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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이야기 10] 마음의 양식이 되는 유대인의 격언 11가지 (2)

지식창고지기 2010. 8. 7. 18:15

[탈무드 이야기 10]

마음의 양식이 되는 유대인의 격언 11가지

 

 

12. 마음을 가는 것은 두뇌를 가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 

 

이 속담은 '옳은 것을 배우기보다 옳은 것을 행하 는 것이 더 낫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명망있는 랍비가 제자 한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였다. 그리고는 포도주를 먹기 전에 외우는 기도를 올리라고 했으나 제자는 몇 줄밖에 외우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기도문도 다 외우지 못했고, 지금까지 자기가 가르친 내용도 충분히 익히지 못하고 있었다. 랍비에게 꾸중을 들은 제자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고개를 들지못하고 돌아갔다.

 

며칠 뒤 랍비는, 지난번 제자가 앓고 있는 병자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일해 번 수입으로 돕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랍비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선행의 주인공인 제자를 다시 불렀다.

 

[마음속에 작정한 것은 즉시 행동으로 실천되어 나타나는 것이다.비록 많은 책을 읽어 지식이 쌓았다 해도 마음을 갈지 않으면 그것은 알고 있는 것에 그치고 만다.]

 

 

13. 무거운 포도송이일수록 아래로 늘어진다. 

 

이 격언은, 인간은 겸손할수록 허리를 굽힌다는 뜻이 다. 유태에는 다음과 같은 옛날 이야기가 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으로부터 아주 굉장한 선물을 받았다. 이 선물은 비단으로 짠 융단이었는데, 이것을 타면 하늘을 날아 어느 곳이고 갈수가 있었다. 그래서 솔로몬왕은 다메섹에서 아침을 먹고 메데에서 저녁을 먹는 마치 꿈과 같은 생활을 하였다.

 

어느날, 솔로몬왕이 이 융단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데, 어디선가 개미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왕개미가 부하 개미들에게, 하늘에 솔로몬왕이 날아가고 있으니 보이지 않도록 숨으라는 명령이었다. 이 말을 들은 솔로몬왕은 땅으로 내려와 여왕개미에게 물었다.

 

[왜 나를 피해 숨으라고 했느냐?]


[폐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니까요. 훌륭한 분들은 아주 무섭거든요.]


[너는 아주 작은 벌레다. 내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듯이 너는 높이 날 수도 없지 않느냐?]


솔로몬왕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자 여왕개미가 곧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페하의 융단에 저도 좀 태워 주십시오.]


솔로몬왕은 여왕개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고 융단에 함께 탄 뒤 하늘을 날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여왕개미는 솔로뫈의 머리 위로 날아 오르며 말했다.

 

[자 보세요. 내가 폐하보다 더 높이 날 수도 있지요.]

 

 

14. 신의 천지 창조의 마지막 날 인간을 만드신 것은 인간의 오만함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은 광명과 암흑, 하늘과 땅, 물, 그리고 모든 생물을 만드신 뒤 비로소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창조하시었다. 하나님은 여섯번째 날에 인간을 만드시고 다음날인 7일째 쉬었으므로, 이 날이 안식일의 유래가 되었다.

 

필자는 여러분들 한테 성서를 반드시 읽도록 권하고 싶다. 방대한 양의 성서를 모두 읽기가 힘들면, 일부만이라도 읽어 많은 교훈을 얻었으면 싶다. 왜 하나님은 인간을 마지막 날에 만드셨는가에 대해 고대의 랍비들은 생각하였다.

 

우리가 지금 열중하고 있는 <탈무드>가 이에 대한 <논의집>이라고나할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의 마지막 날에 만드신 것은 인간에게 겸손함을 가르치기 위하여 였다고 믿고 있다. 인간을 다른 생물보다 늦게 창조함으로써 그러한 생물에 대해 우월과 자만심을 갖지 않고 자연에 겸손하게 순응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하였다.
 

 

15. 몬을 닦는 것은 비누고, 마음을 닦아내는 것은 눈물이다. 

