재배역사

 

리즈의 학명은 ‘Litchi chinesis’, 무환자나무과(科)에 속하는 아열대성 식물로 중국 남방지역이 원산지이다. (학명 'Litchi' 때문에 ‘릿츠’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리즈의 한어병음이 'lizhi'이므로 외래어 표기법 교육부안에 의거하여 ‘리즈’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아 본문에서는 ‘리즈’라고 표기 하겠다. 한자로는 여지(초두머리변+力3개枝)이다.)

북위 18 °~29 ° 사이에서만 서식하며, 주로 중국의 광둥, 푸젠(福建), 광시(廣西), 타이완, 쓰촨(四川),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성 지역에서 재배 되고 있으며, 수확 시기는 품종에 따라 3~7월중순 사이이다.

중국에서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0-3000년전 이고, 당송(唐宋)때 가장 많이 재배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희소가치와 약용가치가 중요시 되면서 한당(漢唐)이후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 되었다. 10세기 무렵 동남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으로, 18세기에는 일본에 전래 되었다.

 

리즈만을 위해 쓰여진 고문헌 서적만 13권

 

역대 ‘리즈’의 가치는 각종 전문 서적에 의해 정리되어 왔다. 중국에서 ‘리즈’에 관해 쓴 전문 고서적이 13종이나 된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리즈를 귀중하게 여겨 왔다는 얘기다.

‘리즈’에 관한 최초의 전문 서적은 송(宋)나라때 채낭(蔡囊)이 지은 <여지보(여枝譜)로 당시 푸젠지역에서 재배 되던 32종 품종의 산지, 재배기술, 가공 및 저장 방법이 열거 되어 있다. 명(明)나라때 서발(徐勃)이 쓴 <여지보(여枝譜)>에는 70여종의 품종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데, 기록된 송향(宋香)이라는 품종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재배되고 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리즈가 ‘정신을 맑게 해주고, 몸을 튼튼하게 하며, 식욕을 증진시키고, 소화를 돕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리즈의 영양 성분 및 약용기능 - 피부미용에 만점

 

리즈는 당분, 각종 비타민, 지방, 구연산, 펙틴, 인, 철 등의 성분이 풍부한 ‘종합영양제’같은 과일이다. 이러한 리즈의 풍부한 비타민은 모세혈관의 혈액순환을 증진 시켜 주근깨를 방지하고 피부를 윤기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임산부, 노약자, 빈혈, 잦은 설사, 복통, 입 냄새 나는 사람들에게 좋다.

그러나 한번에 너무 많이 먹거나 연일 연속으로 먹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루 5알 정도가 적당한데, 리즈를 너무 많이 먹게 되면 ‘리즈병’이라는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리즈병’은 입이 마르고, 땀이 나고 어지럽거나,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에는 정신을 잃거나 순환기에 이상을 가져오게 되는, 바로 ‘저혈당’증세가 나타나게 된다. 중의학에서는 리즈를 많이 먹으면 상화(上火)라는 증상이 난다고 하여 역시 과도하게 먹는 것을 금하고 있다.

 

리즈와는 이웃사촌인 용안(龍眼)과 계원(桂圓), 그리고 핀치히터 람부탄

 

‘용안’의 학명은 ‘Dimocarpus longan’으로 무환자나무과(科)에 속하는 아열대성 식물로 역시 중국 남방지역이 원산지이다.(한어병음 표기로는 ‘룽옌(longyan)’이겠으나, 한국에서 '용안'과‘계원’이라는 용어로 직접 쓰이는 경우가 있으므로 ‘용안’이라고 표기하겠다.) ‘용의 눈 모양’같이 생겼다고 하여 ‘용안’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상서로운 과일’로 통하였다. 중국인들의 토템인 ‘용’의 눈이라 하니 귀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수확시기는 ‘리즈’보다 다소 늦은 7-9월 상순 사이이고, 보통 24°C~29.5°C 기온에서 자란다. ‘리즈’와 재배 조건이 비슷하여 ‘리즈’가 재배 되는 곳에는 ‘용안’도 재배 되기 마련이다.푸졘성에서 전체 수확량의 반 이상이 재배 되고 있으며, 광둥, 광시, 대만, 쓰촨, 윈난, 구이저우성 등지에서 재배 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도 재배되어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수입하고 있다.

‘용안’을 말린 것을 ‘계원(桂圓)’이라 하는데 주로 약재로 쓰이며, 잘 말린 계원은 오히려 ‘리즈’보다 상용가치나 약용가치가 더 높아진다.

