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어느 고을에서 모가지 없는 사람이 목발 없는 지게를 지고 자루 없는 도끼를 메고 뿌리 없는 고주백이(나무 등걸)를 캐려고 모래 강변으로 갔었답니다. 그 사람은 자루 없는 도끼로 고주백이를 캔다는 것이 잘못 되어 발톱 없는 발가락을 찍어서 하얀 피가 주르륵 흘렀답니다. 그래 부랴부랴 의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의사를 찾아가는 도중 길에서 중과 고자가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자는 중의 상투를 쥐고, 중은 고자의 불알을 쥐고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 싸움을 가까스로 떼어 말리고 의사를 찾아갔더니 의사는 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 다시 모레 강변으로 갔더니, 푸르청청한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져 강물이 되어 흐르는데 그 위에 커다란 보따리가 하나 떠내려 오더랍니다. 자루 없는 쇠스랑으로 그 보따리를 건져내어 펴보니 그 속에는 새빨간 거짓말만 달삭 달삭.(충남 예산)
옛날 한 선비가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갔다가 거울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서울에 가서 제 모습을 비추어 주는 거울을 보니 너무나 신기해서 많은 돈을 주고 그 거울을 사온 것이다. 선비는 거울을 남 몰래 감추어 두고 아침저녁으로 혼자만 꺼내서 제 모습을 비추어 보곤 하였다. 어느 날 선비의 아내는 남편이 무엇인가를 농 속에서 꺼내어서는 혼자만 보고 도로 감추고 하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그래서 남편이 나간 사이에 도대체 무엇을 감추어 두고 그러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여 농 속에서 슬그머니 그것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순간 아내는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젊은 여자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질투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아내는 시어머니한테 쫓아가서 거울을 보이며 남편이 서울에 가더니 젊은 첩을 얻어다 몰래 농 속에 감추어 두었다고 울며, 불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시어머니는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거울을 받아들고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늙은 여인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애 아가야, 어디 첩이 잇느냐? 건넛마을 할머니가 마실(마을)와서 여기 있네 그래?" 했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시아버지가 무엇을 가지고 수다를 떠냐고 나무라면서 자기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늙은 할머니 대신 늙은 할아버지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더니 두 무릎을 꿇고 말씨도 공손히, "아버님,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이렇게 현령(顯靈) 하셨습니까?" 하고 절을 했다. 며느리는 분명히 젊은 첩의 모습을 보았는데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싶어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아까의 젊은 첩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화가 치민 며느리는 첩에게 요사를 부리지 말라고 야단을 쳤다. 그랬더니 첩도 흉내를 내어 입을 놀리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점점 약이 올라 야단을 치면 첩도 지지 않고 며느리가 하는 대로 흉내를 냈으므로 나중에는 끝내 거울을 깨고 말았다고 한다.
옛날 시골 어느 집에 쥐가 많았다. 며느리가 부엌에서 일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면 으레 쥐가 나와서 찌꺼기를 주워 먹곤 했다. 오랫동안 부엌에서 지를 보아 왔으므로 마음씨 착한 며느리는 때로는 쥐더러 먹으라고 일부러 밥찌꺼기를 놓아두기도 했다.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생겼다. 부엌에 얼굴도 음성도 몸매도 꼭 같은 두 며느리가 같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나 똑 같아서 어느 며느리가 진짜이며, 어느 며느리가 가짜인지 분간을 하 수가 없어서 가족들은 야단들이었다. 본인들도 서로 제가 이 집의 진짜 며느리라고 우겨대니 더욱 알 수가 없게 되었다. 가족들은 두 며느리를 방에 불러들여 여러 가지로 질문을 했으나 가짜를 골라낼 수가 없었다. 사마귀 난 것이며, 흉터가 있는 것이며, 웃는 모습이며 조금도 틀리는 점이 없이 모두 똑 같다. 여러 가지로 시험을 해보았지만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살강(찬장)에 있는 숟갈이 몇 개냐고 물었다. 그것도 둘이 다 맞히었다. 다시 접시가 몇 개냐고 물었다. 진짜 며느리는 마침 그 개수를 잊었으나, 쥐가 둔갑을 한 며느리는 늘 살강에 몰래 들어가 찬을 몰래 훔쳐먹으면서 세어 두었기 때문에 훤히 알고 있어서, 척척 알아맞히었다. 그래서 가짜 며느리를 진짜로 판정하여 집에 두고 진짜 며느리는 가짜로 판정되어 쫓겨나고 말았다. 집을 쫓겨난 진짜 며느리는 울면서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얼마쯤 가다가 대사님을 만났다. 이 대사님은 인근 절에 있는 유명한 스님이었다. 그래서 대사님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이 대사님은 그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고 하면서 큰 고양이를 잡아다 방안에 넣으라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대사님이 시키는 대로 고양이를 구해 다가 몰래 집에 들어가 방문을 열고 집어넣고 문을 꼭 닫았다. 잠시 후 방안에서는 후닥닥거리며 이리 닥치고 저리 닥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쥐의 비명이 들렸다. 그리고서는 한참 조용해졌다. 며느리는 어쩐 영문인가 싶어 방문을 열어보니 가짜 며느리는 죽어 지가 되어 고양이 발밑에 깔려 있었다. 가족들이 이 꼴을 보고 크게 놀랐으며, 쫓겨났던 진짜 며느리를 맞이하여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이 화기애애하게 잘들 살았다.(충남 연기)
술을 잘 마시는 영감이 있었는데 하루는 볼일이 있어서 장엘 갔다. 이때에 집에서 기르던 개가 따라 왔다. 영감은 장에 가서 친구를 만나고, 싸전, 웅기전, 포목전으로 몇 바퀴를 도는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 술을 많이 마시게 되었다. 해가 서산에 기울기 시작하자 장꾼도 장사꾼도 하나 둘씩 돌아가더니, 장터는 파장이 되었다. 영감은 술이 거나한 채 개를 데리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오는 도중에 산길과 재를 넘게 되었다. 술에 취한 영감은 비틀거리다가 잔디 우에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이 때에 마침 산불이 났다. 메마른 잔디는 점점 불길에 싸여 불길은 영감에게로 가까워졌다. 개는 주인을 잠에서 깨게 하려고 사납게 짓고 옷을 물어 잡아당겼으나 술에 곤죽이 된 영감은 좀처럼 깨어나지를 않았다. 개는 불에서 주인을 구하려고 가까운 개울에 가서 꼬리를 물에 적셔 주인이 누운 근처에 잔디에 뿌리고 다시 개울에 가서 꼬리에 물을 적셔 잔디를 적시고 몇 백 번을 결사적으로 되풀이해서 불길이 겨우 잡혀 주인을 구했다. 그러나 개는 과로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영감은 자기가 누운 곳만 잔디가 성하고 딴 곳은 모두 불에 탔으며 개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잠든 사이에 있었던 일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개가 주인의 목숨을 건진 것이다. 영감은 개가 고마웠다. 비로 축생이기는 하지만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주인을 구해낸 개가 고마웠다. 그래서 개를 좋은 곳에 장사를 지내주고 비석까지 만들어 세웠다는 것이다.
옛날 어느 산골에 커다란 절이 있었다. 하루는 어느 상좌가 바깥으로부터 뛰어 들어오며 숨찬 소리로 스님을 급히 불렀다. 스님이 매우 놀라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상좌가 하는 말이, "까치가요, 절 문 밖에 큰 대추나무에다 집을 짓는데 웬 옥비녀를 갖다 끼워요." 하였다. 스님은 이상히 여겨 나가 보니까 상좌는 올라가서 옥비녀를 꺼내라고 꾀이었다. 그래 스님은 까치집을 한참 쳐다본 후, 신과 버선을 벗어 놓고 손에 침을 바르더니 대추나무를 올라가시기 시작하였다. 이가지 저 가지를 바꿔 디디며 까치집까지 올라가는 걸 보던 상좌는 소리쳤다. "저것 보세요. 우리 스님이 가치 새끼를 꺼내 생을 뜯어 잡수시네요." 하며 절이 떠나갈 듯 고함을 질렀다. 절 안의 중들이 일제히 쳐다보니 대추나무 위에 있던 스님이 당황하여 급히 내려오다 가시에 온 몸이 찢겨 피투성이가 되었다. 다른 중들에게 변명을 한 후, 그 스님은 부끄럽기도 하고 분함을 못 참아 상좌를 끌고 들어가 실컷 때려 주었다. 그러나 이 상좌는 원래 장난을 잘했으므로 또 곯려 줄 방법을 생각했다. 이번엔 자기가 장난을 한 후에도 책망을 받지 않게 하려고 심중이 계획을 짰다. 때는 가을이었다. 어느 날 상좌가 절 아래에 있는 동네에서 돌아와 스님 곁에 앉으며 은근히 말을 꺼냈다. "저 아랫마을 주막집에 사는 젊은 과부가 있지요." "그래" "지금 소생이 오려니까 과부가 불러서 무슨 일인가 하고 갔더니 절 근처 그 많은 감나무에 열린 감을 스님 혼자만 잡수냐고 물어요." "그래서?" "그래 대답하길 스님이 그럴 리가 있나요, 스님도 잡수시고 다른 사람도 나눠줘요, 하였지요" "그래서?" "그랬더니 과부 말이 그러면 스님께 여쭙고 좀 얻어 달라고 합디다." "그래? 그럼 먹을 만큼 따다 주려무나" 그리하여 상좌는 만족한 듯이 제일 좋은 감을 골라서 따 가지고 내려갔다. 그 과부는 천하 미인이라, 은근히 탐을 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편 스님도 그 과부를 은근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여자는 겉은 꽃 같으나 속은 얼음과 같이 찬 천하미인이다. 감히 말을 해본 사람도, 말소리를 들어본 사람도 없는데 감을 맛보자는 것은 나와 통하자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감은 나에게 고마운 과일이다.' 이같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음을 조였다. 얼마 후에 상좌가 웃으며 들어왔다. "스님, 감을 갖다 주었더니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 과부가 또 하는 말이 있어요." "무슨 말인데?" "저 불당의 옥병은 스님이 혼자 잡숫냐고 물어요." "그래서?" "모두 나눠 먹는다고 했어요." "대답 잘했다." "그랬더니 스님께 여쭙고 그것을 좀 갖다 달라고 하지 않아요?" 상좌는 스님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불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불상 앞에 고이 놓은 옥병을 전부 거두어 가지고 마을로 내려갔다. 스님은 또 과부를 생각하며 상좌가 오기를 고대했다. 그러던 중 저편에서 상좌가 오다가, "스님" 하고 부르고는 절 뒤로 뛰어갔다. 스님은 초조한 끝에 쫓아가니 상좌는 뒷간으로 들어갔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듯 걸음을 멈추고 상좌가 나올 때만 기다렸다. 이윽고 상좌가 나오며, "아이구, 똥 쌀 뻔하였네." 하곤 어려운 일이나 한 듯 외쳤다. 스님은 자기가 뛴 일이 분하여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상좌는 기색을 살피며 왜 여길 오셨느냐고 했다. "네가 뛰어오길래 영문도 모르고 왔지." "소생은 여기까지 올라오시란 게 아니라 말씀을 전하려다가 뒤가 급해서 뛰었습니다." "그러면 말이나 하고 오지. 대관절 과부가 뭐라고 하더냐?" "아이구, 과부 말씀하지도 마셔요. 제가 갔다가 맞아 죽을 뻔했어요." "얘, 무슨 말인지 어서 해 봐라." 하고 스님은 독촉을 했다. "병을 갖다 놓고 얘기를 하려는데 과부의 아버지가 술이 취해서 작대기로 때리며 무슨 중놈이 고약한 짓을 하려고 이곳에 왔느냐고 하잖아요." "그럼 아무 말도 들을 겨를이 없었겠구나." 하고 재차 물었다. "얻어맞고 뒤꼍으로 뛰어오는데 과부가 쫓아오며 이틀 후에 오라고 했습니다만 다시는 못 가겠습니다. 맞아 죽으라고요?" 스님은 후일에 다시 오란 말에 정신이 번쩍 나서 상좌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돈을 주고 달래며 호감을 사느라고 애를 썼다. 이윽고 그날 돈을 많이 타 가지고 마을에 내려가 놀다 돌아와서 스님을 가만히 불렀다. "스님, 과부가 말하길 스님께 신세를 많이 졌다고 하면서 한번 조용한 곳에서 만나자고 해요." 그러니까 스님은 너무 기뻐 한참 생각하다가, "어느 날 만나자고 하더냐?" "모레 저녁에 스님더러 자리를 정하라고 하던데요." 그리하여 절 뒷방에다 자리를 정하고 상좌는 마을로 내려갔다. 과부에게 가서, "소인이 볼래 가슴앓이가 있는데 의원에게 보이니 아낙네의 신짝을 따뜻하게 해서 대면 낫는다기에 헌 신짝을 얻으러 왔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과부는, "내버린 신짝은 없고 현재 신는 것을 줄 테니 어서 병이나 나으라." 고 했다. 신을 들고 스님 방문 앞으로 기어 와 있으니까 방안에서, "과부가 온다. 미인 과부가 온다. 저 과일을 내가 권하면 그녀가 나에게도 권하고, 후에는 인사도 하고, 내 요구도 들어줄 테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 때 상좌가 문을 벌컥 열고서, "다 틀렸소, 다 틀렸어." 했다. 스님은 영문을 몰라하니 상좌는, "과부가 오다가 스님의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여러 사람이 논다고 대단히 노하고 돌아가는 것을 붙잡지 못하고 신작만 주워 가지고 왔어요." 하고 신짝을 보였다. "다 잘 된 일이 틀린 것은 모두 스님의 탓입니다." 하며 스님을 원망하였다. 이를 듣고 있던 스님은 큰 실수나 한 듯이, "옳다, 요놈의 주둥이가 죄다. 몽둥이로 때려라." 하고 상좌 앞으로 내민다. 이것을 본 상좌는, "옳소이다." 하며 옆에 있는 목침으로 갈기니 상하의 이빨이 몽땅 빠졌다. 상좌는 지금까지는 잘 속였으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속일 궁리를 했다. 어느 날 스님에게로 가서, "아랫마을 과부가 말씀 좀 전해 달라고 해요." 하며, "저번에 왔다가 스님이 혼자 말씀하신 것인 줄 모르고 그냥 간 것이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뵙도록 해달라고 하데요." "어떻게 만나자고 하든?" 하며 스님은 바짝 다가앉는다. 상좌는 뻐기면서, "이번에는 자기가 조용한 [예쁜네]로 처소를 정했으니 이 약을 잡수시고 오시래요. 이 약은 원기 왕성한 약이래요." 라고 말했다. 스님은 일초가 새롭게 고대하다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배가 꿈틀거리더니 설사가 날 듯하였다. 참다못해 무릎을 꿇고 발뒤꿈치로 변구를 괴고 있는가 과부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사람이 들어오는데 괴이하게 앉아서 일어나지도 않아." 하며 스님을 손으로 떼밀었다. 자빠진 스님은 똥을 빠락 싸고 고개도 못 든 채 기어 나왔다. 이 설사는 상좌의 흉계로 약이 아니라 날 콩가루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물과 마시면 당장 설사가 나는 것이었다. 한편 스님은 겨우 자기 방으로 들어와서, "이놈의 배, 이놈의 배..." 하며 주먹으로 자기의 배를 때렸다. 이를 본 중들은 견딜 수 없는 냄새가 나도 유구무언(有口無言)이었다. 이 스님처럼 자기의 양심에 어긋나는 양심을 억지로 채우려다 가는 곳마다 봉변을 당하는 것을 가리켜 물 건너는 중이라 별명 하였다.(경기도 남양주)
옛날 조실부모한 남매가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마음씨 착하고 의좋기로 소문이 나서 누구나 칭찬하는 처지였다. 부모가 없는 탓으로 과년하도록 혼인을 하지 못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두 남매는 재 너머 밭으로 일을 하러 갔다.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고갯마루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여서 피할 인가도 없어 두 남매는 큰 나무 밑에 서 있었으나 심한 비 때문에 옷이 흠씬 젖도록 비를 맞고 말았다. 비에 젖은 두 남매의 꼴은 가관이었다. 여름 모시옷을 입었는데 비에 젖은 옷이 살에 착 달라붙었다. 알몸이 다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오라버니는 누이동생에게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여태껏 느끼지 못한 복잡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비에 젖은 살결과 머리카락이며 연적처럼 둥글게 솟은 젖몽울을 보니 참을 수 없이 흥분되었다. 그러나 오라버니는 마음을 억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비가 개었다. 오라버니는 누이에게 빨리 앞서 가라고 했다. 누이는 제 살결이 들여다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서 앞서 길을 재촉했다. 누이는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점심을 다 지어 놓아도 오라버니가 오지 않았다. 누이는 수상히 여겨 비를 피했던 고갯마루로 가보았더니 나무 밑에 오라버니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오라버니는 누이를 앞세워 보내 놓고 육친에게서 춘정을 느끼고 흥분했던 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워 돌을 주어다 자신의 생식기를 찍어 자살했던 것이다. 이 꼴을 본 누이는, "죽지 말고 차라리 달래나 보지." 하며 울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마을 사라들은 이 고개를 '달래 고개' 라고 부르게 되었고 한다.