 

인간들의 몸을 씻어주는 것은 비누이고, 마음의 때를 닦아주는 것은 마음이다. 이런 아름다운 속담도 있다.


'천당 한쪽에는 기도가 무엇인지 모른 사람이었지만, 평소 올 줄 알았던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 '기쁨, 슬픔, 노함, 즐거움, 울음을 모르는 사람은 즐거움도 모른다. 밤이 없으면 밝은 낮도 없듯이.' '감정대로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기쁨을 나타낼 때도 진정 기뻐하지 않고, 기쁜척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껏 울고 나면 마음이 맑아진다. 마치 목욕을 한 뒤 상괘해지는 기분처럼, 신은 인간의 메마른 영혼에 단비를 내리듯이 눈물을 내려주셨다. 감정대로 울고나면 기다렸던 비가 내려 가문 밭을 적셔주듯이 우리 마음에도 움이 트고 신록의 싱그러움이 만들어 진다.'

 

문명이 발달한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기계의 노에가 되어 위험 상태에 빠진 것은 눈물을 부끄럽고 무익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울고 싶은때 감정대로 울어야 한다. 자기자신과 자기의 이웃을 위해서도 말이다.
 

 

16. 사람들은 길에서 넘어지면 먼저 돌을 탓한다.

 

만약 돌이 없으면 언덕을, 언덕이 없으면 자기의 구두를 탓한다. 이렇듯 사람은 좀처럼 자기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다.


항상 자기만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겸손함이 없기 때문이다. 하기야 자기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인금이라 해도 이 세상 모두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서로서로 양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피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 잘못했다고 조작되어야 한다. 나는 항상 옮기만 하고 다른 사람이 언제나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공동 생활의 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위험한 생각에 우리 인간들은 쉽게 빠진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위험한 생각을 극복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동 사회의 일원인 우리는 서로서로 겸손해 하고, 스스로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17. 이미 행해진 행동은 변하지 않고 남게 되지만, 그러나 인간은 날마다 변해 간다.

 

<탈무드>에 있는 말이다. 성서에 있는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결코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말과 같이 잘못되어진 행위는 지탄해도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잘못은 인간은 나날이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림 인간은 개선되어 간다. 성경은 노력하는대로 발전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인간에 대한 믿음과 낙관을 가르치고 있다.

 

'날이 날마다 새로운 일이 생긴다. 이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인간은 매일새로 태어나므로 , 결코 좌절해서는 안된다.'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18. 신은 인간의 마음을 먼저 보고, 그 다음 그의 두뇌를 본다. 

 

참된 인간은 그가 지닌 마음에서 좌우되므로 먼저 착 한 마음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식이란 그 다음의 것이다.


남다르게 많은 학문을 닦은 학자라 해도 그가 지닌 마음이 가난하고 어두우면 마음이 고운 가난한 농군만도 못하다.

 

시설이 훌륭한 대학도 이런 경우 가난하지만 화목한 작은 가정만도 못하다고 할 것이다. 신은 인간이 지닌 지성보다는 그가 지닌 마음을 본다.<탈무드>의 가르침은 이렇다. '<탈무드>의 내용 모두를 외우는 것보다는 작은 덕행이라도 한가지 몸소 익히는 것이 낫다'고 하였고, '인간의 지성이 마음에서 행해지는 덕행 보다도 낫다고 믿는 자는 끝내는 그 지성마저도 잃어 버린다'고 가르치고 있다.
 

내일 일어날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 오늘 현재의 앞일도 모르면서..


인간이란 앞날을 미리 알 수 있을 만큼 위대하지 못하므로 인생살이에 대해 너무 걱정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앞날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한다거나 또는 지나치게 낙관하는 것은 스스로가 위대하다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은 결코 앞날을 점칠 만큼 위대한 동물은 아니다.

 

운이 좋다든가 운이 나쁘다고 해서 웃고 우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앞날에 일어날 일들을 모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우리가 속단하는 낙관이나 비관은 인간의 힘이 그만큼 앞날에 미치고 있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내일이란 것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도 비관도 하지 말라. 앞날에 생기는 일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탓에 우리들 인간은 그나마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19. 매일매일 자기 자신을 죽여가는 자는 이승도 저승도 갈 곳이 없다. 

