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차례>
1. 맹물잔치 - 나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1
2. 누워서 먹고 사는 사람 - 게으름뱅이의 깨달음 2
3. 하늘 나라 밭 구경 -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나가는 재치 3
4. 떡자루와 돈 자루 - 무엇이 중한 것인가 4
5. 황도령의 깨달음 - 진정한 친구란 5
6. 꽃이 된 어머니 -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의 차이 7
7. 소원을 들어주는 그림 - 욕심의 한계는 어디까지? 9
8. 소가 된 게으름뱅이 -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던 어른들 말씀이 아마 여기서... 11
9. 좁쌀 한 톨로 장가든 총각 13
10. 저승에 갔다 온 이야기 - 좋은일 많이 하면서 삽시다!!! 14
11. 자린고비 이야기 15
12. 화공의 사랑 - 나팔꽃 <중국> 16
13. 팔이 넷 달린 사내 - 욕심이 부른 화 <인도> 18
14.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 까닭 - 구두쇠 영감 부부의 시기심 <베트남> 19
15. 어느 족제비의 죽음 - 여운이 있는 이야기, 오해? 편견? <인도> 21
16. 병아리 도둑이 낙타 도둑 된다 - 습관의 무서움 & 진정한 교육 <이란> 22
17. 사람이 늙는 진정한 이유 - 행복의 중요성 <이란> 23
18. 돌노적 부자와 쌀노적 부자 25
19.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나 27
20. 형님, 그 논 저를 주시죠 - 형제간 우애 28
21. 멀리가는 향기 29
22. 닭이 된 독수리 - 인디언 민화에서 - 30
23. 진정한 충언 31
24. 세가지 질문 - '가장 중요한 때'란? <톨스토이 민화> - 32
25. 어떤 광대 33
26. 보다 기쁜 것 34
27. 사소한 것의 소중함 35
28. 빈산에서 36
29. 거룩한 성배 - 크리스찬 예화에서 - 37
30. 지옥에 간 심술쟁이 38
31. 살아있는 구유 39
32. 뱀의 보은 40
33. 두벌 가죽 (두번째 가죽) 42
34. 장길손 - 백두산과 개마고원이 생긴 유래? 44
35. 잇새로 재물이 샌다. 46
36. 좋은 말을 해서 얻은 색시 47
37. 호박장군 48
38. 범을 뒤집어잡다. 50
39. 남만 믿다가 51
40. 좋은 일 하면 오래 살고 장가든다오 52
41. 상인의 쇠막대기 53
42. 포도밭의 여우 55
43. 금잣대와 화수분 56
44. 시동생을 살린 형수의 재치 58
45. 도둑과 의형제를 맺은 사람 60
46. 한석봉과 기름 장수 61
47. 우정의 길 62
48. 씨내리한 아버지를 지혜로 물리친 아이 64
49. 자기 밥을 방바닥에 던져놓은 승려들을 혼내준 어린 궁예(弓裔) 65
50. 술병 하나를 더 깨고 살아남은 계집종 66
51. 시아버지를 잡아먹으려는 호랑이에게 자기 아이를 주고 온 효부 67
52. 호환당할 운이라는 말에 홀어머니를 놀라지 않게 하려고 호랑이 굴을 찾아갔다가 살아난 효자 68
53. 상가승무노인탄(喪歌僧舞老人嘆)의 효부 효자 69
54. 신문고를 울리고 갖은 고생 끝에 살인 누명의 아버지를 살린 홍(洪) 효자 70
55. 고기 먹고 싶다는 눈먼 시어머니에게 지렁이를 구워드려 눈을 뜨게 한 가난한 효부 71
56. 홀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손발을 씻겨주게 한 현풍 곽(郭) 효자 72
57. 어머니가 때리는 매가 약하게 느껴져 운 효자 73
58. 아내의 계교로 고문이 범인을 만든다는 것을 알고 포도대장직을 그만둔 신여철(申汝哲) 74
59. 유난히 물이 맑아 독룡이 있음을 알고 왜선에게 내어주어 크게 격파시킨 이순신(李舜臣) 75
60. 이런 벼락 팔자 고침이 다 있나 76
1. 맹물잔치 - 나하나쯤이야... 하는 생각
옛날 어떤 마을에 가난한 훈장님이 있었다. 어느날 이 훈장님이 생일을 맞았는데, 생일을 차려줄 가족들이 없었다. 그래서 서당 아이들이 훈장님을 위해 술잔치를 마련하기로 했어.
"우리 모두 집에서 술을 한 되씩 가져오자."
"그래, 그렇게 해서 한 되 한 되 모이면, 나중에는 큰 독에 가득찰거야."
드디어 훈장님의 생일날이 됐다. 아이들은 약속한 대로 술을 조금씩 모아서, 큰 독을 한가득 채워놨다. 이걸 보고 동네 어른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 기특하기도 하구나."
하지만 잔치가 시작되고, 어른들이 술을 한 잔씩 마신 뒤에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라, 술맛이 왜 이렇지?"
"쩝쩝....이건 그냥 맹물이잖아."
어른들 말대로 술에서는 술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이걸 보고 한 아이가 속으로 생각했지. '이상하다. 내가 아까 술 대신 맹물을 부었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애들이 가져온 술까지 모두 맹물이 되었나?'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술을 부을 때, 몰래 물을 부었던 거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했던 아이는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건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동네사람들이 어찌된 일인지 짐작을 하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훈장님은 웃으며, 아이들이 마련한 잔치를 즐기자 하셨다.
이렇게 해서 즐겁고 신나는 맹물 잔치를 벌였단다.
(주)와이즈북. 신정민 저 [머리가 좋아지는 동화]
2. 누워서 먹고 사는 사람 - 게으름뱅이의 깨달음
옛날 어떤 마을에 지독한 게으름뱅이가 살았다. 너무너무 게을러서, 밥 먹을 때도 아내가 떠 먹여 줘야 할 정도였다. 이렇게 아무일도 하지 않고 방에만 누워 있으니, 집안이 점점 더 가난해져 갔다.
하루는 이 게으름뱅이가 곰곰이 생각하기를, 누워 있기만 해도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거였다. 그래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당신은 정말 복을 타고났소이다.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해도, 저절로 먹고 살 수 있겠구려."
하는 거였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집으로 왔다.
어느 날 게으름뱅이는 커다란 배나무 밑을 지나가게 됐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탐스런 배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옳거니, 저 배맛 좀 보자.'
게으름뱅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배나무 밑에 입을 쫙 벌리고 드러누웠다. 이렇게 하고 있으면 저절로 배가 떨어져서 입 안으로 쏙 들어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놈의 배는 엉뚱한 곳으로만 뚝뚝 떨어지네. 게으름뱅이 입 속으로는 영 들어오질 않고 말이다. 그때 게으름뱅이의 삼촌이 나타나서 손으로 따지 않고 배맛을 보려 한다며 호통을 치셨다.
게으름뱅이는 할 수 없이 일어나서 나무 위로 올라가 배를 뚝 따서 먹었다. 손수 따먹는 게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입을 벌리고 누워만 있는 것보단 훨씬 빠르고 좋았다.
이제 해가 바뀌고 봄이 되어, 농사를 지어야 할 때가 됐다. 남들은 모두 논밭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는데, 게으름뱅이는 마냥 집안에 틀어박혀 누워만 지냈다. 그러자 또다시 삼촌이 찾아와 꾸지람을 하셨다.
"이 녀석아! 아무리 누워서 먹고 살 팔자라도, 사람이 제 구실을 하려면 땀을 흘려야지. 당장 나가서 일하지 못해!"
게으름뱅이는 할 수 없이 들에 나가 일을 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그렇게 부지런히 일하다 보니, 아주 재미없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가을에는 게으름뱅이네 밭에도 풍년이 들어 잘 살게 되었다.
(주)와이즈북. 신정민의 [머리가 좋아지는 동화]
3. 하늘 나라 밭 구경 -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나가는 재치
옛날에 아주 똑똑한 소년이 있었다. 웬만한 어른보다 생각이 훨씬 깊은 소년이었다. 아버지는 높은 벼슬을 가진 분으로 얼마 전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중국에 다녀오신 뒤부터 끙끙 앓는 것이었다.
소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계시는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걱정거리를 여쭈었다.
중국에 갔을 때 그들이 하는 말이다.
"그 좁은 땅에서 살려니 얼마나 답답하겠고. 저 들판을 보시오. 저 들판에서 나는 곡식과 채소만으로도, 조선 백성 모두를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이오. 만리장성이라고 들어봤소? 성의 길이가 만리나 된다고 해서 만리장성이라 한다고. 당신네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성이지요. 하하"
이런 말들로 인해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버지는
"허허. 그까짓 걸 가지고 뭘 그러시오. 우리 나라엔 하늘 나라에도 밭이 있는데."
라고 말해버렸고, 중국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석달 뒤 조선을 방문키로 했다.
이제 그 날이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였다.
소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아버지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아버지도 무릎을 탁 쳤다.
드디어 중국 사람들이 오는 날이 되었다.
아버지는 이른 아침부터 환갑이 넘은 노인들을 성문 앞으로 불러모아 잔치를 벌였다. 노인들은 맛있는 음식과 시원한 술을 먹으며 즐겁게 놀았다. 절로 노랫소리가 흥겨워지고 어느새 춤판도 벌어졌다.
그 동안 소년은 그 잔치판 옆으로 동네 조무래기들을 불러모았다.
"얘들아. 여기서 큰 소리로 울도록 해라. 그러면 이따가 엿을 한 아름씩 줄게. 알았지?"
소년의 말에 아이들은 빽빽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아버지와 소년은 중국 사람들을 맞이했다.
성문앞을 지나던 중국 사람들이 흥겹게 놀고 있는 노인들과 그 옆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노인들을 가리켰다.
"저 노인들은 하늘 나라 밭으로 일하러 갔다가 사흘 전에 돌아온 사람들이오. 하늘 나라 밭은 너무 멀어서, 가는 데 30년 오는데 30년 걸린다오. 60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으니 얼마나 기쁘겠소! 그래서 저렇게 잔치를 벌이고 있는 거라오."
"그리고 저 아이들은 .... 하늘 나라 밭을 매러 가는 길이라오. 이제 가면 60년 뒤에나 다시 올 수 있는데 어찌 서럽지 않겠소."
중국사람들이 머뭇거리자 아버지가 일부러 중국 사람들의 팔을 잡아 끌며
"자. 우리도 갈 길이 바쁘니 어서 서두릅시다."
그러자 중국 사람들은 저마다 슬슬 꽁무니를 빼며 허둥지둥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주)와이즈북 [100명의 선생님이 골라 뽑은 대표 전래 동화]
4. 떡자루와 돈 자루 - 무엇이 중한 것인가
돈이 최고라고 믿는 부자 영감이 있었다. 그는 돈이 생기면 얼른 커다란 자루에 넣었고, 그렇게 한번 들어간 돈은 다시 나올 줄 몰랐다. 영감은 그 자루를 자기 목숨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겼다.
그 영감네 집에는 마음씨가 착하고 우직한 머슴이 하나 있었다. 영감이 일한 품삯 대신 옥수수떡을 주어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머슴은 먹다가 떨어진 떡 부스러기를 자루에 담아 모으기까지 했다. 영감이 돈을 자루에 모으듯 말이다.
그것을 본 영감이 머슴을 비웃었다.
"그까짓 옥수수 떡 부스러기가 뭐라고 자루에 담아? 동전 한 닢도 안되는 걸 가지고.."
하지만 머슴은 영감의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떡자루를 더욱 소중히 여기며 잘 때 배고 자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해 늦여름. 갑자기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찌나 비가 많이 내리는지 하루만에 논과 밭은 물론이고 집까지 물에 잠겼다. 영감과 머슴은 물을 피해 허겁지겁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각각 돈 자루와 떡 자루를 손에 쥐고 있었다.
어느 새 저녁이 되어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잠시 뒤 머슴은 떡 자루에서 떡을 한 움큼 집어먹었다. 그걸 본 영감이 입맛을 다셨다.
"너 혼자만 먹니? 나도 좀 줘."
"이까짓 걸 소중하게 여겨 머슴 노릇이나 하고 산다면서유?"
머슴의 말에 영감은 입을 다물었다.
이튿날이 되자, 머슴은 또 떡 자루에서 떡을 한줌 집어먹었다. 영감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얘야, 조금만 다오."
그러자 머슴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자, 돈을 줄게."
영감은 돈 자루에서 동전 한 닢을 꺼냈다. 그러나 머슴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영감이 동전을 하나 더 꺼내도 꿈쩍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머슴을 노려보던 영감은 단단히 마음먹은 듯 돈 자루를 벌렸다.
"옛다. 다섯 닢이다. 이 정도면 떡 한 시루 값이야."
그래도 머슴은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그날 밤, 영감은 배가 너무 고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밤새 뒤척거리던 영감은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아침 햇살이 내리 쬐기 시작했다. 언제 일어났는지 머슴은 냠냠거리며 떡 부스러기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 소리에 영감은 눈을 번쩍 떴다. 더 이상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다.
"옛다. 백 냥이다. 이 정도면 논도 살 수 있어. 자, 떡 좀 다오."
영감은 머슴에게 돈을 던지며 떡 자루를 빼앗으려 했다. 하지만 머슴은 돈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제 천냥을 주었다. 그래도 머슴은 대꾸도 없이 잠자코 떡 부스러기만 먹었다. 이제 영감의 눈엔 떡으로 불룩해진 머슴의 볼만 보였다. 또 귀엔 '쩝쩝' 떡 부스러기를 씹는 소리만 들렸다. 영감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돈 자루를 통째로 머슴에게 던졌다. 그제야 머슴은 씩 웃으며 떡 자루를 벌려 영감에게 내밀었다. 영감은 허겁지겁 떡 부스러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머슴이 속으로 말했다.
'굶어 죽은 귀신이 따로 없군. 떡 부스러기가 동전 한 닢보다 못하다고? 인제 이 떡 부스러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아시겠지요. 영감 나으리.'
(주)와이즈북 [100명의 선생님이 골라 뽑은 대표 전래 동화]
5. 황도령의 깨달음 - 진정한 친구란
"꺼억, 잘 먹었다."
황도령은 오늘도 혀가 꼬부라질 정도로 술에 취해 걸음마저 제대로 걸을 수 없었다. 황도령은 비틀거리며 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황도령은 이렇게 날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만 마시고 다녔다. 황도령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몹시 걱정되었다.
'함께 술 마시고 노는 친구들만 좋은 친구라고 믿으니 큰일이군. 큰일이야.'
그러던 어느날, 술에 취해 돌아온 황도령을 아버지가 불렀다.
"네 친구들이 그렇게 좋은 친구들이란 말이지. 그럼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시험해 볼까?"
아버지는 곧 커다란 돗자리에 죽은 돼지를 둘둘 말아 가지고 왔다.
"좋은 친구란 어려울 때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도와주는 친구야. 네 친구들은 좋은 친구라니까 네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몸과 마음을 다해 도와주겠지?"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그러자 아버지는 황도령에게 죽은 돼지를 지게에 지고 친구집으로 가게 했다. 친구집에 다다르자 황도령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문을 두드렸다.
"이 밤중에 누구야?"
한참 만에야 친구가 눈을 비비며 나왔다. 그러자 황도령이 다급하게 말했다.
"이봐 친구! 내 부탁 좀 들어주게."
"이 밤에 무슨 일이야?"
친구는 졸려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사람을 죽였어.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그러자 친구는 물벼락이라도 맞은 듯 화들짝 놀랐다.
"뭐. 뭐라고? 그런데 왜 우리 집엘 왔나?"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있어야지. 부탁이네. 며칠 동안만 이 시신을 숨겨주게."
황도령은 지게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친구는 황도령과 지게를 번갈아 보기만 했다. 황도령이 답답한 듯 다시 말했다.
"내 반드시 사흘 안에 이 시신을 도로 가져가겠네."
그러나 친구는 쌀쌀맞게 말했다.
"미안하네. 우리 집에 남는 방이 없어서...."
친구는 문을 탕 닫고 들어가 버렸다. 황도령은 너무나 기가 막혔다. 친구가 이렇게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황도령은 아버지 보기가 창피해 얼굴도 들 수 없었다. 다른 친구를 찾아가 보았다. 황도령이 걸음을 옮기자, 아버지는 말없이 황도령을 따라갔다. 두 번째 친구집 대문을 두드렸다.
"아함. 아니 어떤 녀석이야. 이 밤중에 문을 두드리는 게."
두 번째 친구가 문을 열고 나오자, 황도령이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두 번째 친구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뭐라고? 그걸 나보고 맡으라고. 아니, 내가 왜 그런 일에 휘말리나."
황도령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아버지. 한 친구가 더 있어요. 그 친구는 반드시 제 부탁을 들어줄 거예요."
황 도령은 세 번째 친구 집으로 갔다. 그러나 세 번째 친구는 문도 열지 않고 소리쳤다.
"아휴. 너무 취해 더 이상 술은 못 먹겠네. 내일 마시세."
황도령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눈물마저 핑 돌았다. 그때 아버지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럼, 이번엔 내 친구 집으로 가 보자꾸나."
황도령은 말없이 아버지 뒤를 따랐다.
"여보게. 날세. 문 좀 열어 주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문이 열렸다. 아버지의 친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맨발로 달려나온 것이다. 아버지는 친구에게 황도령과 똑같은 부탁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의 친구는 선뜻 시신을 맡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두 손을 꼭 잡는 것이었다.
"분명 실수였을거야. 어서 함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해 보세."
그것을 본 황도령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이제부터 놀기만 하고 술만 마시는 친구들과는 어울리지 않을 거예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버지 친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자 아버지는 친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아버지의 친구도 껄껄껄 웃었다.
"허허. 자네 아들이 큰 것을 깨달았구려."
(주)와이즈북 [100명의 선생님이 골라 뽑은 대표 전래 동화]
6. 꽃이 된 어머니 -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의 차이
어느 마을에 딸 셋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남편이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혼자서 딸들을 길렀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 딸들이 가엾기만 했다. 그래서 아버지 몫까지 정성을 다해 딸들을 보살폈다.
어느덧 딸들이 모두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벌써 우리 애들이 이렇게 컸구나!'
어머니는 다 자란 딸들이 자랑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모두 시집을 가 버리면 어머니는 혼자 남을 테니까.
그래도 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을 누르고 딸들을 결혼시켰다. 딸들을 한 명씩 시집보낼 때마다 땅을 팔고 소도 팔았다. 그렇게 시집을 보내자, 어머니에게는 허름한 오두막 한 채만 남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딸들 걱정만 했다.
'하느님. 우리 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의 머리는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세었다. 이빨도 다 빠져 버렸다. 어머니는 너무나 늙어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밥도 해먹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너무나 서글펐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외롭게 지내던 어느날, 어머니는 문득 오래 전에 시집간 큰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 큰애는 날 반갑게 맞을거야.'
어머니는 큰딸의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 웬일이세요!"
큰딸은 어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를 위해 닭도 잡아 상을 잘 차렸다.
'역시, 내 딸이야. 왜 진작 딸과 함께 살 생각을 못했을까.'
어머니는 큰딸 집에서 마음 편히 지냈다. 그랬던 어느날 아침상을 차려 온 큰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언제까지 계실 생각이세요?"
숟가락을 들던 어머니는 어리둥절해서 큰딸을 쳐다보았다.
"그만 집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아요?"
어머니는 밥 한술도 뜨지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제는 내가 귀찮아진 게로구나.'
어머니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밥도 짓지 못할 만큼 늙은 몸으로 어떻게 혼자 살아갈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궁리 끝에 둘째 딸에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둘째야, 둘째야."
"아니, 어머니. 웬일이세요?"
둘째도 어머니를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둘째의 태도는 처음과 달랐다.
"어머니, 왜 이렇게 밥을 흘리세요?"
"가만히 앉아 있지만 말고, 마당이라도 좀 쓸어요."
둘째는 이렇게 어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인데도 어머니 방에 불도 제대로 피우지 않았다. 어머니는 모두 잠든 밤에 소리 죽여 울었다. 그러던 어느날 밖은 금새라도 눈보라가 몰아칠 것 같았다.
"어머니. 이제 그만 제발 돌아가세요. 아이들 키우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어머니 시중까지 들어요. 제 생각도 해주셔야지요."
둘째는 이렇게 말하며 어머니를 쫓아냈다.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짚은 손은 벌써 꽁꽁 얼어붙었다.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어머니의 머리 속에 셋째가 떠올랐다. 하지만 어머니는 선뜻 셋째의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셋째도 제 언니들처럼 자기를 돌보려고 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아냐. 셋째는 날 구박하지 않을지 몰라.'
이렇게 생각한 어머니는 셋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셋째 집으로 가려면 높은 고개를 넘어야 했다. 어머니는 힘겹게 고개를 올랐다. 고개를 넘던 어머니가 그만 쌓인 눈에 미끌어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고개만 넘으면 되는데...'
어머니는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몸이 이미 추위에 꽁꽁 얼어붙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몸 위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머니의 몸은 차디차게 식어 갔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
그때 어디선가 어머니를 부르는 셋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셋째는 어머니가 언니들 집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셋째는 언니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늙은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신이 밉기도 했다.
셋째는 눈보라를 헤치며 고개를 올랐다.
누군가 Tm러져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셋째는 마음을 졸이며 그 쪽으로 뛰어갔다. 그것은 눈이 소복히 쌓인 어머니의 시신이었다. 셋째는 어머니를 부여안고 울부짖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 알기에 셋째의 울음소리는 눈보라 사이로 퍼졌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어느날 셋째는 어머니 무덤을 찾았다. 무덤엔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 있었다. 그런데 무덤 앞에 처음보는 꽃 한송이가 피어 있었다. 꽃은 길고 하얀 꽃술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꼭 어머니의 새하얀 머리카락 같구나!'
그 뒤부터 이 꽃을 할미꽃이라 불렀다.
(주)와이즈북 [100명의 선생님이 골라 뽑은 대표 전래 동화]
7. 소원을 들어주는 그림 - 욕심의 한계는 어디까지?
옛날 어느 시골 마을에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너무 가난해서 아이들에게 끼니도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 선비는 궁리 끝에 한양에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친구는 어려서 헤어졌는데, 무엇이든 서로 돕기로 굳게 약속한 사이였다.
'그 친구는 우리 약속을 잊지 않았을 거야.'
친구의 집을 찾은 선비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친구의 집은 고래등같이 컸다.
"자네가 이렇게 부자가 되었을 줄은 몰랐네."
그러면서 선비는 자기 형편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구는 종이를 가져와 학을 한 마리 그려 주었다.
"아니. 이 따위 그림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선비가 기분이 나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친구는 씩 웃으며, 학의 다리를 회초리로 치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말했다. 단, 하루에 한번만 치라고 했다.
선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친구의 집을 나섰다.
선비는 친구의 말이 너무 궁금해 얼른 가까운 주막으로 들어가 방을 하나 잡고는 회초리를 구해다 학의 다리를 한 번 후려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학의 다리를 때리자 학의 궁둥이에서 돈 꾸러미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선비는 계속해서 학의 다리를 회초리로 내리쳤다. 그럴 때마다 학의 궁둥이에서 돈 꾸러미가 떨어졌다. 그런데 선비가 학의 다리를 스무 번쯤 때렸을 때였다. 선비가 너무 많이 때리는 바람에 학의 다리가 부러졌다. 선비는 다시 친구를 찾아갔다.
"그러게 내가 뭐랬나? 하루에 한 번만 치라고 하지 않았나."
친구는 혀를 끌끌 차며 이번에는 항아리를 그려 주었다. 똑똑 두드리면 돈이 나올 것인데, 하루에 꼭 한 번만 두드리라고 일렀다.
선비는 입을 헤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주막으로 갔다. 방문을 잠그고 항아리를 두드리자 정말 돈이 나왔다.
'에이. 하루에 한 번씩 두드려서 언제 많은 돈을 모아.'
이렇게 생각한 선비는 항아리를 마구 두드렸고, 두드릴 때마다 돈이 나오자 신이 난 나머지 항아리를 너무 세게 두드렸나 보다. 항아리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선비는 깨진 항아리만 멍하니 바라보다 친구를 또 찾아갔다.