옛날 어떤 사람이 소를 판돈을 가지고 오다가 도적을 만나 돈도 빼앗기고 죽음까지 당했습니다. 또한 그 고을에는 날짐승의 소리를 알아드는 사람과 병들어 죽은 고기 맛을 안다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어느 날 장을 보러 가는데 소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고기 맛을 안다는 사람이 날짐승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저 소리가 뭐지? 자넨 날짐승 소리를 알아듣는당께." 그러니까 짐승의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저 소나무 밑에 괴기(고기)가 있어. 죽은 사람의 괴기가 있어." 그래 두 사람이 나무 밑으로 가보았더니 과연 사람이 하나 죽어 있었더랍니다. 그런데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관리들이 이들을 사람을 죽인 도적으로 오인하고 붙잡아 임금님 앞으로 끌고 갔습니다. 억울한 이들은 사실대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임금님과 관리들은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은 퇴침 밑에 새끼 제비를 감춰 두었습니다. 한참 후에 어미 제비가 와서 울었습니다. 임금님과 관리들은 그들의 말이 거짓인지 사실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물었습니다. "저 소리가 무슨 소리냐?" 그러니까 날짐승의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퇴침 밑의 내 새끼를 내 높아라. 내 새끼를 내 놓아라." 그랬더니 임금님과 관리들은 감탄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풀어 주었더랍니다.(전남 담양)
옛날 옛적 어느 곳에 다섯 식구가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며느리뿐만 아니라 머슴까지가 모두 귀머거리인 집이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오줌장군을 짊어지고 들에 나가 일을 한 두에 휘양(머리에 쓰는 방한구의 일종) 하나를 사서 쓰고 집으로 왔다. 그랬더니 마나님 하는 말이, "그 휘양 얼마 주고 사 썼소?" 영감은 그 대답은 못하고, "뜨뜻해서 좋네." 며느리와 아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언제 내가 누룽지 굵어 먹어라우?" "언제 내가 투전을 하고 댕겨요?" 또 며느리가 머슴더러 밥을 먹으라고 하니까 머슴 하는 말이, "언제 내가 당신 속곳을 봤어?" 언제나 이렇게 이 집 가족들은 서로 딴전만 보면서도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한다.(전남 무안)
옛날 어느 마을에 언제나 머리 부스럼을 앓고 있는 사람과 눈병을 앓는 사람과 늘 코를 훌쩍이는 코흘리개가 살았습니다. 부스럼쟁이는 늘 머리를 긁적이는 게 일쑤이고, 눈병을 앓는 사람은 모여드는 파리 떼를 쫓느라 정신을 못 차리고, 또 코흘리개는 항상 코를 훌쩍이며 소매 끝으로 코를 문질러 댔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자신들의 허물을 잊은 채 늘 상대편의 흉허물을 헐뜯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세 사람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래서 서로 한참 상대편들의 흉을 보다가 내기를 했습니다. "그럼 우리 셋 중에서 누가 오래 견디나 보자." 다시 말하면 부스럼 장이는 머리를 긁지 않고, 눈병을 앓는 사람은 파리를 쫓지 않고, 코흘리개는 코를 닦아내지 않으면서 얼마나 오래 견뎌내나 내기를 건 것이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르자 서로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부스럼장이는 머리 속이 근질근질, 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은 쇠파리까지 새까맣게 모여들어 죽을상이고, 코흘리개의 코에서는 콧물이 흘러내려 닦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로는 몸을 비틀어 괴로움을 참으면서 서로가 가관인 몰골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참을 수 없게 되자 부스럼 장이가 묘안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걸었습니다. "내가 어제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었는데 사슴 한 마리가 숲 속에서 뛰어 나오질 않아? 그 사슴 머리에는 여기에도 뿔이 나고, 저기에도 뿔이 났었어." 주먹으로 뿔이 난 곳을 가리키는 척하며 가려운 데를 긁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코흘리개도 한 꾀를 생각해 냈다. "그 사슴이 말씀야, 내 앞을 지나쳐 도망가는데 마침 포수가 사냥을 나왔어. 그 포수는 그 사슴을 잡으려고 활을 꼬는데 이렇게 하지 않어?" 하며 활을 늘이는 척 하며 슬쩍 소매로 코를 닦아냈다. 두 사람이 꾀를 부려 그들의 괴로움을 면하는 것을 보고, 눈병을 앓는 사람도 생각에 잠겼다. 드디어 한 꾀를 생각해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의 이야기는 모두 그럴 듯 하지만 사실은 뒷산에서 사슴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 나는 절대로 자네들 말을 믿지 않는단 말일세." 하면서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고, 손을 휘저으며 모여든 파리 떼를 쫓아버렸다. 이렇게 해서 서로 괴로운 고비를 넘긴 그 세 사람은 그 후부터는 서로의 흉허물을 잡지 않고, 의좋게 잘 살았다고 한다.
옛날 중국은 대국이라는 것을 뽐내기 위해서 소국인 우리 나라를 곯려 주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어느 심술궂은 중국의 임금이 사신을 보내 까다로운 요구를 해 왔다. 즉 조선에는 한강이라는 큰 강이 있다는데 그 한강의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한 척의 배에다 실어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런 까다로운 주문을 받은 우리 나라 임금님의 걱정은 태산 같았다. 유유 가득히 흘러내리는 한강물을 한 방울 남기지 않고 퍼 올릴 수도 없거니와 또 그 많은 물을 퍼 올린다 해도 한 척의 배에다 실어 보낼 그런 큰배는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보내라는 날짜는 다가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생기지 않아 임금님은 괴로웠다. 그래 하루는 머리가 좋다는 조정의 신하들을 불러들여 의논을 했다. 그러나 한강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한 척의 배에다 실어 보낼 수 있다는 묘안은 나올 리가 없어, 신하들도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한참 후에 어느 정승이 임금님 앞에 나타나 좋은 수가 있다고 했다. 기뻐한 임금님은 어서 그것을 말해 보라고 재촉했다. 정승의 말을 다 듣고 난 임금님은 고개를 끄덕여 뛸 듯이 기뻐하며 어서 답장을 쓰라는 것이었다. 중국의 천자에게 보내는 답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한강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퍼 보낼 준비는 다 되어 있나이다. 그러나 이 많은 물을 보내기 위해서는 한강 물을 실을 만한 큰배가 필요하며 그 배는 모레를 3백자 쌓아 올려 돛대를 만들어야 하나이다. 우리 나라는 아시다시피 소국이라 그런 많은 모래가 없으니 대국인 귀국에서 북쪽의 사막이라도 헐어 3백자 모래 돛대를 만들어 배와 함께 보내십시오. 그러시면 곧 한강 물을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실어 보내겠습니다.' 이 답장을 받은 중국의 천자는 아무 말도 못했으며 그 후 다시는 까다로운 주문을 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옛날 소송 사건을 잘 판가름하는 이름난 판관이 있었다. 무슨 일이고 그 앞에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그는 척척 판결해서 억울한 일이 없도록 판가름을 해주었다. 그래서 명판 관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천하가 다 그를 알게 되었다. 한데 어느 날 이 명판 관에게도 어려운 문제가 들어왔었다. 허수룩하게 차리고 빈 지게를 진 옹기 장수가 찾아와서 신세 한탄을 하면서 호소했다. "나는 이제까지 10여 년을 두고 옹기 장수를 해서 늙은 부모를 봉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장에 가서 새로 팔 옹기를 한 짐 사서 지게에 지고 오던 중 짐이 무거워 고갯길에서 지게를 받쳐 놓고 잠시 쉬는 사이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어 지게가 쓰러지는 통에 옹기는 모두 개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꼼짝없이 굶어 죽게 되었으며, 부모를 모실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옹기 값을 변상해 주도록 조처해 주십시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사정은 매우 딱했으나, 명판관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백성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 주는 것이 자기의 직책이며, 또 명판 관의 권위를 위해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이 일을 해결해 주어야 하겠는데 죄는 회오리바람한테 있는 것이어서 좀처럼 명안이 나오질 않아 명판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생각 끝에 판관은 하인을 불렀다. 하인에게 곧 나루터에 가서 남쪽으로 가는 뱃사공과 북쪽으로 가는 뱃사공을 불러오도록 했다. 뱃사공은 영문도 모르고 하인에게 끌려들어 왔다. 판관은 먼저 북으로 가는 뱃사공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바람이 불어야 하느냐?" 북으로 가는 뱃사공은, "저희는 북으로 가니 남풍이 불어야 좋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다음 남으로 가는 뱃사공에게 물었다. " 너는 무슨 바람이 불어야 좋으냐?" 남으로 가는 뱃사공은, "저는 남쪽으로 가니 북풍이 불어야 가기가 편합니다. 그러니 북풍이 불기를 바랍니다." 이 말을 듣자 판관은 크게 호령을 하였다. "이 고약한 너희들이 남풍이 불어라, 북풍 불어라, 하며 서로 빌고 고사를 지내고 하니 남풍과 북풍이 한꺼번에 불어 회오리바람이 되고 그 회오리바람에 옹기 짐이 쓰러져서 저 옹기 장수가 생계를 잃게 되었으니 너희들이 옹기 값을 변상하도록 해라!" 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뱃사공들은 꼼짝없이 옹기 값을 물고 옹기 장수는 장사를 계속하게 되었으며, 판관도 더욱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고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동물인 만큼 사람은 물론 어지간한 배도 큰고래인 경우 통째로 삼킬 수 있다고 한다. 옛날 어느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고래가 나타나 바닷물을 들이 삼키는 바람에 고래 뱃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고래의 뱃속에는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있어 노름판을 벌이고 있었다. 어느 옹기 장수는 옹기 짐을 진 채 들어왔기 때문에 지게를 받쳐놓고 노름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어떤 사람이 담배를 피우다가 담뱃대로 고래 뱃살을 지지니 고래는 뜨거움에 못 견뎌 크게 요동하면서 옹기 짐은 쓰러지고 사라도 뒹굴어 노름판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옹기 짐이 쓰러지며 그릇은 깨져서 살을 찌르고 간장 된장이 엎질러져서 고래는 더욱 아파서 날뛰었다. 이 틈을 타서 사람들은 깨어진 조각으로 고래의 뱃가죽을 찢고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고 한다.
옛날 어느 집에서 새 며느리를 맞아들였다. 그 며느리는 시집오기 전에 친정 아버지로 부터 시집가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조심해야 한다는 간곡한 교훈을 받았다. 어느 날 밤에 밖에서 개가 유난히 짖어댔다. 안방에서 시아버지가 왜 저리 개가 짖느냐고 물으셨다. 며느리는 제가 나가서 살펴보겠노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어둠 속에 개는 외양간 앞에서 짖고 있었다. 외양간에 매어 둔 소는 때가 겨울이라 덕석을 입혔는데 어쩌다가 그 덕석이 머리 위로 홀려 뿔에 걸쳐져 있었다. 소는 앞을 볼 수가 없고 답답해서 몸을 좌우로 흔드니 이 꼴을 보고 개가 짖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안방 문 앞에 다가서며 시아버지께 보고하여 말하기를, "소씨께서 덕석씨를 쓰시고 펄펄 뛰시니 개씨가 보시고 꽁갱이 짖으세요." 이 말을 들은 시아버지는 우리 며느리는 참으로 공손하고 유식하다고 칭찬하더라는 것이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산 속에 사는 여러 짐승들이 모여 잔치를 하게 되었다. 많은 음식을 차려 놓고 짐승들이 모였는데, 잔치에는 어른을 상석에 앉히는 게 도리라 누구를 상석에 앉힐 것인가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짐승들은 서로 제가 어른이라고 우기고 나섰으나 의견의 일치를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어른의 증거로 누가 제일 나이가 많은가 제각기 나이 많은 자랑을 하기로 했다. 맨 먼저 노루가 나이 자랑을 했다. "이 세상이 처음 생길 때에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들어 박았는데 그 일을 바로 내가 했다." 노루의 이야기는 천지개벽할 때에 그 작업을 제가했다는 것이니 제 나이가 바로 천지개벽만큼 오래됐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다음 여우가 나이 자랑을 했다. "이 세상이 처음 생길 적에 하늘에다 해와 달과 별을 노루가 박았는데 하늘이 너무 높아서 박지 못하고 사다리를 놓고 박았다. 그 사다리를 만든 나무는 3천년이나 자라서 겨우 하늘에 닿을 정도였는데 그 나무는 바로 내가 심었던 것이다." 여우의 이야기는 나무를 심어 3천년 후에 베어서 노루가 사용한 것이니, 노루보다 나이가 3천년 이상 많다는 것이었다. 여우의 이야기를 듣더니 옆에 있던 두꺼비가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여러 짐승들은 이상하게 여기며 왜 우느냐고 물었다. 두꺼비는 울음을 멈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여러 자식과 수많은 손자를 두었으나 운수가 불길해서 다 죽었다. 여러 손자 중 맨 막내 손자가 늘 말하기를, 이 세상이 처음 생길 때에 하늘에다 해와 달과 별을 박았는데 너무 높아서 사다리를 놓고 일을 했다. 그 사다리를 만든 나무를 심은 자가 바로 막내 손자의 친구라고 말했는데 자네들 이야기를 들으니 죽은 막내 손자 놈이 생각나서 그렇다." 두꺼비 이야기는 여우가 막내 손자의 친구라는 것이니, 여우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뻔한 이치라는 것이었다. 두꺼비의 이야기를 듣고 나머지 짐승들은 질려서 더 이상 나이 자랑을 하지 못하고 두꺼비를 할 수 없이 상석에 모셨다는 것이다.
