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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진 고대국가 한반도의 역사는 4천3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333년 고조선이 한반도 최초의 국가를 이루면서 한민족의 역사는 꽃을 피웠다. 하지만 진(秦)에 이어진 중국의 통일왕조인 한(漢)이 기원전 109년 육군과 수군 5만7천명을 동원해 침략한지 1년 뒤 고조선은 멸망했다. 한의 세력에 밀린 고조선 유민들이 한강 이남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삼한시대의 시작이다. 지금의 충청·경기·호남에 해당하는 마한에 54개 고대국가, 영남권에 해당하는 진한과 변한에 24개 고대국가가 생겨났다. 진한과 변한은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해 소백산맥 이남을 기준으로 낙동강 동쪽에는 진한 12국이, 낙동강 서쪽과 지리산 동쪽에는 변한 12국이 자리잡게 됐다. 이들 영남권 고대국가는 짧게는 100여년, 길게는 수백년간 저마다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발전시켰다. 비록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잊어졌지만, 분명 우리의 소중한 역사인 진한과 변한의 고대왕국들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서국, 압독국, 골벌국, 음즙벌국, 실직국, 조문국, 감문국, 우시산국, 거칠산국, 사벌국, 비지국, 다벌국, 초팔국 등 10여개 고대국가가 사로국과 같은 시대에 존재했다. 또 3세기 후반에 저술된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 삼한(三韓) 소국 중 진한과 변한의 24개 고대국가의 이름이 열거돼 있다. 기저국, 불야국, 변진미리미동국, 변진접도국, 근기국, 난미리미동국, 변진고자미동국, 변진고순시국, 염해국, 변진반로국, 변낙노국, 군미국, 변진미조야마국, 여담국, 변진감로국, 호로국, 주선국, 변진구야국, 변진주조마국, 변진아야국, 마연국, 변진독로국, 사로국, 우중국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삼국지나 신라의 삼국유사 및 삼국사기에 나온 고대국가의 이름에는 차이가 있어, 학계에서 이에 대한 검증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영남지역의 24개 진한과 변한 고대국가들은 치열한 투쟁을 거치면서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까지 진한은 사로국에 의해 병합되고, 변한은 가야사회로 전환하게 된다. 이처럼 역사는 이긴 자의 것이다. 패자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 뒤에 가려진다. 삼국시대 영남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사로국은 250년 수많은 소국(小國)들을 복속시키면서 신라란 이름으로 본격적인 삼국시대를 열게 된다. 이후 신라의 제56대 경순왕이 935년 사직을 고려에 바치겠다고 결의하기 전까지 992년간의역사를 이어갔다. ◇고대왕국의 생활사 과연 2천여년 전 우리 조상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만약 그들의 삶이 무질서한 원시사회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의 고서에는 영남지역에 자리한 진한과 변한 고대국가들이 비옥한 옥토에 벼·옥수수·콩·수수 등 다양한 곡물을 재배하며 정착생활을 한 것으로 기술돼 있다. 또 누에와 뽕나무를 길러 생사와 비단을 생산했는데, 특히 변한의 포(布)는 폭이 넓고 섬세해 낙랑군까지 수출되기도 했다. 1세기 초 진한에서는 낙랑군에서 잡혀온 다수의 한나라 사람들이 노역을 했고, 이들은 밭에서 참새를 쫓았다는 '삼국지 위략'에 전하는 염사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농경사회가 일반화되었다. 삼국지 한전(韓傳)에는 겉옷을 입는다는 사실이 묘사되고 있어 저고리와 바지, 두루마기가 기본적인 옷차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다를 이용한 어로를 생업으로 삼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신라 탈해가 왕이 되기 전 어업으로 그 모친을 봉양했다는 기록은 어업이 단순히 양식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획한 어패류를 곡식 등과 교환해 생계를 유지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로국은 오늘의 경주분지에 위치해 광대한 경작지를 소유했고, 철을 생산했다. 또 동해안을 이용한 해상교통을 적극 활용하면서 중국이나 낙랑·대방군 등을 통해 발달된 농기구와 무기를 수입, 진한 소국들의 맹주로 성장했다. 정치적 질서도 안정됐다. 고조선 멸망 이후 북쪽의 유민들이 철기문화를 가지고 이주하면서 지역의 토착민과 결합, 자신들 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게 됐다. 이 시기 고대국가들은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농경사회를 이루면서 생활상도 큰 변화를 겪게 됐다. 또 지역마다 주도세력을 중심으로 계급 분화에 바탕한 최초의 정치체(政治體·집권세력)를 형성, 초기국가의 기틀도 마련하게 된 것. 이를 반영하듯 경북지역에는 기원전 1세기를 전후한 묘지문화도 목관묘(구덩이를 파고 직접 유해를 안치하는 무덤)에서 많은 인력과 부장품이 필요로 하는 목곽묘(관을 넣어두는 묘실을 나무로 짜 만든 무덤)로 변하는 등 집권세력의 권력 강화가 뚜렷해졌다. 삼국사기에 산과 계곡을 갈라 땅을 이루고 살았다는 '분거산곡지간(分居山谷之間)'이란 표현에서 보듯 낙동강 유역의 충적평야와 여러 분지에 독자적인 세력집단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한과 변한의 고대국가는 적게는 600~700가구, 많게는 4천~5천가구가 모여 살았다. 2천여년 전의 고대국가라 할지라도 집권세력 등 계층 분화도 이뤄졌다. 사로국의 경우 지배계층과 일반촌락민인 '하호', 최하위계층인 노비로 구분된다. 노중국 계명대 교수는 "진한과 변한의 고대국가들은 경제·외교·군사적으로 개별적인 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며 "대신 진한과 변한의 맹주국인 사로국과 가야국이 중심이 된 지역연맹체를 결성, 대외적인 활동과 공동의 군사적 방어 등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
2010-05-19 08:23:11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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