친구는 다시 선비이게 그림을 그려 주었다. 작은 궤짝이었다. 궤짝에 손을 넣으면 돈이 나올 것이고, 하루에 한 번만 손을 넣어야 한다고 일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거라고 말했다. 궤짝 그림을 받아 든 선비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선비는 또 주막으로 들어가 궤짝 속에 손을 넣어 보았다. 그러자 돈이 한 움큼 잡혔다.
'야. 이건 학의 다리처럼 부러지지도 않고, 항아리처럼 깨질 염려도 없네.'
이렇게 생각한 선비는 밤새도록 궤짝에 손을 넣었다 뺐다 했다.
그런데 이날. 나랏돈을 넣어 두는 창고를 지키는 사람이 이상한 일을 겪게 되었다. 창고 창문으로 돈 꾸러미가 나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놀란 창고지기는 돈 꾸러미를 따라갔다. 돈 꾸러미는 어느 주막 앞에서 사라졌다. 주막 안을 살펴보니 한 구석 방에 어떤 선비가 그림 속의 궤짝에서 돈을 한 움큼씩 집어내는 것이 아닌가.
'저 놈이 나랏돈을 훔쳐 가는 것이었구나!'
창고지기는 병사들에게 연락해 선비를 잡게 했다.
높은 관리가 선비를 노려보며, 어디서 그런 그림을 구해 나랏돈을 훔쳐냈는지 물었다. 선비는 겁에 질려 더듬더듬 말했다. 선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리는 그 친구를 잡아오게 했고, 선비와 친구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친구가 관리에게 사정하듯 말했다.
"나으리 말씀대로 저는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그러나 죽을 때 죽더라도 그림 하나만 그리고 죽게 해 주십시오."
관리는 친구에게 붓과 종이를 가져다 주었고 친구는 곧 종이에 커다란 말을 한 마리 그리기 시작했다. 붓을 놓았을 때 그림 속의 말이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큰 소리로 울며 그림 밖으로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뭐하나? 어서 타게."
어느새 말 등에 올라탄 친구가 선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선비도 정신을 차리고 말 위에 올라타곤 쏜살같이 달렸다.
"나 때문에 큰일날 뻔했군."
"그러게 내가 뭐랬나? 하루에 한 번만 궤짝에 손을 넣으라고 하지 않았나."
친구는 이렇게 말하며 더욱 빠르게 말을 몰았다. 그 뒤 이들은? 어찌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대요.
(주)와이즈북 [100명의 선생님이 골라 뽑은 대표 전래 동화]
8. 소가 된 게으름뱅이 - 먹고 바로 누우면 소 된다던 어른들 말씀이 아마 여기서...
옛날 어느 마을에 굉장한 게으름뱅이 소년이 살았다. 밥먹는 것조차 귀찮아서 굶는다고 할 정도였다. 소년은 날마다 방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기만 했다. 그러다 코를 골며 자는 것이 소년의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의 게으름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드디어 화를 내셨다. 소년의 궁둥이를 마구 내리치기 시작하셨다. 소년은 그제야 부스스 눈을 뜨며 겨우 일어났다. 하루 종일 야단만 맞겠다 싶어 어기적어기적 집을 나섰다.
집 밖에 펼쳐진 논에서는 소년 또래의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팔을 걷어부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의 눈에 뛰면 분명 일을 거들라고 할거야.'
이렇게 생각한 소년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뒷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을 오르던 소년이 이마의 땀을 닦을 때였다. 산기슭 풀밭에 황소 한 마리가 누워있는 것이었다.
'저 소는 저렇게 누워만 있으니 정말 좋겠다! 차라리 소로 태어날걸. 그럼 일하라고 야단치는 어머니도 없을 게 아냐?'
그때 소년의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부스럭부스럭... 탕탕...
소리나는 쪽으로 가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쇠탈을 만들고 있는데, 이걸 쓰는 사람은 매일 먹고 자고 놀기만 하면서 지낼 수가 있다고 하셨다. 소년은 귀가 번쩍 뜨여 할아버지를 졸라 탈을 써보기로 했다. 소년이 탈을 쓰자마자 소로 변해 버렸다. 당황해서 할아버지를 불렀지만 이미 소가 된 소년의 입에서는 '음매, 음매'하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잠시 뒤, 할아버지는 소가 된 소년을 끌고 가서 한 농부에게 팔아 버렸다. 무를 먹이면 죽으니 절대 무를 먹이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는 말이다.
농부는 소년을 외양간에 넣었고, 소년은 너무너무 불안했다. 하지만 걱정도 잠깐. 게으른 소년은 이내 쿨쿨 잠들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인데, 누군가 소년의 궁둥이를 철썩 때리며 일하러 가야한다고 깨우는 것이었다. 농부는 소가 된 소년을 외양간에서 끌어내 논으로 데리고 갔고, 소년의 목에 커다란 멍에를 씌우고 쟁기를 달았다. 소년은 새벽부터 무거운 쟁기를 끌며 논을 갈아야 했다. 점심 무렵에는 밭으로 가서 밭고 갈았다. 쨍쨍 내리쬐는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소년은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반나절쯤 일하고 나니 눈앞이 아찔아찔해졌지만 잠시 걸음을 멈출라치면, 농부는 채찍을 들어 소년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치곤 했다. 소년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때리지 마라고 외쳐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농부의 귀에는 '음매, 음매'소리로 들릴 뿐이었으니까.
해가 저물자 농부는 소년을 집으로 데려갔다. 소년은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다. 간신히 발을 떼어 놓을 때마다 뼈마디가 욱신거렸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소년은 하루도 빠짐없이 논과 밭에 나가 죽도록 일만 했고, 지푸라기를 넣고 끓인 쇠죽을 먹으며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몸은 엿가락이 녹아 내리는 것처럼 축축 늘어졌고, 잠은 도무지 오질 않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정신은 더욱 또렷해지기만 했다. 소년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농부와 식구들이 잠들자 외양간을 나왔다.
소년은 무밭으로 가 무 하나를 뽑았다.
'이게 다 내가 게으름뱅이였기 때문이야. 내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또 소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소년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늘을 올려다 본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무를 으적으적 씹어 삼켰다. 이젠 죽는구나 싶었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일이 없었다. 무를 너무 조금 먹어서 그런가 싶어 다시 무 하나를 뽑으려고 할 때였다.
"야, 이 녀석아. 이 밤중에 남의 집 무밭에 들어가 뭘 하는 거야!"
소년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무밭 주인이 소년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아니, 저 아저씨 눈에는 내가 사람으로 보이나?'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니 어느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소년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자신의 얼굴과 몸을 만져보았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자기 집으로 달려갔고, 그 후론 동네 사람들 모두가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히 일하는 새 사람이 되었다.
(주)와이즈북 [100명의 선생님이 골라 뽑은 대표 전래 동화]
9. 좁쌀 한 톨로 장가든 총각
옛날 어느 시골에 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그 총각은 몹시 가난해서 결혼을 할 나이가 이미 지났는데도 장가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총각은 굉장히 재치있고 총명한 사람이었다. 어떻게 해야 장가를 들 수 있을까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총각은 부엌을 뒤져 좁쌀 한톨을 찾아서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한양으로 길을 떠났다.
며칠 뒤 총각은 어느 주막에 들어가 좁쌀을 꺼내며, 늘 가지고 다니는 아주 소중한 것이니 잘 맡았다가 떠날 때 달라고 했다. 주막 주인은 웃음을 참으며 받아서는 부엌 아궁이 위에 아무렇게나 두었다.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총각은 떠날 채비를 하고선 주인에게 좁쌀을 달라고 했다. 주인은 잊고 있었던지 고개를 갸웃하더니 부엌에서 나오며 쥐가 잡아먹었는지 없다고 했다. 총각은 화를 발끈 내며, 찾아내라고 했다. 주인이 어쩔 줄 몰라하자, 총각은 잠시 생각하는 체하더니, 좁쌀을 먹은 쥐를 잡아내라고 했다. 하도 막무가내여서 주인은 쥐를 잡아주었다.
총각은 그제야 쥐 한 마리를 들고 길을 떠났다.
밤이 되자 또다른 주막에 들어가 쥐를 맡기곤 다음날 아침에 달라고 했다. 주인은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손님의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총각은 맡긴 쥐를 달라고 했으나, 주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양이가 먹어서 없다고 했다. 총각은 고양이를 내놓으라고 했다. 얼마나 길길이 날뛰던지, 주막 주인은 도리 없이 총각에게 고양이를 내주었다.
총각은 다음 주막에 가서도 고양이를 맡기고 이튿날 달라고 했다. 주인은 미안한 듯, 자기집 말에 밟혀 죽었다고 했다. 총각이 눈에 불을 켜며 주인의 멱살을 잡고는, 소중한 고양이를 밟은 말을 달라고 했다. 내놓지 않으면 당장 재판을 하겠다고 했다. 주막 주인은 말을 내주었다.
총각은 말을 타고 가다가 다시 어느 주막에 묵으며 말을 맡겼다. 다음날 주막 주인은 쭈뼛거리며 말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밤에 말이 자기집 황소와 싸우다가 그만 뿔에 받혀 죽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총각은 선심이라도 쓰듯, 그렇다면 말 대신 소를 달라했다. 이렇게 소를 얻게 된 총각은 소를 타고 한양으로 갔다.
한양에 도착한 총각은 주막에 묵으면서 소를 맡겼다. 다음날 아침 주인이 총각이 묵고 있는 방으로 오더니,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아들 녀석이 자기 소인 줄 알고 정승댁에 팔았다는 것이다.
총각은 정승을 만나 이야기해야겠으니 정승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주막 주인은 하는 수 없이 정승을 만나 사정을 이야기했다.
총각은 어깨를 쫙 펴고 정승 집으로 들어갔다.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총각은 자기 소를 달라고 했다. 총각의 당당함이 마음에 든 정승은 총각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소를 달라고? 아, 이걸 어쩌나. 자네 소는 벌써 잡아먹었는데..."
정승은 자기 말에 총각이 어떻게 나올지 몹시 궁금했다. 총각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정승을 똑바로 보며, 그 고기를 먹은 사람을 대신 달라고 했다.
정승은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딸을 달라는 뜻을 알아차렸다. 총각의 당당함과 재치가 마음에 든 정승은 총각을 사위로 삼았다.
(주)와이즈북 [100명의 선생님이 골라 뽑은 대표 전래 동화]
10. 저승에 갔다 온 이야기 - 좋은일 많이 하면서 삽시다!!!
어느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두 사람이 살았는데, 윗마을에 사는 김 서방은 부자지만 자기 것을 나누어 주는 법이 없고 인정머리가 없어서 별명이 노랭이였다. 아랫마을에 사는 박 서방은 없이 살아도 인정이 많고 마음이 넉넉해서 마을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윗마을에 사는 노랭이는 누가 삼태기를 얻으러 가면,
"삼태기 좀 만들어 쓰지 남의 것을 얻으러 다녀?"
하고 짚 한 단을 휙 던져 주고, 짚을 가져다가 삼태기를 만들려면 일은 어느 세월에 하라고..., 둥구미나 멍석 같은 것을 얻으러 가도 짚 한 단을 휙 던져 주며, 만들어 쓰라고 한다.
아랫마을 사는 박서방은 어디 초상이 나면 자기 일같이 나서서 일을 도왔고, 누가 먹을 것이 없는 눈치가 보이면 제 집에 없을 때 남의 것을 꾸어서라도 주었다.
"이 아무개가 돈이 없어 곤란하니 돈 좀 융통해 주라."
하고 열심히 나서서 주선을 하곤 했다.
하루는 윗마을 김서방이 별로 앓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죽었다. 죽어서 저승으로 갔는데 염라대왕이 노랭이 김서방을 보자,
"아 자네는 아직 올 때가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염라국에 왔나? 기왕에 왔으니 염라국 구경이나 하고 가거라."하고 명령을 내렸다.
명령을 받은 염라국 대신이 김서방에게 설명했다.
"이승에서처럼 저승에도 사람마다 다 창고가 있는 법이다. 저승에서도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창고에 넣어 두고 있으니 네 창고를 구경하고 가거라."
구경을 하는데 사방에 집들이 있고 여기저기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김서방 창고의 문을 여니 그 큰 창고가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컴컴한 창고에 짚단 한 단이 팽개쳐져 있을 뿐이었다.
부자로 사는데, 짚 한단 밖에 없다는 게 잘못된 거 아니냐 따졌다. 남에게 준 것이 짚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염라대왕은 아랫마을 박서방의 창고도 구경시켜 주라고 했다. 이승에서 그렇게 못사는 박서방의 창고에 금은 보화가 쌓여 있고 없는 것이 없이 창고가 가득했다.
김서방은 이승에서 암만 잘살아도 아랫마을 아무개만 못하니, 죽어서 이렇게 될 게 걱정이었다. 실망과 근심으로 기가 죽은 김서방은 구경을 끝내고 이승으로 돌아왔고 입버릇처럼 사람들에게
"자네 양식 없나? 내 집에 와서 쌀 갖다 먹게나."
하면서 그저 이 사람도 주고 저 사람도 주고 그래서 노랭이란 별명을 면하고 죽었다고 한다.
(주) 와이즈북 유소영·박혜숙의 「귀신 이야기 엿들은 소금 장수」
11. 자린고비 이야기
옛날 충주 고을에 한 구두쇠 영감이 살았다. 무슨 일을 하던지 좁쌀뱅이처럼 잘고 치사해서 사람들이 이 구두쇠 영감을 자린고비라 불렀다.
하루는 자린고비 영감이 툇마루에 앉아서 장독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커다란 왕파리 한 마리가 장독에 앉아서 된장을 빨아먹고 있다. 자린고비는 깜짝 놀라 신발 뒤축을 질질 끌며 냉큼 뛰어나 가 남의 된장을 도적질하는 왕파리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왕파리는 날쌔게 날아가 고갯마루 장바위에 앉았다. 자린고비는 고갯마루 장바위로 내달았다. 다가서 파리를 탁 치려는 순간 왕파리는 또 날쌔게 날아 올랐다. 여우 잡아 파리 다리에 붙은 된장을 떼어내고 파리를 냅다 집어 던졌다.
손가락에 묻은 된장을 받쳐들고 돌아오는데 날씨는 삼복이라 어찌나 더운지 허리춤에서 부채를 꺼내 펴서 나뭇가지에 끼워 놓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지나가는 허 영감이 물었다.
"부채는 얼굴에 대고 손으로 부쳐야 시원하지 않소?
"허, 허 영감. 그리하면 부채가 닳지 않소! 고개를 저으면 모가지 뼈도 운동을 하게 되고 일거양득이외다."
자린고비 영감이 집에 돌아오니 마침 며느리가 쌀을 사되 반이나 됫박으로 되고 있다. 내일이 아버님 생신이라 덕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다. 생일이라도 다 같은 날이다. 아침에 해 떠서 저녁에 지는 다 같은 날이야. 밥 대신 떡을 하면 손해가 아니냐?"
"아닙니다. 서 되 반을 가루 내면 너 되 반이 더 됩니다."
며느리가 가루 내어 되로 되는데 자린고비 영감이 옆에서 보니 정말 너되 반이 넘었다. 며느리가 시루에 떡을 얹어 찌는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냄새가 좋았다. 떡이 다 되어 며느리가 떡을 내오는데 상에 떡 접시와 냉수 한 그릇이었다.
"아, 그렇군! 떡은 반찬 없이 맹물하고만 먹어도 되는군!"
게다가 떡 맛도 훌륭했다. 그래 앞으로는 밥하지 않고 떡만 하라고 했다. 자린고비는 평생 이렇게 살아 말년에 큰 부자가 되었다.
하루는 고을에 새로 이사온 젊은이가 자린고비 영감에게 부자가 되는 법을 물었다. 영감은 젊은이를 데리고 뒷산으로 가서 산꼭대기 키 큰 소나무 가지에 매달리게 했다. 그리고 밑에서 젊은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한 손을 놓게."
젊은이가 한 손을 놓으며 소리쳤다.
"어이구 나 떨어지면 죽겠어요."
"암 죽지."
한 팔로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젊은이가 다음에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다른 손을 마저 놓으라고 했다.
"아이구 영감님 나 죽이시려구요!"
"아 자네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느냐고 하니까 내 가르쳐 주는 걸세. 돈이 들어오면 지금처럼 놓치지 말고 꼭 잡고 나가지 못하게 하게."
"나중에 그 돈 다 무엇하게요?"
"아 이 사함아. 자네가 부자가 되고 싶다니까 가르쳐 준거지, 거지가 되고 싶으면 하나 벌어 둘을 쓰게."
부자가 된 자린고비는 죽기 전에 재산을 풀어 가난한 사람을 돕고 잔치를 벌여 크게 칭송을 받았다.
(주) 와이즈북 유소영·박혜숙의 「귀신 이야기 엿들은 소금 장수」
12. 화공의 사랑 - 나팔꽃 <중국>
옛날, 중국의 어느 마을에 그림을 잘 그리는 화공이 살고 있었다.
그 화공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두 사람은 금실이 좋아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던 어느 날, 화공 부부가 사는 마을에 사또가 새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 사또는 포악하기로 이름난 사또여서 사람들은 몹시 불안해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또는 부임해 온 첫날부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방, 이 고을에는 질색 미인들이 많다는데, 어디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 "
"예, 당장 불러들이겠습니다. "
간신 근성이 있는 이방은 사또에게 점수를 따려고 마을에 있는 미인들을 전부 불러모았다. 그런데 평소에 워낙 여자를 밝히는 사또는 이방이 불러들인 여자들을 하나하나 살폈지만 눈에 차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이방은 이런 얼굴이 미인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눈이 낮아서야 앞으로 어떻게 나를 보필하겠나.?"
그 말에 뜨끔한 이방은 마지막 카드를 내밀었다.
"아직 한 여자가 남아있긴 합니다만....."
"그게 누군데?"
"하지만 그 여자는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
"그런 건 관계없으니 누군지 어서 말을 해봐."
"예, 그럼......... 마을 입구에 사는 화공의 마누라가 기막힌 절색입니다."
"그래? 어디 얼마나 절색인지 얼굴 좀 구경하자. 어서 가서 데리고 오너라."
"하지만 남들 눈도 있으니 오늘은 그냥 사또께서 몰래 가서 얼굴만 보고 오시지요. 사또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렇게 하자."
사또는 평복으로 갈아입고 이방의 안내를 받아 화공의 집 근처로 갔다. 그때 화공의 아내는 마침 물을 긷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사또는 눈을 크게 뜨고 화공의 아내를 쳐다보았다.
"아니? 저렇게 예쁠 수가!"
사또는 그녀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
"과연 절색이로구나."
"어떻습니까. 사또?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들고말고. 분명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것일 거야....."
사또는 넋을 잃고 화공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관가로 돌아온 사또는 그 날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화공의 아내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나이에 상사병이 다 걸리다니.... 그냥 그 계집을 확 낚아채고 싶지만 남의 이목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어쩐다...'
사또는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묘안을 찾으려고 낑낑댔다.
다음 날 아침, 마침내 사또는 묘안을 생각해낸 듯 바삐 이방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너는 지금 당장 화공의 집으로 가서 그 여자를 끌고 오너라."
"그렇게 되면 남의 이목이 있어서....."
"그건 걱정말고 포박을 해서 끌고 와라."
"예? 포박을 해서요?"
"그래."
"그럼 더욱 남의 이목이....."
"그렇게 하라면 할 것이지 웬 잔소리가 그렇게 많나!"
이방은 사또의 명령대로 화공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를 밧줄로 묶어 끌고 왔다. 그녀가 관가의 마당에 꿇어앉자 사또가 말했다.
"네 죄가 무엇인지 알렸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화공의 아내는 눈물을 떨구며 항변했다.
"사또, 억울합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포박을 하여 끌고 오십니까?"
"정말 네가 지은 죄가 없다는 말이냐?"
"하늘에 맹세코 저는 지은 죄가 없습니다."
사또가 빙긋이 웃으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네 죄를 가르쳐주지. 옛말에 경국지색이란 말이 있느니라. 이 말은 한 나라를 망칠 만큼 아름다운 미녀라는 뜻이니라. 곧 너를 두고 한 말인 것이다."
"그것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허어, 그래도 이 년이 입을 놀리는구나. 내가 이 고을에 와보니 너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남자들이 많더구나. 심지어는 그로 인해 병이 든 자도 있고, 너로 인해 부부간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으니 이것이 큰 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건 말도 안 되는 말씀입니다. 아직 저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끄럽다! 이제 네 선택만 남았다. 옥살이를 하겠느냐? 아니면 내 첩이 되겠느냐?
그녀는 그제야 사또의 의중을 알아채고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이런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 같으니, 어서 나를 옥에 가둬라!"
"좋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여봐라, 저 년을 당장 옥에 처넣어라!"
이렇게 하여 화공의 아내는 옥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밖에 나갔다 돌아온 화공은 자기 아내가 관가에 끌려갔다는 소리를 듣고 단숨에 달려왔다. 하지만 사또에게 항변을 했다가 매만 두드려 맞고 쫓겨났다.
"내가 힘이 없으니 이 억울한 일을 어디다 하소연한단 말인가...."
화공은 속에서는 부아가 끓어올랐지만 사또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속으로 분을 삭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밤, 집에 돌아온 화공은 밤새종이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종이에 그린 그림은 꽃이었다.
다음 날 아침, 화공은 완성한 그림을 가지고 관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관가에는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담을 따라 걸어가 아내가 갇힌 감옥에 이르렀다. 감옥은 높은 축대 위에 있었으므로 밖에서 불러도 소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화공은 아내가 갇힌 감옥 밑에 주저앉아 땅을 팠다. 그리고 자신이 밤새 그린 그림을 땅에 묻고 흙을 덮었다. 화공은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흙이 흥건히 젖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화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자 화공이 그림을 묻은 자리에서 싹 하나가 돋았다. 그러더니 그 싹은 거침없이 줄기를 뻗고, 단숨에 화공의 아내가 갇힌 감옥의 창살까지 이르렀다. 화공이 흘린 눈물이 거름이 된 셈이었다.
창살 앞에 다다른 줄기는 마침내 꽃 한송이를 피웠다. 그 꽃은 나팔모양과 흡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꽃을 나팔꽃이라 불렀다. 그 꽃은 아침에 만개했다가 낮이 되면 오므라들었다.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죽은 화공의 넋이 죽어서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아내의 얼굴을 보기 위해 꽃이 되었다며 사람들은 혀를 차며 동정했다.
참교육 기획이 엮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아시아민담」 출판 : 유원
13. 팔이 넷 달린 사내 - 욕심이 부른 화 <인도>
베를 짜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배 짜는 일로 아내와 아이들을 먹여 살렸다. 그는 매일 열심히 일을 했다. 그에게는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욕심이 너무 많고, 또한 곧잘 일을 하면서도 항상 불만에 싸여 투덜거린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푸념하곤 했다.
"하느님은 왜 사람의 팔을 두 개만 만드셨지? 팔이 두 개밖에 없으니 일을 할 때도 힘만 들잖아. 팔이 두 개만 더 있었다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두 배는 더 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되면 나는 지금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
이런 엉뚱한 공상에 사로잡혀 일을 하다가도 그는 멍하니 일손을 놓고 앉아 있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보통 때처럼 그는 아침부터 베틀에 앉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베틀에서 털커덕 하는 소리가 나더니 나무 하나가 부러져 버렸다. 오늘까지 베를 짜서 시장에 갖다 주어야 하는데, 별게 다 속을 썩인다고 신경질이 났다.
베틀에 갈아 끼울 나무를 찾아보려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적당한 나무가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는 격이었다. 그는 베틀을 발길로 한 번 툭 차고 창고로 가서 도끼를 찾아들고 산으로 갔다. 베틀에 쓸 나무는 너무 커도 안되고, 너무 작아도 안되었기 때문에 적당한 나무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마침내 구하려던 나무 한 그루를 찾아냈다. 도끼를 들어 나무 밑동을 찍으려는 순간,
"잠깐만요. 왜 하필 저를 선택하셨죠?"
하는 것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 도끼를 내려놓고 나무의 말을 들어보았다. 주위에 튼튼한 나무가 많은데, 왜 하필 어린 자기냐는 것이었다. 그는 코방귀를 뀌었다. 큰 나무는 다듬으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딱 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도끼를 들어 나무를 내리치려고 했다.