평안도에서 박치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과 함경도에서 물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우연히 외나무다리 위에서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건 처음이지만 전부터 서로 소문을 듣고 서로 잘 알고 있는 처지였다. 팔도에서 평안도 사람들은 머리로 받아치기를 잘 하고, 함경도 사람들은 물기를 잘한다고 하며 언젠가는 한 번 만나서 박치기하는 사람하고 물어뜯기 하는 사람이 누가이기나 시합을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속으로, '너 참 잘 만났다.'고 생각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으니 서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뒤로 되돌아가서 길을 비켜주어야 했다. 그러나 서로 상대가 상대인 만큼 순순히 비켜 줄 리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비키라고 버티었다. 그러나 아무도 비키지 않았다. 서로 으르렁대며 노려보다가 정 그러면 힘으로 대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몸을 겨누어 상대방의 빈틈을 노리며 살기가 등등했다. 이윽고 평안도 박치기가 후다닥 뛰더니 함경도 물어뜯기를 날쌔게 받아 넘겼다. 그 순간 두 사람은 모두 외나무 다리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평안도 박치기는 그것 보라는 듯이 의기 양양하게 일어나면서 "네가 졌지." 했다. 함경도 물어뜯기는 땅에서 일어나면서 입에서 핏덩이 같은 것을 탁 뱉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가 박치기는 했지만 네 코가 붙어 있나 보아라." 했다. 평안도 박치기는 손으로 코를 찾았으나 정말 코가 없다. 크나큰 절구통처럼 푹 파여 있었다. 받는 순간 어느 사이에 코가 물어 뜯겨 달아난 것이다. 이래서 두 사람은 결국 비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옛날 어진 임금님이 한 분 계셨다. 하루는 임금님께서 많은 나인들 중에서 어느 나인이 가장 슬기로운가 시험을 하기로 했다. 임금은 나인들을 모두 부러 한 자리에 모이게 하셨다. 임금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꽃이 무슨 꽃이냐?" 고 물으셨다. 나인들은 서로, "연꽃입니다." "모란꽃입니다." "백합꽃입니다." "매화꽃입니다." "함박꽃입니다." 하면서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모두 상감께 아뢰었다. 그러나 임금님은 고개를 옆으로 흔드시며 아니라고 부정만 했다. 이때에 맨 뒤에 있던 한 나인인 앞으로 나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꽃은 목화꽃입니다." 하고 말했다. 임금님은 그때서야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끄덕하시면서 "네 말이 옳도다.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꽃이라 하였으니 목화를 심어 부유하게 되면 이 나라 또한 살찌게 되니 그 이상 좋은 꽃이 없느니라." 하셨다. 임금님은 두 번째 문제로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무슨 고개냐고 물으셨다. 나인들은, "대관령 고갭니다." "문경 새재입니다." "추풍령 고개입니다." "용문산 고개입니다." 하며 제각기 높은 고개를 모조리 아뢰었다. 그러나 임금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이 때에 아까 '목화꽃'이라고 아뢰었던 나인이 다시 일어나서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는 보릿고개이옵니다." 하며 겸손히 아뢰었다. 임금님은 또 그 때서야 무릎을 탁 치시며 "과연 짐이 바라던 지혜로운 자이로고." 하시며 많은 나인들 중에서 슬기로운 나인을 뽑은 기쁨에 넘쳤다. 그리고 그 나인을 우두머리 나인으로 임명하고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나인과 의논해서 백성들을 잘 다스렸다고 한다.(경기 여주)
옛날 경상도 어느 산골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영감이 있었다. 남에게 물건을 빌려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아무리 궁한 사람이 돈이나 곡식을 꾸어 달래도 응하는 일이 없었다. 인가 친척 중에서 누가 굶어 죽게 되어도 돌보는 일이 없었다. 그뿐 아니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지나가는 생선 장수를 불러들여 팔을 걷어붙이고, "이 놈이 큰가, 저 놈이 큰가?" 하면서 한참 동안 여러 생선을 주물럭거리다가 양 손바닥에 비늘을 흠씬 묻힌 후에 안 사겠다고 장수를 되돌려 보낸다. 인색한 영감은 장수가 돌아가면 얼른 안으로 들어가서 며느리한테, "애야, 큰 그릇에 물을 떠 오너라." 하고 그 물에 생선 비늘과 생선 냄새가 묻은 손을 말끔히 씻어내고는, "이걸로 오늘 저녁 국을 끓이도록 해라." 고 하는 것이었다. 가끔 육고간에 가서도 고기를 만지작거리다가는 집에 돌아와서 손을 씻고 그 물로 국을 끓이게 하여서 식구들에게 먹이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노랭이 영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노랭이 영감이 어느 날 뒤뜰을 거닐다가 햇볕을 쬐기 위해 뚜껑을 열어 놓은 된장 항아리 속을 무심코 들여다보니 큰 쇠파리 한 마리가 된장을 빨아먹고 있었다. 영감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쇠파리가 된장 도둑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노랭이 영감은 두 손으로 쇠파리를 잡으려고 했으나 쇠파리는 날쌔게 날아가 버렸다. 영감은 쇠파리를 쫓기 시작했다. 쇠파리는 다른 장독에 앉았다가 영감이 쫓아오면서 다시 담장 위에 날아가 앉았다가 바깥마당으로 달아났다. 영감은 눈이 시퍼렇게 되어 쇠파리를 계속 쫓았다. 쇠파리는 밭으로 날아갔다. 영감도 질세라, 밭으로 쫓아갔다. 다시 논으로 날아갔다. 영감도 쫓아갔다. 쇠파리는 재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붙잡히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날아갔다. 영감은 논이고 밭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을 붉으락 누르락거리며 줄곧 쫓아갔다. 쇠파리는 삼십 리를 날아갔으나 악착스런 영감보다 먼저 지쳐 버렸다. 마침내 가엾은 쇠파리는 영감 손에 잡히고 말았다. 노랭이 영감은 두 손가락으로 쇠파리 날개를 쥐더니 쇠파리 다리와 궁둥이에 묻은 된장을 입으로 쪽쪽 빨고는 집어 던졌다. 그제야 영감의 직성이 풀렸던 것이다. 이렇게 인색한 영감이 하루는 시장에 가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자반 고등어 한 마리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식구들은, "이게 웬일인가?" 하며 깜짝 놀랐다. 노랭이 영감도 이제는 마음이 변해서 찬거리를 사온 것이 아닌가 하면서 식구들은 내심 기뻐했다. 영감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아무 말도 않고 그 자반 고등어를 천장에다 높이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식구들을 모아 놓고 하는 말이, "오늘부터 자반 고등어를 먹게 되었다. 그러니 밥 한 술을 떠먹고 자반 고등어를 한 번씩만 쳐다보아라." 고 일렀다. 식구들은 자반 고등어가 먹을 것이 아니라 겨우 구경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실망했다. 그러나 자반 고등어를 구경만이라도 하게 되었으니 전날에 비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상이 들어왔다. 식기에 반밖에 차지 않은 꽁보리밥에 찬이라고는 상 복판의 뚝배기에 왕소금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식구들은 밥 한 숟갈을 뜨고 손으로 왕소금을 집어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천장에 달아놓은 자반 고등어를 한 번 쳐다보고 찬으로 대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식구들은 고개가 아플 정도로 천장을 부지런히 쳐다보아야 했다. 천장의 자반을 보니 침이 자구 꿀꺽 꿀꺽 넘어가고 식욕은 더 생겼다. "저 자반 고등어를 정말로 한 점만 먹어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생각하니 더욱 구미가 당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른의 명령이니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어린 막내 손자 놈은 자반 고등어가 너무나 먹고 싶어서 밥 한 술 뜨고 두 번 천장을 쳐다보았다. 이 꼴을 본 영감은 손자놈 등을 탁 치면서, "두 번씩이나 쳐다보면 헤퍼서 장차 어떻게 살림하느냐." 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 영감네 집에 가면 아직도 그 자반 고등어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데, 그을고 쫄아들고 파리들이 똥을 싸서 까맣게 되어 지금은 자반 고등어인지 썩은 나무토막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개성 사람들과 수원 사람은 규모 있고 인색하기로 이름이 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성 사람들이 대체로 치부를 잘할 뿐 아니라 여자들도 살림을 알뜰히 잘하며 낭비를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개성 여자와 혼인하면 "살림은 틀림없겠군." "업이 들어왔다." 라고들 해 왔다. 수원 사람 역시 살림에 빈틈이 없다고 전한다. 따지기를 잘하고 경우를 엄격히 밝히며 절약에 있어서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으려 든다는 거다. 옛날에 우연히 개성 사람과 수원 사람이 함께 길을 가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가는데 짚신이 닳을까 봐서 둘 다 맨발을 한 채 짚신은 허리에 차고 길을 걸어갔다. 한참 동안 길을 가는데 앞에서 이름 있는 가문의 규수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체면상 짚신을 신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은 짚신을 신었다. 개성 사람은 짚신을 신고 몇 발짝 걸어가다 일행이 지나가 버리자 곧 짚신을 벗어 먼지를 털고 얼마나 닳았나 살펴보더니 다시 허리에 찼다. 수원 사람은 길옆에 멈춰 선 채 짚신을 신더니 다시 벗어 먼지를 털고 허리에 찼다. 이래서 개성 사람보다 수원 사람을 더 인색하게 여겨왔다고 전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집이 몹시 가난해서 근심 걱정 속에 살아가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한 번은 이 사나이가 길을 가는데 길가의 관상쟁이가 관상을 보아준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참 훑어 본 후에 새를 그물로 잡아 새 장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할 것은 그 새들은 전부 송곳으로 눈이나 배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활을 만들어 등에 메고 서울 장안을 돌아다니며 "새 사려!"를 외치라는 것이었다. 마치 그물이 아니라 활을 쏘아 새를 잡은 것처럼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좋은 수가 틀림없이 생겨 팔자를 고친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관상쟁이가 시킨 대로 해 가지고 서울로 와서 새를 팔러 다녔다. 그러나 별로 팔리자가 않았다. 그래 그만 둘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팔자 고친다는 관상쟁이의 말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어 그냥 계속 "새 사려!"를 외치고 다녔다. 하루는 큰 기와집 앞에 당도했다. 그러자 집주인이 불쑥 나타나서 이 새들은 손수 활로 잡은 거냐고 물었다. 이 남자는 관상쟁이가 시켰던 대로 등에 진 활로 잡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감탄하며 그렇게 정말 활을 잘 쏘느냐고 물었다. 이 사나이는 그렇게 잘은 못 쏘지만 맞추기는 제법 잘한다고 했다. 그러자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소원 하나 들어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집으로 새 장수도 따라 들어갔다. 저녁을 잘 얻어 먹은 후 주인이 사정 이야기를 했다. 그에게는 무남 독녀가 있는데 매일 밤 자정만 되면 큰 새가 지붕에 앉아 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큰 새가 세 번만 울면 이 집 무남 독녀가 까무러치고 만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제발 그 새를 활로 쏘아 잡아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인즉 활은 조금도 못 쏘는 자신이지만 이왕 내디딘 걸음이나 해보자고 꾀를 한 가지 짜내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그는 벌거벗고 지붕에 올라가서 반듯이 누워 손을 벌리고 있었다. 조금 후, 과연 큰 새가 날아와 그의 바른손에 앉았다. 그리고는 북쪽을 향해 크게 두 번 울고 세 번째 울려고 했다. 그 순간, 그는 힘껏 그 새를 잡아 낚았다. 그래서는 화살을 잡은 새의 눈알에 찔러 두고 내려와 잠을 잤다. 다음 날 주인이 일어나 지붕을 쳐다보니 큰 새가 한 마리 눈에 화살이 꽂힌 채 나자빠져 있지 않은가. 그 주인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으며, 그 사나이에게 많은 돈을 주었다. 그래서 그 사나이는 그 후 잘 살게 되었다고 한다.(경북 금릉)
어느 시골에 예쁘기로 소문난 처녀가 있었는데 갑자기 부모를 잃고 혼자 살게 되었다. 인물 좋고 솜씨 좋은 처녀였으므로 자연 여러 곳에서 청혼이 들어왔으나 그 처녀는 부모의 삼 년상이 끝날 때까지는 시집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거절했다. 아름다운 처녀가 혼자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씨 고약한 장부 한 사람이 자기가 한번 그녀를 꾀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나이는 그녀를 찾아가서 온갖 선심을 다 써가면서 꾀어 봤으나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화가 난 사나이는 위협까지 했으나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후 수단으로 밤중에 찾아가서 강제라도 제 아내를 삼아 보겠다고 결심했다. 사나이의 속셈을 미리 알아챈 처녀도 궁리 끝에 한 꾀를 생각해 냈다. 큰 게를 몽둥이에 넣고 부엌 아궁이에는 밤을 묻어 놓았다. 그리고 다시 뜰에는 개똥을 잔득 주어다 놓고 대들보에는 절구통을 달아 매 두었다. 마당엔 멍석을 펴두고, 그 옆엔 지게를 놓아두었다. 드디어 밤이 되었다. 비치던 달빛마저 구름에 가리우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사나이는 사립문을 살그머니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방문을 열려고 했으나 처녀는 문고리를 잠그고 열지를 않는 다 장부는 완력을 써서 문고리를 빼고 방으로 들어갔다. 처녀도 이제는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사나이는 그녀의 몸을 덮치려 했다.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사정을 했다. "당신이 내 얼굴이 고운데 반해서라면 불을 밝히고 내 얼굴을 보아야 할 것이 아니예요." 라고 속삭였다. 사나이는 과연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성냥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미녀는 성냥은 없고 부엌 아궁이에 불씨는 있다고 말했다. 사나이는 불을 밝히기 위해서 아궁이로 가서 불씨를 뒤적이며 입으로는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 순간 잿속에 묻어 두었던 밤알이 익어서 탁! 하고 튀는 바람에 사나이의 눈은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그리고 온통 잿가루로 뒤범벅이 되었다. 장부는 갑작스런 일에 놀랐을 뿐 아니라 눈이 멀었고 얼굴이 화끈거려 견딜 수 없었다. 사나이는 어둠 속에서 물동이를 찾았다. 찬물로 씻으면 뜨거운 기운이 없어질 것 같아서 두 손으로 부뚜막을 더듬자 물동이가 손에 닿았다. 그래서 물을 푸려고 손을 넣는 순간 게란 놈이 손가락을 꽉 물었다. "어이쿠!" 하며 견딜 수 없는 아픔에 펄쩍 뛰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나이는 아차 속았다는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서 그녀를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나이는 부엌에서 나왔다. 화도 나고 급하기도 해서 빨리 발을 내딛다가 그만 개똥을 밟아 미끄러졌다. 엉덩방아를 찧어 아프기도 하거니와 냄새도 고약해서 더욱 화가 치솟았다. 사나이는 벌떡 일어나 마루로 올라섰다. 그 순간 대들보에 달아매었던 절구통에 이마를 부딪치면서 무거운 절구통이 아래로 떨어졌다. 사나이는 마당으로 뒹굴어 떨어지면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이 때에 마당에 펴졌던 멍석은 사나이를 똘똘 말고 지게는 그 멍석을 지고 저절로 가더니 개울 낭떠러지에 장부를 내던져 버렸다. 이렇게 해서 그 아름다운 처녀는 화를 면하고 부모의 삼 년상이 끝난 다음 양반집 도련님에게 시집가서 아들 딸 많이 낳고 잘 살았다고 한다.
옛날 옛적 어느 곳에 젊은 내외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웃집에서 제사떡을 가지고 왔다. 젊은 내외는 떡을 맛있게 먹었다. 순식간에 떡은 없어지고 마지막 하나가 남았다. 이 젊은 내외는 누구든지 먼저 말을 하는 사람은 이 떡을 먹지 못한다는 내기를 했다. 젊은 내외는 입을 다물고 내기로 들어갔다. 말을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나 서로 꾹 참았다. 이 때에 도둑이 이 집에 들어왔다. 도둑이 두 사람을 보니 벙어리 같았다. 도둑은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젊은 내외는 마지막 남은 하나의 떡을 먹기 위해서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 도둑은 방안에 있는 물건을 모두 싸 가지고는 젊은 아내마저 업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화가 나서, "이 무정한 양반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말 안 하기요?" 하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남편은 어느 사이에 떡을 입에다 넣으며, "이젠 이 떡은 내 것이다." 라고 비로소 말을 했다고 한다.
옛날에 뽕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참나무가 이웃에서 함께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뽕나무가 "뽕!" 하고 방귀를 뀌니까 대나무가, "댁끼놈!" 하고 야단을 쳤다. 그러자 참나무가 있다가, "참아라, 참아라!" 하더란다.(경남 진주)
옛날에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고개를 넘어 가는데 꼬부랑 동이 마려워서 꼬부랑 나무에 올라가 꼬부랑 똥을 누는데 꼬부랑 개가 와서 꼬부랑 똥을 먹드래. 그래서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지팡이로 꼬부랑 개를 탁 때리니까, "꼬부랑 깽, 꼬불아 깽, 꼬부랑 깽" 하며 도망치더래. 재밌지?(충북 영동)
옛날 어느 시골 장날이었다. 장에 왔다가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 갈 수 없는 방귀 장이는 할 수 없이 주막에 들게 되었다. 너무 피곤해서 밥을 먹자마자 잠이 들어 버렸는데 연달아 방귀를 뀌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방귀소리는 "누구냐!" 하는 소리로 일관되었다. "누구냐, 누구냐..." 하며 한없이 시끄럽게 방귀를 뀌었다. 그 소리에 잠이 깬 한 손님이 참다 못하여 벌떡 일어나 팽이처럼 생긴 마개를 만들어 방귀쟁이의 항문을 단단히 막아 놓았다. 그런데 마침 주막에 도둑이 들어와서 장독 뒤에 숨어 쌀을 한 짐 지고서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었다. 그 찰나 갑자기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구냐!" 하는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도둑은 지게도 쌀도 다 내버리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을 가고 말았다고 한다.
