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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이야기 11] 교육의 길에 대한 유대인의 격언 12가지 (1)

지식창고지기 2010. 8. 7. 18:17

[탈무드 이야기 11]

교육의 길에 대한 유대인의 격언 12가지 (1)

01. 이상이 없는 교육은 미래가 없는 현재와 같다.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같이 세계에 크게 영향을 미친 유태인을 찾아 보면, 그 가운데는 특히 개혁자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 중에는 과학의 정설을 크게 바꾸어 놓은 사람과 개혁자가 많다.


그렇다면 유태인이 가지고 있는 이상은 무엇일까?


유태인들은 성서의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만들어 이 세상을 맡길 때, 유태인에게 이 세상을 보다 살기 좋게 만들라는 책임을 지웠다고 배우고 있다.

 

바로 이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세상은 정의가 바르게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풍족함 속에 평등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을 믿는 세상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은 곧 정의라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우고 있어 점점 커가면서 강한 소망으로 자리잡게 된다. 대부분의 종교는 거의 다 보수적인 경향이지만, 유태교에서는 성서의 가르침만 지키는 것은 부족하다고 여긴다. 유태인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지 않으면 안된다.

 

더욱이나 세계 각처에 흩어져 유태인만이 살아가야 하는 한정된 지역에 묶이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보다는 멸시와 천대 속에 살면서, 이러한 강한 전통에 힘입어 정의의 실현과 평등 사회를 간절하게 소망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인지 유태인 가운데는 사회 개혁자가 많이 나왔다. 아우스비추 수용소에 갇힌 많은 수감들이 만들어 부른 '나는 믿는다, 영원한 평화의 그 때가 오리라는 것을...'라는 노래가 있는데, 모르긴 해도 유태 민족이 아니고는 이런 노래를 지어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태 민족의 본질이다.
 


02. 금전의 차용은 거절해도 좋으나 책을 빌려 달랠때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이 말은 <탈무드> 에 있는 율법 가운데 하나이다. 예로부터 유태인들은 '학문과 책의 민족'이라 불릴 만큼 배움을 중시하였다. 유태 민족에 있어서의 배움이란 인간에서의 피와 같다고 여긴다.


인간의 몸 속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듯이, 배움이 없는 유태인들은 생각할 수 없다.이렇듯 배움이라는 것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지켜가는 의무로 삼고 있는 민족은 유태 민족뿐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자라는 성장기에 말을 배운다. 하지만 각 나라의 많은 민족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읽고 쓰는 것을 모르는 민족이 많았다.

 

그러나 유태 민족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서와 <탈무드>를 배우면서 쓰고 읽는 공부를 한다. 이들은 이때부터 배움이란 곧 신의 가르침이므로 모든 사람이 함께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태 민족에게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강한 전통 의식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03. 책으로부터 지식을 배우고, 인생에서 지혜를 배운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몇 백년 전과 비교해 생각하여 보면,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지식이란 실로 엄청난 것이며, 또한 계속 그 양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탈무드>를 비롯한 유태인들이 배우고 있는 많은 고전들을 보면, 인생을 통한 지혜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03. 유태인들 가정에서는 주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에는 모든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아버지가 <탈무드>에 대해 가르쳐 준다. 이처럼 유태인들에게는 안식일이 곧 가족의 날이다. 이러한 탓에서인지 오늘날의 유태인들도 안식일에는 여행을 삼가고 장사고 쉬는 것이 보통이다.

 

유태인들에 있어 교육이라면, 시설이 잘 갖추어진 학교보다는 각 가정을 얼핏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가정에서 배우는 교육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유태인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에 그치지만, 가정에서는 온갖 지혜를 배우게 되며, 또한 그 아이들의 생활이 가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랍에 파견되었던 어느 일본인이 많은 사람이 붐비는 공항에서 총기사고를 냈을 때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그 일본인을 가리켜 '학교에서 지식만 배운 녀석'이라고 비웃었다.