나무는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소원을 두 가지 들어 줄테니, 자신을 살려주길 부탁했다. 믿기지 않았지만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면 그때서야 베버리면 되기에, 손해 볼 것 없다시퍼 소원을 하나 말했다. 팔을 네 개로 만들어 줄 수 있겠냐고.
"그럼요. 문제없어요.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베틀을 고쳐 일을 시작하세요. 그러면 팔이 네 개가 될 거예요."
그리고 곧바로 베틀을 고친 뒤 일을 시작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잠시 후, 나무의 말대로 팔이 네 개로 불어난 것이었다. 그는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당장 부자가 된 것처럼 혼자 신이 나서 열심히 베를 짰다. 아닌게 아니라 팔이 두 개였을 때보다 훨씬 빠르게 일을 할 수 있었다. 한 시간에 마칠 일을 삼십분도 안 돼 끝내 버렸다.
"어! 괴물이다."
그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와 베틀 앞에 앉아 있는 남편을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그는 당황해서 아내를 진정시키려고 다가갔지만 아내는 기겁을 하고 뒷걸음질치며 물러섰다. 아내는 쟁기를 집어들고는 내쫓으려 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날카로운 쟁기에 찔릴 것 같았던 그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자기가 아내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외면했다. 오히려 도깨비가 나타났다고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까지 몰려와 돌팔매질을 했다. 그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산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던 중 나무의 말이 생각났다. 나무가 들어주기로 한 소원이 한 번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팔을 원래대로 해달라고 애원했다. 나무는 금방 말을 바꾸는 그가 괘씸해서 부탁을 거절했다. 그가 애처로운 표정으로 다시 부탁을 하자 나무는 마지못해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조건은 나무 밑 잡초를 매일 와서 뽑으라는 거였다. 그는 내심 팔이 원래대로 도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고 나무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을 셈이었다.
"만약 지금 나하고 한 약속을 어기면 다시 팔이 네 개로 될테니 알아서 하세요."
그의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던 나무가 이렇게 조건을 걸었다. 겁이 난 그는 나무와의 약속을 지킬 수밖에.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그가 산을 내려오자 그제야 마을 사람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사람아. 어디 갔다 오나? 아까 자네하고 똑같이 생긴 도깨비가 나타났었는데."
그는 대꾸를 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집으로 갔다. 아내도 방금전에 괴물이 나타났었다고 말했지만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곧장 베틀 앞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결국 그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을뿐 예전에 비해 변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매일 산에 올라가 잡초를 뽑아야 하는 일만 덤으로 얻은 셈이었다. 이튿날부터 그는 다시 팔이 넷 달린 괴물로 변할까봐 날이 밝기만 하면 부리나케 산으로 뛰어올라가 정성껏 잡초를 뽑은 뒤 돌아오곤 했다.
참교육기획,「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아시아민담」펴낸곳: 유원
14. 원숭이 엉덩이가 빨간 까닭 - 구두쇠 영감 부부의 시기심 <베트남>
옛날에 재산이 많은 부자 영감 부부가 살고 있었다. 둘은 돈이 많았지만 워낙 구두쇠로 살아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늘 구두쇠 영감 부부의 흉을 봤다. 남에게 밥 한 술은 고사하고 감기조차도 주기 싫어하는 지독한 노랑이라고 헐뜯었다.
구두쇠 부부의 집에는 부엌일을 하는 젊은 처녀가 하나 있었다. 그 처녀는 얼굴이 못 생겨 마을 총각들이 청혼을 꺼리고 있긴 했지만 마음씨가 비단결 같고 일을 아주 성실하게 하는 여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녀를 도와주려고 애를 썼다.
어느 날 저녁 무렵이 다 되었는데, 허름한 옷차림을 한 노파가 구두쇠 영감 집에 들어와 찬밥이라도 좋으니 한 덩이만 달라고 구걸을 했다. 그러자 영감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며 내쫓으려 했다. 그때 부엌에서 밥을 먹고 있던 처녀가 나왔다.
"주인님,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들어가세요. 제가 잘 말씀드려서 돌아가시게 할게요."
"밥알 하나라도 주면 안 된다. 그냥 내보내고 문을 닫아걸어!"
구두쇠 영감은 매정하게 소리치곤 방으로 들어갔다. 그 틈에, 착한 처녀는 얼른 부엌으로 가 자기가 먹던 밥을 가져다 노파에게 주었다. 처녀가 내민 밥을 받아든 노파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렇게 고마울수가.... 아가씨는 분명히 복을 받을거야. 나는 지금 진수성찬을 받을 것보다 더 감격스럽구먼. 나한테 은혜를 베풀었으니 나도 뭔가 보답을 해야지. 며칠 뒤 아가씨는 산 속으로 들어갈 일이 생길 거야. 그 산 속에는 작은 옹달샘이 하나 있는데 그 물로 세수를 하도록 해요. 그럼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테니까. 오늘 너무 고마웠어, 아가씨."
며칠 뒤 정말 노파의 말대로 처녀가 산 속에 들어갈 일이 생겼다. 주인집 부인이 나물을 캐오라고 시킨 것이다. 산으로 들어온 처녀는 나물을 캐다가 노파가 해 준 말이 생각나 옹달샘을 찾아보았다. 처녀는 노파가 시킨대로 그 물로 세수를 했다. 산 속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니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처녀는 나물을 다 캔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튿날, 처녀의 몸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얼굴이 몰라보게 아름다워진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처녀의 얼굴과 몸매는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아름다워지는 처녀를 사람들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뻐지는 약을 먹었는지, 아니면 원래 선녀였는지 말이다.
예전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총각들은 너도나도 청혼을 해 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인기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처녀를 시기하는 사람이 딱 두 사람 있었다. 바로 구두쇠 영감 부부였다. 가만보니 부잣집 총각들도 청혼을 해 오길래, 양딸로 삼기로 했다. 처녀는 그들의 양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성실하게 양부모를 모셨다.
그러던 어느 날, 구두쇠 영감이 처녀를 불러 물어보았다.
"얘야, 아버지가 하나 물어보자. 요즘 네가 예전에 비해서 몰라보게 예뻐졌는데, 그 비결이 뭔지 가르쳐 줄 수 있겠니?"
처녀는 양아버지의 물음에 서슴없이 대답했다. 구두쇠 영감 부부는 처녀의 말을 듣고 곧바로 산 속으로 들어가 용달샘 물을 찾아 세수를 했다. 천하의 미인 미남이 될거고, 미인 미남의 남편이자, 부인이 도리거라 기대가 부풀었다. 그런데 세수를 마치자마자 갑자기 얼굴에 부스럼이 나면서 벌겋게 달아오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얼굴뿐 아니라 전신으로 퍼지는 가려움증을 견디지 못하고 손톱을 세워 마구 긁어대기 시작했다. 얼마나 긁어댔던지 손톱에 핏물이 배어들 정도였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온몸에 털이 생기면서 얼굴도 미남 미녀는커녕 원숭이의 형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었다.
"아이고. 그 앙큼한 계집애한테 우리가 속았구나. 이 년을 그냥...."
두 내외는 이를 갈며 집을 향해 달려갔다. 달려가는 중에도 두 사람의 모습은 점점 원숭이를 닮아가고 있었다.
한편 집에서 양부모를 기다리고 있던 처녀는 그들을 맞으려고 대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예전에 보았던 노파가 허둥지둥 달려오더니, 얼른 몸을 피하라고 일어준다. 양부모 내외가 죄를 받아 원숭이로 변했는데, 그 앙갚음을 하려고 달려오고 있는데 아마 죽이려 들거라고 말이다.
노파는 숯불을 가져와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라고 했다. 처녀는 노파가 시키는대로 했다.
잠시 후, 정말 노파의 말대로 구두쇠 영감 내외가 원숭이 형상을 하고서 씩씩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은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이글거렸다. 처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대문이 열리며 두 내외가 뛰어들어왔다. 처녀는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순간 두 내외는 달려오는 탄력을 제어하지 못한 채 그만 모닥불을 깔고 앉으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두 내외는 한 순간에 엉덩이를 불에 데고 말았던 것이다. 두 사람의 엉덩이는 털이 모두 타고 살도 벌겋게 익어버렸다.
너무 놀란 두 내외는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가 옹달샘의 물로 엉덩이를 식혔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원숭이로 변한 두 사람은 좀처럼 자기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불에 데어 벌겋게 된 엉덩이에도 새 살이 돋아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몰골이 너무 흉해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산 속에 숨어살았다고 한다.
참교육기획이 엮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아시아민담」 펴낸곳: 유원
15. 어느 족제비의 죽음 - 여운이 있는 이야기, 오해? 편견? <인도>
옛날 어느 마을에 사는 여인이 아이를 낳았다. 그와 때를 맞춰 여인이 기르던 족제비도 새끼 한 마리를 낳았다. 하지만 어미 족제비는 자기 새끼를 낳은 뒤 그만 죽고 말았다. 그래서 여인은 자기아기와 족제비 새끼를 함께 애지중지 키웠다. 다만, 족제비는 원래 사나운 성질이 있는지라, 자기 아기를 해칠까봐 늘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인은 마침 물이 떨어져 우물에 가야 했다. 아기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고, 족제비도 침대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둘 다 잠이 들어 있어서 안심을 하고, 물동이를 들고 서둘러 우물가로 갔다.
그런데 여인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검은 구렁이 한 마리가 아이가 자고 있는 침실로 기어 들어왔다. 잠결에 이상한 느낌을 받은 족제비는 번쩍 눈을 떴다.
구렁이가 천천히 아기가 자고 있는 침대로 기어오고 있었다. 족제비는 위험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마구 짖어댔으나 여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여인이 집에 없다는 걸 안 족제비는 할 수 없이 자기 몸을 던져서라도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구렁이 앞을 가로막았다.
구렁이는 족제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아기의 침대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리 비켜라. 조그만 게 감히 내 앞을 가로막다니."
하지만 새끼 족제비는 있는 힘을 다해 구렁이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고 늘어졌다. 구렁이는 족제비를 떼어 내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지만 쉽사리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침내 구렁이는 족제비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려 죽고 말았다. 구렁이가 죽은 것을 확인한 뒤 족제비는 이 상황을 얼른 여인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황급히 집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그때 마침 여인이 물을 길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아니! 네가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이런 배은망덕한 것 같으니!"
여인은 족제비의 입가에 얼룩진 피를 보고는 자기아기를 물어 죽였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여인은 앞 뒤 가리지 않고 머리에 이고 온 물동이로 족제비를 내리쳐 죽여버렸다. 그리고는 황급히 아기가 있는 침실로 뛰어들어갔다.
여인은 분명히 자기 아기가 죽은 줄로만 알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기 침실에는 뜻밖의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구렁이가 죽어 있었고, 자기 아기는 아직도 침대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여인은 다시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족제비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참교육기획이 엮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아시아민담」 펴낸곳: 유원
16. 병아리 도둑이 낙타 도둑 된다 - 습관의 무서움 & 진정한 교육 <이란>
어느 마을에 어린 아들과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린 아들은 그저 장난삼아 이웃집에서 계란을 슬쩍 훔쳤다. 그런데 아들은 이 계란을 자기가 그냥 먹지 않고 어머니한테 갖다 주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아들에게 꾸중을 하기는커녕 도둑질해 온 계란으로 맛있는 요리를 해주었다.
아들은 그런 어머니의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계란을 훔치는 게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들은 이웃집에서 자주 계란을 훔치고, 그러다 보니 습관이 도둑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더욱 대담해져 계란보다 큰 병아리를 훔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들의 도둑질은 점점 대담해져 병아리에서 강아지, 강아지에서 송아지를 아주 능숙하게 훔치게 되었다.
아들이 성장하여 성인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아들의 도둑질은 계속되었다. 이제 아들은 도둑질이 몸에 배어 일단 눈 도장을 찍어놓은 것들은 모두 아들의 손에 들어갔다. 그래서 아들은 나라 안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유명한 도둑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낙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저 낙타가 아주 쓸만해 보이는군. 어디 한번 몸 좀 풀어볼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낙타는 바로 이 나라 왕의 것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물론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아주 귀한 낙타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아들은 어둠을 틈타 낙타를 훔치기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드디어 밤이 되었다.
아들은 몰래 궁전으로 숨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둑질에 실패하고 말았다. 낙타를 지키는 군사들이 겹겹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낙타 도둑이 잡혔다는 보고를 받은 왕은 화가 나서 도둑의 얼굴도 볼 것 없이 무조건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아들은 이튿날 날이 밝자 많은 백성들이 모인 가운데 교수대에 올랐다. 그 자리에는 왕도 나와 있었다. 아들은 마지막으로 왕에게 할말이 있다고 아뢴 뒤 유언을 남길 기회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한 번 뵙고 죽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아들의 어머니가 형장으로 불려나왔다. 아들은 어머니를 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머니께 부탁이 있습니다. 그 동안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지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작별 키스를 하게 해주십시오."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며 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허락했다. 그런데 아들은 어머니의 입에 키스를 하려고 얼굴을 디미는 척 하다가 갑자기 어머니의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
어머니의 입술에서는 피가 흐르고 잠시 뒤에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왕은 깜짝 놀라 까닭을 물었더니 아들이 대답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처음으로 계란 한 알을 도둑질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님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때 계란 훔친 것을 호되게 꾸짖었다면 저는 지금처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아들을 교수대에서 내려오게 했다. 어머니가 더 큰 잘못이 있으며, 도둑은 곤장 10대. 그 어머니는 감옥에 가두기를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지금도 이란에는 '병아리 도둑이 낙타 도둑 된다.'는 속담이 전해지고 있다.
참교육기획이 엮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아시아민담」 펴낸곳: 유원
17. 사람이 늙는 진정한 이유 - 행복의 중요성 <이란>
옛날에 한 젊은 사내가 살고 있었다.
그는 늘 사람은 왜 늙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것은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행복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을 산책하다가 주름살이 많이 잡힌 노인 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에게 다가갔다.
'저 노인이라면 인생을 많이 살았기 때문에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명쾌한 답을 해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고 노인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자 노인이 대답했다.
"미안하네. 나는 아직 인생을 덜 살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답을 줄 수가 없구먼. 하지만 우리 둘째 형님이라면 나보다 오래 사셨으니 답을 해줄지도 모르지."
사내는 노인이 가르쳐준 둘째 형님이라는 사람을 찾아갔다. 노인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니 아까 길에서 본 노인보다 젊은 노인이 나왔다. 주인 어른을 뵙고 싶다고 하자, 자기가 주인이라고 했다. 사내는 깜짝 놀랐다. 그 노인은 아까 길에서 본 노인보다 젊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떻게 형님 분이 더 젊으시죠?"
어쨌든 이 노인이 아까 본 노인보다는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사내는 자기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둘째 형님이라는 노인이 대답했다.
"나도 아직 인생을 덜 살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뭐라고 대답을 해줄수가 없구먼. 나보다는 우리 큰형님을 만나 보게. 아마 그 분이라면 대답해 주실 수 있을거야."
그래서 사내는 다시 큰형님이라는 노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큰형님이라는 노인이 다른 동생들보다 훨씬 젊다는 것이었다.
"참 이상하군요. 저는 방금 두 아우님들을 만나고 오는 길인데 어찌해서 형님이라는 분들이 더 젊을수가 있죠?"
그러자 큰 형님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허허,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아주 복잡한데... 그것을 이야기하자면 아주 길어지니까 내가 행동으로 보여주지."
큰형님은 사내를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 아내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 우리 집에 손님이 찾아오셨소. 잘 익은 수박 한 통만 내오시오."
그러자 큰형님의 아내는 아주 빠른 동작으로 잘 익은 수박 한 덩이를 들고 나와 탁자 위에 공손히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칼로 수박을 자르려고 하자 큰형님이 말했다.
"내가 보기에 이 수박은 잘익은 것 같지 않은데 다른 수박으로 가져오시오."
아내는 일체 군소리 없이 가져왔던 수박을 들고 나갔다가 아내 다시 수박 한덩이를 들고 와 탁자 위에 살며시 놓았다.
그러자 큰형님은 또 수박이 잘 익지 않은 것 같다며 다른 것으로 바꿔오라고 했다. 아내는 다시 공손하게 대답하며 수박을 바꿔왔다. 그러기를 수십번 반복한 끝에 비로소 큰형님은 수박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큰형님 집에는 수박이 단 한 통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즉 아내는 수박 한통을 가지고 부엌과 거실 사이를 들락날락 했던 것이었다.
수박을 다 먹은 뒤 큰형님은 사내를 데리고 둘째 집으로 갔다. 둘째 아우는 형님을 반갑게 맞이하며 아내를 불렀다.
"여보, 형님이 오셨네. 잘 익은 수박 한 통 내오시구려."
그러자 둘째의 아내는 큰형님의 아내와는 달리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잠시 후 아내가 수박을 갖고 나오자 둘째가 말했다.
"여보, 이 수박은 잘 익은 것 같지 않으니 다른 수박을 내오구려."
아내는 남편의 말을 듣고 아까보다는 조금 더 퉁명스럽게 말하며 다른 수박으로 바꿔왔다. 아내가 수박을 바꿔오자 남편은 다시 다른 것으로 바꿔오라고 했다. 그러기를 열 번 정도 거듭하자 아내가 화를 내며 말했다.
"도대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게 마지막이니 드시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사내가 부엌으로 가 보니 그곳에는 모두 열 통의 수박이 있었다.
큰형님은 다시 사내를 데리고 막내아우의 집으로 갔다. 사내가 처음 길에서 만난 그 노인의 집이었다. 막내아우도 큰형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잘 익은 수박 한 통을 내오라고 말했다.
막내의 아내는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못해 수박 한 통을 들고 와 탁자 위에 턱 놓고 돌아갔다. 그 행동을 본 막내아우는 신경질을 내며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행동이 왜 그렇게 불손해! 큰형님이 손님을 모시오 오셨는데 말이야!"
"수박을 갖다 달래서 갖다 주었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예요?"
"더구나 이 수박은 너무 오래 된 것 같으니 싱싱한 것으로 바꿔와!"
하지만 아내는 팔짱을 낀 채 꼼짝하지 않았다.
"흥! 먹을 사람이 갖다 먹어요. 수박은 부엌에 쌓여 있으니까."
사내가 그 집 부엌에 가 보니 정말 큼지막한 수박이 가득 쌓여 있었다. 막내 아우가 세 형제 중 가장 부자였기 때문에 먹을 것은 풍부했다.
사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흐르는 세월때문이 아니라 얼마나 행복하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교육기획이 엮은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아시아민담」 펴낸곳: 유원
18. 돌노적 부자와 쌀노적 부자
옛날 어느 곳에 가난한 사람이 살았는데, 대개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 주인공이 가난하게 살았다고 하지만 이 사람은 정말 진짜로 가난하디 가난하게 살았다.
이웃집에 가서는
"미안한 말씀을 사뢰겠습니다. 자식은 많고 먹을 것은 없고, 그러니 삼년 후에는 잘 갚을 테니까 나락(벼) 석 섬만 빌려주십시오."
라고 간청을 하니까 부자는,
"오죽하겠는가? 빌려줄 테니 꼭 삼 년 후에는 갚게나."
하고 단단히 약속을 하였다. 가난한 사람이 감격을 해서 말을 못 이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락을 빌릴때야 무슨 약속을 못하겠는가? 삼 년 약속을 떡먹듯이 하였는데, 정작 삼년이 물 흐르듯 어느 새 지나가 버리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나락빚을 갚을 날이 돌아오고 말았다. 그 삼년 동안에 살림 형편이 펴지지 않았다.
하루는 이런 불안한 날에 막내 아들이 빚 갚을 대책이 있는지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버진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 어떤 사람은 팔자가 좋아서 쌀노적을 자기 집 마당에 놓고 사는데 우리는 무슨 팔자로 밤낮으로 일만 해도 이리 못살까요?"
"글쎄 말이다. 이것저것을 해보다도 안되는 팔자, 참 우리는 기박하다. 죽고 싶구나."
"예, 그러면 무능하시고 한숨이나 쉬시고 아무 대책이 없다면서 죽고 싶으시다는 아버지는 어서 돌아가시지요. 가장이 죽는다한들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저는 살겠습니다. 남보라는 듯이 잘 살고 아버지가 지으신 빚도 물론 갚겠습니다. 제 말이 틀렸는가요?"
"이놈, 아버지보고 어서 죽으라는 자식이 어디 있느냐? 불효로다. 그것이 틀려먹었다."
"아버지, 그러면 제가 하라는대로 하십시오. 남은 쌀노적을 쌓아놓고 사는데, 우리라고 노적을 못 쌓고 살겠습니까?"
이런, 할말이 없었다. 막내 아들은 지금과 달리 꿈을 보다 구체적으로 실천을 하자고 했다. 온 식구가 밖에 나가서 집에 들어올 때는 돌을 하나라도 가지고 들어와야 하고, 그 돌을 날라다가 부잣집 마냥 노적을 쌓자고 하는 것이다. 식구들은, 그런 어처구니가 없는 짓을 하느니 미친 놈 소리 안 듣고 안방에서 굶어 죽는 게 낫겠다며 한마디씩 한다. 어린 아들은,
"제발 그 알량한 체면이니 남의 말이니에 얽매여서 죽으시오, 당장. 우리가 이 마당에 쌀밥이니 보리밥이니 체면이니 따지게 생겼습니까? 도둑질 안하고 애써 노력하면서 산다는데 어떤 놈이 우리보고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겠습니까? 자신있게 돌 나를 용기가 없으면 밥값 축내지 말고 어서 죽으십시오. 온 가족이 합심을 해도 살까말까, 성공할까 말까 하는데, 이 무슨 맥빠진 소립니까? 돌을 나르기 싫다면 당장 이 자라에서 죽든가 집을 나가버리시오. 괜히 여기에 눌러 앉아서 우리를 낙심시키지 말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드디어 돌노적이 올라갔다. 동네 골목에 있는 돌, 남의 논밭에 있는 돌, 산길에 있는 돌, 강가에 널려 있는 돌, 하여간 돌이라는 돌은 다 긁어모아서 돌노적을 높이높이 쌓아갔다.
'아, 마지막 제일 위에 놓을 돌이 없구나. 아버지가 되어서 그 돌은 내가 찾아야지.....'
하고 그 아버지가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비가 와서 비를 피하려고 어느 빈집 처마에 들어가서 서 있는데 그만 우르르쾅- 하고 하늘이 벼락을 쳤다. 눈앞에 바위가 그만 쪼개지는게 아닌가. 제법 큼직한 돌이 하나 생겼다. 아버지는 끙끙거리면서 그 돌을 나라다가 간신히 돌노적 위에 올려놓았다.
온가족이 노력을 하니 뭐가 되긴 되었다. 그런데 돌노적이 언제 쌀노적이 될지가 의문이었다.
한편, 그 부자는 이제 삼년이 되었으니까 이 가난한 집에 나락빚을 받으려고 찾아갔는데, 그때가 해가 넘어갈 때인데 어찌된 판인지 아무도 없었다. 설마 가족이 피한 것은 아니겠지. 하고는 그 사이에 생긴 이상한 돌노적을 찬찬히 보다가 꼭대기를 올려다보니까 아 글쎄, 거기 금이 있지 아니한가? 부자는 아무말 하지 않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뒤 조금 있다가 가난한 집에서 막내아이가 탈레탈레 와서는
"우리집에 왔다가셨지요? 미안합니다. 다른 집에 가서 댁에 갚을 벼를 꾸러 갔었습니다. 이제 갚겠습니다."
라고 하자 부자가 손을 내저으면서, 나락은 안갚아도 되니까 그집 돌노적과 자기집 쌀노적을 바꾸자는 것이다. 막내아들은 부자어른이 손해 볼 것 같은데, 나중에 두말 않겠다면 그리하겠다고 못이기는 척 하며 응낙을 하였다.
이제 머슴을 시켜서 부자는 자기 집 마당에 있는 쌀노적을 옮기는데, 맨 위의 것은 두고 나머지는 다 보냈다. 아이가
"네, 그러시지요. 재수가 있는 첫 섬이니까요."
라고 어른스럽게 말을 하였다. 이리하여 부잣집 쌀노적은 한 섬만 빼고 가난한 다 집에 옮겨졌다. 이제 가난한 집의 돌노적을 부잣집으로 옮길 차례였다.