 

한국의 중국요리식당에서 가끔씩 후식으로 맛 볼 수 있는 리즈는 사실, 리즈가 아니라 통조림 ‘람부탄’일 경우가 많다. 말레이지아가 원산지인 람부탄은 마치 털처럼 생긴 돌기의 껍질로 덮여 있는데(람부탄의 뜻이 ‘털이 있는 열매’라고 함), 알맹이만 놓고 보면 모양과 맛이 리즈와 상당히 유사하다. 맛과 과육은 리즈에 비해 떨어지나 저렴한 가격 경쟁력이 있으며, 중국에서도 리즈가 자리를 비우는 시기에 용안과 함께 수입되어 대타로 등장하기도 한다.

 

피부미용에 ‘리즈’라면, 탈모방지에는 ‘용안’을…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먹는 식품으로서의 과일은 ‘리즈’가 낫고, 약재료로 쓰기에는 ‘용안’이 더 낫다’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용안’의 약용가치는 매우 높아 현재도 중의 약재로 널리 쓰이고 있다.

 

중의학에서는 ‘용안’이 탈모방지에 효과가 있으며, 산후조리, 어지럼증, 신경쇠약, 기억력 감퇴, 빈혈증, 심계항진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국내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 졌고, 자궁암 세포 억제 효과가 90%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용안’역시 하루 5알 정도가 적당 복용량이며 너무 많이 먹을 경우 몸에 열이 나는 증상(上火)이 생기기도 한다. 리즈에 비해 과즙과 맛이 떨어지나, 용안을 말린 '계원'의 약용가치는 더 높다.

(리즈와 용안의 영양성분 분석표)

영양성분(100g당) 리즈(열량:61칼로리) 용안(열량:70칼로리)
단백질(g) 0.7 1.2
지방(g) 0.6 0.1
탄수화합물(g) 13.3 16.2
섬유질(g) 0.5 0.4
칼슘(mg) 6 6
철분(mg) 0.5 0.2
인(mg) 34 30
칼륨(mg) 193 248
나트륨(mg) 1.7 3.9
구리(mg) 0.16 0.1
마그네슘(mg) 12 10
아연(mg) 0.17 0.4
셀레늄(㎍) 0.14 0.83
비타민A(㎍) 2 106
비타민B1(mg) 0.02 0.01
비타민B2(mg) 0.06 0.14
비타민B6(mg) 0.09 0.2
비타민C(mg) 36 43
비타민E(mg) 0.1 X
비타민H(mg) 12 20
카로틴(mg) 0.01 0.02
엽산(㎍) 100 20
판톤텐산(mg) 1 X
니코틴산(mg) 0.7 1.3

(출처:중국요리협회 미식영양 전문위원회 편찬 영양성분분석표)

 

리즈와 양귀비

 

중국에서 ‘리즈’를 먹으면 꼭 빠지지 않는 얘깃거리가 있다. 바로 ‘양귀비’와 관련된 고사를 곁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중국 음식문화에서 이러한 ‘음식과 고사’라는 테마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바로 ‘연상작용’을 통한 음식의 ‘브랜드화’에 기여를 한다는 점이다. 자기가 먹는 음식의 영양학적 가치 보다는 “옛날 옛적 OO가 OO하면서 먹던 거래더라~”가 주는 효과는 생각보다 상당히 재미있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처럼 음식에 고사가 엮이는 이유는, 중국의 역사가 길다는 점과 긴 역사만큼의 ‘문헌의 기록’이 어느 문명보다도 충실하고 방대했다는 점 때문이다.

 

리즈와 양귀비에 얽힌 고사를 시리즈로 엮어보면…

 

리즈와 양귀비의 고사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비약이 심한 원문 해석은 양해해 주시길)

1. 양귀비는 리즈를 좋아했다. 그것도 너무 좋아했다.
     당현종은 양귀비를 사랑했다. 그것도 너무 사랑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일, 그녀의 미소를 한번 보자고 별 짓을 다 하겠다는 의지와 권력이 충분했다.

2. 양귀비랑 당현종이 살던, 당시 당(唐)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은 지금의 시안(西安)인 북방 변방지역 있었다.

     하필이면 역대 중국 왕조들의 수도가 대게 북방에 자리잡게 된 역사적 연유가 문제였다.

리즈는 북위 18도~29도, 기온 24도~29.5도에서만 자랄 수 있는 아열대성 식물이었다.그래서 불행히도 그들이 사는 곳과는 너무나 먼 남방지역인 사천지역과 광동지역에서만 재배될 수 있었다. 지금 기차를 타고 밤낮으로 달려도 30시간이 넘는 거리다.

더 불행한 사실은…리즈의 보존 기간이 기껏해야 5~7일이라는 점이었다.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여지도서(여枝圖序)>라는 문장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리즈를 수확한 이후, 하루가 지나면 색이 변하고, 이틀이 지나면 향(香)이 변하며, 삼 일이 지나면 맛이 변하고, 4~5일이 지나면 색과 향과 맛이 모두 없어진다”

3. 그 당시 육상 운송 수단 중 가장 빠른 것은 “말”이었다.