어느 방귀 잘 뀌는 처녀가 시집을 간 첫날밤에 방귀를 뽕뽕 하고 뀌니까 남편이 방귀를 잘 뀐다고 내쫓았는데 첫날밤에 아기를 가져서 열 달 후에 아들을 낳았대. 그 아이가 열 살쯤 되어 글방에 다니는데, '저 놈은 아비 없는 후레자식.'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어머니, 나는 왜 아버지가 없어요?" 하고 물었었더래. 그랬더니 그 어머니는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 주었대. 다음날 그 소년은 어머니한테 호박씨를 달래 가지고 동네마다 돌아다니면서, "방귀 안 뀌는 사람이 심으면 하루에 두 지게씩 따는 호박씨 사려!" 를 외쳤더래. 그러자 사람들은 , "방귀 안 뀌는 사람이 어딨어?" 하고들 했대. 그 소년은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한테, "어머니, 아버지가 어느 동네에 살고 계시나요?" 하고 여쭈었대. 어머니는 어디에서 아버지가 새 마누라를 얻어 산다고 일러 주자, 소년은 그 이튿날 당장 그 집을 찾아가서, "방귀 안 뀌는 사람이 심으면 하루 두 지게씩 따는 호박씨 사려!" 를 외쳤더래. 그랬더니 한 남자가 나와서, "세상 천지에 방귀 안 뀌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고 물었더래. 그러자 그 소년은, "그러면 왜 우리 어머니는 첫날밤에 방귀를 뀌었다고 내쫓았어요?" 하니까, 아무 소리 못 하고 사나이는 그 본부인과 아들을 데려다 잘 살다 죽었대.(경기도 화성)
옛날, 어느 고을에 사는 농사꾼의 막내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예쁘게는 생겼지만 방귀를 잘 뀌었다. 시집 갈 나이가 되어 그 건너 마을에 사는 이 참봉의 큰며느리로 시집을 갔다. 그 며느리가 삼 년간 시부모를 잘 섬기고 남편 봉양을 잘 하므로 그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해 이 참봉도 퍽 만족해했다. 그런데 이 참봉이 하루는 큰며느리의 안색을 보더니, "얘 새아가, 어째 그리 안색이 나쁘냐? 마땅찮은 것이나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면 말을 하고, 어디가 아프면 약을 지어먹도록 해라." 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아버님, 그런 것이 아니올시다. 사실은 제가 방귀를 참으니까 안색이 이런가 봐요."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웬 방귀를 못 뀌어서 안색이 나쁘다는 말이냐? 방귀는 염려 말고 퉁퉁 뀌도록 해라. 어디 얼굴 색이 쓰겠느냐?" 하고 시아버지가 말했다. 그랬더니 시아버지가 말도 끝내기도 전에, "그럼, 방귀를 지금부터 뀌렵니다. 아버님은 큰 방 문을 잡으시고, 어머님은 대청 문을 잡으시고, 시누 님은 부엌문을 잡으세요 그리고 또 서방님은 작은 방 문을 잡으시고, 머슴은 대문을 잡아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더니 대청 가운데 서서 방귀를 뀌기 시작하자 시아버지는 큰 방문을 잡고 들락날락, 시어머니는 대청 문을 잡고 들락날락, 부엌에서 시누이가 들락날락, 서방님은 작은 방에서 들락날락, 머슴은 대문을 들락날락했다. 시아버지가 견디다 못해, "새아가, 그만 뀌어라." 하자 모두 그만 뀌라는 소리와 들락날락 하는 소리가 합쳐서 집안에 소동이 일어났다. 그래도 며느리는 삼 년 동안 참았던 방귀를 전부 뀐다고 소리치며 계속 방귀를 뀌다가 한참 만에야 겨우 그쳤다. 여기저기서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며느리를 데리고 있다가 큰일 나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친정에 보내기로 했다. 며느리를 가마에 태워 앞세우고, 이 참봉은 뒤를 따라 가다가 배나무 뒤에서 쉬게 되었다. 그런데 그 옆에 나뭇짐을 진 장사꾼이 와서 쉬고 있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이 나무에 달린 배는 만병 통치의 약 배인데 이 나무가 어찌나 높든지 작대기가 안 닿고 사람이 올라가자니 너무 커서 손에 잡히는 게 없으니 못 올라가지. 그러니 배는 겨울이 되면 나무에 달린 채 썩어 버린단 말야. 그리고 지금 임금님께서 앓아 누워 계시는데 이 배 세 개만 잡수시면 나을 것이야." 라는 애기를 했다. 이 말을 가마 안에서 며느리가 듣고 시아버지 앞에 나가서 공손히 "아버님, 제가 배를 다 보겠습니다." 하자 나뭇짐을 진 장사는 젊은 부인이 무슨 수로 그 배를 따느냐고 비웃었다. 그러나 며느리는, "아버님, 저만큼 비켜나십시오." 하고 가마꾼들에게도 가마를 옮기라고 했다. 그리고는 치마를 걷어 젖히고 엉덩이를 배나무에 대고 방귀를 뀌자 어디서 난데없는 우박이 떨어지는 것처럼 배가 우르르 떨어졌다. 이 참봉은 좋아서 손뼉을 치면서, "방귀도 복방귀다. 복방귀다." 하고 그 약 배를 주워서 임금님께 바쳤으며 며느리도 그 약 배를 먹고 방귀 뀌는 것도 고치게 되었다. 그 뒤로 온 식구가 화평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전남 무안)
옛날 한때 팔도에서 방귀 잘 뀌는 사람으로 경상도 방귀쟁이와 전라도 방귀쟁이가 이름나 있었다. 어느 날 전라도 방귀쟁이는 이왕이면 팔도에서 제일 가는 방귀쟁이가 되려고 경상도가지 월정 시합을 나섰다. 먼길을 걷고 걸어서 경상도 방귀쟁이네 집을 찾아가 보니, 주인은 마침 장에 가고 없었다. 전라도 방귀쟁이가 보니 경상도 방귀쟁이네 집은 초가집 오막살이였다. 언뜻 생각에 방귀를 세게 뀌는 놈이라면 이러한 집이 지탱할 수 없을 것인데, 집이 초라한 것으로 미루어 대단한 놈도 아닌데 공연히 먼길을 와서 싱겁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연습 삼아 방귀를 한방 뀌었더니 경상도 방귀쟁이의 초가집이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 입을 통해서 사연을 알아차린 경상도 방귀쟁이는 매우 화가 났다. 보복을 하기로 결심한 경상도 방귀 잡이는 마을에서 제일 크고 무거운 절구통을 가져다 궁둥이에 데고 서쪽 전라도를 향해 한방 크게 뀌니 그 육중한 돌 절구통은 하늘 높이 솟아 지리산 꼭대기를 넣어 전라도 쪽으로 날아갔다. 전라도 방귀쟁이는 이제는 제가 전국에서 제일 가는 방귀쟁이라는 기쁨에서 득의 만만하여 집으로 돌아와 막 담배를 한 대 피우려고 하는데 경상도 쪽 하늘에서 돌 절구통이 날아와 이마 위에 떨어지려 하였다. 순간 재빨리 돌아선 전라도 방귀쟁이는 동쪽 하늘을 향해서 방귀를 한 방 뀌니 날아오던 절구통은 방향을 바꿔 경상도 쪽을 향해서 지리산을 넘어 되날아 갔다. 경상도 방귀쟁이는 그녀석이 필경은 돌 절구통에 얻어맞을 것으로 믿고 통쾌하게 여기고 있는데 서쪽 하늘에서 무엇인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이 날려보낸 돌 절구통이 되날아 오는 것이었다. 화가 난 경상도 방귀쟁이는 돌아서서 또 한 방 뀌었다. 그랬더니 돌 절구통은 다시 지리산을 아득히 넘어 전라도 쪽으로 되날아갔다. 이렇게 해서 돌 절구통은 방귀의 힘으로 지리산을 넘어 전라도와 경상도를 몇 번 왕래했다. 그러나 두 방귀쟁이는 서로 지지 않으려고 힘써 방귀를 번갈아 뀌니 돌 절구통은 하늘 높이 떠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발발 떨다가 석 달 열흘만에 지상에 떨어지더라고 한다. 이 방귀 시합은 결국 승부가 나지 않고 무승부로써 두 사람이 팔도의 방귀 대장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 어느 깊은 산골에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형은 욕심이 많아 부모가 준 재산을 혼자만 가졌다. 그래서 동생은 나무 장사로 그날, 그날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았다. 하루는 동생이 나무를 하는데 나무 위에서 큰 왕벌 한 놈이 머리를 툭 쐈다. 화가 난 동생은 지게 작대기로 그놈을 때리려고 했다. 그랬더니 그놈은 숲 속으로 막 도망을 치더니 커다란 느티나무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동생은 씩씩거리며 쫓아가 작대기로 구멍을 쑤시니 작대기에 꿀이 묻어 나왔다. 그래서 나무하는 일을 젖혀놓고 허리띠를 늦춰가며 꿀을 아주 실컷 먹었다. 서산으로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둑어둑해지자 꿀로 배를 채운 동생은 빈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왜 그렇게 방귀가 나오는지 몰랐다. 밥을 먹다 방귀를 뀌니 밥이 꿀처럼 달았다. 온 식구들이 밥이 꿀처럼 달고 맛있다고 했다. 이 소문이 차차 이웃으로 퍼져서 동생은 다니며 방귀 장사를 하기로 하였다. 나중에는 장터에 가서도 팔고 어떤 때는 잔치집에서나, 떡집, 음식점에서 떡과 음식을 달게 하기 위해 사방에서 동생을 불렀다. 그러는 동안 동생은 형보다 더 부자가 되었다. 어느 날 시기에 가득찬 형이 부자가 된 연유를 묻기에 동생은 자초지종을 애기를 했다. 그랬더니 형은 사방 산천에서 꿀을 구하다 못해 콩이라도 먹고 방귀를 뀌겠다고 생콜을 한 말이나 갈아 먹었다. 하루는 형이 자기도 동생처럼 음식을 달게 할 수 있다고 선전하며 장터에 나갔다가 음식을 달게 해 달라는 어떤 잔치집 주인의 부탁을 받고 잔치집으로 갔다. 형은 자신만만하게 떡 반죽 위에다 방귀를 뀌려고 힘을 주니 쏴하고 똥물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그래서 몽둥이로 천치 숙맥이 되도록 때려서 내쫓았다고 한다.(충북 청주)
옛날 서울 어느 대감 집에 절세 미인의 딸이 하나 있었다. 이 대감은 마땅한 사위를 고르기 위해 여러 가지로 생각한 나머지 서울 장안에 방을 붙였다. '사위를 고르려고 하는데 열두 대문을 다 통과하는 사람을 사위로 삼되 만약 중간에서 낙방되는 사람은 엄벌에 처한다.' 고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구름같이 밀려들었으나 몇 달이 지나도록 사윗감이 나타나질 않았다. 하루는 거지 형제가, "이러나, 저러나 빌어먹긴 마찬가진데 한 번 가 보자." 고 했다. 밥은 빌어먹어도 인물은 출중한지 아슬하게 열두 대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규수에게 승낙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처음 형님이 먼저 들어갔는데 아주 어둑한 방에 사람이 하나 쑥 들어왔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괴상한 소리로 웃는데 자세히 보니 여자였다. 방에 앉아서 한참 바느질을 하더니 별안간 옷장을 썩 열었다. 그리고 아총에서 금방 갖고 온 것 같은 아기 송장을 꺼내서 입에 피를 흘리며 먹었다. 이를 본 형은 기절을 하고 말았다. 다음에 동생의 차례였다. 형의 이야기를 들은 동생은 비수를 품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형의 말대로 그 짓을 하는 걸 칼을 들이대고, "사람이냐, 귀신이냐?" 하고 덤볐다. 그랬더니 여자는 막 웃었다. 그러더니 이제야 담대한 사람을 만났으니 내 배필로 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아총에서 나온 것은 찹쌀떡 속에 꿀을 넣어 피같이 보이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동생은 대감의 사위가 되어 오래도록 잘 살았다고 한다.
옛날에 한 사나이가 살고 있었는데 자기 아버지는 대감 댁의 서사(書士)였다. 그러나 서사의 아들은 나이가 서른이 다 되었어도 총각이었다. 또한 그 대감 댁에서는 대단히 예쁜 딸이 있었다. 하루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장가를 가야겠으니 대감 댁 딸과 혼인시켜 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처음엔 이 말을 듣고 야단을 쳤으나 나중엔 정 그렇다면 말이나 해 보자고 했다. 아버지가 대감 댁에 다녀오더니 당신 아들과 같은 그런 병신과 누가 결혼하겠느냐고, 야단만 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를 대감 댁에 다시 보냈다. 어머니도 같은 소리만 듣고 되돌아왔다. 그러나 화가 난 아들은 참나무 몽둥이를 가지고 옷을 다 벗은 채 대감으로 뛰어가서 어디 내가 병신이냐고 호통을 쳤다. 때마침 밖으로 나온 딸이 하는 말이, "이 사람에게로 시집을 가겠다." 고 하니, 대감은 의아스럽게 짝이 없었으나 딸의 소원대로 허락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감이 허락하여 즉시 혼인날을 정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혼삿날이 닥쳐오고 있었다. 그러나 돈이 없어 또 한 꾀를 내었다. 대감의 딸을 데려다가 벽장에 숨기고는 대감에게 가서 딸을 좀 보고 가겠다고 했다. 딸이 없다고 하자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내려고 그런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대감은 겁이 나서 제발 용서를 해달라고 빌었다. 그래도 방 한가운데 누워서 이미 나는 이 집 귀신이 되었으니 다시 장가갈 수도 없고.... 대감 댁 재산이나 반정도 물려주면 그대로 물러가겠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재산의 반을 물려받아 성대히 혼례를 치른 후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고 한다.(경기 파주)
옛날 어떤 사람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잠깐 쉬는 틈에 잠이 들었는데 곤히 잠을 자는 도중에 하늘에서 큰 용이 내려오더니 자기 도포 속에 머리를 묻고 있어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얼마나 많이 잠을 잤던지 캄캄한 밤중이었다. 부랴부랴 집으로 오는데 날이 몹시도 어두운지라 더듬거리며 걸었다. 갈 길은 멀고 캄캄한 밤중이라 더 갈 생각을 못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불빛이 있다. 주인을 찾으니 색시가 나왔다. 그는 지나는 나그네인데 하루 저녁만 재워 달라고 하였다. 방이 하나뿐이므로 할 수 없이 색시와 함께 자다가 눈이 부셔 일어나 보니 한낮인데 자기는 어느 굴 속에서 자고 있었다. 놀라 질 겁을 하며 일어나 터덜거리며 집으로 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일 년쯤이 되었다. 한 여자가 갓난애를 안고 와서 이 애는 당신의 애이니 잘 기르라고 하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어린애가 바로 '강감찬'이라고 하는데 지리에 그렇게 능통하였다. 이 무렵 경주 고을 사람들이 어떻게 말을 안 듣던지 강감찬을 원님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개구리가 어떻게 우는지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강감찬은 생각하다가 이 고을에서 제일 헤엄 잘 치는 사람을 불러오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못 속에 들어가 제일 큰 개구리를 잡아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강감찬은 개구리에게 호령을 한바탕 한 다음 개구리에게 먹칠을 하고 부적을 붙여 도로 못 속에 넣어 버렸다. 이것을 본 고을 사람들은 이상한 원님도 다 있다고 웃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부터는 아무리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으려 해도 개구리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 때부터 그 꾀 많은 원님에게 꼼짝도 못하였다고 전한다.(서울)
옛날 어느 마을에 심 봉사와 절름발이 김 선달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아주 다정한 사이로 어디를 가든지 함께 다녔다. 심 봉사는 원래 재주가 많아서 사람들의 가까운 장래쯤은 영락없이 알아맞히는 제법 똑똑한 봉사였다. 어느 날 심 봉사는 김 선달을 업고 길을 인도 받으며 어슬렁어슬렁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날은 어두워져 갈 길은 멀고, 동전 한 푼 벌지 못해 기진 맥진하여 길가에 앉아 있었다. 이 때 심 봉사가 무릎을 탁 치며 김 선달을 보고 염려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돌을 하나 집어 달라고 했다. 심 봉사가 돌을 집어 던졌는데 수풀에 떨어졌을 뿐 새는 유유히 날았다. 그러자 심 봉사는 오늘은 임석조의 집을 찾아 가 쉬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절름발이를 들쳐 없고 어둔 밤을 한참 헤매어서 겨우 임씨 집을 찾았다. 임씨 집은 그 동리에서 제일 크고 꽤 잘 살아 보였다. 주인을 찾으니 친절히 맞아 주며 후하게 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자신의 장기를 나타낸 심 봉사는 이곳에 있다가는 살인죄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은 놀라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자기의 잘못이라곤 이웃 마을에 사는 이 서방 마누라와 좋게 지낸 것밖에 없었고 이 서방은 가난하고 무식한지라 감히 말도 못하였다. 이걸 생각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주인은 봉사를 붙잡고 애원을 하니 봉사는 집의 안방 병풍 되에 괴한이 있으니 머슴을 불러 쳐죽이라고 하였다. 만약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과연 심 봉사의 말대로 병풍 뒤에는 괴한이 비수를 품고 숨어 있었으며, 이를 처치한 다음 심 봉사를 은인이라 하여 재산을 반이나 갈라 주었다. 심 봉사는 그걸로 김 선달과 사이좋게 살다 죽었다 한다.(서울)
옛날에 장님 한 사람이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나무 그늘에 앉아서 자기가 앞으로 살아 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 때 옹기 장수가 옹기짐을 지고 가면서 살펴보니 장님이 중얼중얼하고 앉았는 것이 이상하여 옹기 짐을 내려 놓고 장님 옆에 앉아서 장님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엿듣고 있었다. "달걀을 하나 사서 이 알을 이웃집 닭장 병아리 까는 데 넣었다가 암평아리 같으면 길러야겠다. 그래 다시 알을 내서 알을 또 병아리로 부화하고 그 병아리를 길러 알을 낳으면 또 알도 팔고 닭도 팔고 해서, 그 돈으로 송아지를 사고 또 송아질 낳고, 소가 여러 필되면 그것도 팔아서 집을 짓고, 나중에 부자가 되면 장가를 들겠다. 그래서 더욱 부자가 되면 첩을 얻고 첩을 얻으면 큰마누라하고 자연 싸우게 될 것이란 말이야. 만일 그렇게 싸우기만 한다면 작대기로 이 년들! 하고 때려 줘야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장님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후려갈기니 바로 옹기짐이 맞아서 옹기 그릇이 박살이 났겠다. 옹기 장수는, "남의 옹기 짐을 쳤으니 물어내시오." 하며 막 야단을 치고 장님은 장님대로, "앞 못 보는 장님 앞에 갖다 놓고, 더군다나 인기척도 없이 갖다 놓고 무엇을 물어 달라느냐. 내가 일부러 옹기 짐을 때린 것이 아니요, 나 살아나갈 궁리를 하다가 그랬는데 물어주지 못하겠다." 고 했다. 옹기장수와 장님은 서로 물어내라 거니, 못 물어내겠다 거니 하며 싸움을 했다. 지나가던 행인이 옹기 장수와 장님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무엇 때문에 싸움을 하느냐고 가서 물어 보았다.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들어 본 행인은, "이분은 앞 못 보는 장님이요, 또 장님도 모르게 옹기 짐을 내려놓고 당신은 남의 살림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었지 않았소. 장님은 자기 살림 이야기를 하다가 그렇게 때린 것이지 당신의 옹기 짐을 부수려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지 않소. 분명 당신이 잘못 했으니 물어달라고 할 수 없지 않소. 어서 갈 길이나 가시오." 하고 행인이 싸움을 판결해 주었다 한다.(경기 파주)
옛날 어느 마을에서 일꾼들 서넛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아랫목에 앉은 호물때기(합죽이) 영감이 "장이야."를 부르니까 윗목에 앉은 뚱뚱보 영감은 그만 풀이 죽어 어리벙벙하고 있었다 이 때에 옆에 앉은 훈수꾼이 "예끼, 이 사람. 그것도 못 받아?" 하며 손으로 툭 친다는 것이 뚱뚱보 노인이 물고 있는 장죽 담뱃대를 쳐서 목에 찔려 즉석에서 죽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큰 일이 났다. 훈수하던 영감은 살인을 하였으니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집으로 도망쳐 왔다. 사랑방에서 아들 셋을 불러 놓고 근심 걱정에 싸여 있을 때 대문을 요란하게 밀어젖히고 들어오는 세 젊은이가 있었다. 죽은 뚱뚱보 영감의 아들들이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살기가 등등해서 뜰 안으로 들어왔다. 세 젊은이는, "살인자! 아버지의 원수! 빨리 나오라고 해." 고함을 치며 야단이었다. 훈수꾼 영감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이 때 훈수꾼 영감의 막내둥이 아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어서들 오십시오. 대체 무슨 일들이오." 하고 점잖게 물었다. "우리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터이니 빨리 너의 애비를 내놓아라." 고 고함쳤다. 막내둥이는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조용히 다시 말하기를, "좋습니다. 원수를 갚으시오. 당신네 맏형이 원수를 갚으면 우리 맏형이 다시 원수를 갚기 위해서 당신네 맏형을 죽일 것이고, 그러면 당신네 둘째가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우리 맏형을 죽일 것이오. 그러면 우리 둘째형이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당신네 둘째를 죽일 것이고, 당신네 막내는 둘째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우리 둘째형을 죽일 것이 빈다. 그러면 나는 마지막으로 당신네 막내를 죽이게 될 것이오. 그렇게 되면 마지막 살아 남는 것은 나밖에 없구려! 당신 형제들 뜻대로 한번 해보십시오." 막내둥이의 태연스러운 태도에는 날뛰던 3형제도 아무 말 없이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침착하고 재치가 있으면 어려운 고비도 잘 넘기며 살수가 있다고 한다.