"잠깐, 아까 어르신이 맨 위 쌀은 재수를 뜻한다고 내려놓고 가지셨지요? 그러니 저도 똑같이 맨 위에 있는 돌을 재수로, 기념으로 삼기로 하고 갖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런 것이 공평하지요?"
라고 하니 부자 얼굴이 그만 흙빛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쌀섬 마저 줄테니 꼭대기 돌을 마저 달라고 했다. 아이는 어른이 말을 이랬다저랬다 하는게 아니지 않냐,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했다고 소문을 내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부자는 허허 웃으며,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뭐 그러느냐고 하면서 그 돌노적을 다 자기집으로 날랐다. 그러니까 부자는 쌀 나르느라 고생, 쌓느라고 고생, 돌 나르느라 고생, 돌 쌓느라 고생... 실로 바보 멍텅구리 팔푼이 머저리 짓거리였다.
가난한 집은 이제 가난하지 않았다. 훗날 이웃에 사는 그 부자가 와서는 그 돌이 사실은 황금 덩어리라고 일러주어서 진짜로 부자가 되었다. 그 부자는 황금이 욕심이 나서 바꾸자고 했던 일을 f다 고백하고, 이 집은 어찌되었건 부자가 되었으니 축하한다고 하니까 새로 부자가 된 집에서도 고맙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부자는
"사실 당신네는 부자가 될 자격이 있었소. 가화만사성이라고 온 식구가 다 합심을 했지요. 그리고 새로운 의견을 내서 실천에 옮겼지요. 아이 말이라도 옳다고 생각을 하면 따랐지요. 이 동네에 걸거치던 돌을 다 치워서 보기좋게 만들고 농토도 넓혀주고요, 아무 쓰잘데기 없는 돌맹이라도 많이많이 모아서 재화(財貨)로 만들었지요. 이러니 부자가 안 되겠소? 자, 내가 부탁을 하는 것은 저 아이가 크면 나도 딸이 있으니 사위를 삼고 싶구려. 하하하..."
하고 웃으면서 갔다.
최래옥 「눈치빠른 놈은 절에 가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 제삼기획
19.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나
옛날에 채발이라는 사람이 서울에 살았는데 아주 사람이 되었다. 인정 있고 재주 있고 돈 있고 인물 좋고, 그만하면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하나가 안되었으니 벼슬 한 장을 못하고 있었다. 한 번은 장가를 들기 전에 사주를 보니까
"절대로 던방(처마밑 덤불) 밑에 장가들 때 가마를 놓지 말라. 만약 그런 날에는 남이, 다른 사람이 백일 치성을 들여주어야 잘 된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속으로 '남자가 장가들러 가면 말을 타지 왜 가마를 탈 것인가? 그리고 뭐가 그리 큰 탈이 날 일이라고 백일치성까지 드리나?'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얼마 후 그는 말을 타고 참하고 아리따운 처녀에게 장가를 잘 들었다. 삼일우귀(三一于歸)라고 이제 새장가를 든 처갓집에서 잘 지내고서 자기 집을 가는 길인데, 그 신부를 태운 가마가 남의 집 처마 밑에 가더니 그만 가마끈이 똑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교꾼(가마 멘 사람)은 몸에 끈을 걸어서 이 가마를 걸고 드는데 갑자기 가마를 메고 가는 터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 집 처마 밑에 사람이 살지 아니하였던지 풀이 나 있어서 던방이었기에 아, 그 사주점을 치던대로 가마가 던방에 놓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출세길은 막히고 마는 것이다.
일이 참 공교롭게 되었구나.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그 누가 나를 위해서 백일 치성을 드려주는 일이었다. 아, 그 누가 나를 그리 위해줄 것인가? 이것이 돈으로도 될 일이 아니었다. 말이 그렇지 백일 치성이 그 얼마나 어려운가? 백일은커녕 열흘 치성, 아니 이레 치성, 아니 사흘 치성도 어려운 법이다.
오늘날도 종교인이든 아니든 무슨 일로 하루 내내 자기 기도를 한 적이 있는가?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남을 위해서 하루 내내 기도라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단 일분이라도 남의 복을 비는 일도 어렵다. 자기 부모를 위해서 하루에 단 일분도 공을 드리지 않는 자식도 허다한데...
그런데 이 채발이를 위해서 그누가 자기 남편, 오빠, 동생, 부모도 아닌데 하루도, 한달도, 석달도 아닌 석달 열흘 백일 치성을 드려줄 것인가? 어렵도다. 채발은
'그 누구의 기도를 바라기 전에 벼슬은 안해도 좋으니 내가 좋은 일이나 하고 살자.'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할 수 있는대로 남을 우대하고 대접하고 재산을 바쳐서 베풀었다. 그리하여 마음씨 고운 채발이라는 소문이 널리 났다.
경상도 어디에 머슴살이는 하는 채서방이 하나 살았다. 성씨가 채가였다. 그는 고단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남의 집을 살다가 어찌어찌하여 뒤늦게 장가를 들었으니 이제 채서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천한 머슴이라 애나 어른이나 나이 어린 계집애나 늙어빠진 할망구나 여기서도, 저기서도 '어이, 채가!' 그러니 여간 속이 상하는게 아니었다. 한번은 자기 처가,
"당신은 그래 일가친척도 없소? 좀 괜찮은 일가가 있다면 이런 하시(下視)를 면할 것이 아니요?"
그래 생각해보니 서울에 채발이가 생각이 났다. 처도 동네 사람들한테 남편이 무시를 당하니까 속이 많이 상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경상도 사는 머슴 채서방이 서울 사는 사촌인 채발이는 찾아 상경을 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아다시피 서울 채발이하고 시골 채가하고는 채가 성만 같다뿐이지 사촌은커녕 팔촌도 아니었다.
"여봐라!"
서울 채발이 집에 이른 채가가 큰소리를 쳤다. 종이 쏜살같이 나왔다. 이리하여 이 채가는 채발이를 만났다. 만나서는 사실 이야기를 다 했다. 채발은 저절로 생긴 사촌을 잘 대접을 하고 벼슬을 살면 경상도 감사로 내려가서 잘 살게 해주마고 약속을 하였다. 약속은 했으나 사실 채발은 가마끈이 떨어진 일로 벼슬도 제대로 못하는데.... 채가는 기뻐하며 고향에 내려가서 처에게 사촌 채발의 이야기를 당당하게 말하니까 그 처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 그렇다면 어서 사촌 시숙이 경상 감사가 되라고 칠성당에 백일 치성을 드려야겠구나!"
아, 채발이 드디어 과거에 합격을 하였다. 출세를 거듭하였다. 마침내 경상 감사가 되었다.
"채가 사촌인 채발 감사가 내려오신단다. 우리 채서방님을 가서 잘해 드리자! 그 채씨 어른에게 잘 보이자!"
사람 인심은 이런 것이다. 풍악을 울리고 나타난 채발 감사와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이한 이전 머슴인 채씨 어른...
이 이야기에는 그 누구도 손해를 본 사람이 없이 다 잘 되었다. 한 번 손꼽아 나를 헤아려 보자. 그 누가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나? 나는 해주고 있나? 그런 좋은 일 했던가? 남의 일이 아니구나!
최래옥 「눈치빠른 놈은 절에 가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 제삼기획
20. 형님, 그 논 저를 주시죠 - 형제간 우애
옛날에 어느 곳에 삼부자가 살았다. 아버지하고 아들 둘하고 사는데, 맏이는 사람이 좋아서 용하고 순하고 물렀다. 거기에 비하면 동생은 다부지고 독하고 단단하였다. 형이 물러터질 정도는 아니나 아버지가 안 계실 때 살림을 잘할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아버지가 운명을 하시고 형제간에 장례를 치루는 마당에, 동네 사람들이 도와주려고 다 와서 일을 하는데, 아 글쎄, 형제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그것도 치사하게 재산 싸움이었다.
"형님, 이 앞에 논 한 마지기가 있지 않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 저를 준다고 했소이다. 제가 꼭 가져야겠습니다. 주십시오."
"너 미쳤구나. 지금 친상 중이다. 아직 아버지 몸도 채 식지 않았다. 장사를 치루고 이야기해도 안 늦으니 참아라."
"사람은 뒷간 갈 때 다르고 올 때 다릅니다."
하여튼 장례는 치루었다마는 그 동생은 형한테도 이웃한테도 불량한 놈이 되고 말았다. 고작 논 한 마지기 남은 것을 다 독차지한 불효불애(不孝不愛)한 놈..
순한 형은 남의 집 셋방살이로 나가고 독한 동생은 그 돈을 갖고 큰 방죽을 만들어서 물고기를 길렀는데, 돈벌이가 잘 되어서 땅이며 기와집에서 떵떵거리면서 잘 살았다.
일년이 흘러 아버지 소상(小祥)이 되었다. 살림이 간고한 형이 아버지 제상에 쓰려고 작은집에 물고기 한 마리를 달라고 자식을 보냈더니만 돈 가져와야 준다나..
또 일년이 흘렀다.
동생은 밭이며 논을 사들이고 기와집을 번듯하게 또 한 채 지었다. 물론 세간도 그 집에 그득그득 채웠다. 아마 작은집을 하나 들어앉힐 모양이었다. 이제는 각시를 하나 더 얻을 작정인가 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꼭 이년, 대상(大祥)날이 되었다. 동생은 장에 가서 소를 한 마리 사다가 잡고 쌀도 몇 가마니 밥을 짓고 떡도 그득그득하게 하고는...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흥, 이제는 무슨 잔치하려고 저리 돈을 쓰나? 진짜 각씨 하나 보는가 보다. 못된 놈 같으니..."
하고 비난을 하고 있는데, 동생은 이것을 다 장만해서는 가난하게 사는 형님 집으로 갔다. 동생은 가서 큰절을 하였다. 그러나 형은 노여움에 북받쳐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여튼 그 음식 걸게 차린 것으로 대상을 올리고 나서 이튿날 온 동네 사람을 다 초청하였다.
"동네 어른들, 부끄럽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람이 아니였지요. 압니다. 저의 집은 그저 논 한마지기였고, 품 팔아서 근근히 삼부자가 살았습니다. 자, 유산이라고는 논 한 마지기뿐인데, 형님은 순하시고 효자라서 그 논 한 마지기를 팔아서라도 아버지 장례에 다 쓰고자 할 것입니다. 체면은 좋으나 그러면 우리 형제는 어떻게 삽니까! 이제 이 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아버지 대상날을 맞았습니다. 저는 부자올시다. 논도 밭도 많고 기와집도 두 채가 있습니다. 집 세간도 그득그득 채워 두었습니다. 방 수도 방 크기도 똑 같습니다.
형님, 형님!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동기 사이에 전들 왜 형님 고생을 모르리까? 이것 보십시오, 형님네 방바닥이 짚자리군요. 네, 제가 가져온 이 짚자리를 보십시오. 형님이 이렇게 불편하게 주무시는데 제가 어이 편한 장판 방에서 자리까?"
겉만 기와집이었지 밤중에 동생도 짚자리 위에서 잔 것이다. 형이 굶는데, 동생인들 배불리 먹겠는가. 형이 시래국 먹을 때 동생도 굶고 시래국만한 것을 먹었던 것이다. 쌀 한톨 쌀밥 한 숟갈도 그동안 안먹고 산 것이다.
논 밭 문서를 똑같이 나누고, 집도 하나하나 골라 하더란다. 날은 추우나 진짜 가슴이 뜨거운 이야기다.
최래옥 「눈치빠른 놈은 절에 가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 제삼기획
21. 멀리가는 향기
향원정(香遠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마음이 청정한 사람이면 누구든 이곳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대할 수 있다는 말이 전해 져 오는 정자였다.
어느 날 어진 임금께서 길을 가다가 이 정자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미풍에 얹혀 슬쩍 지나가는 향기가 있었다. 기가 막힌 향기였다. 임금은 수행 신하들을 불러서 부근에 피어 있는 여러 꽃을 꺾어 오도록 했다. 신하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향기가 좋기로 소문난 꽃들을 한가지씩 가지고 왔다. 모란, 난초, 양귀비... 그러나 임금은 꽃을 하나 하나 코에 대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임금은 궁으로 돌아가서 향감별사를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향원정이라고 하는 정자에서 일찍이 대해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향기를 만났었다. 경은 지금 곧 그곳으로 가서 그 향기가 어디의 어느 꽃의 것인지를 알아오도록 하 여라."
향감별사는 그날부로 향원정에 가서 머물렀다. 날마다 코를 세우고 임금을 황홀케 했다는 그 향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향기는 좀체로 나타나지 않았다. 간혹 바람결에 묻어오는 향기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향감별사가 아니더라도 쉽게 알아맞힐 수 있는 향기였다. 작약꽃이며, 수선화며 찔레꽃의 향기들.
여름철이 지난 뒤 향감별사는 실망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얼른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시름없이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서서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처마끝의 풍경처럼 세상만사를 놓아버리고 하늘가를 떠가는 흰구름에 마음을 실었다. 그 순간이었다. 코를 스치는 향기가 있었다. 향감별사로서도 평생 처음 대해 보는 아름다운 향기였다.
'아, 이 향기가 임금님을 황홀케 한 향기로구나.'
향감별사는 서둘러서 바람이 불어오는 서녘을 향해 걸었다. 들판을 지나서 산자락을 헤매었다. 강나루를 돌아 마을을 뒤졌다. 그러나 좀체로 그 향기를 가진 꽃은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째 해가 저문 저녁때였다. 꽃을 찾아내지 못한 향감별사는 힘없이 향원정으로 돌아왔다. 굳이 알아내야겠다는 욕심을 포기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뒷개울에서 몸을 씻고 정자에 앉았다. 솔바람이 소소소 지나가자 둥근달이 떠올랐다. 저만큼 떨어져 있는 바위로부터 도란거리는 새소리를 그는 들었다.
'저 작은 새는 이 고요한 달밤에 누구와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새가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향감별사의 눈에 풀 한포기가 비쳤다. 그것은 이제껏 헛보고 지냈던 바위틈에 있었다. 향감별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빛 속을 걸어 바위 가까이 다가서 보니 풀이 좀더 잘 보였다. 그런데 서너 갈래의 풀잎 사이로 고개를 숙이고 숨는 희미한 점이 있어 그를 안타깝게 했다.
이때였다. 먼 하늘 깊은 곳에 있는 별빛인지, 가늘고 맑은 바람이 한줄기 흘러왔다. 그러자 보라, 풀섶 사이에서 작은 꽃이 갸우뚱 고개를 내밀다가 들킨 향기를. 바로 그 황홀한 향기가 아닌가. 향감별사는 임금 앞에 돌아가서 아뢰었다.
"그 향기는 화관이 크고 아름다운 꽃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또 멀고 귀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굳세게 살고 자기 빛을 잃지 않은 작은 풀꽃이 지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향기는 보는 이의 마음이 청정할 때만이 제대로 깃들 수 있기 때문에 좀체로 만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이상은 http://chack.7979.to/jung-1.htm 정채봉님의 생각하는 동화에서
22. 닭이 된 독수리 - 인디언 민화에서 -
어떤 개구장이가 산에 갔다가 독수리 알 하나를 주워 왔습니다. 개구장이는 마침 알을 품고 앉아 있는 암탉의 둥지속에 독수리알을 집어넣었습니다. 한달이 지나자 여러 병아리들과 함께 새끼독수리도 부화가 되어 나왔습니다. 다른 병아리들과는 달리 몸집이 크고 부리와 발톱이 날카로울뿐만 아니라 깃털이 별났기 때문에 새끼독수리는 자랄수록 고민을 더하였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험하게 생겼을까?'하고.
새끼독수리는 닭장을 뛰쳐나갈 것을 궁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입부리와 발톱이 어디에 소용되는지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겨드랑 밑이 근질거리는 것이 날개가 돋으려고 그러는 것인 줄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새끼독수리는 그저 자신이 '병아리려니'하고 다른 병아리들이 하는 짓을 따라 하며 지냈습니다.
낟알을 쪼아먹는 데에 부리를 사용했고 벌레를 찾느라고 발톱으로 땅을 헤집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병아리들한테서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고 돋아나오는 날개를 자신의 부리로 짓찧었습니다.
어느날 밤, 들쥐떼가 닭장을 습격해 왔습니다. 닭장은 금방 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닭들은 모두 독수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쥐떼가 무섭게 느껴지기는 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발톱과 부리는 닳아지고 눈망울에도 힘이 하나도 없어, 닭이나 진배 없었으니까요. 다른 닭들과 함께 독수리도 우왕좌왕 도망다니다가 날이 밝았습니다. 닭들은 일제히 독수리를 손가락질 하면서 미워하였습니다.
'저건 몸이 큰 먹충이일 뿐이지, 아무 것도 아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닭장 속의 독수리도 닭들과 함께 많이 늙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독수리는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을 높이 나는 위용있는 새를 보았습니다. 매섭게 생긴 부리, 갈퀴처럼 보이는 발톱, 우아하고 멋진 날개... 부라리고 있는 그 새의 눈 아래서는 들쥐뿐만이 아니고 피하지 않는 짐승이 없었습니다.
'아, 저렇게 멋진 새도 있구나.'
초라하게 늙은 독수리가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친구 닭이 독수리를 점잖게 타일렀습니다.
"응, 저건 독수리라는 새다. 날개 있는 새들 중에서는 왕이지. 그러나 넌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넌 들쥐한테도 쫓겨다니는 닭이니까 말이야."
이상은 http://chack.7979.to/jung-1.htm 정채봉님의 생각하는 동화에서
23. 진정한 충언
무조건 '옳습니다'로 출세하려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옳습니다'만을 사랑하는 윗분들이 있다면......
이조 숙종 때의 일이다.
당하관 벼슬에 있던 이관명이 어사(御使)의 직함을 갖고 영남지방 사찰을 나갔었다. 이 관명이 돌아오자 임금은 그를 불러 물었다.
"그래, 그대가 이번에 돌아본 영남은 어떻던가요? 관리들이 민폐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마음이 곧은 이 관명은 어떤 후궁의 소유로 되어 있는 섬에 대해 이실직고 하였다.
"황공하오나 한 가지만 아뢰옵나이다. 통영 관할 밑의 섬 하나가 어인 일인지 대궐 식구 가운데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었습니다. 고로 그 섬은 관리의 수탈이 어찌나 심한지 백성들의 궁핍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임금은 화를 벌컥 냈다. 철여의를 들어 책상을 내리쳤다. 책상이 박살이 났다.
"내가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이오!"
이관명은 그러나 태연자약하였다.
"그 일로 저를 그리 탓하신다면 물러나겠습니다. 파직하여 주시옵소서."
임금은 더욱 목청을 높였다.
"그만둘 테면 그만두시오!"
임금은 승지에게 당장 전교를 쓰라고 명하였다. 승지는 당황한 빛으로 붓을 들었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승지는 의외의 분부에 놀라면서 교지를 써내려 갔다. 임금의 명은 계속되었다.
"또 한장 쓰시오.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한다."
"또 한장 쓰시오.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호조판서를 제수한다."
이리하여 감투가 달아날 줄 알았던 이관명은 도리어 삼계급 특진이 되었다. 임금은 이관명을 가까이 불러 말하였다.
"경의 충간으로 내 잘못을 깨달았소. 법 앞에는 어느 누구도 평등하오. 앞으로도 그와 같은 신념을 변치 말고 일해 주기 바라오."
이상은 http://chack.7979.to/jung-1.htm 정채봉님의 생각하는 동화에서
24. 세가지 질문 - '가장 중요한 때'란? <톨스토이 민화> -
왕이 있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때가 언제인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왕은 지혜가 많다고 소문난 도사를 찾아가 물어보기로 했다. 그 도사는 깊은 숲속에서 자기의 거처를 한번도 떠나지 않고 자기가 농사지은 만큼만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왕은 도사의 암자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을 내렸다. 그리고 신하들을 돌려보내고 혼자 걸어갔다. 마침 도사는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왕은 물었다.
"도사님, 우리가 결코 후회하지 않게 꼭 지켜야 할 시간은 언제인가요? 그리고 어떤 사람을 멀리하고 어떤 사람을 가까이해야 하며 어떤 일을 중요시해야 합니까?"
그러나 도사는 묵묵 부답이었다. 그저 땅 파는 일을 계속 할 뿐. 늙고 마른 도사가 일을 하는 것이 왕의 마음에 걸렸다.
"도사님은 너무 지쳤소, 삽을 이리 주시오."
왕이 도사 대신 땅을 파는 동안 해가 졌다. 일을 마치려 할 때였다. 뒷산으로부터 칼을 찬 한 사람이 달려 내려와서 왕과 도사 앞에서 쓰러졌다. 그 사람은 맹수한테서 습격을 당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왕과 도사는 황급히 부상자를 암자로 옮겨서 치료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몸이 회복된 사람이 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나는 임금님의 정치에 원한을 품고 임금님을 죽이고자 뒤를 밟았던 자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극진한 간호를 받고 보니 나의 원한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왕은 기쁜 마음으로 도사를 찾았다. 도사는 어제 파헤친 텃밭에서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도사님. 나는 당신 덕분에 나를 해치려 한 사람을 친구로 만들었소. 이제 간절히 바라는 것은 내가 말한 어제의 질문에 도사께서 답을 해 주시는 것이오."
도사는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이미 대답을 얻었습니다. 만일 어제 나를 동정하여 이 채마밭을 갈아주지 않고 돌아갔더라면 자객의 칼을 받았을 것이니 그때가 중요한 때이지요. 그리고 맹수에 물린 그 사람을 도와 원수됨을 풀었으니 그 사람보다 중요한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 일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도사는 씨앗 뿌리는 손을 쉬지 않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잘 기억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때란 한순간, 순간 뿐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순간만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결코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란 그 순간에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이란 그 순간에 만나는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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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어떤 광대
강화도에 살던 떠꺼머리 총각이 어느날 임금 자리에 올랐다. 때마다 신선로 음식을 들고 밤마다 비단침구 속에서 잠을 잤다. 어린아이 다루듯 자리에서 일어나면 예쁜 궁녀들이 옆에서 부축을 했고, 손에서 손을 건너오지 않는 물건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알아서 하라" 해도 "황공하옵니다"
"모르겠소" 해도 "황공하옵니다"
"자고 싶다" 해도 "황공하옵니다"
수많은 신하들이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황공하옵니다"만을 연발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아서 우쭐거리던 어깨도 달이 가고 해가 바뀌자 시들해졌다. 신선로에 밥을 먹으나 된장국에 밥을 먹으나 한끼 때우기는 마찬가지. 비단침구로 잠을 자나 누더기 이불로 잠을 자나 하룻밤 잠자기는 마찬가지. 임금님은 '속이 답답하다'고 짜증을 내었다. 눈치 빠른 신하들이 궁녀들을 바꿔 들여보냈다. 임금님은 꽥 소리를 질렀다.
"여자들한테도 지쳤다. 달리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다오."
신하 하나가 저자거리에 나가서 소년 광대를 데려왔다. 요즘 말로 하면 코메디언인 이 소년 광대는 대궐에서 쓰는 말하고는 전혀 반대의 말을 해서 임금님을 웃겼다.
내시를 가리켜서 "저건 고자다" 그러면 임금님은 으하하. 풍채가 좋은 대감을 가리켜서 "저건 배불뚝이다" 마찬가지로 임금님은 으하하. 임금님 말을 척척 받는 대감을 가리켜서 "저건 아첨꾼이다" 역시 임금님은 으하하. 임금님이 물었다.
"그럼 나는 누구냐?"
소년 광대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당신이야 뭐, 황공하옵게도 임금옷을 빌어 입은 허수아비지."
임금님은 표정이 돌변했다.
"여봐라! 저놈을 당장 끌어내어 목을 베어라."
그러자, 이번에는 소년 광대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임금님의 노여움이 상투 끝에까지 올랐다.
"이놈아! 왜 웃느냐?" 소년 광대가 말했다.
"그럼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습니까? 바른 말로 남을 놀릴 땐 돈을 주고, 바른 말로 자기를 놀릴 땐 벌을 주다니, 이보다 더 웃기는 광대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듣기 싫다, 이놈!"
임금님은 주먹으로 탁자를 꽝 내리쳤다(이것은 강화도 떠꺼머리총각이 임금자리에 오르고 나서 처음으로 자기 손을 자기 마음대로 써 본 역사적인 일이었다). 글쎄, 그 다음에 소년 광대를 사면해 주었는지, 처형해 버렸는지 그것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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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보다 기쁜 것
언제부터인지, 그 법당의 부처님 고개는 오른편으로 약간 돌아가 있었다.