이 때문에 그 당시 광동지역이나 사천지역에서 수확된 리즈를 5~7일안에 ‘장안’까지 운송하는 방법은…7일밤 7일낮을 쉬지 않고 달리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냥 말을 타고 달리는 수 밖에 없었다. 리즈 하나 때문에 말들도 죽어나고 사람도 죽어 나갔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 두보(杜甫)가 한마디 했다.

“옛날 광동의 관리들을 회상해 보면, 말을 달려 리즈를 진상하느라 고생 꽤나 했네. 수 백마리 말들이 산과 계곡에서 죽어 나갔으니, 오늘날까지 참 생각하면 할수록 열 받네”

4. 리즈가 그렇게 장안에 도착하면 양귀비는 “웃었다(妃子笑)”.

여기에 대해서 두목(杜牧)이 당나라가 다 망해 가던 만당(晩唐) 무렵 ‘화청지’앞에 서서 한마디 읊조렸다.

“여기 서서 옛날 한창 잘 나가던 장안을 생각해 보니… 이런 생각이 나는 구만. 장안에 말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들어 오면 양귀비는 미소를 지었었지(妃子笑). 근데 이게 리즈가 왔기 때문이라는 걸 사람들이 몰라~”

이 구절을 인용해 새롭게 만든 품종에 '妃子笑'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 품종은 요즘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품종 중에 하나가 되었다.(최고 품종은 아니지만, 당도와 과육면에서 훌륭하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있다. 봉건제도라는 제도적 모순의 본질을 ‘개인’에게 전가 시키려는 고대 중국 문인들의 고약한 심보가 반영된 성어이다. 리즈가 맛있는 게 죄라면 죄고, 그 맛있는 걸 ‘한 놈만’먹게 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희생되는 ‘제도’가 잘못이지, 예쁜 게 뭐가 죄인가?

리즈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앞서 살펴본 양귀비와 관련된 고사들은 ‘비극’의 정서가 가미되어 후세에게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리즈와 비슷한 연원과 맛을 지닌 ‘용안(龍眼)’이 용의 눈을 닮았다 하여 줄곧 ‘길상(吉祥)’의 의미로 받아 들여진 것과 달리, 리즈는 역사적으로 종종 ‘불길함'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즈의 희소성과 맛 때문에 수많은 시인들과 문인들의 문장에서 읊어졌다. 희소성의 문제는 당연히 ‘재배조건’이라는 생태환경적 요인과 보존 기간에 의해 결정된 문제였다.

 

리즈 때문에 호적을 바꾸고 싶었던 소동파

 

많은 문인들의 문장 가운데 중국인들이 가장 쉽게 떠올리는 문장은 ‘소동파’의 시 <식여지(食여枝)>속 문구이다.

“……먹다 보니 너무 맛있어서 ‘삼백 알’을 먹을 만하네. (리즈 때문에) 남방사람으로 살라 하면 마다하지 않겠네"

중국에서 70년대 국어 교과서에 양수어(楊朔)라는 작가의 산문에 이 시구가 인용 되어 쓰인 후 다들 리즈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삼백 알….”얘기를 하게 되었다.이백의 “백주 삼백 잔”에 버금가는 표현인데, 이것을 우리는 정말 ‘시적 수사’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정말로 삼백 알 먹다가는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Chun Hoi Lu감독의 '홍콩 3부작'중 하나인 영화'두리안 두리안'...이 영화에서 두리안은 그 모양과 냄새, 맛의 특징 때문에 전체 영화의 상징적 메타포로 쓰이고 있다.동남아인들에겐 꿈의 과일인데,호랑이가 먹는 유일한 과일이라는 말도 있고, 말레이시아 처녀들은 '두리안을 원 없이 사줄 수 있는 남자에게 시집 가겠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고약한 냄새(구린내)때문에 접근하기 꺼려 지지만 일단 먹고 나면 '중독성'이 있을 정도로 은은한 맛이 있다. 두리안을 많이 먹으면 몸에 열이 나기 때문에, 몸의 열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 맹고스틴(중국어로는 ‘山竹’이라고 함)이라는 과일을 함께 먹을 것을 권하고 있다. 이 때문에 두리안을 "과일의 왕"으로 망고스틴을 "과일의 여왕"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전직 모 대통령의 영부인이 좋아했다고 그 이름을 따서 ‘OOO 과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두리안만 위험한 게 아니다

 

작년 이맘때, 태국에서 ‘두리안’을 너무 많이 먹다가 사망한 사람이 생겼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리즈와 두리안의 영양성분과 식용 후 반응이 거의 비슷하다.(관련기사 참조)특히 당분과 열량이 높으며(133칼로리/100g), 칼륨성분(510mg/100g)과 엽산(150㎍/100g)의 함량이 매우 높은 점이 그렇다.