옛날 어느 곳에 한 과부가 살았으니 아들이 7형제나 되었다. 아들들은 매우 효심이 두터워서 어머니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가 따뜻한 방에서 거처하도록 산에 가서 나무를 해 다가 방에 불을 지폈다. 그러나 어머니는 늘 춥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방바닥이 타도록 불을 지펴도 춥다고 말했다. 아들들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밤에 큰아들이 잠에서 깨어나 본즉 어머니가 없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아들 몰래 어머니가 살짝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다음 날 밤에 큰아들은 자는 척 지켰다가 어머니 뒤를 따라 나갔다. 어머니는 건너 마을 신발 장사하는 홀아비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건너 마을에 가려면 개울이 하나 있는데 어머니는 버선을 벗어들고 겨울의 찬 물 속을 걸어 건너는 것이다. 큰아들은 집으로 돌아와 동생들을 데리고 가서 밤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이튿날 새벽 집으로 돌아오던 어머니는 저녁까지도 없었던 다리가 있어 신을 벗지 않고서 개울을 건널 수가 있었으니 매우 고마웠다. 어머니는 하늘을 향해서 빌었다. "이곳에 다리를 놓은 사람 마음씨가 착할 것이니 그 들은 북두칠성이나 남두칠성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늘도 그 뜻을 받아들여 7형제는 나중에 죽어서 북두칠성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에 과거를 보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선비가 있었다. 가난하기 이를 데 없어 그의 아내가 매일 피를 뽑아다 말려서 찧어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피를 뽑아다 멍석에 말려놓고 또다시 피를 뽑으러 나갔는데, 마침 소나기가 내려 피를 말려놓은 멍석의 피가 씻겨 내려갔다. 그런데도 선비는 공부만 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그 꼴을 보고 화를 내면서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 선비는 과거에 합격하여 금의환향하는 것을 우연히 어느 시골에서 본 아내는 울며, 불며 애원을 했지만 선비는 듣지 않았다. 그리고 서속을 쏳아놓은 후 그것을 주워담으면 용서해 준다고 하기에 열심히 주워 담았지만 그 동안 선비는 떠나고 없었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 넘어져 끝내는 죽고 말았는데, 그곳에서 아내는 매미로 변신되어 커다란 미루나무 위에 올라가 매암매암 울었더란다.(경북 영양)
옛날, 옛날 아주 옛날, 이 세상에는 아직 바다도 육지도 없던 때의 이야기이다. 하늘에 사는 하느님이 귀여운 무남 독녀 외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실수를 해서 옥으로 만든 귀중한 반지를 잃어버렸다. 하느님의 딸은 많은 시녀를 시켜 옥반지를 찾도록 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전혀 없었다. 하늘에서 찾지 못한 옥반지는 분명 지상에 떨어졌을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하느님은 지혜가 많고 힘이 센 대장에게 명령하여 지상에 내려가 옥반지를 찾아오도록 했다. 하늘 나라의 대장은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 때만 해도 지상은 마치 갯바닥처럼 흙가루를 물 반죽한 것 같아서 여기를 디뎌도 푹 빠지고 저기를 디뎌봐도 푹 빠지니 옥반지가 어디에 떨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늘 나라 대장은 생각 끝에 흙탕물 속을 손으로 뒤져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뒤지고 다녔다. 온 지상을 모조리 뒤진 결과 저녁쯤 되어 끝내 옥반지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지상의 모습은 변하고 말았다. 즉 하늘 나라 대장이 옥반지를 찾기 위해서 진흙을 긁어모은 곳이 산이 되고, 손으로 훑어 쓰다듬은 곳은 벌판이 되고, 물이 흘러가도록 도랑을 친 곳은 내가 되고, 깊이 파헤친 곳은 바다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는 산과 강과 바다가 비로소 생겨났다고 한다.
바닷물은 하루에 두 번씩 밀려 왔다 밀려간다. 그러나 원래의 바다는 그렇지가 않았다. 잔잔하기만 했었던 것이 도중에 바닷물이 밀리고 밀려가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옛날 바닷속에 큰 이무기가 살았다. 이무기는 명주실꾸리가 3천개가 들어가는 깊은 바닷속에 큰 구멍을 파고 그 속에 들어가 살고 있었다. 이 이무기가 제 구멍에서 밖으로 나오면 밀물이 되고 그와 반대로 이무기가 제 구멍으로 들어가면 썰물이 되었다. 그리고 바다를 헤엄치고 다니면 파도가 일어 물결이 거칠어지며 때로는 해일이 인다고 한다.
이 세상에 여러 나라가 있는 것처럼 하늘 나라에도 여러 나라가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언제나 어둠 속에 잠겨 있는 나라가 있었으니 '어둔 나라' 라고 불렀다. '어둔 나라' 에는 햇빛도 달빛도 비치질 않아서 언제나 깜깜한 세상에서 살아야 했으니 불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둔 나라' 에는 어두운 중에도 개를 많이 기르고 있었다. 개는 매우 사나운 개로서 불개라고 불렀다. '어둔 나라' 의 임금은 백성들이 어둠 속에서만 살아야 하니 딱하기만 했다. 그래서 늘 어떻게 하든지 어둠을 면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궁리 끝에 임금님은 세상에 있는 해나 달 중에 하나를 훔치려고 결심했다. '어둔 나라' 임금님은 불개 중에서 가장 힘이 세고 날쌘 개를 뽑아 해를 훔쳐오도록 분부했다. 불개는 해를 찾아가서 틈을 보아 덥석 입으로 물었다. 그러나 해는 너무나 뜨거워서 물어 갈 수가 없어 바로 토해 버렸다. 불개는 몇 번이고 해를 물기는 했으나 뜨거워서 견딜 수 없이 되돌아가서 사실대로 아뢰었다. '어둔 나라' 임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뜨겁지 않은 달을 훔쳐 오기로 했다. 달은 빛이 흐리므로 해처럼 뜨겁지 않을 것이니 훔치기 쉬울 것으로 믿었다. 임금은 다시 불개를 시켜 달을 훔쳐오도록 분부했다. 불개는 달을 찾아가서 덥석 물었다. 그러나 달은 어찌나 차든지 마치 얼음을 문 것 같아서 이빨이 시리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토해 버렸다. 불개는 몇 번이고 달을 물어 보았으나 그 때마다 차가워서 토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어둔 나라' 임금님은 화가 났다. 몇 번이고 해와 달을 훔쳐오도록 명령했으나 그 때마다 실패하고 말았다. '어둔 나라'는 여전히 밝아질 수가 없어서 지금도 옛날대로 어둠 속에 잠겨 있다고 한다. 그리고 불개는 지금도 해와 달을 물었다 놓았다 하고.... 불개들이 해를 훔치려고 입에 물었을 때에 지상에서는 일식이 되고, 불개가 달을 물었을 때는 월식이 된다고 한다.
옛날 어느 해 석 달 열흘 동안 비가 내려 큰 장마가 들었다. 마치 하늘의 큰 물동이를 내리붓듯이 비가 쏟아지는 통에 이 세상은 온통 홍수가와서 물바다가 되었다. 평야는 물론 높은 산들도 물 속에 파묻혔으며 또한 인가도 하나 남김이 없이 떠내려가고 말았다. 사람도 다 죽고 단 남매가 살아 남게 되었다. 두 남매는 다행히 홍수를 피하여 높은 산으로 일찍 피난하였기 때문에 겨우 살아 남았다. 몇 달이 지난 뒤에 물이 모두 빠져서 남매는 마을로 내려왔으나 산야는 모두가 황폐해지고 살아남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니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남매는 살길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집도 새로 짓고, 농사도 시작했다. 그러나 남매는 난처한 문제에 봉착했다. 남매인 까닭에 결혼을 할 수도 없고 자식이 없으니 적적할 뿐 아니라 일손도 모자라며, 이렇게 살다가는 인종이 끊어질 염려가 겹쳤다. 남매는 맷돌을 가지고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산꼭대기에서 두 손을 모아 하느님께 빌었다. "우리는 남매이니 서로 혼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종을 끊어지게 할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하면서 오라버니는 수멧돌을 동쪽으로 굴리고, 누이동생은 암멧돌을 서쪽으로 굴려 내려보내고 두 사람은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와 보니 이상하게도 동서의 정반대 쪽으로 굴렸던 맷돌이 공교롭게도 포개어 있었다. 남매는, "이것은 분명 두 사람이 결혼을 해도 좋다는 하늘의 뜻" 이라고 해석하고 혼인을 했다. 두 사람의 혼인은 인류의 멸종을 면했으며,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두 그 남매의 후예들이라고 한다.
옛날 한 집안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그리고 어린애 다섯 식구가 살았다 어느 날 어머니는 산너머 마을로 길쌈을 하러 갔다. 날이 저물었는데도 어머니는 오시질 않아 이이들은 문을 걸어 닫고 엄마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길 삼을 하러 간 마을은 12고개를 넘어가야 했다. 길쌈을 다하고 그 삯으로 떡을 받아서 머리에 이고 오는데 한 고개를 올라가니까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서, "할멈, 할멈, 그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래서 떡을 한 개 집어 주고 또 한 고개를 올라가니까 또 호랑이가, "할멈, 할멈, 그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래서 또 한 개를 집어주고 또 한 고개를 올라가니 또 호랑이가 나와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이제 떡이 한 개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넘어가니까 호랑이가 또 나와서 그것을 주고 다시 고개를 올라가니까 호랑이가, "할멈, 팔 하나 떼어 주면 안 잡아먹지." 그래서 팔을 하나 떼어 주고 또 한 고개를 올라가니 호랑이가 나와 팔 하나를 또 떼었다. 또한 고개를 올라가니 호랑이가 나와서 다리 하나를 떼어 주고 또 한 고개를 넘어가니 호랑이가 나와 나머지 다리를 마저 떼어 주었다. 그래서 다음의 고개에 있던 호랑이는 이 할머니를 잡아먹고 그 옷을 갈아입고, 그 할머니네 집으로 갔다. "애들아, 애들아, 문열어 다오." 하니까 애들이 나와, "우리 엄마 목소리가 아닌데?" 그러니까 호랑이는, "고개 너머 갔다가 감기가 들어서 그렇다." 고 했다. 애들이, "그럼 손을 내밀어 보세요." 해서 호랑이가 손을 내밀어 보였다. 애들이 그것을 보고, "털이 있는 걸 보니 우리 어머니 손이 아닌데." 그런데도 이 호랑이는 길쌈을 해서 그러니 어서 문을 열라고 했다. 애들이 문을 열어 주었다. 호랑이는 방에 들어와서 어린애를 안고 어린 애 손을 오도독 오도독 깨물어 먹으니, 딴 애들이 그 소리를 듣고 "엄마 무엇 먹우?" 하고 물었다. "뒷집에서 콩 볶음 준 것 먹는다." 고 했다. 이 애들은 그 때야 자기 어머니가 아닌 줄 알고 무서웠다. 계집애가 꾀를 냈다. "엄마 똥 마려." "요강에 가서 누렴."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꾸중하시게." "그럼 마루에 나가 누렴." "아버지가 들어오시다 밟으시게." "그럼 이 새끼줄 매고 마당에 나가 누렴." 그래서 결국 새끼줄을 몸에다 동여매고 한 끝을 호랑이한테 주어 아들과 딸은 마당에 나와 똥을 누는 것처럼 하다가 도망쳤다. 새끼줄을 절구통에 붙들어 매놓고 빠져나가 우물가에 있는 버드나무 위로 올라갔다. 호랑이는 기다리다가 새끼줄을 잡아당겨 보니 끌리지가 않았다. 이상해서 나와 보니 어린애들은 간 곳 없고 새끼 끝은 절구통에 매어 있었다. 호랑이는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다가 우물가까지 갔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그 속에 애들이 있었다. 이것을 보고 호랑이는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것을 본 아이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호랑이가 웃음소리에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니 그 위에 애들이 올라가 있었다. 호랑이는 나무 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으나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얘들아, 너희들 어떻게 올라갔니?" 애들은, "뒷집에 가서 참기름을 얻어다 바르고 올라왔지." 하고 대답하니 호랑이는 뒷집에 가서 참기름을 얻어다 바르고 올라가려 하니 미끄러워서 도무지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애들에게, "어떻게 올라갔니?" 하고 물었다. "뒷집에 가서 도끼를 얻어다 찍으면서 올라왔지." 했다. 그래 호랑이는 도끼를 얻어다 찍으면서 나무 위까지 거의 다 올라갔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하느님, 하느님 저희들을 살려 주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저희들을 죽이시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십시오." 했더니 새 동아줄이 내려와서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호랑이도, "하느님, 하느님, 나를 살려주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주시고, 나를 죽이시려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려 주십쇼." 하니 새 동아줄 같은 것이 내려와서 좋다구나 하고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이 동아줄은 썩은 헌 동아줄이기 때문에 반쯤 올라가다 동아줄이 끊어져서 수수밭에 떨어져 죽었다. 그래서 수숫대에 피가 묻어 빨개졌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하늘에 올라가서 처음엔 남자아이는 해가 되고 여자 애는 달이 됐다. 그런데 여자 애는 밤에 다니기가 무섭다고 해서 서로 바꿔 여자는 해가 되고 남자는 달이 됐다고 한다.(경기 파주)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한 임금님이 있었는데 신기한 방망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 방망이는 마치 도깨비 방망이 같아서 무엇이고 소원을 말하면 다 이루어지는 방망이였다. 임금님이 신기한 방망이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국내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 퍼졌다. 방망이를 앞에 놓고 "돈 나와라." 하면 돈이 나오고 "쌀 나와라." 하면 쌀이 나오는 신기한 조화를 부리니 누구든지 그 방망이를 가지고 싶어했다. 그러나 임금님이 가지고 있으니 갖기는 고사하고 한 번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이 때에 욕심 많고 꾀 많은 도둑이 있어, 임금님이 가지고 계시는 방망이를 훔쳐내기로 했다. 오랫 동안 온갖 꾀를 써서 그 신기한 방망이를 훔쳐내는 데 성공했다. 도둑은 신기한 방망이를 가지고 큰 부자가 되어 소원을 풀고자 했다. 그러나 왕이 방망이를 찾을 것이며 포리들이 잡으러 올 것을 두려워 배에다 방망이를 싣고 바다로 도망쳤다. 도둑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방망이가 제 손에 들어온 생각을 하니 신바람이 났다. 도둑의 배는 바다 한복판에 이르렀다. 도둑은 이쯤 왔으면 이제 포리의 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니 안심이 되었다. 도둑은 빨리 방망이를 시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방망이를 앞에 놓고 무엇을 먼저 말할 것인가 궁리했다. 이왕이면 단번에 돈을 많이 벌어 큰 부자가 되고 싶었다. 그 때는 마침 소금이 귀해서 소금 값은 금값과 같았다. 그러니 소금만 있으면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둑은 방망이에게 "소금 나와라!" 하고 외쳤다. 방망이는 과연 신기하게 소금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도둑은 신이 나서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사이, 소금은 한없이 나와서 배 안에 가득히 차고 넘쳐서 마침내 배는 뒤집히고 도둑은 바다에 빠져 죽었다. 도둑이 죽기 전에 "소금 그만 나와라." 는 말마저 못했기 때문에 바닷속에는 방망이에서 소금이 끝없이 나왔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바닷물은 짜졌다고 한다. 바닷속에는 지금도 방망이에서 소금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느 겨울날 노인이 맷돌을 지고 얼마를 걸어가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그래 제일 가까운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유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 집 뚝쇠 영감은 나가라고 두들겨 쫓았다. 이 노인은 추워서 그만 넘어진 채 얼어붙었다. 이 동리에서 제일 가난하게 살고 있는 만복이가 형님 집에서 쌀을 얻어 가지고 오는 길에 노인이 쓰러진 것을 보고 불쌍히 생각하여 따뜻한 방에 뉘고 간호를 하니 노인은 살아났다. 며칠 후 노인이 떠나면서, "이 맷돌은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주려고 갖고 다녔는데, 당신 같은 훌륭한 분은 처음 보았소." 하며 맷돌의 사용 방법을 가르쳐 주고 맷돌도 놓고 갔다. 그 맷돌을 돌리니 사람이 나와 큰 대궐 집을 지었다. 또 "보석이 나와라." 하면 보석이 나왔다. 그리하여 쌀을 나오라 해서 그 쌀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래서 만복이는 부자가 되었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았다. 그것을 알게 된 뚝쇠 영감이 하루는 거지를 모두 모아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이같이 하면 거지들이 맷돌이라도 주지 않을까 해서 그랬던 것이다. 거지들이 벌인 잔치를 다 먹고 가려고 하자, 뚝쇠 영감은 화가 나서 맷돌이라도 내놓고 가라고 고함을 쳤다. 거지들은 영문을 몰라 하니 마구 거지들을 두들겨 주었다. 어찌하며 만복이네 같은 맷돌을 구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맷돌을 구할 길이 없어 최후의 수단으로 만복이네 맷돌을 훔치기로 하였다. 그래서 맷돌을 훔친 뚝쇠 영감은 동네에서 쓰면 들킬까봐 맷돌을 배에 싣고 멀리 바다를 건너가 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배를 타고 동해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뚝쇠 영감은 빨리 맷돌을 돌려보고 싶었다. 바다 복판이기도 해서 소금이 나오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한 뚝쇠 영감은 소금을 나오라고 했다. 소금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맷돌을 멎게 하는가를 몰랐다. 그래서 나중에는 소금이 너무 많이 나와 파묻히고, 배도 소금에 파묻혀 가라앉게 되었다. 지금도 바다 밑에서는 그 맷돌이 멈추지 않고 돌기 때문에 바닷물이 짜다고 한다.(부산)
옛날 빈대의 아버지가 환갑이 되어 큰 잔치를 벌였는데 많은 벌레들이 초대를 받았다. 잔칫상을 잘 차렸다는 소문이 나서 집일을 젖혀놓고 모두 모여들었다. 상다리가 휘도록 차린 진수 성찬을 앞에 놓고 부어라 마시어라 밤이 새도록 마음껏 먹고 마셨다. 맨 먼저 벼룩의 얼굴이 빨개졌으며, 성미가 급해서 이와 시비가 벌어졌다. 이는 벼룩에게 조그만 놈이 주책없이 마시고 날뛴다고 나무랐으며 벼룩은 벼룩대로 굼벵이같이 느린 놈이 왜 상관이냐고 대꾸해서 싸움이 벌어졌다. 빈대는 둔하지만 주인으로써 그냥 있을 수 없어서 둘 사이에 들어가 싸움을 말리기에 힘을 다했다. 벼룩이 날뛰는 바람에 엎치락, 뒤치락 한바탕 소란에 떨었다. 싸움이 끝난 다음 모두의 모양은 변화가 생겼다. 빈대는 말리다 쓰러질 적에 밑에 깔려서 납작해졌으며, 이는 벼룩의 발에 가슴을 차여 멍이 들었고, 벼룩은 구석에 밀렸으므로 조그마해졌고, 술을 많이 마신 탓으로 온몸이 빨개졌다고 한다.
