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전설 야담

지명 스님과 팔면경

지식창고지기 2010. 12. 6. 13:33

지명 스님과 팔면경

<내연산·보경사>

신라 지명법사는 중국에 가서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진평왕 7년(585) 진나라로 가는 사신들과 함께 불법 수학의 길에 올랐다.

사신들과 동행했기에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지명 스님은 당시의 고승대덕과 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면서 경·율·논 삼장을 깊이 연구하고 익혔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지명 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인가받기 위해 양자강 건너 북쪽 하남성 낙양에 자리한 중국 최초의 창건 사찰 백마사에 다달았다.

『음, 과연 명찰이로구나!』

고색창연한 백마사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예배드리는 순간 지명 스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처음 가본 그 절 부처님 앞에서 마치 감회에 젖은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는지 그 이유를 지명 스님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감격스런 참배를 마친 지명 스님은 백발이 성성한 주지 스님을 친견하고 찾아온 동기를 밝혔다.

『음, 계림국에서 불법을 구하러 왔다고? 참으로 오랜만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백마총의 임자가 왔도다.』

눈을 지그시 감고 염주를 굴리며 인사를 받은 노승은 알 수 없는 말을 혼잣말처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를 따라오시오.』

지명 스님은 영문을 모르는 채 노승을 따라나섰다. 노승은 길을 걸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해진 것은 인도의 마등과 법란 두 스님에 의해서였소. 그때 그 스님들은 석가모니 불상 한 분과 불경 그리고 12면 8면경을 백마에 싣고 왔는데 애석하게도 백마는 중국에 도착 후 자기 임무를 다했다는 듯 명을 다했소. 두 스님은 백마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중국 최초의 사찰을 건립하고 절 이름을 백마사라 불렀고 그 무덤을 백마총이라 명했지. 지금 우리는 그 백마총으로 가는 길이오.』

이야기를 들으며 한 5리쯤 걸으니 곱게 단장되어 있는 무덤 하나가 보였다.

『저 무덤이 바로 백마총이오.』

지명법사는 백마총에서 삼배를 올리고 백마총 비문을 읽어 내려갔다.

「여기 잠자는 백마는 속세의 인연으로 서천 중인도에서 말의 몸을 받았으나 그 지혜가 뛰어났다. 불상과 불경 싣고 10만 리 길을 거쳐 진단국에 도착하여 목숨을 마쳤다. 그 공덕으로 축생의 몸을 받지 않고 세세생생 정토에 태어나 동진 출가하여 선지식이 되고 중생을 교화 제도하여 마침내 최정각을 이룰지니 이 얼마나 거룩하고 장엄한 원력인가! 그 빛은 진단국과 해동에 널리 비출 것이다.」

비문을 다 읽은 지명 스님은 노스님의 설명없이도 자신이 전생에 백마였으며 이제 인연이 닿아 다시 오게 됐음을 깨닫고 감회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그때였다. 노승이 주장자를 세 번 치더니 벽력 같은 소리로 외쳤다.

『오늘 백마총 임자가 여기 왔으니 호법신령과 신장은 그 법보를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라.』

노승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백마총 옆 땅이 갈라지면서 돌상자 하나가 솟아올랐다.

『지명수좌! 저 석함을 열어 보게.』

석함은 종잇장처럼 가볍게 열렸다. 뚜껑 뒷면에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동국 조선 해뜨는 곳 종남산 아래 백 척 깊은 못이 있으니 그곳이 동국 명당이다. 그곳을 메워 이 8면경을 묻고 법당을 창건하면 만세천추에 불법은 멸하지 않을 것이니 너는 그곳에 태어나 인연을 지어라> 이 수기를 마등·법란 두 도인에게서 받았다.… 다시 해동의 사문이 되어 이곳에 와서 8면경을 갖고 해동에 돌아가 대불사를 일으켜서 세세생생 불법이 흥하여 정토를 이루게 함이다. 일조 근지.」』

지명 스님은 450년 전 백마사 주지였던 일조 스님이 자신의 전생이었으며, 그 전생이 백마였음을 거울 보듯 재삼 확인케 되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석함 속에서는 8면경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 지명수좌는 이 8면경을 잘 호지토록 하라.』

지명 스님이 8면경을 받아 지니자 석함은 저절로 땅 속으로 사라졌다.

『이 8면경은 비록 돌로 다듬어졌지만 보배스런 거울이니 8면보경이라 부르라.』

노승은 8면보경을 8정기의 뜻에 비유하여 설명하면서 삼라만상을 비추는 거울처럼 8면보경은 인간의 마음을 비출 것이니 지극히 호지할 것을 당부했다.

이렇게 이른 후 노승은 『이제 나는 할일을 다했으니 이 몸을 버려야 할 때가 왔구나.』하면서 좌탈입망에 들었다. 노승의 49재를 마친 지명 스님은 백마사에서 주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장안에 도착하여 고승대덕을 친견한 후 고국으로 돌아왔다. 실로 20년만에 귀국하니 왕과 조정대신은 크게 환영했다.

지명법사는 낙양 백마사에서 호지하고 온 8면보경에 대해 왕에게 세세히 고하고 대불사를 일으킬 원력을 밝혔다.

『참으로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이오. 수십 만 리 만경창파를 헤치고 보경을 계림국에 모셔 온 호법인연이 과인에게도 주어진 것을 심히 영광으로 생각하며 곧 대작 불사를 일으킬 것을 삼보전에 맹세합니다.』

이리하여 왕은 지명법사와 함께 신하 10여 명을 대동하고 해맞이 앙일〔仰日〕 고을로 출발, 동해안에 이르렀다. 일행이 명당자리를 찾고 있을 때 문득 하늘을 쳐다본 지명법사가 구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보살 모양의 오색구름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명당을 찾을 것입니다.』

구름은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 내연산에 머물렀다.

1만2천 봉에 12폭포가 절경을 이루고 있는 계곡에는 평원처럼 고요하면서 넓은 연못이 있었다. 일행은 일제히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이 바로 8면보경을 모시고 금당을 세울 성역인가 합니다.』

『과인도 그렇게 생각되오.』

왕과 일행은 모두 기뻐하고 환희에 들떴다. 곧 연못을 메우고 그 중앙에 8면보경을 봉안한 후 대가람이 완성되니 그 절이 바로 원진국사·원각국사·오암대사 등 호국 승장과 고승대덕을 배출한 보경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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