어느날, 부처님께 향을 공양하러 온 할머니가 스님께 말씀을 올렸다.
"스님, 부처님께서 우리를 보시지 않고 다른 데를 보시는데요."
스님이 부처님을 보니 과연 그런 것도 같았다.
스님은 부처님의 고개가 정면을 향하게 좌대를 조금 옮겼다.
그런데 며칠 후에 꽃 공양을 하러 온 젊은 신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하였다.
"스님, 부처님의 고개가 담장 밖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요."
스님은 부처님의 미소가 향해 있는 쪽으로 나가 보았다.
거기는 하반신이 마비된 거지가 살고 있는 움막인데, 절에 오다 말고 이를 발견한 소녀가 돕고 있었다.
스님은 부처님의 가슴속 말씀을 들었다.
'나에게 공양을 하는 것보다도 저기 버려진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나를 더 기쁘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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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사소한 것의 소중함
싱싱하게 새해 아침이 밝았다. 아랫강에 사는 자라는 얼음물로 세수를 하고 거북이한테 세배를 갔다. 거북이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자라의 세배를 받았다. 거북이가 덕담을 하였다.
"올해는 사소한 것을 중히 여기고 살게나."
자라가 반문하였다.
"사소한 것은 작은 것 아닙니까? 큰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은가요?"
거북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내가 오래 살면서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이었네. 사소한 일을 잘 챙기는 것이 잘 사는 길이야."
자라가 이해를 하지 못하자 거북이가 설명하였다.
"누구를 보거든 그가 사소한 것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보면 금방 알게 되네. 사소한 일에 분명하면 큰일에도 분명하네. 사소한 일에 부실한 쪽이 큰 일에도 부실하다네."
자라가 물었다.
"그럼 일상생활에서 해야 할 사소한 일은 어떤 것입니까?"
거북이가 대답하였다.
"평범한 생활을 즐기는 것, 곧 작은 기쁨을 알아봄이지. 느낌표가 그치지 않아야 해. 다슬기의 감칠맛, 상쾌한 해바라기, 기막힌 노을, 총총한 별빛..."
자라는 일어나서 거북이한테 넙죽 절을 하였다.
"어른의 장수비결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느리고 찬찬함. 곧 사소한 것을 중히 알아보는 지혜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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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빈산에서
황량한 빈산이 있었다. 온통 암석일 뿐, 풀밭이라곤 옹달샘 부근의 손바닥만한 땅으로 마치 망망한 바다 가운데의 한섬 같아 보였다. 이 빈산에 토끼 한마리가 살고 있었다. 옹달샘 부근의 풀밭이 유일한 먹이었으나 그것도 빈약하기만 하여 늘 배고픈 나날이었다. 그러나 이 볼품없는 풀밭마저도 지독한 가뭄에 옹달샘이 마르자 타죽고 말았다.
불쌍한지고!
토끼는 새로운 터를 찾아 황량한 계곡을 지나고, 고개를 넘었다. 빈산을 빠져나오는데는 꼬박 사흘 낮과 사흘 밤이 걸렸다. 마침내 토끼는 푸른 산에 도착했다. 거기는 산여울이 흐르고 숲이 짙었다. 어디고 푸른 풀밭 천지였다. 토끼는 마침내 활기찬 삶을 살게 되었다.
후일, 토끼는 말했다.
"나는 처음 그 가뭄을 얼마나 증오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 가뭄처럼 고마운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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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거룩한 성배 - 크리스찬 예화에서 -
중세기 이탈리아에 기사도 정신에 충렬한 한 성주(城主)가 있었다.
그는 살아 생전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공을 세웠으면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자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더불어 만찬을 나눌 때 사용한 금잔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성주는 당장 많은 돈을 준비해서 말을 타고 나섰다.
그런데 그가 성문을 나서려 할 때였다. 성문 앞에서 한 문둥병자 거지를 만나게 되었다.
"한푼 도와 주십시오."
"무슨 소리냐? 나는 지금 우리 구세주의 영광스러운 금잔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냉큼 비키지 못할까!"
"성주님, 저는 며칠을 굶었습니다. 제발 한푼만!"
성주는 마지못해 금화 한닢을 꺼내 땅바닥에 내던지며 소리 질렀다.
"자, 이걸 가지고 떠나라.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큰일 때문에 너를 돌볼 겨를이 없다."
이때부터 수십년 동안 성주는 예루살렘은 물론 이탈리아 구석구석을, 그리고 멀리 애굽과 사막에까지도 금잔을 찾기 위해 뒤지고 다녔으나 헛수고였다. 드디어 돈은 떨어지고 머리에는 하얀 서리가 앉게 되었다. 그는 지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용마를 타고 비단옷을 입고 떠나던 때와는 달리 낡은 옷에 지팡이를 짚은 쓸쓸한 모습이었다.
성문 앞에 다달았을 때였다. 그의 앞에 예의 문둥병자 거지가 나타났다.
"한푼 도와 주십시오."
그동안 숱하게 겪은 고생으로 이제 그의 거드름은 잦아지고 사랑이 솟아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거지에게 나누어 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마른 빵 한 조각 밖에는. 그는 빵의 절반을 잘라 거지한테 주었다. 그리고 허리에 차고 있던 쪽박을 들고 옹달샘으로 가서 물 한바가지를 길어왔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돕는 것이 변변치 못해 미안하오. 하지만 이것이 내 전부인 것을 어떡하오."
그러자 갑자기 문둥병자 거지가 예수의 모습으로 변했다.
"두려워 말고 들어라. 금잔을 찾으려고 아무리 헤매어도 소용이 없다. 샘물을 길어온 그 보잘것없는 쪽박이 나의 성배이다. 네가 떼어준 빵이 나의 살이며 이 물이 내 피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와 더불어 나누는 식사야말로 진정한 성찬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남을 위해 무엇을 베풀 때, 그것이 참 베품이며, 참 사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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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지옥에 간 심술쟁이
남을 골탕먹이는 것을 재미로 삼는 심술쟁이가 있었어요. 심술쟁이는 온갖 나쁜짓만 골라서 했다. 어느날 심술쟁이는 모두 쓰는 우물에 오물을 퍼다 부었다. 더러워진 우물물을 들여다보며 히죽이죽 웃다가 그만 우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심술쟁이는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었다. '너는 세상에 있을 때 무슨 공덕을 쌓았느냐?' 염라대왕이 물었다.
'저는 세상에 살 때 착한 일만 해서 큰 공덕을 쌓았습니다. 심술쟁이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 두었던 말을 좔좔 외웠다.
염라대왕은 심술쟁이를 평생 동안 한 일이 영화 장면처럼 나타나는 업경대라는 거울 앞에 세웠다. 서당에 가서 글공부할 책들은 팔아먹고, 서당 갈 시간에 제기차기를 하고 놀거나, 여인들의 긴 댕기머리를 잡아댕기질 않나...
'착한 일이라곤 한 가지도 한 것이 없구나. 너는 지옥으로 가야 마땅하다.'
염라대왕은 심술쟁이를 지옥의 불 속에 던졌다.
10년째 되는 날, 염라대왕은 선녀에게 파 한뿌리를 던져주며 심술쟁이를 구해 주라고 했다.
선녀가 파뿌리에 실을 매고 지옥 속에 던지자 지옥에서 신음하던 심술쟁이는 파뿌리에 매달렸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매달리자 심술쟁이는 매달리는 사람들을 발로 차서 떨어뜨렸다. 결국, 혼자 살기 위해 동료들을 떨어뜨린 심술쟁이는 다시 뜨거운 지옥불로 떨어지고 말았다.
31. 살아있는 구유
왕이 있었다. 왕은 방을 써서 나라의 곳곳에다 붙였다.
'섣달은 별이 내리는 달이다. 각자가 별을 받을 구유를 하나씩 지어와서 심사를 받도록 하여라. 살아 있는 구유로 판정이 내려진 사람에게는 상을 주겠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구유를 만드는 데 정신이 없었다.
서로가 더 나은 구유를 만들기 위해 재료 경쟁이 치열했고 솜씨 싸움 또한 볼 만하였다. 종을 지을 때처럼 주물로 구유를 빚는 부자도 있었고 대리석으로 구유를 조각하는 예술가도 있었다.
어떤 권력가는 몇백살이나 먹은 향나무를 도벌해 와서 구유를 만들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치장 붐까지 일어나서 구유에 금도금을 하는가 하면 아름다운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그리고 안쪽에 비단을 대어서 우아하게들 꾸몄다. 심사일이 다가오자 응모자들은 모두 들떠서 술렁거렸다. 전시장에다 각자가 만들어 온 구유를 내다놓고 가슴을 조였다.
왕이 몸소 전시장에 와서 구유를 살폈다. 그런데 왕의 심사방법이 아주 특이했다. 가슴 속에서 빛나는 별을 꺼내어 구유에 살며시 놓아보는 것이었다. 왕은 주물로 빚고 금도금을 한 구유 속에다가 별을 놓았다. 그러자 별은 구유 속에서 이내 굳어져 쇠인형으로 변하였다.
왕은 고개를 저었다.
다음에는 대리석 앞으로 갔다. 별을 꺼내어서 대리석 구유 속에 넣었다. 그러자 별은 돌인형으로 변하였다.
왕은 고개를 저었다. 향나무로 구유를 만든 권력가의 가슴이 부풀었다. 이제 자기의 구유에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왕이 가까이 오자 그의 호흡은 심하게 거칠어졌다. 왕이 자기의 향나무 구유에다 별을 놓을 때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애석한지고!
별은 향나무 구유에서조차 볼품없는 인형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무인형이라는 것일 뿐.
별이 변하기는 어느 구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쇠로 빚은 구유에서는 쇠인형으로, 돌로 만든 구유에서는 돌인형으로, 그리고 나무로 만든 구유에서는 나무인형으로 뻣뻣해지곤 했다. 궁으로 돌아가려던 왕은 문득 군중 틈에서 멈칫거리는 한 소녀를 발견했다.
왕은 조용히 말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리 나오너라."
소녀는 쓰레기 치우는 일을 하면서 사는 넝마주이였다. 소녀는 날마다 쓰레기더미에서 차마 버리기 아까운 헌 나무를 주워 잇대어서 만든 구유, 조각천을 이어서 바닥에 깐 작은 구유를 안고 있었다. 왕은 넝마주의 소녀의 그 가난한 구유 속에 별을 놓았다.
그러자 보라!
갑자기 별이 숨을 쉬면서 거룩한 아기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왕은 기쁨에 넘쳐서 말했다.
"이리들 오라. 이 가난한 소녀의 구유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구유의 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유의 마음이 중요하다. 형식의 구유에서는 인형으로 있는 별도 정갈한 마음의 구유에서는 거룩하게 살아 움직인다. 이 태어남이 진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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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뱀의 보은
옛날, 한 아이가 있었어.
하루는 그 아이가 글방에 가다가 글방 가는 길 옆 바위 위에 조그마한 뱀 한 마리가 있는 걸 보게 됐어. 뱀은 배가 고팠는지 혀를 낙작낙작 하고 있었지.
아이는 뱀이 불쌍해 보였어.
그래서 가지고 가던 밥을 한 숟갈 떠서 뱀한테 주었어. 그러자 뱀은 그 밥을 낙작낙작하던 혀로 얼른 받아먹는 거야.
다음 날이었어. 아이는 글방에 가는 길에 또 뱀을 보았어. 아이는 또 밥을 한 숟갈 떠서 뱀한테 줬지. 그 다음날, 또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어. 그러다 보니 아이는 날마다 자기 밥을 조금씩 뱀한테 주게 됐어.
뱀은 아이한테 밥을 얻어먹고 점점 커졌어. 뱀이 커지자 밥도 많이 먹게 됐지. 처음엔 한 숟갈씩 먹었지만 두 숟갈, 세 숟갈……그리고 아이 밥의 절반씩 먹어대더니, 나중에는 아이의 밥을 혼자 먹어도 모자랄 지경이 되고 말았어. 뱀한테 밥을 준 아이는 점점 말라갔지.
그러자 아이는 어머니한테 말했어.
"어머니, 글방에 가난한 아이가 있어 밥을 못 싸 가지고 옵니다. 그러니 그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게 밥을 많이 담아주세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커다란 주발에다 밥을 가득 담아 줬어. 아이는 이 밥의 절반을 뱀에게 줬지. 또 글방에서 밥을 먹다 남으면 갖다 주기도 했고.
이렇게 몇 해가 지나자 조그마하던 뱀은 커다란 집채만한 구렁이가 됐어. 아이는 이 구렁이와 의형제를 맺고는, 구렁이한테 형님이라고 불렀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구렁이가 아이한테 말했지.
"너는 조금 있으면 이 정승 댁에 장가를 가게 될 거야."
"형님은,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어떻게 그런 큰 부잣집에 장가를 가. 더군다나 재상 댁 따님은 아름답고 지혜롭기로 소문이 자자한데.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두고 보라고. 난 볼 수 있지. 넌 꼭 이 정승 댁에 장가를 가게 될 테니 두고 봐."
그런데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정승 댁에서 사람이 오더니 혼사를 묻는 거야. 아이는 정말로 이 정승 댁에 장가를 가게 된 거야.
잔칫날, 새서방이 된 아이는 말을 타고 색시집으로 가려 했지. 그때 구렁이가 오더니 자기가 먼저 그 집에 가서 집 뒤에 있는 땔나무 쌓아놓은 곳에 가 숨어 있을테니 떡이랑 국이랑 갖다 달래.
새서방은 말을 타고 색시집에 가서 혼례를 치루고는 구렁이한테도 떡을 한 광주리 담아다 주었지.
이제 밤이 깊어 새서방과 색시는 불을 끄고 잠이 들었어. 그런데 색시를 짝사랑하던 돌중 하나가 색시가 혼례를 치룬다는 소문을 듣고는 밤에 담을 넘어 들어와 있었어. 집 뒤에서 칼을 숫돌에 슬겅슬겅 갈고 있었지. 새서방을 죽이고 색시를 뺏어 살려고 말이야. 구렁이가 이걸 보고 얼른 나와서 이 돌중의 몸을 친친 감아 매서 죽였어. 구렁이가 새서방의 생명의 은인이 된 거지.
새서방은 혼례 뒤에도 계속 글방에 다니며 열심히 공부를 했어. 그러던 어느 날, 구렁이가 와서는 "이번에 과거를 보면 꼭 급제할 테니 과거를 꼭 봐야 한다" 고 했어. 그 말을 듣고 과거를 봤지. 그랬더니 정말로 급제를 해서 큰 벼슬을 하게 됐어.
그리고 다시 몇 해인가 세월이 흘렀지.
그 사이 새로 왕위에 오른 임금은 백성들은 돌보지 않고, 간신들만 앞세우고 방탕하게 지내고 있었어. 왕이 그러니 다른 지방의 관리들도 백성들을 쥐어짜며 자기들 배만 불리기에 바빴어. 백성들의 왕을 원망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구렁이가 새서방을 찾아왔어.
"나는 이제 이 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개에 올라가서 거기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먹을 것이다. 그러면 조선 전체가 난리가 나서 나를 잡아죽이겠다고 야단이 날 것이야. 그러면 나라에서는 나를 잡아죽일 사람을 뽑겠다고 할 것이다. 그 때 니가 얼른 나서서 구렁이를 잡아죽이겠으니 사람 백 명과 달구지 백 틀하고 큰 검 한 자루를 달라고 하거라. 그래서 내가 있는 고개로 와서 나를 잡아 내 몸뚱이를 백 토막으로 끊어서 달구지 한 틀에 한 토막씩 싣고 왕한테 가져다 바쳐."
아이는 이 말을 듣고는,
"아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벌써 죽었을 것인데, 형님 덕분에 살아 이렇게 살고 있는데, 저보고 형님을 죽이라니…… 제가 어떻게 형님을 죽이겠습니까. 저는 못 합니다."
했어. 그러자 구렁이는 니가 날 안 죽이면 내가 너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거야. 새서방은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하고 말았지.
정말 얼마 안 가서 온 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고개에 큰 구렁이가 나타나 사람을 많이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쫙 퍼졌어. 백성들은 임금이 어질지 못해 우환이 생긴 거라며 수근거렸지. 나라에서는 이 구렁이를 잡아죽이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가는 사람들마다 구렁이한테 잡아먹히고 돌아오질 못해. 결국 나라에서는 방을 붙였지. 구렁이를 잡아죽일 사람을 뽑는다고.
새서방은 왕한테 갔어. 자기가 그 구렁이를 잡아죽이겠으니 사람 백 명과 달구지 백 틀과 커다란 검 한 자루를 달라고 했어. 왕은 새서방한테 사람 백 명과 달구지 백 틀과 큰 검 한 자루를 내주었지.
새서방은 사람 백 명과 달구지 백 틀과 큰 검 한 자루를 들고 고개로 가서 외쳤지.
"형님. 나 왔우다."
그러자 어디선가 구렁이가 나타났어. 새서방은 큰 검으로 구렁이를 백 토막을 내서 달구지 한 틀에 한 토막씩을 맸어. 그리고 그걸 끌고 왕한테 갖다 바쳤지.
왕은 거만한 몸짓으로 그 구렁이가 얼마나 크고 긴가 보겠다며 백 토막 난 구렁이를 붙여 보래. 새서방은 토막난 구렁이를 한 토막씩 한 토막씩 내려서 붙였어.
한 토막, 두 토막, 세 토막,……, 아흔 아홉 토막.
그리고 마지막 백 토막을 붙이자!
갑자기 그 토막난 구렁이가 착착착착 홀딱 붙어. 다시 커다란 구렁이가 되서 왕한테 달려들어 왕을 잡아먹었지. 그리고 구렁이는 새서방을 왕으로 삼았어. 왕이 된 새서방은 나라를 잘 다스렸대. 뱀에게 자기 밥을 나눠주듯이 백성들을 보살폈대.
백성들도 어진 마음을 가진 새서방이 왕이 된 걸 좋아했겠지?
33. 두벌 가죽 (두번째 가죽)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는 걸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지금이야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시장이나 슈퍼에 가서 언제든지 살 수 있지만, 옛날엔 그렇지 못했어. 3일장이니 5일장은 그래서 생긴 말이야. 장이 며칠만에 한 번씩 열리냐에 따라서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는 이름이 생겼어. 그 앞에는 장이 서는 곳의 이름이 붙고 말야. 예를 들어 경기도 성남에서 가장 유명한 장은 모란장이거든.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불러. '모란 5일장'이라고.
그러니 사람들은 장날만 되면 신바람이 났어. 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사람들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곳이기도 했거든. 그래서 장이 서면 그곳은 마치 잔치집처럼 왁자지껄했고, 또 재미있는 일도 많이 일어났단다.
옛날 어느 마을에 사는 한 사람이 있었지. 하루는 그 사람이 오랜만에 장터에 갔어. 오랜만에 가는 장이어서 그런지 갈 때부터 괜히 기분이 좋았어. 장에서 필요한 물건도 사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다 보니 기분은 점점 더 좋아졌지. 그래서 술을 한 잔 한다는 게 그만 취할 정도로 먹게 되었나봐.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어. 어둑어둑한 고개를 넘다보니 그만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어.
그런데 한참 자다보니 뭔가 이상해. 얼굴이 싸늘해지고 축축한 기운이 돌거든. 잠결에 뭔가 싶어 눈을 가만 떠보니, 에구머니! 이게 웬일이야? 커다란 범(호랑이의 우리말이지) 한 마리가 꼬리에다 물을 묻혀다 얼굴에 뿌리고 있지 뭐야.
호랑이는 자는 사람은 잡아먹지 않는다더니 사실인가봐. 산중의 왕인 범 체면에 자는 사람을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테지. 그래 이 사람이 자고 있으니까 물을 뿌려 깨워서 잡아먹으려고 한거고.
이 사람은 너무 놀랬어. 너무 무서워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 하지만 범이 자기가 깬 걸 알면 바로 잡아먹을 테니 계속 자는 척 하고 있을 수밖에.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래 결심을 했지.
'이왕 죽을 바엔 범과 한 번 싸워보기라도 해야겠다.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니 말이야'
이 사람은 물을 뿌리고 있는 꼬리를 얼른 손으로 낚아챘어. 그리고 범의 잔등에 올라탔지.
이번에 범이 깜짝 놀랐지. 잔등에 올라탄 게 뭔지 몰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가 난 거야. 하지만 사람도 죽을 각오를 하고 올라탔는데 쉽게 떨어질 리가 없지. 범은 밤새 뛰고 또 뛰었어.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자 범은 자기 굴로 도망을 가려 했지.
이번엔 또 이 사람이 놀랐어. 지금까지는 어떻게 버텨보았지만 범의 굴로 끌려갔다가는 진짜 죽겠구나 싶은 거지. 그래 범이 굴로 들어가려 하자, 이 사람은 양발로 굴의 양쪽 언덕을 딛고, 손으로는 범의 양쪽 귀를 붙잡고 힘껏 잡아당겼지.
범은 굴로 들어가려 하고, 사람은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한 거지. 이런 힘 싸움은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 됐어.
갑자기 '쌩-'하는 소리가 나더니, 뭔가 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어. 동시에 이 사람은 뒤로 나자빠지고 말이야. 그리곤 정신을 잃었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라. 이 사람은 겨우 정신이 나서 눈을 뜨고 일어서려 했어. 하지만 범하고 싸우느라 너무 힘을 많이 썼는지 몸을 일으키기도 쉽지 않았어. 겨우 겨우 몸을 일으키는데 손에 뭐가 끌려와, 보니 그게 범이야!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 보니 범의 몸뚱이는 없고, 범 가죽만 남아있는 거야.
이 사람이 뒤로 나자빠질 때 뭔가 굴 안으로 들어갔던 게 범이었나봐. 범이 너무 급한 나머지 가죽은 벗어놓고 알몸만 도망갔던 거야.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밤새 이 사람이 범의 양쪽 귀를 잡고 뒤로 잡아당겼잖아. 범은 앞으로 가려고 애를 쓰고 말야. 그러다 보니 범 가죽이 켕길대로 켕기다가 제일 약한 콧등이 터진 거야. 그런데도 계속 잡아당기니까 콧등부터 가죽이 졸금졸금 벗겨지다가 범이 힘을 버썩 쓰자 가죽이 홀랑 벗어지고 만 거야.
어쨌든 횡재했지 뭐야. 이 사람은 범 통가죽을 가지고 집으로 내려왔어. 물론 비싼 값에 통가죽을 팔아서 부자가 됐지.
그런데 같은 마을에 사는 욕심쟁이가 배가 아팠어. 그래 자기도 더 부자가 되고 싶어서 이 사람한테 와 어떻게 부자가 됐냐고 물었지. 이 사람은 이러이러해서 범 통가죽을 얻게 되었다고 말해 줬어.
이 말을 들은 욕심쟁이는 당장 범을 잡은 것 같이 기뻐했어. 마침 그 날이 장날이라 얼른 장에 가서 술을 잔뜩 먹고 그 고개에 와 누워 잤지.
그런데 범이 오질 않는 거야.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 날이 되도 오질 않았지. 하지만 이쯤해서 그만두면 욕심쟁이가 아니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범이 올 때가지 기다리고 기다렸어.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범이 왔어.
와서는 꼬리에다 물을 묻혀 얼굴에 뿌리고 있었어. 욕심쟁이는 자는 척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얼씨구나 했지. 삼년 하고도 석달만의 일이니까 말이야.
욕심쟁이는 일러준 대로 얼른 범의 꼬리를 붙잡고 잔등에 올라탔어. 범은 놀라서 마구 뛰기 시작했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밤새도록 뛰어다니다가 새벽녘이 되니까 자기 굴로 들어가려 해. 그래 들은 대로 굴 양쪽 언덕을 딛고 버텼지. 범은 굴로 들어가려고 낑낑대고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한참 실갱이를 하다보니 뭐가 '쌩-'하더니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어.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욕심쟁이도 놀라 정신을 잃고 말았지.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 기뻤어. 손에 범 통가죽이 들려있었으니까
욕심쟁이는 범 통가죽을 들고 장에 갔어.
그런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져가 봐도 사지 않겠다는 거야.