옛날에 메뚜기와 개미와 물새가 잔치를 벌이기로 했다. 개미는 밥을 마련하고 메뚜기와 물새는 찬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미는 들로 나갔다. 마을의 아낙네가 밥을 머리에 이고 들로 가고 있었다. 개미는 그 아낙네의 속옷 속으로 들어가 여인의 넓적 다리를 물었다. 깜짝 놀란 여인은 머리에 이고 있던 밥 광주리를 땅에 떨어트렸다. 개미는 재빠르게 흘린 밥풀을 주워 가지고 달아났다. 메뚜기는 개울 옆 풀에 올라 있으니 물고기들이 메뚜기를 먹으려고 모여들었다. 지키고 있던 물새는 순간 날쌘 솜씨로 고기를 낚아챘다. 메뚜기와 물새는 서로 저 때문에 고기를 잡았다고 자랑을 하다가는 드디어 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다투는 꼴이 얼마나 우습던지 너무 웃어서 개미의 허리는 잘쑥해졌으며, 물새는 메뚜기의 이마를 호되게 때렸으므로 뒤로 젖혀졌으며, 이때 메뚜기가 물새의 부리를 잡아 당겼으므로 물새의 부리는 길어졌다고 전한다.
옛날 가재와 굼벵이가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가재는 수염을 자랑하고 굼벵이는 눈을 자랑했다. 가재는 제 수염을 자랑하였으나 굼벵이의 밝은 눈이 부러웠고, 또 굼벵이는 가재의 수염이 길어, 위엄 있게 보여 부러웠다. 그래서 둘 이는 서로 눈과 수염을 바꾸기로 했다. 먼저 굼벵이는 눈을 빼어 가재에게 주었다. 가재는 굼벵이의 눈을 달고 보니 더욱 어울리고, "눈도 없는 놈이 수염은 달아서 무엇해?" 하고는 돌아섰다. 마침 옆에서 이 광경을 본 개미는 굼벵이가 당하는 꼴이 우스웠다. 그래서 너무 웃었더니 그만 허리가 끊어질 듯 가늘게 되어 버렸다고 한다.(충남 당진)
조선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어느 고을에 성질이 매우 고약하고 사나운 원님 한 분이 부임하였다. 그런데 그의 밑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이방이라는 사람은 그와는 반대로 마음씨가 착하고 의리가 두터운 사람이었다. 억울한 일, 불의한 일은 그냥 보고만 넘기는 일이 없었다. 이방은 전임의 원님 때부터 시중을 들어온 사람이었다. 이런 방법이 새로 부임한 원님은 못마땅했으나 부임 즉시 터무니 없는 이유로 파면을 시킬 수도 없었다. 그래 부임 후, 한 달쯤 지난 뒤 불가능에 가까운 주문을 시켜 이방을 곯려 주기로 했다. "여보게 이방, 지금으로부터 한 달 이내에 뱀과 딸기를 구해 오도록 하게. 만일 구하지 못하면 큰 벌을 내릴 것이오, 구해 오면 큰 상을 내리리라." 때는 한참 추운 겨울이었다. 추운 겨울에 뱀과 딸기가 없을 줄을 뻔히 알면서도 마음씨 착한 이방일 뿐 아니라 감히 사또의 분부이기도 해서 다음 날부터 산으로 들로 뱀과 딸기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산천은 흰 눈에 덮여 뱀과 딸기를 찾을 길이 없었다. 그래도 이방은 열심히 뱀과 딸기를 찾아 헤매다가 그만 병이 나서 드러눕게 되었다. 이방이 병석에 눕게 되니 그의 아들들이 모여 어디가 편찮으시냐고 물었다. 이방은 자초지종을 모조리 이야기했다. 큰아들이 아버지 말을 다 듣더니 아버지 걱정 마시라고 하면서 새 옷을 입고 나갔다. 큰아들은 동헌으로 나갔다. 원님께 면회를 요청했다. 원님은 이방의 아들이 왔다고 하니 뱀과 딸기를 가지고 왔나 싶어 들어오라고 했다. 큰아들은 원님 앞에 나아가 "아버지는 지금 구렁이에 물려 앓고 있사옵니다." 했다. 이 말을 들은 원님은 크게 노하여, "이 놈, 이 추운 겨울에 어디에 구렁이가 있단 말이냐?" 하고 호통을 쳤다. 이 말을 들은 큰아들은, "그러면 이 겨울에 뱀은 어디 있으며 딸기는 어디 있사옵니까?" 하고 되물으니 원님은 아무 말도 못했다. 이렇게 하여 아들의 지혜 때문에 이방은 파면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충남 당진)
옛날 홀어머니가 아들 하나를 데리고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매일 나무를 해서 팔아 먹고 살았는데, 하루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내가 예쁜 다홍 저고리를 해 줄게, 오늘은 나 가서 나무를 많이 해 와라." 고 내 보냈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조매기」라는 것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이 「조매기」는 항상 어머니가 아들의 밥을 해 두면 몰래 훔쳐먹곤 하였다. 오늘도 아들의 밥을 해서 솥 안에 넣어 놓았더니 또 「조매기」가 와서 훔쳐먹는 것을 본 어머니가 야단을 치며 때리려 했다. 그러자 이 「조매기」는 오히려 어머니에게 달려들어 이 어머니의 가죽을 벗겨셔 울타리에 주욱 걸어 놓았다. 저녁에 아들이 나무를 해서 한 짐 가득 지고 돌아오니 울타리 가지에 다홍빛 나는 무엇인가가 주욱 걸린 것이 보였다. 이것을 보고는 속으로 좋다구나 했다. 어머니가 저고리 해 주려고 그렇게 한 것인가 보다고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의 가죽이었다. 아들은 혹 자기 어머니가 아닌가 싶어 옆집으로 가서 물어보니 「조매기」가 들어가는 것만 봤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그 옆집에 가도 그런 말만 했으며 셋째 집까지 가서 물어봐도 또 그런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자 그는 어머니가 「조매기」한테 그렇게 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원수를 갚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벼룩을 한 말 잡아다가 온 집안에 뿌려 놓았다. 밤중에 「조매기」가 나타나서 잠을 자려고 마루에 누웠다. 온 몸이 따끔따끔하여 놀란 「조매기」는 "이 서방이 무나, 벼룩 서방이 무나?"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할 수 없었던지 마침내 솥뚜껑을 열고 솥 속에 누운 채 뚜껑을 덮고 잠을 청했다. 아들은 재빨리 부엌으로 들어가 솥뚜껑을 자빠뜨려 놓고는 큰 돌멩이를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불을 지폈다. 처음에는 "어 참, 따뜻하다. 어떤 착한 사람이 불을 때 주는구나."하고 좋아했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이 서방이 무나, 벼룩 서방이 무나?"하며 버르적댔다. 그래도 한참 불을 지피니 빠지직하고 타 죽어 버렸다. 그래 그것을 가져다 강물에 띄웠더니 모기가 되어 앵 하고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이것을 모기의 혼이라고 한다.(경기 파주)
호경(好景)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스스로 성골 장군이라고 일컫고 있었다. 백두산에서 왔다고 하며, 여러 산천을 두루 돌아다녔다고 하였다. 그는 송악 부소산(扶蘇山) 왼쪽 골짜기에 머물러, 아내를 얻어 집안을 이루고 있었다. 집안이 넉넉하였으나 슬하에 아기가 없었다. 성골 장군은 활을 잘 쏘아서 사냥하는 것으로써 생활을 삼았다. 하루는 동네 사람 아홉명과 함께평나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날이 저물었다. "돌아가기는 틀렸으니 어디서 쉬었다가 가지." "우리가 밤을 지낼 만한 곳이 있을까?" 모두들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큼직한 굴을 하나 발견하였다. "됐어. 여기서 밤을 지내지." "혹시, 무슨 짐승의 굴이나 아닐까?" 굴속을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었고, 제법 널찍하였다. 일행은 마른 잎을 얻어다 깔고 곤한 몸을 눕혔다. 하룻밤을 지내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어흥!" 막 잠들이 들려고 하는데 굴 밖에서 사나운 호랑이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놀라서 수군거렸다. "여기가 호랑이의 굴이었나 보군!" "우리들 잡아 먹으려나 보니 어쩌지?" 밖에서는 연방 호랑이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앉아서 잡혀 먹힐 수는 없구...... 그렇다고 입구가 작으니 한꺼번에 뛰어나가 싸울 수도 없는 노릇....." "우리 중에서 누가 나가서 싸워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 한번 시험삼아 우리들이 쓰고 있는 벙거지를 벗어서 호랑이에게 던져 보세. 그래서 호랑이가 무는 벙거지의 임자가 나가서 싸우기로 하지." 한사람을 고르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그럴 듯한 방법이기도 하였다. 모두들은 일제히 벙거지를 벗어서 호랑이에게 던졌다. 그랬더니 호랑이는 서슴지 않고 성골 장군의 벙거지를 덥석 물었다. "자네 것일세." "그렇군!" 성골 장군은 별로 놀라지도 않고 태연히 활을 집어 들었다. 성골 장군으로서는 호랑이와 싸우는 것쯤 두려울 것이 없었고, 또 모두들 믿음직하게 바라보았다. "자아, 나간다!" 성골 장군은 호랑이를 노려보면서 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활 시위를 당기려고 보니 여태껏 으르렁대던 호랑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허, 이 호랑이가 어디로 갔을까?" 성골 장군은 굴에서 단단히 벼르고 나왔던 터라 긴장이 풀려서 화살을 겨누던 손을 늘어 뜨리고 중얼거렸다. "내가 나와 서기만 하여도 두려워서 도망쳤나?" 호랑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굴 속에 있는 일행들에게 말하려는 찰라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성골 장군은 아찔하여져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정신을 수습하고 좌우를 살펴보니 방금 자기가 걸어 나온 굴이 있던 산기슭 전체가 허물어지는 소리였고, 그 굴은 온데간데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굴이 찌그러졌구나. 그렇다면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겠군......" 참으로 허무하면서도 기가 찰 노릇이었다. 자기는 호랑이와 싸우고자 굴에서 나왔었기에 화를 면한 것이다. 서로 호랑이와 싸우기를 꺼려하였거늘 호랑이와 싸우고자 굴 밖에 나온 사람만이 살았고, 또 호랑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마을에 내려가서 이 일을 알려야겠다." 성골 장군은 급히 마을로 내려가서 이 놀라운 이야기를 하였다. 죽은 아홉 사람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이튿날 다같이 굴이 있던 곳으로 갔다. 성골 장군이 굴이 있던 곳을 가리키자 슬퍼하기보다도 먼저 놀라와서 혀를 둘렀다. "꼭 거짓말 같은 사실이로군!" "이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일이야. 장사를 지내는 것보다도 먼저 산신께 제사지내기로 합시다. 이런 일은 산신이 노하여서 일어났음에 틀림이 없어." 이렇게 의논이 되어서 산신을 제사지내기로 하고, 약간의 주효를 벌여 놓고 절을 하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안개가 끼며 향기가 진동하더니 위엄있게 생긴 사람이 나타났다. "나는 이 산에 있는 산신이노라." 모여 있던 사람들은 엉겁결에 엎드리고 감히 쳐다보지를 못하였다. "내 그대들에게 전할 몇 가지 일이 있노라." "예." 모두들 벌벌 떨기만 하였다. "나는 과부로서 이제까지 이 산을 다스리고 있었노라. 그러던 중 이번에 성골 장군을 만나게 되었으니 다행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나는 장차 성골 장군고 K부부가 되어서 이 산을 다스릴까 하노라." "......" 모두들 엎드린 채였고 성골 장군은 고개를 들어 산신을 바라보았다. 안개 속에 아련히 보이는 산신은 틀림없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내 성골 장군을 유인하기 위하여 일행이 굴속에 들어갔을 때 호랑이로 몸을 변하여 나타났었노라. 그리고 벙거지를 던져서 그것을 호랑이가 문 사람이 나가 싸우기로 하고 벙거지를 던지기에 성골 장군의 것을 물었노라. 이리하여 성골 장군은 굴 밖으로 나오고 굴은 허물어졌으니 그리 알라." 성골 장군은 빤히 산신을 바라보았다. 어제 당한 일이 새롭게 돌이켜 생각키웠고, 굴 밖에 나오니 호랑이의 모습이 갑자기 없어졌던 일도 수긍이 갔다. "그러니 그대들은 성골 장군을 이 산의 대왕으로 알고 받들도록 하라." "예." 마을 사람들은 다같이 대답하였다. 회오리바람이 불고 지나가더니 이제까지 보이던 산신의 모습은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성골 장군도 어디로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참, 신기한 일이야." "드문 일이야." 얼마 후에야 제 정신이 든 마을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며 놀라와하였다. "성골 장군이 비범한 사람이더니 배필이 되었군." "산신의 당부대로 우리는 받들어야 하지 않겠나?" "암!" 곧 마을 사람들은 성골 장군을 이 산의 대왕으로 봉(封)하고 사당을 세워서 제사지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산을 원래 평나산 또는 성거산이라고 불리었는데, 아홉 사람이 굴속에서 죽었다는 인연으로 구룡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성골 장군은 뜻하지 않게 산신의 남편이 되어서 산을 다스리게 된 데 대하여 조금도 불평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이 없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마을 사람들이 사당까지 지어주고 또 산신의 남편이 되어 신의 열에 끼었으니 대견하기는 하다. 그러나 대를 이을 자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성골 장군은 전의 아내의 꿈에 나타났다. "내가 왔소. 나는 이미 산신과 더불어 산을 다스리는 몸이 되었소. 당신도 이야기를 들어서 알겠거니와, 다시 만나기는 어렵소. 그러나 옛정을 잊기 어려워서 이렇게 찾아온 것이오." 성골 장군은 평시와 조금도 다름없이 아내를 위로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고 돌아갔다. 놀라 깨니 꿈이었으나 성골 장군의 아내는 이날부터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강충이라고 하였다 한다.