 

인간의 지혜가 <탈무드>라는 경전을 낳았고'인간의 지식이 <대륙간 탄도탄>을 만들어 냈다. 지식은 날마다 새롭게 발전해가지만 지혜만은 옛날과 차이가 없다고 유태인들은 믿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태인들은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성서와 <탈무드>를 믿는 것이다. 이들은 지식이 기록된 책과 지혜가 기록된 책을 구별하고 있으며, 지식의 책 못지 않게 지혜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유태 민족의 고전을 보면, 책을 통해 배우는 지혜보다는 부모를 통해 배우는 지헤가 가장 소중하고 훌륭한 것이라고 한다.
 


04.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피하고 도망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탈무드>에 있는 이런 경구가 이미 수천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가장 교육열이 높은 유태 민족을 '책의 민족'이라고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책이란 것이 귀하였다. 하지만 유태인들은 앞의 경구가 쓰일 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단순히 책을 읽는 것과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은 차이가 있다. 우리는 <성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수만 종이나 되는 많은 책 속에 파묻혀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람들은 책을 다만 읽는 것으로 그치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해도 마치 나귀가 책을 싣고 돌아다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탈무드>는 가르치고 있다.
 


05. 지식이란 흐르는 물과 같다 

 

<탈무드>에는 하 니와 이디라는 랍비에 관한 얘기가 있다.


'성경의 이사야편에는 [목마른 자는 모두 물가로 오라]


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성경에서의 가르침이 물로 표현하고 있는가? 물이란 높은 지대에 낮은 지대로 흐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식이란 것도 있는 곳에서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아울러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겸손해 진다.따라서 지식은 흐르는 물과도 같다.' 이밖에도 <탈무드>에서는 지식을 포도주나 우유에까지도 비유하고 있다. 오사와라는 랍비의 얘기를 들어보자.

 

'성서에는 [포도주와 우유를 구하라.그리하면 그대들은 살 수 있다]


고 하였다. 왜 포도주와 우유를 예로 들었을까?그것은 바로 그릇 속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속에만 진정한 가르침이 깃든다는 말이기도 하다.'
 


06. 기도 시간은 짧게 하고, 학문에는 오랜 시간을 보내라. 

 

이 말은 유태인들이 학문 즉 배움에 대한 생각을 신 을 찬양하는 것과 같이 생각한 데서 연유한 말이다. 그렇다면 '가장 위대한 것은 신'이라고 믿고 있는 그들이 어째서 기도 시간을 짧게 하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기도하는 것은 인간이 신에게는 하는 일방적인 말이고, 배움이란 것은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진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에게 하는 기도는 맑은 정신으로 짧게 하는 것이 옳으며, 배움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신의 진리를 배운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태인들은 진리를 연구하는 것 자체를 신을 찬양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지식과 지혜를 존중하는 것은 이것이 곧 신을 찬양하는 일로 여겼다.

 

간혹 신을 찬양하지 않는 유태인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인생에 있어 학문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유태인들의 이와 같은 전통에 의한 것이다.
 

 

07. 예루살렘의 멸망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다. 

 

유태 민족들은 시도했던 일이 실패로 끝나면 먼저 자 기들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배움 바체가 곧 신을 찬양하는 일이었고, 그래서 배움에 의해 신을 존경하고 신에게 가까와진다고 여겼다.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멸망되었을 때 유태인들은 로마의 힘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탈무드>에 있는 얘기를 들어보자. 널리 이름난 랍비가 어느 마을을 찾아왔다. 마을의 책임자는 랍비를 안내하여 마을의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 가는 곳마다 작은 진지에 병사들이 차 있었고, 어느 곳에는 울타리로 방어망을 치고 있었다.

 


08. 숙사로 들어온 랍비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마을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아직 알 수가 없어요. 마을을 지키는 것은 병사나 울타리가 아니고 학교입니다. 왜 나를 학교로 먼저 안내하지 않았습니까?]


학교란 방비의 목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만약 학교가 없어 유태민족에게 배움과 전통 사상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강한 군대를 만든다 해도 그 군대가 지킬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지킬 것을 만드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비이다.
 

 

09.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것은 지식이다. 