특히 두리안은 리즈보다 열량이 두 배, 칼륨은 2.5배, 엽산은 1.5배 가량 높은 과일로 하루에 100g이상 섭취하면 몸에 열이 나는 증상이 오게 되어 심장계통에 이상이 있는 사람은 위험할 수 있다. 리즈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몇 년 전, 광둥지역에서 심장계통에 질병이 있었던 환자가 리즈를 과다 섭취하여 사망했던 사건이 있었다.

리즈의 하루 섭취 권장량은 5알이다. 근데 먹다 보면 권장량을 넘기기 일수다. 물론 WHO의 권장량도 아니니 그리 지킬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사망사건 기사를 접하고 보니, ‘과유불급’의 교훈을 명심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당분함량’이 높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양귀비가 뚱뚱했던 이유 중에 하나로 리즈를 자주 먹었기 때문이라는 한 ‘과일집’아저씨의 주장를 참고 해 두는 것이 비만 예방에도 만전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과일의 왕’으로 ‘두리안’을 옹립하기 싫은 이유는 모양과 냄새가 거북하기 때문이고, 먹고 나면 종종 머리가 아팠던 기억 때문이기도 했는데, 사실 영양성분만 가지고 보면 두리안을 따라갈 과일이 없다.

 

리즈와 문화대혁명

 

리즈의 나무는 비교적 수명이 긴 편인데, 현재 푸젠(福建)성에는 1300년 된 ‘송향(宋香)’이라는 품종이 남아 있다. 리즈 품종 중에 가장 비싼 품종은 ‘괘록(掛綠)’이라는 품종인데, 이 나무가 광둥성의 ‘정청(增城)’현(縣)'에 몇 그루가 남아 있다고 한다.

수백 년 된 이 나무에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몰아 치던 몇 해 동안 갑자기 리즈가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문혁이 끝나갈 무렵인 1977년에 갑자기 리즈가 열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인간의 심성이 변하니 하늘도 기뻐해 주는 구나…”라는 스토리인데, 별로 믿을 만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상품’개념도 없었던 ‘문혁’의 기간 동안 필수 식재료가 아닌 과일나무 따위에 거름이나 제대로 줬을 리 없었기 때문에 그랬었는지도 모르고, 정말 '인간의 야만성'이 하늘을 노하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개혁개방의 단 맛, 리즈만큼 달콤했다

 

이 ‘정청현’은 리즈 산지로 매우 유명한 동네인데, 개혁개방이 시작 되던 1980년대 초기에 이 동네 주민들이 리즈를 가지고 마카오 국경 근처까지 가서 외화벌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얘기가 재미있다. 1알에 1홍콩 달러씩 받고 팔았다고 하니 짭짤한 수입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누구보다도 '개혁개방'의 선두에 섰던 주민들이었던 셈인데, 이들이야 말로 개혁개방의 의미와 수혜를 몸소 체험 하고 있었던 셈이다.

좋은 품종의 리즈가 되기 위한 조건은 우선 나무가 커야 한다.그리고 리즈의 껍질이 얇아야 하고, 과육이 두껍고 달아야 하며, 씨가 작아야 상품으로 쳐준다.

이 ‘정청현’에서 나는 품종중에 가장 유명한 품종인 “눠미 리즈(糯米여枝)”라는 품종의 리즈는 위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서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다.앞서 말한 “妃子笑”라는 품종의 리즈는 씨가 크고 과육이 적으며 시큼한 맛이 더 강해 조금 더 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왕의 진상품에서 보통 과일로

 

리즈는 역대로 생태환경적 자생 조건과 보존기간 때문에 쉽게 먹을 수 없던 귀한 과일이었다. 한당(漢唐)이후 왕의 진상품으로만 올려진 리즈는 청(淸)말에 이르기 까지 웬만한 권력자도 쉽게 맛볼 수 없었던 귀한 과일 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옛날처럼 그렇게 ‘귀한 과일’은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하이 도매 시장에서 1kg당 50위안(한화 7500원)에 거래 되었는데, 최근에는 1kg당 2위안 이하로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로는 다른 다양한 품종의 과일이 점점 더 많이 수입되고 있다는 점, 계획된 재배가 아닌 우후죽순으로 재배되고 있다는 점, 잉여 생산물에 대해 수출로 활로를 뚫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품종개량과 규격화(당도 및 크기), 보존기술 및 가공기술이 낙후 되어 재고를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등 때문이다. 전세계 생산량의 8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수출량은 4%(광둥성의 경우)에 불과 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리즈로 본 중국

 

리즈 한 알에는 앞서 살펴본 내용들처럼 역사, 문학, 철학, 의학, 경제, 정치 및 생활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들이 담겨있다. 어찌 보면, 리즈가 걸어온 길과 현재의 모습이 중국의 역사적 특징,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든....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게 된 리즈,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한 그루의 리즈나무를 심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