경주 땅에 하지산이란 산이 있으니 또한 부산(富山)이라고도 불리었다. 여기에는 옛날에 주암사라는 절이 있었다. 이 절의 북쪽에 큰 바위가 있었으니 그 모양이 특이하게 생겼고, 사방이 깎아 세운 듯하여 쉽게 오를 수 없었다. 그러나 바위 위는 능히 백여 명이 앉을 만하게 편평하였고 멀리 산들과 바다가 아득하게 보였고 눈 아래로는 넓은 들이 보이는 절승의 곳이었다. 이 바위는 지맥석이라고도 불리었다. 옛날 삼국시대 때 김 유신 장군은 이곳에 보리를 가져다가 술을 담고 바위 위에서 잔치를 벌여 군사들을 먹게 하였다고 한다. 싸움에 나가는 군졸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한 곳이었다. 보리를 져나르던 말이 다닌 흔적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지맥석에서 서쪽으로 여덟 걸음쯤 되는 곳에 큰 바위가 있고, 그것이 동굴을 이루고 있으니 주암이라고 불리었다. 옛적에 이 주암 동굴에 한 노인이 단정히 앉아서 도를 닦고 있었다고 한다. 점점 도가 통하게 되니 어느덧 많은 신장들을 자유자재로 부리기에 이르렀다. "흠, 이만하면 나는 도를 닦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도인은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반성하고 도닦기를 계속하였다. "모든 물욕은 물리치고 흔들리지 않을 만하다. 색에 있어서도 그렇다. 색욕도 왠만한 것은 물리칠 만하다. 그러나 궁녀의 아리따운 모습을 대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때에도 역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지. 아직 확고한 자신이 서 있다고는 할 수 없으니 더욱 도를 닦아야겠다." 도인은 눈을 감고 다시 깊은 명상에 잠기었다. 도인이 부리는 신장들은 언제나 도인의 주변에 있어 그를 보호하고 또 부림을 당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중얼거리는 도인의 혼잣말을 들었다. "궁녀라는 게 뭔가?" "대궐 안에 있는 여인들이지." "그렇게 굉장하게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한번 보고 싶군." "이런 훌륭한 도사께서도 궁녀를 보면 마음이 움직일지도 모른다고 하였으니 얼마나 아름다울까?" 사람이 아닌 신장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인간 같이 여인에 대한 욕심들이 끓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대궐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지." "그러면 우리 궁녀를 데려다가 한번 재미를 보는 게 어떨까?" "그거 좋은 생각이야." 신장들은 이런 꿍꿍이 수작을 꾸미고 도사의 눈을 속여서 느닷없는 짓을 벌였다. 신장들은 허공에 솟구쳐 바람을 타고 대궐에 이르렀다. 대궐 안에서는 궁녀들이 제멋대로자기 할 일을 하기도 하였고 서성거리기도 하였다. 과연 궁녀들은 한결같이 얼굴이 아름답고 바라보기만 하여도 간장이 녹는 듯하였다. 신장들은 비위가 돋구어져서 한 궁녀를 바람에 휩싸 공중으로 올라갔다. 궁녀들 눈에는 신장이 보이지 않는 터라 모두들 질겁을 하였다. 갑자기 한 궁녀가 공중에 솟구쳐 올라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 청천의 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나!" "이 웬일일까?" 신장들은 이 궁녀를 자기들이 있는 주암 근처로 납치하여 가서 이리저리 바라보고 노리개를 삼아 더럽히고 말았다. 그런 뒤로는 다시 바람을 타고 날아서 궁녀를 대궐 안 뜰에다 내려놓았다. 신장들은 궁녀를 납치해다 재미를 보고는 더욱 흥이 나서 행패를 계속하였다. 아침에 없어졌던 궁녀가 저녁에 나타나기도 하였고, 무시로 이런 일이 되풀이되었다. 신장들은 흥에 겨웠으나 궁녀들은 전전긍긍하였다. 드디어 이 소문은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괴이한 일이다. 당장 그놈을 잡아라. 잡기만 하면 목을 자르라." 임금은 크게 노하여 대궐 안팎을 엄중히 경계하도록 많은 군사를 풀어놓았다. 그러나 바람을 타고 허공을 날아오는 신장들을 막을 도리는 없었다. 또 신장들의 모습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언제 왔다가 언제 사라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되풀이해서 피해를 입을 따름이었다. "모두들 눈을 멀거니 뜨고서 뭣들 하고 있느냐?" 임금이 아무리 펄펄 뛰어도 소용이 없었다. "저런 죽일 놈이 있느냐?" 이 알 수 없는 괴물을 잡기 위해 여러 가지로 연구하던 끝에 하나의 꾀를 생각해 냈다. "궁녀를 모조리 부르라!" 뜰에는 많은 단사(丹砂) 가루가 마련되어 있었다. "듣거라. 너희들은 항시 이 단사 가루를 몸에 지니고 있거라. 만일 그 요물에게 납치되는 일이 생기거든 그 요물에게 납치되는 일이 생기거든 그 요물과 더불어 묵은 곳에 은밀히 이 단사 가루를 뿌려 두어라." 대궐 안에 드나드는 것은 잡을 수 없으니 단사 가루가 뿌려진 곳을 찾아서 요물을 잡자는 계획이었다. 그 후에도 여전히 궁녀들은 납치되어 갔다. "이번에 잡았다." 임금은 무릎을 치고 많은 군졸을 풀어서 단사 가루가 뿌려진 곳을 찾게 하였다. 대궐 가까운 곳과 성안은 물론이려니와 멀리 떨어진 곳까지 샅샅이 살피게 하였다. 그러나 묘연하여 알 수가 없었다. "하늘로 솟지 않은 바에야 어찌 단사 가루가 뿌려진 곳이 없더란 말이냐?" 더욱 많은 군졸을 풀어 깊은 산속까지 살피게 하였다. 그러던 중 하지산 기슭 주암 근처에서 단사 가루가 뿌려진 것을 발견하였다. 임금에게 급한 보고가 갔다. "장소를 알았습니다." "어디더냐?" "예. 하지산 기슭의 어느 바위 근처였습니다." "그래 괴물이 있더냐?" "살펴보니 단사 가루가 뿌려진 근처에는 바위로 된 동굴이 있사옵고 그 속에는 한 늙은이가 가사를 입고 단정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요물이니라!" 임금은 고개를 끄덕이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엄한 짓을 저지르던 요물을 단단히 혼내 주려는 생각에서 수천명의 군졸을 거느리고 떠났다. "비록 늙은 중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요물임이 분명하니 각별 조심하여라." 마치 싸움터에라도 나가는 듯 칼과 창을 두르며 군졸들은 출발하였고 임금은 직접 지휘를 하였다. 하지산에 이르러 군졸들로써 산을 포위토록 하고 임금은 날랜 군졸을 몇 명 거느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과연 바위로 된 동굴 안에는 늙은 중이 앉아 있었다. "흠!" 단정히 앉아 있던 늙은 중인 도사는 눈을 들어 이쪽을 바라보았다. 어마어마한 군졸의 수효에 놀라는 기색도 없이 눈을 감고 두 손을 합장하여 주문을 외기 시작하였다. 때 아닌 바람이 불고 지나갔다. "허!" 잠시 멈칫하고 섰던 임금은 눈을 들어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산골짜기에는 수많은 군졸들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번쩍이는 투구는 이 세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고, 칼과 창 또한 무섭게 번쩍였다. 얼굴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하였고 눈에서는 불을 뿜어내는 듯하였다. 임금 자신이 거느리고 온 군졸은 수천 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금 갑자기 나타난 군졸들은 수만을 헤아릴 것 같았고, 모두 이쪽을 향하여 금시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형상이었다. "어, 어허!" 임금은 너무나 놀랍고 두려워서 그 자리에 물러앉았다. 더 진격하는 것은 고사하고 목숨을 부지할 것 같지가 않았다. "물러서라!" 임금은 황망히 명령을 내리고 군졸을 거둬서 대궐로 돌아갔다. 대궐에 돌아와서도 임금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하였다. "그 중이 보통 사람은 아니느니라. 주문을 욈으로써 그렇게 많은 군졸을 갑자기 나타나게 하였으니 이는 필시도통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임금은 이번에는 중신을 몇몇 골라서 산으로 보내었다. 예를 갖추어서 정중히 대궐로 모셔 오자는 것이었다. 도사는 이 청을 물리치지 않고 중신들을 따라서 대궐로 들어왔고 임금은 반기어 맞았다. "과인이 고명한 사람을 몰라보았으니 그 허물을 탓하지 마시오." 도사는 합장하고 고개를 들었다. 도사는 이미 도통하여 완전히 속세를 떠난 터였다. 궁녀를 보았을 때는 어떨까고 스스로에게 의심이 갔던 단계도 지난 지 오래였다. "이렇게 예를 갖추어 불러주시니 황공무지로소이다." "과인을 위하여 국사(國師)가 되어 줌이 어떠하오?" "예, 그리고 그간 대궐 안에서 일어난 일들은 소승이 신장들을 잘 다스리지 못한 탓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소스승이 도닦기에 여념이 없는 터에 신장들이 소승의 눈을 속여서 저지른 일이오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 신장들을 크게 벌주었으니 앞으로는 그런 일이 다시없을 거입니다. "고마울 일이오." 그 후로는 궁녀들이 납치되어 가는 일이 없었다. 부산에 주암사(朱巖寺)라는 절이 세워졌다고 하며, 아득한 옛날이어서 어느 임금 때인지는 자세하지 않다고 한다.
사천감 벼슬에 있는 이 인보는 경주도제고사(慶州道祭告使)란 임무를 띠고 내려갔다. 이 것은 지금의 경상도 지방에 내려가서 여러 사천에 두루 제사지내는 일이었다. 책임을 다하고 돌아오는 길에 부석사(浮石寺)에 들르게 되었다. 마침 해도 저물었기에 이 인보는 부석사에서 묵기로 하였다. "어서 이리로 들어오십시오." 주지는 공손히 맞이하여 객사를 정결하게 치우고 머무르게 하였다. "과연 한적하고 속세를 떠난 곳이로군." 이 인보는 활짝 열어 젖혀진 창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뜰은 한적하기만 하였고, 멀리 보이는 숲도 적막 속에 가라앉은 듯하였다. 흡사 깊은 산속에 우두커니 홀로 앉아 있는 듯하였다. 두리번거리며 적적하여 하다가 문득 눈이 둥그래졌다. 앞에 있는 건물 사이로 아리따운 여인의 자태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여인은 아미를 들어 이쪽을 흘낏흘낏 바라보는 것이었다. "흠!" 이 인보는 고개를 기웃하였다. 자기를 찾아오는 여인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아마 이 근처 어느 고을의 원이 보내온 기생이나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입가에 절로 웃음이 돌았고 그 원이 풍류를 아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여인은 몇 번 이쪽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걸어와서 이 인보가 있는 방앞에 이르러 날아가듯 절을 하였다. "흠!" 이 인보는 점잖게 헛기침을 하였다. 절을 하고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니 천한 기생 같지는 않았다. 어딘지 고상한 기품이 풍겼고 그린 듯한 자태는 선녀 같기도 하였다. 여인은 이 인보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마루로 올라와 방안으로 들어와서 다소곳이 앉았다. 이 인보는 가까이에서 자세히 여인을 바라보았다. 희다 못하여 푸른 기운이 도는 얼굴이며 깎아 놓은 듯 고요한 자태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선녀거나 귀신일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그러나 처음 대하는 절색이어서 이 인보는 물러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기이한 생각을 금할 수가 없어서 이 인보는 여인을 방안에 남겨둔 채 뜰에 내려서서 두루 주위를 살폈다. 아무 곳에도 괴이한 것은 없었고, 다만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었다. 이 우물이 무언지 의심쩍었다. "이 우물과 저 여인이 무슨 관련이나 있는 것이 아닐까?" 방으로 돌아와서도 이 인보는 기괴한 생각에 잠겨서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러한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는 듯 한 젊은 중이 뜰에 와서 머리를 숙였다. "대감, 안으로 드시랍니다." "음......." "차(茶)를 내어서 먼길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리고자 하신다는 전갈입니다." "알았네!" 이 인보는 젊은 중이 되돌아간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이제까지 잠자코 있던 여인이 쳐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가기는 어디를?" "어디나요." "그만 두지!" 여인은 한사코 따라 가겠노라고 하였으나 이 인보는 끝내 뿌리치고 방 밖으로 나갔다. 이 인보는 부석사 주지와 더불어 차를 마셨다. 밤이 깊어서야 이 인보는 객사로 홀로 돌아왔다. 그러자 아까의 그 여인이 또 나타났다. "허, 또 왔는가?" 이 인보는 두 번째 보는 터라 제법 친밀한 음성으로 농삼아 물었다. "예." "어인 일인고?" "제 집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어째서 여기에 왔는가?" "대감의 높으신 뜻을 은근히 사모하여 왔을 따름입니다." "허, 그래......"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이 인보는 빙긋이 웃으며 더욱 차근차근 여인을 바라보았다. 사모하여서 왔다면 굳이 거부할 게 무엇인가 싶었다. "정 그렇다면 이리 가까이 오라." "......." "스스러워할 게 무엇인가?" 이 인보는 덥석 여인의 손목을 쥐었다. 여인은 뿌리치지 않았고, 이 인보는 이번에는 여인의 가는 허리를 휘어 감았다. 이 날 여인은 이 인보의 방에서 묵었다. 이 인보는 뜻하지 않게 절색을 대할 수 있어서 희색이 만면하였다. 부석사에서는 하루 묵고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인에게 정이 끌려서 연사흘이나 묵었다. "이제 나는 떠나겠노라!" "예." "남은 정이 연연하지만 더 머무를 수도 없어 그만 떠나니 그리 알라." 이 인보는 여인과 작별을 하고 떠났다. 여인과 헤어져서 부지런히 길을 재촉한 이 인보는 이날 저녁에 우정(郵亭)이라는 곳에서 묵게 되었다. 자리를 깔고 누우려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부석사에서의 그 여인이 들어섰다. 이 인보는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으나 여인은 입가에 웃음을 띠기까지 하였다. "그대와는 오늘 아침에 이미 헤어졌거늘 어찌 또 나타나는가?" "왜 못 오나요?" "작별하였는데, 또 나타남은 괴이하지 않은가?" "뱃속에 이미 대감의 씨가 하나 생겼습니다. 이제 다시 또 하나를 더 깃들이게 하고자 왔을 따름입니다." "허!" 하는 말이 기괴하고 사리에 맞지 않았으나 이 인보는 피식 웃을 따름이었다. 연연하게 해어지기 싫어서 또 온 핑계거니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서슴지 않고 이 인보의 자리 속으로 들어가 누웠고, 이 인보는 다시 단꿈을 꿈었다. "자, 나는 갈 길이 바쁘니 이제 돌아가라. 그대는 집이 부석사 근처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멀리까지 오면 되는가?" "......" 여인은 말없이 사라졌다. 이 인보는 이날도 부지런히 길을 떠나 저녁에는 홍주라는 곳에서 묵게 되었다. 막 자려고 하는데 또 여인이 나타났다. "허!" 이 인보는 어이가 없어서 입이 절로 벌어졌다. 매일 밤 나타나니 일일이 상대를 하다가는 장차 후환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 두려웠다. 그렇게 되느니보다는 차라리 일찍 정을 끊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겨져서 보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이쪽에서 무시해 버리면 다시는 나타나지 않으려니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여인은 한동안이나 멍하니 이 인보를 바라보더니 노기가 등등하여서 외쳤다. "좋아요. 이런 대접을 한다면 이제 다시는 나타나지 않지요." 말을 마치자 여인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별안간 모진 바람이 불며 홀연히 여인의 자태는 없어졌다. 바람이 가라앉은 뒤에 보니 이 인보가 묵고 있는 곳의 사립문과 뜰에서 있던 나뭇가지가 부러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예리한 도끼로 자른 듯하였다. "그 여인은 귀물이 귀물이었어...... 그대로 대하였다가는 큰일날 뻔했지." 이 인보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것이 사립문이나 나무가 아니고 자기의 목이었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연산군 때의 일이다. 채생이라는 한 선비가 훈련원 근처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해가 저물어서 심심 파적으로 거리에 나가 보았다. 거리에 행인이 드물었고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은 은은하였다. 간간이 보이는 사람은 희미하고 얼굴을 분간하기가 어려웠으니 그것은 그것대로 흥취가 있기도 하였다. "달빛이 흐린 것도 아취가 있군......" 채생은 정처없이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눈을 크게 떳다. 저만큼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밤에 어인 여인이? 그리고 어찌 가만히 서 있기만 할까?" 호기심이 잔뜩 일어난 채생은 한 발 한 발 여인 앞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채생은 넋은 허공으로 나는 듯하였다. 여인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 같았고, 그 아름다움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었다. "음!" 채생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하였고, 행인이 별로 없는 거리에서 이런 절색을 만났기에 엉뚱한 충동을 느꼈다. 두어 번 헛기침도 하여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려도 보았으나, 여인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홀낏 이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에 기운을 얻은 채생은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는 더 참고 있을 수 없게 된 채생은 여인 앞으로 나서며 은근하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좋은 달밤에 한가하게 나왔다가 뜻하지 않게 선녀 같은 분을 만났군요. 끓어 오르는 정을 억제할 수 없어서 광태(狂態)를 보이니 너무 허물하지 마시오." 채생으로서는 힘을 다해서 수작을 붙여보는 판이었다. 여인은 여전히 놀라지도 않고 빤히 쳐다보는 얼굴에 가볍게 홍조를 떨 따름이었다. "어디의 누구시오니까?" 나지막하게 묻는 여인의 음성은 그 아름다운 얼굴에 어울리게 은쟁반에 구슬을 굴리는 듯 하였다. "훈련원 근처에 사는 채라는 사람이오." "이렇게까지 정중한 정을 보여주시니 고맙습니다. 이 천한 것에 뜻이 있으시다면 능히 같이 가실 수 있겠습니까?" "허허...... 이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외다. 어찌 마다고 할 수 있으리오." 채생은 하늘에라도 오를 것같이 기뻤다. 은근히 수작을 걸어본 것인데 같이 가자는 말이 저쪽에서 나왔으니 어제는 용꿈을 꾸었다고 생각되었다. 채생은 여인과 나란히 서서 천천히 걸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서 한 개울을 건너니 고래등 같은 집이 나타났다. 으리으리한 대문과 높이 치솟은 추녀가 위압적이었다. 대문 양쪽으로는 행랑채가 줄줄이 서 있고 이만저만한 대가가 아니었다. "허!" 채생은 숨이 탁 막힘을 느꼈다. 여인의 아름다움도 놀랍거니와 또한 이러한 굉장한 집에 살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던 바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큰 집이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저연 모르고 지냈다니 허무한 일이군...... 여긴 어느 재상의 집일까?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여인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며 채생에게는 서 있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채생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뒷짐을 지고 어정버정하였다. 그런데 여인이 들어간 뒤에는 도무지 소식이 없었고, 귀를 기울여도 인기척조차 없었다. 이런 의심이 더럭 드는 터에 대문이 다시 소리없이 열리더니 계집종이 얼굴을 내밀었다. "들어오시와요." 채생은 너무나 반가와서 허겁지겁 계집종이 안내하는 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던 것과 다름없이 집안도 으리으리한 차림이었음은 물론이다. 계집종이 안내한 깊숙한 곳에 있는 방 앞에서 아까의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안에 놓여 있는 집기며 둘러친 병풍은 모두 진기하고 눈이 부셨다. 채생이 꿈을 꾸는 기분으로 자리에 앉으니 곧 술상이 차려져 왔다. 그릇이 모두 옥으로 깎은 듯하였고 담긴 안주도 이름 모를 산해 전미들이었다. 여인은 술을 따라 권하고서 서서히 입을 열었다. "이 몸은 팔자가 기박하여 어려서 부모를 잃고 출가도 못하고 유모를 의지하여 살아왔습니다. 오늘은 적적한 차에 거리에 잠시 나갔다가, 지나가는 말에 놀라 몸을 피하다가 그만 함께 나갔던 유모를 잃고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침 군자를 만나서 은근한 뜻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군자께서 천하게 여기시고 마다고 하시지 않는다면 내내 모시고자 합니다." 채생은 기쁘고 반가와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그저 연방 고개를 끄덕이고 술잔을 기울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였다. 채생은 꿈인지 생신지 분간을 못하는 속에서 입이 벌어지며 술이 취해갔다. 밤도 어지간히 깊어지자 계집종이 들어와 채생의 두루마기와 갓을 벽에 걸고 비단 금침을 깔고 촉대를 들고 나갔다. 천하의 절색을 맞이하는 첫날밤인 것이다. 채생은 길게 숨을 몰아쉬고 더듬어서 여인의 허리를 휘어 감았다. 여인은 순순히 끌려왔다. 여인을 품에 안고 누운 채생은 하늘에라도 오를 것 같았다. "우르릉, 우르릉." 연연한 정을 다하기도 전에 채생은 혼비백산하였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일어나는 요란한 천둥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우르릉, 우르릉" 눈을 번쩍 뜨고 좌우를 둘러본 채생은 너무나 기괴한 일에 숨이 콱 막혔다. 자기는 돌다리 밑에 있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큼직한 돌을 베개 삼고 누워서 다 썩어서 흐느적거리는 거적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개천은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몸도 반은 시궁창 물에 젖어 있었다. "어, 어?" 두루마기와 갓은 돌다리를 버티고 있는 돌기둥의 틈에 아무렇게나 걸려져 있고, 벌써 아침 해는 뜨기 시작한 뒤였다. 아침이 되어 장작을 실은 말수레가 마침 돌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돌다리 위를 말수레가 지나느라고 우르릉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그 소리를 천둥 소리로 알고 놀란 것이며 그 소리 때문에 제 정신이 들어서 눈을 뜬 것이다. "어이쿠!" 채생은 기겁을 하고 일어섰다. "아아니, 내가? 아아니, 이 꼴이? 아아니, 어찌 여기를?" 채생은 허둥지둥 미친 사람같이 뛰어 달아났다. "아아니......" 연방 이런 헛소리를 하며 정처없이 이 거리 저 거리를 뛰어다니며 며칠이 지났다. 여러 날이 지난 뒤에야 겨우 제 정신이 든 채생은 의원을 찾아 침을 맞기도 하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기도 하였다. 또 다시 그런 홀림을 받을까 봐서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다시는 채생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채생이 홀려서 끌려가 누워 있던 돌다리 밑이란 지금은 복개된 개천이었고 그 다리의 이름은 태평교(太平橋)였었다고 한다.
