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전설 야담

용궁에서 온 강아지

지식창고지기 2010. 12. 6. 11:19

용궁에서 온 강아지

<합천·海印寺>

80년 넘은 늙은 내외가 가야산 깊은 골에 살고 있었다. 자식이 없는 이들 부부는 화전을 일구고 나무 열매를 따 먹으면서 산새와 별을 벗 삼아 하루하루를 외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을 먹고 도토리를 따러 나서는 이들 앞에 복실복실한 강아지 한마리가 사립문 안으로 들어섰다.

1년 내내 사람의 발길이 없는 깊은 산중이어서 좀 이상했으나 하도 귀여운 강아지인지라 「좋은 벗이 생겼다」 싶어 붙들어 키우기로 했다. 노부부는 마치 자식 키우듯 정성을 쏟았고, 강아지는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랐다.

이렇게 어언 3년이 흘러 강아지는 큰 개로 성장했다. 꼭 만 3년이 되는 날 아침, 이 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밥을 줘도 눈도 돌리지 않고 먹을 생각도 않던 개가 사람처럼 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는 동해 용왕의 딸인데 그만 죄를 범해 이런 모습으로 인간세계에 왔읍니다. 다행히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속죄의 3년을 잘 보내고 이제 다시 용궁으로 가게 됐읍니다. 두분의 은혜가 하해 같사온지라 수양 부모님으로 모실까 하옵니다.』

개가 사람이며 더구나 용왕의 딸이라니 놀랍고도 기쁜 일이었다.

『우리는 너를 비록 개지만 자식처럼 길러 깊은 정이 들었는데 어찌 부모 자식의 의를 맺지 않겠느냐?』

개는 이말에 꼬리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제가 곧 용궁으로 돌아가 아버지 용왕님께 수양부모님의 은혜를 말씀드리면 우리 아버님께서 12사자를 보내 수양 아버님을 모셔 오게 할 것입니다. 용궁에서는 용궁선사로 모셔 극진한 대접을 할 것이며 저를 키워주신 보답으로 무엇이든 맘에 드는 물건을 가져 가시라고 할 것입니다. 그때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모두 싫다 하시고 용왕 의자에 놓은 「海印」 이란 도장을 가져 오십시요. 이 도장은 나라의 옥새같은 것으로 세번을 똑똑 치고 원하는 물건을 말하면 뭐든지 다 나오는 신기한 물건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여생을 편히 사실 것입니다.』

말을 마친 개는 허공을 3번 뛰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노은은 꿈만 같았다.

이런 일이 있으뒤 얼마가 지나 보름달이 중천에 뜬 어느날 밤이었다. 별안간 사립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12마리 사자가 마당으로 들이닥쳤다.

『용왕께서 노인을 모셔 오랍니다. 시간이 바쁘오니 어서 가시지요.』

노인은 주저치 않고 따라나서 문밖에 세워 놓은 옥가마를 탔다. 사자들은 바람처럼 달렸다. 얼마 안 있어 가마는 찬란한 용궁에 도착했다.

산호기둥, 황금대들보, 추녀에 달린 호박구슬, 진주벽 등 형형색색의 보화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9채의 궁궐 모두가 이런 보물로 장식됐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가운데의 궁전으로 노인은 안내되었다. 노인은 그저 얼떨떨했다.

『아이구 수양 아버님 어서 오세요. 제가 바로 아버님께서 길러주신 강아지이옵니다.』

예쁜 공주가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노인을 반긴다. 아름다운 풍악이 울리자 용왕이 옥좌에서 내려왔다.

『먼길에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읍니다. 딸년을 3년이나 데리고 계셨다니 그 고마움 어찌 말로 다하겠읍니까.』

용상 넓은 자리에 용왕과 노인이 나란히 앉아 좌우 시녀들이 풍악에 맞춰 춤을 추고 음식상이 나왔다. 공주는 한시도 수양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금강저로 음식을 고루 집어 입에 넣오 주며 수양 어머님 문안과 함께 가야산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입에 들어만 가면 슬슬 녹는 산해진미의 음식 맛은 천하 일품이었다.

이렇게 용궁에서 지내기 한달. 노인의 풍채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노인은 갑자기 부인 생각이 나서 돌아가고 싶었다.

『먼길 다시 오기도 어려운데 오신김에 조금만 더 쉬다 가시지요.』

『말씀은 감사하나 아내의 소식이 궁금하여 내일 떠나겠읍니다.』

『정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떠나시기 전에 용궁의 보물을 구경하시다가 무엇이든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말씀 하십시요. 선물로 드리겠읍니다.』

노인은 불현듯 「海印」을 가져 가라던 공주의 말이 떠올랐다. 보물 창고에는 물건들이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순금의 왕관, 금강석 화로, 옥가마, 산호초피리, 은구슬 말 등 진귀한 보물을 보고도 구경만 할뿐 달라지를 않으니 용왕은 이상했다. 구경이 다 끝나갈 무렵 노인은 까만 쇠조각처럼 생긴 海印를 가리켰다.

『용왕님, 미천한 사람에게 눈부신 보배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사오니 저것이나 기념으로 가져 가겠읍니다.』

노인의 이말에 용왕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분명 귀중한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용왕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허 참! 그것은 이 용궁의 옥새로써 정녕 소중한 것이외다. 허나 무엇이든 드린다고 약속했으니 가져 가십시요. 잘 보관했다가 후일 지상에 절을 세우면 많은 중생을 건질 것이옵니다.』

용왕은 해인을 집어 황금보자기에 정성껏 싸서 노인에게 줬다.

이튿날 노인은 용궁을 떠나왔다. 용왕부부는 九重 대문밖까지 전송했고 공주는 玉가마까지 따라와 작별의 눈물을 흘렸다.

『수양 아버님 부디 안녕히 가세요. 용궁과 인간세계는 서로 다르니 이제 다시는 뵈올 수가 없겠군요. 부디 「해인」을 잘 간직하시어 편히 사세요. 그것으로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되길…』

공주는 목이 메어 말끝을 흐렸다. 노인도 이별의 아쉬움을 이기지 못한 채 가야산에 도착했다. 노인은 아내에게 용궁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해인을 세번 두들겼다.

『내가 먹던 용궁 음식 나오너라.』

주문과 함께 산해진미의 음식상이 방안에 나타났다. 내외는 기뻐 어쩔줄 몰랐다. 무든지 안되는 것이 없었다. 어렇게 편히 오래오래 살던 내외는 죽을 나이가 되어 절을 지었으니 그 절이 바로 지금의 합천 해인사다.

노인들은 죽게 되자 자식이 없어 이 「해인」은 해인사에서 보관시켰으며 이 전설에 따라 절 이름을 해인사라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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