 

매일매일 스스로를 죽여간다는 표현이 좀 어색하기는 하지만, 이 말은 다음과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스스로를 매일매일 죽이고 있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하고 있거나 학대함으로써 삶에 의욕을 잃고, 이 때문에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쳐 끝내는 인생 모두가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만다는 말이다. 유태인들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사람이란 매일 새로운 일을 만나게 되고, 이렇게 됨으로써 새로운 일에도전해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렇듯 우리의 하루는 각각 다르게 펼쳐진다. 때문에 지나친 비관도 후회도 낙관도 금물인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스스로 비관하고 후회하는 사람은 이러한 경우와는 반대의 생활에 젖어 있다. 유태인 사회에서는 자살이 가장 큰 죄악이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자살한 사람은 장사를 지내주지 않으므로써, 그를 유태인 사회에서 아주 추방해 버렸다.

 

하루하루 스스로가 죽어가는 자는 인생의 참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있으므로 세상을 사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자살한 자는 유태인 사회에서 영원히 말살되었으므로, 이들은 이승에도 저승에도 갈 곳이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유태인들은 자살하지 않는다.
 

 

20.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는 것은 순간적인 일이나, 반대로 불행을 행복으로 가꾸는 데는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가 가장 불행한 고통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간의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행한 늪에서 하우적이던 사람이 행복의 정상을 얻기까지는 실로 오랜 세월, 아니 평생의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본래부터 지나친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고 만족할 수 없으므로 평생동안 행복감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에게도 가끔 불화 때문에 상담하러 오는 부부가 있다.그 가운데는 이혼까지도 생각하는 부부도 없지 않다. 그 때마다 나는 며칠이 아니고 3년간 깊이 생각해 보고 다시 찾아오라고 일러보낸다.

 

왜냐하면, 불행을 딛고 행복의 정상을 차지하는 데는 아주 오랜 세월 즉 평생을 보낸 끝에 그 방법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1. 신은 바르게 사는 자를 시험해 본다. 

 

성서에는 이런 격언도 있다.


랍비 요나단이 말하기를, '도공은 이미 망가진 그릇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시험해 보지 않는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그릇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두드려 보면서 시험해 본다. 이와같이 신도 이미 잘못된 악한자는 시험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는 착한 사람을 시험해 부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랍비 벤 허니나는, '자기가 팔고 있는 베가 좋다고 생각한 삼베 장사가 있다면 그는 그 삼베를 계속 다듬이질하여 윤기를 낼 것이다. 그러나 그 베가 나쁜 품질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자꾸 두드리면 곧 헤어져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도 바르게 사는 자만을 골라 시험해 본다.'고 말하고 있다.

 

랍비 에레아잘도, '한 마리는 건강하고 다른 것은 좀 약한 두 마리의 소를 가지고 있는 농군이 있다면, 그 농군은 건강한 소에게 멍에를 지게할 것이다. 이처럼 신은 건강하고 바르게 사는 자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22. 강철보다도 강한 반면 파리보다도 약한 것이 인간이다. 

 

맨허턴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도쿄의 고 층 빌딩을 보면 인간의 힘이 실로 강철보다도 강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갗철을 녹이고 늘이고 하는 강한 인간도 하찮은 파리나 모기에 물려 고통을 받기도 하며, 때로는 이것들이 옮기는 전염병에 걸려 생명을 잃기도 한다.


이 격언을 통해, 유태인 자녀들에게 만능의 힘을 가진 인간도 작은 벌레에 물릴만큼 아주 약하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인간보다 약한 것에도 항상 두려움을 갖고 오만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이를테면, 겸허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모두 위험한 것뿐이라는 경계이다.

 

인간이란 재물을 모으고 명성을 얻으면 오만해 진다. 오늘의 인간도 우리가 만든 문명에 의해 얼마나 성공적인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얼마나 작은 것에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가? 그러므로 인간은 성공하였다해도 좀더 겸허한 자세로 생활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