 

유태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집과 땅을 잃고, 이 나 라 저 나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수모와 고통을 받아왔다. 그래서 유태인의 아이들은 지금까지도 부모로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고 , 남들이 너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돈'이라고 대답하면, '아니란다. 그것은 지식이다.'라고 배워오고 있다.


필자 또한 어릴 때 부모로부터 그렇게 배웠다. 유태민족은 나라를 잃고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돌아 다닐 때에도 '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식'이라는 생각을 가슴에 새기고 다녔다.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이다. 어떤 학자가 같은 배를 타고 가는 상인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무슨 물건을 팔러 다니시오?]


학자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팝니다]


학자의 말에 궁금해진 상인은 학자가 잠이 들자 그의 짐보따리를 풀어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항해중에 풍랑을 만나 배를 난파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어느 해안에 닿았다.

 

학자는 그 마을 예배당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이 매우 훌륭한 학자라고 칭찬하게 되었고 그는 많은 재물을 모으게 되었다. 상인들은 이를 보고 감탄하였다.

 

[과연 당신 말이 옳았소.우리는 팔 물건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당신은 살아 있는 동안은 잃어버리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오.]

 


10. 신은 인간이 만든 마을과 탑을 보기 위해 왔다.

 

성서의 <창세기>편에 나오는 말로, 여기서의 탑은 바벨탑을 이르는 것이다.


옛날의 여러 랍비들은 왜 신이 땅으로 내려와 바벨탑을 보려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토론하였다. 성경에 의하면 그후 신은 바벨탑을 불태워 파괴하였다. 이에 대해 랍비들은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

 

'신은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일을 시도하려면 반드시 여러 조건을 직접 확인된 뒤에 생각한 일을 하도록 가르쳐 주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왔다.'
 

 

11. 자기 혀한테 '모른다'는 말을 열심히 가르쳐라. 

 

스스로 많이 아는 체하는 사람은, 헤엄을 모르면서 물에 뛰어드는 것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다.


인간이란 태어나면서부터 배움에 의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데, 배운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름지기 인간이란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다. 모른다는 것을 스스로인정하는 것은 지성적인 일이다.


 

12. 옳은 것을 배워 아는 것보다는 옳은 일을 몸소 행하는 것이 더 낫다. 

 

'행동은 말보다도 더 웅변적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여러가지 논리나 학문이란 것은 이를 바탕으로 한 행동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리라.


'가장 훌륭한 지혜는 친절함과 겸손함이다'라든가 '영리함보다는 친절함이 앞선다'는 격언도 '행동'이 말에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유태 사회의 옛 이야기를 통해 실제와 이론이 크게 다름을 알아보자.

 

옛날 어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다.


[1/2에 1/2를 더하면 얼마인가?]


먼저 손을 든 학생은 그 학급에서 성적이 제일 나은 아이였는데, '1/2이라고 대답하였다.

 

[1/2에 1/2을 더했는데, 어째서 1/2인가?반쪽에다 반쪽을 보태면 어떻게 되는지 잘 생각해 보아라.]


선생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설명해 주자 학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역시 같은 말을 하였다.

 

[역시1/2입니다.]


선생님은 화가 나서 종이 한장을 학생에게 주며 직접 계산해 보라고 명령했다. 학생은 여전히 '1/2+1/2=1/2'이라고 계산하였다.

 

[왜 그렇게 되는지 다시 설명해 봐라]


선생님의 꾸중에 학생이 설명하였다.

 

[분수에서 분자의 1과 1을 더하면 2가 되고, 분모의 2와 2를 더하면 4가 되므로 이를 약분하면 1/2이 됩니다.]


선생님은 그야 물론 1 됩니다.]


[그렇다면 반으로 나눈 사과 1개가 되었으니, 계산에서도 '1/2+1/2=1'란게 증명되지 않았느냐?]


학생은 그러나 여전히 상반된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반으로 나눈 사과처럼 실제로는 1이 되지만, 계산으로 하는 이론적으로는 1/2밖에 안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실제의 것이 소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