원주 땅에 최가라는 인삼 장수가 있었다. 최가는 원주 땅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근처 일대에서 또 없는 거부였다. 이렇게 거부가 된 것은 인삼 장수로서 장사를 잘한 것만이 아니라 워낙 밑천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가가 애당초 가진 것이 많은 부자라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최가의 어머니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아들 최가를 낳았고 얼마 후에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었다. 어린 아들을 거느린 과부는 근근이 그날그날을 지내고 있었다. 달도 없는 어느 날 밤이었다. 문득 잠을 깨니 아직도 날은 밝지 않았고 게딱지 같은 창너머로 총총한 별이 보였다. "후유......" 과부는 이미 버릇이 된 긴 한숨을 몰아쉬고 돌아누웠다. "덜컥!" 그때 방문이 급작스럽게 열려졌고 어둠 속에서도 건장한 사나이의 움직임이 보였다. 과부는 숨이 콱 막히면서도 본능적으로 치마 허리를 움켜 잡았다. 사나이는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섰다. "누구요?" 그러나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억센 손이 과부의 입을 틀어 막았고 무서운 힘으로 덮쳐들었다. 과부는 간간이 신음하며 허공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릴 따름이었다. 낮에는 밭 일을 하였고 또 어린 아들을 돌보느라고 피로한 몸이라 갱신을 할 수 없었고 또 억센 사나이의 힘을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몸의 자유를 회복하였을 때에는 벌써 겁탈을 당한 뒤였고 그 사나이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과부는 어이없게 욕을 당한 일이 어처구니 없어 한숨을 쉬었다. 홀아비나 나이 많은 총각이 과부를 납치해다가 아내를 삼는 일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달려들어 욕만 보이고 사라진다는 것은 더욱 음흉하고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였을까?" 이런 일을 저지를 만한 놈팡이를 생각해 보았으나 짐작이 가지 않았다. 더구나 그 사나이는 몸이 얼음장같이 차가왔고 뼈 속까지 얼어드는 듯하였다. 스며드는 냉기와 아픔에 과부는 입이 떡떡 벌어졌다. "이상하기도 하다." 겁탈당한 것이 원통한 것보다도 그 알 수 없는 점에 과부는 눈이 둥그래졌다. 어둠 속에서 몇 번이고 뒤쳐 눕다가 밤을 새우고 말았다. 이튿날 밤에도 정체 모를 사나이는 또다시 나타나서 욕심을 채우고 돌아갔다. 역시 어제와 다름없이 과부는 뼈 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냉기와 아픔을 겪었다. "허!"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새벽이 되어서 보니 방 한구석에 비단 한 필이 놓여 있었다. 과부로서는 아직 구경도 하지 못한 귀중하고 값진 비단이었다. "어머나!" 너무나 놀라와서 과부는 지나간 일도 잊고 탄성을 올렸다. 밭 일에 시달린 자기의 손으로는 만지기만 하여도 흠이 갈 것 같은 고운 비단이었다. 밤에 왔던 그 사나이가 놓고 갔음이 분명하였다. "자식 하나 데리고 근근히 살아가는 과부를 겁탈하고서 이 비단을 던져준단 말인가? 이런 비단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더구나 이 근처 마을에 사는 사람은 아닌가 본데." 어쨌든 과부는 비단을 농 안에 넣었다. 그 정체 모를 사나이는 매일 밤 과부 앞에 나타났다. 문고리를 잠가 보아도 소용이 없었고 문에 못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바람같이 나타나 서슴지 않고 방문을 열고 들어오므로 과부는 몸을 방어할 수가 없었다. 또한 매일 밤 돌아갈 때에는 비단이나 금은 보화를 두고 갔다. 하루하루가 지남에 따라 비단과 금은 보화는 농에 가득찼고 드디어 광에 가득차기 시작하였다. "도적일까?" 과부는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혹시나?" 과부의 머리에는 그 사나이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거나 도깨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잠자리를 같이 할 때마다 느끼는 뼈속까지 스며드는 냉기와 아픔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과부가 넌지시 물었다. "이렇게 서슴지 않고 다니시는 분으로도 세상에 무서운 것이 있습니까?" "허허......" 사나이는 호탕하게 웃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가서 다소 너그럽고 가까워지기도 한 사나이였다. "아무것도 없겠죠?" "허허...... 그렇지만두 않어. 나두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게 있기는 있지." "그게 뭐예요?" "나는 무엇이나 누런빛이 싫어 누런빛만 보면 머리가 아파지고 딱 질색이란말야." 과부는 귀기울여 듣고 이 말을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하였다. 과부로서는 생각하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광에 가득하게 비단과 금은 보화가 쌓여 있어 다시 없는 부자가 된 것은 기꺼운 일이었다. 또 잠자리를 같이 할 때에 느끼는 뼈 속까지 스며드는 냉기나 아픔도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귀신과의 접촉을 오래도록 계속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길하지 못하였다. 다음날 과부는 누런빛으로 된 옷을 입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얼굴과 몸에도 누런빛을 칠하였고 집 기둥이나 벽에도 누런 물감을 풀어 칠하였다. 준비가 되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날이 어둡자 그 사나이는 역시 나타났다. 서슴지 않고 쑥 들어서려다가 크게 놀라서 물러섰다. "허, 이게 왠일인가?" 과부는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등골에 식은 땀을 흘리며 오들오들 떨기까지 하였다. 그 사나이는 멀찌감치 서서 천천히 말하였다. "이제 내가 싫어진 모양이로군...... 아마도 우리의 인연이 끊어졌기에 이런 일이 생겼나보오." 과부는 다소곳이 듣고만 있었다. "난 이제 여기를 떠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고 잘 사시오. 내가 이제까지 가져다 준 것은 그대로 주고 갈 것이니 그것을 밑천 삼아 잘 살구려." 사나이는 별로 노하지도 않고 말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휴우......." 과부는 식은 땀을 흘리고 떨기만 하다가 비로소 한숨을 몰아 쉬었다. 너그러운 말을 듣기는 하였으나 과부는 겁에 질려서 그후도 쉽게 누런빛 옷을 벗을 수가 없었다. 오랜 시일이 지난 뒤에야 몸에 칠하였던 누런빛을 지웠고 집에 칠하였던 것도 지웠다. 그 후 그 사나이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광에 쌓여 있는 비단과 금은 보화로써 과부는 근처에서는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는 큰 부자가 되었다. 과부의 아들 최가는 이 밑천으로 인삼 장사를 시작하였고 재산은 날이 갈수록 더욱 늘어만 갔다. 과부는 아들 최가를 거느리고 부자로 잘 살았고 나이 팔십이 되도록 명도 길었다. 원주 마을에서는 누구나 최가 집안을 가리켜서 귀신이 제물을 가져다 준 집안이라고들 하였다.
횡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한 여인이 출가하여서 며칠이 되지 않아서였다. 하루는 젊은 부부가 곤히 자고 있는데 방문이 쓱 열리더니 키가 육 척이 넘는 사나이가 들어섰다. 여인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옆에서 자는 신랑을 깨우기도전에 그 사나이는 덮쳐들었다. 너무나 뜻하지 않았던 일이요, 또 삽시간에 당하는 일이라 속절없이 강간을 당하고야 말았다. "저, 저런!" 사나이가 욕심을 채우고 사라질 무렵에야 신랑은 눈을 떴다. 눈이 뒤집혀 소동을 일으쳤으나 그 사나이는 벌써 사라진 뒤였다. 시집 온 지 얼마되지 않는 여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나이에게 강간을 당하였으니 집안이 물 끓듯 소란하여졌다. 더구나 신랑이 옆에서 자고 있었음에도 당하고 만 일이니 더욱 망측하였다. "집안이 망하려니까." 노인들은 혀를 찼고, 신랑은 이를 갈았다. 더구나 여인 자신은 얼굴을 쳐들지도 못하고 그저 죽고 싶을 따름이었다. 다음날 밤에도 키가 육 척이 넘는 사나이는 또 나타났다. 옆에 누웠던 신랑은 주먹으로 때려 죽이려고 하였다. "어, 어어......" 그러나 목구멍에서 고함도 나오지 않았고 무엇에 눌린 듯 팔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사나이는 유유히 여인을 강간하였고 신랑은 눈을 멀뚱멀뚱 뜨고서 이 망측한 꼴을 바라보고 있을 도리밖에 없었다. 날이 밝자 어제보다도 더욱 큰 소동이 벌어졌고 집안에서 힘께나 쓰는 젊은이들이 방문 밖을 지키기도 하였다. "흥, 죽일놈, 어디 또 나타나만 봐라. 박살을 내고 말 테다." 젊은이들은 손에 손에 도끼며 낫을 들고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밤이 되자 그 사나이는 유유히 나타나서 지켜 섰는 사람들에게는 아랑곳없이 여인을 강간하였다. 젊은이들은 넋을 잃은 듯 멀거니 섰을 따름이었고, 그 사나이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제 정신을 들었다. "아무래도 이것은 귀신의 짓이야." "사람이고서야 어디 그럴 수가 있나?" 기가 막혀서 서로수군거렸다. 더구나 여인은 강간을 당할 때에 참기 어려운 아픔을 당한다는 말로 미루어 더욱 귀신일 것이라는 짐작이 짙었다. 매일 밤 귀신이 여인의 몸을 노리는 것이었다. "귀신이 하는 짓이라면 어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생각되어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밤마다 나타났다. 이번에는 중을 불러다 경을 읽어 보았으나 여전히 효험이 없었다. 누가 있거나 말거나 거리낌없이 귀신은 나타났다. 심지어는 대낮에도 나타나서 여인을 강간하기가 일쑤였다. 이제는 대책이 없어 서로 쳐다보고 한숨을 쉬기만 하였다. 하루는 여인의 오촌 당숙이 다니러 왔다. "저 저런!" 그 귀신은 서슴지 않고 또 나타났다. 그러나 여인의 당숙을 보자 머뭇머뭇 하다가 그냥 돌아가 버렸다. 귀신이 나타나서 여인을 강간하지않고 사라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허, 아마 귀신이 이 어른을 무서워하나 보다." "그런 줄 알았더라면 진작 이 어른께 집에 와서 계십자고 할 것을 그랬어......" 식가둘은 오래간 만에 숨을 몰아 쉬었고 십분 다행으로 여겼다. "아주 그 뿌리를 뽑아 버리는 도리가 없을까?" 여인의 당숙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한 꾀를 생각해 내었다. 즉 그 귀신이 오거든 실을 꽨 바늘을 귀신의 옷에 꽂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을 길게 풀어 주면 그 귀신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계략을 가르쳐 주고는 여인의 당숙은 잠시 몸을 피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귀신은 나타나서 여인을 강간하였다. 여인은 당숙이 가르쳐 준 대로 실을 꽨 바늘을 귀신의 옷자락에 꽂았다. 날이 밝자 여인의 당숙은 나타났고 온 식구들이 줄줄이 풀어진 실을 따라갔다. 실은 집의 앞쪽에 있는 숲으로 들어가 그 끝이 어느 땅속에 묻혀져 있었다. "이 속임에 틀림이 없다." 모두들 덤벼들어 땅을 파니 자그마한 보랏빛 구슬이 나타났다. 그 광채가 대단하여 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하였다. "아니, 이 구슬이 그런 짓을 하였단 말인가?" "아냐. 아마도 그 귀신이 이 구슬로 모양을 바꾸고 있는 것일 거야." 여인의 당숙은 서슴지 않고 구슬을 집어 소매 속에 넣어 버렸다. 자기가 알아내었으니 자기가 가지고 있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 후로는 다시는 여인을 강간하러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기에 모두들 안심하였다. 하루는 여인의 당숙 집에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밤이 깊어서 대문을 두드리기에 나가 보았더니 키가 육 척이나 넘는 사나이가 섰다가 공손히 절을 하였다. "뉘시오?" 여인의 당숙은 눈이 둥그래져서 물었다. "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허, 청이라? 이 밤중에 무슨 청이오?" "다름이 아니오라 일전에 숲속 따에서 파내신 구슬을 돌려 주십사고 왔습니다." 그제서야 여인의 당숙은 이 사나이가 귀신이라는 것을 짐작하였다. 그러나 담이 커서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태연히 말하였다. "댁이 뉘신지 모르겠으나 못하겠소." "그게 소인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니 꼭 돌려보내 주십시오." "못하겠소." 몇 번 실랑이를 하다가 여인의 당숙은 대문을 요란스럽게 닫고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밖은 잔잔하였다. 그런 지 며칠 후에 귀신은 또 찾아왔다. "무슨 일로 또 왔소?" "예. 그 구슬을 줍시사고 왔습니다." "못하겠다니까." 여인의 당숙은 딱 잡아떼었고, 귀신은 연방 허리를 굽히며 품에서 또 하나의 구슬을 꺼내었다. 크기는 비슷하였으나 빛은 검은 것이었다. "그것을 돌려 주시면 대신 이것을 드리겠습니다." "바꿀 필요가 뭐 있소? 아무 거나 가졌으면 되었지." "이렇게 애절합니다 바꿔 주십쇼." 귀신은 연방 절을 하였으나 여인의 당숙은 냉정하게 바라보기만 하였다. "시끄럽군!" "제발 덕분에......" 여인의 당숙은 귀신이 들고 있던 검은 구슬마져 빼앗았다. "시끄러워! 모조리 내가 가질 것이니 어서 돌아가시오." 검은 구슬까지 빼앗긴 귀신은 넋을 잃고 통곡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후에 여인의 당숙은 크게 술에 취하여 길에 쓰러져 잠을 잔 일이 있었다. 깨어 보니 가지고 다니던 구슬이 다 없어졌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귀신이 찾아갔다고들 하였다.
원효사카페에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