'내가 비싼 값을 달라고 할까봐 이 놈들이 짜고 이러는구나'
생각하고 먼젓번에 범 통가죽을 샀다던 사람에게 가서 흥정을 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범 통가죽을 닷냥 밖에 안주겠대.
왜냐구?
통가죽은 통가죽인데 두벌 가죽이라서 값이 안 나간다는 거야.
욕심쟁이가 벗긴 가죽은 바로 삼년 전 가죽이 몽땅 벗어져 알몸으로 도망갔던 범의 가죽이었던 거야. 그동안 다시 털이 돋아나서 생긴 두번째 가죽 말이야.
삼년 하고도 석달동안 고생한 보람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지.
하지만 통쾌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그럴까?
34. 장길손 - 백두산과 개마고원이 생긴 유래?
옛날하고도 아주 먼 옛날의 일이었지. 어마어마한 거인 한 사람이 살고 있었어. 그 사람 이름이 장길손이야.
얼마나 컸냐고? 장길손이 앉아 있으면 구름이 장길손 턱 밑에 가 걸리곤 했다는데……, 어때 상상이 되니?
이렇게 몸집이 크니까 먹는 건 얼마나 많이 먹어대겠니. 가마솥으로 10개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곤 했지. 물론 먹는 만큼 힘도 셌어. 장길손은 사람들이 몇 명씩 와서 들어도 못 드는 바위를 가지고 공기놀이하듯 했대.
그런데 장길손은 언제나 배가 고팠어. 장길손이 주로 살던 곳은 산이 많은 곳이라서 농사가 잘 되질 않았거든. 그러니 사람들은 장길손이 배부를 만큼 음식을 줄 수가 없지. 장길손이 배부를 만큼 밥을 줬다가는 자기들이 굶어죽을 판이니까 말이야.
장길손은 배가 고파서 온 나라를 돌아다녔어.
그러던 어느 날, 장길손은 멀리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게 됐어. 그곳은 장길손이 살던 곳과는 달랐어. 일단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고, 거기에선 쌀도 아주 많이 났지. 그러니 아무래도 밥 인심도 아주 좋았어. 사람들은 처음 보는 장길손이 마냥 신기하기도 하고, 또 불쌍해 보이기도 했어. 그 큰 몸집을 가지고 먹을 걸 찾아서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니 말이야. 사람들은 집집마다 밥을 한 섬씩 해서 장길손에게 줬어.
덕분에 장길손은 생전 처음으로 배가 부르게 먹어 봤어. 기분이 너무 좋아졌어.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흥에 겨워 춤을 덩실덩실 추었단다. 어깨를 들썩이며 팔을 휘저으면서 말이야.
그런데 바로 그 춤이 탈이 되고 말았어.
장길손이 어깨를 들썩일 때마다 장길손의 큰 몸집이 해를 가려 큰 그늘을 만들고, 팔을 휘저을 때마다 장길손의 소매에서 바람이 휘몰아쳐서 그 동네 곡식이 몽땅 날아가 버렸어.
그러자 사람들은 화가 났어. 기껏 잘 대해줬더니 농사나 망치는 나쁜 놈이라고 말이야. 이런 바보 같은 녀석이 어딨냐면서 장길손이를 내쫓았어.
장길손은 어쩔 줄을 몰랐어.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그 마을을 떠날 수밖에. 장길손은 울면서 다시 북쪽으로 계속 올라갔어. 자기한테 잘 대해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려서 계속 울음이 나왔어. 하지만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장길손은 점점 지쳤어. 북쪽으로 갈수록 논밭은 적어졌고, 게다가 어느새 장길손이 농사를 망쳤다는 소문이 퍼져서 사람들은 장길손을 보면 피하기 바빴거든.
장길손은 배고프고 지친 몸을 이끌고 마냥 걸었어. 그래도 쉴 때보다는 걸어야 배고픈 걸 덜 느꼈거든. 이렇게 계속 걷다보니 드디어 우리 나라의 북쪽 끝까지 오게 됐어.
여기까지 온 장길손은 그만 그 자리에 푹 쓰러지고 말았어. 뱃속에 뭐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어. 하지만 주변은 아무리 살펴봐도 먹을 거라고 단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어.
장길손은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에다 집어넣기 시작했어. 나무, 흙, 돌 할 것 없이 모두다 말이야. 정신없이 먹다보니 일단 배는 좀 찼지. 하지만 못 먹을 걸 먹었는데 제대로 될 리가 있어?
일어나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배를 움켜쥐고 떼굴떼굴 구르기 시작했지. 그리곤 먹은 걸 토해내기 시작했어. 조금 전에 먹었던 나무, 흙, 돌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어. 꼼짝없이 주저앉아 그 자리에 모든 걸 다 토해냈지. 그러고 나니까 장길손이 입 앞에는 토한 게 쌓이고 쌓여서 하나의 산을 이뤘어. 그게 바로 백두산이야.
일단 다 토하고 나니 속은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았어. 대신 눈물이 쏟아져 내렸지. 속은 텅 비어 허전하고, 몸은 피곤하고, 주변엔 장길손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남들과 다르게 거인으로 태어난 신세가 서글프기 그지없었어.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어. 그 동안 쌓이고 쌓였던 설움과 외로움이 모두 눈물로 쏟아졌기 때문이지. 눈물은 큰비가 되었어. 결국 아까 장길손이 토해서 만들어진 산, 백두산 꼭대기에 큰 연못을 만들고 말았지. 하지만 여전히 눈물이 계속 쏟아지니까 그 연못의 물도 넘쳐서 양쪽으로 긴 강을 만들어 흘러내렸어. 그 연못이 바로 백두산 천지고, 양쪽으로 흐르는 긴 강이 압록강과 두만강이야.
이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까 이제 기분이 좀 풀렸어. 그래서 '휴!'하고 큰 숨을 한 번 내쉬었지. 그 바람에 근처의 작은 산들은 모조리 날아가 넓은 들이 생겼어. 그게 바로 만주벌판이래.
그리고 장길손은 지쳐서 잠이 들었어. 아주 편하게 그 자리에 엎드려서 말이야.
하지만 장길손은 다시 잠에서 깨지 않았어. 대신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장길손은 흙으로 변해갔지. 그 거대한 몸 그대로 말이야. 그래서 팔과 다리는 산맥이 되고, 넓은 등은 우리 나라의 지붕인 개마고원이 되었대.
이제 장길손은 편해졌을까?
35. 잇새로 재물이 샌다.
이에 틈이 많이 벌어지면 재물이 샌다는 말이 있어. 정말 그럴까? 아마 그 말은 이런 뜻일꺼야. 옛날에 말이 아주 많은 세 사람이 있었거든. 얼마나 말이 많은지 이 세 사람이 끼는 자리면 다른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 다른 사람이 말할 틈을 주지 않지. 그래서 서로 이야기하다가 이 사람들만 끼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네.
말을 많이 하다보면 꼭 남에 말을 하게 되고, 남의 말을 하다 보면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을 더 많이 하게 되니까 말이야.
또 품앗이를 할 때도 일하는 시간보다 말하는 시간이 더 많으니 누가 좋아하겠어. 해서 친구가 별로 없었단다. 그런데 이상한 건 친구만 없는 것이 아니라 재물도 안 모이는 거야.
그래서 세 사람은 산신령에게 물어보려고 길을 떠났대. 고개를 넘고, 또 고개를 넘고 하며 말 많은 세 사람은 산신령을 찾아갔지.
산신령은 세 사람에게 생전 처음보는 황금 열매를 하나씩 주면서 이것을 물고 지내면 재물이 모인다고 했어. 그리고 1년 후에 이 열매를 다시 가져오라고 했단다. 다른 말은 없이 말이야.
세 사람은 그 열매를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왔지. 그리고 하루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 밥먹을 때만 옆에 잠깐 빼놓고는 하루 24시간 입에 물고 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 남이 무슨 말을 해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손짓 발짓으로 해야 하니 말이야.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두 사람이 열매를 뱉아서 주머니 속에 넣어 놓았어.
'입에 물고 있으나 주머니에 넣고 있으나 마찬가지야. 1년 후에 갖다주기만 하면 되지 뭐.'
입에서 열매를 뱉어낸 두 사람은 다시 전처럼 말을 많이 하고 다녔지. 그런데 한 사람은 여전히 열매를 입에 물고 다니는 거야. 아침에 일어나면
"얘야, 세숫물 떠놓아라"
했었는데 말을 할 수 없으니까 나가서 직접 세숫물을 떠서 했지. 식구들이 보니 달라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외양간 치워라."
"앞밭에 김을 매라."
"논물 보아라."
하며 입으로 한몫보던 것을 말없이 나가서 묵묵히 일을 하네. 저녁이면 이웃집 사랑방에 마실을 갔다가 첫닭이 울 때야 돌아오더니, 마실가는 대신 초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 삽을 들고 논으로 나가거든. 동네에 큰일이 생겨도 마찬가지였어. 전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잘도 빠지더니 이제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몸으로 때울 수밖에. 동네 사람들은 산신령을 만나러 가더니 벙어리가 되어 왔다며 안됐어 했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람을 전보다 더 좋아했단다.
어느덧 산신령과 약속한 1년이 다 됐어. 두 사람은 주머니에 넣어놓은 열매를 꺼내보았단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글쎄 열매가 까맣게 썩어있질 않겠어. 입에 물고 있던 열매는 말짱한데 말이야. 해서, 입에 물고 있던 사람만 산신령한테 열매를 돌려주었단다.
그후 끝까지 열매를 물고 있던 사람은 친구도 많아지고 재물도 많이 모았대. 열매를 물고 있을 때처럼 쓸데없이 남에 말을 안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말로 하는 것보다는 자기 손으로 직접 하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던 거지.
http://click.childweb.co.kr/old/old-jang04.htm
36. 좋은 말을 해서 얻은 색시
옛말에 『말을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어. 말을 조심해서 하고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게 하면 죽을 고비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생각지도 않던 복이 굴러들어 온다는구나.
옛날에 어떤 아이가 살았는데 그 애는 밤만 되면 부엌에다 오줌을 누는거야. 날씨는 춥고, 밖은 깜깜하고, 요강에다 누자니 창피하고, 해서, 부엌에다 오줌을 누기로 한거지.
하루 밤이면 또 모르겠는데 밤마다 오줌이 마려운 거야. 그때마다 부엌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궁이에다 대고 오줌을 누었거든.
그런데 부엌에 사는 조왕신이 참을 수가 있어야지. 밤마다 오줌을 누니 지린내가 얼마나 대단했겠어. 화가 난 조왕신은 산신령한테 달려갔지.
"우리 집에 사는 아이놈이 밤마다 부엌에 오줌을 누어서 내가 죽을 지경이오. 이 놈을 혼좀 내주시오."
산신령도 고약한 생각이 들어 호랑이에게 잡아먹으라고 했거든. 그날 밤, 호랑이가 내려와 이 집 마당에 떡 버티고 앉아 동정을 살폈어. 이 날 밤도 아이는 오줌을 누려고 방문을 열고 나왔지. 그런데 마당에 호랑이란 놈이 눈에 불을 켜고 쳐다보고 있네. 아이는 깜짝 놀랐지만 태연한 척 부엌으로 쑥 들어갔어. 짐승들은 놀라거나 겁을 먹는 사람한테 먼저 덤벼든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리고는 오줌을 누면서 제법 큰소리로 이렇게 말을 했지..
"나는 집에서도 이렇게 추운데, 호랑이님은 산에서 얼마나 추우실까?"
밖에 있던 호랑이가 들으라고 말이야. 호랑이가 들어보니 아이가 그럴 수 없이 고맙거든. 그래서
"저렇게 마음 착한 아이를 어떻게 잡아먹나? 대신 예쁜 색시나 하나 얻어주어야겠다."
하며 돌아갔지.
호랑이는 예쁜 색시를 얻어주려고, 동네마다 찾아다녔어. 그런데 마침 한 동네에 가니 혼인 잔치가 벌어진거야. 색시는 연지 찍고 곤지 찍고 방안에 예쁘게 앉아있고, 사람들은 잔치 음식을 만드느라고 야단이 났지. 호랑이는 색시가 있는 방안으로 뛰어들어가 얼른 물고 달아났어. 색시 집에서는 호랑이가 색시를 물고 갔다고 난리가 났지만 찾을 수가 있어야지.
호랑이는 색시를 물어다가 아이네 집 마당에다 던져 놓았단다. 밖에서 쿵 소리가 나 뛰어나가 보니까 어떤 색시가 기절해서 널부러져 있는거야. 아이는 얼른 이 색시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 따뜻한 아랫목에 눕혔어. 그리고는 물을 끓여 입에 흘려넣고, 미음을 쑤어서 조금씩 떠 먹였지. 한참을 그러고 나니 색시가 눈을 부시시 뜨네.
며칠 후 색시는 몸이 다 나았어. 아이가 잘 돌보아 주어서 말이야. 색시는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라며 아이와 결혼을 했지.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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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호박장군
옛날 옛날에 호박만 무지무지 잘 먹는 총각이 있었어.
떡도 호박떡이면 한시루를 다 먹고, 국도 호박국이면 한번에 몇동이를 다 먹어내면서 날마다 호박떡과 호박국만 해내라고 성화였지. 어머니 아버지는 밭이란 밭에다 모두 호박만 심어서 먹였지.
그런데 그 총각은 호박을 먹은 만큼 방귀도 얼마나 크게 뀌는지... 방귀 한 번에 벽이 흔들리고 고리디 고린 냄새가 한나절이 되도록 없어지지 않아서 코가 썩어 문들어질 지경이었어. 결국 어머니 아버지는 견디다 못해 이제 니가 알아서 먹으라며 집에서 내쫒고 말았어.
집에서 쫒겨난 호박총각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일을 해주고 돈은 필요없으니 호박떡과 호박국을 해 달라고 했지. 처음엔 사람들이 너무 좋아했어. 일도 잘하는데다 돈도 안 받고 호박떡과 호박국만 해달라니 횡재라 생각했지.
하지만 곧 야단이 났지.
호박국을 가마솥 가득 끓여 줘도 혼자 다 먹고 더 먹지 못해 안달이었으니까. 게다가 밤이 되면 바깥방에서 '쾅'하는 소리가 나면서 안방벽이 득먹들먹해 집이 무너지는 줄 알고 밖으로 나가보니 고리디 고린 냄새가 바깥방에서 회오리 바람처럼 나오면서 코가 아파 씀벅씀벅해졌지. 그러니 어떤 집에 가나 사흘을 못 넘기고 쫒겨나고 말았어.
그래 여기도 못있고 저기도 못있고 가는 곳마다 쫒겨나 나중에는 갈곳이 없어 헤매다가 깊은 산속에 있는 큰 절로 들어가게 됐어. 이 절은 중은 많지 않았지만 재산은 많이 있는 절이었는데 큰 걱정거리가 있던 참이었어. 이 절 뒤 깊은 산속에는 도적떼가 있었는데 그 도적떼의 두목인 털보란 놈이 낮에 왔다 가기만 하면 그 날 밤에 도적떼가 몰려와서 재물을 빼앗아 가는거야.
호박장군은 그 말을 듣고 호박떡과 호박국만 많이 먹여주면 그 도적떼를 물리쳐 주겠다고 했어. 중들은 신이나서 금새 호박을 벗기고 떡가루를 빻아 큰 시루에는 호박떡을 찌고, 큰 가마솥에는 호박국을 끓이기 시작했어.
마침 그때 도적떼의 두목 털보가 왔어. 와 보니까 100여명이 먹고도 남을 국과 떡을 하거든. 그래 물었지.
"무슨 잔치를 이렇게 크게 차리오?"라고.
그랬더니 호박장군이 오셨다는 거야. 그 호박장군이 오늘밤 밤참으로 혼자 잡수실 거라고 하는 거야.
털보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어. 대체 얼마나 굉장한 장군인가 겁도 나고 궁금도 해서 그날 밤 자고 가겠다며 총각이 있는 방 건너편 방에 들어가 누웠어. 그러다 잠이 들었지.
그런데 중 한 사람이 총각에게 와서 건너방에 도적떼의 두목 털보가 와서 자고 있다고 일러줬어.
총각은 털보를 속여 혼내주기로 마음먹었지. 그래 큰 호박 한 개를 두손으로 번쩍 들어 자고 있는 털보의 이마를 내리치고는 얼른 호박을 방문 밖에 던져버리곤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 "이 친구 떡 좀 드시오"했어.
털보는 자다가 눈에 불이 번쩍 나도록 아파서 벌떡 일어났지. 그랬더니 한 총각이 "나는 호박장군이라 하오. 그런데 당신 이마가 얼마나 돌맹이같이 딱딱한지 내 손끝이 아프구려"하는 거야. 털보는 호박장군이 손톱으로 퉁긴 것이 그렇게 아프구나, 과연 호박장군이야 하고 생각했어.
호박장군은 떡시루와 국가마를 수십명의 중들에게 가져오게 한 뒤 털보에게 한 조각을 던져 주고 자기도 먹기 시작했어. 그 많던 떡과 그 국을 잠깐동안 다 먹어치웠어. 털보는 이걸 보고 놀래서 내일 이 절 뒷마당에 돌로 성 쌓기 내기를 하자고 했어. 일곱간 길이의 성을 쌓되 먼저 쌓는 사람에게 늦게 쌓은 사람의 목을 베어 바치기로 하고 말이야. 호박장군은 좋다고 했지.
다음 날이 됐어. 호박장군은 밤새 방귀를 뀌지 않고 참아 두었어.
드디어 털보가 도적떼를 데리고 왔어. 성 쌓기가 시작됐지. 호박장군이 성을 한참 쌓다가 보니까 털보는 벌써 자기보다 두자 정도는 더 높이 쌓은 거야. 부하들이 먼 데서 돌을 옮겨다 가깝게 놓아주니까 빨리 쌓았던 거지. 호박장군은 화가 났어. 하지만 못 본척 하고 그냥 성을 계속 쌓았지.
얼마 후 두 편이 거의 쌓았어. 털보는 호박장군보다 더 높이, 더 튼튼히 잘 쌓았지. 털보 부하들이 신이 나 하고 중들은 얼굴이 노랗게 되었지.
이때였어. 호박장군이 털보의 성 가깝게 가더니 어젯밤부터 아껴두었던 방귀를 '뻥' 뀌었어. 여러 날 굶다가 어제 배가 부르도록 먹었던 판이라 방귀 소리는 천둥소리 같았지. 그리고 이 소리와 함께 털보가 쌓은 성은 와르르르 무너져버렸어.
털보는 자기가 목을 베어 바치게 되자 부하들을 몰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고린내가 진동하는 속으로 도망을 가버렸어.
중들은 코가 썩을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좋아서 손으로 코를 꼭꼭 쥐고 절을 했어.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지. 털보는 호박장군이 이젠 가고 없을거라 여겼어. 그래 밤이 되자 부하들을 이끌고 절로 들이닥쳤어.
하지만 호박장군은 그걸 알고 조치를 취했어. 불이란 불은 모두 끄고 중들은 모두 검은 옷에 검은 보로 얼굴을 가리고 제각각 큰북을 들고 캄캄한 절 뒤의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가 북을 치면서 모래를 끼얹으며 나오게 했지.
그런줄도 모르고 도적떼들은 절 뒤로 숨어 들어왔어. 그런데 와 보니 절이 불 하나 없이 깜깜한 거야. 도적떼들은 더듬더듬했지. 그런데 별안간 뒤에서 쾅 소리가 나더니 뭔지 우루루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거야. 도적떼들은 놀라서 "이크 호박장군이다"하며 다 도망갈 곳을 찾았어. 그리고 여기서도 쾅, 저기서도 쾅 소리가 나자 도적떼들은 익크 호박장군, 익크 호박장군하며 도망가기에 바빴지.
털보도 마찬가지였어. 이리가도 쾅, 저리가도 쾅 하고 호박장군이 튀어나오자 도망갈 길을 잃고 급한 나머지 방으로 숨어 들어갔어. 그런데 그때 어두운 방 안에 있던 호박장군도 갑자기 털보가 뛰어들어오는 바람에 놀라기도 하고 겁도 나서 방귀가 '쾅'하고 나왔어. 털보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왔다가 '쾅' 소리가 나자 '악' 소리를 지르며 기절하고 말았지.
이렇게 해서 호박장군은 도적떼를 다 물리친 거야. 그러자 중들은 호박장군에게 죽을 때까지 이 절에 있어달라고 청을 했어. 그래서 호박장군은 절 옆에서 호박농사만 지으며 살게됐지. 그 후 이 절 이름은 호박절이라고 불리우게 됐다는 이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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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범을 뒤집어잡다.
옛날에 무척 게으른 아이가 있었어. 얼마나 게으르냐 하면 하는 일이라고는 허구한 날 방바닥에서 뒹굴뒹굴 구르며 바퀴 사냥하는 게 일이었대.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이 없는 거야. 그러니 어머니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하루는 어머니가 너무 화가 나서
"야, 이놈아! 다른 집 아들은 다 일해서 돈을 버는데 너는 허구한 날 방바닥에서 바퀴 사냥만 하고 있을 테냐? 내가 답답해서 못살겠다. 못살겠어."
하고 야단을 쳤어.
그러자 이 아이도 좀 생각하는 것 같았어. 어머니는 쟤가 이젠 정신을 좀 차리는가 생각했지.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한술 더 떠서 머리칼로 올가미를 만들어 뛰는 벼룩 잡는 연습을 하는 거야.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으면 벼룩이란 벼룩은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다 잡을 수 있게 되었다지.
그러자 아이는 '이만하면 산 짐승 사냥을 나가도 되겠군.' 하고는, 머리카락 올가미 대신에 굵은 밧줄을 가지고 깊은 산으로 들어갔어. 너무 깊이 들어가다 보니 날이 저물었어. 그래 한 집에 가서 신세 좀 지자 했지. 그런데 그 집에서 노인이 나오더니 여기는 범이 많이 나오는 곳이라서 재워 줄 수가 없다는 거야. 이 아이는
"그럼 잘됐군요. 나는 범 사냥하러 온 사람입니다. 제가 범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그 집에서 하루 밤 푹 잠을 잤지.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아이는 밧줄을 묶고는 뜰에 나가서 범이 오는지 여기저기 살피고 있었어. 그러자 큰 범이 지붕을 뛰어 넘어오더니 뜰에 웅크리고 서서 이 아이를 노려보고 있는 거야. 이 아이는 밧줄을 범에게 던졌어. 그 동안 벼룩 잡는 연습을 한 덕분인지 밧줄은 범의 목에 잘 걸렸어. 아이는 힘껏 밧줄을 잡아당겼지. 그런데 범은 갑자기 목이 조여 오니까 무척 화가 나지 않겠어. 글쎄, 갑자기 아이에게 달려들더니 이 아이를 통째로 집어 삼켜 버린 거야.
범의 뱃속에 갇히게 된 아이는 캄캄하고, 덥고, 숨이 막히고, 미칠 것 같았어. 그래 어디 나갈 데가 없을까 하고 두루두루 살펴보니 저 끝에 희미하게 빛이 보이는 거야. 가 보니 마침 구멍이 있었지. 이것저것 생각할 거 뭐 있나? 일단 나왔지. 그랬더니 그게 바로 범 똥구멍이었나 봐. 아이쿠, 더러워! 하지만 어째.
아이는 똥구멍으로 나와서 손에 쥐고 있던 밧줄을 커다란 나무에다 있는 힘껏 잡아맸어. 범은 더더욱 화가 났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도 아니었어. 그런데 범은 화가 나서 난리를 치고, 아이는 더더욱 밧줄을 힘껏 잡아당기다 보니 이게 웬일이야! 범의 모가지가 입으로 들어가더니 끝에는 범 모가지가 똥구멍으로 나와서 홀랑 뒤집어진 거지.
이 아이는 이렇게 해서 범을 잡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어. 범을 팔아서 잘 살게 된 것은 물론이고 말야.
아이가 열심히 벼룩 잡는 연습을 한 보람이지. 우리도 한 번 뭐든지 열심히 해 볼까. 누가 알아. 우리도 이 아이처럼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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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남만 믿다가
너구리는 겨울나기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눈보라에도 끄떡 안 할 든든한 집을 지어야지."
너구리는 주춧돌을 구하러 강가로 나갔습니다.
이때 물을 먹으러 나왔던 노루가 자기네 사는 고장에 주춧돌이 많으니 조금도 근심 말라고 했습니다.
