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 세계 언어학자들도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격찬하고 대문호인 펄 벅 여사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한국의 다빈치"라고 하였다. 미국의 시카고 대학 교수는 재직 20년동안 한글 창제일인 10월 9일마다 학생들과 파티를 열었는데 그 이유는 "인류가 마땅히 기뻐해야 하는 공휴일"이며, 유네스코에서는 문맹퇴치에 공헌한 나라나 단체에 주는 상이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이라고 있을 정도로 한글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세종대왕 이전에 문자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관심을 끌게 하는데, 일본의 문자인 히라가나의 원형인 신대문자가 원래 삼국의 문자였다는 설부터 시작해서, 고조선 시대의 문자라고 주장하는 가림토에 이르기까지 28가지의 훈민정음 기원설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종실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1)언문은 모두 옛 글자에서 모방했고,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 언문은 전(前)조선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 (세종실록 103권; 세종23년에 발표한 글) (2)...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한 것이다.(세종실록25년;훈민정음창제당시의첫발표문) (3).....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옵서 정음 스물여덟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를 들어서 보이시면서 이름지어 가로되 훈민정음이라 하시니, 상형하되 글자는 옛날의 전자를 본따고....... (정인지 (해례서문) : 훈민정음 제작원리 등을 설명한 책으로 현재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음) (4)....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근본 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최만리등의 상소문)" 이와 같은 자료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했던 문자들을 본따 만들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실제로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자들을 요동으로 보내 당시 유명한 언어학자에게 지도를 받는가하면 범어나 페르시아 문자등을 연구했다는 기록을 본다면 세종의 창제품을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미 역사스폐셜에서도 신대문자와 가림토등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이 아니라 옛 문자를 참고하여 만들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재야사학자들이 그렇게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가림토의 실체는 무엇일까? 학계에서 사서로 인정받지 못하는 <환단고기>의 기록을 보도록 하자. 제 3세 단군이라고 말해지는 가륵왕의 기사이다. "첫해(己亥 - 기원전 2181년) 5월에 임금이 삼랑을보륵(三郞乙普勒)을 불러 신왕종전(神王倧佺)의 도를 물었다. 2년 이때에 풍속이 아직도 한결 같지 않아 방언이 서로 달라 상형으로 뜻을 나타낼 수 있는 진서(眞書)는 있었으나 열집만 있는 고을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이 많고 백리 되는 나라에서는 글자를 서로 해독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삼랑을보륵(三郞乙普勒) 에게 명을 내려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이암의 <단군세기>에서 인용함) 하지만 사실상 이 설은 불가능해보인다. 세종때 창제된 훈민정음과 10자만 빼놓고 모두다 똑같은데 3천년이 되는 긴 시간동안 겨우 10자가 떨어져나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다. 현대국어가 완벽하게 정착한 것은 1933년이라는 점을 본다면 훈민정음 창제이후 600년도 안되는 긴 시간동안 4개나 없어졌다는 점을 본다면 수천년동안 10자만 없어졌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문자는 그림문자에서 상형문자로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발달하는 것이 원칙인데, 한글의 원형인 가림토는 음소문자(개개의 글이 모두 발음할 수 있는 문자-한글, 알파벳이 여기에 속한다.)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당시 기원전 20세기에 만들어진 수메르 상형문자나 이집트 상형문자만이 존재한 상태라는 점을 본다면 가림토는 고조선 시대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서 조철수 박사(서강대 교수)는 "가림토는 고조선에 창제되었다는 설은 어불성설이며, 중국히브리어의 영향을 받아 고려시대에 창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한글이 세종대왕이 창제했다는 상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우리가 이렇게 쓰기 쉽게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 세종대왕의 공로일 것이다. 폭군인 연산군과 사대부의 멸시, 일제의 탄압등 한글은 숱한 탄압속에서도 극복해왔지만 인터넷의 보급과 외래어의 보급으로 한글은 일제의 한글말살정책보다도 수백배 더 위험한 위기에 놓여있다. 얼마 안 있으면 한글날이 다가온다. 비록 공휴일은 아니지만, 단 하루밖에 없는 한글사랑을 그때만이라도 실천했으면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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