너구리는 이 말을 고맙게 생각하고 노루를 데려다 참외와 수박을 대접했습니다.
이튿날 너구리는 뒷산에 올라가서 쩡쩡, 기둥감을 찍었습니다.
나무 찍는 소리에 깨어난 산돼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기둥감을 제가 찍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너구리는 너무 기뻐서 산돼지를 데려다 참외와 수박을 대접했습니다.
서까랫감을 찍으러 가던 너구리는 곰을 만났습니다.
"곰 아저씨, 안녕하세요? 참외와 수박을 잡수러 오세요."
"서까래는 내가 찍어 줄 테니 근심 말라구."
너구리는 곰에게 배가 터지게 참외를 대접했습니다.
'창문이라도 내 손으로 짜 달아야지. 내 집을 짓는데…….'
너구리가 산으로 가는데, 여우가 말했습니다.
"목수질이야 내가 잘 하지. 좋은 나무를 골라 창문을 짜 주겠어."
너구리는 여우에게 참외를 한 짐 지워 보냈습니다. 너구리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붕은 풀로 덮고 벽에 바를 흙은 어디나 있으니 문제 없습니다. 집은 다 된 셈입니다.
어느덧 여름이 가고 가을도 지나 겨울이 왔습니다. 싸늘한 초겨울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왜들 안 보낼까?'
너구리는 여러 장의 편지를 써 보내고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행여나 희망을 가지고, 고마운 이웃들이 달려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사흘째 되는 날 알락 토끼가 편지를 들고 달려 왔습니다. 너구리는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편지를 뜯었습니다. 편지를 뜯은 너구리는 그만 입을 딱 벌렸습니다.
<너구리에게. 올해 겨울이 몹시 춥다기에 그 창문감으로 우리 집 덧창문을 만들어야 하겠네. 미안하네. 여우.>
<너구리에게. 우리 집 울타리가 약해, 주기로 했던 주춧돌로 돌담을 쌓았습니다. 노루.>
<너구리에게. 주려고 했던 기둥감으로 겨울에 땔 장작을 패 놓았으니 다음해에나 보내 주겠습니다. 산돼지.>
<너구리에게. 일이 바빠서 아직 서까랫감을 하지 못했습니다. 곰.>
'남만 믿다가는 모든 일을 망쳐 먹고 말아. 나중에는 머저리가 되고…….이제부턴 모든 일을 내 힘으로 해야지!'
찬바람은 원두막을 날려보낼 듯 세차게 불어왔습니다.
이 글은 북한 동화입니다.
"작다고 깔보다 큰코 다쳐요" 중에서 「남만 믿다가」도서출판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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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좋은 일 하면 오래 살고 장가든다오
옛날에 한 사람이 조실부모하고는 의지가지할 데가 없어서 여기서 자고 저기서 얻어먹고, 이렇게 혼자 빌빌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하루는 이왕 정처없이 살 바에 서울로 가서 살아보자 싶어 서울로 향했다. 맨 밑바닥 인생이니 그저 밥이나 얻어먹고 아무 데서나 자고, 좋은 일이나 하면서 살자 생각하면서 길을 가고 있는데
"봉사야, 봉사야! 앞 못 보는 소경아, 용용 죽겠지. 우리 한번 잡아 봐라. 용용 죽겠지!"
어디서 이런 못된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조그마한 아이 놈들이 불쌍한 소경을 놀려먹고 있었던 것이다.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지팡이까지 빼앗아서 주지 않고 놀리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화가 났다.
"이 놈들, 이 못된 놈들아!"
"쳇, 저 소경이 제 애비라도 되나? 흥 편을 드네!"
"그래 편을 든다. 저 사람도 못 보고 싶어서 못 본 것이냐? 보고 싶어도 못 보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지는 못할망정 이리 행패를 불려서야 되느냐? 그렇다면 너희들 성한 두 눈도 필요가 없겠구나. 눈 둘에서 하나를 떼서 주는 심정으로 살아야 옳지, 늘...."
그러자 못된 아이들도 양심이 있었는지 슬그머니 가버렸다.
그 소경은 고마워 하며 점을 한 장 쳐주기로 했다. 단명할 상이란다.
"아, 조실부모하고 유리걸식을 하는 내 신세, 오래 산들 무엇하겠소마는 그래도 짧을 단자, 목숨 명자, 단명이라 하니 기가 막히네요. 혹시 명을 잇는 방법이 조금이라도 있을까요?"
비결을 주며, 죽을 고비가 있을 때 내 놓으면 된다고 했다. 백지에 사금파리 세 개를 비결로 삼고 꼭 목에 지니고 다니고, 앞으로도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살라고 하고 소경은 갔다. 비결이라는 것을 깊숙이 넣고서 여기저기를 다니다가 누가 어디에 가면 하인을 많이 쓰고 있으니 그리 가서 정착을 하라고 하였다.
부잣집을 찾아가서 하인 노릇을 하겠나이다, 고 하니까 그러라고 하였다. 그는 부지런했다. 성실했고, 예의가 바르고 주인의 뜻을 잘 살펴서 시원시원하게 일을 처리했다. 무엇이든지 배우려고 했다.
사실 말이지 그는 인물이 괜찮았다. 그는 그저 하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일을 하고 몸처신을 하였다. 자기 분수를 지켰다. 그러자 문제가 생겼다. 주인집 외동딸이 좋아하고 좋아한 것을 넘어서 짝사랑을 하고, 이제는 아예 사랑한다고 하더니 상사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하인주제에 주인딸을 사랑한다고 할 수도 없으니 실로 답답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것을 안 주인 부자, 정승네가 결단을 내렸다. 이 하인이 당당히 정승의 사위가 된 것이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첫날밤에 그만, 신부가 죽어버린 것이다. 첫날밤을 잘 치루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슴에 칼을 맞고 죽은 것이다.
난리가 났다. 분수에 넘친 혼인으로 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치는 비극에 빠져야 하는가.
"내 딸을 주었건만 내 딸을 죽인 저 하인놈, 어서 죽여 주시오!"
장인이 될 뻔한 부자 대감이 이렇게 나왔다. 신랑은 내가 왜 행복을 깨고 죽을짓을 하는가. 재판관도 의문은 가지만 더 다른 범인을 찾아내기 어려우니까 이 신랑에게, 죽어야 된다,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말하라고 했다.
백지에 싼 흰 사금파리 세 개를 풀어달라 했다. 이 바람에 재판관은 사금파리 셋을 해석해야 했고, 이리하여 사형 집행을 연기하였다.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도 풀 길이 없어서 다들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그 재판관 정승딸이 사금파리를 받아들고 하루 저녁 궁리를 하더니 주인집 하인 중에 백삼(白三)을 잡으시라고 일러줬다. 사실이었다. 자기가 주인딸을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저 거지 같은 작자가 나타나서 사랑을 가로채고 장가까지 드니까 질투에 사로잡혀서 사랑을 돌린 주인딸도 죽이고 사랑을 빼앗은 저 자식도 죽이려고 신부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소경이 준 비결로 살 수 있었으며, 은인인 재판관의 딸과 혼인을 했다.
좋은 일을 하라. 특히 장애인에게 말이다. 그러면 복을 받고 팔자도 고칠 것이다!
최래옥의 「눈치빠른 놈은 절에 가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 제삼기획
41. 상인의 쇠막대기
한때는 큰 부자였으나, 사업에 실패한 뒤 이젠 빈털털이가 되어버린 상인이 있었다.
그 상인에게는 하루하루가 슬픈 나날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거라고는 약간의 잔돈과 쇠로 된, 무게가 오백 킬로그램이나 되는 긴 막대기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다시 용기를 내어 돈을 벌기 위해 그 도시를 떠나 외국으로 갈 결심을 하였다. 떠나기에 앞서 그는 가장 가까운 친구를 찾아가 자기의 사정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그를 위로하면서 말했다.
"참 안됐구나. 내가 자네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돕겠는데."
그러자 그 상인은 말했다.
"별다른 일은 없고, 다만 내게 무거운 쇠막대기가 하나 있는데, 짐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자네가 그걸 좀 맡아 주겠나?"
"암 그러고말고. 잘 보관해 두었다가 자네가 돌아오면 돌려줄테니, 아무 걱정말고 우리 집에 놔두고 떠나게."
이리하여 상인은 쇠막대기를 친구의 집에 맡겨 놓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외국으로 떠났다.
그 뒤 상인은 몇 년 동안 외국을 돌아다니며 갖은 고생 끝에 큰 돈을 벌게 되었고, 옛날처럼 다시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새 집을 마련하고 다시 사업도 시작했다.
며칠 뒤, 상인은 몇 년 만에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는 그를 반갑게 맞아들여 그 동안의 고생담과 여러 가지 일들을 들어주었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뒤에 헤어지면서 상인이 친구에게 말했다.
"어이 이보게, 오늘 여기 온 김에 몇 년 전 고향을 떠나면서 맡겨 두었던 쇠막대기를 찾아갔으면 하네."
상인의 말을 듣자, 친구는 머리를 긁적이며 큰 고민이라도 생긴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는 쇠막대기를 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쇠막대기를 팔면 큰 돈을 벌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마지못해 상인에게 말했다.
"이봐, 내가 어떻게 이야기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사실은 자네의 쇠막대기를 창고 속에 넣어 두었는데, 쥐들이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하더니, 그만 다 먹어치워 버렸다네. 시장에서 그런 막대기를 구할 수만 있다면 사서라도 줄 텐데, 아무리 다녀봐도 구할 수가 없으니....."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상인이 입을 열었다.
"그걸 가지고 고민할 필요는 없네. 쥐들이 먹어 버렸다면 쥐들 잘못이지 친구의 잘못이 뭐 있겠나. 지나간 일은 이제 모두 잊어버리세."
이야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상인이 갑자기 친구에게 말했다.
"아참,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네. 실은 내가 외국에서 자네 주려고 가져온 선물이 있는데, 집에 두고 왔구먼. 자네 큰아들을 내게 딸려 보내게. 자네 아이에게 선물을 보내겠네."
자기가 한 거짓말 때문에 불안해하던 친구는 상인이 자기 말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고 속으로 기뻐했다. 게다가 선물까지 주겠다니.......상인이 가져온 선물을 빨리 보고 싶어진 친구는 얼른 자기 아들을 불러 그를 따라가도록 했다.
친구의 아들을 데리고 온 상인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의 아들을 지하 창고에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던 듯이 자기 일에 몰두했다. 밤늦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친구는 걱정이 되었다. 기다리다 못해 그는 친구인 상인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여보게, 내 아들이 아직 안 돌아왔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그러자 상인은 몹시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내가 자네 아들을 데리고 집에 오던 중에 갑자기 솔개가 나타나서는 내가 어떻게 손 써볼 틈도 없이 아들을 물고 날아가 버렸네."
친구는 화를 벌컥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 말게! 열다섯 살짜리 사내아이를 솔개 한 마리가 어떻게 물고 날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이리하여 싸움이 벌어지고, 시끄러운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싸움이 끝이 나지 않자, 마침내 두 사람은 법정으로까지 가게 되었다. 법정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는 큰 소리로 말했다.
"재판장님, 이 사람이 제 아들을 유괴해 갔습니다. 제 아들을 찾아 주십시오."
이번에는 재판장이 상인에게 물었다.
"당신이 정말 저 사람의 아들을 유괴했습니까?"
상인이 대답했다.
"재판장님, 제가 어떻게 친구의 아들을 유괴하겠습니까. 제가 그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만 솔개가 한 마리 나타나 그 아일 물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재판장 역시 화가 나서 호령했다.
"거짓말 마시오! 솔개란 조그만 새인데, 어떻게 큰 소년을 물고 날아갈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상인이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 친구의 창고에 넣어 둔 쇠막대기를 쥐들이 모두 갉아먹는 일이 있을 수 있다면, 한 마리의 솔개가 아이를 물고 날아가는 일이 왜 있을 수 없겠습니까?"
이야기를 듣고 이상히 여긴 재판장은 상인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모두 이야기하도록 했다. 상인의 쇠막대기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나자 법정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어댔다. 재판장은 먼저 상인의 친구에게 당장 쇠막대기를 돌려주도록 명령하고, 상인에게도 친구의 아들을 돌려주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엉뚱한 욕심을 부려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친구를 속이려고 했던 상인의 친구는 뭇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42. 포도밭의 여우
꾀가 많은 한 여유가 포도밭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여우는 배가 몹시 고팠다. 포도밭에는 탐스러운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그런데 포도밭에는 울타리가 있어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여우는 서성거리다 마침 작은 구멍를 발견했다. 그러나 구멍이 너무 작아 쉽게 들어가지가 않았다. 그래서 여우는 사흘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배를 홀쭉하게 만들었다. 배가 너무 고파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사흘 동안 굶었기 때문에 그 작은 구멍을 통해 포도밭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여우는 포도밭에서 마음껏 포도를 따 먹었다. 배가 통통해지도록 포도를 따먹은 뒤, 여우는 흐뭇한 마음으로 배를 두드리며 포도밭에서 나오려 하였다. 그러나 배가 너무 불러 작은 구멍으로 몸이 빠지질 않았다.
여우는 하는 수없이 그 구멍 앞에서 다시 사흘 동안 굶었다. 그러자 몸이 홀쭉해져 겨우 그 구멍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우는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았다.
"결국 배가 고프기는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똑같군."
여우는 비실거리며 숲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43. 금잣대와 화수분
Ⅰ. 옛날에 옛날에 신라, 신라는 고대 삼국의 하나인 것을 잘 알 것이요. 그 시절에 희한한 일이 있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농부 하나가 논에 물꼬를 보러 갔는데, 그때 몹시 가물어 있었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물수록 논에 가서 살다시피 해야 한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하고 마른 논 물꼬에 물 들어가는 것같이 보기 좋은 것이 있을까' 이런 속담 그대로이다. 논, 물, 가뭄, 농사, 농부의 애간장...
그런데 농부보다 더 중대한 것은 올챙이들이다. 있는 물이 보타져가면 올챙이나 다른 물고기는 조금밖에 없는 물에 오글오글 모여든다.
이런 물고기는 원칙적으로 사람이 잡아서 먹는 법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은 남이 함정에 빠져서, 수렁에서 기진맥진하면 구해 줄 생각은커녕 아예 해치고 보따리를 가져가는 나쁜 일이 있으니 원 사람으로서 그래서야 되겠는가?
윗논 임자가 논에 와서 보고는 가뜩이나 논물이 줄어들어서 야단인데 쓰잘데기 없는 올챙이가 그나마 있는 물을 다 먹고 있기에 논두렁에다 올챙이를 바가지로 퍼내서 버리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랫논 주인인데 이 광경을 보고는,
"쯧쯧! 너희도 이 가뭄에 살자고 그 좁은 웅덩이에서 오글오글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떼죽음을 당하는구나. 내가 물을 찾아서 살려주마."
그리고는 자기옷을 벗어서 올챙이를 다 담아서 얼른 아직 물 있는 웅덩이를 찾아다가 놓아 주었다. 올챙이가 살게 될거라 생각하니 흐뭇했다. 얼마 후에 고맙게도 비가 왔다. 농사가 되었다. 이제 한시름을 놓고 있는 참인데, 이것이 웬일인가? 어찌된 판인지 개구리가 Ep를 지어서 이 농부네 집에 와서 마당에서 개굴개굴, 장독대에서 개굴개굴, 뒤란에서 개굴개굴, 사방에서 울어대느라고 시끄러워서 도저히 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와서 막대기로 때리려고 하니까 개구리가 마구 도망을 가면서 더욱 억세게 울어댔다. 주인이 이제 방에 들어와서 좀 쉬려고 하니까 개구리떼가 어느 새 다시 마당으로 장독대로 몰려와서는 개굴개굴, 아까보다 더 시끄럽게 울어댔다.
이제는 웅덩이까지 쫓아버렸다. 개굴개굴... 풍덩풍덩... , 다 웅덩이에 뛰어들었다. 이제 나오면 가만 안두겠다고 말하곤 막 돌아서려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푸우, 푸우, 푸우."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까 그 수많은 개구리가 웅덩이 물을 머금었다가 나와서 바깥 땅에다가 뱉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그 농부가 서 있는 마른 땅이 그냥 물이 흐르듯 넘쳐버렸다. 개구리가 한 모금씩 토해내는 물. 농부가 이상해서 웅덩이를 보니까 어느새 웅덩이 물이 반으로 줄어 있었다.
"개구리야, 도대체 무엇하는 것이냐? 너희가 사는 집인 그 웅덩이 물을 퍼내서 어쩌자는 것이냐?"
이렇게 물어도 개구리떼는 여전히 물을 퍼내고 있었다. 그 많던 물이 어느새 다 없어지고 바닥이 이 드러난 것이다. 개구리가 왜 저럴까? 이상히 여기고 가까이 가서 바닥을 내려다보니까 이상하게도 그릇하나, 곧 투가리가 하나 있었다. 마침 개밥그릇이 깨졌는데 잘 되었다 싶어 투가리를 가지고 와서 개밥그릇을 하였다. 개구리가 그 난리를 피운 것이 개밥그릇 하나를 주려고 한 것이었구나. 오라, 그 올챙이가 살아가지고 이 개구리가 되었구나. 자기들 나름대로 보은을 하겠다고 그런 것이구나. 고맙구나 개구리야. 하긴 우리집 개가 고맙다고 해야하는데 똥개야 개구리한테 고맙다고 짖어봐라.
그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방에 들어가서 쉬었다. 그러다가 다시 밖에 나왔는데, 아까 개가 분명히 밥을 다 먹었는데도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다시 개가 싹싹 핥아 먹는걸 보았는데 또 그대로 있다. 쌀을 한번 담아보았다. 퍼내도 그대로 있다. 돈을 한 번 넣어보았다. 꺼내도 그대로 있다. 옷을 한번... 어 옷이 또 있네. 이것이 화수분이 아닌가.
이리하여 요술을 부리는 보물 투가리 덕분에 이 사람을 큰 부자가 되었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서 살려준 은공을 갚은 것이구나.
"이것은 나만 가지면 안되지. 우리 동네 사람이 다 부자가 되어야지."
이리하여 동네 사람이 가져 온 쌀과 돈과 옷을 그냥 투가리에 넣기만 하면 계속 나와서 이 동네 사람들도 다 부자가 되었다. 그뿐인가, 소문이 나서 다른 동네 사람도 와서 부자가 되었다. 그 집이 문전성시가 된 것이다.
이것은 본디 나라님이 가져야 하겠다 싶어 임금께 갖다 바쳤다.
Ⅱ. 그때 그 시절 신라 나라 다른 곳에서 또 희한한 일이 생겼다.
어떤 사람이 집을 지었다. 이 사람도 평소에 남에게 좋은 일을 한 사람이다. 그 집을 지을 때에 땅을 잘 아는 사람이
"여기는 집 자리가 뱀 형국이요. 뱀은 겨울잠을 자고 다시 살아나니까 잘 살 것이요, 오래오래!"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제 집을 다 짓고나서 들어가려고 하는 때에 난리가 났다. 마당에도 뱀, 부엌에도 뱀, 담장에도 뱀, 지붕에도 뱀, 텃밭에도 뱀, 심지어 측간에도 뱀... 이제는 방이며 대청에도 기어오르는 뱀, 뱀, 뱀들... 몽둥이로 마구 뱀을 잡아 죽였다. 이것을 나뭇가지에다가 걸어놓았다. 우선 땅에 있으면 밟고 다니고 그러다가 보면 무섭고 징그럽고...
그러면서 뱀을 잡느라고 피곤한 몸인지라 이내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이제 이것들을 다 거두어서 묻거나 태우려고 보니까 어랍쇼? 이것이 무엇인가? 죽여서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던 그 많은 뱀들이 하나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낮, 사시(巳時)! 지금으로 치면 오전 10시나 되었을까, 또 뱀들이 몰려왔다. 대문, 마당, 담장, 장꽝... 어제와 똑같았다. 몽둥이로 정신없이 가득가득, 기어드는 뱀을 때려잡았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는데 이튿날 아침에 보니까 또 없다. 그런데 사시가 되니까 또 몰려오는 것이었다. 또 때려잡았다. 그리고 나뭇가지에다가 뱀 죽은 것을 걸어놓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자지않고 나뭇가지에 걸어놓은 뱀을 밤새워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첫닭이 울었다. 그때까지 아무일이 없었다. 두 홰째 닭이 우니까 어디선가 누런 뱀, 그러니까 황사(黃巳)가 쓰윽 나타나지 아니하는가? 아, 이것이 누런 자(金尺), 곧 잣대를 갖고 와서는 죽은 뱀의 대가리에서 꼬랑지까지 쟀다. 그 잣대로 재고 나면 죽었던 뱀이 다시 살아나 꾸물꾸물하는 것이었다. 저 살아난 것이 날이 새면 또 몰려들겠지 끔찍하게도...
이번에는 몽둥이로 누런뱀을 때려잡기로 했다. 뱀들이 다 도망을 가고 누런뱀도 도망을 갔다. 가면서 그만 그 잣대를 놓쳐버렸다.
이리하여 금척은 이 집 주인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을 어디에다 쓸까 고민하고 있는데, 옆집에서 '아이고 데이고'하는 곡소리가 들렸다. 삼대독자가 죽었는데, 그 자로 재보기로 했다. 아이 시신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쟀더니 아이가 눈을 뜨며 '엄마'하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 이 사람은 금잣대를 가지고 숱한 사람을 살려놓았다.
공주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궁중으로 가서 사실 이야기를 했다. 그는 묵묵히 죽은 공주의 시신을 쟀다. 과연 공주는 눈을 뜨더니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임금이 소원을 말하라 했더니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으며 다만, 금잣대를 나라에서 잘 보관해주기를 소원했다.
이리하여 생명을 살리는 금잣대는 궁중에 들어갔고, 투가리를 함께 사용하니까 백성들이 잘 살았다고 한다.
꿈에 신인이 나라님에게 말했다.
"내가 내린 선물로 정치를 잘하였을 것이다. 이제는 돌려다오. 먹을 것이 있으면 백성이 일을 안 하고, 죽지 아니하면 세상이 흔들린다. 쓸모없는 백성은 나라 자체를 망치니 이제 땀 흘려 일하고 정의는 지켜가게 하고 그 두 보물은 돌려달라!"
임금은 즉시 금척을 묻었다. 능을 9개 만들어 하나는 투가리를, 하나는 금척을 묻고 나머지 7능은 가짜이다. 이것이 신라 경주에 있는 금척구릉이라는 것이다.
최래옥의 「눈치빠른 놈은 절에 가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 제삼기획
44. 시동생을 살린 형수의 재치
옛날 이야기로도 전해오고, 일제 시대 이야기로도 전해온다.
전남 강진군 선정면 태동이라고 하는데, 형제가 살았다. 성은 강(姜)씨다.
하루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아들 며느리를 앉혀놓고 당부하기를,
"그저 우애있게 지내라. 형제간에 화목하는 것 이상 저 세상에서 내가 기뻐할 것이 어디 있겠느냐?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던 너희 형제들, 그저 집이 화목하려면 남의 집 식구가 잘 들어와야 한다고, 두 며느리가 의좋게 살아라. 그런다면 내가 마음놓고 죽겠다."
고 하였다. 물론 형제와 동서는 그러마고 하였다.
동생은 이제 분가를 했다. 부자였던가, 논 열일곱 마지기하고 밭 사천 평하고 집하고 사서 분가를 해 준 것이다. 그만하면 살 만한데 문제가 생겼으니 동생되는 사람은 안사람이 죽을병이 들어서 여기저기 의원을 찾아다니고 병원을 찾아다닌 바람에 목숨은 가까스로 건졌으나 재산을 다 탕진하였다.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기 위해 뭐든 하고 살아야하건만, 동생은 학자라 고된 일을 못하는 체질인데, 그래도 어디 가서 품을 팔아 산다고 사는데 비가 온다치면 일거리가 없어서 그만 굶고, 그러다보니 처자식 굶는 일이 부잣집 밥 세끼 먹듯이 하였다. 그래도 형에게 손을 벌리지는 못하였다. 분가나올 때 재산을 딱 반으로 나누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형수는 달랐다. 형님 모르게 쌀도 주고 찬도 주고 옷도 주었다. 그런 형수는 얼마나 인정이 많은가? 언제까지 그런 도움을 줄 수는 없었기에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그러다 하루는 형수가 찾아와서,
"아무 날이 무슨 날인 줄 아시오?"
"아, 형님 생일이 아니오? 왜 내가 모르겠소? 내가 형님이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가 나온 사람인데 어찌 형님 생일을 모르겠소?"
라고 하였다. 앉은 자리는 어머니 뱃속, 바로 태(胎)도 같고 포(胞)도 같다는 말이니 문자 그대로 동포(同胞)라는 말이다. 형님이 열 달 있었던 그 어머니 뱃속에서 동생이 또 열 달 있다 나왔다는 실로 아름다운 말이다.
"그 아무 날이 장날이니까 지게를 짊어지고 장에 간다고 하고 장에 오시면 내가 장을 보아드리리다. 쌀하고 누룩 석 짝하고 뭐 고기하고 여러 가지 장을 보아줄 테니까 집에 지고 가서 술을 내리시오. 쌀하고 누룩하고 술을 해서 대승(大升) 두 되 가량 독하게 술을 내려 옹기병에 담아가지고 그 아무 날 형님 생일이라고 대접을 하시오."
며칠이 지나 그 아무 날이 되자 형님 내외가 저녁을 먹고 나니까 동생 내외가 조카들하고 들어와서는 형님께 생일축하한다고 하니까 형님이 놀래서는,
"아, 무엇을 이리 장만해 가지고 왔는가? 간구한 살림인 줄 내가 다 아는데. 하여간 고맙네. 어서들어오게."
이리하여 푸짐한 생일 잔치가 벌어졌다. 다들 우애있는 형제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형님은 기분이 참으로 좋았다. 형수는 얼른 부엌에 가 저녁상을 보았다. 술이 오가며 취해서는 방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웃도 다 가고 시동생네 식구도 다 갔다. 형은 코를 골며 깊은 잠이 들었다. 그러기를 기다리던 형수는 장문을 열고는 논문서며 밭문서며 다 꺼내서는 방바닥에다 여기저기 헤쳐놓았다. 그리고는 형이 잠이 깨기를 기다렸다. 깨어보니 도둑이 왔나싶었다.
아내의 말로는, 이 형이 취중에 여러 사람 앞에서 논밭 문서를 꺼내 흔들면서 자기만 잘 살면 뭐하냐, 동생도 잘 살아야 우애가 있고, 지하에 계신 부모님도 기뻐하신다며 재산을 뚝 반으로 잘라 동생을 주겠다며 큰 소리를 쳤다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몰라요. 어떻게 늘리고 모은 재산인데.. 막 이웃 앞에서 호기당당하게 형제간 우애를 말하던데, 누구 속이 뒤집히는 줄은 모르고. 아이구, 제가 속이 상해 죽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잠 안자고 쭈그리고 앉아서 당신이 잠 깨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랍니다. 이웃에게 물어봐요. 그랬는가 안 그랬는가?"
형은 기억엔 없으나 취중에라도 잘했다며 부인에게 이해를 구하며 동생네에 재산을 주기로 했다. 며칠 후 동생이 또 술을 해와서 형님에게 올리면서 큰절을 하누나. 형수에게도 올리누나. 형수는 뽀로통하게 톡 쏘았다.
"뭐 나한테는 절을 말아요. 형제간 우애가 제일이라고 하고 나하고 상의도 없이 객기를 부린 형님에게나 골백번 절을 하구려, 흥!"
그러자 형은 이왕 그리 된 것인데 무엇을 그리 노염을 타느냐고 형수를 타일렀다. 형수는 그제서야 노여운 얼굴을 풀면서 일어나서 춤을 덩실덩실 추었다.
이만한 형제간 우애라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만하지 않은가?
최래옥의 「눈치빠른 놈은 절에 가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 제삼기획
45. 도둑과 의형제를 맺은 사람
어떤 집에 아들이 하나 있는데 무척 효성스러웠다. 그 며느리도 참하였다.
하루는 해가 저물었는데 주인 영감이 날마다 하는 식대로 집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그런데 외양간에 가서 흠칫 놀랐다. 웬 사람 하나가 그 추운날 엎드려 있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는 인내와 눈치가 뛰어난 어느 사내 하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인은 방에 들어와서 자부에게, 나중에 밤참을 먹을 것이니 한 상 차려오라고 했다. 얼마후 며느리가 상을 보아왔다. 그러자 소피를 보러 간 것처럼 이 영감은 밖으로 나와서, 이번에는 소를 둘러보는 것처럼 외양간에 가서 소의 배를 쓰다듬은 것처럼 허리를 굽히고서,
"이 추위에 얼마나 욕을 보는가? 춥고 배고프고 몸도 저릴 테니까 어서 들어오게!"
그러니까 내내 엎드려 있던 사내가 부스스 일어나서 이 영감을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밥과 술을 권하고 받고 하면서,
"사람이 사는 방식이 여러 가지가 있기는 하나, 내 몸으로 사는 것이 제일이지. 몸이 성하고 장가들어 처가 있으면 혼자 살때보다는 돈을 벌고 살 만한 법이지. 나무 장사도 하고 말이야."
"할 말 없습니다."
"빈 손으로 갈수는 없겠지. 마침 우리집에 돈이 좀 들어온 것이 있구먼. 이것을 두말하지 말고 가져가라고."
쥐어주시는 걸 받아들고 왔다. 그 사내는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왔다. 처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색을 하면서,
"이제 오시오? 오늘 수입은 어떤가요?"
"......."
"왜 시무룩하시오? 들켰어요?"
"응 들켰지. 자, 여기 돈 있구먼."
들켰는데 수입이 그리 좋냐며, 그 눈여겨 둔 소 한 마리를 팔았나 보구나 했다.
이런 처에게 사내가 말을 하였다. 그는 그 사이에 달라진 것이다. 언제까지나 이런 일을 할 수 없으니 나무 장사하고 농사품도 팔고 모시 일도 하고 논밭일도 하면서 양심대로 이 건강한 몸을 가지고 움직여서 먹고 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노인 얘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하니까 그 처 또한 감동을 하였다.
그 후 그들 내외는 이런 저런일을 몸 아끼지 않고 해서, 한 삼년이 되자 논도 사고 소도 먹이고 살기가 괜찮았다.
그런 계제를 마련하여 준 그런 노인을 한시라도 잊을수가 없었던 이전과 달라진 사내는 하루는 장에 가서 나온 소 중에서 제일 좋은 소를 한 놈 사고, 갈비를 한 짝 사고, 술 좋은 놈으로 한 병하고, 담배 쓸만한 것으로 하나 사서 소에다 싣고 그 집을 찾아갔다.
가면 노인이 얼마나 기뻐할까? 자기가 마음을 고쳐 부자까지 된 것을 본다면, 다음에는 처까지 데리고 와서 큰 절을 올려야지, 하여튼 떳떳하게 돈을 벌은 양인으로 보답차 찾아갔는데... 그 노인은 일년 전에 세상을 떠났단다. 상주와 같이 그 노인 산소를 찾아가서 이 사내는 눈물을 흘리며 큰 절을 올렸다.
자기를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그 상주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소를 받으라고 주었다.
"아닙니다. 제가 땀 흘리지 않고 이런 큰 재물을 받으면 저도 도둑이 됩니다."
"음, 어찌한다? 도둑이 하나면 족한데... 우리 의형제를 맺어서 제가 동생이 될 것이니까 형님을 위해 드리면 되지 않을까요?"
"그러지 동생! 이제 진짜 아들로서 아버님께 절을 다시 하게나."
라고 하였다고 한다.
최래옥의 「눈치빠른 놈은 절에 가서도 새우젓 얻어먹는다」 제삼기획
46. 한석봉과 기름 장수
한석봉이 어려서 글씨 공부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한석봉의 결심과 노력도 훌륭하지만, 그 어머니의 눈물겨운 뒷바라지가 더욱 거룩하기 때문에 듣는 이로 하여금 더욱 감동을 준다.
한석봉이 어머니 덕분으로 꾸준히 공부하여 처음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어느 날의 일이다.
이날 한석봉은 큰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어느 기름가게 앞을 막 지나려는데 기름병을 든 한 소년이,
"참기름 닷돈어치만 주세요!'
하고 외쳤다. 한석봉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기름을 사려면 으레 가게 안에 들어가야 할텐데, 소년은 밖에서 기름집 높은 다락을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기때문이다.
그러자 다락 창문이 열리더니, 주인의 얼굴이 쑥 나타났다. 지금 바쁘니까 거기서 받으라면서 말이다. 기름집 주인은 커다란 기름 항아리를, 바깥 쪽으로 번쩍 쳐들었다.
'대체, 어쩔 셈일까.'
한석봉은 호기심이 일어나 길에 선 소년과 다락 위의 주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윽고 주인이 항아리를 기울이자, 소년은 기름병을 떠 받쳤다. 다음 순간, 세상에서 보기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높이가 3길이나 되는 다락 위 항아리 주둥이에서 흘러 나오는 기름이, 마치 한 올의 실처럼 되어 곧장 기름병 좁다란 주둥이 속에 빨려가듯이 들어가는 것이다.
또, 기름병에 거의 찼을 무렵, 그것이 가위로 잘리 듯이 뚝 끊어졌는데도 놀랍게도 기름은 한 방울도 땅에 흘러 떨어지지 않았다.
위에서 주인이,
"이제 됐다. 가거라."
아래서는 소년이
"기름 값은 외상이어요."
하더니 쪼르르 달려갔다.
한석봉은 눈이 휘둥그래진 채,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슨 요술이라도 구경한 듯한 기분이었다.
"허 참! 놀라운 솜씨다. 그 높은 곳에서 한 방울도 안 흘리고 기름병에 넣다니, 많은 연습이 없고서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일이다. 그렇다면 저 주인에 비해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한석봉은 똑같은 생각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한낱 기름장수의 일이지만 이 정도로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하고, 자신의 글씨 솜씨가 새삼 부족한 것으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날부터 한석봉은 문을 닫고 들어앉아, 다시 글씨 공부를 열심히 시작했다. 소년 시절보다 몇 곱절 되는 결심과 노력이었다.
항상 다른 사람의 뛰어난 점을 무심코 보아 넘기지 않으며, 더 나아가서는 이것을 거울삼아 노력한 한석봉은 지금도 우리에게 훌륭한 교훈을 주고 있다.
김영종 엮음 「한국의 민화 내가 들은 그중 재미있는 옛날 얘기」, 글벗사
47. 우정의 길
김아무개와 박 아무개는, 어려서 한동네 살면서 공부도 함께 하였다. 그래서, 자라날수록 정이 두터워지더니 마침내는,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정을 버리지 말자. 훗날 누가 잘 되든 반드시 복과 재앙을 함께 나누자."
라고 굳게 맹세하고 형제의 의를 맺었다.
그런데, 여러 해 후, 김과 박 두 사람의 처지가 너무 달라졌다. 김은 과거에 무난히 합격하더니 벼슬을 얻고, 형편이 날로 부유해졌다. 이에 반하여 박은 과거에 실패만 거듭하다가, 가세마저 몰락하여 끼니를 굶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김은 약속을 아주 저버리지 않고 박을 돕기는 했지만, 마치 거지를 동정하듯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양식밖에 주지 않았다.
박은 창피함과 야속함을 참지 못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김은 장차 벼슬에 올라가면 그때 가서 충분히 돌봐주겠다며 만날때마다 위로하였다.
이런 날이 그 후에도 오래 계속되었다. 김은 과연 얼마 안 있어 평양 감사가 되었다. 그런데, 평양으로 부임하러 떠날 때, 식량과 땔감을 보내줄 것이니 평안도까지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박은 더욱 고마워하였다. 그러나 한번 떠난 김은 그 후 소식도 없고 양식도 보내주지 않았다.
여태까지 김만 의지하며 살아오던 박은, 자신의 배고픔보다 식구들의 굶주림이 더 견딜 수 없었다. 참다 못한 박은 드디어 천리길 평안도를 몸소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노자 한푼 없이 떠나게 되었다. 걸식을 하며 부르튼 발을 끌고 평양에 가까스로 닿긴 했지만, 여기서 박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꼴을 당하고 말았다.
평안 감사라면 그 당시 누구보다 권세 있고 호강스러운 벼슬자리였는데 김은 불쌍한 친구를 마지못해 맞아주고, 조금도 반가워하지 않았다. 식은 밥 한 그릇을 마루 바닥에 차려 주며, 아무말 말고 어서 돌아가라고 냉정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박은 설움과 분함이 한꺼번에 복받쳐 당장 상을 차고 싶었지만, 차마 못하고 벌떡 일어서 뜰로 내려섰다. 그러나 김은 말리기는 커녕 그대로 앉은 채 차디찬 눈길로 바라보기만 할뿐, 박이 빠르게 문 밖에 나갈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박은 대동강 깊은 물에 몸을 던지고 싶었으나 집에 있는 식구를 버릴 수 없어, 하염없이 걸었다. 날이 어두울 무렵 겨우 길가 방앗간으로 찾아들어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그러자 어느 나이든 여인이, 박을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고기찌개에다 쌀밥, 술도 몇잔 주면서 감사께서 보낸 음식이라고 말하며 물러갔다.
"뭐라고, 그놈이 나를 죽지 않을 만큼 고생시키려는가 보다."
괘씸한 생각이 불쑥 났지만, 여러 날 굶은 창자가 마냥 쓰라려서, 어느새 손은 숟가락을 먼저 잡고 있었다.
이튿날 깨어보니 방앗간은 원래 텅빈 집이었고, 밥을 가져다 준 여인은커녕, 세간 같은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몹시 수상했지만 돌아갈 길이 더 급했다. 며칠을 두고 아무데서나 자며, 체면 불구하고 얻어 먹으면서 걸었다. 옷이 넝마처럼 떨어지고 몰골은 더욱 귀신같았다.
원망도 지치고 집 걱정마저 잊고 정신없이 걸음을 간신히 옮겨 송도에 가까이 왔을 때였다. 갑자기 관청 하인 차림의 한 사나이가 뒤쫓아오더니 평안 감사께서 주는 편지라며 건네주었다. 초상이 났으니 어서 돌아가라는 사연이 간단히 쓰여있었다. 박은 아찔하였다. 누가 죽었는지 모르지만 식구 중 누가 굶어 죽은게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정작 자기가 죽을 고비에서 헤매는 처지이면서도 박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걷고 또 걸었다. 집에 돌아온 박은 기절할 듯 놀랐다. 전에 살던 오막집에 식구들은 간데 없고 남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박은 가슴이 메어졌다. 집마저 팔아버리고 온식구가 거리를 헤매다 누군가 죽은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흐르는 눈물도 닦지 않고 한밤중에 거리를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박은 어느 집 대문에 기대 주저앉았다. 그 집은 고래등같은 기와집이었다. 때아닌 인기척 소리에 놀랐는지 어린 종이 대문을 열고 내다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져서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몽롱한 중에서도 박은 다시 일어나 안쪽을 들여다보니 상복 입은 젊은이가 쫓아나오고, 또 같은 차림의 여인 두서넛이 뒤따라 나왔다. 박의 식구들이었다. 서로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식구들은 마치 죽은 사람의 혼을 대하는 것만 같았다. 안채 큰 마루에는 장례식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박이 평안도로 떠난지 얼마 후, 식구들을 평안 감사의 심부름꾼이 내려와 지금 집으로 이사를 시켜주었던 것이다. 물론 좋은 집에다 곡간에는 또 식량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 후 한동안 소식이 없더니, 엊그제 느닷없이 관을 떠메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역시 평안 감사가 시켰다며,
"주인 어른께서 평양에 계시는 동안 병으로 돌아가셨소."
하고 가버렸다. 그래서 내일 출상을 할 참이었는데, 거기에 공교롭게도 박이 돌아온 것이다. 그러니 모두 놀랄 수밖에. 꼭 귀신인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슬픔에 찼던 박의 집은 순식간에 웃음 바다로 변했다. 그리곤 박이 관 뚜껑을 열어봤더니, 관에는 송장 대신 동전, 은전들이 그득히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종이에 다음과 같은 사연이 적혀 있었다.
"재물을 쉽게 얻으면 쉽게 없애고, 또 게을러지는 까닭에 마음에 없는 고생을 시켰네. 이것은 내가 그간에 절약하여 모은 돈이니 부디 뜻있게 쓰고 또 후에 출세할 밑천으로 써주게."
박은 김의 글을 얼굴에 대고 흐느껴 울었다. 이때부터 박은 주야로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지방의 벼슬아치가 되어 김과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했다고 한다.
김영종 엮음 「한국의 민화 내가 들은 그중 재미있는 옛날 얘기」, 글벗사
48. 씨내리한 아버지를 지혜로 물리친 아이
옛날 신라 때라 했던가. 어느 동네에 친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이 아무개와 김 아무개라는 사람이 살았단다. 그런데 이가는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김가는 자식이 없는 게야. 그래서 늘 아들 낳기를 소원했지만 어느덧 나이 40이 다 되어 가니 초조해질 수밖에.
김가는 첩도 두어 봤지만 역시 자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짐작했지. 그래서 큰 결단을 내렸어. 자식이 없는 것보다야 친한 친구인 이가에게 씨내리를 부탁했야겠다고.
그리해서 어느 캄캄한 그믐날 밤 김가는 슬그머니 안방에서 나오고 이가가 대신 들어갔지 뭐냐. 김가의 아내는 그 날 이후 배가 불러지더니 고대하고 고대하던 옥동자를 낳았지.
이 아이가 얼마나 총명한지 열세 살에 사서삼경을 다 읽게 되어 온 동네에 신동이란 소문까지 나게 되었어. 그런데 이게 웬일이야. 이가의 아들 3형제가 시름시름 앓다가 모두 세상을 떠나고 말았네.
그러니 이번에는 이가가 아들 하나 없이 죽을 지경이 될 수밖에. 그러던 어느날 이가는 김가를 찾아갔지. 다짜고짜로 저 애는 내 아들이니깐 내놓으라는 게야.
그날부터 김가는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지.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아이의 진짜 애비는 이가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야. 병세가 점점 깊어지자 아내와 아들이 무슨 걱정거리가 있느냐고 자꾸 물어대니 김가는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말았어.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아이가 나서서 자기가 해결해 보겠다는 게야.
아이는 음식이나 푸짐히 장만해 달라 하고는 동네 어른들을 불러 대접을 하는데, 이 녀석이 어른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군.
"옛날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았는데, 부자는 못자리를 잘해서 논에 다 심고 남은 모를 논두렁에 버렸답니다. 그래서 못자리도 못한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허락을 받고 자기 논에다 갖다 심었지요. 그런데 그 해 여름에 장마가 져서 부자의 논은 다 떠내려가고 가난한 집 논은 농사가 잘 된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부자가 찾아와서는 가난한 사람에게 요구했습니다. 농자지은 벼를 다 내놓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주어야 하나요, 주지 말아야 하나요?"
동네어른들이 이 아이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겠지? 이 이야기를 듣고도 이가가 계속 아들 돌려달라고 하진 않았을 게야.
한두현의 자식을 우리 옛 이야기로 길러라 「이야기 인성교육 620마당」, 나남출판
49. 자기 밥을 방바닥에 던져놓은 승려들을 혼내준 어린 궁예(弓裔)
신라의 왕자이면서도 쫓겨난 산 속 절에 숨어살아야 했던 궁예는 어려서부터 배포가 두둑하고 영민했지. 그러니 애꾸눈으로서 후고구려를 세울 수 있지 않았겠니. 그런데 어린 궁예는 절에서 살면서도 불도 닦는데는 관심이 별로 없었어. 눈만 뜨면 이리저리 산 속을 누비며 사냥하거나 무예를 익히는 데만 열중했으니 미움을 살 수밖에.
그러던 어느날 저녁 공양시간이 다 지났는데도 궁예가 돌아오질 않는 게야. 배알이 꼴린 승려들이 골탕을 먹이기로 했어. 밥을 둘둘 뭉쳐 방바닥에 내던져 놓기로 한 게야.
밤이 으슥해서 돌아온 궁예가 물었지.
"내 밥은 어디에 있소?"
승려들은 아무 소리도 없이 일제히 윗목에 던져 놓은 밥뭉치를 쳐다 보는게 아니겠어. 그걸 보고 어린 구예는 아무 소리도 없이 밖으로 나가 물을 한 동이 들고 오는 게야. 모두들 의아했지.
'저 녀석이 어째 물을 한 동이씩이나 들고 오나?'
궁예는 물동이를 머리 위로 추켜 올리더니만 그 많은 물을 방바닥에 쏟아 붓네 그려. 방에 있다가 물벼락을 맞은 승려들이 호통을 쳤지.
"이 놈이 미쳤나!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냐?"
그러니 싱글싱글 웃어가며 궁예가 한마디 했지.
"나 밥 말아 먹을려구."
한두현의 자식을 우리 옛 이야기로 길러라 「이야기 인성교육 620마당」, 나남출판
50. 술병 하나를 더 깨고 살아남은 계집종
옛날 어느 고을에 큰 부자 영감이 살았어. 이 영감은 골동품 수집이 취미라 값진 물건이 집에 가득했지. 그 가운데서도 국보급 술병 두 개를 특히 아겨 그것을 깨는 사람은 누구라도 살아남지 못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주의를 주었어. 그 중에서도 조금 덜 아까운 학 그림이 있는 술병에 술을 담아 늘 반주를 했고, 신선그림이 있는 술병은 다락 깊숙이 잘 보관을 했지.
그러던 어느 날 계집종 간난이가 그만 아차하는 실수로 학 그림 술병을 깬 거야. 간난이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부엌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소릴 내어 울고 있었지.
안주인이 놀라 부엌을 들여다보니 이거 큰일이 나긴 났어.
'영감이 그리도 아끼던 술병을 깨뜨렸으니 이일을 어쩐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부인이 간난이에게 뜻밖의 말을 하는 게야.
"간난아, 걱정마라. 그 술병을 내가 깼다고 할 테니, 나리가 내야 어쩌겠느냐?"
"마님 말씀은 고마우시나 어찌 제 잘못으로 마님께 고통을 드릴 수 있겠어요? 제가 했다고 솔직히 말씀드리고 저 하나 죽으면 그만인 걸요."
"내 어찌 너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있겠니? 너는 아무 소리 마라."
그리하여 저녁밥상에는 신선글미 술병이 올라갔지. 영감 힐끔 보더니,
"왜 이 병을 내왔소. 이거 들여두고 전 것 가져와요."
"영감, 실은 낮에 내가 실수를 해서 그 병을 깨뜨렸어요."
"뭐요, 그게 사실이오? 그렇다면 내 그냥 놔두지 않을테니 각오하시오."
이렇게 서슬이 퍼래서 날뛰니 간난이는 도저히 그냥 있을수가 없게 되었지.
"영감님, 저를 죽여주세요. 마님은 아무 죄가 없어요. 술병은 제가 깼어요."
하니, 부인이 계집종을 감싸주려고 거짓말까지 한 것이 더욱 노여워서 더욱 소리소리 질러 대는 거야.
"요망한 것 같으니! 내가 그토록 조심하라고 일렀거든 네가 깼으면 마땅을 죽을 줄 알아라."
그런데 그 순간, 간난이는 밥상에 놓인 신선그림 술병을 들어 내동댕이치는 게 아닌가?
술병은 산산조각이 났고 너무가 기가 찬 부자영감은 "뭐! 너 미쳤냐?" 소리만 하고 있고, 부인은 "인간이 불쌍해서 봐주려고 했더니 천하에 저런 고얀 년이 있나" 하는 거였어.
이때 간난이는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말했지.
"나리마님 저는 이미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요. 다만 제가 두 번째 술병을 깬 것은 훗날 그 술병을 깨는 사람이 또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이 안타까워 제가 그 사람을 위해서 한 짓일 뿐이어요."
이 말을 듣고 있던 부자영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
"허허, 평소에 네가 지혜롭고 마음씨 고운 줄은 알았다만 네 마음이 그리 넓고 깊은 줄은 몰랐구나. 나도 말은 그리 했다만 술병 하나로 사람의 목숨을 끊기야 하겠느냐? 어쨌든 네 마음 씀씀이가 가상해서 오늘 일은 모두 용서하겠다."
그 후 간난이는 더욱 부자 내외의 귀염을 받으며 잘 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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